예술혼?

미완성 교향곡으로 유명한 슈베르트의 제8교향곡은 2악장에 이어 3악장은 초고뿐이다. 영감적 악상이 떠오를 때마다 작곡하곤 하다가 31살에 요절했다. 사후 37년만인 1865년에 발견돼 처음 연주됐다. 아름답고 정연한 선율은 지금도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린다. 몸이 허약한데다가 가난하여 독신으로 마쳤다. 그래도 사랑하는 여인은 있었다. 죽음을 예감했던 것일까. 제8교향곡 3악장 원고 말미엔 ‘나의 연애가 끝나지 않은 것처럼 이곡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글귀를 남겼다. 오늘날 유명한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 ‘백조의 호수’는 1876년 러시아 황실극장에서 처음 공연할 당시에는 안무와 무희의 실책이 잦아 호평을 받지 못했다. 공연이 대성공을 거둔 것은 그의 사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재상연됐을 때다. 차이코프스키는 법무성 관리로 있다가 그만두고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학교에 입학한 음악의 만학도였다. ‘태양의 화가’ 고호가 즐겨 그린 해바라기는 정열적 색상, 강렬한 색채, 불꽃 같은 화풍으로 광기를 연상케 한다는 평을 듣는다. 1890년 정신분열증 끝에 37세로 요절했으나 현대 회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상파를 대표하는 모네의 대 연작 ‘수련’은 1926년 86세로 타계할 때까지 10년동안 그린 것으로 약시의 장애를 딛고 화폭에 끈질기게 도전한 필생의 걸작품이다. 생애는 불우한 가운데 작품은 훌륭했던 예술가는 이밖에도 많다. 다복한 생애에 작품 또한 우수했던 예술가도 적지않다.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는 안익태 윤이상 같은 세계적인 작곡가, 이중섭 같은 천재화가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런 뛰어난 예술가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예술혼을 지닌 작곡가나 미술가의 얘길 듣지 못한다. 예술가라고 하여 윤택한 생활추구를 타박받을 이유는 조금도 없다. 인간은 누구나 잘 살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예술혼을 팔아 뛰어난 예술가가 나오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학입시를 위한 예능계 과외가 성행하는 모양이다. 과외비가 수백만원씩이고 보면 가히 기업형이다. 입시도 그렇고 과외도 그렇고 모두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돼 있다. 물론 예능 과외지도는 예술하는 이들 가운데 일부이긴 하지만 풍토가 이래서는 거장이 나오기는 커녕 국내발전도 어려울 것 같다. /白山

대통령의 어머니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어머니 사라 델러노 루스벨트는 부잣집 딸에, 극성스러웠다. 병든 아들의 면회를 기숙사에서 거절하자 사다리를 담벼락에 걸고 아들방까지 올라가 창문에서 동화를 읽어 주었다. 아들의 하버드대학 생활을 돕기 위해 아예 학교옆으로 이사를 했다. 미국판 ‘맹모(孟母)’였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어머니 넬 윌슨 레이건은 가난했다. 아들에게 줄 것이 없었지만 미혼시절 성(姓)인 ‘로널드’를 이름으로 붙여 주었다. 자녀들에게 예명을 지어주고, 본명 대신 부르기를 좋아했다. 어린 아들 레이건이 ‘뚱뚱한 네덜란드인(Dutch)’을 연상시킨다며 ‘더치(Dutch)라고 불렀다. 잦은 이사로 아들이 외톨이가 돼 갔으나 공개적으로 아들을 자주 격려했다. “저 애 보세요. 쟤가 바로 내 아들 더치예요!” 마사 영 트루먼(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어머니)은 미주리주 두메산골 출신의 농부와 결혼했으며 시집살이를 했다. 아들에게 다섯살 때부터 굵은 활자로 된 성경 읽는 법과 피아노 치는 법을 가르쳤다. 남북전쟁의 폐해를 몸으로 겪었으며 어린 아들에게 실상을 세세하게 전해 주었다. 아들이 대통령이 된 후 “핵폭탄 제조는 잘못”이라고 공식 석상에서 밝혀 백악관 출입금지 처분을 당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의 어머니 레베카 제인스 존슨은 가난한 정치인의 아내였다. 아들이 열여섯 살 때 성공해 돌아오겠다며 가출을 선언하자 눈물 속에 떠나 보냈다. 아들이 2년동안 막일을 거친 뒤 실패해 돌아오자 아무런 질책없이 대학에 입학시켰다. 빌 클린턴 대통령 어머니 버지니아 클린턴 켈리는 나이트클럽에서 남자들과 자주 사귀었고 5번 결혼했다. 아들을 클럽에 데려가 재즈를 들려 주었으며 이후 아들은 색소폰을 배웠다. 낙천주의자로 의붓아버지가 아들을 때리면 맞서 싸웠다. 아들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자주 하며 진지하게 토론하는 측면도 있었다. 아들에게 3가지 불가(不可)를 가르쳤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항복하지도 마라. 웃는걸 두려워하지 마라.” 한국에는 지금 대통령꿈에 도취해 있는 인사들이 많다. 용꿈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어머니의 생애를 소개하였으면 좋겠다. 투표에 참고가 될 것 같다. /淸河

복지부의 태만

신생아 사망·질병이 잇따르는 산후조리원에 대한 관리·감독방안 마련을 경기도가 3년 전인 지난 1998년 9월과 12월, 1999년 7월 등 3차례나 정부에 요구했으나 이를 보건 복지부가 묵살했었던 사실은 지금이라도 그 책임을 물어야 할 중대사안이다. 경기도는 복지부에 “ 가사서비스업으로 분류된 산후조리원을 의료업으로 분류해 관리해야 한다. 산후조리원이 도내 곳곳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으나 마땅한 관리·감독 근거나 기준이 없어 감염 사고 등이 우려됨에 따라 조리원의 시설 및 자격기준 등을 개선해 준의료기관화하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고 건의했었다 경기도가 “ 만약 어떤 법을 만들어 산후조리원을 관리하기 곤란하다면 산부인과 의원이 조리원을 연계 운영하도록 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고 정부 대책을 촉구한 것은 산후조리원 운영의 절박성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도 당시 복지부가 “ 산후조리원을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곤란하며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때마다) 적절한 대처 방법을 찾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애매한 답변을 보내왔다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경기도의 건의를 받은 당시 복지부는 산후조리원 관리 방안을 놓고 식품·의료·여성복지 분야에서 적절한 해법을 찾지 못했을뿐 아니라 산후조리원을 의료기관 기준에 적용하기 보다는 단순한 서비스업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었다고 한다. 지나간 일이라고 해서 이 문제를 간단히 처리할 일이 아니다. 장관·차관이 경기도의 건의 내용을 과연 알고 있었느냐는 점이다. 이렇게 중대한 건의안이 만일 복지부의 담당 과장이나 국장급의 전결사항으로 처리되고 차관이나 장관에게 보고되지 않았다면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판단한 과실을 범했기 때문이다. 경기도가 지난 11월 2일 이 건의안을 재차 보냈다고 하니 복지부는 이 건의안을 토대로 관련법을 시급히 제정해야 한다. 어린 신생아들이 어른들의 부주의로 목숨을 잃는 불상사가 발생해서는 안된다.

악마의 덫

순간의 쾌락을 즐기기 위해 일생을 망치는 것이 마약이다. ‘마약을 먹거나 피우면 도대체 몸과 마음이 어떻게 된다는 거야?’식의 궁금증이나 호기심을 단 ‘0·1초’라도 가져서는 안된다. 생후 5개월 된 딸을 인형으로 착각하고 방바닥에 내팽개쳐 죽게 하는 게 마약중독자의 행태다. 흔히 스트레스나 강박관념 때문에 마약에 손을 댔다는 것은 궤변이다. 스트레스 안받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한 명도 없다. 얼마 전에 얼굴 좀 예쁘다 하여 잘 나가던 황수정이라는 여자탤런트가 히로뽕을 최음제(催淫劑)인줄 알고 먹었다고 했다. 최음제는 성욕을 일으키게 한다는 약제로 ‘미약(媚藥)’이라고도 한다.그러니까 정사를 더욱 즐기기 위해 히로뽕을 먹었다는 이야기다. 그 탤런트는 연예인으로서 인기가 순식간에 추락, 회생불능이 됐다. 광고모델에서도 쫓겨나는 막대한 경제적 수모도 당했다. 이렇게 마약은 사람을 잡아 먹는다. 사람들이 보통 이야기하는 마약은 사실 마약류의 한 종류다. 지난해 마약법, 대마관리법, 향정신성의약품 관리법 등을 통합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마약류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쓰였다. 마약, 대마, 향정신성의약품이 여기에 포함된다. 향정신성의약품 중 대표적인 것은 메스암페타민이라는 의약명을 갖고 있는 히로뽕이다. 염산에페드린이 주원료인 히로뽕은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마약류의 70%를 차지하는데, 식욕 억제 및 환시, 환청, 피해망상 등의 부작용을 일으킨다. 최근 젊은층에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는 신종 마약류인 야바(속칭 향기나는 약), 엑스터시(MDMA·속칭 도리도리) 역시 히로뽕을 화학처리해 강도를 높인 향정신성의약품이다. 소위 살빼는 약으로 불리는 펜플루라민과 산부인과에서 분만 진통제로 쓰이는 염산날부핀(누바인), 코카인에 화학약품을 투입한 크랙이 향정신성의약품에 속한다. 마약을 투여하고 환각상태에 빠져들면 ‘손목을 칼로 그어라’‘더 살아서 무엇하느냐’고 누군가 악마처럼 유혹하기도 한다고 한다. 한 사람의 마약중독은 본인은 물론 가정과 사회가 함께 공멸하는 무서운‘덫’이다. /淸河

奇貨可居

진시황은 성이 영씨로 돼있으나 사실은 여씨다. 전국시대말 조나라 수도 한단에 간 거상 여불위는 진나라 태자 안국군의 서자 자초가 볼모로 와 있으면서 냉대받고 있음을 알았다. 자초를 찾아가 장차 본국의 대권을 쥘 수 있노라며 용기를 북돋고 많은 돈까지 주었다. 이어 진나라로 들어간 여불위는 공작끝에 안국군의 정실 화양부인에게 접근, 대담판의 로비를 벌여 안국군이 왕위에 오르면 서자 자초를 태자로 삼는다는 밀약을 받아냈다. 여불위는 다시 한단으로 가 자초에게 융숭한 연회를 베풀고 조희라는 절세의 무희를 바쳤다. 이윽고 조희에게 태어난 아이 이름이 정(政)으로 후일의 시황제다. 그러나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조희가 처음 자초를 만났을 때 이미 여불위의 씨를 갖고 있었다고 기록해 놓고 있다. BC 257년 진·조 두 나라가 마침내 싸움을 벌여 인질인 자초가 위기에 처하자 여불위는 황금 600근을 조나라 실세들에게 풀어 자초를 무사히 본국으로 탈출시키는데 성공했다. 얼마후 진나라 소왕이 병사하여 안국군이 53세로 왕위에 올랐으나 평소 주색으로 몸이 허약하여 병중이었던 터라 왕이 된지 사흘만에 죽었다. 드디어 자초가 왕위를 계승, 장리왕이 되자 여불위를 일약 승상으로 제수하고 10만호의 식읍을 내려 지난날의 은혜에 보답했다. 여불위는 장리왕 자초가 3년만에 죽어 태자 정이 왕이 된 뒤에도 숙부로 예우받으며 계속 실권을 쥔 것이 과해져 나중엔 음독자살해야 하는 화근을 불렀다. 사기- ‘여불위전’은 자초에게 투자의 눈을 돌린 것을 가리켜 당장은 큰 가치가 없더라도 챙겨둠으로써 나중에 큰 이문을 남긴다는 뜻으로 ‘기화가거’(奇貨可居)라고 했다. 자초를 주군삼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여불위가 그 공덕으로 영화를 누렸던 것처럼 그와 비슷한 사례는 국내에도 있다. 지금 또한 대권 예비주자 주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권력의 영화는 무상하다. 여불위와 마찬가지로 음독자살 하는 권력자의 말년은 허다하다. 텔레비전 드라마 ‘여인천하’의 윤원형과 난정 또한 나중에 무소불위의 권력과 영화를 누리다가 실각하게 되자 다같이 음독자살하고만 것이 역사의 기록이다. 지금은 자결까지 해야하는 일은 없을지 몰라도 자신이 잘못 누린 권력과 영화가 자신의 발목을 잡는 족쇄는 능히 될 수 있다. 권력의 단맛에 도취되는 인간속성의 어리석음 일는지.

무제

한고조 유방의 손자 가운데 회남왕을 지낸 유안(劉安)이란 사람이 있다. 고명한 학자들을 초빙, 토론을 즐긴 학구파로 이름나 회남자라고도 부른다. 두부 만드는 법을 처음 개발한 것도 그였다는 설이 있다. ‘회남자’란 책자 세림편에 ‘일엽지추 일엽천하추(一葉知秋 一葉天下秋)라는 시편이 나온다. 가을을 알리는 나뭇잎 하나가 천하의 가을을 낙엽 하나로 알리는구나로 직역된다. 그러나 세월의 무상함이나 시세의 변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의역되기도 한다. 또 가을부채를 일컫는 추풍선(秋風扇)이란 말이 들어간 시구가 있다. 한나라 성제의 총애를 받았던 후궁 반첩여가 참소당해 억울한 원죄임이 밝혀졌으나 이미 황제의 관심이 예전같지 않아 원가행(怨歌行)이란 시를 썼던 것이다. 그 가운데 자신을 여름이 지나 쓸모가 없어 채롱속에 간수된 부채에 비유하여 추풍선이라고 했다. 하로동선(夏爐冬扇)이란 말도 있다. 후한시대 왕충이 ‘재능을 잘못 발휘하여 무익한 것은 마치 여름에 화로를 내놓고 겨울에 부채를 내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허사다’라고 말한 논형(論衡)에서 유래됐다. 입동이 지나긴 했으나 지금이 늦가을인지 초겨울인지는 말하는 이가 보기에 따라 다른 그런 계절이다. 늦가을이든 초겨울이든 분명한 것은 찬바람 속에 낙엽이 지고 있는 변함없는 자연현상이다. 지겹도록 삶아댄 폭염엔 그토록 좋았던 에어컨을 지금은 보기만해도 한기를 느낄만큼 온기가 좋아졌다. 에어컨에 커버를 씌우거나 아니면 선풍기를 ‘추풍선’처럼 다락에 넣어두고는 생각해본다. 올 한해를 여름에 난로, 겨울에 부채를 내놓는 ‘하로동선’의 어리석음과 마찬가지로 쓸모없이 보내지 않았는가를 돌아본다. 뭔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지난 세월이 아까워서인지 모르겠다. 비단 개인뿐만이 아니고 가정과 직장, 나아가서는 모든 공인들이 다같이 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갖는다. 이 달도 이젠 하순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이 해를 보내는 12월이 닥치면 이내 연말연시를 맞는다. 얼마남지 않았지만 마무리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다. 인간은 역시 자신을 돌아보며 허물을 반성할 줄 아는데 인간다움이 있는 것이다. /白山

국회

지난 9월20일 소집된 올 정기국회 회기 90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겨우 국정감사만 마친 가운데 54일을 넘겨 불과 36여일 남겨놓고 있다. 그동안 여야의 사정 때문에 상임위 활동도 별로 활성화하지 못했다. 프랑스의 정치가 페리고르(1754∼1838)가 “아무 것도 깨닫지 않았고,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고 개탄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1789년7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대부분의 귀족들은 해외로 망명했다. 나폴레옹의 몰락에 이은 루이 18세의 집권으로 갖은 고초를 겪던 망명 귀족들이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땐 봉건제도의 모순이 극에 달해 시민사회의 이상이 확산하는 시대였다. 그런데도 귀족들은 봉건시대의 영화를 추구할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망명길에서 기아에 허덕였을 만큼 모진 고초를 겪고도 무능한 귀족들은 여전히 예전의 집단이익 근성을 버리지 못한채 싸우기만 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깨닫지 않았고,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는 페리고르의 유명한 말은 그 무렵의 왕정복고를 저주하며 귀족들을 갈파했던 말이다. 국내 정치권이 당쟁으로 영일이 없고, 국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심지어는 이듬해 정부예산안 확정도 법정시일을 놓치기가 일쑤였다. 그러다가 회기 막판에 가서 예산심의를 제대로 하는둥 마는둥 해가며 얼렁뚱땅 해치우곤 하였다. 건국이후 반세기가 훨씬 넘었다. 그동안 유일하게 한치의 발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정치권이다. 50년전이나 세상이 달라져도 몇번이나 달라진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다. 개혁의 대상은 누구보다 정치권이라는 지탄속에서도 개혁의 면모는 커녕 예전의 타성 그대로다. 각 상임위 소관별로 쌓인 법안과 의안등이 산적해 있다. 민생과 관련한 많은 안건이 먼지가 쌓이도록 낮잠자고 있다. 이러고도 비서를 더 늘리거나 세비 인상 등에는 여야가 군말없이 의기투합하곤 한다. 일찍이 ‘하늘아래 둘도 없는 국회’라는 혹평을 들은 적이 있다. “명색이 선량이라는 그들은 말뿐 아무것도 깨닫지 않았고,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고 해야할 것 같다. /白山

경종

‘혼인을 빙자, 음행의 상습이 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형법 제304조의 ‘혼인빙자간음죄’가 세간에 알려진 계기는 이른바 ‘박인수 사건’이다. 1955년 1심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한다”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은 징역 1년을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혼인빙자간음죄는 당시 상당한 논란이 됐지만 최근에는 사기죄로 처벌하면 될 것을 굳이 성관계와 연관짓는 것은 남녀관계를 불평등한 관계로 보는 지난 시절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폐지를 주장한다. 형법 제297조에서 ‘부녀를 강간한 자’로 한정돼 처벌하고 있는 ‘강간죄’도 시대에 뒤떨어진 전통적인 구분이라는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도 동성(同性)피해자에 대해 ‘강간’이라는 단어 대신 ‘추행’으로 구분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으로 일단락 됐지만 쌍방간 합의하에 이뤄졌음에도‘간통죄’가 계속 폐지 찬반 논쟁 중에 있고, ‘청소년 성매매’역시 ‘쌍벌주의’도입을 놓고 논란이 많다. 지난 6월 서울지검 소년부에서 성인 남성의 매매춘을 유도한 청소년에 대해서는 필요한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여성단체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검찰은 적극적인 법률개정 검토 작업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 ‘청소년’보다는 ‘미성년자’가 타당하겠지만 미성년자와 ‘도움’을 미끼로 ‘돈을 주고’성관계를 갖는 것은 지탄을 받아야 된다. 부도덕한 짓이다. 청소년 성매매는 일반적인 매춘과는 다르다.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진 남성명단 445명을 추가로 공개하려는 것은 경종이다. 인격을 무시하거나 박탈하는 게 아니다. 간통죄, 혼인빙자간음죄, 강간죄 존치는 경종이다. 경종을 울리지 않아 보라. 인류 파멸직전의 극악사태가 순식간에 도래할 게 분명하다. /淸河

탐지견

우리나라는 탐지견을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987년 처음 도입했다. 탐지견은 후각이 사람보다 최고 100만배까지 예민하다고 한다. 미국, 호주 등에서는 불법 반입물량의 70∼80%를 탐지견이 적발한다. 미국에서는 숨겨오는 달러만 공항에서 전문적으로 찾아내는 탐지견이 맹활약한다. 인천국제공항 세관이 운용중인 탐지견은 모두 51마리로 대부분 마약, 폭발물 탐지견이지만 사향, 호랑이뼈, 웅담가루 전문 탐지견도 활동중이다. 이 탐지견은 여행객이 몰래 들여오던 원숭이도 적발한다. 구제역과 광우병 유입 때문에 골치를 앓던 수의과학검역원도 가축 생고기의 불법반입을 차단하기 위해 탐지견을 활용키로 했다. 뼈를 제거한 생고기는 X레이 투시기에도 잘 식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불법 육류반입 적발건수는 1999년 4천200여건에서 지난해 5천500여건으로 매년 증가한다. 미국 테러참사가 발생한 다음날인 9월12일 서울의 미국대사관 주변은 추가테러의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고 무장한 경찰특공대 사이로 폭발물 탐지견들이 거친 숨을 내쉬며 주변을 탐색했다. 미국 테러여파로 바빠진 것은 사람들뿐 아니다. 세계적인 테러위협과 월드컵을 앞둔 한국의 탐지견들도 ‘맹활약’중이다. 테러 이전에는 주 2∼3회 정도 출동했던 특공대 소속 20마리의 탐지견들이 요즘은 하루에 2회 출동한다.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대우도 대단하다. 분기별로 서울대 동물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는다. 철마다 각종 예방접종은 물론이다. 최근 기온이 떨어져 견공들의 집에는 온풍기가 가동중이다. 탐지견들에게 들어가는 예산은 ‘기밀’이라는데 아마어마한 모양이다. 탐지견들은 리트리버가 대부분이고 세퍼트와 마리노이즈 등이다. 가격은 500만원선인데 주로 미국에서 수입한다. 탐지견들의 공통점은 충성스럽고 ‘웬만한 사람보다 낫다’는 것이다. 탐지견을 부리는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겠지만 탐지견들의 감시와 조사를 받은 사람들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기야 견공들은 “이런 사람같은 놈!”아니면 ‘사람보다 못한 놈’이라고 호통칠지 모른다. /淸河

상수도사업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집은 거의 없다. 수돗물 불신은 이미 생활상식이 된지 오래다. 집집마다 정수기를 이용하거나 끓여서 먹는다. 수도요금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와 같아 손대면 손댈수록 화를 부른다. 예민한 민원사항이다. 수도요금을 인상할 때마다 물가상승 요인으로 지목되곤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수질을 탓한다. 현행 수도요금은 평균 t당 442원이다. 생산원가가 t당 569원인데 비해 77.8%에 그친다. 그간 수차 올린게 이러하다. 이때문에 각 시·군마다 상수도 특별회계의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도내만 해도 상수도사업 부채가 8천억원대로 추정된다. 연간 금리만도 70억원 가량이다. 이 원리금은 지역주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당장은 수돗물 값을 덜 올려 주민부담을 줄이는 것 같아도 결국은 주민이 갚아야 할 빚이다. 현상유지가 급급한 판이니 수질개선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시·군에 따라서는 수질 전문가마저 두기가 벅찬 실정이다. 말은 단위 생산비를 줄여 인상요인을 흡수하라고 하지만 지금의 체제로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단위생산비를 줄이는 방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환경부가 계획하고 있는 상수도사업의 광역화는 원가절감이 가능하다. 지역연계 운용으로 중복투자를 피할 수 있는 등 생산비 절감요인이 많다. 그러나 환경부가 이와 함께 검토하는 민영화방안은 어려울 것 같다. 시·군이 운영하는 상수도 사업은 비공권력 분야다. 공급자와 수요자간에 계약성격을 갖는 민사관계이지 행정사항은 아니므로 민영화는 가능하다. 하지만 민영화하면 수탁업체가 이문을 남겨야 한다. 영리를 추구해야 생산이 가능하므로 수도요금 인상이 불가피 해진다. 수질개선을 이루면 이룰수록 생산비가 더 들기 때문에 요금 또한 더 오를 것이다. 광역화로 절감되는 생산비 폭보다 민영화 업체의 수익성 폭이 더 높으면 광역화와 더불어 민영화해도 별 의미가 없게 된다. 문제는 또 있다. 광역화든 민영화든 시·군이 짊어지고 있는 기존의 부채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환경부의 계획은 더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상수도사업은 이래저래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白山

촛불환담

1917년11월7일은 볼셰비키가 케렌스키 과도정부를 마침내 타도, 러시아 혁명을 완성한 날이다. 당시 군사평의회 의장이었던 페테르스 부르그는 ‘나의 생애’라는 자서전에서 그 날의 레닌을 이렇게 말했다. ‘국가 권력은 탈취됐다! 레닌은 아직 와이샤츠를 갈아입을 틈도 없었다. 그는 동지들간의 친근성을 나타내는 일종의 수줍은듯한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상냥스럽게 처다 보았다. “여보게”하고 주저하듯이 말을 꺼냈다. “이렇게 빨리 박해와 지하생활로부터 권력에로 이행한다는 것은…”하고는 목이메어 말문을 닫았다. 그리고 갑자기 “현기증이 난다”면서 자기 머리를 손으로 둥들둥글 쓸어 만졌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처다보면서 한참동안 미소지었다 ’볼셰비키가 러시아 공산당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이듬해 3월에 가진 당대회에서 였으며,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연방공산당으로 바뀐 것은 1925년이다. 소련이 붕괴된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러시아 혁명기념일 또한 ‘화해일치의 날’로 명칭이 바뀌었다. 어느 중앙지 모스크바 특파원이 전한 지난 7일의 현지 소식이 흥미롭다. 공산주의 지지자들은 푸틴반대의 구호를 외치면서 행진했는가 하면, 젊은이들은 청소의 날 행사를 갖는 등 다양한 집단이 여러 목소리를 내는 자유를 구가했다는 것이다. 쿠바도 관광사업 개방으로 자유의 바람이 일고 중국, 베트남 역시 시장경제로 한해가 다르게 현대사회화 하고 있다.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만 유독 잠궈둔 빗장문을 좀처럼 잘 열지 않는다. 지난 8일 제6차 남북장관(상)급 회담이 열린 금강산여관에서는 남북의 두 대표가 저녁에 환담을 나누면서 촛불을 켜야만 했다. 정전이 됐기 때문이다. 참 이상하다. 정전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듯한 북측 사람들을 의연하게 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로 보아야 할 것인지 헷갈린다. 개방과 개혁을 고집스럽도록 거부하는 저들에게 변화가 언제쯤이나 있을 것인지 생각할 수록 머리가 무겁다. /白山

수능시험

‘어려워진 수능 충격의 고3교실’ ‘과외공부 필요 없다더니’ ‘가채점 포기속출 점수파악도 안돼’ ‘교육부 홈페이지 비난 쇄도’ ‘진학담당교사 한숨만 푹푹’ ‘380점이상 작년 36명 올해는 0명…수능 가채점 모교교’ ‘널뛰는 난이도 수험생들만 골탕’ ‘상위 50% 77.5점 목표 빗나가 교육부의견 반영안돼’ ‘이해찬세대 학력도 원인’‘출제진 일선 현장과 괴리’ ‘사교육의존 더 심해질듯’ 올 수능 시험을 둔 신문기사의 크고작은 제목들이다. 작년 수능은 변별력이 의심될 만큼 너무 쉬어 만점이 수두룩하게 쏟아졌다. 이 때문에 고득점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지경이었다. 반대로 올 수능은 변별력을 높인 것만큼 출제가 난해하여 시험을 잘 치루지 못해 야단들이다. 성적이 뚝 떨어질 전망이라는 것이다. 작년에는 너무 쉬어서 탈이고 올해는 너무 어려워서 탈이다. 따지자면 난이도 조절이란 것도 기준이 모호하다. 이집트 우화에 ‘악어의 논법’이란 게 있다. 나일강변에 살던 한 어머니가 악어에게 붙잡힌 아이를 돌려달라고 간청하자 악어는 내 마음을 정확히 알아 맞추면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아이를 돌려주려 하는 것인지 아닌지 맞춰보라고 했다. 그 어머니는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돌려주려고 한다든지 안돌려 주려고 한다든지 어떻게 말하든 악어는 틀렸다고 말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수능시험이 종잡을 수 없는 것은 분명 문제점이긴 하다. 그러나 점수만으로 얘기하자면 어려우면 다같이 어렵고 쉬우면 다같이 쉽다. 쉬우면 다같이 점수가 올라가고 어려우면 다같이 점수가 내려간다. 수능시험 출제는 난이도보다 학교교육의 본질에 접근해 생각해보는 것이 순리다. 교육부의 조령모개식 정책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논의돼야 한다. 도대체가 백년지계라는 교육이 2∼3년도 못가 이리 바뀌고 저리 바뀌는 판이니 학교는 뭘 믿고 어떻게 학생들을 지도해야 할 것인지 앞으로도 걱정이다. 학교 공부만 착실히 해도 되는 입시위주의 탈피를 언제 면할지 그저 암울하기만 하다. 근원적대책 접근없이 단순히 시험이 너무쉽다, 너무 어렵다고만 말하는 것은 상대적이어서 ‘악어의 논법’과 비슷하다. /白山

꽁치

최근 언론에 이름이 부쩍 오르내리는 꽁치는 맛있고 값이 저렴해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국민생선’이다. 그런데 꽁치는 ‘서리가 내려야 제맛이 난다’는 말이 있다. 계절에 따라 지방질 함유량이 달라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름철 꽁치는 지방질 함유량이 10% 정도이나 10월, 11월쯤 잡히는 꽁치는 지방질이 2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산란을 마친 12월쯤에는 다시 지방질이 5%로 줄어든다고 한다. 꽁치는 단백질 함량도 20% 정도로 다른 생선에 비해 월등하다. 질 또한 우수하여 가을철 스태미나 식품으로 손색이 없다. 일반적으로 필수아미노산이 가장 이상적인 비율로 들어있는 식품으로 달걀을 꼽지만, 꽁치는 필수아미노산이 달걀의 95% 정도에 달한다고 한다. 가히 영양의 보고라 할만하다. 특히 꽁치의 붉은 살에는 빈혈치료에 효과적인 성분인 비타민 B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더욱이 꽁치에 포함된 지방질은 쇠고기나 돼지고기의 그것과는 달리 불포화 지방산이 많아 소화와 흡수가 잘 된다. 따라서 동물성 지방을 경계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권장할 만한 생선이다. 불포화 지방산은 노화와 성인병을 예방하고 평소 허리와 무릎이 부실한 사람에게 좋은 성분이다. 이렇게 꽁치는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 가을에 영양식을 맘껏 먹어두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혹한에 견딜 수 있는 저항력을 길러주는 좋은 음식이다. 얼굴이 창백하고 기운이 없거나 감기에 잘 걸리는 사람들은 꽁치의 배 부분과 신선한 내장을 함께 먹으면 더욱 좋다고 한다.그러나 꽁치는 산성이 강하기 때문에 영양의 균형을 위해 채소 등 알칼리성 식품과 함께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장을 함께 먹어도 안전한 생선으로는 보통 꽁치와 은어 정도를 꼽는다. 다만 산삼도 몸에 안받는 사람이 있다고 하듯 꽁치를 먹고 설사나 두드러기가 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11월 22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한·러 어업위원회 회의가 잘 끝나 ‘한·일‘ 꽁치분쟁 ’이 타결될 전망이 보인다고 한다. 우리 어부들이 예전처럼 남쿠릴수역에서 꽁치를 잡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淸河

경로당

민선자치 이후 경로당은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지만 난방비 지원액은 5년째 제자리 걸음이어서 노인들의 겨울나기가 걱정스럽다. 현재 정부가 국비(50%) 도비(25%)와 시·군비(25%)로 경로당 난방비를 1곳당 매월 25만원씩 지원토록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매월 50만∼60만원씩 소요돼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이 지원금은 1998년 연탄 500장(장당 500원)을 기준으로 마련된 후 동결된 액수로 대부분의 경로당이 최근 보일러용 등유를 사용하는 점을 감안하면 당장 현실화해야 한다. 더구나 지원대상도 3∼4년 전에 신고된 경로당 기준이어서 도내 경로당 6천9개소 중 6%인 389곳은 아예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이는 경로당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지원금액뿐 아니라 지원대상 숫자도 동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여지책으로 지자체가 지방비를 보조해주거나 경로당 노인들에게 도로변 청소, 노는 땅 경작, 폐자원 수집 등을 통해 자체 수익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고 있으나 부족분을 채우기에는 너무 어려운 형편이다. 특히 부족한 난방비를 기업체나 지역인사 등의 지원으로 유지하고 있는 일부 경로당은 경기침체 등으로 성금이 크게 감소돼 올 겨울나기에는 상당한 고초를 겪을 게 분명하다. 노인들이 월 2천∼3천원씩의 회비를 자체적으로 걷거나 청년회·부녀회 등의 지원으로 난방비를 충당하는 곳도 상당수 있으나 곤란하기는 모두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와 같은 경로당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는 물론 당국의 예산증액이 우선책이다. 그러나 이제는 정부에만 의존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늙으신 내 부모님을 자식들이 모셔야지, 국가가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좀 뭣하지 않은가. 정부차원의 완벽한 노인복지시책이 마련된다면야 더 할 나위 없지만 지역사회, 특히 경노당을 이용하는 노인 가족들의 깊은 관심도 필요하다. 행정당국의 적극적인 지원과 노인 가족들의 깊은 관심이 힘을 합쳐 경로당 노인들이 올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청하

가정

테레사 수녀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날, 한 기자가 “세계 평화를 위하여 가장 긴급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테레사 수녀는 웃으면서 기자에게 말했다. “기자 선생께서 빨리 집에 돌아가셔서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긴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의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유명한 일화이다. 미국 네브래스카 주립대학 스티네트 교수는 현대 미국가정의 건강한 공통점을 ‘감사·헌신·교통·함께 갖는 시간·정신적 건강·극복의 능력’등 여섯가지로 분류한 연구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가족 서로가 고마움을 말이나 행동으로 자주 표시하는 것은 ‘감사’다. 개인보다 나의 가족 전체의 유익과 명예를 위하여 사는 것은 ‘헌신’이다. 어떤 일이 있을 때 묵과하거나 혼자 해결하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의논하며 살아가는 것은 ‘교통(Communication)’이다. 식사 피크닉 교회 등 가족들이 행동을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 때 가족의 유대가 강해지는 것은 ‘함께 갖는 시간’이다. 낙관주의, 윤리적 가치관, 박애정신 등 가족의 ‘정신적 건강’은 강한 가족을 만들고, 가족적인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고통과 슬픔으로 넘기지 않고 변화와 발전의 기회로 극복하는 것은 ‘극복의 능력(Coping Ability)’이다. 두 말할 것도 없이 가정은 사회와 국가의 기본단위다. 따라서 가정이 흔들리면 여러가지 사회문제가 야기되며 사회도, 국가도 흔들리게 된다. 은퇴 후 봉사활동으로 더욱 바쁘게 지내고 있는 지미 카터는 대통령 재직시설 백악관 직원들에게 “백악관 직원은 가정생활에 충실해야 할 자격이 있습니다. 안정되고 건강한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이 대통령에게도 필요한 사람이며 나라일도 맡길 수 있습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집에 며칠씩 못 들어 갈 정도로 바쁜’ 사람을 유능하다고 판단한다. 많은 주부들이 ‘땡 남편’을 싫어한다고 한다. 퇴근 후 곧바로 귀가하는 남편이 싫다?. ‘집에 일찍 가봐야 답답’하기만 하다는 남편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아내가 기다리는 가정이 싫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세계평화를 위하여 가장 긴급한 일이라는 테레사 수녀님의 말씀은 명언 중 명언이다. /淸河

악수

반가운 사이끼리 만나면 피부 접촉을 한다. 이마를 맞대고 목덜미를 비비기도 한다. 동물이 이러하다. 하물며 인간은 더 말할게 없다. 껴안거나 손을 맞잡는다. 대중 앞에서 사랑하는 남녀가 서슴없이 입맞춤 키스를 해도 허물이 되지 않는 것은 서구식 애정 표현이다. 만나서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이처럼 만남의 내용, 그리고 인종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아프리카 원주민 끼리의 인사법만도 30가지가 넘는다. 다만 조선시대의 선조들, 특히 양반들은 아무리 반가워도 피부접촉은 점잖게 여기지 않아 고작 말로 떼우는 게 예법이었다. 이 때문에 개화기에 서구식 악수가 들어온 처음엔 무척 어색할 수 밖에 없었다. 악수는 앵글로 색슨족의 인사 문화다. 영국의 주요 구성민족이 되는 앵글로 색슨족의 인사법이 오늘날 지구촌의 인사법으로 보편화한 것은 영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다. 가령 코 맞대기 인사법을 가진 아프리카 어느 민족이 세계를 지배하게 됐다면 악수대신 코 맞대기가 보편화 했을지 모른다. 인류문화의 발달은 이처럼 문화의 지배력이 강한 쪽으로 흐른다. 악수에도 예절이 있다. 윗사람이 먼저 악수를 청할 때 아랫사람은 비로소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남녀사이엔 여성이 먼저 청할시에 남성이 응해야 하며, 여성은 장갑을 낀채 악수해도 되지만 남성은 장갑을 껴서는 안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남성이 여성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결례를 저지르는 꼴불견을 가끔 본다. 그러나 윗사람 아랫사람이건, 남성이든 여성이든 기본적 예법이 있다. 악수를 나누는 상대의 얼굴을 마주봐야 하는 것이다. 눈을 마주보면 더욱 좋다. 악수를 하면서 얼굴을 돌려 다른 사람을 보거나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것은 악수하는 상대에게 이만저만한 실례가 아니다. 아무리 윗사람이 아랫사람과 악수를 한다해도 윗사람의 그같은 결례는 아예 악수를 안한 것만 못하다. 일상 생활화한 악수인데도 악수를 제대로 할줄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다. 특히 정치인들이 더하다. /白山

대통령 월급

‘임명은 정부가 하지만 생계는 본인이 알아서 하라’ 자유당 정권 시절에 공직사회에서 나돈 얘기다. 그만큼 박봉이었던 것이다. 지금이라고 공무원 봉급이 후한건 아니지만 그 무렵엔 월급이라야 쌀 한가마 값 정도였을까, 아무튼 월급 가지고 산다고는 누가봐도 믿기지 않았던 때였다. 이 때문에 뇌물거래가 공공연하여 많든 적든간에 뇌물이 없으면 뭣 하나 되는 일이 없었다. ‘사바사바’란 말의 뇌물 은어가 그래서 유행했다. 관청 일을 보면 ‘사바사바’할 돈부터 챙겨야 했다. 지금도 뇌물거래가 없다 할순 없지만 음성적인 지하부패인데 비해 당시엔 반양성적으로 준공식부패화 했던 것이다. 민초들이 더러 궁금하게 여기는 가운데 고위 공직자들은 과연 월급만으로 생활하느냐 하는 것이다. 궁금증의 대상이 대통령이나 장관쯤 되면 더 한다. 대통령의 연봉 기본급이 올해보다 11.1%, 그러니까 1천196만원이 올라 내년에는 1억2천7만9천원이 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무총리는 928만원이 오른 9천322만원, 장관은 653만원이 올라 6천558만원이 된다.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에 비해 일반 공무원의 봉급인상은 대통령이나 장관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6.7%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기획예산처의 이러한 내년도 공무원 봉급 인상 계획이 공무원의 사기앙양에 도움이 될 것인지는 능히 생각해볼만 하다. 민초들이 알기로는 대통령이나 총리, 장관쯤 되면 월급으로 생활하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다. 월급봉투가 절실한 것은 일반 공무원들이다. 고위직 공무원은 굳이 월급이 아니어도 판공비란 것이 또 있다. 판공비가 아무리 가계생활에 보태쓰는 것이 아니라 해도 역시 그러하다. 대부분의 일반직 공무원들은 월급 하나만 바라보고 열심히 봉직한다. 그러한 공무원들은 겨우 6.7%의 인상에 그쳤다. 그리고는 월급이 없어도 살 수 있다고 보는 대통령이나 총리, 장관급은 11.1%를 올렸다. 기획예산처의 봉급 인상계획은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갖게한다. 적어도 대통령이나 일반직 공무원의 봉급 인상계획은 같아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고는 부정부패 척결을 말하기가 어렵다. /白山

집안 싸움

진(秦)나라 효공 때의 재상 상앙은 부국강병책을 펴 뒷날 진나라의 천하통일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상앙이 조량(趙良)이란 사람과 자리를 함께 했을 때였다. 상앙이 “나의 통치와 백리해의 그것을 비교해 보시오. 누가 더 나은 것 같소?”하고 물었다, 백리해는 진나라 목공 때의 명재상이었다. 조량이 대답했다. “천마리 양가죽이 여우의 겨드랑이 가죽만 못하고, 천사람이 좋다고 아부하는 말은 한 선비의 올곧은 직언만 못합니다. 주(周)나라 무왕은 신하의 직간(直諫)으로 흥했고 은(殷)나라 주왕은 신하의 맹종으로 망했습니다. 지금 승상의 위태로움은 아침 이슬과 같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수명을 더하려고 하시니 실로 안타깝습니다. 봉지(封地)로 받은 15고을을 반납하고 시골로 돌아가 농사나 지으십시오”그러나 상앙은 조량의 말을 듣지 않았다. ‘10·25 재·보선’에서 참패한 민주당의 이른바 소장 개혁파들이 권노갑 전 최고위원과 박지원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의 정계은퇴와 한광옥 대표 등 당5역의 즉각사퇴를 요구했는가 하면, 동교동계가 ‘민주화 투쟁한 것이 잘못이냐’고 맞서는 등 집안싸움이 가히 점입가경이다. 권노갑·박지원씨가 상앙같은 사람도 아니겠고 소장 개혁파들이 조량같은 사람도 아니겠지만, 민주당 내홍 앞에서 상앙과 조량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민주당엔 같은 동교동계도 구파·신파가 있고, 소장 개혁파에도 ‘새벽 21’‘여의도정담’‘열린정치포럼’‘바른정치 모임’‘주민정치연구회’등 웬 모임·계파가 그리 많은가. 정계에서 은퇴하란다고 요구해서 은퇴할 사람들인가. 또 은퇴하라고 요구할 자격은 있는 사람들인가. 한마디로 헷갈리는 장면들이 꽤 많이 나온다. ‘봉지로 받은 15고을을 반납하고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으라’는 조량의 말을 듣지 않은 상앙은 후일 옳게 죽지 못했다.그로부터 다섯달 뒤 효공이 죽고 태자가 등극했는데 상앙은 앙앙불락하고 있던 정적들의 무고를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주재로 3일 청와대에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열린다. 누가 과연직간할 것인가. 부질없이 궁금해진다.

안경

우리나라 사람 100명 중 30명은 안경을 쓴다고 한다. 병원이 늘어나듯 안경점도 많이 생긴다. 할머니의 돋보기 안경부터 멋쟁이들의 선글라스까지 안경의 종류는 다양하다. 안경은 이제 식탁의 수저처럼 또 여성들의 화장품처럼 생활의 필수품이 되었다. 안경이 최초로 어디에서 발명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여러가지 자료들을 분석해보면 대략 1280년쯤 베니스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보면 “원나라의 늙은 신하들은 거북의 등껍질로 만든 볼록렌즈 안경을 끼고 있다”고 밝히고 있어 당시 안경이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안경의 기원은 대략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하고 있다. 지봉(芝峰) 이수광(1563∼1628)이 지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도 “안경은 노인이 책을 볼 때 쓰는 것으로 작은 글자를 크게 보이게 한다. 근래 들은 소식에 의하면 명나라 장수 심유경과 왜의 승려 현소가 모두 노인용 안경을 쓰고 가늘고 작은 글씨를 읽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보지 못하던 것이다. 안경은 해방(조개의 이름) 껍질로 만든다고 한다. 또 판별하기 어려운 낡은 문서를 수정으로 햇빛에 비추어 보면 분별할 수가 있다고 한다”고 실려 있다. 이러한 기록은 16세기말쯤 외국인 또는 외국에 드나드는 사신이나 상인을 통해 안경이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는 설을 뒷받침해 준다. 조선시대 실학자 홍대용(烘大容·1731∼1783)은 3개월간 중국 북경에서 지낼 때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다. 그가 귀국할 때 안경을 쓰고 들어와 관복을 입고 등청할 때도 안경을 써서 대신들이 원숭이같다고 놀려댔다. 그러나 임금 영조는 홍대용이 바친 안경을 즐겨 썼다. 대신들이 이번에는 잘 어울린다고 추켜 세우고 자신들도 안경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 후 안경 쓰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고 사치품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요즘 신입사원 채용 면접시 특히 안경 쓴 여성은 합격에 불리하다고 한다. 눈을 보호하고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쓴 안경 쓴 모습을 좋지 않게 보는 사람들의 시력은 보통 나쁜 게 아니다. 그런 사람들부터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안경을 써야 되겠다.

중벌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이달 1일부터 국립공원내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라이터 등 인화물질을 허가없이 반입할 경우 5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한다고 발표했었다. 이 조치의 실효성과 공정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예상되는데 이 소식을 들은 뒤 ‘군소’라는 동물이 생각났다.신경생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기르며 실험을 하는 ‘군소’는 일종의 바다달팽이인데 이 군소를 연구하여 콜롬비아 대학의 에릭 캔덜 교수는 신경계의 비밀을 캐내 2000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군소는 물 속에 살면서 산소를 얻으려면 몸 윗쪽에 있는 아가미를 열고 입수공으로 물을 빨아들여야 한다. 이때 누가 입수공을 건드리면 군소는 황급히 아가미를 닫는다. 위험을 감지하고 자기 방어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험적으로 입수공을 자주 건드리면 어느 순간부터 아가미를 닫지 않는다. 더 이상 위협적인 자극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겁이 없어진 이 군소를 다시 겸손하게 만들려면 입수공을 건드릴 때 흠칫할 정도로 강한 전기자극을 주면 된다. 그렇게 따끔한 맛을 한번 보고 나면 다시 예전처럼 반응을 보인다. 미미하게라도 입수공을 건드리면 황급히 아가미를 닫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비리사건들도 군소의 습관같이 비슷한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처음에 무슨 사건·사고가 터지면 당장 누구라도 절단이 날 것 처럼 야단법석을 떨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왠지 흐지부지 돼버리고 만다. 가령 선거법을 어긴 정치인을 30년 이상 모든 선거의 입후보 자격을 박탈해보라. 선거법 위반자는 아마 금방 없어질 것이다. 관심법을 썼다는 궁예가 법봉을 솜으로 만들어 휘둘렀다면 누가 그 앞에서 벌벌 떨었겠는가. 용서는 회개하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너그러움이다.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는 부정부패자에게 베푸는 사면은 화합을 가장한 오만이다. ‘군소’는 입수공에 강력한 자극을 주면 본심으로 돌아간다. 사람도 일단 매를 들면 엄해야 한다. 엄포 삼아 회초리를 들어보라. 절대로 잘못을 자각하지 못한다. 비리도 타성이 붙으면 못 고친다. 국립공원에서 피우지말라는 담배를 안피우면 과태료가 50만원이 아니라 5천만원인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중벌이 약이될 때가 더 많다. /淸河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