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고조 유방의 손자 가운데 회남왕을 지낸 유안(劉安)이란 사람이 있다. 고명한 학자들을 초빙, 토론을 즐긴 학구파로 이름나 회남자라고도 부른다. 두부 만드는 법을 처음 개발한 것도 그였다는 설이 있다. ‘회남자’란 책자 세림편에 ‘일엽지추 일엽천하추(一葉知秋 一葉天下秋)라는 시편이 나온다. 가을을 알리는 나뭇잎 하나가 천하의 가을을 낙엽 하나로
알리는구나로 직역된다. 그러나 세월의 무상함이나 시세의 변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의역되기도 한다.
또 가을부채를 일컫는 추풍선(秋風扇)이란 말이 들어간 시구가 있다. 한나라 성제의 총애를 받았던 후궁 반첩여가 참소당해 억울한 원죄임이 밝혀졌으나 이미 황제의 관심이 예전같지 않아 원가행(怨歌行)이란 시를 썼던 것이다. 그 가운데 자신을 여름이 지나 쓸모가 없어 채롱속에 간수된 부채에 비유하여 추풍선이라고 했다. 하로동선(夏爐冬扇)이란 말도 있다. 후한시대 왕충이 ‘재능을 잘못 발휘하여 무익한 것은 마치 여름에 화로를 내놓고 겨울에 부채를 내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허사다’라고 말한 논형(論衡)에서 유래됐다.
입동이 지나긴 했으나 지금이 늦가을인지 초겨울인지는 말하는 이가 보기에 따라 다른 그런 계절이다. 늦가을이든 초겨울이든 분명한 것은 찬바람 속에 낙엽이 지고 있는 변함없는 자연현상이다. 지겹도록 삶아댄 폭염엔 그토록 좋았던 에어컨을 지금은 보기만해도 한기를 느낄만큼 온기가 좋아졌다. 에어컨에 커버를 씌우거나 아니면 선풍기를 ‘추풍선’처럼 다락에 넣어두고는 생각해본다. 올 한해를 여름에 난로, 겨울에 부채를 내놓는 ‘하로동선’의 어리석음과 마찬가지로 쓸모없이 보내지 않았는가를 돌아본다. 뭔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지난 세월이 아까워서인지 모르겠다. 비단 개인뿐만이 아니고 가정과 직장, 나아가서는 모든 공인들이 다같이 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갖는다.
이 달도 이젠 하순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이 해를 보내는 12월이 닥치면 이내 연말연시를 맞는다. 얼마남지 않았지만 마무리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다. 인간은 역시 자신을 돌아보며 허물을 반성할 줄 아는데 인간다움이 있는 것이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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