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싸움

진(秦)나라 효공 때의 재상 상앙은 부국강병책을 펴 뒷날 진나라의 천하통일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상앙이 조량(趙良)이란 사람과 자리를 함께 했을 때였다. 상앙이 “나의 통치와 백리해의 그것을 비교해 보시오. 누가 더 나은 것 같소?”하고 물었다, 백리해는 진나라 목공 때의 명재상이었다. 조량이 대답했다.

“천마리 양가죽이 여우의 겨드랑이 가죽만 못하고, 천사람이 좋다고 아부하는 말은 한 선비의 올곧은 직언만 못합니다. 주(周)나라 무왕은 신하의 직간(直諫)으로 흥했고 은(殷)나라 주왕은 신하의 맹종으로 망했습니다. 지금 승상의 위태로움은 아침 이슬과 같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수명을 더하려고 하시니 실로 안타깝습니다. 봉지(封地)로 받은 15고을을 반납하고 시골로 돌아가 농사나 지으십시오”그러나 상앙은 조량의 말을 듣지 않았다.

‘10·25 재·보선’에서 참패한 민주당의 이른바 소장 개혁파들이 권노갑 전 최고위원과 박지원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의 정계은퇴와 한광옥 대표 등 당5역의 즉각사퇴를 요구했는가 하면, 동교동계가 ‘민주화 투쟁한 것이 잘못이냐’고 맞서는 등 집안싸움이 가히 점입가경이다. 권노갑·박지원씨가 상앙같은 사람도 아니겠고 소장 개혁파들이 조량같은 사람도 아니겠지만, 민주당 내홍 앞에서 상앙과 조량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민주당엔 같은 동교동계도 구파·신파가 있고, 소장 개혁파에도 ‘새벽 21’‘여의도정담’‘열린정치포럼’‘바른정치 모임’‘주민정치연구회’등 웬 모임·계파가 그리 많은가.

정계에서 은퇴하란다고 요구해서 은퇴할 사람들인가. 또 은퇴하라고 요구할 자격은 있는 사람들인가. 한마디로 헷갈리는 장면들이 꽤 많이 나온다. ‘봉지로 받은 15고을을 반납하고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으라’는 조량의 말을 듣지 않은 상앙은 후일 옳게 죽지 못했다.그로부터 다섯달 뒤 효공이 죽고 태자가 등극했는데 상앙은 앙앙불락하고 있던 정적들의 무고를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주재로 3일 청와대에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열린다. 누가 과연직간할 것인가. 부질없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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