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특검팀

우리가 특별검사제를 도입한 것은 공교롭게 미국에서는 1978년 도입 21년만에 폐지하던 무렵이었다. 모두 20명의 특검이 있었다. 지난 2월 12일 미상원에서 부결되긴 했으나 클린턴을 탄핵까지 몰고간 케네스 스타는 최후의 특검이었다. 스타특검은 1994년 임명돼 5년동안에 무려 4천만달러의 수사비를 썼다. 우리나라 돈으로 한 해에 90억4천만원을 쓴 셈이다. 이렇게 5년동안 돈을 물쓰듯 해가며 캐낸 것이 클린턴 부부의 ‘화이트워터’, 즉 부동산스캔들과 클린턴의 르윈스키 성추문폭로였다. 클린턴은 한동안 정치적 타격이 크긴했으나 다시 회생한 반면에 스타 특검은 인기하락 속에 물러갔다. 미국도 특검활동엔 고위관리들의 증거은폐, 수사방해가 지능적으로 행해져 어려움은 있었다. “정치적 스캔들을 수사를 통해 파헤친다는 것 자체에 한계가 있다. 특검제는 이미 실패한 제도다” 케네스 스타 특검이 남긴 말이다. 옷로비, 파업유도사건 등에 대한 두 특검수사가 마무리 돼가고 있다. 옷로비의 최병모 특검수사는 평가를 받는데 비해 파업유도의 강원일 특검수사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것같다. 만약에 두 특검이 사건을 바꾸어 맡았으면 어떻게 됐을까하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실체적 진실이 강희복 전 조폐공사장과 진형구 전 대검공안부장의 합작품인게 맞는데도 강원일 특검이 의심을 받는다면 그로썬 억울한 노릇이다. 더 두고 볼 수밖에 없다. 특검수사를 재수사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떻든 최초로 시행된 특검제는 미국과는 달리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을만 하다. 우리에겐 역시 특검제가 필요하다. 두 특검팀이 그동안 쓴 수사비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白山

‘겨울을 겁내는 아이들’

눈이 무릎까지 쌓이도록 내리고 처마밑 고드름이 한자(1尺)가 넘도록 얼어붙기가 예사였다. 30∼40년전만 해도 겨울은 그토록 매서웠다. 겨울들판은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가 됐다. 눈사람 만들기나 눈싸움은 으레 하는 장난이었다. 빙판에서 썰매를 타고 팽이를 돌리고 언덕을 넘나들며 연을 날리기도 했다. 그냥 하는 것이 아니다. 썰매 빨리지치기, 팽이쓰러뜨리기, 연줄끊기 싸움을 즐겼다. 남자아이들만이 아니고 여자아이들도 대개는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은 그렇게 놀다가 싫증나면 남자아이들은 자치기, 구슬치기를 하고 여자 아이들은 줄넘기 땅뺏기놀이 같은 것을 했다. 그 무렵엔 먹거리가 귀하던 때여서 영양실조로 코를 흘려 훌쩍거리면서도 겨울 들판을 누볐다. 먹거리 뿐만이 아니고 입성도 볼품없어서 방한복이란 것이 따로 있을 수 없었다. 옛날 아이들은 이렇게 겨울을 도전적으로 넘겼다. 영하의 강추위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춥다고들 야단이다. 지구의 온난화현상으로 겨울다운 겨울이 실종되다보니 이만한 추위가 무척 춥게 느껴지는 것 같다. 골목길에도 아이들 노는 모습이 사라졌다. 텔레비전을 누워 들여다 보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보내는 방안퉁수가 돼가고 있다. 부모들도 밖에 나가면 ‘감기걸린다’고 야단이다. 시대에 따라 아이들의 놀이문화가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겨울을 겁내는 아이’를 만들어가는 것은 좀 생각해 볼 일이다. 엊그제 초등학생의 방학이 시작됐다. 날마다 진종일 방안퉁수 노릇만 시키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길은 아니다. 요즘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자연친화의 겨울놀이가 무엇인가도 연구해 볼만한 일이다. /白山

건강한 젊은이들

올 2월 병역법 제65조 6항은 “질병 또는 심신장애로 병역면제나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은 사람이 다시 신체검사를 받고 합격판정을 받으면 현역 등으로 병역처분을 변경할 수 있다”고 개정됐다. 이렇게 병역법이 개정된 이후 질병 등으로 일단 병역면제 판정을 받고도 군복무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이 근래 늘고 있다고 한다.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젊은이들이 “남자로서 떳떳하게 살고 싶다” “2대 독자로 귀여움만 받고 자라 너무 나약한 것 같아서 스스로 나를 단련시키고 싶다”면서 병을 치료한 뒤 다시 신체검사를 거쳐 입대한다는 것이다. 어떤 대학생은 징병검사에서 눈이 나빠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으나 현역으로 병역을 마치고 싶어서 레이저수술로 시력을 회복한 뒤 올 3월 재신체검사를 신청, 1급 현역판정을 받고 육군에 입대했다고 한다. 또 한 대학생은 척추디스크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으나 1년6개월동안 치료를 받은 뒤 올 3월 재신체검사에서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아 소집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다한증(多汗症)으로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으나 피부과에서 수술을 받은 뒤 올 4월 재신체검사에서 현역 판정을 받고 입영 대기중인 젊은이도 있다. 잊을만하면 병무비리사건이 터지고 권력과 금력이 많은 일부 사람들이 멀쩡한 아들들을 체중이 적다, 눈이 나쁘다는 등 거짓 서류를 꾸며 군대에 안보내는 마당에 굳이 안가도 될 군대를 스스로 가려는 이들 젊은이들의 심신은 참으로 건강하다. 이렇게 건강한 젊은이들이 있어 한국사회는 혼돈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절망은 없다는 것인가 보다. /淸河

비서실 ‘장관점검’

조선조 세종은 승정원(비서실)과 육조(내각)의 역할에 균형을 잘 갖춘 분이다. 현군(賢君)은 이러한데 비해 암군(暗君)은 측근(승정원)등의 말만 믿어 모함이 자심하였다. 승정원과 육조의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는 현대판 비서실과 내각에도 해당된다. 다만 상황에 따라 어떻게 조율하느냐 하는 것은 양쪽을 다 부리는 이, 즉 대통령의 능력에 속한다. 클린턴이 근래 외교정책 주도권의 힘을 국무장관인 올브라이트에서 안보담당 보좌관 버거에게 더 실어주는 것은 올브라이트에 대한 불신이 아니다. 경제안보를 내세운 버거의 온건론으로 실리외교를 챙기는 것뿐, 발칸과 유럽문제는 이에 해박한 올브라이트의 입김이 여전히 강하다. 이것이 양쪽을 다 부리는 클린턴의 관리 능력이다. 이승만 정권이 지탄받게된 것은 비서정치의 폐해가 그 발단이었다. 이 이후에도 정권에 따라 국정의 중심이 비서실인지 내각인지 구분이 잘 안될만큼 적잖은 혼돈이 있었다. 김대중대통령은 취임 벽두, 내각이 국정의 중심임을 강조하고 수석들에겐 비서실 임무 이상의 돌출이 없도록 자제를 당부했다. 그랬던 것이 지난 비서실개편때 친위대로 재구성하면서 달라지더니, 이제는 비서실에서 장관들 ‘고과표’를 만들도록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통령 지시사항이행, 부처장악력, 업무추진력 등을 종합 점검토록 했다는 것이다. 장관들 체면이 말이 아니다. 비서실의 장관들 복무실태 파악은 방법상 문제가 없다 할 수 없다. 그나마 사실대로 정확하게 전달되면 다행이지만 은밀성, 모함성, 왜곡성이 개재되는 측근의 횡포가 있지 않을까 하여 걱정스럽게 보는 눈들이 있다. /白山

‘불공정언론’ 제재?

집단이기를 말하곤 하지만 정치권처럼 집단이기가 철저한데는 아마 다른데선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단연 챔피언감이다. 여야가 사사건건 맞서 산적한 민생법안의 정기국회 회기내 처리가 불투명한 가운데 세비인상엔 짝짝궁이 맞아떨어지더니, 정치개혁특위에서 ‘불공정언론’ 제재라는 해괴한 여야합의사항을 내놨다. 이는 선거법협상과정에서 역시 여야합의에 의한 선거비지원에 이어 나와 또한번 빈축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선거관련 보도를 불공정하게 보도한 취재기자나 편집기자는 ‘심의위’결정으로 1년동안 취재 및 편집업무를 중단하고 이를 어길 경우에는 2년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다는 것이 선거법개정안의 요지다. 말이 1년동안의 업무정지지 사실상 직장을 박탈하겠다는 어마어마한 협박이다. 불공정보도의 객관화된 기준도 없다. ‘심의위’의 주관적 판단은 남용될 우려가 다분하다.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는 덮어놓고 불공정보도로 매도하는 정치권 풍조에선 더욱 그러하다. 불공정보도를 제재하는 장치는 지금도 있다. 언론중재위에 제소하는 것 말고도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언론보도에 책임을 따지는 민·형사소송이 증가추세에 있다.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문제의 ‘불공정언론’ 제재 조항은 언론을 위협하는 독소조항이다. 기본권에 속한 양심과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의 소지가 짙다는 비판이 높다. 정치개혁특위에서 한다는 짓이 기껏 이정도인 것은 실망이다. 정치개혁이 마치 거꾸로 가는 것같다. 미국의 언론은 선거때면 각사가 지지하는 정당을 공개 선언한다. 이에대한 심판은 독자가 내린다. 차라리 우리도 이같은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白山

마카오

마카오는 남유럽풍의 주택과 중국식 고풍의 상점이 거리를 공유하고 있다. 동·서문화가 혼재한다. 중국 광뚱성(廣東省) 주장강 델타 남단부에 있으며 면적은 16㎢, 인구는 30만여명이다. 대부분이 중국인이며 포르투갈인이 1만여명쯤 된다. 우리나라 사람도 250여명이 살고 있다. 마카오가 포르투갈의 해외령(海外領)이 된것은 1553년 대(對)중국 무역권 획득과 함께 실질적인 사용권을 인정받음으로써 시작됐다. 1887년엔 청나라와의 조약으로 식민지 건설이 합법화됐고 1951년에는 포르투갈 본국의 일부로 편입됐다. 중국의 문화혁명을 계기로 마카오 정청과 현지 중국인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자치령이 된게 1973년 3월이다. 1979년 중국과 포르투갈간에 국교가 수립되어 1986년 마카오반환협정을 맺었다. 그 반환기약일인 1999년 12월 20일을 며칠 앞둔 지금 베이징거리는 경축일색이다. 홍콩반환에 이어 마카오를 돌려받음으로써 대륙에 남아있던 서구의 침략세를 완전히 몰아내기 때문이다. 마카오는 예부터 동서문화가 교류하는 접경지였다. 국내 최초의 천주교신부로 성인의 반열에 오른 순교자 김대건이 열여섯살때 마카오의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신학교에서 서양문물을 배웠다. 관광수입이 주축을 이룬 가운데 의류제조, 신발가공 등 경공업이 발달했다. 한동안은 무역업이 성해 50년대엔 멋쟁이를 가리켜 ‘마카오신사’라는 유행어가 성행하기도 했다. 중국으로서는 실로 446년만에 포르투갈로부터 되돌려받는 것이어서 1839년 아편전쟁으로 빼앗겼다가 지난 97년 7월 1일 되찾은 홍콩 못지않게 감회가 깊을 것이다. 역사란 정말 심오하다. /白山

지뢰

지뢰는 15세기에 동양에서는 처음으로 명(明)나라 때 실전에 사용된 적이 있긴 하나 보편화 된 것은 먼 훗날인 서양에서 일어난 1차세계대전 부터였다. 폭발하기까지는 발견되기가 어렵고 발견한다 해도 제거하기에 꽤 까다로운 것이 지뢰다. 전투원들을 제어하기 위해 매설하는 것이지만 비전투원, 즉 민간인에게까지 살상을 입히기 쉬운 것이 지뢰이기도 하다. 이때문에 지난 97년 9월 오솔로에서 대인지뢰금지협약이 논의된 적이 있었다. 100여국이 참가한 가운데 가진 회의에서 미국대표는 한반도에 한해 특수성을 감안, 9년동안 유예조건을 단 것이 채택되지 않아 퇴장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지뢰생산의 주요국인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이 불참해 실효성에 의문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쨌든 지뢰가 비전투원인 민간인에게까지 불행을 가져오는 참상은 저 유명한 코소보 사태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내전으로 인해 매설된 지뢰를 철거하는 비용이 매설비용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갔다. 이뿐만 아니라 지뢰를 잘못 밟아 억울하게 죽어간 인명과 불구자가 된 수가 부지기수였다. 다이애나가 지뢰사용금지 운동에 나선 것도 이때문이었다. 한국전 직후엔 우리나라에서도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지뢰때문에 다치거나 죽은 이들이 수두룩했다.. 아직도 휴전선엔 남북이 묻어놓은 지뢰가 수만개나 깔려 있다. 언젠가 통일이 되어도 한동안은 지뢰수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김포시 사우동 뒷산 ‘장릉산’ 부근에 지난 여름 집중호우로 유실된 지뢰가 깔려 주민들이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고 한다./白山

까치

예로부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같은 문헌과 설화·민요 등에 등장하여 대표적인 길조로 여겨져 온 까치는 가치·가티·갓치·가지라고도 부른다. 한자어로는 작(鵲)·비박조(飛駁鳥)·희작(喜鵲)·건작(乾鵲)·신녀(神女)라고도 한다. 몸길이는 45㎝ 정도로 꼬리가 길고 어깨·배와 첫째 날개깃 등은 흰색, 나머지 부분은 녹색이나 자색, 광택이 있는 검은색이며, 부리와 발도 검다. 1964년 한국일보 과학부의 ‘나라새 뽑기 운동’에서 까치가 나라새로 뽑혔으며, 그 뒤 까치를 보호조로 지정하고 포획을 규제해왔다. 까치는 상서로운 새로 알려져 ‘까치를 죽이면 죄가 된다’는 속신이 전국에 퍼져 있으며, ‘아침에 까치가 울면 그 집에 반가운 사람이 온다’고도 했다. 경기·충청 등 중부지방에서는 까치가 정월 열 나흘 날 울면 수수가 잘된다고 믿고 있으며, 까치가 물을 치면 날이 갠다고 한다. 또 호남지방에서는 까치둥우리가 있는 나무의 씨를 받아 심으면 벼슬을 한다는 속신이 있다. 충청도에서는 까치집을 뒷간에서 태우면 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까치집이 있는 나무 밑에 집을 지으면 부자가 된다는 속신도 있다. 그래서 전국 2백48개 광역·기초자치단체중 94곳이 까치를 상징새로 정해 놓았다. 그런데 요즘은 이 까치가 과일과 곡식 등을 마구 쪼아 먹고 정전사고를 자주 일으킨다 하여 ‘해조’ ‘흉조’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상징새 교체를 추진하는 지방자치단체가 계속 늘어난다고 한다. 까치로 인한 정전사고 증가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전은 까치의 포획을 더욱 쉽게 할 수 있도록 관계법령을 개정해 달라는 건의서까지 환경부에 제출했을 정도다. 상징새 목록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온 까치가 ‘강제퇴출’될 운명에 놓인 것이다. 까치로 인해 일부 피해는 있지만 한때 국조(國鳥) 칭호까지 얻었던 까치를 퇴출시키려는 사람들이 참 야박하고 매정하다. /淸河

이웃 사랑하기

연말이 되면 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이웃사랑’의 기회를 제공하는 자선냄비는 1891년 성탄이 가까워 오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시작됐다. 도시 빈민들과 갑작스런 재난으로 슬픈 성탄을 맞이하게된 1천여명을 구하기 위해 한 구세군 사관(조셉 맥피 정위)이 오클랜드 부두로 나가 큰 쇠솥을 거리에 내걸고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써붙인 것이 발단이 됐다. 이를 계기로 오늘날 전 세계 1백5개국에서 매년 성탄이 다가오면 자선냄비 활동을 벌인다. 한국은 1928년 12월 15일 최초의 자선냄비 20개가 당시 사령관 박준섭 사관에 의해 명동을 비롯한 서울 거리에 설치된 뒤 매년 시행되고 있다. 자선냄비 모금액은 매년 꾸준히 증가해 이웃 사랑의 본을 보여 왔다. 특히 지난 해의 경우 IMF 경제한파로 이웃 사랑의 손길이 줄어들 것을 우려했으나 목표액 13억원을 거뜬히 넘겨 고난중에도 사랑을 베푸는 한국인의 정을 느끼게 했다. 올해로 71주년을 맞은 구세군 자선냄비는 14억5천만원 모금을 목표로 잡고 3만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참여, 전국 거리에서 성금을 모금하고 있는데, 올해부터는 거리 모금 외에도 인터넷을 통한 모금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조그만 정성과 사랑이 모여 큰 강을 이루는 구세군 자선냄비는 불우한 이웃을 돕는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희망을 가늠하는 척도 구실도 한다. 그런데 자선냄비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민인 것 같다. 그야말로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내미는 따뜻한 손길들이다. 승려도 시줏돈을 자선냄비에 넣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웃 사랑에는 종교의 차이가 없음을 자선냄비는 보여주고 있다. 연인들이나 어린이들이 웃으며 자선냄비에 성금을 넣는 모습이 아름답다. /淸河

협박

가수 심수봉씨를 4년 가까이 집요하게 괴롭혀온 40대 여자 스토커를 경찰이 붙잡았다고 한다. 전직 무명가수라는 이 여자 스토커는 심씨에게 수시로 협박전화를 걸거나 공연장을 찾아다니며 “내 작품을 표절했으니 사회에서 매장시키겠다”고 폭언했다고 한다. 증권사의 신용을 추락시킨 어느 증권사 전·현직 직원들의 협박은 어처구니가 없다. 빌린 돈 1천만원으로 증권투자를 해 3년7개월만에 1백30억원을 번 ‘한국판 조지 소로스’를 협박, 20억원을 뜯어냈다는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협박도 있다. 이제는 말하기도 짜증스럽지만 소위 ‘옷로비’의혹 때문에 김태정 전 검찰총장이 신동아측으로부터 다양한 채널을 통해 협박을 받았다는 것이다. 김 전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됐다는 약점을 잡아 일국의 검찰총장을 상대로 협박했다는 신동아측의 배짱이 사실이라면 ‘다양한 채널’도 밝혀져야 되겠지만, 어쩌다 한국사회가 이렇게 ‘협박시대’가 되었는지 답답하다. 정치한다는 사람들끼리 서로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고, 어제의 동료가 오늘은 원수가 되기도 한다. 회사간부가 사장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며 보상을 요구한다. 뇌물받은 공직자를 기업체가 협박하는가 하면, 불량배나 법규위반업소가 경찰관을 협박하기도 한다. 주머니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어디에 있느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서 협박받을 짓 안하는게 최고의 상책이다. 문제는 인간은 자고로 아부와 뇌물에 약하다는 점이다. 협박한 사람도 ‘할 말 있다’고 떠들어댄다는 사실이다. /淸河

유택난

개인묘지도 이제 제한을 받는다. 영구적이었던 개인묘지에 60년 시한부 매장제가 도입됐다. 이같은 묘지 사용의 연한 규제는 집단(공동)묘지에도 물론 적용된다. 또 개인묘지는 기당 24평에서 9평으로 공동묘지는 9평에서 3평으로 줄어든다.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엊그제 국회법사위에서 통과됐다. 해마다 묘지면적이 늘어 국토이용에 심각한 문제로 제기된지는 이미 오래다. 묘지제한은 화장문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법률개정안도 60년이 지나면 화장하도록 돼있다. 그렇지만 사용연한 위반을 어떤 방법으로 제재를 가할 것인지가 문제다. 또 매장한 유해를 다시 화장하는 것도 관념상 금기시 돼있다. 화장을 하는데도 사실상 문제가 없지 않다. 납골당을 권고하지만 막상 납골당을 짓는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혐오시설로 인식되어 주변에서 반대를 일삼는다. ‘우리동네 인근에 납골당을 지어도 좋소!’하는 지역은 거의 없다. 화장한 재를 강물이나 산에 뿌리는 것은 전부터 내려온 오랜 인습이다. 그러나 지금은 유해의 재를 뿌리려해도 마땅한 곳이 없다. 웬만한 강이나 야산 주변의 주민들은 이를 막기 위해 지키다시피 감시하고 있다. 정부는 무턱대고 화장만 권고할 일이 아니고 화장할 수 있는 여건조성부터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국민에게 권장만 할 것이 아니라 지도층 인사부터 모범을 보이는 일 또한 중요하다. 인구가 많다보니 생전에는 살아가기가 힘들고 사후에는 매장이든 화장이든 유택난을 겪는 세상이 됐다. 해가 갈수록 더할 것이다. /白山

柳美里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간적인 흠이 있다. 악성 베토벤은 친동생의 아내인 조안나를 잊지 못해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조안나는 베토벤과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어느 운명의 갈림길에서 아주버님과 계수로 입장이 바뀌었다. 조각가 로댕은 그를 헌신적으로 사랑했던 제자 카미유를 출세에 눈먼나머지 정신병원에 보내는 비정을 저질렀다. 예술가 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기초,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제퍼슨에겐 사생아가 있었다. 이밖에 과학자나 경제인등 여러분야의 저명한 인사에게도 인간적인 결함은 그 사례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10대들 가운데는 그들의 우상인 가수가 조그마한 인간적 흠을 드러내면 실망한 나머지 되레 공격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흠이란게 별것도 아니다. 가령 코를 훌쩍거린다거나 사석에서 저속한 농담을 하는 것만 보아도 그런 역작용을 보인다. 촉망받는 재일동포 작가인 유미리씨의 미혼모보도를 보고 말이 좀 있는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유부남인 방송기자의 아이 아버지가 총각인 것 같아 아이를 갖게 됐다는 대목은 그녀답지 않다. 좀더 솔직했으면 좋을것을 역시 인간이기때문에 말이 되지 않는 어거지 변명을 하는 것 같다. 열일곱살때부터 첫 남자와 10년간 동거생활을 했다는 것도 이번 보도를 통해 처음 아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그녀를 공격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잘한 일이라고는 더욱 말할 수 없다. 다만 그녀도 인간인 점에서 저지른 사생활의 허물을 전문재질과 결부시켜 매도해서는 안된다고 보는 것 뿐이다. 누구든 악인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성인군자일 수도 없는 것이다. /白山

死刑制

1948년 건국이후 사형선고가 확정된 범죄자는 9백90여명이다. 이 가운데 형이 집행된 사형수는 수년전의 ‘지존파’범인등 8백80여명이다. 사형제도가 폐지된 나라는 서유럽과 캐나다 뉴질랜드 등 54개국이다. 이밖에 10년이상 형집행을 하지 않아 사형제도가 없어지다시피 한 나라가 약 50개국이다. 100여 나라에서 사실상 사형제도가 폐지된 셈이다. 미국 일본 한국 등 90여개국이 사형제도를 두고 있다. 그러나 사형제도를 두고 있는 바깥 나라도 5∼6개의 범죄에 한해 적용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사형을 80여 범죄의 법정형량으로 규정하고 있다. 불교 조계종 종정을 지내다가 1966년 열반한 효봉스님은 평양 복심(고등)법원 판사를 지낸 분이다. 젊은 법조 시절에 오판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아 판사를 그만두고 전국을 떠돌며 방랑생활을 일삼다가 불문에 귀의하여 득도한 분이다. 국민회의 유재건 의원등 여야 의원 70여명이 무기징역을 법정 최고형으로 하는 ‘사형제 폐지 특별법’안 제출을 추진하고 있다. 자연법사상은 사형제도를 거부한다. 인간이 존엄한 인간의 생명을 감히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법 사상이 아니고도 만에 하나 오판으로도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킬 수 있는 것이 사형제도다. 그러나 사형제도가 없어지면 흉악범이 더욱 날뛸 우려 또한 다분하다. 사형제도를 폐지했다가 사회방어 측면에서 부활한 나라도 더러는 있다. 한비자(韓非子)는 사회교화를 위해 극형등 엄한 형벌을 강조한 형명사상가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법은 서릿발처럼 엄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형평성있게 제대로 지키는 일’이라고./白山

단발령 이후

단발령이 내려진 것은 104년전인 조선왕조 고종32년(1895년) 11월이다. 상투를 강제로 잘린 선비들은 부모에게 큰 불효를 저질렀다며 식음을 마다하고 호곡하기도 했다. 단발은 남자뿐만이 아니고 미혼의 여자들에게도 가해져 나중엔 단발랑(斷髮娘)이란 말이 생겼다. 그러나 여자들에 대한 단발은 강제가 아니어서 뒷머리를 치렁치렁하게 딴 전래의 처녀들 모습을 60년대까진 깊은 산골같은데선 더러 볼 수 있었다. 점점 단발에 익숙된 남자들은 ‘하이칼라’라 하여 머리에 잔뜩 멋을 부렸다. 머리카락에 광택과 방향을 내는 반고체의 포마드를 바르는 것이 크게 유행했다. 일본말로 ‘고데’질까지 했다. ‘고데’란 머리털을 지져 다듬는 가위 모양의 집게로 불에 달구어 포마드 질을 한 머리털을 가지런하게 지져 부치는 것으로 그래야 멋쟁이 노릇을 할 수 있었다. 1945년 광복이후 포마드가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한동안 유행된 것이 어깨까지 머리를 늘어뜨린 장발이었다. 1970년대엔 순경들이 가위를 들고 장발족의 머리를 길거리에서 자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장발로 즉심에 가는일도 있었다. 장발붐이 가고나서 1990년대에 불어닥친게 무스바람이다. 예전의 포마드대신 무스를 바른 지금의 젊은이들 머리에 다른게 있다면 꼿꼿하게 세우는 점이다. ‘고데’는 않지만 머리카락을 노랗게 만들어 뒷모습으론 남녀를 구별하기 어려울때가 있다. 세월따라 달라지는 것이 유행이긴 하다. 하지만 환경호르몬탓으로 민물고기의 수컷이 암컷으로 변하는 마당에 남성의 여성취향 또한 혹시 환경호르몬 탓이 아닌가 하여 걱정된다. /白山

곰같은 사람

뭇짐승 가운데 왕인 사자가 곰과 원숭이, 토끼를 시종으로 삼았다. 그런데 차차 지내보니 곰은 미련하기 짝이 없고 원숭이는 너무 교활했다. 토끼는 살살 눈치만 보면서 잔 꾀를 부렸다. 그래서 사자는 무슨 구실이라도 만들어서 이 세 시종들을 모두 잡아 먹어 버려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어느 날 사자 왕이 세 시종을 불러다 놓고 커다란 아가리를 쫙 벌리며 물었다. “내 입에서 무슨 냄새가 나느냐?” 곰은 비린내가 너무 고약하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사자왕은 대왕의 체면도 돌보지 않고 마구 말을 하니 죽어 마땅하다고 곰을 잡아 먹었다. 원숭이는 “냄새가 정말 향기롭다”고 말했다. 왕을 속이는 교활한 놈이라고 원숭이도 잡아 먹었다. 토끼는 이렇게 대답했다. “소인은 요새 감기에 걸려 코가 막혀서 냄새를 전혀 맡을 수가 없습니다. 며칠 후 감기가 물러가면 다시 맡아 보겠습니다” 사자왕은 하는 수 없이 토끼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밖으로 나온 토끼는 그 길로 깊은 산속을 향해 줄행랑을 쳐버렸다. 요즘 한국사회에는 정계와 재계 등 가릴 것 없이 실권자 앞에서 사실대로 말하는 곰 같은 사람이 적다. 원숭이 같이 아부하는 부류들이 더 많고, 토끼처럼 살아남을 궁리만 하려고 잔꾀를 부린다. 토끼처럼 임기응변에 능한 자는 판단을 흐리게 한다. ‘그 일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내 의견은 이렇습니다’라고 곧이 곧대로 말하지 않는다. 금방 죽임을 당하더라도 사자 입에서 냄새가 지독히 난다고 직언하는 곰같은 사람이 필요한 시대이다. /淸河

논픽션

한국 고대소설의 대표적 작품인 ‘춘향전’은 주인공 이몽룡과 여주인공 춘향의 연애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여 당시의 사회적 특권 계급의 횡포와 이속(吏屬) 및 농민들의 생태와 감정을 묘사한 작품이다. 특히 변학도의 관권에 대한 천민의 항거와 자의식의 발로를 높이 평가하며 춘향의 정절을 당시 부도(婦道)의 거울로서 찬양하는 내용인데 작자 및 시대는 미상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춘향전’의 주인공 이몽룡이 실제인물이라는 고서가 나와 흥미를 더해 준다. 창녕 성씨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왔다는 ‘교와문고’에 따르면 조선 광해군 때 남원 부사였던 성안의의 아들 성이성이 이몽룡의 실제모델이라는 것이다. 성이성의 4대 후손 성섭이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교와문고’에 암행어사였던 성이성의 행적을 소개하는 부분중에서 “우리 고조 은교공(성이성)이 일처에 이르렀을 때…걸인의 행색을 하고, 자리에 앉기를 청하니 대취한 관리들이…금중미주는 천인혈이요 옥반가효는 만성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바로 ‘춘향전’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교와문고’에는 또 암행어사 성이성이 두번째로 남원을 찾아갔을 때 혼자 소년시절의 추억에 잠겨 눈 내리는 광한루에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 양반 가문에서는 기생과의 스캔들을 큰 창피로 여겨 소년시절 성이성의 ‘불장난’을 몹시 부끄럽게 생각했으며 이에따라 ‘춘향전’의 주인공도 성몽룡이 아닌 이몽룡이 됐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광해군 때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이 실존인물이라고 알려진 터에 이몽룡도 실제인물이 사실이라면 ‘춘향전’과 ‘홍길동전’은 대단히 중요한 논픽션으로 재평가 돼야 한다.

동무

동무, 벗, 친구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민중서림 국어대사전은 ‘늘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동무), ‘마음이 서로 통하여 친하게 사귄 사람’(벗), ‘오래두고 가깝게 사귄벗’(친구)이라고 풀이했다. 그말이 그말같아 구분이 잘 안된다. 지지대子의 일상개념으로는 동무나 벗은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친구(親舊)는 한자 외래어가 아닌가 싶다. 또 동무는 유·소년시절의 친구이며, 벗은 성년이후의 친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동무따라 강남간다’고도 했고 ‘어깨동무’란 말이 있다. 이 좋은 ‘동무’란 낱말이 마치 금지곡처럼 금기시된 것은 이데올로기시대의 산물이다. 광복직후 좌우익의 격동, 한국전쟁전후 북측 노동당과 남측 남로당 사람들 사이엔 서로의 호칭을 ‘동무’라고 불렀다. ‘김동무…’ ‘박동무…’하는 바람에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동무!’라고 하는 웃지못할 일이 잦았다. 같이 힘써 일한다는 뜻의 조어로 ‘同務’라고 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진 않다. 아무튼 이바람에 유·소년간의 동무소리가 차츰 사라지면서 친구라고 부르게 됐다. 중국에서 이데올로기용어인 ‘퉁즈’(同志)라는 말이 퇴조하고 있다고 한다. 공문서나 공식행사에서는 아직도 ‘퉁즈’가 쓰이긴 하지만 공산당원들까지 일상생활은 ‘셴성’(先生) ‘뉘스’(女史) ‘샤오제’(小姐)등 호칭이 보편화 됐다는 것이다. 동무란 말이 이데올로기 용어로 들리지 않은지는 벌써 오래됐다. 이 좋은 우리말을 활성화시켰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등학교에서 부터 사용돼야 한다. 아이들간의 동무를 ‘친구’라고 부르는 것은 정서상 걸맞지 않다. ‘동무’란 말보단 아무래도 정감이 덜하다./白山

마녀사냥

마녀란 유럽의 전설에 나오는 요녀를 말한다. 악마와 결탁하여 마약(魔藥)을 쓰거나 주법(呪法)을 행하여 인명을 해치는 것으로 믿었다. 마녀재판이라는 것이 있었다. 중세말기 이후 이단자를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한 종교재판으로 로마교황의 공인아래 시행됐다. 가장 심했던 1590년∼1680년사이엔 약 10만명이 처형되었다. 이단으로 몰리면 남자든 여자든 모두 마녀로 다루어졌다. 쇠로 만든 반장화를 불에 달구어 신기거나 두 팔을 뒤로 결박한채 발목에는 무거운 추를 단 다음 두 겨드랑이를 로프로 묶어 도르레로 천장높이까지 매달았다가 갑자기 땅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가혹행위를 자행했다. 100년 전쟁을 프랑스의 승리로 이끈 구국의 소녀 잔 다르크가 1455년 영국에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이단이라는 선고를 받고 화형에 처해졌다. 이단의 누명을 벗고 성녀(聖女)에 오른 것은 465년만인 1920년이다. 마녀재판은 18세기들어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없어지게 됐다. 근래 ‘마녀사냥’이란 말이 많이 쓰인다. 마녀재판을 빗댄 말로 이를테면 언론보도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권력층에서 즐겨쓴다. DJ가 옷사건을 두고 ‘마녀사냥식으로 몰면 안된다’고 말한적이 있다. 무혐의 허위보고내용을 그대로 믿어 그랬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이만저만한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마녀사냥’질책을 보며 옷사건 관련자들이 내심 얼마나 쾌재를 불렀겠는가 생각하면 너무나 잔인한 코미디다. 지금 세상에 ‘마녀사냥’이란 당치않다. 언론보도의 여론을 ‘마녀사냥’으로 몰아치는 권력의 속성이 두렵다. 현자(賢者)는 권력에 중독되는 것을 스스로가 부단히 경계한다./白山

‘노인 작가’들의 걸작

수원에 본부를 둔 치매미술치료협회와 영실버아트센터가 마련한 ‘나의 사랑 나의 가족展’이 어제 끝났다. 서울 인사동에 있는 부남(扶南)미술관 대전시실에서 열린 ‘나의 사랑 나의 가족전’은 끝날에도 관람객들이 적지 않았다. 부남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은 노재순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노재순, 류삼렬·강상중·서해창·선희규·장인희·이태희 화백 등 34명의 한국화단 중견들 작품을 둘러 본 뒤 다른 벽면에 걸린 ‘어린이들의 그림’을 유심히 관람했다. ‘설날’ ‘가을 들판의 허수아비’ ‘가을 운동회’ ‘동지팥죽’ ‘호박넝쿨’ ‘진달래꽃’ ‘팽이치기’ ‘연날리기’ ‘정월대보름’ ‘오월 단오절’ ‘빈대떡’ ‘단풍놀이’ 등 화제(畵題)들도 각양각색이었다. ‘사람은 늙으면 어린 아이가 된다’고 하였다. ‘어린이들의 그림’은 실은 치매에 걸린 노인들이 그린 작품들이었다. 70대는 보통이고 80대, 90대의 노인들이 그린 작품은 사람들을 흐믓하게 행복하게 만들었다. 화가들로 구성된 치매미술치료협회 회원들의 지도를 받고 있는 이들 노인들의 그림을 신현옥 회장은 ‘추억의 간이역’이라고 이름 지었다. 추억의 간이역? 과연 그렇다. 치매미술치료협회 회원들은 그림 그리는 치매노인들을 ‘노인 작가’라고 존칭했다. ‘치매미술치료’는 인지기능이 떨어진 노인에게 미술을 통해 현재 또는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영혼의 예술’이다.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는 데 며칠이 걸린 어르신도 계시지만 도화지와 크레파스만 주면 신통하게도 과거를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버드나무 아래서 남녀가 고개 숙이고 있는 그림은 ‘첫사랑’이고, 젊은 시절 군인이었던 어르신은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들을 그립니다”라고 했다. ‘봉숭와꼿’ ‘오욀 단워 근녜탄는 광경이요’라고 그림설명을 써 놓는 노인들의 작품도 보였다. ‘나의 사랑 나의 가족전’은 제목 그대로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봉사하는 치매미술치료협회 봉사 활동의 한 과정이다. 한국미술협회·영실버여류작가회·촛불봉사단연합회·평화의 모후원·동서문화교육원·현우도회의 후원도 큰몫을 했지만, 14일간 전시회를 무료사용토록 하고 도록까지 제작해준 부남미술관의 협조가 특히 컸다. 봄날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훈훈한 이야기다./ 임병호 논설위원

김장

김장김치가 발효식품으로 비타민의 보고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조상들이 겨울식품으로 과학적인 김치를 생각해낸 것은 생활의 지혜라 할 것이다. 비록 과학이 뭣인지는 몰라도 오랜 체험으로 생활과학을 응용할 줄 아는 슬기를 터득했던 것이다. ‘김장김치는 반 겨울양식’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배추만도 한·두접(접당 백포기)씩 담궜다. 여러가지의 무·배추 김장을 했다. 초겨울 이맘때쯤이면 품앗이로 김장을 담는 동네 아낙들의 노고가 컸다. 요즘은 김치보다 햄버거를 더 좋아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김장은 여전히 빠뜨릴 수 없는 겨울채비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 김장 담을 일부터 먼저 생각하곤 한다. 전같지 않아 먹거리가 많으며 채소 또한 철을 가리지 않고 나오므로 이젠 김장을 적게 담는게 보편화됐다. 보통 열포기 스므포기 정도다. 김장을 이처럼 적게 담다보니 되도록이면 늦게 담는다. 괜히 일찍 담갔다간 따뜻한 날씨로 국물이 부풀어 오르고 김치가 시어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김치공장이 김장김치 주문으로 꽤나 성황을 이룬다고 한다. 맞벌이 부부나 신세대 주부들의 주문이 많다는 것이다. 편리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좀 생각해 볼 일이다. 김치맛을 보면 그 집안의 음식솜씨를 안다고 했다. 가족들을 위한 주부의 정성과 솜씨가 흠뻑 담긴게 김장김치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가족들을 위해 김장김치를 손수 담그는 노력이 있으면 좋겠다. 가뜩이나 인스턴트식품이 식탁을 잠식하는 시대가 돼가고 있다./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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