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북남(南女北男 )?

사람을 잘났다고 평하는 것은 그 사람의 얼굴이 잘 생겼다든가 재주가 비상하다든가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다든가 위대한 업적을 성취시켜 놓았다든가 하는 등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어떤 면을 지니고 있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잘난 사람, 즉 보통사람과 달리 뛰어났다고 평을 받는 사람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북부지방의 남자로는 을지문덕(乙支文德)·연개소문(淵蓋蘇文)·유유(紐田)·온달(溫達)·정지상(鄭知常)·이성계(李成桂) 등이다. 남부지방 여자로는 선덕여왕·기황후(奇皇后)·허난설헌·신사임당·임윤지당·황진이·명성황후 등 이다. 그렇다면 남자는 남부지방의 남자가 잘났고, 여자는 북부지방의 여자가 잘났다는 것을 표현한 속설 ‘남남북녀(南男北女)’라는 말은 사실 그대로를 정확히 파악하여 생겨난 것은 아니다. 굳이 남남북녀라는 말을 시대적으로 국한시키고, 잘났다는 것의 뜻을 제한하여 사용한다면 약간의 타당성은 찾아 볼 수도 있다. 조선시대의 정치가·군인·학자·예술인 등은 거의 남부지방 출신이었다. 여자의 잘난 것을 미모에만 국한시켜 본다면 강계미인(江界美人)·회령미인·함흥미인이라는 말들이 있듯이 미인의 산지는 모두 북부지방에 있다. 이상하게도 남부지방에는 미인의 산지로 이름난 고장이 없다. 지난 9월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열렸던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북한팀 응원단으로 참가한 북한 여성응원단 280여명이 한결같이 용모가 빼어나 한국의 신문·방송들이 연일 “ 역시 남남북녀!”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미모로만 기준삼는다고 여성단체들의 항의도 있었지만 그것은 북한측을 배려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만일 평양에서 열리는 스포츠 경기에 선발된 남한 여성응원단이 참가한다면 아마 북한에선 ‘남녀북남(男女北男)’이라고 했을 것이다. 남남북녀라니, 남한 여성들, 북한 남성들이 모두 못났다는 얘기 아닌가.그러니까 남남북녀라는 말은 함경도 도민의 기질을 이전투구(泥田鬪狗), 강원도 도민을 암하노불(岩下老佛), 제주도의 풍물을 여다석다풍다(女多石多風多)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조잡한 관찰과 성급한 단정에 지나지 않는다. /임병호 논설위원

10대 성교육 교재

“열라 짱나”‘몹시 짜증난다’는 뜻이다. 국무총리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펴낸 성교육 교재 ‘십대 우리의 성을 논하다’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청소년들의 언어와 시각에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자 친구의 성관계 요구 거절 대목에서는 “난 지금 하고 싶지 않아. 연애에도 급이 있어, 자꾸 니 맘대로 한다면 넌 꽝이야!”라고 해놨다. 피임과 관련해서는 “알고있는 피임법을 모두 떠올려보고 가장 안전한 방법 찾아보기 등을 놓고 수다를 떨어보라’고 했다. 성매매 이야기도 있다. “그땐 한번이고 잊어버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내 기억에 이렇게 오래 남아 있는 걸…가끔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어”이렇게 원조교제의 체험담을 밝혔다. 교육부와 청소년 및 여성단체의 자문을 거쳐 기획한 것이라고 전한다. 10대 성교재라 하여 도덕교과서처럼 만들 이유가 없는 것은 인정한다. 10대의 호기심을 중심으로 문제를 다룬 의도 역시 좋다. 그러나 꼭 이런 식으로 만들어야 했는가엔 의문이 많다. 우선 언어공해가 심각한 채팅용어를 정부의 제작 교재에 무분별하게 수용한 것부터가 이상하다. 남자친구의 성관계 요구 거절법은 마치 경험자가 내키지 않은 기분 상태를 말하는 것 같아 보인다. 원조교제의 폐해나 피임법 등은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런 교재를 어떻게 배포하여 어떤 방법으로 성교육을 할 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성교재이기 보다는 성잡담집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빗나가 성교육의 효과가 있기를 바라지만 아무래도 제작방법이 좀 졸렬하다. 어른들 누구나 지난 10대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런 것처럼 10대의 성교육은 참으로 난해한 일이긴 하다. 특히 매스 미디어가 극도로 발달해가는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기왕 국비를 들여 기획한 것이라면 비록 청소년들 언어와 시각이라 하여도 여기에 더 사례를 밝히기가 낯 뜨거울 정도의 내용인 게 능사는 아니다. 자문을 했다는 교육부와 청소년 및 여성단체는 어떻게 자문에 응했는지 궁금하다. 청소년보호위원회의 공식 해명을 한번 듣고 싶다. /임양은 논설위원

국보적 書誌학자 故이종학씨

수원시 화서동, 허름한 집안이 온통 케케묵은 고서 투성이의 책 냄새로 진동하는 서재엔 항상 심야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일찍이 가난하여 고등공민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으면서 국내 서지분야의 대가를 이룬 무학의 노학자 이종학씨. 그는 40여년을 이렇게 고서와 씨름하던 끝에 최근엔 과로가 덮쳐 타계, 어제 아주대 영안실에서 3일장으로 발인하였다. 1957년 서울 신촌서 연세서림을 낸 게 계기가 되어 전인미답인 서지학의 길로 들어섰다. 각종 고서 및 사료 등 수만점을 수집·분석한 학문적 업적은 이순신장군 연구, 일제강점의 진상규명, 독도 영유권 등에 특히 독보적 경지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난중일기’의 오역 투성이, 거북선의 실체, 충무공의 수전 뿐만이 아닌 탁월한 육전대첩 발굴, 그리고 대한제국의 한·일합방조약 원인무효 규명, 독도 영유권의 역사적 입증 등은 고인이 일궈낸 국보적 업적이다. 지난해 3월엔 평양에서 ‘일제 조선강점 불법성에 대한 남북공동 자료전시회’를 갖고 사료 2천여점을 북측에 기증했다. ‘동학사료총서’‘화성성역의궤’등 10종 40여권의 자료집을 출간하고 독도박물관장, 이순신연구소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일본의 도서관이나 고문서 관리자들 사이에서 불리는 별명이 ‘다케시마(竹島)’, 독도를 이렇게 부르는 일본인 그들은 고인이 독도 영유권 입증을 위해 일본을 50여차례나 드나드는 바람에 독도 전문가란 뜻으로 그렇게 불렀다는 일화가 있다. 사회적으로 대우받는 것도 아닌 서지학의 고독한 길을 말없이 개척한 노학자는 자신이 하는 일을 “역사를 김매기한다”고 말했고, 그래서 사운(史芸)이란 아호를 가졌다. 평생을 잘못된 역사 바로 잡는데 실증적 문헌으로 탐구해온 선생은 생전에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독도 앞바다에 재를 뿌려달라”고 유언한 것으로 전한다. 주인 잃은 서재에는 이제 심야의 불이 꺼지고 가득가득히 채워진 고서며 고문헌은 알아보는 이 없어 주인의 옛 손길을 그리워하는 듯 하다. 일흔다섯이면 아직도 더 학문을 할 수 있는 나이에 그를 잃은 것은 너무 큰 손실이다. 미망인과 외동딸을 남기고 홀연히 떠난 선생의 명복을 삼가 빌면서, 수원과 경기도의 자랑스런 노학자를 보내는 우리 지역사회가 과연 제대로 정성를 다 했는가를 깊이 생각해 본다. /임양은 논설위원

우리 음식문화의 우수성

원시사회에선 인간이 당초엔 음식을 생식하다가 불을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했을 걸로 짐작된다. 처음 불을 이용하는 방법은 구워 먹는 거 였을 것이다. 통닭 구이처럼 불을 피워 직접 굽다가 볶아 먹는건 한참 뒤인 토기를 발명하고나서 였을 것이다. 어쩜 그 이전에도 엷은 돌판 같은 것을 이용에 볶았을 지도 모른다. 그 무렵은 양념이 없었을 테니 갖가지 양념을 함께 하여 굽거나 볶는 것은 인류가 꽤 발달하고 나서 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떻든 음식을 삶거나 쪄서 먹는 건 꽤 고차원의 기술이다. 굽는 것을 1차적 발달, 볶는 것을 2차적 발달이라고 한다면 삶거나 찌는 건 3차원적 발달이라 할 수가 있다. 음식을 삶거나 쪄서 먹는 게 건강에 좋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흥미를 끈다. 미 국립과학원 회보에 실린 뉴욕시 마운트 시나이병원의 블라사라박사 연구보고서가 이런 내용이라고 전한다. 즉 굽거나 볶는 것은 갑자기 고온을 가하므로 단백질·지방·당분이 상호작용에 의해 포도당화 생성물질(AGE)이라는 독성물질이 생긴다는 것이다. AGE가 체내에 계속 쌓이면 면역체계에 염증을 유발, 혈관에 손상을 일으키고 특히 당뇨병 환자에겐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삶거나 찌는 것은 아주 저온에서 서서히 가열되고 습도가 높은 상태에서 조리되기 때문에 극히 미량의 AGE가 나와 무해하다고 연구보고서는 밝혔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조리법은 참으로 과학적이고 위생적이다. 서구의 음식이 대부분 굽고 중국의 음식은 볶는 것인데 비해, 우리의 전통 음식은 삶거나 찌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끓이는 탕음식은 우리 음식문화의 대표작이다. 어떻든 우리의 조상들은 전래음식 거의를 삶지 않으면 찌는 좋은 조리법을 일찍이 개발했던 것이다. 흔히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는 연유로 탕문화를 들기는 한다. 국, 찌개 등 먹다 남는 이밖의 갖가지 탕음식 때문이라고 하지만 음식 쓰레기는 우리가 작심만하면 줄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미 국립과학원 회보는 미국에서 권위를 과시하는 학술 전문지다. 삶거나 쪄서 먹는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에 자긍심이 인정된 사실이 무척 기쁘다. /임양은 논설위원

가정교육

백어(伯魚)는 공자(孔子)의 아들이다. 백어가 어렸을 때였다.뜰에서 뛰어노는 백어에게 아버지인 공자가 “시경(詩經)을 읽었느냐”고 물었다. 백어가 아직 못 배웠다고 대답하였다. 공자는 “그것을 읽지 않으면 인정과 도리에 통하기 어려워 바르기 살기 힘들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뒤 어느 날 백어가 뜰에서 공자를 뵈었다. 공자는 “예(禮)를 읽었느냐”고 물었다. 백어가 아직 못 배웠다고 하자 공자가 “그걸 모르면 자립할 터전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공자가 뜰에서 아들에게 가르쳤다는 ‘정훈(庭訓)’이라는 말의 유래다. 공자의 제자 진항(陳亢)이 “그대는 혹시 아버님으로부터 남다른 가르침을 받지 않았느냐”고 물었다.백어의 학문이 깊고 인품이 고결해서였다. 백어가 “그런 일이 없다”면서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을 들려 주었다. 백어는 ‘시경’과 ‘예’를 책을 읽고 터득한 것이다. 만일 공자가 다른 교육 방법을 몰래 만들어 자기 아들에게만 가르쳤다면 아마 극심한 이기주의자로 낙인 찍혔을지도 모른다. 공자는 어디까지나 아버지의 위치에 서서 누구나 가야할 배움의 길을 제대로 가라는 지극히 일반적인 가르침을 가장 자유스럽게 가르쳤다. 한 나라도 크게 보면 하나의 거대한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라는 한 가정에는 많은 자녀들이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사람의 길을 제대로 가면서 자라고 살아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부모들이 하나된 마음으로 자녀에게 사랑을 쏟아야 한다.도덕적 신념이 있는 부모와 그 슬하에서 자란 자녀들이 거듭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나가게 되면 그 집안을 사람들은‘ 가풍(家風)이 있는 집안’이라고 칭송한다. 이렇게 가정교육은 중요하다. 요즘 일부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상상이 안되는 비행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 가정교육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예로 얼마 전 가수 팬클럽 모임에서 여학생 친구를 무자비하게 살해한 10대들의 행동을 보면 그렇다. 죽인 것도 끔찍한데 살해한 친구를 바로 옆방에 방치한 채 사흘간이나 술을 마시고 놀았다니 기가 막힌다. 성악설, 성선설을 논하기 전에 자식의 가정교육을 먼저 떠 올리는 이유는 자녀들의 비행은 부모의 책임과 무관하지 않아서다. 아무래도 어린이들에게 ‘시경’과 ‘예’를 읽혀야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생각하는 기계

‘하루 평균 6시간 59분 공부, 4시간 24분 여가 활동, 일주일에 10시간30분 인터넷 접속, 월평균 휴대전화 요금 3만1천400원, 가출 충동 경험 79% …’. 국무총리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발간한 ‘청소년 보호 백서’에 나타난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이다. 고교생 중 22%가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하루에 1분도 안된다는 응답도 있다. 중학생 열명 가운데 1명은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믿지 못한다”고 했다. 음란사이트를 본 적이 있는 초·중·고학생 92%가 접속 장소가 집(가정)이었다. 자녀들이 방에서 음란사이트를 버젓이 볼 정도로 부모들이 무관심했다는 증거다. 가출 이유도 부모와의 갈등(50%)이 가장 많았다. 청소년들은 학교에서의 생활도 불만이 많다. 선생님에 대한 신뢰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낮아졌다. 교사와의 불신, 지나친 꾸지람, 불필요한 체벌이 70∼80% 였고 특히 수업능력 부족은 81%나 됐다. 중·고생 24%가 “선생님께 들키건 말건 신경쓰지 않고 수업시간에 잔다”고 답해 교권 붕괴 현상도 나타났다. 이렇게 ‘청소년 보호 백서’에 나타난 청소년 생활상 가운데 아버지와 1분도 대화가 없다는 것은 부모, 특히 아버지에게 문제가 있다. 문제아가 아니라 ‘문제부(問題父)’인 셈이다. ‘자녀가 가정의 따뜻함을 느끼게 하자’‘자녀를 칭찬해주는 아버지가 돼라’‘자녀와 집에서 뒹굴고 놀자’‘자녀와 서점·공원·운동장에 1주일에 한번은 가자’‘약속을 지키는 아버지가 되자’‘아버지도 감정을 가진 인간임을 보여주자’‘아버지는 자녀가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는 데 조력자임을 명심하자’ ‘1주일에 한번은 가족의 날로 정하자’‘자녀의 학교에 가보자’‘가족에게 편지를 써보자’‘자녀와 여행하는 아버지가 돼라’‘부모님의 고향을 자녀와 함께 찾아보자’‘교통신호를 지키는 아버지가 되자’. 이것은 ‘좋은 아버지가 되는 열 가지 길’이다. 이 열 가지 가운데 한 가지만 실행하여도 자녀와의 대화는 충분하다. 자녀 키우기는 어머니의 몫만이 아니다. 자녀의 정신 발달을 위해선 아버지의 역할이 어머니의 역할만큼 중요하다. 보통 말하기를 아버지 또는 남편이 ‘돈 버는 기계냐?’고 한다. 아니긴 하지만 만일 기계라고 한다면 ‘생각하는 기계’여야 된다. 그것이 아버지의 역할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신상옥, 최은희씨 부부

신상옥, 최은희씨 부부 白山 ‘안양시지’는 안양영화예술고등학교를 이렇게 적고있다. ‘현 석수동 관악아파트 자리에 수도영화촬영소를 중심으로 1970년 설립 운영하다가 재정난으로 폐교 위기에 있었으나 학교법인 연암학원으로 인수, 현 안양3동 산 42의 1에 신축 교사를 건축하고 각종 교육 기자재를 확보, 명실공히 한국영화예술의 중추적인 인재 양성에 나서 제1회 졸업생(236명)을 배출하고 (중략), 실기 실습의 교육을 통한 졸업생 중에는 영화, 라디오, TV, 개그맨, 연극계 등 각층에 많은 연기자가 있다.’(후략)고 기술했다. 이어 탤런트로는 금보라 김도연 임영규 임성원 이상아 오연수 등, 영화배우엔 나영희 김서라 김보연 김정석 등, 연극배우는 김성웅 박진수 신진호 전운봉 정화진 등, 가수엔 장덕 노고지리 김민종 등을 배출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안양영화예술고등학교의 옛 주인공이 한국영화의 원로감독 신상옥, 원로여배우 최은희씨 부부다. 이미 칠순이 한참 넘은 영화인 부부가 25년전 남편은 이사장, 부인은 교장으로 있던 안양영화예술고등학교의 재건에 나섰다. 이들 부부는 “옛 촬영소와 학교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하던 중, 마침 안양시에서 옛 명성을 부활하자는 제의가 있어 힘을 얻게 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한다. 학교는 전 안양경찰서 부지를 안양시가 빌려주고 기자재 등 구입은 신씨 부부가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의 촬영소와 학교는 부부가 북으로 납치된 뒤 촬영소는 이내 문을 닫고 학교는 다른 학교법인에 넘어가 교명도 바뀌었다. 1978년 홍콩에서 최은희씨가 납치돼 실종되자 부인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중 신상옥씨 또한 납치됐었다. 신·최씨는 북에서도 영화활동을 계속하다가 1986년 해외에서 극적인 탈출에 성공, 그동안 미국서 지내다가 올해 귀국했다.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거치고 거친 신·최씨가 학교에 쏟는 의욕은 아직도 대단하다. 전에는 고등학교 과정이었지만 내년 3월에 문을 열 예정인 ‘안양신필름예술학교’는 고졸 출신 인재들로 역시 철저한 실습 실기위주의 교육으로 스타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한다. 원로 영화인의 노부부가 지역사회에 다시 쏟는 집념이 사뭇 기대된다.

신상옥, 최은희씨 부부

신상옥, 최은희씨 부부 白山 ‘안양시지’는 안양영화예술고등학교를 이렇게 적고있다. ‘현 석수동 관악아파트 자리에 수도영화촬영소를 중심으로 1970년 설립 운영하다가 재정난으로 폐교 위기에 있었으나 학교법인 연암학원으로 인수, 현 안양3동 산 42의 1에 신축 교사를 건축하고 각종 교육 기자재를 확보, 명실공히 한국영화예술의 중추적인 인재 양성에 나서 제1회 졸업생(236명)을 배출하고 (중략), 실기 실습의 교육을 통한 졸업생 중에는 영화, 라디오, TV, 개그맨, 연극계 등 각층에 많은 연기자가 있다.’(후략)고 기술했다. 이어 탤런트로는 금보라 김도연 임영규 임성원 이상아 오연수 등, 영화배우엔 나영희 김서라 김보연 김정석 등, 연극배우는 김성웅 박진수 신진호 전운봉 정화진 등, 가수엔 장덕 노고지리 김민종 등을 배출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안양영화예술고등학교의 옛 주인공이 한국영화의 원로감독 신상옥, 원로여배우 최은희씨 부부다. 이미 칠순이 한참 넘은 영화인 부부가 25년전 남편은 이사장, 부인은 교장으로 있던 안양영화예술고등학교의 재건에 나섰다. 이들 부부는 “옛 촬영소와 학교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하던 중, 마침 안양시에서 옛 명성을 부활하자는 제의가 있어 힘을 얻게 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한다. 학교는 전 안양경찰서 부지를 안양시가 빌려주고 기자재 등 구입은 신씨 부부가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의 촬영소와 학교는 부부가 북으로 납치된 뒤 촬영소는 이내 문을 닫고 학교는 다른 학교법인에 넘어가 교명도 바뀌었다. 1978년 홍콩에서 최은희씨가 납치돼 실종되자 부인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중 신상옥씨 또한 납치됐었다. 신·최씨는 북에서도 영화활동을 계속하다가 1986년 해외에서 극적인 탈출에 성공, 그동안 미국서 지내다가 올해 귀국했다.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거치고 거친 신·최씨가 학교에 쏟는 의욕은 아직도 대단하다. 전에는 고등학교 과정이었지만 내년 3월에 문을 열 예정인 ‘안양신필름예술학교’는 고졸 출신 인재들로 역시 철저한 실습 실기위주의 교육으로 스타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한다. 원로 영화인의 노부부가 지역사회에 다시 쏟는 집념이 사뭇 기대된다.

징용자 혼백의 귀국

징용자 혼백의 귀국 白山 일제치하의 2차대전 때 학병 지원이나 징병당한 입대자들은 국민반을 동원해 일장기며 ‘축 입영’등의 휘장을 나부끼면서 거창한 환송식을 해주었다. 국민반이란 지금의 통·반을 일제는 그렇게 불렀다. 이 반면에 위안부나 징용자는 그야말로 마치 짐승 취급하다시피 했다. 마구 끌려가 트럭이고 화물차에 아무렇게나 실리곤 했다. 지지대자는 초등학생의 어린 나이에 이런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다. 이처럼 강제로 끌려간 징용자는 일본 오지의 군수공장 또는 광산 등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말로는 다 못할 고초를 겪었다. 보수가 있을리 없다. 인권 또한 사치스런 얘기다. 죽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심지어는 남양군도의 전쟁터까지 끌려가 일본군의 밥이나 탄약을 어깨로 실어 나르기도 했다. 이러다가 총맞아 죽은 징용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았다. 일제에게 한국인 징용자는 이를테면 소모품이었다. 당시 징용자로 끌려간 한국인 357명의 유해와 위패가 조국의 품안으로 돌아왔다는 보도는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일본의 사찰 14곳에 안치돼 있던 유해 50구와 위패 307위가 지난 16일 오후 12시30분 인천국제공항으로 봉환돼 공항청사 ‘만남의 광장’에서 노제가 올려졌다. 50 수년전 30대 나이로 징용에 끌려가 한 줌의 재가 되거나 위패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봉환은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와 일본의 헤이와사(平和寺)란 절, 그리고 세계미술문화협회의 한국·일본지부 등 두 나라 민간단체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유해며 위패를 안고 노제를 올린 유족들은 아마 50대라 하여도 돌아가신 분이 할아버지뻘쯤 될 것이다. 나라가 없는 백성은 이처럼 서럽고 무서운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지금의 세대들은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일제는 경비행기로 미군함에 추락, 침몰시키는 가미가제 도코다이 (神風 特攻隊) 소년병은 일본인들로만 구성한 대신, 위안부나 징용자는 일본인은 완전히 피하고 한국인만 끌어 갔다. 그래도 이름없이 죽어간 수다한 징용자들에 비하면 이번에 유해며 위패로 돌아온 분들은 불행중 다행이다. 파주시 보광사 납골당에 봉안됐다. 명복을 비노니 뒤늦게나마 고국에서 편히 쉬소서. 아울러 이역만리의 구천에서 맴돌았을 고혼들의 천도를 삼가 빈다.

철새괴담

철새괴담 白山 텃새의 대칭이 되는 철새엔 기러기같은 겨울새, 제비 등 여름새와 도요새처럼 지나가는 나그네새가 있다. 겨울새는 112종, 여름새는 64종, 나그네새는 90종 등 모두 266종의 철새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봄 가을의 전환기인 4∼5월과 9∼11월엔 150종 이상의 수백만에 달하는 철새들이 우리나라로 오가거나 통과하곤 한다. 떼를 지어 이동하는 철새는 북으로는 시베리아, 남으로는 호주까지 왕래한다. 수만, 수십만 km에 이르는 거리의 창공을 나는 것이다. 이런 얘기가 있다. 요즘 철새들이 데모를 한다고 한다. 당을 왔다갔다 하는 정치인들을 빗대어 ‘철새’라고 하는데 불만을 품고 항의 시위를 한다는 것이다. 죽을 힘을 다해 날며 서식지를 옮기는 자기들이 어떻게 양지만 찾아 편히 옮기는 변절 정치인들과 감히 비교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변절 정치인은 철새라기 보다는 소나 말에 붙어 기생하는 ‘진드기’라고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물론 세간의 호사가들이 지어낸 얘기다. 영국 수상을 두번 지낸 처칠도 당을 두번 옮긴 적이 있다. 보수당에서 하원 의원으로 당선, 정계에 입문했으나 당의 보호관세 정책에 반대하여 탈당하고 자유당으로 옮겼다. 그러다가 1921년 자유당의 대독, 대소정책에 반발, 17년의 자유당 생활을 청산하고 보수당으로 다시 복귀한 것이다. 제2차대전 때 수상을 지내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은 그의 대독, 대소 강경정책에 힘입은 걸로 평가받는다. 대선은 이합집산의 계절인지 많은 정치인들이 헤쳐 모이고 있다. 이중 대부분은 진드기라고 하는 철새들의 항의 괴담이 맞긴 맞다. 그러나 당의 체질이 변질되거나 노선을 함께할 수 없는 정치적 소신이 서면 불가피한 게 또한 탈당이다. 특히 보수와 진보는 한 당에서 양립할 수가 없다. 문제는 이런 노선이나 정책적 판단이 아닌 일신의 안위를 찾아 왔다갔다하는 정치인들에게 있다. 그저 다음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치놀음만 벌이는 국회의원들은 그야말로 정치판의 환경 공해품이다. 겨울새인 기러기떼를 가끔 본다. 옆 V자형으로 나는 모양새가 무척 우아하다. ‘금실지락’의 상징이기도 하다. 해서 시가에 흔히 등장한다. 기러기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철새들은 청아하여 오염된 환경을 싫어한다. 감히 정치권의 환경 공해품과 비교할바가 못된다.

농촌환경

농촌, 하면 초가집, 논, 밭, 동산, 보리밭, 배추밭, 고추밭, 냇가, 버드나무, 황소가 떠오른다. 노고지리소리, 뻐꾸기소리, 매미소리, 다름이질 소리도 생각난다. 농부들이 새참먹는 모습, 옥수수 따는 모습, 새싹 돋아나오는 마을 풍경, 모기불 피워놓은 앞마당, 원두막, 마을어귀의 느티나무, 이엉 엮는 모습, 군불 때는 모습, 설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농촌이 근대화하면서 총가지붕은 자취를 감추고 트랙터를 이용한 논갈이, 방제기를 이용한 농약살포, 비닐하우스 재배단지, 경지정리된 논길, 마을길 달리는 경운기, 승용차가 있는 농가 대문 앞 풍경으로 변했다. 요즘은 농촌에 도시사람들이 고급주택을 지어놓고 살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농촌 형성은 서기전 3000년∼서기전 2000년경부터 1∼4세기 사이에 비롯 되었으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와같은 추측은 삼국지, ‘위지’나 후한서 ‘한전(漢傳)’등의 문헌자료에 의하여 뒷받침된다. ‘위지’에는 부여족이 철기와 음력을 사용하였고, 농경의례인 영고(迎鼓)를 행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농촌의 입지는 선사시대 이래 경작지·연료·물의 공급이 용이하고, 수해 등의 재해를 피하기 쉬운 곳을 택하였다. 그래서 산개지 이외에는 배산임수의 산간이나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농촌은 옛날처럼 깨끗하고 아늑함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새들이 노래하는 동산은 난개발로 무너지고 파헤쳐진다. 송사리가 헤엄치던 냇물은 생활하수와 공장폐수로 오염돼 간다. ‘깨끗한 농촌을 만들자’는 연중캠페인이 벌어지고 매년 3월과 11월을 ‘페비닐·폐영농자재 집중수거의 달’로 정할 지경이 됐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깨끗한 농촌환경을 만들려는 자발적인 노력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자원재생공사 같은 곳에서 농업인들이 수거해 놓은 폐비닐이나 농약병조차 가져가지 못하는 탓도 적지 않지만, 농경지에 폐비닐이 나부끼고 폐농약병이 굴러다니는 일차적인 책임은 농촌의 몫이다. 농촌의 주인인 농업인이 솔선수범하지 않는다면 농촌과 우리 농산물이 외면당할 수 있다. 환경, 특히 농촌환경은 한번 파괴되고 나면 다시 복구되기 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논, 밭, 동산, 냇물이 흐르는 환경을 지키는 일은 농촌의 책임이다.

주막

淸河 주막(酒幕)은 글자 그대로 막을 쳐놓고 술을 파는 정도의 길가 주점이다. 고려사의 기록에 주막은 고려 성종 때부터 있었다고 전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였으며 술과 음식을 팔았다. 고려사에는 당시 술을 팔던 풍속은 자세히 전하고 있지 않는다. 하지만 한말의 문헌이나 풍속화를 보면 주막은 탁주를 담은 술항아리, 항시 물이 끓고 있는 부뚜막의 검은 큰 가마솥, 그 곁에 앉아서 술을 떠주는 주파(酒婆)등이 인상 깊은 우리네 주점의 모습이다.특히 겨울철 추위에 거냉한 탁주는 요기와 어한으로 애용돼 우리의 주점은 따뜻한 정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인식돼 있다. 근년에 이르러 도시의 뒷골목이나 도롯가 으슥한 곳에 노점처럼 나타난 포장마차의 술집에서도 겨울의 추위를 녹이는 정이 오고 간다. 주로 닭똥집·닭다리 요리, 꽁치구이 등을 안주로 하여 소주를 판다. 주막과 비슷한 목로주점도 있다. 기다랗고 좁은 널빤지로 만든 술상이 목로인데 이곳에 큰 막걸리 사발을 놓고 의자도 없이 서서 술을 마시므로 ‘선술집’이라고 하였다. ‘사발막걸릿집’또는 ‘대폿집’이라고도 했는데 1960년대 때까지만 해도 도시에 선술집이 많았다. 지금은 의자를 두고 소주를 팔고 있어 선술집이니 대폿집의 느낌은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 술의 이미지는 농가에서 마시는 푸짐한 막걸리, 즉 농주에 있다. 길손을 불러 술을 같이 하고, 이웃집 어른과 친구를 불러 나누어 마시는 것이 농주다. 양조업이 산업화된 이래 양조장의 탁주가 농주로 일반화되어 왔지만 종전 농가에서 주부들이 빚은 가양주 맛에 비하면 어림도 없다. 몇년 전 수원시가 화성(華城)의 사대문 중 하나인 화서문(華西門) 안쪽에 옛 정취를 풍기는 주막거리를 조성한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었었다. 그러나 초가집 주막 한채만 지어 놓고 지금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주막을 십여채 더 짓고 실제로 막걸리와 국밥, 안주를 판다면 시민은 물론 관광객들이 즐겨 찾을 수원의 명소가 될텐데 아쉬움이 크다. 만추의 나무들이 마치 성자같은 요즘같은 날 주막에 앉아 거냉한 막걸리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고 싶은 마음은 지지대子만이 아닐 것이다. 눈(雪)이 기다려진다.

수원시종합운동장 담장헐기

白山 농경사회의 촌가는 대문이라야 싸리문이 고작이었다. 잠금이 따로 없어 아무나 여닫곤 했다. 담장도 낮아 담장 너머로 마당이 다 드러나 보였다. 빗장이 있는 대문은 꽤나 부자집에서만 볼 수 있었다. 이런 집 담장은 으레 사람 키보다 높았다. 산업사회가 되면서는 보통사람의 집 대문도 튼튼해지고 담장이 높아졌다. 특히 도시에서는 더 했다. 담장을 성벽처럼 높이 올린 것으로도 모자라 담장위에 철조망을 두르기도 했다. 병같은 걸 깬 유리조각을 담장위에 총총히 박아 놓은 집도 있었다. 세상이 하도 험하다 보니 안전을 위해 하는 일이라 뭐라 할순 없지만 살벌해 보인 게 썩 좋은 건 아니다. 수원시종합운동장이 담장을 헐어내고 있다. 담장이라고 하여 별 것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헐고 있다. 담장을 헐어낸 모습이 참으로 좋아 보인다. 우선 시원해 보이기도 하지만 시각상 정감이 넘친다. 담장 철거를 말하다 보니 대구시의 담장 헐어내기 운동이 생각난다. 대구시는 근래 이를 시민운동으로 벌이면서 담장을 헐어낸 집엔 철거 보상비를 준다고 한다. 위화감보단 일체감, 경계심보단 신뢰성을 살리기 위한 지역 캠페인일 것으로 생각된다. 정보사회 들어서는 각종 방어장치가 발달해서 인지 철조망이나 유리조각 담장은 보기가 어렵긴 하다. 그렇긴 하지만 일반 가정집의 담장을 헐어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취지는 이해할만 하다. 수원시에서는 가정집 담장 헐기는 몰라도 관공서 등 공공단체 건물의 담장 헐기는 한번 생각해볼만 하다. 종합운동장 담장 철거가 이같은 공공단체 건물의 담장 철거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담장은 있어도 낮을수록이 좋고 또 투시될수록이 더 좋다. 일반 가정집 담장 또한 잘사는 외국 사회의 가정집 담장처럼 낮고 투시되는 담장으로 바뀌면 도시환경이 한결 더 밝아질 것이다. 그나저나 종합운동장의 담장이 헐려 좋긴해도 한가지 걱정이 없지않다. 비록 담장은 없애도 경계는 엄연히 있다. 이런데도 경계를 무시하고 문이 아닌 아무 곳이나 마구잡이로 드나들어서는 안된다. 이같은 얌체족이 있다면 경계해야 한다. 수원시종합운동장은 곧 스포츠공원이다. 담장없는 스포츠공원을 더욱 아끼고자 하는 시민정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강압수사

白山 “인(사람) 백정이란 말을 듣죠?”제4공화국 때다. 당시 중앙정보부에 있는 사람하고 얘길 나누면서 이렇게 튕겨봤다. “그럼 묻겠습니다…”하면서 그는 간첩을 화두로 꺼냈다. 그 때만 해도 중정은 간첩을 많이 잡긴했으나 질문의 요지는 그게 아니었다. 유신 말 ‘긴급조치 8호’란 이상한 법이 있었다. 반유신 인사들이 이 법으로 끌려가 말못할 고문을 당하는 일이 잦았다. 질문의 핵심은 그거였는데 간첩을 사례로 든 그의 말은 이러했다. 곧 고첩과 접선할 남파 간첩을 붙잡았는데 제대로 신문하여 접선 시간과 장소 등을 불겠느냐는 것이다. 고문을 해서라도 자백을 받는것과 인권보호의 수사를 하다가 놓치는 것 중 어느 게 국가 이익에 합치되냐고 그는 반문까지 했다. 최근 미국의 테러 용의자들이 군용기에 인권을 유린당한채 실려가는 사진이 한 인터넷방송에 실려 미 국방부가 사진 유출조사에 나섰다. 손목엔 수갑, 발목엔 족쇄를 채우고 검은 두건이 씌워진채 끈으로 용의자들을 엮어 결박당한 모습이다. 인권을 유린하는 강압수사 실태는 직접고문이 아니어도 간접고문이 많다. 수치심을 유발하는 반인격적 언사, 조사실 벽을 보고 서있도록 하는 이른바 ‘면벽수도’, 잠을 안재우는 밤샘조사 등 허다하다. 이런 조사를 한번이라도 당해본 사람은 평생 치를 떨 일이다. 서울지검 강력부의 조폭 구타 사망사건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끔찍한 물고문이 사실로 드러난데 이어 사망자의 팬티 유무 행방 문제가 의혹에 쌓였다. ‘아흔아홉 사람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잠언이 있다. 좋은 말이다. 이를 거역할 그 어떤 명분도 있을 수 없다. 인권은 인간이 실정법으로 준 권리가 아니다. 타고난 자연법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국가사회는 이를 보호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국가사회의 공익적 방어는 때때로 이를 침해하는 부득이한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미국에서 문제가 된 테러 용의자들의 인권유린은 바로 그같은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학대행위 등 고문은 마땅히 문책돼야 하지만 인권을 존중한다는 미국 선진국에서도 인권유린이 있는 것은 인류의 원초적 불행이다. 다만 국내의 경우 다른 것은 직·간접의 고문행위가 지나치게 보편화 된데 있다. 어떻든 고문은 반인간적인 건 사실이다.

수컷이 빨리 죽는 이유

수컷이 빨리 죽는 이유 淸河 영국 스털링대 케네스 월슨 교수팀이 “기생충, 병원균 등 기생 생물에 의한 감염이 수컷을 빨리 죽게 한다”고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발표했었다. 355 종류의 포유동물에서 기생 생물 감염과 생존 시기 등을 폭 넓게 조사한 결과 수컷이 암컷보다 기생 생물에 의한 감염이 더 많으며, 이는 수컷의 수명과도 관계가 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인간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결과가 비슷했다. 일본·영국·미국 등의 사망 원인을 조사한 결과 남성은 여성보다 감염에 의한 사망이 2배나 더 많았다고 한다.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저개발 국가에서는 감염에 죽는 비율이 여성보다 4배나 더 많았다. 지금까지는 남성은 여성보다 일찍 죽는 것이 남성이 모험심이 많아 여성보다 사고로 빨리 죽거나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수컷의 면역기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우세했다. 수컷들이 더 많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덩치를 키운 결과 기생 생물에 위협을 당하는 아이러니컬한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많은 포유동물이 다른 수컷과 싸워 이김으로써 암컷을 차지하고 자손을 늘린다. 다른 수컷을 이기려면 덩치를 키우거나 뿔 같은 무기를 크고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이처럼 덩치를 키우다 보니 상대적으로 암컷보다 면역 시스템에 쓸 에너지가 부족해졌다는 것이다. 또 큰 동물일수록 많이 먹기 때문에 촌충 등 기생충의 알을 삼킬 가능성이 높고 먹이를 찾기 위해 오래 돌아다니다가 감염될 수도 있다. 큰 덩치일수록 모기 등 곤충의 좋은 목표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엊그제 일본 에히메대학 의학부 연구팀이 ‘부인이 있는 남자는 장수하지만 오히려 여자는 남편이 없어야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남성의 경우 ‘흡연을 한다’‘1년 이내에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당뇨병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들이 높은 사망률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남성은 여성보다 일찍 죽는다는 연구결과이고, 실제로 여성이 오래 산다 장수하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죽어 봐야 알터이지만 힘겹게 사느니 죽는 게 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영웅

영웅 淸河 동서를 막론하고 전쟁이 많았던 시대는 군인이 영웅이었다. 임진왜란을 당해 나라를 지킨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우리는 성웅이라고 존칭한다. 옛날 서구의 영웅은 선교사들이었다. 미개척지에 들어가 고생도 하고 죽기도 하였다. 1960년대 미국은 인권운동의 물결 속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영웅시 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를 마르크스주의자로 공격했었다. 결국 영웅이라는 말은 시대에 따라 혹은 개인의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아이들은 운동선수나 좋아하는 가수를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일제 때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손기정 선수를, 그리고 황영조, 이봉주 선수를 영웅이라고 하듯이 꿈을 이룬 사람은 영웅이다. 홈런을 많이 때린 맥과이어 같은 야구선수를, 박찬호, 박세리, 황선홍, 홍명보 같은 선수들도 영웅이다. 이렇게 영웅의 대상과 개념도 진화된다. 미국의 경우 최고의 영웅들은 무보수 봉사자들이라고 한다. 성인의 31%가 이 일에 나서고 있다. 병원·교도소·탁아소·노인복지시설·경찰서·교회·재활시설 등 수 많은 곳에서 대가를 받지 않고 주 몇시간씩 일하는 무보수 봉사자들의 노동력을 임금으로 환산한다면 연간 1천500억달러에 이른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아버지와 어머니들도 영웅이다. 부모들은 아무런 대가없이 자녀를 낳고 기르고 가르친다. 그 희생과 사랑은 영웅 칭호를 듣기에 충분하다. 30년 이상 함께 살아온 부부들도 영웅이다. 3분의 1이 헤어지는, 앞으로는 2분의 1이 헤어질 지 모르는 세상에서 처음 만난 남녀가 30여년을 인내하고 용서하며 살았으면 영웅이다. 학교 교사들도 영웅이다. 특히 초등학교 교사들은 성자라고도 할 수 있다. 부모 곁을 떠나온 어린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고 가슴에 인격과 사랑을 심어주는 초등학교 교사야말로 정말 영웅이다. 오늘날의 영웅은 전쟁터에서 용맹을 떨치는 군인도 아니요, 권력자도 아니다. 말 없이 희생하는 사람, 이름없이 봉사하는 사람, 횡단보도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사람,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사람들,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스스로 휴지를 줍는 사람들이 영웅이다. 영웅이 많은 사회는 따뜻하다.

김치

김치 淸河 김치의 유래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원은 배추를 소금에 절여 담근다는 뜻의 한자어 ‘침채(沈菜)라는 말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침채를 팀채로 발음하다가 점차 ‘팀채→딤채→짐채→김채→김치’의 변천과정을 거쳤을 것이라고 김치전문가 박갑수씨가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조선시대 문헌들에는 딤채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채소를 절여먹는 방식은 중국과 일본, 독일에서도 쓴다. 그런데도 유독 김치만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을 젖산 발효식품인 까닭이다. 김치는 영양적 측면에서 다른 나라의 ‘김치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각종 영양소 외에 발효과정에서 생성되는 유기산, 젖산균 등 생리 활성 물질이 풍부하다. 김치는 변비와 동맥경화를 예방해줄 뿐만 아니라 빈혈 예방, 노화 방지, 항암 효과가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일본에서 ‘한국김치’는 성인병 예방식품, 미용식 등으로 통한다. 고춧가루에 다이어트 성분이 있는 것이 입증돼 오래 전 부터 한국산 고춧가루 먹기 열풍이 불고 있다. 김치담금 강습회, 한국으로의 김치 여행도 유행이다. 김치산업의 역사는 6·25 전쟁 이후 군 급식용으로 대량 생산된 게 효시다. 1960년대 월남 파병 당시 제조방식에 통조림 제작과정이 처음 이용됐다. 1980년대에 중동 파견 근로자들을 위한 납품용으로 생산되다가 1900년대에 들어와서야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시장에 출하되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 김치업체수가 500여개에 달할 정도다. 이제는 일본,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지역으로 판매가 확산돼 지난해 6천900만 달러치를 수출했다고 한다. 얼마 전 일본이 자신들의 ‘기무치’를 국제식품규격(OPDEX)으로 등록하려고 시도했다가 우리측에 발각된 적이 있었다. 김치를 일본 식품으로 오해하는 외국인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앞으로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김치가 국제 김치시장에서 경쟁대상이 될 소지도 있다. 한국에 존재하는 김치의 종류가 200여종이라니 가히 ‘김치 종주국’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 어린이들이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정에서 어린이들이 김치를 잘 먹는 음식문화가 정착되도록 부모들이 노력해야겠다.

공무원 파업

공무원 파업 白山 ‘국회가 정부의 예산안을 통과시켜 이에 편성된 공무원 봉급 8% 인상계획이 백지화됐다. 노조에서 전면 파업을 해가며 16% 인상 요구를 들고 일어나 가까스로 12%선에서 타결됐기 때문이다. 정부의 공무원 봉급 인상 준칙인 관련 법규가 사문화 됐다. 국회의 예산 심의권도 허수아비가 됐다. 오로지 정부와 노조의 단체 협약만이 우선돼 이처럼 법규가 국회위에 군림한다. 파업에는 관리직인 사무관급도 참여했다. 검찰청, 국정원 직원도 참가해 국가사회 방어에 한동안 혼란을 가져왔다.’ 이상은 예를 든 가상 상황이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도 되는 것인지 독자에게 묻는다. 이만이 아니다. 공직개혁 수단이라며 노조 소관이 아닌 모종의 조치를 정부에 압박하는 단체협약 요구를 내걸고 파업의 으름장을 놓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공직사회의 위계질서는 엉망이 돼 노조가 좌지우지하는 세상이 된다.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지 묻는다. 민주노총의 지원을 받고있는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가 이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어제 발생한 사상 초유의 공무원파업 배경이 이런데 있다. 정부에서 공무원 단체를 노조가 아닌 ‘공무원 조합’으로 추진하는데 반발, ‘노동조합’이란 명칭을 꼭 써야한다고 요구한다. 그것도 내년부터 당장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 단체로는 ‘전공노’외에 한국노총의 지원을 받는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련)이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공무원 복수단체를 인정하기로 하는 등 한동안 의견 접근이 있었으나 명칭과 권한 등에 이견이 심해 사실상 결렬됐다. ‘전공노’가 주장하는 대로 노동3권이 인정된 공무원노조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가 없다. ‘전공노’는 불법 단체이므로 대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공무원의 노고가 많은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어느 직장보다 안정되고 보람되고 보수도 그리 인색하진 않다. 이런 공무원이 법외 단체를 내세워 집단행동을 하는 게 국민들 눈에 곱게 비치지는 않을 것 같다. 특히 몽둥이를 들고 경찰에 대항하는 모양새는 보기에 무척 좋지 않다. 전근대적 과격행위만이 능사가 아니다. 절제되고 성숙된 면모를 보여 주었으면 한다.

부시와 클린턴

부시와 클린턴 白山 미국의 민주당은 텍사스주와는 악연인 것 같다. 민주당의 케네디 대통령이 1963년 암살된 곳이 텍사스주 댈라스시다. 케네디 집안은 맏형인 대통령의 죽음 뒤에도 동생들이 한동안 정치 명문가를 이었다. 클린턴의 후계자로 민주당 대선 후보에 나섰던 고어에게 신승끝에 당선한 지금의 공화당 부시 대통령 또한 텍사스주 출신이다. 악연에 개인적 원한까지 겹쳐 부시 및 클린턴 두 미국의 현대 정치 명문가의 싸움이 한창이다. 내일 치르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두 집안이 벌이는 공방이 자못 높다. 부시는 주지사 재선에 도전하는 동생 젭 부시를 비롯, 공화당 후보를 돕기위한 미 전역의 순회 지원유세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클린턴의 부인 힐러리 상원의원은 한 공식석상에서 “부시는 선출된 대통령이 아니라 선택된 대통령”이라며, 투표로 우열을 가리지 못해 법원의 판결로 당선을 확정지었던 부시의 아픈곳을 독설로 꼬집었다. 이에 부시측은 “힐러리는 극단적 자유주의자”로 비방 광고를 내보냈다. 두 집안의 원한은 2000년 대선에서 비록 아들 부시가 클린턴의 후계자를 물리쳐 설욕하긴 했으나 1992년 대선서 현직 대통령이던 아버지 부시가 클린턴에게 패배한데서 시작됐다. 클린턴은 케네디 이후의 정치 명문가로 여겼던 부시집안의 자존심에 치욕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클린턴은 퇴임 후 자신의 전임 대통령으로 걸프전을 주도했던 부시 아버지를 빗대어 아들 부시의 대이라크 강경책에 대해 ‘ 제 아버지의 훈수를 받았다’고 비난한 적이 있다.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달했다는 미국에서도 개인 감정의 이런 앙숙이 있는 것을 보면 국내 정치권의 앙숙을 그리 나무라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인 저네들의 원한 싸움은 말에 그치고 선거로 심판받는데 비해 국내 정치인의 원한 싸움은 정치보복으로 치닫는 점이 다르다. 돌이켜 보면 케네디 형제들도 가고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으로서 선박왕 오나시스에게 개가한 재클린도 가고 오나시스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죽어 지나고 보면 다 허망한 것을 생전에는 이토록 이판새판의 일처럼 감정에 절치부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인지, 좋은 것은 뭣이며 싫은 것은 뭣인가를 부시가와 클린턴가의 싸움을 보면서 한번 생각해 본다.

광교산에서

광교산에서 白山 오다가 만 가을인가 싶더니, 늦가을은 광교산에 농익어 있다. 활엽수마다 가을이 물들고 산마루에서 본 하늘은 유난히 드높다. 실종된 가을을 찾아 만끽하는 산행에 숨길은 가쁘지만 이래서 역시 산은 좋은 것이다. 광교저수지 입구에서부터 산등에 올랐다. 구릉지대를 지나 한참 가자니 등산복 차림의 한 노인이 집게로 휴지 등을 열심히 찾아 비닐봉지에 담는다. 저런 광교산 지킴이가 있는가 싶어 눈여겨 보고 있는데 같은 8조의 일행이 그 노인에게 박수를 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까스로 다다른 형제봉, 한 조의 젊은 친구들이 바위산에 오른다. 수년전 처음 왔을 적에 바위산에 올라봤으므로 힘을 아껴 옆길로 비로봉을 향해 그대로 산을 탄다. 형제봉 내리막 길 가운데 백여계단쯤 되는 나무계단 다리가 시야에 확 들어온다. ?? “전엔 이게 없었는데요?”“만든지 두어달 됐을 겁니다”그는 체격이 왜소한데도 산행의 발걸음이 가벼운 게 보통이 아니다. 답답한듯 되돌아 보면서는 보폭을 조금씩 늘려 보라고 일르기도 한다. 그런데 담뱃불을 당기는 게 아닌가. ‘?’시선을 의식했던지 이내 불을 부벼 끄면서 “산에서는 담배를 조심해야겠죠”하고 혼자말처럼 한다. 또 떨어져 외톨이로 가는데 누군가가 “형제봉이 얼마쯤 남았습니까?”하고 묻는다. “지났는데요…” “그래요? 거기서 만나기로 했는데”낭패란듯이 되돌아서는 그를 보면서 걸음을 재촉하다가 아뿔싸 발이 미끄러지면서 몸이 뒤로 주저 앉는다. 순간 두 손바닥으로 재빨리 땅을 짚어 엉덩방아는 면했지만 오십견이 이십년이나 늦게 온 왼손 어깨가 저려 온다. 그래도 산의 인심은 좋은 것이다. “다친데는 없으신지요?”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물어 계면쩍게 웃으면서 털고 일어선다. 비로봉을 옆으로 하여 갖은 용을 다 써가며 이윽고 다다른 토끼재, 쉬기를 겸해 좀 기다리자니 8조의 최종남, 신선화, 정미정, 주선영기자가 오고, 거구 최원혁기자를 대동한 안광용 편집부장이 보이는 게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여기서부터는 다같이 하산길, 거짓말을 보태어 주먹만한 애완견이 토끼재로 오르는 주인따라 껑충껑충 뛰면서 개도 등산을 하는 게 아닌가. 마침내 13번 시내버스 종점지대, 2시간 35분의 산행끝에 우릴 기다리며 취각을 돋우는 고기굽는 냄새가 입맛을 돋운다. 지난 토요일 경기일보사 150여명의 사우들이 참가한 사내 등산대회는 이렇게 우의를 다지며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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