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山
“인(사람) 백정이란 말을 듣죠?”제4공화국 때다. 당시 중앙정보부에 있는 사람하고 얘길 나누면서 이렇게 튕겨봤다. “그럼 묻겠습니다…”하면서 그는 간첩을 화두로 꺼냈다. 그 때만 해도 중정은 간첩을 많이 잡긴했으나 질문의 요지는 그게 아니었다. 유신 말 ‘긴급조치 8호’란 이상한 법이 있었다. 반유신 인사들이 이 법으로 끌려가 말못할 고문을 당하는 일이 잦았다. 질문의 핵심은 그거였는데 간첩을 사례로 든 그의 말은 이러했다. 곧 고첩과 접선할 남파 간첩을 붙잡았는데 제대로 신문하여 접선 시간과 장소 등을 불겠느냐는 것이다. 고문을 해서라도 자백을 받는것과 인권보호의 수사를 하다가 놓치는 것 중 어느 게 국가 이익에 합치되냐고 그는 반문까지 했다.
최근 미국의 테러 용의자들이 군용기에 인권을 유린당한채 실려가는 사진이 한 인터넷방송에 실려 미 국방부가 사진 유출조사에 나섰다. 손목엔 수갑, 발목엔 족쇄를 채우고 검은 두건이 씌워진채 끈으로 용의자들을 엮어 결박당한 모습이다. 인권을 유린하는 강압수사 실태는 직접고문이 아니어도 간접고문이 많다. 수치심을 유발하는 반인격적 언사, 조사실 벽을 보고 서있도록 하는 이른바 ‘면벽수도’, 잠을 안재우는 밤샘조사 등 허다하다. 이런 조사를 한번이라도 당해본 사람은 평생 치를 떨 일이다.
서울지검 강력부의 조폭 구타 사망사건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끔찍한 물고문이 사실로 드러난데 이어 사망자의 팬티 유무 행방 문제가 의혹에 쌓였다. ‘아흔아홉 사람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잠언이 있다. 좋은 말이다. 이를 거역할 그 어떤 명분도 있을 수 없다. 인권은 인간이 실정법으로 준 권리가 아니다. 타고난 자연법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국가사회는 이를 보호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국가사회의 공익적 방어는 때때로 이를 침해하는 부득이한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미국에서 문제가 된 테러 용의자들의 인권유린은 바로 그같은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학대행위 등 고문은 마땅히 문책돼야 하지만 인권을 존중한다는 미국 선진국에서도 인권유린이 있는 것은 인류의 원초적 불행이다. 다만 국내의 경우 다른 것은 직·간접의 고문행위가 지나치게 보편화 된데 있다. 어떻든 고문은 반인간적인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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