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합중국 3대 대통령을 지낸 제퍼슨은 독립선언서를 기초했다. ‘미국 민주주의 아버지’로 불린다. “신문없는 정부보다는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한 그의 말은 유명하다. 언론의 자유를 그만큼 중시했던 제퍼슨도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신문을 꽤나 싫어했던 것으로 전한다. 단소리 보단 쓴소릴 내뱉는 신문이 권력자에게 듣기 좋을리 없는 것은 인지상정이긴 하다. 신문 또한 단소리 보단 쓴소리를 하는 게 본연의 사명이다. 권력자가 잘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므로 웬만히 잘해서는 잘한다 할 필요가 없다. 또 단소리만 일삼는 권력지향의 언론은 이미 민권의 언론이 아니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권력과 언론은 이처럼 불가근(不可近) 불가원(不可遠)의 관계다. 권력과 언론은 필연적으로 대립 관계인 게 본질적 숙명이다. 권력에 영합하는 언론은 타락한 언론이며, 언론을 증오하는 권력은 독선이다. 왜곡된 언론은 시장의 독자가 거부하고 언론을 탄압하는 권력은 민중이 외면한다. 얼마전 미국의 백악관 대변인으로 있다가 퇴임한 플라이셔가 고별 연설에서 좋은 말을 남겼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질문할 수 있는 자유 언론과 이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정부가 있다는 사실이 미국을 강하고 자유롭게 만들었으며 이는 영원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 정례 브리핑에서 까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기자들과 치열한 설전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임무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브리핑 룸을 나갈 때 기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정말 멋있고 부럽다. 권력과 언론이 팽팽하게 평행하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질문할 수 있는 패기있는 기자가 아쉽고, 이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열린 권력이 아쉽다. 권력과 대항하여 설전을 벌일 수 있는 역량있는 후배 배출이 갈망된다. 이러한 소망은 물론 가능할 것이며, 언론계 발전만이 아닌 국가사회 발전 차원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임양은 주필
오이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천5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오이는 반찬으로 주로 먹지만 온몸이 푸석푸석 부어 오르는 증세를 가라 앉히는 데에도 널리 쓰인다. 오이는 차의 재료로도 유명하다. 반으로 갈라 그늘에 잘 말린 뒤 물에 넣고 끓여 먹는 것을 ‘호과차’또는 ‘오이차’라고 한다. 오이는 숙취해소에도 그만이다. 오이를 썰어 소주에 넣으면 술맛도 개운하고 상큼해지지만 숙취를 예방하는 역할도 한다. 숙취에 오이를 이용한 것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다. 푸슈킨의 소설 ‘대위의 딸’을 보면 오이지물에 꿀을 타서 마시는 것이 숙취를 풀어주는 데 최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소설의 배경이 에카테리나 여황제시대니까 200년 전 쯤이 된다. 그때 이미 오이가 숙취해소용 야채로 널리 이용됐다는 얘기다. 수분과 비타민이 풍부한 오이가 요즘 같이 무더운 날씨에 제 맛과 향을 뽐내고 제 역할을 톡톡히 해 내는 것은 찬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물이나 불에 데었을 때 강판에 간 오이를 화상 부위에 붙이는 것도 찬 성질을 이용한 요법이다. 한 여름 더위를 먹고 기운이 없을 때 오이를 강판에 갈아서 발바닥에 붙이면 효과적이다. 발바닥을 오므리면 앞쪽에 음푹 들어가는 부분이 생기는데 바로 이 용천경혈에 오이즙으로 자극을 주면 메말라가는 진액을 보중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오이는 찬 성질이 강하므로 손발이 냉한 사람, 눈이 안쪽으로 쑥 들어간 사람, 피부색이 유난히 흰 사람은 너무 많이 섭취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선천적으로 냉한 체질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먹으면 몸이 더욱 차가워지면서 건강균형이 쉽게 깨져 버린다. 저혈압이 있거나 빈혈 증세에 자주 시달리는 사람도 과식하지 않도록 양을 조절하는 게 좋다. 며칠 전 아버지의 마을 금당리를 다녀오는 길에 시골마을 느티나무 그늘에서 노인들이 오이를 안주로 술을 드시는 모습이 하도 정겨워 ‘오이 예찬’을 해 봤다./임병호 논설위원
수원 음식으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수원갈비’다. 입에서 입으로 맛이 전해지고 각종 매스컴을 통해 알려져 전국민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수원갈비는 전국적으로 알려졌던 수원우시장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우선 갈비 재료를 수원·화성지역에서 사육한 한우로만 쓴다는 것이 수원갈비의 명성과 맛을 있게 한 최대의 요인이다. 수원갈비는 1940년대 수원 성문밖 장(현 영동시장) 싸전거리에서 ‘화춘제과’를 경영하던 이귀성(李貴成)씨가 8·15 해방이 되면서 영동에 ‘화춘옥(華春屋)’이란 간판을 걸고 음식점을 시작한 데서 비롯됐다. 당시 40대였던 이씨는 음식장사 경험도 없이 우선 해장국 장사를 시작했다. 화춘옥 해장국은 소갈비를 푸짐하게 넣어주었기 때문에 도처에서 손님들이 모여 들었다. 1956년부터는 갈비에다 양념을 넣고 무쳐서 재어 놓은 다음 숯불에 굽는 양념갈비를 팔기 시작했는데 금세 인기를 끌었다. 화춘옥 갈비는 맛 뿐만 아니라 갈비대가 크고 양이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이후 화춘옥은 공무원이었던 아들이 경영을 맡은 후 언론에 소개되고 특히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다녀간 후 더욱 유명세를 탔다. ‘화춘옥갈비’는 자연스럽게 ‘수원갈비’로 알려졌는데 자세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은 채 1979년 ‘화춘옥’ 간판이 내려지고 그 자리에 백화점(수원쇼핑)이 들어섰다. 그러나 화춘옥이 문 닫을 때를 전후해 수원 지역에는 화춘옥 갈비의 맛을 근본으로 한 많은 갈비집들이 생겨났고, 오늘날에는 지지대, 노송지대, 동수원 등을 중심으로 전역에 확산됐다. 수원시가 1995년부터 ‘수원갈비축제’를 열고 있는 수원갈비는 고기를 먹은 후 맛보는 갈비냉면도 그야말로 진미로 이름났는데 이 수원양념갈비와 수원갈비냉면이 미국에 진출하게 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엊그제 들려 왔다. 진공포장한 상품 수원양념갈비 3만개, 수원갈비냉면 11만5천200개를 수출키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수원갈비냉면은 강원도 봉평메밀과 인진쑥을 주원료로 수원시가 지난해 5월 개발, 수원농협을 통해 판매하고 있는 제품으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다. 수원갈비와 갈비냉면의 미국 수출을 성사시킨 관계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임병호 논설위원
잠자리는 날개를 가진 곤충 중 원시적인 무리에 속한다. 고생대 화석에서 발견되는 옛 잠자리 ‘메가 메우라’는 날개를 편 길이가 60㎝에 달한다. 현재 볼 수 있는 잠자리가 대개 2~15㎝정도인 것에 비하면 익룡 수준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잠자리는 생물진화론을 입증하는 주요 생명체 중 하나라는 점에서 연구 가치가 크다. 생물진화론에서는 물 속에서 생겨난 생명체가 육지로 올라오면서 아가미 호흡이 폐 호흡으로 변하게 된다고 간주한다. 양서류인 개구리의 경우 올챙이 때에는 아가미 호흡을 하다가 개구리가 되면 호흡기관이 피부와 허파가 되는 격이다. 잠자리가 초식 곤충이 아니라는 점도 연구의 중요성을 높이는 부분이다. 잠자리는 일생동안 육식을 하는데 주로 물고기 알이나 치어, 모기, 각다귀 등의 곤충을 잡아 먹는다. 이들은 또 주로 물가에 살면서 개구리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생태계의 균형을 이루면서 먹고 먹히는 자연스러운 공생관계의 중간축이 되는 것이다. 고운 맵시의 깃동잠자리, 밀잠자리, 된장잠자리를 시작으로 잠자리의 대명사 고추잠자리까지 나타나면 온 들녘 산기슭에 잠자리 천지가 된다. 한국에 서식하는 잠자리는 대략 100여종이다. 밀잠자리와 깃동잠자리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아시아지역에서 매우 흔한 잠자리 종류다. 된장 잠자리는 동남아가 원래 서식지였지만 1시간에 100㎞이상을 가는 속도로 계절풍을 타고 바다를 건너온 것이다. 여름 잠자리의 가장 큰 특징은 물구나무서기다. 파충류처럼 체온 조절이 되지 않기 때문에 태양의 뜨거운 직사광선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잎 뒤로 숨어 지면과 수직이 되게 물구나무를 선다. 햇볕에 닿는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한 생존법이다. 잠자리 중 특히 좀잠자리는 여름 한 철 1㏊의 공간에서 무려 100g의 모기를 먹어 치운다고 한다. 잠자리가 모기를 잡아 먹는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그 양이 놀랍다. 벌써 코스모스가 피었나 했더니 잠자리들이 날아 다닌다. 네 날개로 날아다니는 잠자리는 사람들에게는 물론 축생들에게도 반가운 손님이다. 연약한 듯 보이는 잠자리가 모기의 천적이라니 자연의 섭리가 신비롭다./임병호 논설위원
우유와 모유의 차이는? 모유엔 특수 항균 성분이 들어있다는 모유 우월론을 위한 질문이 아니다. 그 정답은 ‘모유는(우유병보다) 용기가 더 아름답다’는 난센스 퀴즈다. 전에 한동안 유행한 우스갯 소리다. 한국전쟁 때 관능적 여배우로 유명했던 마릴린 먼로가 미군 장병들을 위문하기 위해 온 일이 있다. 그녀는 미군 병영 가는 곳마다 가슴 깊이 드러낸 옷 차림 속으로 드러나 보이는 수박통만한 유방을 흔들어 대며 두 손 들어 백치미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이곤 했다. 장병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하였다. 그녀의 위문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여성의 유방은 남성에게 이처럼 기호와 선망의 대상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유방이 커서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유방이 크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유방은 몸과 조화를 이룬 균형미의 하나에 속하는 한 부분일 뿐이다. 근래 유방과 관련한 성형외과 보도는 충격이다. 유방을 1cm 더 키우면 얼마나 더 커지는 걸까. 이로도 모자라 2cm에서 요즘은 4cm의 확대수술 요구가 보통이라고 한다. 유방 전방위를 4cm나 키우면 그야말로 가슴이 온통 유방 뿐인 것이다. 아담한 유방에서 무작정 무지무지하게 큰 유방만을 요구하는 유방 지상주의 선호는 착각이다. 유방이 커서 나쁠 건 없지만 유방의 크기가 결코 행복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행복 중 이성간의 교합을 큰 행복의 하나로 삼는다면 거기엔 유방과 비교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특히 이 물질을 넣어 키운 유방, 가령 반듯하게 누워 자연 유방 같으면 어느 정도 펑퍼짐하게 퍼질 유방이 거의 그대로 솟아있는 인공유방은 이내 싫증을 느끼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자연미를 압도하는 인공미는 없다. 설사, 당장은 눈을 속일지라도 속인 그 눈에 이윽고 혐오감을 갖게하는 것이 인공미다. 성형 의학계에서는 이물질을 혼입하는 유방 확대 시술에 부작용은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정설에도 이변은 있다. 나이 좀 들어 인공유방이 자연유방보다 못하는 후유증이 없다할 순 없다. 유방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사랑의 실체다. /임양은 주필
‘죽은 이에 대한 조문은 아직 목숨을 지니고 있는 산 자의 위안’이라고 보는 프로이트 심리학의 정신분석이 있다. 인간은 평소엔 이웃의 어떤 불행을 외면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으면 그 때 가서 갑자기 인도주의자가 되는 정서적 모순을 보이는 수가 있다. 싱가포르에서 쌍둥이 분리수술을 받다가 숨진 샴이라고 불리운 자매의 장례식을 치른 지난 8일, 그의 고향 피루자바드 주민들은 애도의 물결을 이루는 등 온 이란 국민들이 비탄을 금치못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옆머리가 맞붙은 채 태어나 29년을 그대로 살다가 성공률이 희박한 모험을 무릅쓴 수술 끝에 막상 분리는 됐으나 이내 숨지고 만 샴 쌍둥이 아버지는 “신의 뜻은 더 나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라는 것이었다”며 흐느꼈다고 한다. 저승에서나마 떨어져 평화롭게 잠들기를 바라는 2만여 조문 행렬이 장지까지 3km나 이어진 것은 그 어떤 거인의 장례보다 더 장관이었다. 성공률이 보다 훨씬 좋았을 어린 시절에 수술을 도와줄 생각은 못했던 군중들이 비록 뒤늦게 나마 깊은 애도를 금치못한 것은 그래도 고귀한 인도주의 정신이긴 하다. 기자와 변호사를 꿈꾼 샴 쌍둥이 자매는 수술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수술이 성공해도 우리는 아주 떨어져 살지 않을 것”이라며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던 게 이승의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말았다. 우리의 주변에도 비슷한 사례는 많다. 샴 쌍둥이 같진 않아도 인술을 애타게 기다리는 불우한 이웃 어린이들이 많이 있다. 어제 날짜 본지에 실린 ‘본사-인제대-도공동모금회 지원 심장병 첫 수술, 이젠 뛰면서 놀 수 있어요’제하의 기사에 실린 오현지양(8)의 밝은 모습이 너무도 대견하다. 이런 어린이들의 시술은 나라가 해주어야 하겠지만 나라가 못하면 우리 사회가 나서서라도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참다운 공동체 사회다. 이웃사랑, 특히 희귀병으로 신음하는 불우 어린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보다 확산되면 좋겠다./임양은 주필
어느 기구의 편제를 늘리거나 직급을 올리려면 총무처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재정경제기획원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총무처는 국가 기구 총괄 부처이고 재정경제기획원은 예산 조치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총무처 기능을 행정자치부가 맡고 재정경제부가 전 재정경제기획원 업무를 맡고 있다. 기이한 것은 청와대는 이같은 제약에서 자유로워 보인다는 점이다. 기구 하나 늘리고 직급 하나 올리려면 이리 저리 걸리는 데가 많은 여느 부처나 기관과는 달리 청와대는 제멋대로 늘리고 입맛대로 올리는 것 같다. 전 정권에서 일어난 굿모닝시티 부정의 청와대 경찰 막후 장본인인 박 아무개 경감이 누구의 실세 덕에 초고속 승진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현 정권 또한 무더기 승진의 산실이 청와대인 듯 싶다. 청와대가 이런 식으로 권력의 최고 기관으로 여긴다면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 됐다. 청와대는 최근 대변인과 민정2비서관·법무비서관을 2급에서 1급으로, 제도개선2비서관은 3급에서 2급으로, 이밖에 정무수석실과 정책조정비서관실 행정관 4명을 4급에서 3급으로 올렸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초 경력 산입이 안됐다거나 정원 조정상 직급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관료사회의 눈총받기가 딱 십상이다. 공무원이 급수 하나 올라 가려면 4년 걸려도 어림없는 마당에 불과 임용 4개월만에 무더기로 승진하는 것은 국민들이 보기에도 역시 청와대 밖에 없어 보인다. 직급보다 직능 중심의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못난 아제비 항렬만 높다’는 식으로 직급만 올린다고 일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기관보다 승진 인사에 교본적 모범을 보여야 할 청와대가 먼저 이처럼 방만해서는 인사 기강이 바로 서기 어렵다. 이래서 ‘청와대는 특진 해방구’란 소릴 듣는 것 같다. 공직개혁은 인사 난맥상의 시정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청와대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임양은 주필
국선변호인 제도는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 중 돈이 없어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 법원이 대신 변호인을 선임해주는 제도다. 국선변호료는 1심당 기본액수가 12만원이며 변호인의 활동정도에 따라 법원이 액수를 추가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지만 대부분 50만원선을 넘지 않고 있다. 건당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이나 하는 일반 사건과는 달리 변호료가 턱없이 낮다. 이런 이유로 일부 국선변호인들은 사건을 배당 받으면 준비서면만 낸 채 적극적인 변론에 나서지 않거나 선처를 바란다는 식의 형식적 변론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그나마 지난해 서울지법 국선변호인으로 지정된 244명의 변호사 중 16%인 39명은 실제로 단 한 건의 사건도 수임하지 않는 등 공인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변호사들은 국선변호 경력을 위해 국선변호인 신청을 해놓고 실제로는 바쁘다는 핑계로 사건을 맡으려 하지 않아 공판기일이 연기되고, 피고인들의 구속일수가 크게 늘어나는 등의 부작용도 빚어지고 있다. 이런 일로 서울지방법은 국선변호의 내실화를 위해 불성실한 국선변호인을 교체해 달라는 판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해말 선임한 255명의 국선변호인 예정자 중 28명을 교체한 바 있다. 국선변호인들의 변론이 사설변호인에 비해 미흡하고 피고인 접견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은 물론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는 사건에 대해서도 반대 증거를 수집하는 노력이 크게 부족하다고 판사들은 말한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국선변호인들의 적극적인 자세도 중요하지만 국선변호료를 최소한 사설변호료의 절반 수준으로 대폭 인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런데도 변호사는 “돈이 안돼”고, 피고인은 “도움 안돼”는 게 국선변호인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국선변호제는 ‘건성’변호제”라는 말이 나돌겠는가. 무성의한 일부 국선변호인 때문에 대다수의 성실한 변호인들이 비난 받는 것은 유감스러운 노릇이다. ‘무료변호’하는 변호사들이 더욱 훌륭해 보이는 이유는 건성변호인과 대조되기 때문이다./임병호 논설위원
한국 현대시의 대표적 참여시인으로 손꼽히는 김수영(金洙暎·1921∼1968) 시인은 1968년 6월 15일 늦은 밤, 문단의 지인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뒤 귀가하던 중 갑자기 덮친 버스에 치였다. 이튿날 오전 9시쯤 병원에서 숨졌는데 그의 나이 47세 때 였다. 시인 김수영에게 4·19는 분기점이었다. 모더니즘으로 출발해 설움·비애 등의 소시민적 정서를 표현하던 시(詩)세계가 4·19를 전후해 현실 참여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좌절과 미완이었지만 김수영에게 4·19는 언제나 꺼지지 않는 횃불이었다. 분단 상황도 지울 수 없는 아픔이었다. 김수영 자신이 6·25 때 의용군으로 끌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풀려 났었다. 황혼 무렵이면 발걸음이 명동의 전주집이나 은성 부근을 서성거렸지만 그는 언제나 원고료를 꼬박꼬박 집에 가져간 철저한 생활인이기도 했다. 양계로 가족을 부양할 때의 일화는 문단에 널리 회자됐다. 최근 김수영의 초기 시 ‘아침의 유혹(誘惑)’이 새롭게 공개됐다. 민음사가 ‘김수영 전집’의 개정판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시인의 여동생인 김수명씨의 작업 노트에 기록된 메모를 근거로 1949년 4월 1일자 ‘자유신문’에 게재된 ‘아침의 유혹’을 찾아냈다. “나는 발가벗은 아내의 목을 끌어안았다/산림과 시간이 오는 것이다/서울역에는 화환이 처음 생기고/나는 추수하고 돌아오는/백부를 기다렸다/그래 도무지 모-두가 미칠 것만 같았다/무지무지한 갱부는/나에게 글을 가르쳤다/그것은 천자문이 되는지도/나는 모르고 있었다/스푼과 성냥을 들고/여관에서 나는 나왔다/물속 모래알처럼/소박한 습성은 나의 아내의/밑소리부터 시작되었다/어느 교과서에도 질투의 ○○은 무수하다/먼 시간을 두고 물속을 흘러온 흰모래처럼 그들은 온다/U·N위원단이 매일 오는 것이다/화환이 화환이 서울역에서 날아온다/모자 쓴 청년이여 유혹이여/아침의 유혹이여” 이 시는 일부 훼손돼 알아보기 힘든 글자도 있지만 시인의 정열과 한국 현대시의 모더니즘의 특성이 나타난다. 광복 직후 한국 현대사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어‘시는 시대의 거울’이라는 말이 거듭 실감난다. /임병호 논설위원
초등학교엔 도서관이 없다. 도서관이 있어도 책이 없다. 그나마 있는 책도 한글맞춤법 개정 이전의 책이 전체 소장본의 절반을 웃돈다. 정부가 올해부터 시작한 ‘학교도서관 활성화 종합방안’ 대책이 무색하다. 학교도서관 소장도서 중 전집류가 보통 20%, 심하면 60%에 달할 만큼 다양성이 부족하다. 한 종류의 책이 수 십권씩 중복 소장된 경우도 많아 소장가치가 극히 떨어진다. 학교도서관 시설은 더욱 형편없다. 교실 한 칸 이하를 사용하는 경우가 31.5%에 이른다. 그것도 가장 꼭대기층이나 후미진 구석이다. 학생 1인당 장서수 5.5권, 연간 도서구입비는 3천500원에 불과하다. ‘도서관의 엄마’로 일컬어지는 사서 역시 태부족이다. 전국 1만여개 학교에 정식 사서는 153명에 그친다. 계약직 사서가 880명, 대부분 학부모 자원봉사자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해 8월 학교도서관 활성화 방안을 수립하고 오는 2007년까지 ‘좋은 학교도서관 만들기 4대 중점 과제’를 추진키로 했다. 2003년부터 5년간 매년 600억원씩을 투입해 약 6천개 학교에 혜택이 돌아가게 한다는 방침이다. 도서관 시설 확충, 장서 확대, 도서관 활용프로그램 강화, 민간협력체제를 구축한다는 계획도 들어 있다. 정부의 예산 지원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절실한 요소는 지역을 중심으로 한 학부모들의 자발적인 참여다. 선진국에 비해 공공도서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의 여건상 전국적인 학교도서관 네트워크는 이를 보충할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초·중등 1만2천여개, 특히 초등학교 도서관 5천개만이라도 잘 살려 내면 가깝고 친근한 지역도서관이 대거 신설되는 셈이다. 문제는 정부가 최근 학교도서관보다 전자책 산업 육성에 예산을 우선 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종이책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는 도서관이 우선이다. 당부하건대 교육인적자원부는 학교도서관 활성화 같은 좋은 일에 전념하라. 교단의 분쟁 얘기는 말만 나와도 식상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지금 유럽에서 콘서트 공연을 벌이고 있는 가수 질베르투 질(60), 그는 브라질의 문화부 장관이다. 연합은 장관 봉급으로는 그의 생활 유지가 안되어 지난 2일 한달 일정으로 런던·로마·파리·리옹·빈 등 대도시 콘서트 여행을 떠났다고 전했다. 질은 지난 1월 좌파 정권 출범시 입각할 때 음악활동을 보장받았기 때문에 이번 같은 장기 공연 일정이 가능했다고 한다. 10대에 처음엔 연주자로 음악활동을 시작하여 25세에 발표한 첫 앨범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1968년엔 군사 정부에 항거했던 민주화운동의 전력이 있다. 국내 장관들은 어떤 지 잘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증권 거래를 하는 장관들이 있었던 걸로 안다. 부업으로 하는 지 치부를 위해 하는 진 알수 없으나 보기에 모양새가 안좋은 것은 사실이다. 이를 못하게 해야 한다느니, 놔두어도 된다느니 해서 여러 말이 있었다. 장관은 국가 최고 정책기관인 국무회의의 구성 요인이 되는 국무위원이다. 정책 입안과 집행에 간여하는 국무위원이 증권 장사를 한다는 건 업무와 직·간접으로 연결된다. 장관은 증권사업에서 손 떼는 것이 마땅하다. 브라질의 장관 월급은 우리 돈으로 약 300여만원이다. 질 문화부 장관은 그 돈으로는 생활이 안된다며 장관직을 잠시 휴업하고 목하 본업인 가수로 열연 중인 것이다. 국내 장관 월급은 브라질 장관의 약 두배인 606만8천여원(연봉 7천282만원)이다. 참고로 대통령은 연봉 1억3천333만1천원이며, 국무총리는 1억351만2천원이다. 가수 현업인 질 브라질 문화부 장관을 말하다 보니 이창동 문화부 장관 생각이 떠 오른다. 이 장관 역시 영화감독이 본업이다. 이 장관에겐 영화감독 출신 장관이라기 보단 영화감독 겸업 장관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질 브라질 문화부 장관이 다른 방법으로 생활 유지비를 조달하지 않고 외국 공연을 나선 것은 도덕적 용기다. 그의 결벽성이 돋보인다. /임양은 주필
후한(後漢) 영제(AD 168-189년)때 매관매직이 성행하였다. 이 무렵 최열(崔烈)이란 금만가가 500만금으로 대신의 반열인 사도(司徒)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사람들은 동취(銅臭·돈냄새)가 난다며 그를 경원하였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 전하는 얘기다. “돈에 꼬리표가 붙었느냐?”고들 흔히 말하지만 아닌 게 아니라 꼬리표 붙은 돈도 있는 것 같다. 권 아무개 전 주택공사 사장이 꼬리표 붙은 돈으로 구속됐고, Y대학과 몇몇 정치인들이 꼬리표 붙은 돈 때문에 골머릴 앓는 것 같다. 굿모닝 시티 대표인 윤창열씨 하면, 오피스텔인가 주상 복합건물인가를 사기 분양한 사건의 장본인으로 유명하다. 이미 3천476억원을 입금한 피해자들이 3천여명에 이른다. 그중에는 ‘살아보겠다’고 피땀 모아 저축한 돈도 적잖다. 윤씨는 이런 돈으로 권 아무개에게 거액의 뇌물을 주고, Y대학에 5억원을 기부하고, 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 후원금으로 적잖은 돈을 선심 썼다. 제 돈이 아니라고 여기 저기에 생색 내가며 뿌린 돈은 이밖에도 많을 것 같다. 거액의 비자금도 조성했다. 봉이 김선달을 연상케 하지만 김선달은 어려운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고 오히려 도왔다. 일제 때 평양서 어느 큰 도둑이 경찰에 쫓기게 되자 택시를 타고 달리며 훔친 거금을 길거리에 다 뿌리고 잡힌 일이 있지만 그 도둑은 친일파 집을 털었었다. 굿모닝 시티 피해자들이 윤씨가 여기 저기에 기부한 돈은 장물이므로 피해 변상금으로 돌려 줄 것을 제기해 문제가 됐다. 법률적 검토는 당국이 판단하겠지만 사실적 판단에 비추어 ‘장물’이란 주장엔 상당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비록 뒤늦게 밝혀지긴 했으나 무고한 시민을 못살게 만든 돈 가운데서 학교 기부금으로 받아 쓰고, 정치인이 후원금으로 받아 썼다고 한다면 문제가 없지 않다. 기부금이나 후원금도 돈 냄새를 잘 살펴 꼬리표가 붙은 돈인지 아닌지를 헤아려야 할 세태가 됐다. /임양은 주필
프라하의 평창 석패 뒷소식이 개운치 않다. 현지 서포터로 갔던 평창 출신의 김용학 국회의원이 제기한 김운용 IOC위원의 처신은 오비이락일지 몰라도 문제가 없지 않다. “사실상 준비가 덜 됐다”는 말을 IOC위원들에게 흘리고 다녔다는 김의원의 주장을 김위원은 부인해 여기서 진위를 가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IOC부위원장 출마설이 2010년동계올림픽 개최지 투표 전에 벌써 나돈 것은 의문이다. 가령 본인의 뜻이 정 그게 아니라면 완강한 해명과 함께 개최지 득표에 혼신의 힘을 다 했어야 했다. 개최지와 IOC 부위원장 자리를 다 주는 지지표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IOC 부위원장 선거는 개최지 투표 이후인 마지막날 있었긴 해도, 김 위원이 이를 탐내어 들리는 말대로 “동계올림픽, 유치를 방해했다”는 것까진 몰라도 개최지 득표에 얼마나 최선을 다 했는지는 객관적 의문이 성립된다. 불과 3표 차이로 뜻을 이루지 못했고 보니 이런저런 아쉬움이 더 많다. 1차 투표(평창 51·밴쿠버 40·잘츠부르크 16)에서 107표의 과반수가 안나와 가진 2차 투표 끝에 53표 대 56표로 밴쿠버에 역전 당해 아깝게 놓친 프라하 유치열전, 이 이면에 2012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키 위한 유럽표가 이번에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북미권으로 몰아 준 것이라는 패인 분석 외에 나도는 설상가상의 반역설은 참으로 유감이다. 김위원은 이미 IOC 부위원장 자릴 한 차례 했으면서 하필이면 이번 총회에서 굳이 출마했던 것인지 안타깝다. 생각할 수록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훌륭했던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동계올림픽 유치전에 나서기 전까지는 사실상 세계적으로는 무명이었던 산골 평창, 프라하의 코리아 열풍은 실로 장하다. 밴쿠버 역시 1976년 유치에 실패하고도 좌절하지 않고 도전해 성공했다. 2014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재기가 기대된다. 그 땐 보다 국민적 단합과 성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임양은 주필
소문으로 끊임없이 나돌던 서예계의 ‘대필 비리 ’가 또 발생했다. 지난 1993년 서예대전 비리의 복사판이라는 점에서 더욱 착잡하다. 이번에 비리가 드러난 대한민국 서예대전과 대한민국 서예전람회는 사단법인 한국서예협회와 한국서가협회가 각각 주최하는 국내의 대표적인 서예공모전이다. 1982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가 없어진 뒤 매년 봄·가을로 주최돼온 이들 공모전은 전체 출품작품수의 20 %를 입선작으로 뽑고, 입선작의 10 % 내에서 특선을 뽑는다. 현재 서예는 다른 분야와는 달리 대학에 설치 학과가 거의 없고 서단에 등단하는 데도 공모전이 유일한 인증방식이다. 더구나 이들 공모전에서의 입상 실적에 따라 초대작가, 심사위원 등으로 신분상승은 물론 개인서실을 열 수 있다. 출품자가 심사위원의 제자로 들어가거나 심사위원의 작품을 고가로 매입하는 먹이사슬 관계가 근절되지 않는 큰 이유다. 아무리 그렇기로소니 공모전을 열면서 주최측 주요 인사가 돈을 받고 글씨를 대신 써주고 게다가 그 작품을 입상작으로 선정한다니 서예의 기본정신 파괴는 물론 ‘서예가를 팔고 사는’ 일탈행위 아닌가. 모두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는 욕을 그래서 먹는다. 이들은 또 출품작을 대필, 심사등을 하면서 입상작 수백여점의 표구 제작 소개료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특히 집행부와 친분이 있는 특정작가 중심으로 심사위원단을 구성했다니 입선자 명단에 들어가는 것은 불문가지다. 일부 출품자들이 심사위원으로 자주 선정되는 작가들을 미리 찾아가 그들의 작품을 사주거나 향응을 제공했는데 안되면 이상한 일이다. 지금 한국 서단에는 전국적 또는 지방적인 공모전이 상당수에 이른다. 문제는 이번 파문으로 인해 다른 서예공모전도 의혹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일부 서예가들의 제자 챙기기와 인맥 확장, 심사위원과 출품자의 결탁, 심사위원 위촉 및 심사가 투명하고 공개적이지 못하면 한국 서단의 오명은 씻겨지지 않는다. 서단의 뼈 아픈 자체정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한나라당이 국회 사상 처음으로 한국방송공사(KBS) 2002년도 결산 승인안을 부결시킨 것은 크게 두 가지를 생각케 한다. 한 가지는 KBS의 방만한 운영에 대한 질책이다. 긴급시 사용돼야 할 예비비 112억원을 직원 성과급으로 나눠준 사실이다. 1인당 연간 부가가치 생산액도 경쟁사의 50~60% 수준에 불과했다. 비슷한 사례를 해마다 지적했으나 시정되지 않았다. 지난해 채택한 시정요구서는 예비비의 적절한 사용 등 예산 집행의 적정성을 기록할 것 퇴직급여충당금 및 인건비성 지출의 감소를 통해 재무구조 건전성을 확보할 것 수입 구조 개선을 통해 경영 합리화 방안을 마련할 것 등 이었다. 하지만 KBS는 국회의 잇따른 시정 조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인건비성경비 지급에 예비비를 사용했다. 시민단체와 학계 등에서도 “지금까지 문화관광위원회에서 지적한 KBS의 문제점이 결산안 통과 이후 시정된 적이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다른 한 가지는 한나라당이 본격적으로 KBS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라는 시각이다. 국회 문광위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된 결산안을 한나라당이 본회의에서 부결시킨 가장 큰 이유는 감정적이고 무책임한 정치공세라는 것이다. 정연주 사장에 대한 불편한 심기와 최근의 프로그램 개편 내용 등에 대한 불만때문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특히 대선패배의 원인이 방송에 있다고 보고 지난봄 방송위원 선임 때 언론·시민단체 쪽의 ‘정략적’이라는 비판을 무릅쓰면서까지 지상파 3사 출신을 고루 내놓은 한나라당 쪽의 방송관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언론노조·한국방송·문화방송 노조, 한국방송 PD협회, 민주언론운동 시민연합 등 언론·시민단체들이 일제히 성명을 낼만 하다. “한나라당이 방송 길들이기에 나선 가운데 이번 건은 본때 보이기 성격이 짙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회가 요구한 시정사항을 이행치 않은 KBS에도 문제가 있지만 국회의원 수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의 한나라당의 발상 역시 온당치 못하다. 한나라당은 원내 제1당이다.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잊어서는 안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서울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 골짜기에서 시작하여 종로·중구를 경계로 흘러 중랑천을 통해 한강으로 유입하는 청계천을 청풍계천, 옥류동천, 누각동천이라고도 했다. 자연하천 그대로였던 옛적엔 여름철이면 홍수가 심하곤 했던 것을 조선조 태종11년(1411년)의 수로공사에 이어 18세기 중엽 영조때 준설과 함께 대대적인 석축공사를 하였다. 1950년대의 청계천은 한국전쟁 직후 하천 둑의 길가에서 하천쪽으로 말뚝을 세워 올린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은 채 즐비하여 무허가 주점 등이 성업을 이루기도 했다. 1958년 복개가 시작하여 1961년 완공된 복개공사로 폭 50m의 청계대로가 생기면서, 광교 입구~청계8가 사이에 건설된 청계고가도로가 이젠 또 한 시대 속으로 사라진다. 어제 시작된 청계고가도로가 헐리면서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공사가 본격화 했다. 청계천 복원은 곧 자연의 복원이다. 서울 도심의 거대한 하수구로 변질된 청계천이 복개의 부스럼 딱지를 떼어내면 당장은 흉물스럽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천 정화작업으로 옛 청계천 같은 맑은 물이 흐르게 되면 광교 수표교 관수교 오간수교 등 그 옛날 정취 높았던 자연친화의 청계천 주변 경관이 재생할 것을 기대해 본다. 기왕 어렵고 어려운 청계천 복원에 나섰으면 아낙네들이 빨래하고 하동들이 멱을 감던 그같은 청계천으로 재현해야 보람이 있다. 청계천 복원을 말하다 보니 수원천 생각이 떠오른다. 광교산에서 발원된 수원천 또한 도심 복판을 가로 질러 흐른다. 영동시장 뒤 일부는 청계천처럼 복개도 하였다. 이 복개가 문제가 되어 교통소통을 위해 더 계속해 복개해야 한다느니, 이미 복개된 부분도 헐어 수원천을 살려야 한다느니 하여 한동안 논의가 분분하였다. 수원천 역시 전쟁 직후 판잣집이 즐비했던 게 어쩌면 청계천 전철을 빼 닮았는지 모른다. 건천화 해가는 수원천에 사시사철 맑은물이 가득히 흘러 고기가 뛰놀고 하동들이 멱 감을 수 있는 그런 수원천 복원을 상상해 본다. /임양은 주필
1960년대 후반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길거리 간판 가운데서 보고 이해가 안됐던 업종을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물었다. “임자! 헬스클럽이란 게 뭐 하는 데가?” “아! 그것 말입니까. 쉽게 말씀 드려서 뱃대지에 낀 기름을 빼는 곳입니다!” “뭐야?!” 박 대통령은 당장 없애도록 지시해 한동안 헬스클럽이 간판을 내리는 수난을 당한 적이 있다. 그 무렵까지만 해도 북측은 천리마운동으로 우리보다 잘 살았고, 우리는 춘궁기란 것을 몰아 냈을까 말까하던 때여서 배에 낀 기름을 돈 주고 빼는 족속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호사스럽게 들렸던 것이다. 또 대부분의 국민들이 실제로 잘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시절이어서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배에 기름이 끼도록 잘 먹일까 하는 생각으로 골몰하던 차에 들은 헬스클럽은 마치 이방지대 같은 거부감을 주었던 것 같다고 이 비화는 전한다. 그래서 환경문제는 환경따위 쯤으로 제쳐두고 고도성장을 지향하였고, 달러만 되면 지금의 중국처럼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내다 팔았던 수출 지상주의로 나갔던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이젠 생산보다 환경이 우선시 되고 노동집약형 물품은 되레 수입하여 쓰는 형편이 됐다. 이만이 아니다. 식생활에도 다이어트가 보편화되어 ‘살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헬스클럽이 아니고 병원에서 수술까지 해가며 살을 제거하는 세상이다. 이런 가운데 느끼는 것은 인간의 절대적 빈곤보다 상대적 빈곤이 더 무섭다는 사실이다. 누구랄 것 없이 각계 각층이 불평 불만으로 다투어 제목소리를 높이는 집단이기의 세태가 되었다. 불평 불만은 어느 시대고 없을 수 없다. 건전한 불평 불만은 발전의 견인차다. 그러나 공연한 불평 불만은 사회를 혼란케 한다. 밥 술이나 먹게 되어서 생기는 상대적 갈등의 불평 불만일 것 같으면, 밥 술도 제대로 못먹던 불과 수 십년전 시절의 일을 생각해 보는 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임양은 주필
한국시간으로 지난 27일 프랑스 올림피크 리웅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03년 컨페더레이션스컵 준결승전서 후반 26분 그라운드를 뛰다가 돌연사한 카메룬의 ‘검은사자’ 마르크 비비앵 푀(28)의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이날 카메룬은 콜럼비아를 1-0으로 제쳤으나 팀은 물론이고 카메룬 나라 안이 온통 슬픔에 젖었다. 푀는 미드필드에서 몸이나 볼 싸움 없이 게임 중 혼자 갑자기 무릎을 꿇고는 허물어지듯 앞으로 쓰러졌다. 하이먼은 1980년대 초 세계 여자배구에서 당시 최강이던 중국의 랑평과 쌍벽을 이룬 거포였다. 그녀의 드높은 서전트 점프는 마치 스프링이 튀는 것 같았고 순발력은 표범같아 작렬하듯이 내리치는 왼쪽 고공 강타는 그야말로 코트의 폭탄이었다. 하이먼 역시 심장마비로 경기장에서 돌연사 한 것이 1985년 일본 NHK배 게임에서다. 잠시 교체 멤버를 들여보내 놓고 벤치에 앉아 있던 그녀는 갑자기 윗 몸을 옆자리의 동료선수에 기대면서 그대로 숨졌다. 조이너는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 육상 1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서 금메달을 거머 쥐었던 서울올림픽의 히로인이다. 달리기 뿐만이 아니고 미모와 교양을 겸비해 스포츠계에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은퇴후 고향에서 후진 양성과 생활스포츠를 지도하다가 역시 심장마비로 돌연사한 게 1998년이던가 그랬다. 하이먼이나 조이너가 다 푀와 마찬가지로 흑인 선수였던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물론 흑인이 심장마비의 치사율이 높다는 근거는 없지만 우연치고는 기이하다. 스포츠의 심장마비는 엘리트 선수층만이 아니고 생활스포츠에서도 간단없이 위협받는 무서운 돌연사다. 남자배구의 강두태가 대전서 경기 중에, 또 성격배우 허장강이 서울동대문운동장서 축구게임 중에 심장마비로 아깝게 숨졌다. 심장마비는 스포츠와 상관없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스포츠의 복병인 것은 사실이다. 이의 예방이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스포츠 의학의 새로운 연구과제가 될만하다. /임양은 주필
일요일이라는 이유로 약국의 문이 굳게 닫혀 있을 때 갑자기 병이 나거나 다치면 큰 낭패를 당한다. 동네 의원도 일요일에는 거의 진료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연고 한두번 바르면 나을 수 있는 크지 않은 상처도 종합병원 응급실로 찾아가야 한다. 이런 불편을 없애기 위해 4개 약국 중 한 곳을 당번으로 정해 일요일을 포함한 공휴일에도 문을 열도록 한 ‘휴일 당번약국제’가 있다고 하지만 유명무실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권유로 대한약사회가 시행해 온 휴일 당번약국제가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은 의약분업 실시와 주5일 근무제 탓이다. 의약분업 실시 후 약국에서 단독으로 판매할 수 있는 일반 의약품의 비율이 30%이하로 낮아지면서 병·의원이 쉬는 휴일에는 수입이 적기 때문에 약사들이 문을 열 의욕을 못느낀다. 주5일 근무제 확산은 더욱 휴일 당번약국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주5일 근무제 세상에 살려면 각 가정이 응급처치할 수 있는 상비약을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젊은 약사들의 경우 주말에는 무조건 문을 닫겠다는 생각이다. 몇푼 안되는 수입을 보고 주말을 허비할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이처럼 약사들이 당번약국제를 외면함에 따라 약사회나 지자체, 보건소 등의 홈페이지에 당번 약국을 게재하는 일도 소홀해졌다. 보건복지부 등 행정 당국이 약사회 간부들을 통해 당번약국제 이행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래도 잘 안된다. 그렇다면 보완책으로 슈퍼마켓에서도 간단한 약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아니면 시민 건강 확보 차원에서 정부가 무엇인가 확실한 대책을 세워야지 열어 놓지도 않는 당번약국제로는 안된다. 권유사항, 자율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 행정사항이 된다면 당번제약국이 운영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주5일 근무제로 놀기만 좋아하는 이런 사회에서는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아야 하는 게 가장 상책이다. 어쩌다 일요일에 열려 있는 약국이 눈에 띄면 급하게 약 살 일이 없는 데도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임병호 논설위원
문신(文身)은 기원전 이집트 미라에서 발견될 만큼 유래가 깊다. 신(神)을 상징하는 문자를 몸에 새겨 신의 힘을 빌리고자 했었다. 하지만 문신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부정적 인식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일례로 조선시대에는 도주하다 붙잡힌 노비에게 문신을 새겼다는 기록이 있다. 문신의 왕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도 도쿠가와 막부 시절에 “민중의 도덕에 해롭다”는 이유로 문신을 금지시켰다. 현대에는 남성들이 집단 소속감을 표현하거나 용맹을 과시하기 위해 몸에 문신을 한다. 군 현역병 입대를 피하기 위해 온몸에 문신을 하는 젊은이들도 있는데 이들은 병역법을 바꿔서라도 오히려 먼저 군대에 보내야 한다. 여성들도 문신을 한다. 눈썹을 짙게 하거나 아이라인을 그리는 것이 대표적인 여성문신이다. 여성문신은 잘못 새겨지거나 유행이 바뀔 때 수정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요즘은 ‘반영구 문신 화장술’이 유행을 타고 있다. 반영구 문신 화장은 눈썹과 입술 등 윤곽을 뚜렷하게 해주는 일종의 미용문신이다. 이를테면 “눈썹을 숯처럼, 입술은 붉고 도톰하게”다. 미용문신은 영원히 남는 기존 방식과 달리 3∼5년 정도 지속되다가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눈썹과 속눈썹은 20만∼50만원, 입술라인은 50만원, 입술전체는 80만∼100만원씩에 미용 업계에서 광범위하게 시술중이다. 그러나 무자격자들이 시술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현행법상 문신은 의료행위로 분류돼 의사자격증 없이 문신시술을 하다 적발되면 의료법 등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비의료인의 시술로 인한 부작용은 감염증과 전염병, 전신질환을 유발한다. 문신에 이용된 먹물이나 잉크로 인해 생기는 알레르기와 같은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소독이 제대로 되지 않은 바늘을 사용하면 세균감염부터 간염, 에이즈까지 일으킬 우려가 있다. 조금 더 예뻐지려다 잘못 되면 더 흉하게 되는 것이 문신 화장이다. 남성들은 인공미인보다 자연여성을 훨씬 좋아한다. 거울 앞에서 정성껏 화장하는 여성은 보기에 좋다. /임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