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도(馮道)

“입은 화를 불러 들이는 문이요(口是禍之門) 혀는 몸을 베는 칼이로다.(舌是斬身刀)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閉口深藏舌)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安身處處宇)” 전당시(全唐詩)에 풍도(馮道)가 지었다고 전하는 시(詩)다. 중국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에 다섯 왕조에서 8개 성씨의 군주 11명을 모셨다는 풍도가 난세를 살아가면서 보여준 처세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풍도는 ‘황소(黃巢)의 난’이 대륙을 휩쓸던 882년 중국 허베이에서 태어났다. 20대 후반에 유주절도사 유수광의 휘하에 들어가면서 관리를 시작했다. 당의 변경인 유주는 유달리 하극상 등에 의해 절도사가 쉼없이 바뀌는 지역이었다. 그가 처음 모신 유수광도 역시 이전의 주군을 몰아내고 절도사에 오른 아버지 유인공을 강제로 밀어내고 절도사가 된 인물이었다. 풍도의 처음이자 마지막 좌절은 대연(大燕)을 세우고 황제에 오른 유수광의 정벌에 정면으로 반대하다가 옥에 갇히면서 찾아왔다. 군벌의 쿠데타가 생활화된 유주에서의 하급관리 경험은 그의 입을 평생 다물게 했다. 그는 환관 장승업의 추천으로 진왕 이존욱의 휘하에 관리로 재등용되면서 출세가도를 달렸다. 47세인 929년 후당(後唐)의 재상이 된 이래 23년간 약간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권력의 정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후당 명종의 사위 석경당이 거란의 도움으로 후진(後晉)을 건국했을 때도 풍도는 여전히 재상이었다. 65세인 947년엔 아예 거란의 신하가 됐다. 풍도에 대한 평가는 냉혹했다. 희대의 간신이자 변절자라고 낙인찍혔다. 절묘한 줄타기의 달인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올 수록 평가가 바뀌었다. 왕조 교체 때 마다 백성들의 대참사가 적었던 것은 그의 ‘처세’덕이라고 했다. 풍도가 관계에서 물러난 뒤 자서전에서 자신을 “나라의 은혜를 받으면서 가법을 따랐고”라거나 “나라에 충성을”이라고 자평했다. 섬긴 대상에 군주라는 말은 없다. 행정의 달인이라는 고건 국무총리는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을까. 누구를 모셨느냐 보다 무엇을 위해 일했느냐에 달려 있다. 고건 총리도 이제 전면에 나서야 할 때다. /임병호 논설위원

100억원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적 임꺽정은 이렇게 말하였다. “남는데서 모자란데로 가는 재물은 도둑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는 조선조 명종시대 관리들의 가렴주구에 대한 저항으로 가장 적절한 말이었다. 영국 중세기의 전설적 의적 로빈 후드는 또 그랬다. “배고픈 자에게 필요한 것엔 왕의 말이 필요 없다”고 했다. 이 또한 백성에 대한 가렴주구의 폐해를 잘 나타낸 말이다. 도대체 100억원이면 얼마나 한 돈일까, 만원짜리 한장을 들고 발발 떠는 서민들은 평생 가야 만져보긴 고사하고 상상도 못할 돈이다. 이 돈을 강도질 당하고도 꼼짝 달싹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박지원씨가 현대로부터 받은 150억원의 돈 세탁을 의뢰받은 그의 김 아무개 운전사 사주를 받은 강도들에게 100억원을 강도질 당한것은 이미 아는 일이다. 문제는 그러고도 경찰이 발표하지 못한데 있고 경찰이 발표하지 못한 것은 당시 청와대의 압력에 기인한데 있다. 100억원대의 강도라면 아마 강력범 사상 최고의 금액일 것이다. 이러한 희대의 강도 발생을 경찰이 누설하지 않도록 한 청와대 압력 또한 돈이 떳떳하지 못한데 기인한 것이라면 그같은 압력 역시 떳떳하지 못할 건 분명하다. 이는 남북관계의 일을 떠나 정권 실세의 도덕성을 가늠하기에 충분한 부정 부패다. 어쩌다가 정권마다 세상마다 왜 이지경으로 타락해 버렸는 지 실로 국민이 불행하다. 정녕, 작금의 세태가 그 옛날 임꺽정이나 로빈 후드가 민중의 영웅이 됐을 정도로 타락했다고는 믿고싶지 않다. 그런데도 그렇다. 강도질 해도 싸다고 보는 눈먼 돈 100억원이 있었을 만큼 요지경 속 같은 일이 실재한 것은 매우 가슴 아프다. 한푼 두푼, 피땀 흘려 번 돈을 저축해가며 알뜰하게 사는 민중을 맥 빠지게 만드는 권력층의 이런 몰염치가 정의의 이름으로 추방되는 국가사회가 되어야 한다./임양은 주필

권력의 속성

그토록 위세가 당당했던 그가 난치병으로 신음하는 병상의 몸이 됐다. 자신이 죽거든 태극기로 관을 덮어 달라고 했다.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 달라고도 했다. 불과 2년 전이다. 국세청장으로 신문개혁의 세무조사 칼날을 종횡무진으로 휘두르던 때였다. 언론사라고 세금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문제는 개혁을 빙자한 언론 길 들이기 방편으로 전가의 보도를 남용한 데 있다. 그 공로로 건설교통부 장관을 제수받았으나 강남 ‘가족타운’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말썽이 되자 이내 그만 두었다. 2001년10월 일본으로 슬그머니 출국한 뒤에도 김홍업씨 비리 관련, 사채업자 세금감면 등 여러 권력형 비리 의혹이 제기됐다. 그동안 캐나다와 미국에서 신병을 치료하다가 지난 3월 역시 몰래 입국한 사실이 최근에 드러나 검찰수사 여부가 주목되던 중 ‘수사 검토’라는 강금실 법무부장관의 긍정적 시사가 나왔다. 세월은 하수상 하여도 강남의 부동산 가격은 여전히 오르고 올라 ‘가족타운’의 땅값만도 800억원대라지만 암으로 근육이 마비되어 가는 그에게 재산이 뭣이란 말인가. 이로도 모자라 법정에 서야 할 판이니 명예도 공허하게 됐다. 인간적으로야 난치병이 낫기를 바라지만 벼슬 자리를 등에 업고 저지른 갖가지 비리에 죄값을 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감히 태극기와 애국가를 입에 담았다는 사실이 실로 황당하다. 정권 방어의 편법적 수단으로 정권의 나팔수 노릇에 충실했던 안정남씨, 그의 비참한 말로를 보면서 도대체 권력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자고로 영원한 권력자는 없다. 권력을 놓을 때 홀가분한 마음을 갖는 이는 성공의 보람을 갖고, 권력을 놓을 때 허망스런 마음을 갖는 이는 실패의 죄업을 받는다. 안씨 뿐만이 아니다. 지난 정권만도 아니다. 이 정권에서 득세하고 있는 권력자들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권력은 잘 쓰면 선약이지만 잘못쓰면 독약이다./임양은 주필

떡고물론

제3공화국 시절 박정희 대통령 그늘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이가 있었다. 그의 말 가운데 당시 유명했던 말이 있다. “떡을 만지다 보면 떡 고물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 무렵 무슨 의혹사건이 있었던 차에 그같은 말이 나왔다. 대통령 특사로 평양을 비밀리에 방문, 7·4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 내기도 했던 그는 지금 수십년째 조용히 재야 생활을 하고 있다. ‘떡 고물이 떨어진다’는 건 이를 테면 절로 생긴다는 것으로 떡을 베어먹지 않고 고물만 챙기는 것은 굳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해석인 것이다.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대북송금 관련 특검수사를 보면서 정몽준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지시를 받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으로부터 박 전 장관이 150억원을 받았다는 혐의 사실에 대해 예의 그같은 떡고물론이 생각난다. 현대의 금강산사업 등 대북사업 전반에 관한 협조 등 명목으로 건네진 이 돈 외에도 250억원의 추가수수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박 전 장관은 물론 완강히 부인하지만 혐의사실 대로라면 대북 송금의 떡 덩어리가 워낙 엄청나게 큰 것이어서 고물도 그토록 많았던 모양이다. 대북송금이야 정권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하여도 이 과정에서 비자금이든 사리 사욕이었든 고물을 챙긴 것은 그 돈을 다 박 전 장관이 독식한 게 아니더라도 지탄을 면할 수가 없다. ‘떡고물론’은 생각해 보면 부정적 명언으로 공직자의 잘 못된 도덕상을 잘 나타낸다고 보아진다. 높은 자리의 공직자만이 아니다. 권력을 행사하는 모든 공직자가 다 경계 삼아야할 말이다. 고물을 챙기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기만이다. 떡고물도 결국 떡이다. 남에게 뇌물로 받아먹지 않고 예산에서 빼먹는 떡고물도 있다. 예산 떡고물은 단 한 톨의 고물일 지라도 다 국민의 세금이다. 떡고물을 탐내는 공직자들은 직위가 높고 낮건 간에 지금도 무척 많을 것 같다. /임양은 주필

'별 헤는 밤'

일제는 1939년 11월30일 한민족의 ‘황민화(皇民化)’를 촉진하기 위해 창씨개명(創氏改名)을 내렸다. 그리고 이듬해 2월1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응한 가구는 6개월동안 7%에 불과했다. 다급해진 조선총독부는 우리나라에 갖가지 불이익을 줘 그후 한달동안 79.3%로 끌어 올렸다. 창씨를 하지 않는 호주는 노무징용에 우선 끌려 갔고 그 자녀는 학교 입학을 못하게 했다. 식량배급도 하지 않았으며 취업까지 막았다. 행정 민원서류도 뗄 수 없었고 우편 배달도 하지 못하게 했다.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 저항시인 윤동주(1917~1945)는 1942년 1월29일 평소동주(平沼東柱)로 창씨개명한 이름을 그가 다니던 연희전문학교(연세대의 전신)에 냈다. 그는 졸업반이었고 일본 유학을 준비했다. 창씨개명의 수치를 감수하고 유학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본의 아니게 창씨개명을 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괴감이 컸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우에 / 내 이름자를 써보고, /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의 끝부분이다. 이 시엔 그의 창씨개명에 따른 수치감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름을 되찾을 날에 대한 간절한 믿음이 담겨 있다. 이 시를 지은 시기는 1941년 11월24일, 일제가 조선인의 창씨개명을 강요하던 때였다. 윤동주는 이름을 빼앗긴 삶을 벌레의 삶으로 비유했다. 결국 흙으로 덮어버린 이름은 일제에 온 몸으로 저항했던 윤동주 자신의 우리말 이름이었다. 지난 5월31일 도쿄(東京)대 강연에서 일본 자민당 정조회장 아소 다로가 “일제 때 창씨개명은 당시 조선인들이 성씨를 원해 이뤄진 것”이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이름은 존재의 상징이다. 이름의 상실은 곧 동물의 삶을 뜻한다. 아소 다로의 망언을 듣고 윤동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일관계는 이렇게 아직도 ‘가깝고도 먼 나라’다./임병호 논설위원

모병제

국방부가 사병 봉급을 내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15 ~ 20% 올려줄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국군사병 월급은 이병 1만7천400원, 일병 1만8천900원, 상병 2만900원, 병장 2만3천100원이다. 사병 봉급이 월평균 4만8천원 오른다고 하여 부러워 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 몸과 마음을 바쳐 조국을 지키는 대가로는 턱없이 적은 액수다. 군 전문기술인력은 특히 더 그렇다. 현재 30억원대의 전차를 육군 병사들이 조종하고 있다. 해군의 경우 고도의 숙련을 필요로 하는 잠수함 승조원은 전원 부사관 이상으로 구성돼 있다. 잠수함은 대당 1천900억~ 3천600억원에 이른다. 공군도 마찬가지다. 병사의 정비불량으로 나사 하나만 제대로 역할을 못해도 대당 1천억원짜리 F15K 전투기가 공중에서 고철로 변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해군(28개월)과 공군(30개월) 병사들이 기술군으로서 육군·해병대(26개월) 보다 근무기간이 더 긴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오는 10월 입대자부터 복무기간이 2개월 단축되면 첨단 무기 조작에 익숙해 지기도 전에 제대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지난 2월17일 포천 산정호수 인근 교량에서 전차 사고가 났을 때 국방부에 근무하는 한 중령이 “시가 3천만원짜리 승용차는 월급 200만원을 받는 운전자가 운전하는데 시가 30억원대의 전차를 월급 1만8천여원을 받는 일병이 조종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탄식했었다. 전차부대 지휘관들은 사병이 전차를 모는 현실에서 복무기간까지 단축되면 사고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세계의 경찰’이라는 미군 병력은 인구 2억9천만명에 138만명이다. 한국은 인구 4천700만명에 군인이 68만명이다. 이제는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할 때가 됐다. 군인 수를 줄이는 대신 첨단 전투장비와 전술로 무장시켜 정병강군(精兵强軍)을 갖춰야 한다. 특히 첨단무기를 잘 다룰 수 있기 위해서는 기술사관 제도나 유급지원병 제도를 우선 도입, 군 전문기술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30억원이 넘는 전차를 일병이 조종하는 것은 신중히 고려해야 할 일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비만 망상증

일반적으로 다이어트(diet)라고 굶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다이어트는 먹는다는 뜻이지 굶는다는 뜻이 아니다. 다이어트를 하는 경우는 주로 비만한 사람들이 체중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시도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체중 감소에는 굶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굶으면 건강을 크게 해칠 뿐 아니라 심지어 생명까지 잃게 된다. 굶으면 체중은 감소할 지 모르나 영양이 부실해져서 몸이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굶어서 체중을 줄이게 되면 체지방이 감소되기 보다 건강 유지에 꼭 필요한 성분들이 빠져 나가게 된다. 다이어트의 본래의 뜻은 체중 감소보다 몸매를 가꾸면서 생기있는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굶는 것은 다이어트의 참뜻에 위배된다. 소식하며 골고루 잘 먹고 반드시 운동을 해야 한다. 다이어트는 무엇보다 하루 세끼를 다 찾아 먹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의학자들은 말한다. 인체는 하루 세 끼를 섭취하도록 돼있기 때문에 끼니를 거르지 않는 것이 다이어트의 기본이다. 비만한 사람이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 한끼라도 굶으면 살이 더 쪄서 비만이 가중됨을 알아야 한다. 인체는 굶다가 먹고 혹은 먹다가 굶는 것을 반복하면 하루 세끼를 다 찾아 먹는 것보다 체중이 더 증가하는 생리구조를 갖고 있다.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잘 챙겨 먹으면 몸은 체내에 에너지를 과잉저장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굶으면 인체는 다음에 굶을 것에 대비해서 음식이 들어오면 먼저 체내에 저장부터 하게 된다. 이 저장되는 것이 바로 체지방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세끼를 다 먹어도 다이어트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루 세 끼를 먹는 이상으로 에너지를 많이 소비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이어트의 첩경이다. 정상체중인 여성 상당수가 스스로 비만이라고 믿는 비만 망상증은 심각한 문제다. 심지어 살을 빼려다 생명을 빼앗기는 ‘죽음의 다이어트’가 지구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으니 더욱 큰일이다. 여성의 지나친 다이어트는 남성의 시선, 자본의 논리, 미디어의 왜곡이 낳은 결과라는 분석도 있지만 대다수 남성들은 말라깽이 여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성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정당 보조금

얼마전 외지에서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 관상을 여러 종류의 개 얼굴과 비유했을 적에 이런 풍자가 있었다. 우리를 하필이면 인간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정치인과 왜 빗대느냐며 개들이 크게 분노하는 것이었다. 흔히 ‘개보다 못하다’고들 하지만 정말 개보다 못한 정치인들이 있는 것인지, 그들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봄직 하다. 중앙선관위가 법에 의해 정당에 국고보조금을 주는것은 깨끗한 정치를 하라는 것이다. 국민이 뼈 빠지게 벌어서 낸 세금이다. 그 돈엔 납세자의 가지가지 사연이 다 담겼다. 이런 국고보조금을 축의금 등 사적 용도로 쓰고 가짜 영수증을 붙여 엉뚱한데 유용하고, 용도외 인건비나 보험료 등으로 지출하는 등 4억9천300만원 가량을 흥청망청 쓰면서 막상 정책개발비 같은 투입은 소홀히 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선관위가 지난해 대선 때 각 정당에 준 선거·경상비 보조금에 대한 실사 결과가 이 모양이라는 것이다. 정당은 국고보조금을 받고 정치인은 후원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조달하면서도 뒷구멍으로 뇌물을 받기가 일쑤여서 무슨 사건이 터졌다 하면 돈 먹은 정치인들이 줄줄이 거명되곤 한다. 국민을 위해 과연 무엇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지, 다는 아니지만 대다수 정치인들의 반성이 절실한 때다. 계파 싸움으로 영일이 없고 권력의 눈치 놀음에만 급급한 가운데 일신의 영화만 좇는 정치인 아닌 정상배들이 수두룩하다. 중앙선관위는 또 올 2분기 정당 보조금으로 한나라당 29억9천700만원, 민주당 26억7천100만원, 자민련 5억2천404만원, 민국당 1억8천300만원, 민주노동당 1억3천300만원을 지급했다. 정말 이처럼 국민부담을 안겨줄 가치가 그들에게 있는 것인지, 어쩐지 자꾸 돈이 아깝다는 생각만 든다. 앞으로는 정당 보조금을 더 주고싶은 그런 풍토의 정치권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임양은 주필

공중도덕

오는 8월부턴 길거리에 침을 뱉거나 쓰레기 무단투기는 7점, 아파트 애완동물 사육엔 5점, 공공장소에 빨래를 걸면 3점의 벌점을 매긴다. 국내 얘기가 아니다. 외신이 전한 홍콩 정부의 ‘공중도덕 벌점제’다. 이리하여 16점을 넘기면 공공아파트 입주 자격을 박탈하는 등 주민생활에 불이익을 준다. 길에 침을 뱉거나 방뇨 등을 하는 위생사범에는 특히 벌점은 벌점대로 매기면서 종전에 9만6천원이든 벌금을 24만원으로 올렸다. 그러므로 홍콩시민이 길에 침을 세번 뱉다가 적발되면, 공공아파트에서 쫓겨나야 하고 외국인이 침 뱉다가 들키면 벌금 24만원을 내야한다. 홍콩 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사스(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 곤혹을 한바탕 치르고 나서 재발 방지를 위해 공중도덕 위반사범의 처벌을 강화한 것이다. 우리의 공중도덕은 더욱 엉망이다. 길에 침뱉는 것쯤은 약과다. 거리마다 담배 꽁초와 휴지가 널브러지고 골목마다 제멋대로 내다버린 쓰레기 더미가 수북하다. 공중전화기 같은 공공기물은 성한 게 드물만큼 망가뜨려지고 공중화장실은 불결하기 짝이 없다. 공중도덕의 실종 사례는 이외에도 허다하다. 홍콩의 ‘공중도덕 벌점제’는 형벌이 아닌 행정벌이다. 공중도덕은 원래 형벌이든 행정벌이든 강제적 규제력 없이 양심에 의해 발현이 기대되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이같은 기대가 불가능하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강제적 규제가 불가피할 수가 있다. 법률은 언제나 도덕률의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형명법술(刑名法術)을 주창한 순자(荀子)의 형명사상은 ‘법이 엄격하여야 사회가 밝다’고 하였다. 벌이 강한 게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지만 시세에 따라서는 생각해볼 만도 하다. 만약 국내에서 침을 길에 세번 뱉다가 적발되어 시영이나 주공 등 공공아파트에서 쫓겨나거나 입주권을 박탈 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사회의 공중도덕에 실로 깊은 연대적 반성이 있어야 할 것 같다./임양은 주필

만석공원에 이것을

만석공원의 저녁 나절은 약동의 시작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여든 시민들은 저마다 탁 트인 도심 속 공간에서 해방감을 즐긴다.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에 있는 11만여평의 만석공원은 레포츠 공원이기도 하다. 축구장 농구장 테니스장이 있는가 하면 묘기시설까지 갖춘 롤러 스케이트장이 있다. 배드민턴 전용체육관은 지금 짓고 있다. 자전거를 빌려 자전거 타기를 하는 청소년들도 많다. 노천무대가 있어 가끔은 산책객의 시선을 끄는 무료공연을 하기도 한다. 편의시설도 그런대로 잘 되어 있다. 옛 물왕저수지 호반따라 만든 1천315m의 일주도로는 좋은 달리기 코스이기도 하고 산책로이기도 하다. 수원시내엔 다른 도시보다 공원이 비교적 많다. 그 중에서도 만석공원은 첫손 꼽히는 호반의 공원이다. 이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만석공원을 찾으면 사람들 가운데서 사람 사는 맛을 느낀다. 다른 공원을 가령 정적(靜的)이라고 하면 만석공원은 동적(動的)인 공원이다. 모든 게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분위기인 것이 만석공원의 특성이다. 푸르고 드넓은 잔디 역시 일품이다.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무가 적다. 공원으로 조성된지 얼마 안된 탓도 있겠지만 나무 심기를 덜 했다. 공직자나 일반 시민이 기념 식수를 한 나무들이 더러 있다. 승진 기념으로 심었다고 돌에 새긴 팻말도 있고 부모 회갑을 기념해 심어 기증했다고 새긴 팻말도 보인다. 중단된 이런 기념식수운동을 재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물론 시에서도 더 많은 나무를 심어야 한다. 또 한가지는 호수에 생활하수가 흘러들어 혼탁해지고 있는 점이다. 호수를 곱게 간직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수원시의 대책이 시급하다. 나무가 많고 깨끗한 호수의 수질을 자랑할 수 있는 이런 만석공원이 되기를 많은 시민들은 바라고 있다./임양은 주필

대통령 일정

1981년 미국 레이건 대통령 저격사건은 대통령 일정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 발단이었다. 저격범 힝글리 호주머니에서 대통령 일정이 보도된 신문기사 스크랩이 발견됐고 이 보도를 토대로 암살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 이후 미 언론은 대통령 일정을 사전에 보도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여기고 있다. 그만큼 대통령 일정은 각별한 보안의식이 필요하다. 대통령 일정은 일반적으로 2급 비밀로 분류된다. 대통령 행사 자체가 갖는 경호비중이 큰 데다 자칫 특정 이익집단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행사장을 무력으로 점거하거나 민원해결을 위한 고강도 시위를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익집단의 실력행사가 다반사로 벌어지고 행정기관과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우리의 경우 더욱 일정 공개가 부담스럽다. 지난 6월2일 한 대중음식점에서 가진 노무현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과의 오찬회동은 사전에 음식점 상호와 장소 등이 보도됨에 따라 일부 시위대가 음식점 앞을 점유하고 구호를 외쳤다. 이에 앞서 5·18 광주 방문은 한총련 학생들이 대통령의 입장을 저지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방미 귀국 행사시에도 한총련 학생들의 시위로 차량 이동을 포기했었다. 민주화된 사회일수록 국가원수 경호는 개방적이다. 미국의 경우 레이건 사건 이전 1865년 링컨, 1901년 매킨리, 1921년 루스벨트, 1950년 트루먼, 1963년 케네디 피격 등 대통령 암살과 암살 미수사건이 잇따랐다. 우리나라에서도 1895년 명성황후 시해, 1949년 백범 김구 암살,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1983년 미얀마 아웅산 묘지에서 전두환 대통령 일행을 겨냥했던 북한 공작원들의 폭탄 테러, 19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가 있었다. 얼마 전 노대통령이 청와대 경내를 자동차로 이동하다 할머니 관람객으로부터 편지가 든 비닐 봉투를 건네 받았다. 애국가 가사 시작 부분을 바꿔달라는 주문이어서 해프닝으로 끝났으나 만일 노파를 가장한 테러범이었다면 큰일 날뻔 한 사건이었다. 청와대는 ‘청와대 브리핑’ 제72호를 통해 “탈(脫)권위를 이해해야 ‘열린 경호’가 보인다”고 했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경호차원에서 대통령 일정은 신중히 공개돼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건망증

건망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건망증은 단기기억장애 혹은 일시적인 뇌의 검색능력 장애다. 뇌세포의 손상으로 인한 치매와는 별개다. 사람의 기억능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때는 대략 10대말~20대 초반이다. 이후 뇌기능이 전반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하고 대략 25세를 전후로 하여 하루에 수백개의 뇌세포가 죽어가면서 본격적으로 기억력 저하가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노인성 건망증은 자연스러운 현상인 셈이다. 그렇다고 건망증은 꼭 노인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멀쩡한 젊은 사람에게도 나타난다. 특히 하루 하루 바쁘게 쫓기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건망증은 피하기 어려운 증세다. 일시적 기억장애의 원인은 복합한 환경에서 스트레스와 긴장감으로 뇌가 복잡할 때, 집착이 지속될 때, 격심한 몸의 피로, 수면부족, 과다한 음주 흡연 커피 복용 등으로 생긴다. 그중에서 주된 원인은 역시 스트레스다. 주부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건망증의 경우도 단순 반복되는 가정일로 집중력이 떨어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족중 혼자만 낙오돼 있다는 위기감 등의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이다. 공부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스트레스가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꼴이다. 건망증 가운데 머리 위에 올려 쓴 안경을 두리번거리며 찾는다거나 양복 안팎의 주머니를 열심히 찾는 게 손에 쥔 열쇠라면 보통 건망증이 아니다. 건망증 중증 가운데 수술칼을 뱃속에 넣어둔 채 봉합하는 등의 의료사고는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노나라의 애공(哀公)이 공자(孔子)에게 “얼마나 건망증이 심한 지 이사가면서 자기 아내를 두고 간 사람이 있다대요”라고 하자 공자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보다 더 심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이나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은 자기 자신을 깜박 잊어 버리는 바람에 나라를 망친 것이지요”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들의 건망증은 특히 심하다. 국민과의 약속을 밥 먹듯이 파기한다. 정치인의 건망증은 공자의 말대로 자기자신을 잊어버리는 중증이다. 우리나라에 중증 건망증에 걸린 정치인이 많은 것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소나기'

황순원(黃順元)의 단편소설 ‘소나기’는 이성에 눈 떠가는 사춘기 소년 소녀의 아름답고 슬픈 첫사랑의 경험을 서정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소년은 개울가에서 물장난을 하고 있는 소녀를 보자 곧 윤초시네 증손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벌써 며칠째 소녀는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음날 소녀는 물속에서 건져낸 하얀 조약돌을 건너편에 앉아 구경하던 소년을 향하여 “이 바보”하며 던졌다. 소녀는 갈밭 사잇길로 달아나고 한참 뒤에는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갈꽃 저쪽으로 사라져 갔다. 소년은 물기가 걷힌 조약돌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소년은 주머니 속의 조약돌을 주무르는 버릇이 생겼다. 며칠째 보이지 않던 소녀가 토요일날 개울가에 나타났다. 소년과 소녀는 들길을 달리며 허수아비를 흔들기도 하고, 칡꽃을 따기도 한다. 소년은 코뚜레를 꿰지 않은 송아지를 타고 자랑스러워 하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수숫단 속에서 비를 긋고 소년은 소녀를 업어 물이 불은 개울물을 건네 주었다. 그뒤 며칠만에 소녀는 핼쑥한 얼굴로 개울가에 나타났다. 그날 소나기를 맞은 탓으로 앓았다는 것이다. 소녀의 분홍스웨터 앞자락에는 소년의 등에 업혔을 때 묻은 검붉은 물이 들어 있었다. 갈림길에서 소녀는 대추를 건네주며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소녀가 내일 이사간다는 날 밤, 소년은 잠자리에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윤초시댁두 말이 아니어. 그 많은 전답을 다 팔아 버리구, 대대로 살아오던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더니, 또 악상까지 당하는 걸 보면….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잖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가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구….” ‘소나기’는 유년에서 성적 성숙의 징검다리를 건너갈 때면 누구나 겪게 되는 정서적 경험이 서정시적인 여운을 남긴다. 그런데 이 소설의 배경이 양평이고 개울은 ‘원덕리’에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양평에 ‘소나기 마을’을 조성한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서커스

소년은 울었다. 눈물이 베개를 적셨다. 어머니에게 벌써 돈을 한번 타가지고 구경했으므로 소년은 서커스단 천막을 남모르게 들춰가며 들어가 공짜로 두번 째 구경을 하고는 그날 밤 또 베개를 적셨다. 소년의 눈엔 통굴리기 등을 연출한 서커스 소녀의 모습이 아롱거려 영 지워지질 않는다. 그토록 묘기를 해내기 까지는 모진 매를 맞아 가며 연습한다든데, 식초를 억지로 먹여 몸의 뼈를 부드럽게 만든다던데 하는 부질없는 항설을 믿은 소년은 얼마나 심한 고생을 했을까 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곤 했다. 소년의 그같은 마음은 서커스 소녀에 대한 연민의 정이었을지 모른다. 어렸을 적에 동네 공터에 들어와 나발을 불면서 손님을 끌어 공연하곤 했던 서커스단에 대한 지지대子의 아련한 추억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서커스를 구경할 기회가 좀처럼 없었지만 서커스가 점점 쇠퇴해가는 것을 아쉬워했고 지금도 아쉬워 한다. 북측의 이른바 교예단은 세계적 서커스 수준인데 비해 우리의 서커스는 그렇지 못해 더욱 안타깝다. 하지만 북측 교예단은 정권 차원에서 특혜를 주어 집중적으로 육성한 것이므로 사회적 측면으로 보아선 자랑스럽지 못한 면이 있다. 아무튼 우리의 서커스 산업이 TV 등에 밀려 퇴조를 면치 못한 가운데 박세환 동춘서커스 단장이 서울예술대학 강단에 선다는 소식은 무척 반갑다. 동춘서커스단은 겨우 명맥을 유지해온 국내 유일한 서커스 단체다. 대학에서 특수무용 및 곡예 등에 대해 실무 경험 40여년을 토대로 펼칠 그의 생생한 강의가 서울예술대학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어진다. 서커스가 비록 사양 길을 걷는다지만 그래도 없어선 안되는 연예분야의 한 부분이다. 박 단장의 대학 강의가 서커스 산업의 활력소가 되고 또 뜻있는 후진을 양성하게 되기를 바란다. 서커스단의 공연이 언제 가까운 곳에서 있게되면 꼭 한번 관람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젠 눈물을 흘리진 않겠지만 말이다. / 임양은 주필

직업정신

지난 일요일의 두 스포츠 소식 중 하나는 감동적이었고 하나는 실망스런 것이었다. 미국 전역의 메이저리그 팬들 가슴을 뜨겁게 달군 시카고 컵스의 최희섭 감동투혼, 타자의 뜬 볼을 잡은 공은 의식을 잃고도 글러브에 꼭 쥐어 있었고 의식을 잃기 직전엔 맞부딪힌 동료는 괜찮은지 물었다는 그의 투혼은 진주빛보다 영롱한 감격 스토리다. 이런 인간승리의 감투정신에 힘입어 짜릿한 역전의 승전보를 최희섭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가 전했다는 팀 선수들 얘기 역시 드라마틱하다. 이에 비해 서울월드컵구장서 우루과이와 가진 한국 대표팀의 축구 친선경기는 정말 졸전이었다. 마치 미련스럽도록 씩씩거리기만 하는 멧돼지가 약삭 빠른 여우에게 이리저리 당한 형상을 방불케한 것이 0-2 완패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공격력이 우세하고 슈팅 수만 압도적으로 많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찬스 뒤엔 위기가 따르는 것이 구기종목의 게임 이치다. 득점을 해야할 기회에 골문도 아닌 엉뚱한데 차곤 한 것은 골 결정력 미숙의 고질병이 도졌다기 보다는 정신상태의 이완을 드러내는 것이다. 게임도 경제적으로 해야한다. 내력없이 체력만 소모시키는 비경제적 게임은 조직력이 없는데 기인한다. 또 대표팀엔 게임 리더가 없어 보인다. 뛰는 게 모두가 제멋대로다. 축구 대표팀의 이런 위기는 불화에 있는 것으로 진단된다. 이번만이 아니다. 안정환의 결승골로 간신히 이긴 일본과의 경기에서도 많은 선수들이 저마다 스타플레이어 의식에만 젖어 대표팀 특유의 세트 플레이가 연출되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직업정신이 해이해진 탓이다. 축구 대표팀의 당면 과제는 무엇보다 인화가 시급하다. 프로의식을 구심점 삼아 마음을 모아야 한다. 최희섭이 그랬다. 땅에 쓰러진 채 정신을 잃은 그가 들 것에 실려 앰뷸런스로 옮겨질 때 시카코 컵스 홈 구장의 3만9천여 관중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치고, 그 중엔 눈물을 글썽이는 관중도 TV화면에서 볼 수 있었다. 최희섭의 투철한 직업정신이 그들을 그토록 뜨겁게 감동시킨 것이다./임양은 주필

특보

‘특별보좌’를 줄인 말이 특보다. 문제는 특보가 ‘특별보좌관’이냐 ‘특별보자역’이냐에 있다. 특별이란 말이 붙었든 안붙었든 간에 ‘보좌관’에 벼슬관(官) 자가 들어가는 것은 국가기관이나 자치단체 같은 공공단체에 한한다. 가령 주택공사 같은 국영 기업에서도 벼슬관 자는 해당이 되지 않은다. 이런 데서는 보좌역으로 부릴역(役) 자가 들어간다. 일반 사회단체는 더 말할 게 없다. 민간 기구에서 보좌관이니 특별보좌관이니 하는 것은 잘 못이다. 보좌역 또는 특별보좌역이라고 해야 맞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정당은 국가 기관이 아니다. 다만 국가가 인정하는 정치인의 집단조직으로 예컨대 정당 문서는 공문서가 아닌 사문서다. 대통령 선거 등 큰 선거 때면 정당마다 넘쳐 나는 것이 ‘특보’다. 흥미로은 것은 그냥 ‘특보’라고만 하지 ‘특별보좌역’이라고는 않는 점이다. 부릴역 자를 붙이자니 어쩐지 격이 뭣하고 그렇다고 벼슬관 자를 붙이자니 당치않고 하여 약칭을 겸해 통상 ‘특보’라고만 지칭하는 게 정당마다의 관행이다. 또 흥미로운 건 이같은 정당의 선거용 ‘특보’가 명함용 직함이라는 사실이다. 선거 캠프에 끌어들일만한 사람이지만 마땅한 직책이 없으면 으레 특보로 위촉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보들은 저마다의 능력에 따라 자유활동을 하면서 행세하기 마련이다. 한동안 청와대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고생한 사람들 중 상당한 수를 ‘특보’로 임명할 것이라고 해서 논란이 있었다. 아무리 명함용 무보직·무보수 ‘특보’로 한다지만 대통령이 임명하면 당당한 ‘특별보좌관’이 되는 특보다. 이러므로 무보직·무보수 특보를 두는 것에 공권 조직의 문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건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청와대는 장고 끝에 무보수 특보 임용을 유보한 것 같다. 사실상 철회한 것 같기도 하다. 청와대가 ‘특보’ 임용을 안한 것은 백번 잘 한 일이다. /임양은 주필

등 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는 인류 최초의 등대로 알려져 왔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까닭은 높이가 무려 135m에 이르는 데다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건축형태 때문이다. 학설이 분분하지만 둥글게 만들어진 꼭대기에는 커다란 화덕이 있어 항상 불을 지폈고, 그 뒤에는 거대한 반사경이 있어 강력한 빛을 멀리 보냈다는 설이 유력하다. 파로스 등대는 단순히 항로 표지의 구실만 한 것이 아니라 300여개의 방을 가지고 있어 대규모 군병력을 주둔시킬 수 있는 성곽이기도 했다. 파로스 등대는 기원전 280년쯤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는 인천에서 서쪽으로 16.7km 떨어진 섬 ‘팔미도’ 에 있다. 팔미도엔 등대지기와 인천방위사령부 소속 군인들만 있고 주민은 살지 않는다. 조선 침탈을 노리던 일제의 강요에 의해 1902년 5월부터 건설을 시작, 이듬해 6월 1일 해발 71m 정상에 높이 7.9m, 지름 2m의 등대를 완공한 것이다. 팔미도 등대는 사연도 많다. 6·25 한국전쟁 초기 북한 수중에 넘어 가자 미극동사령부 주한연락처(KLO) 특공대원들이 상륙, 북한군과 교전 끝에 탈환했다. 감격적인 것은 1950년9월15일 새벽, 등대가 불을 밝히는 가운데 이뤄진 인천상륙작전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암초가 많은 인천 앞바다의 특성상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UN연합군 261척의 함대는 팔미도 등대불이 켜지자 차례로 인천연안쪽으로 진격, 상륙작전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 등대불로는 처음에 석유등을 사용했다. 1954년 자가발전시설을 갖춘 뒤 백열등, 수은등, 할로겐등 등을 거쳐 1991년부터는 태양광발전장치를 이용해 불을 밝히고 있다. 100년 애환과 역사를 간직한 이 팔미도 등대가 내년초 바로 옆에 들어서는 최첨단 등대에 자리를 물려주고 인천시 지방문화재로 보존된다. 그러나 30여년을 등대지기로 근무한 팔미도 등대소장 허근씨는 오늘밤도 뱃사람의 안녕을 위해 불을 밝힌다. 망망대해, 밤바다에서 등대는 고독을 잠재우고 희망을 일깨워 준다. 지금 우리나라엔 2천40개의 등대가 있다. / 임병호 논설위원

농촌 일손 돕기

상추 4kg 한 상자 경락값이 1천원에 불과한데 하루 인건비가 6만원 이상이라면 농촌인력 부족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가격이 생산비에도 못미치고 특히 일손이 없어 수확을 포기할 정도라고 한다. 최근 비가 자주 오면서 과수 적과와 채소 파종 등의 작업시기가 겹친데다 아직도 모내기가 끝나지 않아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영농마저 불가능한 실정이다. 경기농협지역본부의 경우 농촌일손을 돕기 위해 5월초부터 접수창구를 개설, 운영하고 있으나 농촌일손 돕기를 희망하는 신청이 거의 없다. 예년에는 평균 10건에 달했으나 올들어 인심이 각박해졌다고 한다. 지자체도 상황이 비슷해 가끔 문의전화는 오지만 농가가 필요로 하는 부문과 맞지 않아 연결시켜 주기 어렵다고 한다. 과거에는 공무원과 군 부대가 일손 돕기에 나섰지만 근래에는 참여가 극히 저조한 편이다. 이런 현상은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농촌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지고. 주5일 근무로 관광지를 찾는 도시민들이 늘어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농작업의 기계화가 진척되면서 손 모내기 등 일손을 도울 수 있는 작업대상이 줄어드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농번기인데 높은 임금을 주고도 인부를 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농촌인력 알선시장까지 나가서 인부를 구하려해도 여의치 않다. 애써 구하면 브로커 알선금까지 얹어 주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하지만 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것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부족한 일손을 해결하는 방법은 농번기만이라도 공공근로사업을 농촌일손 돕기와 연계시키는 일이다. 또 공공기관과 군 부대, 자원봉사자들이 일손 지원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관계 당국이 나서는 것이다. 농림부는 이달 20일까지를 ‘봄철 농촌돕기’ 기간으로 정했지만 정부 각 부처와 지자체, 군부대 등에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해 놓고 며칠 더 연기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 농민들은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 가슴을 태우고 있다. 기관·단체·군 부대에서 하루, 이틀이라도 일손 돕기에 나서주었으면 좋겠다./임병호 논설위원

인생은 지금부터

한(漢)나라 때 산둥 지방에 살던 공손홍(公孫弘)은 젊은 시절 그 지역의 옥리(獄吏)였으나 죄를 짓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후 돼지를 기르면서 생계를 유지하다 마흔이 넘어서부터 ‘비로소’학문에 뜻을 두고 춘추잡설(春秋雜說)을 독학했다. 다시 20년이 흘러, 공손홍은 예순의 나이로 지방관의 추천을 받아 벼슬길에 올랐다. 넓고 깊은 학문과 사무능력, 처세술 등을 고루 갖춘 그는 10년 후엔 최고위직인 승상의 자리에 이르렀다. 공자(孔子)는 학문을 닦으며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51세에 비로소 벼슬길에 올라 4년 후 실각당한 뒤 천하를 주유하고 제자들을 양성하며 평생을 현역으로 활동했다. 사마천(司馬遷)은 38세에 궁형(宮刑)의 좌절을 겪은 뒤 이를 극복하고 불후의 역사서 ‘사기(史記)’를 저술했다. 38세 때까지 시골의 유협에 불과했던 유방(劉邦)은 진(秦)제국의 붕괴라는 역사의 흐름을 읽고 반란군의 지도자가 돼 훗날 황제에 올랐다. ‘삼국지’의 주인공 중 하나인 조조(曹操)는 늘 도전하며 살아간 인물이다. 빈손으로 출발해 큰 안목과 쉬지 않는 독서로 인생의 후반에 큰 꽃을 피웠다. 유방의 참모 진평(陳平)은 후반기에 오히려 지략을 감춤으로써 성공했다. 39세의 무능한 지도자를 가차없이 바꾸는 승부수를 던진 촉한의 법정(法正), 동진(東晋)의 명장 도간(陶侃)은 57세에 좌천됐으나 매일 100장의 기와를 지붕에 올려 체력을 쌓고 재기에 성공했다. 이들 중국인의 공통점은 인생의 중간 지점에서 ‘이젠 늦었다’고 풀 죽은 게 아니라 자리에서 일어나 삶을 끝까지 밀어 붙인 점이다. 실직과 명퇴, 창업과 재취업으로 제2의 인생 설계를 도모하는 일이 흔해진 요즘, 인생 후반부에 꽃을 피운 영웅들의 인생은 새겨볼만 하다. 인생의 열쇠는 후반부에 있고 후반부의 시작은 40세, 50세, 60세일 수도 있다. 언제 어떤 형태로 삶의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50, 60, 70세를 넘긴 사람들도 “인생은 지금부터”라고 생각하면 늙은 게 쓸쓸하지는 않을 것 같다. / 임병호 논설위원

효불효(孝不孝)

홀어머니가 밤 중이면 나가곤 하여 한번은 아들이 뒤를 밟았다가 자신이 다니는 서당 훈장과 남의 눈을 피해 만나고 있는 사실을 알았다. 그 아들은 마을 앞 개울 물속을 어머니가 추운 겨울에 건너는 것이 고민스러웠다. 그래서 어머니 모르게 돌다리를 놓아 편히 건널 수 있게 해 주었다. 서울에서 ‘카사노바 아버지’를 아들이 폭로해 구속되게 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어머니에게는 효가 되지만 죽은 아버지에게는 불효라 해서 ‘효불효교’라고 했다는 경북 경주에 전하는 ‘효불효교’의 설화가 생각난다. 마흔다섯살의 이혼남이 인터넷 재혼 사이트를 통해 여교사, 간호사 등을 꾀어 사업자금이란 것을 뜯어냈다는 것이다. 한 두명도 아니고 수 많은 여성을 번갈아 집으로 데려가 아들 딸에게 ‘새엄마 될 사람’이라고 소개한 건 피해자에게 신뢰를 얻기위한 사기 수법이었다. 그러나 그같은 아버지를 보다못한 열아홉살난 아들은 이메일로 폭로했고, 한 피해여성의 고발로 그 아버지는 경찰에 덜미를 붙잡히게 됐다. 비극이다. 아버지도 괴롭고 아들도 괴로운 일이다. 아버지의 외도를 아들이 아는 체 하는 것은 불효 중에도 큰 불효라지만 외도도 아닌 상습사기 수단으로 아들은 인격권을 침해 당했다. 열아홉살된 아들이면 그에게도 마땅히 인격권이 있다. 그 아버지는 아들을 탓하기 전에 자녀에게 상습적으로 안겨준 잔인한 고통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카사노바는 18세기 이탈리아 사람으로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여성 편력을 일 삼았던 실존 인물이다. 그러나 외국어에 능통하고 문학·음악 등 예술에 조예깊은 지식과 화술로 사교계 여성들을 유혹했을 뿐 여성들에게 돈을 뜯어내진 않았다. 딱 맞은 비유는 아니지만 그 아들 또한 비록 당장은 아버지에겐 불효했을지라도 효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경주 설화엔 그래도 낭만의 일면이 있는데 비해 현대판 ‘효불효’는 그렇지 못해 듣기에 씁쓸하다. 치사한 범죄의 사기 행각에 자녀까지 볼모로 삼은 그 아버지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됐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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