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정치

고구려의 강력한 실권자였던 연개소문(淵蓋蘇文), 후삼국시대의 주도권을 제일 먼저 장악했던 궁예(弓裔), 원나라의 침탈기에 자주적 개혁을 시도했던 고려의 공민왕(恭愍王), 임진왜란 직후 왕권 강화를 추진하다가 쫓겨난 조선의 광해군(光海君), 개화기에 갑신정변을 주도한 후 이국 땅에서 살해된 김옥균(金玉均), 역시 개화기에 개혁을 서둘다가 임금과 백성에게서 버림받은 김홍집(金弘集), 광복 직후 제1인자로 군림했으나 뜻을 펼치지 못하고 피살된 여운형(呂運亨), 4·19혁명으로 들어선 민주정부를 이끌다가 군사쿠데타에 의해 물러나야 했던 장면(張勉) 등 8인을 역사연구자들은 ‘실패한 정치가’로 분석한다. 연개소문이나 궁예처럼 지나치게 독선적인 경우 실패하였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독점적 권력을 유지하고 있을 때는 별문제가 없지만 권력은 10년을 가기 힘든 법이기 때문이다. 광해군이나 김옥균, 김홍집처럼 국내 역량의 결집을 소홀히 한 채 대외관계에만 주력한 경우에도 위험에 처한다. 내부의 반발에 부닥칠 뿐만 아니라 외국에 대해서도 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데 실패한다. 광해군의 경우 중국의 명청(明淸) 교체기를 현명하게 대처했지만 자신을 잡으려는 쿠데타군이 왕궁에 진입하자 어느 누구도 이를 제대로 막지 못했다. 여운형이나 장면은 위급한 사태에 대처할 치밀한 사고방식과 결단력을 갖추지 못한 지도자로 학자들은 지목했다. 여운형은 당대의 호걸이었고, 장면은 교육자 겸 종교인으로 존경을 받았지만 위기의 사태에는 기민하게 대처하며 혼란을 극복하는 데는 적절한 성품이 아니었다고 본다. 공민왕처럼 예술적 감성과 인간애가 넘치는 사람도 냉철한 판단을 필요로 하는 정치가로서는 좋은 조건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 8인은 격동의 시기를 살며 지도자의 위치에서 화려하게 활약하다가 실패자로 한어지는 굴곡의 과정을 겪었다. 자기 나름의 이상을 가지고 현실을 앞서가며 개혁을 주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거나 죽음을 맞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핵심 측근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과거 정치지도자들의 행적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양 (羊)

2003년은 계미년(癸未年) 양띠 해다. ‘계’는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위인 천간(天干)의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 등 십간(十干)중 열번째다. ‘미’는 육십갑자의 아래인 지지(地支)의 자(子·쥐) 축(丑·소) 인(寅·범) 묘(卯·토끼) 진(辰·용) 사(巳·뱀) 오(午·말) 미(未·양) 신(申·잰나비) 유(酉·닭) 술(戌·개) 해(亥·돼지) 등 십이지(十二支) 중 여덟번 째다. 그러므로 육십갑자로는 스무번 째가 되는 해다. 양은 면양을 말한다. 흔히 염소라고도 하는 산양도 양으로 혼동하지만 엄격하게 구분하면 면양을 양이라고 한다. 가장 두드러진 구분으로 양은 거의 뿔이 없는데 비해 염소, 즉 산양은 암수가 다같이 뿔을 지니고 있다. 양은 개와 마찬가지로 인류에 의해 가축화 된지 아주 오래된 동물로 꼽힌다. 약 8천년 전, 그러니까 신석기시대 이전부터 가축화한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기록에는 고려 때 금나라에서 들어온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 축조된 십이지신상에 양이 형상화 된 것으로 미루어 확실치는 않다. 아무튼 가축화 연대에 비하면 굉장히 늦게 들어온 건 사실인 것 같다. 조선시대에는 조정에서 양장(羊場)을 두어 사육하기도 했다. 털도 털이지만 육질이 아주 좋다. 한의학 서적인 본초강목(本草綱目) 등에 의하면 양은 양(陽)이라 하여 강장 식품으로 많이 쓰인다. 양고기는 성정이 뜨거워 허한 사람에게는 기를 돋아 주지만 어린 아이나 임신부는 먹어선 안된다고 했다. 부위별로는 고기는 살결이 고와지고 산모에게 유익하다. 산모의 젖이 잘 나지 않으면 양고기와 으름덩굴 열매인 으름을 함께 달여서 먹기도 한다. 양의 목밑샘, 갑상선은 사람의 갑상선 질환에, 위 또한 사람의 위장병에 특효한 것으로 기록됐다. 피는 혈허(血虛), 생식선 조직은 정력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 양은 순박하고 온순한 동물이다. 성서에는 양이 500회 이상이나 나온다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물로 ‘희생양’이란 말이 이래서 나왔으나 좋지않은 제보다는 좋은 제에 주로 많이 쓰였다. 역사상으로는 1403년, 조선조 태종3년 계미년에 최초의 동활자를 만들어 이 활자를 계미자(癸未字)라고 했다. 온순한 양띠 새해엔 양처럼 순박한 우리 국민들에게 좋은 일이 많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임양은 주필

사라진 '청와대 별궁'

대한민국 헌법 제90조는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는 국가원로 자문회의를 둘 수 있으며, 의장은 직전 대통령이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1989년 3월 ‘ 국가원로 자문회의법’이 폐지되면서 사문화했다. 국가원로 자문회의 신설은 1987년 개헌 때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강력히 희망했다. 퇴임 후 자신의 입지를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에게 총재직은 이양했지만 막후 영향력을 누리고자 했다. 국가원로 자문회의 의장은 국회의장에 준하는 예우를 받는다. 장관급 사무총장 등 사무처 공무원이 38명이나 된다. 가히 ‘청와대 별궁’이라고 할 만 하다. 노태우 후보가 김영삼 후보를 제치고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노 대통령 측근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상왕노릇을 하려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동생 전경환씨의 새마을운동 비리 등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1988년 4월13일 자문회의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자신이 유치한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도 참석못했을뿐만 아니라 백담사로 유배까지 당했다. 결과론이지만 한나라당이 12·19 대선 공약으로 국가원로 자문회의를 부활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괜한 일’이었었다. 이회창 후보가 집권할 경우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하면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으로 추대하겠다고 공약한 것이 아무래도 석연치 않았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수렴청정 목적으로 설치했다가 폐지한 국가원로 자문회의를 야당이 도입하려 했으니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하기야 한나라당은 이회창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따논 당상이라고 여겼던 때 였으니까 그럴만도 했다. 정치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제도적으로 불식할 겸 ‘너그러운 대통령’의 면모도 과시하는 일거양득용으로 발표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혹시 김대중 대통령이나 측근들이 이회창 후보의 낙선으로 좋은 자리(‘청와대 별궁’)를 놓쳤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전직 대통령들이 국정에 참견하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새 인물들은 전국 도처에 있다. /임병호 논설위원

숲은 강하다

성공회(聖公會)는 영어로 앵글리칸 커뮤니언(Amglican Communion)이다. 잉글랜드 캔터베리 대주교로 시작돼 현재 104대 캔터베리 대주교가 활동중이며, 세계 160여개국에 37개의 독립·자치적인 지역 관구교회로 이루어져 있다. 신자는 7천만여명이다. 대한성공회는 1890년9월29일 한국 선교를 위해 주교로 서품된 고요한 주교가 랜디스 의사와 함께 인천항에 내리며 시작됐다. 1916년 교구의회를 조직하고 1965년 최초의 한국인 주교인 이천환 주교가 승좌한 후 전국의회를 구성했다. 천주교가 보편적인 의미라면 성공회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아우른다. 성공회는 성당과 사회선교기관, 양대 산맥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하느님을 믿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믿으라고 강요하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의 생활로 파고 들어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실천적 선교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가난한 이들을 위한 공동체인 성공회 ‘나눔의 집’은 올해 발족 16주년을 맞았다. 현재 전국 13곳에 있는 ‘나눔의 집’은 1986년 성공회내 진보적인 청년들이 서울 상계동 판자촌에 처음 열었다. 무의탁 노인·소년소녀가장·장애인들을 돕는 가정결연사업, 청소년 공부방과 가출 청소년 쉼터를 통한 불우청소년 교육사업, 결식아동을 위한 사랑의 먹거리 나누기 운동, 노숙자 사업, 자활지원 사업 등 5가지 사업을 벌이고 있다. 대한성공회는 현재 150개 성당, 100개 사회선교기관에 190여명의 교역자와 5만여명의 교인이 등록돼 있다. 김성수 주교는 강화에서 출생했다. 한국성공회 초대 관구장으로 1995년 정년퇴임한 후 2000년 성공회대학 총장에 부임했는데 민주화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 주고, 우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울어 주십시오. 서로 한 마음이 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천한 사람들과 사귀십시오. 그리고 잘난 체 하지 마십시오”김성수 주교가 분신처럼 아낀다는 성경구절 로마서 12장 15절이다. “한 그루 나무는 연약하지만 숲은 강하지요. 그게 ‘나눔’의 정신입니다”김 주교의 조용한 목소리가 이 세상을 밝히는 종소리처럼 가슴을 울린다. /임병호 논설위원

링컨,룰라,노무현

노동운동의 대부로 ‘3전4기’끝에 브라질의 첫 좌파 대통령으로 선출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당선직후 “나는 100년 이상 정권을 잡아온 엘리트 지도자들보다 이 나라를 더 잘 이끌어갈 자신이 있는 철강노동자 출신”이라고 역설했었다. 1945년 브라질의 극빈층이 모여 사는 북동부의 한 시골마을에서 빈농의 여덟번째 아들로 태어난 룰라가 구두닦이 소년시절을 거쳐 남미의 종주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은 한편의 드라마다. “희망은 두려움을 이깁니다. 오늘 브라질은 두려움 없이 행복한 미래를 향한 선거를 치렀습니다.”지난 10월 27일 당선이 확정된 후 상파울루 대로에서 첫 연설을 했을 때 마이크를 잡은 그의 왼손 손가락은 넷뿐이었다. 14세의 어린 나이로 철강공장 노동자 생활을 시작한 그가 1950년대 중반 사고로 새끼 손가락을 잃어서였다. 1969년에는 역시 공장 노동자였던 첫째 부인이 산업재해인 결핵으로 숨졌다. 그때부터 룰라는 노동운동에 뛰어 들었다. 10만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브라질 철강노조 위원장으로 당선된 룰라는 1980년 노동자당(PT)을 출범시켜 1986년 총선에서 하원의원에 뽑혔다. 1989년, 1994년, 1998년 대선에 출마, 여러 후보가 싸우는 1차 투표에선 선두를 달렸으나 2차 투표에서 번번이 패했다. 급진적 노동운동가의 이미지로 인해 2차 투표에선 보수·기득권층이 똘똘 뭉쳤기 때문이었다. 룰라의 공식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라는 유명한 연설을 남긴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인도주의에 의거한 노예 제도 폐지를 주장, 1863년 노예 해방 선언을 행한 위대한 정치가다. 미국인은 물론 전세계인의 추앙을 받는 링컨은 초등학교 중퇴 학력이지만 독학으로 변호사가 됐으며 하원의원,상원의원,부통령 후보 낙선 등 쓰라린 경험을 했다. 청소년 시절의 역경과 정치인생이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브라질 룰라 대통령, 링컨 대통령의 처지가 비슷하다. 한국의 16대 대통령이 미국의 16대 대통령처럼 청사에 길이 빛날 훌륭한 정치가가 됐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학교의 안전교육

영국에선 유치원 아이들에게 횡단보도 건너는 법을 먼저 가르친다. 교통질서 교육은 일본에서도 한다. 일본은 초등학교를 소학교라고 한다. 소학교에 들어가면 관할 경찰관서에서 신입생들을 데리고 다니며 보름동안 보행질서를 현장 지도한다. 프랑스의 중·고등학교에서는 안전교육을 실시한다. 건물이 붕괴되거나 불이 났을 경우에 대비해 가상훈련으로 대피 요령을 터득케 한다. 교통, 붕괴 및 화재 등 대비교육은 한마디로 안전교육이다. 초·중·고등학생들에 대한 안전교육은 일상적 교육으로 인식돼 있다. 국내에선 이런 교육이 취약하다. 초·중·고 어디를 둘러봐도 안전교육을 제대로 하는 학교는 찾아볼 수가 없다. 강원도 어느 학교에서 불이 났는데 학생들이 저마다 신발을 찾느라고 야단법석이 났다고 한다. 한시가 급한 판에 신발이 대수일 수는 없다.그런데도 신발 때문에 대피가 늦었다는 것이다. 아래층에서 내뿜는 연기가 위층으로 올라오면 허리를 굽히거나 기어서 빠져나오는 게 요령이다. 그런데도 똑바로 선채 연기를 들이 마시며 허둥거렸다. 알고보면 간단한 것을 두고 이런 우매함을 저지른 게 다 안전교육이 없었던 탓이다. 교실에서 대개 신발을 신는 미국 등과 달라서 신발을 벗는 교실 구조를 바꿀 수는 없어도, 유사시엔 맨발로 그냥 대피하라는 한마디의 교육만 평소에 있었어도 어처구니 없는 신발소동은 없었을 것이다. 수년전 인천에서 있었던 호프집 화재참사 역시 학생들이 평소 대피교육을 받았더라면 인명 피해를 보다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초·중·고등학생들에 대한 안전교육은 그 효과가 비단 학교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사회인이 되어서도 잠재된 인식은 크게 작용한다. 즉 학교의 안전교육 강화는 바로 사회의 안전문제와 직결된다. 이토록 중요한 안전교육이 하릴 없는 일로 잘못 치부되고 있는 건 학교교육의 맹점이다. 한달에 단 한차례, 그것도 형식적으로 해도 안하는 것보단 훨씬 낫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겨울이 깊어지면서 계절 요인의 교통사고나 화재 등 각종 안전사고가 빈발할 것이 우려된다. 다 같이 우리 생활주변의 안전문제를 깊이 생각하면서 두루 돌아 보아야 할 때다. /임양은 주필

미군주둔지

국내외적으로 촛불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얼마 전 또 미군이 행인들에게 행패를 부렸다. 일부에서 일고 있는 반미기류와 촛불 시위가 지난 6월 여중생 2명을 치어 죽게한 장갑차 관제병과 운전병 2명이 일으킨 사고때문에 야기된 것을 주한미군들이 모를 리 없을텐데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미군 모 부대 킨신 병장이 수원시 권선구 매산로1가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행인과 시비를 벌이다 근처 업소에 침입, 냉장고에서 소주병을 꺼내 현관 유리창으로 집어 던지는 등 난동을 부린 것이다. 그 전에는 서울 용산구 용산2가 도로에서 택시기사가 경적을 울렸다는 이유로 차에서 내려 승객을 폭행, 도주했다가 시민들에 의해 붙잡힌 사건이 있었다. 안하무인식 미군범죄는 올해에 많았었다. 평택시에서 미군이 자신이 몰던 승용차로 신호대기중이던 차량을 들이 받고 달아났고,의정부시 미2사단 앞길에서는 미군 의무대 소속 미군이 몰던 구급차가 한국인 승용차를 추돌한 뒤 곧 바로 미2사단 영내로 도주한 적이 있었다. 택시에 탔던 미군들이 택시강도로 돌변, 운전사를 폭행한 뒤 휴대전화와 현금을 강탈·도주했는가 하면, 미군들이 물건을 산 뒤 계산을 하지 않고 종업원을 폭행한 일도 있었다. 수원에서 난동을 부린 미군은 한국경찰이 입건, 미헌병대로 인계했지만 문제는 극소수이긴 하지만 미군들의 오만과 뻔뻔함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도내 미군 주둔지역 주민 상당수가 미군에 의한 피해를 경험했다는 경기개발연구원의 조사결과가 발표돼 피해의식이 팽배해져 있는 상황에서 잇따라 발생되는 미군들의 범죄는 어처구니가 없다. 동두천·파주·의정부·평택시 등 미군주둔 4개지역 주민 1천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미군 주둔지역 주민 30%가 토지이용, 도로, 교통, 강도, 강간, 폭행, 소음, 환경오염 등으로 미군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미군과의 갈등 현안 중 ‘미군 범죄 및 미군들의 무례하고 문란한 행동’이 62.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한국, 특히 미군이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이다. SOFA 개정은 참으로 절실하고 시급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玉石 구별하는 날

오늘은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7명의 후보들은 선거운동기간중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또 텔레비전 방송, 신문광고 등을 통하여 국민을 잘 살게 하고 대한민국을 부강한 국가로 만들겠다고 수많은 공약을 쏟아냈다.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겠다는데야 마다할 사람 없으나 정치권이 보여준 상대방 흑색·비방선전은 과거의 대선보다 더욱 심해 실망이 컸다. 이렇게 막말을 서슴지 않은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고 집권세력에 참여하면 과연 어떨까 하는 우려가 자심하지만, 어쨌든 평가는 유권자의 몫이다. 고로 비록 하루이긴 하지만 오늘은 유권자의 힘이 가장 막강한 날이다. 정치권을 비판하면서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면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기권도 자유라고 하지만 그게 아니다. 한가지 반가운 현상은 ‘투표에 참여하자’는 운동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펼쳐진 사실이다.시민·학생·업체에 이르기까지 이번처럼 자발적으로 대대적인 선거참여 캠페인을 벌인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학생 단체들은 대학내 부재자 투표소 설치운동의 후속으로 귀향투표운동에도 나서 전세귀향버스까지 준비했다는 소식이다. 또 200만여명으로 추산되는 건설 일용직·영세 중소기업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우리도 투표할 시간을 달라”고 요구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설 일용직이나 영세 중소기업 노동자, 선거당일 대목을 맞이하는 백화점, 놀이공원 등 종사자들의 경우, 심지어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기업주가 경쟁후보 지지성향이 강한 직원들은 투표를 못하도록 대선일에도 새벽 출근할 것을 지시한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120만여명 장애인 유권자들을 위한 투표장 편의시설이 아직도 크게 부족한 점이다. 선거를 한 두번 치르는 일도 아닌데 장애인 유권자들을 여전히 불편케함은 후진국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내 마음대로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모든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하여 진정한 정치인과 옥석을 구별해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다이애나妃의 戀書

다이애나妃의 戀書 막달라 마리아는 갈릴리 호수가에 살던 창녀였다. 그가 뭇사람들에게 돌팔매 질을 당할 때, 예수가 “너희들 중 참으로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던져라!”고 했던 얘기는 유명하다. 그 뒤 예수의 부활을 맨 먼저 보고 제자들에게 알렸던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다. 엘리자베스 1세(1819∼1603)는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 영국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여왕이다. 정치 및 경제개혁 역시 크게 성공했다. 평생 처녀로 지냈지만 알고 지낸 남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데브루는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아일랜드 총독으로 있으면서 왕명을 거역, 제멋대로 휴전하자 파면하고 궁중출입을 금지시켰다. 이에 불만을 품고 시민 봉기를 일으킨 데브루를 체포한 여왕은 비록 애인었으나 단두대에 세우는서릿발 같은 면모를 보였다.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은 아프카니스탄전쟁, 크림전쟁, 남아프리카전쟁 등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사해에 떨린 유니언잭이 해질 줄 모르는 식민지를 개척했다. 마흔살 때 높은 교양과 깊은 학식으로 좋은 영향을 끼쳤던 남편 알버트와 사별하고 우울증에 빠진 여왕을 구해준 사람은 왕실 사냥터지기 존 브라운이었다. 이무렵 빅토리아 여왕과 브라운이 신분을 초월해 주고받은 연애편지가 브라운 후손의 집에서발견된 사실이 수년전 더 타임스에 보도됐었다. 기병대 장교 출신인 제임스 휴이트는 파리에서 파파라치에 쫓기는 자동차 사고로 비명에 간 다이에나 영국 왕세자비의 혼외 애인이다. 1986년부터 5년이나 사귀다가 1991년 세상에 알려지자 헤어졌다. 이러한 휴이트가 다이에나로부터 받은 연애편지 64통을 우리 돈으로 약200억원인 1천만 파운드에 팔겠다고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혼외 정사는 물론 지탄의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호가 불가능하다. 다만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를 보호했던 것처럼, 그 입장을 이해하러 한다면 그들만의 입장일 수는 있다. 그러나 세인의 지탄을 감수할 각오를 해가며 불륜이긴 해도 그토록 뜨거운 사랑을 나눈 연서를 상품으로 내놓은 휴이트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빅토리아 여왕의 연서를 받은 브라운의 후손들은 내용의 공개도 거부한 채 가보로만 고이 간직하고 있다. 다이애나는 왕세자비의 자리까지 내던지도록 사랑했던 상대의 남성을 아무래도 잘못 선택했던 것같다. /임양은 주필

故 김봉천 화백을 애도하며

키는 오척 단구였지만 몸은 단단했다. 반백이 넘어 거의 순백의 머리인데도 항상 짧게 깎곤하였다. 낙천적이면서 날카로웠고 호방하면서 섬세한 면면을 보이기도 했다. 김봉천(金峰千·본명 완걸)화백, 그가 경기일보사 창간 멤버로 몸담아 만평을 집필한 것은 환갑이 갓 지나여서였다. 일찍이 조선일보, 중앙일보에서 활약, 잠시 은퇴했다가 경기일보에서 새출발했다. 중앙 언론계에서 30여년을 일했으나 지방지에서 새로운 지평을 개척해 보이겠다며 나이를 잊고 살았다. 언제나 청춘의 마음을 드러내 보여 때로는 주책이 없다는 말을 듣곤 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노익장의 열정, 노익장의 그림은 그래서 가능하였다. 나이는 많아도 젊은이 못지않는 감각을 그래서 키울 수가 있었다. 입바른 말을 지나치게 잘하여 오해를 받기 십상이었으나, 그의 만평은 그래서 기지와 해학이 넘쳤다. 때로는 촌철살인의 날카로움이 있었고, 때로는 홍소를 자아내는 재치가 번쩍 거렸다. 그것은 일에 대한 집념의 소산이었다. 낚시를 즐겼던 그는 밤낚시를 가도 잠을 자는 일이 없었다. 고기가 잘 잡히든 잘 안잡히든 간에 밤새 껏 낚시에 몰두하곤 하였다. 일도 이런 식으로 했다. 부인을 중풍으로 앞서 사별했다. “이젠 언제 가도 여한이 없다”고 하던 그가 마침내 부인을 따라갔다. 일흔일곱을 생애의 일기로 지난 14일 오후 4시5분 별세하여 오늘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발인한다. 평생을 신문 만평가로 지냈지만 화단의 재야출신 화가이기도 하다. 조그마한 화실을 열어 작품을 해가며 소일한다더니 그만 이승을 떴다. 자녀들이 무척 효자였다. 그런데도 자녀들 보다는 부인이 더 좋아서였든지 훨훨 털고 떠났다. 고인은 자신의 뜻대로 지방지의 신문 만평에 새 금자탑을 쌓은 공적을 남겼다. 그는 기전언론에 몸 담은 것을 기쁘게 생각했고, 그에게 초대 화백 자리를 맡긴 경기일보 역시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오늘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고 김봉천 화백을 애도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 아울러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뜻을 표한다. /임양은 주필

TV속 금연

흡연자들의 입지가 국제적으로도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외신이 전한다. 호주의 한 가정법원은 ‘골초 어머니’에게 10세의 아들 앞에서 금연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10세의 아들로부터 “엄마와 할아버지가 하루 2갑을 피우는 골초여서 집에 가기 싫다”는 말을 들은 소년의 아버지가 가정법원에 소송한 결과다. 가정법원의 판사는 “피고(어머니)는 앞으로 소년이 있거나 1시간안에 돌아올 가능성이 있을 경우, 집안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다”고 판결했다. 또 “집 밖에서 담배를 피웠을 경우에도 연기가 몸에서 완전히 없어진 뒤 집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노르웨이 정부는 2004년 1월부터 레스토랑과 술집 등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을 전면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이 통과하면 노르웨이는 공공장소의 실내에서 흡연을 완전히 금지하는 세계 첫번째 국가가 되는데, 노르웨이에서는 20개비들이 담배 한갑의 값이 62크로나(8.5달러)나 할 정도로 세금을 무겁게 물리고 있다. 이는 금연을 권유하는 차원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길거리 흡연’마저 제한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금연 열풍이 한창이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더러운 공기를 마시는 것이므로 흡연자들도 삼가는 추세다. 굳이 법으로 제한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흡연이 만병의 근원이라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담배를 끊으면 모든 암의 3분의 1을 예방할 수 있으며 폐암은 90% 예방할 수 있음도 알고, 공공장소 등에서 금연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비흡연자까지 무려 40가지가 넘는 발암 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음도 안다. TV의 드라마에서 흡연 장면을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은 흡연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알게 한다.사실 드라마 속의 음주와 흡연은 유혹적이다. KBS의 조사 결과 음주, 흡연 장면을 보면 47.6%가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대답했다.10∼20대는 더 많은 숫자가 그렇게 답했다. 예술 창작물인 TV 드라마에서 흡연 장면 삭제를 요구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일부 PD들과 연기자들의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건강이 있을 때 예술도 감상하고 창작할 수 있다. . / 임병호 논설위원

‘3C 운동’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라는 나눔의 정신을 전하고 있는 구세군(救世軍)은 1865년 감리교 목사인 윌리엄 부스에 의해 영국 런던에서 시작됐다. 부스는 산업혁명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봉사단을 결성했다. 신앙과 선교에 안주하고 있던 당시 교회의 조직으로는 효율적인 구호사업을 펼칠 수 없어 군대조직을 원용해 강력한 규율을 가진 조직을 만들었다. 1878년에는 개신교의 한 교단으로 독립했다. 구세군은 ‘총과 칼’ 대신에 ‘사랑과 봉사’로 무장된 영적 군대다. 성도들을 병사, 목회자를 사관, 교회를 영문이라고 부른다. 구세군의 사회봉사는 국제적 봉사단체로 인정받는다.현재 109개국에 전파돼 있으며 각 정부기관 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선교를 수행하는 동시에 불우한 이웃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한다. 구세군의 가난한 이웃을 위한 운동은 ‘3C’에 바탕을 둔다. 비누(Soap)로 더러운 몸을 깨끗이 씻어주고, 뜨거운 국(Soup)으로 배를 채워주며, 춥고 배고픈 사람들을 직접 구제(Salvation)하겠다는 것이 바로 ‘3C 운동’이다. 구세군은 상당히 엄격한 규율을 갖고 있지만 선교엔 엄격하지 않다. 목회자 재량에 의해 다양한 목회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직자 자질 심사는 매우 엄격하다. 1년에 한번씩 사관평가회를 갖는다. 교회자체 헌금을 임의로 사용하지 못하고 엄격한 규제에 따라 48%를 사회를 위해 사용한다. 또 재정이 넉넉한 교회는 자매교회에 지원하도록 감독을 철저히 한다. 구세군이 펼치는 ‘3C운동’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에 몇차례씩 오르기는 했었지만 정작 수상하지는 못했다. 2003년도엔 ‘3C운동’이 노벨평화상을 받아 구세군의 재정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구세군의 재정이 늘어날수록 가난한 이웃이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고 영혼이 살찌기 때문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공약 베끼기

대선 공약이란 게 마치 길거리에서 다투어 바겐세일하는 ‘길표’상품화 했다. 한나라당이 약40조원이 드는 행정수도 이전을 단 6조원으로 하겠다는 민주당 공약은 황당하다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교육재정을 국내총생산(GDP)의 7%로 끌어 올리겠다는 한나라당 공약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공격에 나섰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약과다. 한나라당이 지난달 20일 군복무기간 2개월 단축을 발표한데 이어 민주당은 8일 4개월 단축을 들고 나왔다. 당초 한나라당 발표를 현실성이 없다며 일축했던 민주당이 며칠 전 긴급회의 끝에 한나라당보다 한 술 더 떠 2개월을 더 감축하는 공약을 급조해 냈다. 한나라당은 경로연금 5만원을 7만~8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하자, 민주당은 1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노 후보가 조계사를 찾아 북한산을 관통하는 서울외곽 순환도로 백지화를 약속하자, 한나라당이 덩달아 불교계 공약으로 똑같은 약속을 했다고 비난한다. 공약 중복은 이밖에도 법인세 인하, 경제성장률, 국방예산 등을 비롯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많다. 이 바람에 서로가 자기 것을 베꼈다면서 상대 당을 ‘베끼기 원조’라고 힐난한다. 그저 표만 되겠다 싶으면 이든 저든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공약이 무슨 실효가 있겠나 싶어 걱정된다. 베껴도 이건 아예 안면 몰수까지 하는데는 놀랍다.길에서 옷가지 등을 싸잡아 팔면서 한쪽이 3천원을 호가하면 곁에선 2천원을 부르는 상도의도 모르는 싸구려 장사꾼을 연상케 한다. 따지고 보면 유권자를 기만한다기 보다는 농락하는 거나 같다. 윌슨 미국 대통령 때 정치가이며 재정가였던 바루크는 선거공약에 대한 역설로 ‘가장 적게 공약하는 자에게 투표하라,그가 가장 적게 실망시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탕발림 공약은 공약이 아닌 독약이다. 사람을 망가뜨리는 미마과도 같다.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은 진(秦)나라의 잡다한 악법을 폐하면서 밝힌 공약삼장(公約三章)하나로 천하의 민심을 얻었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 그렇게는 될수 없지만 사람이 사는 이치는 비슷하다.대선공약 베끼기 홍수는 그 자질을 의심케 한다. 임양은 주필

민주당 파견공무원

스웨덴의 우화가운데 늑대 속에 개를 들여 놓기 위해 개에 늑대 색깔을 칠한다는 얘기가 있다. 슈엘은 19세기 중엽 영국의 여류작가로 소년문학의 고전적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의 동화 중 ‘흑마 이야기’가 있다. 승마용으로 뛰어난 자질을 갖춘 흑마가 이집 저집으로 팔려 다니면서 주인을 잘못 만나 짐이나 마차를 끄는 허드렛 말로 전락한다는 내용이다. 민주당에 파견된 고위 공무원 6명이 당 수석전문위원으로 일한다는 보도를 보면서 스웨덴의 늑대우화, 슈엘의 ‘흑마이야기’가 생각난다. 이들 공무원은 당정협의를 위해 파견됐기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의 탈당으로 당정협의가 폐지된 지난 5월 이후에는 복귀했어야 한다는 것이 신문보도의 요지다. 그러나 지지대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당정협의가 있었던 때도 공무원의 정당 파견은 당치않다. 공무원이 집권당의 사유물일 수 없기 때문이다. 당정협의같은 회의가 있을 시 공무원이 수시로 나가 협의를 도울 수는 있지만, 아예 당으로 출근하는 등 상주한다는 것은 국가공무원법에 위배된다는 판단을 갖는다. 하물며 정부의 고위공무원을 민주당이 대선 캠프에 참여시켜 정책 및 공약개발을 독려하고 있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민주당에선 이들이 사표를 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지만 사표가 능사가 아니다. 수리여부가 궁금하다. 만약 형식적으로 사표만 내고 수리는 되지 않은채 당에 남아 일하는 게 맞으면 공무원 겸 당직자가 된다. 봉급은 국민의 세금으로 받고 일은 특정 당에서 하는 꼴이된다. “부처로 돌아가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것으로 미루어 아직 공무원 신분인 것으로 짐작된다. 잘은 몰라도 당에선 아무개가 당선되면 더 높은 자리를 만들어 보내 주겠다는 투로 달랠 것이다. 공무원을 사병화하여 대선공약 등을 양산해 내는 민주당의 행태는 명백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침해다. 개에 늑대 색깔을 칠한다고 하여 늑대가 될 수는 없다. 민주당에 파견될 정도면 꽤나 괜찮은 고위공무원일 것이다. 풀린다는 게 어쩌다 잘못 풀려 ‘흑마’신세가 됐는지 안타깝다. 공무원으로서 해서는 안될 선거 개입을 요구받고 있으니 말이다. /임양은 주필

쥐가 인간의 조상?

‘게놈’이란 조물주가 창조한 인체의 세부 설계도를 분석한 지도다. 또 유전자(DNA)는 생물체 개개의 유전 형질을 발현시키는 근원으로 생식세포를 통해 전달된다. 근년엔 인공합성에 성공했다. 인간과 쥐의 유전자가 80%나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는 영국 생거연구소와 미국 화이트 헤드연구소의 연구발표가 보도됐었다. 같은 유전자가 80%이고 서로 대응되는 비슷한 유전자를 치면 무려 99%에 이른다. 인간과 쥐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가 이렇다는 것이다. 쥐아기가 생각난다. 1999년 2월이다. 수컷 쥐의 불알에 불임남성 인간의 미성숙 정자세포를 주입시켜 5개월만에 성숙된 인간의 정자를 채취하는 실험이 성공됐었다. 일본 돗토리대학 의학부 연구팀이 이런 짓을 했다. 일본 산부인과학회는 이렇게 추출된 정자를 여성에 임신시키는 실험을 계속해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연구팀의 허가요청을 물론 거부했다. 동물과 인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쥐로부터 치명적인 질병을 옮을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인간과 쥐의 유전자가 거의 같다니까 생각되는 게 또 있다. 체온이 소는 38.5도, 돼지는 40도인데 비해 쥐는 사람과 같은 36.5도를 유지한다. ‘모든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저급의 것으로부터 고급의 것으로 진화하며, 생존경쟁에 적응하는 것만이 존속한다’는 유력한 학설이 있다.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발표한 체계화된 이론이다. 다윈은 사람도 역시 원숭이와 같은 기원이라는 설을 주장했다. 그런데 이번 영·미 연구팀이 낸 인간과 쥐의 유전자 동일설에 의하면 인간의 기원이 원숭이도 아닌 쥐와 함께 한다는 얘기가 된다. 즉 7천500만년 전 공룡이 멸망하기 직전, 인간과 쥐는 공통의 포유류 조상에서 서로 다른 진화의 길을 걸어 왔다는 것이다. 참으로 두렵다. 존엄한 유전자를 인공합성으로 인위적 생명체 창조의 길을 열었다고 야단이고, 쥐에서 키운 정자를 여성에게 옮겨 불임을 치유할 수 있다며 야단이고, 게놈 해독, 그리고 인간과 쥐의 유전자 동일발견으로 난치병 연구에 큰 도움이 되게 됐다고 야단들이다. 하지만 걱정된다. 쥐아기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렇게 해가며 오래오래 사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를 생각해 본다. 조물주의 섭리를 거역하려 드는 인간의 오만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 들일 것만 같다. 과학문명의 발달이 무섭기만 하다. /임양은 주필

팬 클럽

한국의 여중생 2명중 1명은 인기 연예인 팬클럽에 가입했다고 한다. 팬클럽 회원들은 가수들의 앨범 판매순위는 물론 방송국 시청률까지 좌우한다. 이들 가운데 극성팬은 그림자처럼 연예인을 쫓아 다닌다. 밤늦도록 활동하는 소위 ‘스타’를 만나기 위해 집이나 숙소를 지키며 노숙도 예사로 한다. 스타를 쫓아 다니느라 학업도 포기하고 가출한 학생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한 여고생은 좋아하는 스타에게 명품을 선물하기 위해 성매매까지 한 사건도 있을 정도다. 팬클럽 회원들은 자신들이 신(神)처럼 여기는 연예인이 조금이라도 상처를 받거나 나쁜 일이 생기면 견디지 못하고 집단행동을 한다. 라이벌 팬클럽에 비방글을 올리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공연장 등에서 함께 마주치면 수시로 욕설을 하거나 몸싸움이 벌어진다. 연예인 기사를 다루는 기자들이 조금이라도 불리한 기사를 쓰면 팬클럽 회원들은 협박메일과 전화를 한다. 면도칼을 동봉하거나 살의에 가득한 편지도 보낸다.팬클럽 회원들끼리 등치는 범죄도 발생한다. 전임 팬클럽 회장이 기념품과 공연티켓을 판매한다면서 팬클럽의 전임 회장이 회원들로부터 수백만원을 받아 가로챈 사례가 있다. 알고보면 팬클럽은 일부 대형 연예기획사와 방송국들이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각종 행사에 회원들을 박수부대로 동원하거나 인기순위를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기획사, 방송사들이 팬클럽 문화를 왜곡시킨다. 물론 팬클럽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순수한 팬클럽들은 오히려 스타덤에 버금가는 팬덤을 형성, 건전한 대중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신들이 아끼는 스타의 이미지를 높여준다. 서태지 클럽의 경우 음반사전심의제 폐지, 방송사 가요 순위 프로그램 폐지 운동을 펼치고 있다. 또 싸이의 팬클럽 회원들은 싸이가 대마초 흡연으로 사회봉사 활동을 할 때 서울역 광장에 빗자루를 들고 나와 청소를 했다. 팬클럽 회원들은 아직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대부분이다. 올바로 지도하면 바른 대중문화 정립은 물론 청소년문화의 질도 높아질 수 있다. 가정과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어떤 팬클럽에 가입했는지 파악, 바른 팬활동을 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무관심은 탈선으로 연결된다. 학교와 가정의 책임이 크다. /임병호 논설위원

자선 냄비

엊그제 4일 세모의 거리에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등장했다.전국 73개지역 204곳에 설치된 자선냄비는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사랑의 은종을 울린다.자선냄비는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젊은 구세군 여사관이 춥고 배고픈 난민들에게 따뜻한 스프를 끓여주면서 시작됐다. 그해 12월 가까운 항구에 한척의 난파선이 정박하면서 수백명의 난민이 생겼다. 당시 구세군이 구호활동을 했지만 금방 음식이 바닥나고 돈도 떨어졌다. 여사관은 솥에“이 사랑의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써붙이고 외쳤다. 이때부터 현재 109개국의 추운 거리에 국솥이 걸려 이웃사랑을 끓이고 있는 것이다. 자선냄비는 종교를 초월한다. 목탁을 치며 종일 모금을 한 스님이 자신의 모금함을 열어 모두 자선냄비에 넣기도 했다. 어느 해는 서울의 자선냄비 수십 곳에 고액수표 한장씩 들어 있는 흰 봉투가 있었다. 1928년 이후 일제말 몇년을 제외하고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세모의 거리에 나타난 자선냄비는 6·25땐 냄비에 직접 죽을 쑤어 피란민들과 전쟁고아들을 구제했다. 자선냄비의 첫 모금액은 848원67전이었다고 한다. 1984년엔 1억원을 넘겼고 2002년 올해 목표모금액은 20억원이다. 국민경제가 어려울수록 자선냄비의 모금액이 많아지는 것은 참 아름다운 얘기다. 2년간 몰아친 IMF 시절에도 자선냄비는 더 뜨겁게 끓었었다. 하기야 IMF 때 나라빚을 갚으려고 어른들은 집안 장롱 속에 보관했던 금붙이를 내놓고, 어린이들은 돼지저금통을 들고 나온 생각할수록 착한 국민이다. 구세군의 병사(성도)와 사관(목회자)들이 일년 중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가 연말이라고 한다.올해는 3만여명의 봉사자들이 거리 모금 활동을 벌인다. 하루에 몇시간씩 추위속에서 종을 울려야 하지만 가난한 이웃에게 온정이 전해질 것을 생각하면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한다. 국민·서울·우리은행 등 시중 9개 금융기관의 전국 지점에서 ‘월 2000원의 사랑’ 자동이체 캠페인을 벌이고 홈페이지(www.salvationarmy.or.kr)를 통해 온라인으로도 성금을 받는다. 자선냄비에 모아진 성금은 내년 1년동안 이웃돕기에 사용된다.구세군이 울리는 은종소리가 세상을 밝혀주고 있다. /임병호 논설위원

책의 죽음

우리나라 출판사들이 1년동안 펴내는 책이 무려 1억2천만권에 이른다. 그러나 6천만권 이상의 새책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폐기되고 있다고 한다. 종이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책 한권을 만드는데 필요한 종이와 잉크, 인쇄비 등 제반경비를 4천원씩으로 산정하면 연간 2천400억원의 재화가 낭비되는 셈이다. 파주시에 있는 도서전문물류회사 야적장에는 폐기될 예정인 소설책과 시집, 컴퓨터 관련서적 등 도서 수십만권이 쌓여 있다. 수십여일동안 야적된 관계로 검은 곰팡이가 군데군데 슬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당장 서점에 진열해 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폐지공장으로 실려가는 책들 가운데는 이름이 꽤 알려진 출판사가 발간한 도서들이 수두룩하다. 정가가 1만9천원인 컴퓨터 관련서적 2천여권이 권당 50원에 폐지수집상에 넘겨진다. 시집은 권당 15원에 팔린다. 발간된 지 불과 1년 남짓한 새책도 판매가 부진하면 폐지재활용 공장으로 운반돼 잘게 부수어진 후 골판지 재료로 사용된다. 서점에 진열돼 있다 반품된 책도 있지만 폐기되는 책중 80%가 포장도 뜯지 않은 신간서적들이다. 이처럼 매년 수천만권의 새책이 빛을 못본 채 폐기되고 있지만 출판업계는 할인도서를 취급하는 제2의 유통시장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책이 헐값으로 유통될 경우 이미지 하락 등으로 인한 매출감소를 우려한 서점의 반발때문이다. 내년 2월부터 발행 1년이 지난 책은 할인판매가 가능하도록 출판 및 인쇄진흥법이 개정됐지만 대형서점이 출판계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이어서 제2유통시장 도입이 어려울 모양이다. 6천만권의 새책이 kg당 90∼100원의 헐값에 폐지수집상에 팔려 간다니 저자들이 알면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도서구입 예산이 없거나 부족한 학교나 도서관이 싼값에 구입한다면 좋을 터인데 새책이 폐지수집상에 팔려 간다는 것은 서글프고 안타깝다. 할인도서만을 취급하는 전문서점들이 있는 일본처럼 한국에도 할인도서 판매서점이 생겨야겠다. 신간서적의 폐지재활용 공장행은 곧 지식과 예술이 사장되는 비극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혐오시설의 환경친화

쓰레기 매립장 또는 소각장, 납골당 또는 묘지, 화장장 등 이런 것을 혐오시설로 꼽는다. 그렇다고 이런 시설이 필요 없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내집, 내동네 근처에 들어서서는 안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거부 정서다. 사실 이런 시설이 인근에 있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어려운 이 문제가 화제에 오른 끝에 어느 한 분이 귀담아 들어 둘만한 말을 했다. “왜 우리나라는 혐오시설을 혐오시설답게 만드냐?”는 것이다. 듣고 보니 딴은 그렇다. 납골당만해도 우중충한 회색빛 투성이로 짓는다. 혐오시설의 환경친화적 모색이 아쉽다. 예를 든 납골당도 시멘트 일색의 유골 아파트처럼 만들 것이 아니라 공원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미면 보다 나을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자기집 정원에 조상 대대의 납골당을 각기 자그마한 사리탑처럼 만들어 두기도 한다. 미국의 쓰레기 매립장이나 소각장은 대개 주변이 공원화 돼있다. 물론 침출수나 다이옥신 파동이 없도록 충분한 대책이 강구됐다. 프랑스 파리엔 시내에 공동묘지가 있다. 공원묘원으로 가꾸어 많은 시민들이 찾는다. 묘지의 공원화는 동서양에 차이점은 있다. 서양인들은 평토장에 묘비만 세우는데 비해 우리는 봉분을 하기 때문에 공원화할 수 있는 여건이 다른 점은 있다. 그러나 어떻든 환경친화적 구상은 해볼만 하다. 우리의 주변에도 환경친화적 혐오시설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연화장 인근에 야외음악당을 비롯한 문화시설 등으로 일종의 문화공원이 형성돼 있다. 그래도 연화장이 있는지 없는지 의식할 수 없다. 혐오의 티가 조금도 안나도록 시설이 잘돼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혐오시설 문제로 지역 주민과 옥신각신하는 예가 많다. 이엔 지역 주민의 인식이 부족한 탓도 없지 않지만 당국에 대한 불신의 영향이 더 크다.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 해도 경험에 비추어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 지역 주민의 입장인 것이다. 혐오시설의 환경친화적 소임은 지방행정의 신뢰 회복과 함께 적극 모색되어야 할 당면과제라는 생각을 갖는다. 기초자치단체끼리 서로 필요한 시설을 연대화하는 방안도 강구해 볼 만 하다. /임양은 주필

신용카드 단말기

“?”갑자기 의심이 든 승용차 운전자는 자동세차를 하는 동안의 단 몇분이 지루했다. 이미 자동세차장 안에 차를 몰고 들어선 뒤여서 빨리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차체에 물길이 뿜고 물젖은 여러 갈래의 천바닥이 차체를 요란스레 때리는 가운데 서서히 움직인 승용차가 이윽고 빠져 나오자 주유소 직원으로부터 신용카드를 챙겼으나 찜찜했다. 자동세차장 안에서 갑자기 한번 든 의심을 지우기엔 시간이 벌써 한참 지났기 때문이다. “복제하는데 1분이면 충분하다던데…그래도 설마 그랬을라구?”운전자는 스스로 이렇게 불안한 맘을 달래며 주유소를 떠났다면서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주유소에서 손님에게 받은 신용카드를 불법복제하는 사례가 있었다는 신문보도를 보고 그런 불안감을 가졌다는 것이다. 신용카드는 신용사회를 주도한다. 참으로 편리한 게 신용카드다. 그런데도 잘못 쓰고 범죄에 쓰고하여 불신카드가 되고 불신사회를 만들어 문제가 되곤한다. 이런 가운데 신용카드를 안심하게 쓸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대체로 주유소서 차체에 기름을 넣고나면 손님은 차안에 그대로 앉아 있는 채 신용카드를 주유원에게 내준다. 지극히 드물긴 하지만 불법복제는 이렇게 신용카드를 내맡긴 틈새에 이루어진다. 손님들은 더러 미심쩍어 하면서도 설마 무슨일이 있겠나 싶어 주유소 사무실 창구까지 직접 가는 것을 귀찮게 여기기가 일쑤인 것이다. 이런 고객들에게 마음 놓고 신용카드를 쓸 수 있도록 하는 게 곧 서비스다. 주유원이 손님의 신용카드를 갖고 사무실로 갈 것이 아니라, 사무실의 단말기를 차에 있는 손님 앞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손님이 보는데 앞에서 신용카드를 단말기에 입력하면 카드매출전표에 서명하는 고객이 조금도 불안할 리가 없다. 이러한 서비스는 신용사회 거래를 한결 밝게 하기도 하지만 상술로도 유용하다. 만일 신용카드 단말기를 손님 앞으로 가져오는 주유소가 생기면 잘은 몰라도 매출액이 훨씬 더 오를 것이다. 주유소만은 아니다. 무슨 업종이든 신용사회가 발달된 외국에서는 고객의 신용카드를 들고 가는 게 아니고 업소의 단말기를 고객 앞으로 들고 오는 것이 보편화 돼 있다. /임양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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