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자기 위치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면 우리 사찰뿐만 아니라 불교계 전체가 최상의 모습을 갖출 것입니다.” 지난 27일 용주사 주지에 취임한 성법 스님은 세속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사찰의 향후 운영 방향에 대해 말하며 이 같이 말했다. 어린 시절 6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먼저 출가한 셋째 형님의 영향을 받아 지난 1975년 수계(사미계)해 승려로서 본격적인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교구본사(절) 산하 주요 말사(末寺)인 염불사와 만의사 주지 등을 거쳐 이번에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 주지 자리에 취임했다. 성법 스님은 말사에서 본사로 옮겨 온 만큼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하면서도 기본에 충실한 사찰 운영을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분과별로 맡은 일이 많은 만큼 각자의 위치에서 사찰의 발전을 위해 분골쇄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성법 스님은 “주지 자리는 자기 자신의 수행에 힘쓰되 신도들을 잘 교육하고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게 주 임무”라며 “당장 나 먼저 본연의 역할에 충실히 하는 모습을 보이겠다” 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는 단순히 용주사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총무원장인 설정 스님이 지난해 11월1일 제35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취임했으나 그 과정에서 서울대 학력위조ㆍ거액 부동산 보유ㆍ은처자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지난달 21일에 사퇴하는 등 내홍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성법 스님은 세속화를 경계하며 교리에 맞게 행동하되 밑에서부터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도들이 불교를 믿을 때 종단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사찰을 찾아간다는 점을 생각해보라”며 “본사, 말사 가릴 것 없이 각 사찰에서 방문 신도의 교육과 수행에 앞장서야 한다” 고 말했다. 성법 스님의 시선은 수행과 신도 교육 외에도 사찰 내 문화재에도 향해있다. 용주사는 지난 854년에 세워진 사찰로 1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만큼 사천왕문, 효행박물관, 범종각 등 문화재가 많아 후손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 채 물려줄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성법 스님은 “역사가 깊은 본사 주지로 취임해 책임감이 막중하나 세속화를 경계하며 각자 맡은 위치에서 온 힘을 기울이는 사찰로 거듭나겠다”며 “다음 달 24일 원혼을 달래는 행사인 수륙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큰 행사가 시작하는 만큼 남은 임기 동안 사찰을 잘 꾸려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성법 스님의 제2교구본사 용주사 주지 임기는 오는 2022년 8월26일까지다. 권오탁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즉각 퇴진 의사를 밝혔다. 설정 스님은 21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잘못된 한국 불교를 변화시키기 위해 종단에 나왔지만 뜻을 못 이루고 산중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 같다”며 퇴진의 뜻을 밝혔다. 당초 설정 스님은 지난해 11월1일 제35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취임했으나 그 과정에서 서울대 학력위조ㆍ거액 부동산 보유ㆍ은처자 의혹 등을 받으며 논란이 됐다. 이에 종단 내ㆍ외부에서 퇴진 여론이 조성되자 설정 스님은 지난 1일 교구본사주지협의회에 16일 이전에 퇴진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를 번복해 오는 22일 원로회의에서 거취가 결정될 예정이었다. 설정 스님은 기자회견 후 조계사 대웅전에 들른 뒤 곧바로 수덕사로 내려갈 예정으로 알려졌다. 권오탁기자
설정 스님 퇴진…"산중으로 돌아가겠다"(1보) 온라인뉴스팀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 목사)가 청소년을 위한 인성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12일 오산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인근지역 중고생을 비롯해 교육관계자, 학부모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명사초청 청소년 인성 강연이 열렸다. 이날 강연에는 정영우 운천중학교 교장과 심흥선 오산시청 환경과장이 강사로 참여했다. 정영우 교장은 ‘대인 관계’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치열한 경쟁으로 받은 상처와 아픔을 공감해주고 치유할 수 있도록 청소년들에게 힘과 용기를 전달했다. 또 행복은 소통과 원만한 사회성에서 비롯되며, 소통을 위해 공감과 경청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올바른 성장과 바른 인성, 행복한 가정을 위한 다양한 미션을 제시했다. 심흥선 환경과장은 ‘환경과 인성’이라는 주제로 “이기적인 사람은 환경을 생각하지 않지만 환경을 위하고 아끼는 마음은 바른 인성에서 출발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그동안 환경보호에 앞장서며 정기적으로 거리정화와 오산천 살리기에 참여한 하나님의 교회 학생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전하며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분리수거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줬다. 강의를 들은 고등학교 2학년인 이서현 양은 “수업시간을 통해 접할 수 없었던 내용으로 인생의 가치관을 다시 한 번 정립하는 전환점이 된 것 같다”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올바른 말로 인성을 가꾸어 바람직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성품을 기르고 올바른 인성을 지녀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학부모 김현주 씨도 “최근 입시경쟁으로 인성교육이 소외되는 사례가 많다. 가치관이 형성되는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좋은 격려와 교훈으로 많은 도움이 되는 자리였다”며 “오늘 참석한 청소년 모두 언어와 행동에서 훌륭한 인성을 겸비하며 미래의 꿈을 소중하게 키워나갈 것을 확신한다”고 전했다. 하나님의 교회 관계자는 “갈수록 흉포화하는 청소년 범죄를 감안한다면 청소년 인성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면서 “가을이나 동계방학 때도 국내와 해외를 망라해 인성교육 특강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송시연기자
조계종 설정 총무원장 불신임 결의안 가결(1보) 온라인뉴스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사퇴 시점을 올 연말로 미루면서, 사실상 즉각 퇴진을 거부했다. 설정 스님은 13일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어떤 오해와 비난이 있더라도 종단 개혁의 초석을 마련하고, 2018년 12월 31일 총무원장직을 사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종회 임시회가 열리는 16일을 기점으로 사퇴한다는 당초 방침을 번복한 것. 하지만 연말까지 총무원장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중앙종회에서 ‘총무원장 불신임안’이 상정돼 해당 안건이 통과하고 오는 22일 열리는 원로회의에서 이를 인준하면 설정 스님의 총무원장직이 박탈되기 때문이다. 조계종 종헌종법에 따르면 총무원장 불신임 의결은 중앙종회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이 발의하고, 무기명 비밀투표를 거쳐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통과된다. 종단관계자들은 현재 설정 스님과 대립하고 있는 전(前) 총무원장 자승 스님 측이 중앙종회에 다수 포진해 있어 불신임안이 의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설정 스님에게 즉각 퇴진을 요구해 16일 이전에 퇴진하겠다는 방침을 받아냈던 교구본사주지협의회는 14일 설정 스님의 퇴진을 재차 촉구하는 입장문을 낼 계획이다. 교구본사주지협의회 관계자는 “연말에 퇴진하겠다는 것은 기만이나 마찬가지” 라며 “개혁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신뢰를 잃어버린 집행부의 개혁에 힘이 실리겠느냐”고 말했다. 권오탁기자
고려 제21대 왕 희종이 묻힌 강화 석릉 주변 고려시대 무덤들에서 고려 도기와 청자, 중국 북송대 동전이 출토됐다. 아울러 강화도 천 (1232∼1270) 전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고려시대 무덤 양식도 확인됐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가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석릉 주변 고분 6기를 발굴조사한 결과다. 강화는 한강 이남의 유일한 고려 도읍지로, 고려 고종 19년(1232년) 몽골 침략에 맞서 강화도로 천도한 후 1270년(고려 원종 11년)까지 39년간이 고려의 수도 역할을 해왔으며, 이를 강도(江都) 시대라고 부른다. 이번 발굴조사는 고려건국 1100년을 맞아 강도(江都)시기 고분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 진행됐다. 석릉 주변 고분군에는 모두 109기의 고분이 분포하는데, 발굴조사는 능선별로 선정한 10여 기의 고분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천도 이전 것으로 보이는 무덤 1기는 할석조(割石造·깬돌로 만듦) 석곽묘(石槨墓·돌덧널무덤)로 파악됐다. 이곳에서는 11∼12세기 양식으로 판단되는 도기병, 작은 유병(油甁), 청자 그릇이 나왔다. 천도 이후 무덤은 목관묘(木棺墓·널무덤) 2기와 판석조(板石造·널돌로 만듦) 석곽묘 1기, 할석조 석곽묘 2기로 드러났다. 판석조 석곽묘는 도굴로 내부가 심하게 훼손됐으나, 무덤방 입구에서 지도원보(至道元寶), 회령원보(熙寧元寶) 같은 중국 북송대 동전 5점이 출토됐다. 연구소 관계자는 “그간의 발굴조사 출토 유물과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종합해 오는 10월 인천시립박물관과 공동으로 주최하는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특별전에서 공개할 예정”이라면서 “앞으로도 석릉 주변 추가 발굴과 고려 분묘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강화 석릉은 2001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석인상, 능비, 표석 등의 석물이 확인됐고, 청자류와 금속류 등 4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돼 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송시연기자
고려 제21대 왕 희종(재위 1204∼1211)이 묻힌 강화 석릉(사적 제369호) 주변 고려시대 무덤들에서 고려 도기와 청자, 중국 북송대 동전이 나왔다. 희종은 아버지 신종 시절부터 국사 전반을 좌우하던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실패하면서 폐위 후 강화도에 유배됐다. 이후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다 1237년 강화 교동 한 사찰에서 숨졌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5월부터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석릉 주변 고분 6기를 발굴 조사한 결과, 강화도 천도(1232∼1270) 전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고려시대 무덤 양식을 확인했다고 7일 밝혔다. 천도 이전 것으로 보이는 무덤 1기는 할석조(割石造·깬돌로 만듦) 석곽묘(石槨墓·돌덧널무덤)로 파악됐다. 이곳에서는 11∼12세기 양식으로 판단되는 도기병, 작은 유병(油甁), 청자 그릇이 출토됐다. 천도 이후 무덤은 목관묘(木棺墓·널무덤) 2기와 판석조(板石造·널돌로 만듦) 석곽묘 1기, 할석조 석곽묘 2기로 드러났다. 판석조 석곽묘는 도굴로 내부가 심하게 훼손됐으나, 무덤방 입구에서 지도원보(至道元寶), 회령원보(熙寧元寶) 같은 중국 북송대 동전 5점이 나왔다. 연구소 관계자는 "강화 천도 이전과 이후에 다양한 고려 묘제가 강화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번 조사에서 확인했다"며 "석릉 주변 추가 발굴과 고려 분묘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오는 16일 이전에 용퇴하겠다고 1일 밝혔다. 이날 교구본사주지협의회는 서울 종로구 AW컨벤션센터에서 임시회의를 연 뒤 총무원을 방문하고서 이같은 뜻을 전했다. 설정 스님은 당초 지난해 10월 임기 4년의 조계종 제35대 총무원장에 당선돼 11월 취임했으나 선거 당시 학력 위조 의혹, 수덕사 한국고건축박물관 등 거액의 부동산 보유 의혹, 은처자 의혹 등이 제기됐다. 설정 스님은 서울대 학력 위조 의혹을 인정했으나 은처자 의혹은 부인했다. 이후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거듭 부인하면서 지난달 출범한 교권 자주 및 혁신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입장을 밝혀왔으나 결국 조기 퇴진하게 됐다.권오탁기자
김포시 월곶면에 위치한 문수산 문수사 일대에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재)김포문화재단(대표이사 최해왕)은 지난달 완료한 ‘김포 문수사 일대 학술 및 정밀 지표조사’ 결과 문수산에서 조선시대와 고려시대의 건물터로 추정되는 지역을 발견했다고 31일 밝혔다. 재단은 문수사의 역사적 가치와 연원을 규명하고 주변 유적의 유존현황과 효과적인 보존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재)국토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고지도 및 고문헌 분석, 현장 지표조사 등 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된 ‘문수사 풍담대사 부도 및 비’ 부근에 전하고 있는 ‘응진당대사비’ 일대의 평탄지와 건물터 추정지가 새롭게 발견됐다. 응진당대사비 일대의 평탄지에서는 3단의 석축과 함께 조선시대 백자편, 도기편 등이 발견됐다. 이곳은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 ‘전등사본말재산대장’에 ‘풍담대사 부도 및 비’와 함께 문수사의 재산으로 기록돼 있는 ‘상월당대사비’, ‘강월당대사탑’ 및 부도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판단되는 곳이다. 또 조선시대 건물터와 고려시대의 건물터로 추정되는 두 곳은 조선후기 지도에 ‘문수곡(文殊谷)’이라 표시된 곡부상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건물터는 총 1천400여㎡로 2단의 석축이 확인됐으며, 조선후기의 자기편, 와편, 도기편이 발견됐고 특히 와편이 압도적으로 많아 건물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고려시대 건물터는 총 3천300여㎡로 잔존 높이 2m 가량의 3단의 석축이 확인돼 원래는 더 여러 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상당수의 와편, 도기편 등이 확인됐는데, 와편은 고려시대 기와의 특징인 어골문이 타날(두드리는 기법)된 것이다. 국토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문수곡은 현재 군부대로 인해 접근이 어렵지만 과거에는 문수산성 북문으로부터 문수사로 올라가는 주요 동선으로서 이 선상에서 확인된 건물터는 문수사와 관련된 건물일 가능성이 있다”며 “보다 명확한 규모와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추가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훼손을 막기 위한 보존조치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최해왕 대표이사는 “학술적 목적으로 문수사 일대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문수사의 역사적 원형을 찾는 일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됐다”며 “이번 조사는 문수사의 역사적 위상과 스토리의 폭을 한층 넓히는 계기로, 향후 추가적인 조사, 학술대회, 스토리텔링 등을 실시해 김포 문수산과 문수사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하나씩 밝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포=양형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