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사람과 공간을 맴도는 건축 이야기…‘건축가가 사랑한 최고의 건축물’

“건축물을 보고 난 후 건축물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우리는 그 장소를 떠난다. 즉 갖고 오는 것은 그 건축물에 대한 스토리다.…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알아야 그 건축물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고 그 가치가 다음 작업에 좋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건축가가 사랑한 최고의 건축물’ 中) 건축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시대의 이야기, 건축물이 세워진 이유, 건축물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 등등. 여행을 하거나 관광 명소에서 유명한 건축물과 맞닥뜨릴 때 건축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건축물에 녹아든 사람과 지역의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18일 발간된 ‘건축가가 사랑한 최고의 건축물’(크레파스북 刊)은 건축을 통해 사람과 삶, 자연, 예술을 큰 폭에서 아우른다.  책을 펴낸 양용기 교수는 독일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유럽 등지에서 실무를 쌓은 뒤 현재는 안산대 건축디자인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집필도 이어가고 있다. 건축을 매개로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을 늘 연구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건축물의 형태도 중요하지만 그 내면에 담긴 스토리에서 받는 감동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건축물을 읽어내기 위해 ‘사회 변화에 영향을 미친 정도, 언행일치, 스타일, 원조, 마무리’라는 본인만의 틀을 잡고 다양한 건축물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건축물 가운데 48곳이 저자의 기준에 따라 선정된 뒤 ‘자연, 도전, 구조 미학, 클래식’ 등 다섯 개의 소주제에 따라 분류됐다.  친환경 요소가 건축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말하는 저자는 첫 챕터에서 자연을 품은 건축물에 주목한다. 먼저 1949년 미국 코네티컷에 준공된 필립 존슨의 ‘글래스 하우스’다. 사방의 벽면이 유리여서 내부에 있어도 바깥의 자연 속을 거니는 느낌을 받는다. 자연을 설계 요소 삼아 심미성을 살리려는 시도 속에서 오히려 아무리 아름다운 공간일지라도 자연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역설이 생겨난다. 저자는 존슨의 건축물을 이런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자하 하디드는 곡선을 활용하고, 이오 밍 페이는 삼각형에 몰두한다. 이처럼 건축가들은 저마다의 스타일과 개성을 건축에 투영한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2007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준공된 장 누벨의 ‘루브르 아부다비’를 예로 들면서 건축가의 미학적 관점을 돋보이게 하는 선택에 주목했다. 사실 장 누벨의 작품에선 뚜렷한 형태의 경향성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누벨은 바깥의 빛을 끌어들여 공간을 창조하기 때문에 빛 자체를 그의 스타일로 삼는 건축가로 볼 수 있다. 그의 건축물은 아랍 지역에 녹아든 문화적 상징에서 영감을 얻어 공간에 적용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지역의 특성과 연계된 덕분인지 루브르 아부다비는 아랍문화권의 관광 명소가 됐다. 저자는 이 건축물에 대해 야자나무를 모티브 삼아 공간 내부에 빛이라는 물을 가득 채운 오아시스를 만들어냈다고 평한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 책이 어느 건축물과 어떤 건축가를 최고로 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저 책에 등장한 건축물은 모두 미래를 향한 하나의 징검다리일 뿐이며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건축물의 탄생과 준공에 얽힌 스토리를 통해 다채로운 토론과 비평이 오가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이날e북] ‘공감의 배신’, ‘개인주의자의 철학 수업’

새해 소망을 빌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월의 끝자락이 성큼 다가 왔다. 신년을 맞이하며 결심했던 굳은 다짐들이 여전히 그대로인지 자가 점검이 필요한 때다. 어수선한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엔 인문학 도서를 찬찬히 음미하는 편이 좋다. 전자책 플랫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인문 분야의 책을 골라 봤다.  알라딘ebook에서는 ‘공감의 배신’이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 ‘공감의 배신’은 공감을 향한 사회의 통념을 해부해 관점과 인식의 전환을 이끄는 책이다. 세계적인 심리학자인 저자 폴 블룸은 이 책에서 무작정 공감에 대한 반대 의사를 내비치지는 않는다. 공감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조명하는 책을 통해 독자들은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가. 도덕과 결부된 우리의 행동과 판단이 공감에 큰 영향을 받는데, 이로 인해 정말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길이 미치지 않게 될 위험성이 피어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간다. 결국 책을 통해 저자는 우리에겐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낼 만한 역량과 자질이 내재돼 있다며 지양해야 하는 유형의 공감에서 벗어나 공감과 이성의 조화를 통해 더 나은 길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예스24ebook의 인문 코너에선 ‘개인주의자의 철학 수업’이 눈에 띈다. 사람과의 유대가 끊기고 단절이 자연스러워진 파편화 시대, 자신의 행복을 찾아나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철학과 어떤 가치관을 품고 살아가야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개인주의자의 철학 수업’은 시대와 지역, 종교 등의 모든 영역을 불문하고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개인주의’ 철학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다. 나쓰메 소세키, 에리히 프롬, 미셸 드 몽테뉴, 노자, 장자 등의 궤적이 묻어나는 철학 수업을 따라가다 보면, 남들과 조금 달라도 좋은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 만큼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을 엿볼 수 있다. 어려운 관계를 떠안은 채 살아가는 삶 속에서 관계를 잃지 않으면서도 독립된 개체로서의 건강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선 어떤 방법들이 있는지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세상을 감싸안는 진심 어린 시선…이자숙의 시집 ‘달빛 품은 그대’

아무도 들여다 보지 않는 구석까지 지그시 바라본다. 인간의 온기가 미치지 않는 곳까지 예민하게 시선을 보내는 어느 시인의 눈과 마음을 들여다 보고 싶어진다. 이자숙 시인이 최근 펴낸 시집 ‘달빛 품은 그대’에는 세상과 나 사이를 연결하는 진심만이 맴돌고 있다. 수원 출생의 이자숙 시인은 2003년 ‘한국문인’ 수필부문과 2006년 ‘문예사조’ 시부문에 등단하며 행보를 이어 왔다. 문학의 길로 들어선 지 20여 년, 시인이 견뎌냈던 삶 속에서 차곡차곡 모아 뒀던 시들을 한데 엮어내니 귀중한 마음이 됐다. 소소하게 포착된 일상의 한구석, 조심스럽게 길어올린 추억들, 신념과 가치관에 대한 단상들을 바라보는 마음. 1부에서 5부까지 지나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느슨하지만 반짝이는 연결고리가 눈에 문득 띈다. 2부의 ‘팔달산’에는 저자의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녹아든 수원 팔달산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교차할 때 피어나는 생각들이 배어 있다. 뿐만 아니라 수원역, 매산초등학교 등의 구체적인 지명들이 등장해 지금 이 순간과 관계 맺는 상황들도 역시 시인의 경험에서 꺼낸 추억의 의미를 강조한다. 특히 눈에 담기는 현실의 단면들과 세상의 이야기가 내면과 맞닿을 때 벌어지는 광경이 시집 곳곳에 고스란히 담겼다는 점이 시집 전반에 녹아들었다. 정겨운 세 식구/다정한 남매 찾아가 보듬어주고는/지상에 두고 온 노모 내려다보고/그립고 안타까운 눈물 흘린다//달은 이전보다 더 환한 빛으로/‘반지하 없는 세상 되기를’/두 손 모아 기도하는 세 식구/포근히 감싸 안고 있다.(‘달빛 품은 그대’ 中) 이처럼 시인이 선택한 표현들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더불어 사는 관계로 지탱될 수 있어야 한다는 간절함이 묻어난다. 화려한 수사와 기교를 걷어낸 자리엔 시인이 빚어낸 언어들이 정갈하고 담백하게 놓여 있다. 하지만 그 속에 응축된 감정들이 은근하게 꿈틀대며 갈수록 짙어지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시인은 시집이 시작되는 곳에 삶의 모난 돌이 둥글게 변해가는 소중한 세월을 곱씹어 보면서 자신의 시가 “은은한 달빛처럼 사막과 같은 메마른 세상을 따뜻하게 품는 소중한 마중물이 되기를 소망한다”는 마음을 터놓았다.

[신간소개] 김명숙 시인, 두 번째 시집 '내 마음의 실루엣’ 출간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린 ‘새싹’과 현충일 추념식 추모곡 ‘영웅의 노래’를 작사한 시인 김명숙의 두 번째 시집 ‘내 마음의 실루엣’이 문학의전당 시인선 358로 출간됐다. 김 시인은 자아의 절정을 꽃으로 표징하지만 그의 상상력은 일상의 자연과 인사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시는 광주민중항쟁과 통일문제, 세월호 참사와 현재 거주하는 도시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까지 관심을 갖고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또 문장의 압축과 아름다운 상상, 자아를 확장하는 방식이 독자를 시원하고 유쾌하게 한다. 그가 표적으로 삼는 주요 제재 범주를 유형화해 요약하면 꽃과 바다, 사회·정치적 상상력이라 할 수 있다. 고향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시인은 고향의 서경과 어머니와 바다를 제재로 한 시들을 상당수 보여준다. 한편 김 시인은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제1회 한국아동문학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2008년 국립국악원 생활음악 화전놀이가 공모 당선됐고 2011년 초등학교 5학년 음악교과서(천재교육)에 새싹이 등재됐다. 가곡, 동요 작사가이기도 하며 작품으론 가곡 달에 잠들다외 45곡, 동요 새싹외 80곡이 있다. 시집으론 그 여자의 바다가 있다. 제5회 오늘의 작가상, 한국동요음악대상, 도전한국인대상(문학 부분), 부천예술상, 방송대문학상, 문예마을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부천문인협회, 한국아동문학회, 고흥작가회, ㈔어린이문화진흥회, 한국예술가곡연합회, 한국동요작사작곡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부천시원미노인복지관 작문강사와 방과 후 강사를 하고 있다.

138억년 역사를 통해 인류의 미래를 보다 '빅 히스토리'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수많은 도전에 직면에 다다른 지금 우리는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까. 앞으로 100년, 우리는 어떠한 미래와 마주할까. 거대사 분야의 석학 데이비드 크리스천과 신시아 브라운, 크레이그 벤저민은 빅 히스토리 연구를 집대성해 펴낸 ‘빅 히스토리’(웅진지식하우스 刊)를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준다. 책은 8가지 문턱(threshold, 새로운 것이 출현하는 전환 국면)을 중심으로, 인간의 역사뿐 아니라 생명, 지구, 우주의 탄생과 발전과정까지 138억년의 장대한 역사를 포괄한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지구를 넘어 우주의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천문 물리학, 화학, 지리학, 생물학, 고고학, 인류학, 경제학 등 ‘모든 것의 역사’를 담아냈다. 이와 함께 지리학, 생물학, 고고학, 인류학, 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을 바탕으로, 변화의 추세와 혁신의 메커니즘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특히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인간의 집단 학습과 기술 혁신, 교환망의 중요성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한 점도 눈길을 끈다. 수천년 전 호모사피엔스는 상대적으로 힘도 약하고 체구도 작았지만 공감과 협력을 통해 현재의 인류로 살아남았다. 생존을 위해 공동체를 선택했고 인류는 다시 한번 과거의 생존 경험을 되살려 자연과 공존하며 지속 가능한 생존방식을 찾아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과연 인류는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학계 최고의 ‘드림팀’으로 불리는 이들이 집필한 완성도 높은 결과물로 꼽히는 만큼 방대한 인류사와 역사를 짜임새 있게 전한다. 그리고 그 방대한 역사를 통해 현재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

[작가와의 만남] 갈매기처럼 세계를 마주하기… 첫 산문집 내놓은 박설희 시인

“세차게 부는 바람에 떠밀려 가지 않으려고 그 갈매기는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틈이 있기에 숨결이 나부낀다’ 中 ‘충혈’, 박설희) 한 시인이 내놓은 첫 산문집 속 담담하게 새겨진 글자에서 그가 지향하는 세계가 엿보인다. 박설희 시인(58)은 앞으로 자신의 문학 세계를 형상화하는 데 있어 한 마리의 갈매기에 자신을 투영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매섭게 불었던 어느 겨울, 그가 화성시 궁평항에서 맞닥뜨린 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고고한 자태로 바람을 버텨내는 갈매기의 모습이었다. 쉼 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닻을 내린 듯 거센 바람을 고고히 온몸으로 받아내는 한 마리의 갈매기 말이다. 지난 2일 출간된 그의 산문집 ‘틈이 있기에 숨결이 나부낀다’는 갈매기와의 만남을 다뤘던 ‘충혈’로 시작한다. 박 시인은 고심 끝에 책의 입구에 ‘충혈’을 배치했다. 바람을 버티고 바다를 맞서며 세계를 응시하는 갈매기를 닮고 싶다는 그는 이번 산문집 발간을 계기로 마음 한구석에 두려움과 설렘이 함께 피어났다고 고백했다. 적절히 숨기거나 감추면서 조절할 수 있는 시와 다르게 산문을 쓸 때는 숨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정도 정제된 시어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의 세계관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평소 품었던 생각들이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드러나는 셈이다. 평소 사람들과 맞닥뜨리고 부대끼면서 소통하는 데에서 희열과 생명력을 얻는다는 박 시인은 시를 써내려 갈 때 세상과 맞닿은 눈으로 사람과 세계의 단면을 음미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산문집은 그의 생각이 녹아든 시집들과 절대로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그가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 ‘꽃은 바퀴다’, ‘가슴을 재다’ 등 세 편의 시집을 펴내면서 계속해서 인식이 확장되고 시야가 변화하는 순간들에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역시 산문집에서도 흐름에 맞게 재편됐다. 1부에는 지역 신문에 실렸던 칼럼, ‘한국산문’에 발표했던 원고 등 작가의 손을 떠나 필터가 덧입혀진 채 세상과 만났던 글들이 뒤섞여 있다. 2부로 진입하면 박 시인이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며 느꼈던 사유가 담긴 글들이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3부에서는 시인으로 살아가면서 시와 예술과 문학이 도대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돌아보면서 정리하는 생각의 흐름이 담겼다. 이번 산문집은 10여년간 지속됐던 궤적 속에서 유영하던 글이 모인 뒤 끊임없는 퇴고로 재구성된 산물이다. 박 시인은 “첫 시집을 내는 것이 그동안 발표했던 시를 모으는 과정이라면, 두 번째, 세 번째 시집을 낼 때부터는 고민이 시작된다”며 “동어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은 없는지 늘 조심하고자 한다. 그래서 산문집을 또 내게 된다면, 그런 점을 신경 쓰게 될 것 같다. 어쩌면 미학적 관점에서 풀어낸 글이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송상호기자·이다빈수습기자

[신간소개] 현대인 위로하는 노년의 진심‧‧‧윤수천 시인의 ‘늙은 봄날’

윤수천 시인이 세상에 건네는 위로를 한데 모아 ‘늙은 봄날’을 펴냈다. 윤 시인은 1974년 동화 ‘산마을 아이’로 소년중앙문학상에 입상, 1976년 동시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활동하며 특히 한국 아동문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출간된 ‘늙은 봄날’은 ‘쓸쓸할수록 화려하게’, ‘빈 주머니는 따뜻하다’ 등에 뒤이어 발간된 시집이다. 4부로 나뉜 시집에는 윤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사물 하나하나를, 자연 곳곳을 담아내는 그의 눈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에 맑은 우물과 나무, 별이 가득하다. 시집을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독자들도 “아직도 나의 가슴 안에는 맑은 우물이 있고, 나무가 자라고, 별들이 산다”고 말하는 시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추운 겨울 난로 같은 시집 속에서 노년의 시인이 써내려 간 시어들이 다정한 손길로 현대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쓸쓸함을 삽니다./값은 고가로 쳐드리겠습니다./외로움도 삽니다./역시 고가로 쳐드리겠습니다.//...//단, 조건이 있습니다./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쓸쓸함,/세상에서 가장 맑은 외로움,/세상에서 가장 아픈 사랑.(‘삽니다’ 中) 이처럼 시집 곳곳에선 삶을 관통하는 고독에 대한 수용을 통해 두려움을 이겨내도록 하는 힘이 느껴진다. 시인의 시집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눈에 담기는 시어들은 겹겹이 쌓여 세상의 고단함을 헤쳐나갈 수 있게 만든다. 시인은 나지막이 속삭인다. 구석구석 놓여 있는 사랑을 놓치지 않고 느끼는 것이 세상을 살아내는 힘이 된다고 말이다. 문학박사 조석구 시인은 “윤수천 시인의 시는 인간의 숙명적인 허무와 고독이라는 철학적 명제를 생활인의 평범한 삶을 통해 꿈과 사랑을 형상화한다”며 “현실의 불만과 저항은 화해로 귀납돼 삶의 의미를 긍정하고 옹호한다”고 평했다.

절반의 빛과 절반의 어둠, 2022년 연말 함께하면 좋을 ‘두 권’

절반의 자유, 절반의 기쁨.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를 맞은 2022년, 이 한 줄이 딱 들어맞을 듯 하다. 서로가 거리를 두며 모임이 조심스러웠던 상실의 계절을 지나 축제와 모임이 활발하며 모두가 들떴던 가을. 핼러윈 대참사에 이어 연말 들어서 다시 확산되는 코로나와 각종 어두운 경제지표로 절반의 빛과 절반의 어둠이 깊숙이 자리한 한 해다. 그 안에서 열심히 뚜벅뚜벅 걸어온 ‘나’에게 위로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실어줄 책을 소개해 본다. ■ 오, 윌리엄!(문학동네 刊) 누구나 자신의 과거 중 굳이 꺼내어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다. 가난과 폭력의 온상이었던 집안에서 자란 루시 바턴에게 과거는 불행이자 짐이다. 그녀의 회고로 시작하는 소설은 사랑과 상실, 기억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루시는 자신과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윌리엄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안락함과 안전함을 주는 윌리엄에게 그동안 텅 비어있던 마음을 채워간다. 또 유명작가가 되어 권위를 가지지만 그는 여전히 스스로를 투명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마음 속 깊이 불안하고 비워진 트라우마는 여전히 그녀의 몸을 지배한다. 책은 올해 세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미국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지난해 발표한 장편. “인간의 내면에 대해 스트라우트처럼 글을 쓰는 작가는 없다”는 평처럼 세심한 관찰력으로 써내려간 이야기는 깊이 있는 심리적 통찰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소설 속 루시 바턴을 따라가다 보면 낯설지 않다. 사랑을 해도 권위가 있어도 쉽게 깨지고 망가지고 흐트러지고 상처 입는 그녀는, 평범한 나와 같다. 상처였던 그 무엇을 통해 화해와 용서, 그리움을 삶의 그림처럼 풀어낸 글은 누구나 삶에 굴곡이 있고, 인간은 때로 여리며,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며 낯설지만 힘이 되는 공감과 위로를 준다. ■ 최재천의 공부(김영사 刊)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 교수와 저널리스트 안희경이 나눈 대담을 책으로 엮었다. 환경과 생태적 관점에서부터 문제를 제기하는 최재천 교수의 삶과 그간의 방대한 공부와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깊이 생각하다 보면 ‘무엇을 배워야 할까’라는 질문까지 닿게 된다. 그는 '공부'라는 주제로 자기 생각을 전한다. “어떻게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나요?” “전 지구적 재난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떤 인재를 뽑고 길러야 할까요?” 이에 그는 “우리 인간은 사실을 많이 알면 알수록 결국엔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밝힌다. 현재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을 돌아보고 앞으로 미래 세대의 공부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뿌리, 시간, 양분, 성장, 변화, 활력이라는 주제로 방향을 제시한다. 자식의 실패를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엄마 침팬지의 교육법부터 최 교수가 하버드대 재학 시절 기숙사 사감을 하면서 배운 경청의 기술까지, 숱한 인생을 지나오며 배운 교훈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장 손안에 돈을 쥐여 주지는 않지만, 뚜벅뚜벅 삶을 긍정하며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책이다.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해선…'도시인의 월든', '라이프 인사이드'

한 해가 저물어가는 요즘, 어디론가 떠나 새로운 삶을 그려보고 진정한 자유를 찾고 싶은 욕망이 들기도 한다. 여기 두 권의 책이 있다. 데이비드 소로가 자연에서 머물며 인간의 온전한 행복 찾기에 나섰다면, 한국의 여성은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의 시골에서 삶에 있는 여백을 즐기며 온전한 자신을 찾아가는 삶을 고스란히 옮겼다. 또 다른 책은 자유가 제한된 감옥이란 그늘에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만난 이야기를 담았다. 진정한 자유란, 정말 무엇일까. ■ 도시인의 월든(다산초당 刊) 미니멀라이프가 올바른 삶인 듯 한동안 유행처럼 번졌다.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졌던 셈이다. 복잡한 세상에서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해선 어떤 삶을 추구하고 살아야 할까. ‘월든’의 데이비드 소로처럼 자연에 들어가 속세와 인연을 끊어야 하는 것일까. 그는 정말 온전한 삶을 영위했을까. 지난해 ‘숲속의 자본주의자’를 펴냈던 박혜윤 작가가 두 번째로 펴낸 ‘도시인의 월든’은 진정한 나를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강박을 덜어준다. 저자는 월든을 펴낸 데이비드 소로에 대해 온전히 극찬하지도 그의 삶을 추앙하지도 않는다. 소로는 자연 속에 살면서도 인근에서 어머니에게 빨래를 부탁했고, 친구들과 만나 유희를 즐겼고 자연 속에서 산 삶은 몇 해 되지 않는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 어떤 것도 되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 어떤 것도 되지 말고, 삶에 있는 여백을 즐기라고 말한다. 발전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느라 스스로를 괴롭히는 도시인들에게 모순되고 불완전한 삶을 그대로 향유했던 소로의 지혜, 정답에 집착하지 않는 저자의 통찰력이 어우러져 묘한 위로를 준다. 저자의 지혜와 확고한 철학이 녹아든 문장을 따라가다보면 월든의 호숫가처럼 평화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하다. ■ 라이프 인사이드(어크로스 刊) 제한된 자유만이 허용된 수감자들에게 자유란 무엇일까, 평생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무기징역수들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피해를 준 가해자들에게 용서란 무엇일까. ‘라이프 인사이드’는 감옥 안 철학 수업에 대한 기록이자, 감옥의 그늘에서 보낸 한 삶에 대한 회고록이다. 2016년부터 일반 강의실이 아닌 감옥에서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철학을 가르친 앤디 웨스트. 그는 매일 감옥 안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그들이 스스로의 상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모색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귀를 기울인다. 여성 수감자들은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페미니즘이 그들의 관점과 상황을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을지 궁금해 한다. 젊은 흑인 남성들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감옥에서 철학을 배우는 학생들은 인종의 개념이 허구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가 아니라 감옥 안에서 묻는 ‘어떻게 살 것인가’는 더 절실하게 와닿는다. 책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저자는 단지 재소자들과의 문답을 투명하게 보인다. 이로써 넓은 깊은 혼란 속에서도 인간과 삶은 얼마든지 나아갈 수 있다는 시원한 깨달음을 주는 점이 인상 깊다. 정자연기자

[신간소개] 김승옥의 시나리오 두 편으로 들여다보는 영화의 틈새…'안개', '도시로 간 처녀'

1964년 ‘역사’와 ‘무진기행’ 등을 발표하고, 1965년에 ‘서울, 1964년 겨울’로 동인문학상을 받으며 6·25전쟁 이후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김승옥. 그의 글 속엔 꿈과 낭만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와 일상에 대한 반항심과 일탈 등의 요소가 짙게 깔려 있다. 김 작가는 20여편의 소설을 남겼고 전후세대 문학에 팽배했던 무기력증을 지워냈다는 점에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김승옥 작가는 소설만 집필하지 않았다. 그는 화가와 시사만화가로도 활동했고, 시나리오 작업을 통해 영화계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각본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김승옥의 시나리오 두 편 '안개, '도시로 간 처녀'가 오는 10일 발간된다. ■ 소설 ‘무진기행’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까지…‘안개’ 김승옥 작가는 자신의 작품인 ‘무진기행’을 직접 각색해 영화 ‘안개’의 시나리오로 매만졌다. 그렇게 ‘안개’는 소설가 김승옥이 영화인의 영역에 발을 들인 첫 번째 계기가 됐다. 그는 ‘무진기행’을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을 당시, 인물들의 동선을 둘러싸는 배경 요소 등을 즉시 떠올리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각본의 제목처럼 항상 안개 낀 마을인 무진을 찾은 무기력한 청춘들의 불안정한 사랑과 일탈을 다룬다. ‘무진기행’에서 출발한 ‘안개’는 1967년 김수용 감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올해 6월 극장가를 찾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의 탄생에도 영향을 줬다. 1967년의 ‘안개’는 신성일과 윤정희가 주연을, 이봉조 작곡가가 음악을 맡았다. 이봉조가 10대였던 정훈희에게 작업을 맡겨 탄생한 노래 ‘안개’가 영화 ‘헤어질 결심’의 삽입곡으로 쓰이게 된 연결고리가 만들어진 셈이다. ■상영중단까지 됐던 김승옥의 미발표 시나리오…‘도시로 간 처녀’ ‘도시로 간 처녀’는 김승옥 작가가 발로 뛰며 직접 수소문해 취재하는 과정을 통해 살을 붙여 나간 시나리오다. 각본엔 세 여인의 삶에서 드러나는 인생관, 그들의 사랑 방식이 곳곳에 녹아 있다. 불안한 청춘들의 노동과 삶, 사랑을 과감하게 들춰낸 작품이다. 시내버스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노동 환경, 버스회사의 횡포 등 사회고발성 요소가 자리해 있다. 1981년 개봉한 영화 ‘도시로 간 처녀’는 김수용 감독이 연출하고, 유지인과 이영옥, 금보라가 주연을 맡았다. 대종상 작품상 후보까지 오르는 등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상영 시작 일주일 만에 상영 중단됐다. 영화에 묘사된 선정적인 장면, 특정 노동자의 근무실태를 사회적 혼란으로 야기하는 장면 등이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노동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운전기사 및 버스안내양의 명예에 손상을 입히고 인권을 유린했다는 명목으로 문화공보부에 상영 중단을 요청했다. 그렇게 영화가 일주일 만에 극장가에서 사라진 비화가 있다. 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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