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등 역사가 ‘정쟁’으로 등장한지 오래다.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21세기가 됐지만, 여전히 역사는 우리를 한 마음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게 해주다가도 불화의 씨앗으로 작용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E.H 카가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던 이유일까. 이 때문에 실용 만능의 시대에서도 역사책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역사란 무엇인지, 나아가 역사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게 하는 책 두 권을 모아봤다. ■ 역사 문해력 수업 (푸른역사 刊) 과거의 모든 사실들이 역사로 기록되지는 않는다. 무궁무진한 소재들이 역사가로 하여금 선택되고 가공돼 역사로 서술된다. 고려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 이호근은 과거의 소재들이 역사가들에 의해 어떻게 채굴되고 가공되는지, 역사가들이 어떤 자세와 도구로 이 소재들을 탈바꿈하는지 보여준다. 이를 통해 역사를 읽고 쓰는 법, 즉 ‘역사 문해력’에 관해 이야기한다. 특히 저자는 역사적 진실을 사실과 달리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에 주목받지 못한 사실이 나중에 관심을 끄는 경우가 있고, 사실처럼 받아들였던 내용이 알고 보니 과장이나 조작으로 밝혀진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역사가들의 해석이 담겨 있는 사례를 설명하고 풀어낸다. 책은 무엇보다 딱딱한 논문이나 학술서가 아니라서 쉽게 읽히지만, 깊이가 있다. 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배우면서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부역자: 전쟁, 기만, 생존 (글항아리 刊) 2차 세계대전을 남다르게 관통한 세 사람의 삶을 추적해 윤리의 다면성을 보여주는 책이 나왔다. 네덜란드 출신 언론인이자 학자인 이안 부루마가 쓴 이 책은 하인리히 힘러에게 없어서는 안 됐던 개인 마사지사 ‘케르스텐’, 중국에서 일본 비밀경찰을 위해 스파이가 된 만주족 공주 ‘요시코’, 동료 유대인들을 독일 비밀경찰에 팔아넘긴 네덜란드의 하시드 유대인 ‘바인레프’가 주인공이다. 케르스텐은 유대인 살해 계획을 세운 힘러의 몸과 마음을 보살폈지만, 훗날 유대인의 구출을 돕는 일을 했다. 전쟁 시기에 일어나는 부역의 행위는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잣대에 정확히 부합하지 않는다. 저자가 선택한 주인공 3명은 누구도 완전히 타락하진 않았지만, 부역자라는 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저자는 이 같은 특징이 현대의 공공 영역에서 활약하는 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역사는 단순하지 않으며, 올바른 역사관과 사실 분별 능력으로 가짜 뉴스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면의 무의식을 길어 올려 세상과 맞닿게 하는 한정우 시인의 첫 시집 ‘우아한 일기장’이 지난달 30일 출간됐다. 그는 2019년 남구만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뛰어들었다. 살아내기 급급하다 보니 힘겨운 생활고가 앞을 가로막거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온몸으로 감각할 때가 많았지만, 운명처럼 찾아온 시와의 만남이 한 시인의 숨통을 틔웠다. 죽지 못해 치열하게 살던 삶에 치여 자신의 진정한 삶을 바라볼 수 없던 시인은 시를 쓰면서 자신의 내면과 가까워졌다. 한 시인은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전까지는 생계유지가 우선이었기에 40년 넘는 세월 동안 회사도 다녀보고 김밥 가게도 꾸려나가면서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 속 삶의 밀도를 치열하게 높여나갔다고 말한다. 그러다 문득 시인이신 고등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용인지역 문학동호인들이 모이던 용인문학회에 들어갔다. 60세가 다 돼서야 그의 인생에 시가 스며들었고, 그간의 궤적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행간에 녹여내고 있다. 제목과는 다른 역설을 보여주면서 삶의 어두운 단면들을 품은 시집 ‘우아한 일기장’은 죽음과 맞닿은 삶, 삶을 보듬는 죽음에 관해 말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흔적,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등을 엮어내는 과정의 연속이다. 도통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한 시인의 세계를 지탱한다. 그의 시엔 순수와 순수하지 않은 것들이 공존하고, 다수와 소수의 목소리가 모두 드러나기도 하며, 집단과 개인을 오가는 시선이 맴돌고 있다. 또 세계의 부조리와 맞서면서도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의 시들이 정형화와 도식화에서 비교적 느슨하게 풀려 있는 이유는 바로 그가 자신만의 시론을 내세우지 않았을 뿐더러 가식과 위선이 사라진 자리에 자신의 언어로 구축할 수 있는 세계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한 시인은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계기이자 과정이었다. 시를 써놓고 보니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며 “시가 하나하나 쌓여갈수록 내면을 펼쳐낸 일기장의 페이지가 계속해서 채워져 가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인류는 눈앞의 1년도, 아니 당장 내일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미래를 가늠하기 어렵다면, 역으로 과거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지난달 29일 출간된 ‘사피엔솔로지’는 앞날을 대비하려면 기원을 탐색할 때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는 통찰을 제시한다. ‘사피엔솔로지’는 현생 인류를 지칭하는 ‘사피엔스(Sapiens)’와 학문을 뜻하는 접미사 ‘ology’를 결합한 용어다. 내과의사로 의료 현장에서 산학연 융합 연구 등을 통해 꾸준히 학문적 통섭을 추구해온 송준호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인류의 기원으로 혁신을 내다보는 책을 펴냈다. 책은 의학뿐 아니라 인류학, 심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면서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망하고 정리해내려고 했다. 독자들이 책을 펼치면 먼 옛날 아프리카 대륙에서 발원한 자그마한 한 집단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책의 흐름에 몸을 맡겨 따라가면 그들이 어떻게 혹독한 생존과 진화를 거쳐 오늘날 현생 인류로 부상했는지 알 수 있다. 인류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자 변혁기일지도 모르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지금 인류는 진화의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시작일지도 모르는 지점에 도착한 것 같다”, “불공정이나 우울함 등 이전 세대가 남긴 희망 없는 단어에 갇혀있지 말고 과학과 이성, 그리고 비전의 세상으로 뛰쳐 나와야 한다.”
어느덧 7월의 문턱을 넘어섰다. 무더위를 피해 휴양지로 떠날 때 한 손에 잡히는 책을 챙겨보는 건 어떨까. 기차에 몸을 실을 때나, 호텔 침대에서 뒹굴 때나 지친 몸과 마음에 안식을 선사할 부담 없는 시집 두 권을 소개한다. 윤수천 시인의 4행시집 ‘당신 만나려고 세상에 왔나 봐’가 지난 3일 출간됐다. 윤 시인은 책 속에 4행시만 선별해 수록했다. 네 줄짜리 단출한 시는 과연 어떤 의미이길래 시인은 4행시의 시로만 책장을 빼곡히 채워 놓은 걸까. 소박한 네 줄의 문장 속에는 머리를 스치는 생각들, 가슴 한 편에 묻어뒀던 추억들,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서려 있다. 윤 시인은 그런 마음가짐으로 공허한 삶을 채워주는 위안의 4행시를 써내려갔다. 윤 시인은 시집을 매듭짓는 곳에 단순명료하지만 울림이 있는 4행시에 관해 “삶이 무엇이며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메시지였으면 한다. 그리고 오늘보다는 내일의 희망이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5일 출간된 김은지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여름 외투’는 계절감을 한껏 살리는 감성이 스며든 시들로 가득 채워졌다. 작고 사소한 존재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일상의 평범한 단어에서 다채로운 의미를 추출하는 김 시인은 행간마다 평소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사물과 대상들에 대한 애정을 담아냈다. 시들을 읽다 보면 시 속에 담긴 표현들이 김 시인의 일상도 가늠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읽고 싶었던 시집을 읽다가 시를 쓰는 창작 주체의 속내가 시 곳곳에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집을 덮고 나면 느껴지는 건, 김 시인의 세계에서 시를 쓰고 시와 가깝게 지내는 일은 특별히 시간을 쪼갰을 때만 성립되는 게 아니라 일상 그 자체라는 사실이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대면 수업이 2년여만에 재개되면서 시끌벅적한 학교의 모습에서 생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원만한 교우관계를 유지하며 행복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 부적응적인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대면수업 후 늘어난 학교폭력도 걱정거리 중 하나다. 서점가에서는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해 아이들간 마음의 거리를 줄이는 방법을 담은 다양한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청소년기 인간관계에 대한 성숙한 태도와 방법을 알려주는 두 권의 책을 모아봤다. ■ 10대를 위한 관계 수업 (또다른우주 刊) 청소년기는 본격적인 사회성을 키우기 시작하는 중대한 전환점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이 시기 아동과 청소년은 상당 기간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는 데 제약을 받았다. 메이지대 문학부 교수이자 영향력 있는 교육학자로 활약하고 있는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팬데믹 시기를 겪은 우리에게 필요한 혼자가 되는 용기, 타인과 연결되는 힘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저자는 청소년기에 익혀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가 가까운 친구 만들기, 친구가 아닌 사람들과도 평화롭게 공존하기 등의 기술이라고 역설한다. 이에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힘’, ‘마음이 맞는 친구를 사귀는 힘’,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잘 지내는 힘’을 ‘행복의 삼각형’이라고 명명하고 균형을 이루는 법을 알려준다. 이 세 가지 힘이 있으면 주체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해로운 관계에서 쉽게 벗어나거나 집단심리에 휘둘려 따돌림에 가담하는 일을 피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 느티나무 수호대 (돌베개 刊) 지난 2000년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던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저자 김중미 작가가 또 한 번 청소년들의 모습을 소재로 해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고립의 시대, 돌봄과 연대의 힘으로 외로운 마음들을 다시 연결하는 치유와 희망의 이야기다. 이주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작품 속 지역 ‘대포읍’엔 수백 년 전부터 마을을 지켜 온 느티나무가 있다. 작가는 나무의 정령이 인간의 모습을 한 ‘느티 샘’이 돼 아이들을 나무 안의 세계로 불러 모아 돌봐준다는 판타지적 상상력을 펼친다. 코로나19 이후 고립돼 외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학생 도훈이도 느티 샘과의 만남으로 친구들을 사귀며 힘을 얻는데, 어느 날 재개발로 느티 언덕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느티 샘을 돕기 위한 ‘수호대’를 꾸린다. 우정의 힘으로 마을 공동체를 지키려는 아이들의 노력은 성공할 수 있을까.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항상 문 닫고 꼿꼿하게 앉아서 책을 외우며, 시간을 허비하지 말거라.’ 퇴계 이황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인생 지침서’가 출간됐다. 김운기의 ‘아들에게 쓴 편지 1, 2, 3’은 퇴계가 맏아들 ‘준’에게 30년간 보낸 총 531통의 편지를 모아 번역한 책이다. 퇴계는 그동안 조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알려지며 학자, 정치가, 교육자로서의 면모가 많이 부각돼 왔다. 이 같은 위인적인 평가가 주를 이뤄왔기 때문에 퇴계의 가족 간 오간 편지는 소소하다고 여겨져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저자는 퇴계의 종택으로부터 위탁 보관된 한국국학진흥원의 편지글을 모두 번역, 퇴계의 개인적인 면모와 가정사를 부각했다.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생활인, 자상하고 세밀하면서도 사람됨을 가르치는 철저한 아버지로서 인간적인 퇴계의 모습을 책에 담았다. 퇴계의 편지들은 3권에 나눠 담겼다. 1권은 아들의 학령기에 해당하는 1540년부터 15년간의 편지로, 아들의 학업과 인성 교육이 주를 이루고 집안 살림에 대해 상의하는 내용들로 구성됐다. 2권은 아들이 출사한 1555년부터 13년간의 편지로, 공직자의 자세와 손자 교육에 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3권은 1568년부터 3년간 날짜를 알 수 없는 편지들을 모았다. 책은 450년 전, 퇴계가 500여통의 편지로 했던 아들과의 소통을 통해 진정한 가정교육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현대사회의 모든 부모가 고민하는 자녀교육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김운기는 “7년간 퇴계 이황을 연구해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퇴계의 학문적 성과와 위인적 면모에만 치우쳐 사실과 다르게 알려진 면이 있어 편지 번역을 통해 훌륭한 개인적인 면모를 알리고자 했다”며 “퇴계의 편지는 오늘날의 부모들이 도움받을 수 있는 인성교육의 교과서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6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한 이들을 기리고 조명하는 달이다. 서점가에도 독립, 항일, 보훈과 관련된 주제가 빼곡히 들어섰다. 독립을 위해 일제와 맞서고 역사를 지키려 했던 이들을 다양하게 그려낸 책 두 권을 소개한다. ■ 총 한 자루로 외세에 맞선 홍범도의 불꽃같은 생애 ‘범도’ 1920년 6월 7일, 3·1운동 이후 대한독립군이 일본군과 처음으로 맞붙은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독립군이 대승을 거둔 ‘봉오동 전투’. 이 전투를 이끈 이는 일제강점기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대한독립군단 부총재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홍범도다. 의병으로 활동하다 일제에 강제 해산을 당한 뒤 연해주와 만주를 떠돌며 군수품을 마련해 대한독립군으로서 싸워왔다. 홍범도가 항일 무장투쟁에 투신하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범도(문학동네 刊)’가 최근 발간됐다. 항일 투쟁을 이어나가는 인간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굳은 신념을 굽히지 않은 이도 있지만 때론 비겁한 인물도, 때론 좌절하는 인물도 있다. 저자가 그리는 인물은 영웅이 아니다. 어떤 가치를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를 끝없이 고민하며 성장해 나가는 평범한 모습이다. 그래서 저자가 그린 홍범도의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독립군을 이끈 홍범도는 중앙아시아로 강제 추방 당해 카자흐스탄의 한 도시에서 극장 수위로 일하다 생을 마감했다.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지만 해방 2년 전인 1943년 머나먼 타국에서 생을 마감한 그의 유해는 2021년 8월 15일에서야 비로소 국내로 봉환됐다. 한 인간의 성장과정과 독립에 대한 의지, 외세의 침략에 자신과 민족과 국가를 지키려 했던 인물의 일대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책은 신동엽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방현석이 펴냈다. 수 년 간의 취재와 자료 조사를 거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집필한 그의 필생의 역작으로 꼽힌다. ■ 역사학자가 전하는 독립운동 역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현장을 가다’ “역사학자의 길은 연구와 답사로 요약될 수 있다. 연구가 문헌사료들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면, 답사는 사료들의 현장을 직접 목도함으로써 사료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장답사를 통하여 비로소 역사가의 논문과 저술이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986년부터 수원대학교 사학과에 재직하며 역사를 탐구해 온 박환 교수(65)가 오는 8월 정년 퇴임을 앞두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현장을 가다’(선인 刊)를 펴냈다. 박환 교수가 임시정부를 직접 누비며 답사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옮겼다. 독립운동사 전공자인 그는 “임시정부 전문가가 아니라 답사 책자 간행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면서도 “임시정부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전문 안내서가 많지 않음을 인지해 용기를 내게 됐다”고 밝혔다. 책은 이러한 그의 신념과 의지가 반영돼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를 전문가들의 조언과 연구, 수정 보완을 통해 한 자 한 자 써내려 나갔다. 1장에서는 상해, 유주, 중경 등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 2장에선 학병으로 징병돼 일본군을 탈출하는 장준하의 발길을 따라간다. 3장에선 조선의용대와 조선의용군을 살펴본다. 책에선 오늘날 잊어선 안 되는 역사를 발로 직접 누비며 생생하게 전하려는 역사학자의 신념이 읽힌다. 조국의 광복을 향한 열정이 숨쉬는 현장을 고집스럽게 따라가고 발굴하면서도 각종 구술과 사진 자료, 방대한 자료를 철저하게 고증해 오류를 수정한 노력이 맞닿아 더욱 큰 감동이 전해지는 듯 하다.
■ 해독요법(모아북스 刊) 무더운 여름, 옷차림이 가벼워지면서 다이어트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특히 여름철엔 땀배출이 많아지면서 몸이 축축 쳐지기도 해 탄탄한 면역 시스템으로 건강 관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 박정이는 25년간 해독 요법으로 건강 관리 방법을 전하던 노하우를 책에 담았다. 저자는 유기농 식품, 슈퍼푸드, 영양제 등 몸에 좋은 먹거리가 넘쳐나지만 이유 없이 아프거나 완벽한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때, 몸 안에 독소를 제거하는 ‘해독’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한다. 독소를 제거하고 분해하기 위해선 그것이 생성되는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저자는 그 실마리가 올바른 식생활과 생활습관에서 나온다며 16시간 해독과정의 실천법을 소개한다. 책은 대학 교수, 병원장, 한약학 박사 등에게 감수를 받아 완성됐다. 깨끗한 몸속을 위한 비움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공간의 진정성(효형출판 刊) 호화롭게 지어진 건물보다 손떼 묻은 일상공간이 주는 평범함이 좋을 때가 있다. 긴 세월 조화롭게 함께 한 공간은 아름답다. 하버드대 디자인대학원 건축과를 졸업한 뒤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 김종진은 세상의 모든 장소와 공간엔 그곳만의 맛과 향기, 모양, 소리, 감촉이 있다고 말한다. 건축과 공간이 깊이 있는 경험을 더 많이 제공할 때 우리의 삶은 풍부해지는데 겉모습만 화려한 건축, 끝없이 소비만 부추기는 공간은 이 같은 경험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영국박물관의 ‘그레이트 코트’는 활용도가 낮은 중정이었지만, 벽돌을 철거하고 투명한 유리로 지붕을 덮어 개방적인 공용 홀로 ‘공간의 안무’를 새로 짜자 공간과 사람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생겼다. 이렇듯 저자는 공간의 가치는 사람과의 교감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저자는 차분하고 따스한 문장으로 공간의 본질에 관해 진실한 감정을 전달한다.
이종원 교수의 ‘신 사진학 개론’ 출판을 기념하는 저자 강연회가 지난 10일 오후 2시 팔달문화센터 대강당에서 성료했다. 이날 행사장엔 유수찬 ㈔한국사진작가협회 이사장, 신현하 ㈔한국사진작가협회 제30대 운영자문위원회 위원장, 오현규 수원예총 회장, 조희문 영화학 박사, 이순국 경기일보 사장, ㈔한국사진작가협회 수원지부 회원들 및 사진예술계 관계자들을 포함한 100여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정연수 한국사진작가협회 수원지부장이 사회를 맡은 이번 행사에선 강연이 시작되기 전 이순국 경기일보사 사장이 후원을 통해 책 출간에 큰 역할을 한 공로로 감사의 꽃다발을 받았다. 68년간 사진에 온몸을 바쳐온 이종원 교수는 사진이 인류 역사에 어떻게 공헌할 수 있는지 늘 고민하면서 다양한 연구와 창작 활동을 지속해왔다. 그는 ㈔한국사진작가협회 수원지부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한국사진대전 운영위원장, 한국사진대전 심사위원, 인간문화재 명인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경기도문화상 예술부문상, 한국예총의 한국예술문화대상, 한국사진작가협회 한국사진문화 공로상을 수상하면서 영향력을 입증해왔다. 이 교수는 경기·인천 지역 문화재를 집대성한 ‘경인문화재총람’, 북한과의 협력사업으로 편찬한 ‘남북조류도감’을 비롯해 8권의 도감류를 발행했고 이번 ‘신 사진학 개론’ 발간으로 사진의 이론과 실기 등을 총망라한 분석서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의 저서에는 사진술의 시작점이 1839년 ‘다게레오그라피’의 완성이 아닌, 안젤로 살라가 질산은의 감광현상을 알아냈고 ‘카메라 옵스쿠라’를 그림 묘사에 활용했던 르네상스 시대 1614년이 사진이 시작된 원년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이에 따라 강연에서 이 교수는 “통상 알려져 있는 사진의 역사를 다시 되짚어보고 역추적하기로 결심했다”고 강조했다. 책에는 사진 기술의 발달이 미술의 100년 암흑기를 몰고 왔으며, 사실주의에 집중됐던 미술 사조가 현대 미술의 사조로 옮겨오는 데 촉매 역할을 유도했다는 점에 대한 논증이 담겨 있다. 이 점이 책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지는 만큼, 이 교수는 강연을 통해 다양한 시대의 사진 자료를 활용해 설명을 곁들여 객석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종원 교수는 “그간 살아오면서 ‘사진이 과연 인류에게 어떻게 공헌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몰두하는 데 인생을 걸어 왔다고 자부한다”며 “역사에 역사를 덧붙이는 형식으로 쌓여온 사진의 역사를 교정하는 어려운 과업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우리는 사람과의 끊임없는 교류 속에 관계를 만든다. 사람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시인의 시집 두 권이 인간을 바라보는 일에 관한 생각의 단초를 제공해 준다. 시인의 눈에 비친 세계는 희망이 없고, 인간을 향한 애정을 잃어버린 자는 씁쓸함을 움켜쥔다. 그렇기에 그는 오늘도 불편한 진실과 쓰라린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려고 한다. 그럴 때 진정한 치유와 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한 이영주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좋은 말만 하기 운동 본부’가 지난달 25일 발간됐다. 25편의 시와 한 편의 에세이. 인간 중심 사고에 의문을 표하면서 눈앞의 현실 무대를 환상과 연결해 모순과 폭력을 소환하는 시들이 실렸다. 에세이는 인간의 관점에서 ‘반려’라는 개념을 생각한 내용을 담았다. 그의 눈은 주변의 일상이나 특별한 추억들에 머물러 있지만, 그의 언어는 우리들의 현실에서만 유효한 게 아니다. 저자의 세계에서 화려한 수사나 음성상징어는 허용될 수 없다. 그의 시는 장식되지 않은 언어의 존재감을 내비친다. 그가 묘사해낸 세계는 읽는 이의 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다가도 현실의 법칙이나 인과 관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시 속의 화자는 음식점에서 닭갈비를 먹다가도 얼음 위를 건너가고 동굴 속에서 고뇌에 빠진다. 그곳에는 천사도 있고 유령도 떠돈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뒤틀린 동시대 현실의 문제들이나 소모되는 감정의 덩어리들을 가늠해볼 기회를 얻는다. 시인은 계속해서 꿈틀대는 감정을 간신히 눌러담은 긴장감을 행간에 녹여내고 있다. 그는 함축된 시어에 기대지 않는다. 오로지 평서문이 자아내는 리듬에 의지한다. 어쩌면 그가 감정을 응축했기 때문에 그것들이 만드는 이미지의 폭발력이 더 커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시인의 생각을 조금 더 들여다보려면 지난해 11월 출간됐던 여섯 번째 시집 ‘그 여자 이름이 나하고 같아’를 살펴보면 좋다. 이 시인은 뼈나 심장과 피처럼 육체와 결부된 감각을 계속해서 끌어온다.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인간에 대한 다채로운 관점을 육체 이미지의 나열과 함께 풀어내면서 우회하지 않는 표현의 진정성을 만들고 있기도 하다. 들어가는 입구에 눈길을 사로잡는 시인의 한마디가 있다. “상처는 우리의 자연. 고통에 여백을 주자” 그리고 시집이 닫히는 곳에서도 시인은 진심을 털어놓았다. “나는 반어와 역설의 인간. 늘 웃고 있거나 화내고 있다. 웃음과 분노. 반어와 역설의 지평에서 열린다. 같은 것일까. 나는 잘 웃고 화를 잘 낸다. 하지만 시원하고 행복하게 웃어본 적이 없고, 모든 것을 바쳐 화를 내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