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수도권 관광 혁신안’ 차기 정부에 제안

우리는 여행을 단순히 ‘즐거움’으로만 생각하지만 관광산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 그 이상이다. 세계 각국은 국내총생산(GDP)과 고용의 약 10%를 관광에서 창출하지만 한국의 관광산업 GDP 기여도는 고작 2.8%로 비교 대상 51개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지난해 방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인 약 1천637만명에 도달했으며 외국인 관광객의 지출액은 전년 대비 32%나 증가했다. 그러나 내국인의 관광 지출은 오히려 4.7% 감소하는 등 불균형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관광산업의 핵심 축인 경기 및 인천지역의 관광혁신은 국가 경제 활성화의 열쇠다. 수도권은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하지만 전체 인구의 50.8%가 밀집해 있으며 2020년 기준 세계 수도권 경제 규모 순위에서 4위를 기록할 정도로 경제적 잠재력이 크다. 차기 정부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수도권 관광 혁신안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디지털 기술 기반 스마트 관광 인프라 구축이다. 오늘날 관광객들은 단순히 ‘보는’ 관광에서 ‘경험하는’ 관광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관광데이터랩의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관광객들은 관광지에서 더 짧은 시간을 머물지만 더욱 다양한 경험을 원한다. 차기 정부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수도권 관광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혼잡도 관리, 개인 맞춤형 관광 코스 추천, 축제장에서의 주차 및 식음 결제시스템 등 스마트 관광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경기도와 인천의 잠재력 있는 관광지를 서울과 연계하는 AI 맞춤형 스마트 관광 생태계를 조성하면 관광객의 체류 기간을 늘리고 지역 간 관광 불균형도 해소할 수 있다. 둘째, 수도권 지역별 특화 관광 콘텐츠 개발이다. 현재 수도권 관광은 서울에 집중돼 있다. 차기 정부는 서울-인천-경기도를 아우르는 ‘수도권 관광벨트’를 구축하고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린 관광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서울의 도심·역사·문화와 인천의 해양·섬 관광 및 외래객 환승 관광, 경기도의 자연·생태·융복합 관광을 연계해 수도권 전체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광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급증하는 ‘마이크로 투어리즘(근거리 여행)’과 ‘숏컷여행(1박2일 수준의 짧은 숙박여행)’ 같은 트렌드를 반영한 수도권 내 특화 콘텐츠 개발이 시급하다. 셋째, 민관 협력 기반 관광산업 거버넌스 혁신이다. 관광산업은 숙박, 음식, 교통, 쇼핑, 엔터테인먼트, 체험 등 다양한 분야가 복합적으로 연계된 산업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관광정책은 부처별, 행정구역별로 분절돼 있어 통합적인 정책 추진이 어렵다. 차기 정부는 수도권 관광을 총괄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대통령실 내 ‘관광진흥비서관’ 신설과 지자체에서는 서울-인천-경기도를 아우르는 ‘수도권 관광협의체’를 설립해 지역 간 경계를 넘어선 통합적인 관광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수도권 관광 혁신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넘어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과 문화적 자긍심 고취, 국민 삶의 질 향상까지 포함한다. 또 수도권을 통해 활성화된 관광은 다시 지방소멸지역 등과의 연계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차기 정부는 위에서 제시한 세 가지 혁신안을 핵심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수도권 관광을 혁신하기 위한 범정부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진정한 K-관광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천자춘추] 실패, 단절 아닌 순환이어야

한 중소기업 대표는 수년간 기술을 개발하고 인력을 고용하며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회사를 운영해 왔다. 하지만 거래처 부도와 납품 대금 미수금이라는 외부 변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폐업을 결정했다. 그가 쌓아온 기술력과 사업 경험은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자산이다. 하지만 한 번의 실패가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이 돼 재도전의 길은 너무도 멀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아직 실패에 대해 관대하지 않다. 과거의 부실 기록이 금융기관 평가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신용보증이나 대출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는 일이 다반사다. 이처럼 재도전 의지가 있는 기업인조차 제도적 장벽 앞에 좌절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정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재도전 성공 패키지’를 통해 최대 1억원의 사업화 자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재창업 특화 교육’ 등을 통해 창업 실패자의 재기를 돕고 있다. 최근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도 재기 기업 전용 보증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여전히 ‘실패 이력’에 대한 금융기관의 보수적 판단이 남아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이스라엘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창업 국가가 됐다. 실패한 이력이 있는 기업인에게도 동일하게 정부 보조금과 보증 혜택을 제공하며 심지어 민간 투자자들은 실패 경험을 오히려 ‘학습된 리스크관리 능력’으로 평가한다. 미국 실리콘밸리 역시 ‘빨리 실패하고 더 빨리 배워라(Fail Fast, Learn Faster)’는 문화 아래 실패는 성장의 필수 과정으로 간주한다. 유럽연합(EU)도 ‘세컨드 찬스(Second Chance) 정책’을 도입해 실패 기업인의 신속한 회생과 재창업을 위한 법제도 정비를 병행하고 있다. 물론 도덕적 해이를 경계해야 한다. 제도를 악용하는 일부를 가려낼 수 있는 신용평가의 정성적 요소, 도덕성 기반 스크리닝 시스템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그러나 이는 일부의 문제일 뿐 대다수 진정성 있는 창업가들이 재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적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제는 단순한 창업 장려를 넘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재도전 친화적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더 나은 시작이다. 그들을 다시 경제의 중심으로 이끌 수 있는 길을 지금 더 넓혀야 할 때다.

[사설] 수원 정치인 김용남의 당적 쇼핑, 너무한다

딱 3년 전 정치인 김용남의 옷은 붉은색이었다. 국민의힘 수원특례시장 후보였다. 수원은 민주당 절대 강세 지역이다. 5개 선거구 현역 의원이 모두 민주당이다. 개표 상황이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박빙이었다. 최종 득표율 49.1%로 김 후보가 패배했다. 1위와의 차이는 0.57%, 2천928표였다. 전국에서 가장 큰 기초자치단체장선거였다. 130만 수원시민에게 강한 인상을 줬다. 4년 뒤 재도전을 말하는 지지자도 많았다. 그 옷이 19개월 만에 오렌지색으로 바뀌었다. 2024년 1월 개혁신당에 입당했다. 국민의힘 탈당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희망도 갖기 어렵다...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 얼마 전까지 윤석열 정부의 대표 선수였다. 윤석열 정부 성공을 연설했었다. 그랬던 그가 쏟아낸 비난이다. 지역 정치권은 싸늘했다. ‘국민의힘에서 총선 공천 안 주니까 탈당한 것’이라고 했다. 개혁신당에 빠르게 적응했다. 이준석 대표 측근이 됐다. 그때부터 16개월이 지났다. 또 바뀌었다. 이번에는 파란색이다. 5월17일 광주 서구로 내려갔다. 김대중컨벤션센터 광장 이재명 유세장이었다. 이 후보를 지지했다. 그 이유를 말한다. ‘내가 낸 책과 이 후보 공약이 똑같더라.’ 개혁신당 탈당의 변은 국민의힘 때와 같았다. “(개혁신당은) 한 사람의 팬클럽 수준으로 당이 운영된다.” 정말 그게 다 일까.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말했다. “총선에서 비례받고 싶어했는데 못 받은 분이다.” 정치철새들의 계절이다. 하도 많아 거명할 수도 없다. 그런데 정치인 김용남을 거명한 이유가 있다. 많은 시민이 그를 수원 토박이로 말한다. ‘남문시장 가겟집 아들’로 부르기도 한다. 동문회에서 그는 여전히 희망이다. 그래서 정치 입문부터 ‘수원의 미래 정치’였다. 초창기 남경필 전 지사와 갈등도 있었다. 그 모습조차 ‘당차다’며 지지를 보냈던 유권자가 많았다. 이렇게 기대를 모았던 그가 언제부터 ‘당적 장돌뱅이’처럼 됐다. 안쓰럽다. 어느 지역이든 지역만의 정치는 있고, 경기도 수부 도시 수원 정치도 그렇다. ‘도청·삼성 유치’라는 유산을 남긴 정치, ‘최초의 수원 출신 도지사’가 된 정치, ‘부총리·국회의장’을 역임한 정치가 있다. 저마다 이념과 정당은 달랐다. 하지만 저마다의 정치적 지조 속에 6~7선을 했다. 5·16계(이병희)로, 보수계(남경필)로, 민주계(김진표)로 살았다. 때론 낙선도 했다. 하지만 공천 찾아 극단의 정당을 찾지는 않았다. 이재명 지지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책적 동질성 발견’이라고 그가 설명했다. 모쪼록 이게 마지막 선택이기를 바란다. 파란 점퍼가 그의 마지막 당복(黨服)이기를 바란다. 어쩌면 김용남 당복을 궁금해할 시민이 더는 없을는지도 모른다.

[사설] 아동 실종 부모들은 경찰만 바라보고 산다

‘평택 실종 딸 송혜희’ 사건을 모두가 안다. 1999년 2월13일 버스정류장에서 사라졌다. 집 근처였는데 행방불명됐다. 아버지 송길용씨가 전국을 돌며 찾았다. 300만장의 전단까지 뿌렸지만 찾지 못했다. 25년을 고생하던 아버지 송씨가 작년 8월 숨졌다. 안타깝게도 교통사고였다. 아내는 우울증을 앓다가 오래전 사망했다. 우리에게 가슴 아프게 남아 있는 실종 아동 가정이다. 이런 비극이 우리 주변에 많다. 36년째 딸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사연이 있다. 본보 취재진이 전한 한소희양(당시 7개월) 실종 사건이다. 1989년 5월18일 수원시 남창동에서였다. 30대 여성이 집을 찾아와 ‘물을 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물을 주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기가 사라졌다. 지금은 60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여성의 범행으로 짐작된다. 어머니 이지우씨는 “딸에게 나는 지금도 너를 찾고 있다고 전해주고 싶다”며 눈물을 훔쳤다. 세상 가장 큰 슬픔이 자식을 잃는 슬픔이라고 했다. 생사도 모르는 이별이니 어떻겠나. 아동 실종의 실태를 본보가 살펴봤다. 경기남·북부경찰청 통계를 봤는데 계속 늘고 있다. 2020년 5천843건, 2023년 7천51건, 지난해 7천93건이다. 1년 이상 찾지 못하면 장기 실종 아동으로 분류된다. 이게 현재 191명이다. 여기서 54%인 105명은 실종 10년을 넘기고 있다. ‘평택 송혜희 아빠’나 ‘수원 한소희 엄마’의 예다. ‘실종 아동의 날’도 벌써 19년 째다. 국민적 경각심과 관심이 도움되고 있다. 실종자 가족 찾기 시민 모임도 있다. 많은 시민이 여기도 참여해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민간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전산망과 인력을 갖춘 경찰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간혹 실종자 가족의 극적인 상봉 얘기가 전해진다. 대부분 경찰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또 아동 실종은 명백한 사건이다. 이래저래 경찰 업무의 영역에 든다. 경찰 조직에서 이 업무가 축소된 듯 보인다. 경기남·북부경찰청을 봤다. 아동 실종 사건 전담 인원이 2명씩 있다. 독립된 팀은 아니고 형사기동대에 속한 인력이다. 2023년까지는 남·북부청에 각 6명씩 배치돼 있었다. 이게 2024년 조직 개편으로 현재 상태로 줄었다. 제보 분석, 보육원 순찰, 관련 기록 조회 등 일이 참 많다. 실종 아동이 살폈듯이 수천명이고 장기 실종 아동도 수백명이다. 늘려줘도 부족한데. 실종 아동 하나를 구하는 것은 한 부모를 구하고, 한 가정을 구하는 것이다. 경찰의 어떤 업무 못지않게 숭고하고 절박하다. 격무에 짓눌린 경찰 현실을 왜 모르겠나. 그렇더라도 실종 아동에 대한 배려와 고민을 부탁한다. 일선 경찰서, 현장의 파출소까지 연계하는 시스템 마련을 부탁한다. 그 감사한 일을 경기 경찰이 먼저 해줬으면 좋겠다.

[지지대] ‘성별 지우기’ 대선

18년 만에 여성 후보가 0명인 제21대 대통령선거다. 18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17대 대선 당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이회창 무소속 후보 등 남성만 후보로 등록했다. 5년 후인 2012년 18대 대선은 여성의 진출이 가장 활발했다. 후보 등록 마감일 기준 총 7명 중 4명이 여성이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 김소연·김순자 무소속 후보 등이 출마했다. 선거일 직전 이정희 후보가 사퇴해 3 대 3으로 성비가 동등해졌다. 19대 대선에선 15명의 후보 중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가 유일했다. 이어 2022년 치러진 20대 대선에선 심상정 전 대표, 진보당 김재연 후보가 이름을 올렸다. 공약에서도 여성이 사라졌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를 제외하곤 10대 공약 등 정책의 전면에 ‘성평등’이나 ‘여성’의 키워드가 드러나지 않는다. “이번 대선은 사실상 젠더 이슈가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오자 각 대선 후보 캠프는 부랴부랴 여성 공약을 펴냈다. 여성 표심 잡기에 나섰지만 구호에선 남성 표를 의식한 조심스러움이 묻어난다. 젠더 이슈가 봇물 터지 듯 나왔던 2022년 대선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득표를 위해 성평등 의제를 ‘성별 갈라치기’ 전략으로 활용했던 당시 대선의 후유증 탓이다. 사회적 함의가 사라지고 ‘남’과 ‘여’만 남은 자리에 성평등은 정치권에서 다루기 불편한 담론으로 변질됐다. 여성 학자들은 이번 대선 후보들이 ‘성별 지우기 전략’을 세웠다고 비판한다. 문제는 선거 이후다. 성평등 정책이 다른 성별의 공격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해 선명성을 흐릴 만큼 젠더 갈등은 여전하다. 저출생, 돌봄 문제, 사회 갈등은 성평등을 갈등이 아닌 통합 영역으로 바라볼 때 해결할 수 있다. 이 문제들은 사회의 지속성과도 맞물려 있다. 몇 년 전 젊은 유권자들이 짊어진 아픔에 올라타 생존하려 했던 정치권이 이제 정말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함께하는 미래] 가축의 편에서

템플 그랜딘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카우보이 복장에 열정 가득한 눈을 가진 그는 가축 복지 분야에서 가장 존경받는 박사다. 템플은 자폐를 안고 살았고 주변 사람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소음과 장면이 참을 수 없는 불안과 공포로 밀려오곤 했다. 어린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고모 부부가 운영하는 소 농장에서 지내면서 부터였다. 농장 심부름을 하며 바라본 소는 불안했던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그는 맑은 눈의 소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떨리는 순간이었다. 덩치 큰 소들은 일제히 그를 에워쌌지만 전혀 다치게 하지 않았다. 차츰 바닥에 앉기도 하고 때로는 누워 소와 시간을 보내면서 템플은 동물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는지 공감했다.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석사과정으로 동물과학을 공부하면서 가축 핸들링과 도축장 문제의 원인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인지했다. 특히 도축장의 소가 앞으로 가지 못하고 갑자기 멈추는 일이 흔한데 핸들러들은 이유를 몰라 소리를 지르거나 막대기로 위협하는 일이 잦았다. 소가 멈추는 이유는 시각, 청각, 후각이 예민하고 정보 처리하는 전두엽의 운영체계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만약 햇빛에 반사된 물이나 작은 소음, 바닥에 음영이 나타나면 동물은 심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템플은 가축의 스트레스 행동과 환경 요인의 관계를 종합해 연구를 진행했고 이를 통해 가축 핸들링 기준과 동물복지 도축장 시설 설계를 이끌었다. 그가 설계한 곡선형 통로는 가축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도록 유도해 스트레스를 최소화했다. 이 시설은 오늘날 미국과 캐나다 대형 도축장의 절반이 채택해 수많은 동물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여주고 있다. 동물보호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동물권리(animal right)를 떠올린다. 동물권리는 인간의 목적을 위해 동물을 이용하는 것 일체를 반대한다. 동물보호 단체의 이념과 실천 열정은 생명존중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먹거리 보급을 위해 가축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동물의 고통을 덜어주기가 어렵다. 인류가 살아가는 한 가축은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동물보호에도 동물복지와 같은 현실적인 노선이 병행돼야 한다. 인류에게 희생되는 가축이기에 더 외면받지 않아야 하고 사각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 그런 가축이 처한 현실을 현장에서 정면으로 마주한 사람이 바로 템플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항의가 끊이지 않았다. 일부 동물권리론자들은 그의 활동을 “가축 도축을 정당화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가축의 운명을 살아가는 동물에게 일생을 바쳐 더 나은 삶을 제공하려 노력했고 실질적인 결과를 선사한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이러한 사례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동물을 보호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때론 협력하고 때론 각자의 길을 응원할 때 비로소 더 많은 동물에게 보다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템플 그랜딘의 이야기는 동물 이용의 최전선에 놓인 가축의 이야기다. 가축의 편에서, 현실의 한가운데서 동물복지가 절실한 생명에게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한 사람에게 존경을 표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저서 ‘동물과의 대화(Animals in Translation)’ 첫 페이지에 나오는 글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나는 동물을 사랑한다. 그것이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다.”

[기고] 초록우산 경기지역본부, “국가 과제를 말할 땐 아동부터”

5월 가정의 달은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아동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시기다. 하지만 올해는 6월로 예정된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국가의 미래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경제, 복지, 안보 등 다양한 주제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지만 정작 우리의 미래인 아동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정책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집중되는 지금,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아동에 대한 관심 역시 함께 깊어져야 한다. 단지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인 아동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다. 지금이야말로 아동 문제에 주목해야 할 때다. 아동 곁에서 마주하게 되는 가장 절실한 과제 중 하나는 이주배경아동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다. 이들은 이미 학교와 지역사회 곳곳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초록우산 경기지역본부는 이주배경아동의 한국 생활 적응을 돕기 위해 한국어 교육과 돌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경기도내 복지기관과 협력해 지원을 확대할 예정이다. 특히 언어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아동을 위한 한국어교실과 돌봄교실 운영을 도울 계획이며 진로 개발 프로그램도 마련해 공교육 진입과 안정적인 한국 사회 적응을 지원하고자 한다. ‘온라인 세이프티’는 지금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다. 요즘 아동은 아주 어린 나이에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여러 정보에 노출돼 있으며 그중에는 해로운 내용도 있다. 해로운 정보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려면 어른들의 관심과 지도가 절실하다. 초록우산 경기지역본부는 아동권리옹호단을 운영하며 ‘온라인 세이프티’를 주제로 활동해 왔고 디지털 환경 속 아동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다. 아동이 직접 만든 ‘아동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제작하기도 했다. 위기 상황의 영아와 임산부에 대한 지원 역시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과제다. 최근 수원시에서 발생한 위기 영아 사망 사건은 그 심각성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이에게는 돌봄이 필요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위기에 놓인 임산부와 영아는 여전히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초록우산 경기지역본부는 ‘마음모아지원사업’을 통해 위기 임산부를 조기에 발굴하고 경제적·심리적인 지원을 제공해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6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시선이 국가의 미래를 향하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는 아동을 위한 준비가 더없이 중요하다. 정부는 아동이 행복하게 자라고 모든 아동이 차별 없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아동은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미래 그 자체다. 아동 문제에 대한 관심과 해결은 곧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첫걸음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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