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만평] 이정도는 돼야...

[사설] ‘13조 통과’ 국민의힘, 보수·야당임을 포기하다

국회가 13조원의 민생지원금을 의결했다. 전 국민에게 15만~50만원씩 주는 돈이다. 예산은 중앙정부가 전액 부담하기로 했다. 당초 중앙정부 10조원, 지방정부 3조원으로 배분했었다. 지방정부 부담을 줄이자는 지적에 따라 바뀌었다.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 예산 6천억원도 통과시켰다. 두 예산 모두 이재명 대통령의 대표 정책이다. 곧 본회의 표결을 거쳐 확정된다. 이달 중순께 전 국민에게 지급될 전망이다. 기대하고 있는 국민이 많다. 옳고 그름을 토론할 계제는 아니다. 하지만 지적해둘 일이 있다. 도저히 이해 못할 국민의힘의 대처다. 이 문제에 대해 시종일관 반대해 왔다. 2024년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 때부터 그랬다. 22대 총선의 민주당 공약이었다. 그해 8월2일 국회가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힘은 ‘현금 살포법’이라며 반대했다.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까지 동원했다. 당일 법안 표결에도 불참했다. 그랬던 국민의힘이 이번에는 달랐다. 1일 행안위에 참여해 통과시켰다. 작년에는 ‘나랏빚으로 이재명 빛내는 법’이라고 비난했다.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떠 안기는 법’이라고도 했다. 내용은 이번에도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나랏빚’ 늘어나는 일이고, ‘미래세대’에게 부담 주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반대로 돌아섰다. 입장이 바뀔 것이라는 조짐도 설명도 없었다. 이렇게 해도 되나. 보는 국민이 의아하다. 내놓는 설명이 궤변이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이 말했다. “의석수상 저희가 반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합의 처리가 아니라 절차적인 협조를 하는 것이다.” 또 “제가 대통령이었다면 국가채무를 동원한 소비쿠폰 예산은 편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내용상으로 선명한 반대를 남긴다”는 말도 남겼다. 같은 당 이성권 의원의 발언도 있다.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안겨 주는 것이다... 정부가 지속해서 고민해야 한다.” 짐작 못한 건 아니다. 선거 때마다 ‘현금 지원’이 등장했다. 그때마다 국민의힘이 보인 루틴이 있다. 처음에는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찬성으로 바꿨다. 어떤 때는 민주당의 ‘현금 지원’을 베끼기도 했다. 표를 의식한 타협이었다. 이번도 그런 것일 수 있다. 문제는 입장 변경에 대한 절차와 설명이다. 보수의 가치와 관련된 문제다. 당론과도 같았던 입장이다. 그걸 바꾸려면 절차와 설명이 있어야 했다. 의석수가 적어서 반대하지 못했다는 해명. 이 논리면 이재명 정부 내내 야당은 없을 것이다. 제2 지원금, 제3 지원금도 계속 견제받지 않을 것이다. 이런 보수·야당이 존재할 이유가 있나. 지금의 107석도 후해 보인다.

[사설] 수백억 들여 어항공사만... 귀어 이끌어야 어촌 살아난다

다시 ‘소멸’ 경고등 켜진 인천 어촌마을 얘기다. 섬마을이 비어 가는 것도 여느 시골의 지역 소멸과 사정이 다르지 않다. 원주민 고령화와 청년 유출이다. 한 집 두 집 비어 가지만 주민 유입은 멈춰 있다. 귀촌 귀어가 유행을 탔지만 금방 녹록지 않은 현실에 부닥친다. 인적 끊인 섬마을을 피하려면 벌어먹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간의 어촌 지원 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어촌 뉴딜’까지 내걸었지만 고답적인 인프라 투자에 치중했다. 배를 몰고 나갈 어민은 줄어드는데 어항에 돈이 퍼부어졌다. 청년 유입을 지탱해 줄 수산기술 보급 등 소프트웨어 지원은 뒤로 밀려나 있다. 그래도 일부 인천 어촌마을에서 희망가도 들려온다. 귀어해 어부의 꿈을 이룬 사람들 얘기다. 영종도 어촌마을의 한 ‘1년 차 어부’는 주꾸미잡이를 한다. 바다를 좋아해 몸은 고되지만 만족해한다. 귀어학교 공부가 큰 힘이 됐다. 어업 기술을 배우고 어촌 현장 실습까지 거쳤다. “와 보니 무엇보다 물고기 잘 잡는 기술이 가장 중요했다”고 했다. 10년 전 연평도로 들어온 한 60대 귀어인은 꽃게잡이 어부다. 관록이 붙어 이제 새로운 사업에 도전한다. 조업 중 버려지는 꽃게 껍데기에 주목했다. ‘연평도 꽃게 육수팩’을 개발해냈다. 어촌특화경진대회 대상 등에 힘입어 본격 시장에 나설 참이다. 그 역시 “어촌을 살리려면 어업기술 교육, 상품화 지원 등에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어업 지원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인천에서만 지난 10년간 국비 포함 3천700억원의 어촌 활성화 예산을 썼다. 그러나 대부분이 어촌 시설 개선 등 인프라 사업에 들어갔다. 지난해도 464억원 중 262억원이 어항재생이나 어항 기반시설 구축 등에 쓰였다. 반면 소프트웨어 분야에는 투자가 미미했다. 수산기술 보급이나 어업 인력 육성, 귀어 활성화 등이다. 어촌 활성화 예산의 5%에도 못 미친다. 어촌은 말라가는데 인프라만 늘리고 강화한 셈이다. 막대한 예산의 ‘어촌 뉴딜’이 방향을 잃은 것은 아닌가. 인천에서만 한 해 300여 어업가구가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도 공사판만 벌여 온 것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어업을 대물림 하던 시대는 지났다. 도시 등에서 어민을 새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려면 어촌에서도 벌어먹고 살 수 있도록 밀어줘야 한다. 인천어촌특화지원센터는 어업 기술을 가르치고 귀어민 정착을 지원한다. 그러나 올 한 해 예산이 고작 2억원이다. 어항 공사보다 신규 어민을 키워내는 ‘어촌 뉴딜’이어야 할 것이다.

[지지대] 러브버그와 이상기후

최근 수도권 일대에서 ‘러브버그’라는 이름의 벌레가 대량 출몰하면서 이슈가 되고 있다. 엄청난 양을 자랑하는 러브버그들이 시민들에게 불쾌감과 불편을 야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벌레는 떼를 지어 벽과 창문, 차량, 야외시설 등에 달라 붙는 습성이 강하다. 특히 사람의 얼굴, 팔다리, 옷 등에 붙어 혐오감을 유발하거나 사체가 수북이 쌓여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다. 그렇다면 이 러브버그는 최근 들어 우리 앞에 왜 이렇게 출몰하는 걸까. 러브버그(Love Bug)는 학명으로 ‘붉은등우단털파리(Plecia nearctica)’라 불리는 곤충이다. 가장 큰 특징은 암수 한 쌍이 꼬리를 맞댄 채 짝짓기를 하면서 떼를 지어 날아다녀 ‘사랑벌레’라는 별명이 붙었다. 러브버그는 원래 중국 남부, 일본 오키나와 등지에서 주로 서식했는데 최근 몇년 사이 기후 및 환경 변화의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빈번하게 발견되고 있다. 특히 2022년 이후 수도권 일대에서 대량으로 관찰되기 시작했고 올여름에는 이른 폭염과 도심 열섬 현상 등으로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대량 발생해도 보통 2주 이내에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인체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간과하는 것이 있다. 우리가 지키지 못하고 파괴한 지구는 작은 변화를 위험 신호로 바꿔 먼저 보낸다는 것을 말이다. 러브버그도 결국 진화되면서 우리 앞에 더욱더 강한 모습으로 변모해 나타날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방제 대책도 필요하지만 현 시점에서 더 중요한 것은 우리와 지구가 공존·공생하는 길을 더 빨리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적인 폭염과 열대야 속에서 이 순간 여러분의 에어컨은 안녕한지 궁금하다. 지구는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러브버그는 재앙의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천자춘추] 촌놈은 촌놈이 싫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귀농어·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귀촌 인구는 전년보다 5.7% 증가한 42만2천789명에 달했다. 귀촌인의 평균 연령은 43.1세로 전년보다 0.1세 낮아졌는데 연령대별로는 20대 이하가 24.1%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22.8%로 뒤를 이었다. 젊은 세대의 비율이 높아진 것은 고무적인 변화다. 귀촌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화성시로 2만7천116명이 귀촌해 전체의 6.4%를 차지했다. ‘촌(村)’은 도시와 떨어져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촌에서 ‘촌스럽게’ 산다는 것은 어쩌면 여러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귀촌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촌스럽다’는 ‘어울린 맛과 세련됨이 없이 어수룩한 데가 있다’고만 풀이돼 있다. 그렇다면 매년 늘어나는 귀촌인은 모두 ‘어울리지 않고 세련됨이 없어서’ 촌으로 향하는 걸까. 화성시로 이주한 2만7천여명은 ‘어수룩해서’ 귀촌한 것으로 필자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녀를 둔 가족이 귀촌하는 이유는 회색빛 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의 선택일 것이다. 부부가 함께 귀촌하는 경우라면 농사를 짓거나 창업을 시도하는 등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여유롭고 조화로운 삶을 찾으려는 뜻이 담겼을 것이다. 이처럼 귀촌의 이유는 다양하고 능동적이며 결코 ‘세련됨이 없는 어수룩함’으로 단정할 수 없다. 사전은 시대와 함께 숨 쉬어야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모아 표기법, 발음, 어원, 의미, 용법 등을 정리한 것이 사전이다. 그러므로 시대 흐름에 따라 내용도 수시로 바뀌어야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국민의 말글살이 기준이 되는 ‘표준’을 다루는 만큼 현실을 반영해 낱말을 새롭게 등재하거나 기존 뜻풀이를 보완하고 확대할 필요가 있다. ‘촌스럽다’는 말에도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해석이 담겨야 한다. 예를 들어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농촌으로 향하는 삶의 방식’, ‘농촌을 사랑하고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는 따뜻한 감성’ 같은 긍정적 의미가 추가된다면 오늘날 촌의 가치와 귀촌인의 선택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사전이 변화할 때 그것은 단순한 단어 모음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담은 삶의 언어 기록이 된다. ‘촌스럽다’는 말이 이제는 생명의 근원과 치유, 순수함과 희망의 상징으로 재해석되기 바란다.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국민적 인식이 바뀌어야 하며 그 변화의 출발점은 사전의 뜻풀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국민의 삶을 반영하는 사전이야말로 진정한 ‘표준’국어대사전이라 할 수 있다. 이참에 명토 박아 말한다. 나는 촌놈이라서 현재의 촌놈이라는 뜻풀이가 싫다.

[함께하는 미래] 거꾸로 가는 트럼프 독트린

취임 6개월 만에 트럼프 독트린이 총체적 난관에 봉착했다.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중재를 위해 중동특사를 파견했으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폭격 이후 악화됐다. 관세전쟁에서도 미국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에 부딪혀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를 완화했다.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은 ‘의도적인 전략적 모호성’이라 주장했으나 이런 변화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과 상당히 배치된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로 불리는 트럼프 독트린의 목표는 미국의 국가안보에 직결되지 않는 불필요한 전쟁의 종식과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억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과 중동에서 철수한 군사력을 중국의 주변 지역으로 재배치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키스 켈로그 우크라이나특사는 물론이고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특사까지 푸틴 대통령에게 보내 휴전협상을 중재했다. 4월 미국이 제안한 평화협정안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모두 거부하자 그는 미국이 협상에서 철수하겠다고 위협했다. 지난달 초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포로 및 시신을 교환했지만 휴전협상이 전혀 진척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인프라를 여러 차례 대규모로 공격하고 우크라이나도 러시아 공군기지 등을 공습했다. 나토 가입과 점령지 처리에 대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대치하고 있어 미국의 중재자 역할은 당분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외교적 해결보다 군사적 개입으로 선회했다. 그는 사전 보고 없이 이스라엘과 이란 공습을 논의했다는 이유로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5월1일 전격 해임했다. 그러나 지난달 13일 그는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에 대한 폭격을 용인했다. 더 나아가 미국 해군과 공군은 22일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의 핵시설을 공습하는 ‘한밤의 망치’ 작전을 실시했고 이란은 23일 카타르 내 미군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적 지원으로 MAGA가 MIGA(Make Israel Great Again)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대중 관세 협상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확실하게 굴복시키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이견을 봉합했다. 5월 제네바와 런던에서의 고위급 무역회담에서 양국은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강화, 중국인 유학생 비자 취소 방침, 대미 희토류 수출 통제 시행 등을 둘러싸고 대립했다. 미국의 자동차 및 방위산업에서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희토류 부족이 심화되자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24일 중국이 요구한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의 완화를 수용했다. 중국이 미국의 경제적 강압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을 성공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미국은 수세에 몰리게 됐다.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 이후 대북 정책에서도 트럼프 독트린이 변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지난달 27일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고 정말 잘 지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욕의 북한 외교관들은 6월 초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낼 친서의 수령을 거부했다. 협상이 진전되지 않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협상보다 군사작전을 우선할 수도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한은 미국의 협상 제안을 조속히 수용해야 할 것이다.

[경기시론] ‘진짜성장’과 ‘참성장’, 어느 것이 답인가

한국 경제는 어느덧 ‘저성장’이라는 단어가 일상이 된 시대를 지나고 있다. 한때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국가 경쟁력의 상징이었고 수출 실적이 곧 경제의 성적표로 간주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사회는 그와 전혀 다른 풍경을 마주하고 있다. 성장률은 낮고 불평등은 심화됐으며 국민 개개인의 삶은 팍팍해졌다. ‘낙수효과’라는 신화에 의지하던 전통적인 성장담론은 물론이고 포용성장론조차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최근 ‘진짜성장’이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에서 발간한 자료에 의하면 “가짜성장(반짝 성장, 소수의 성장, 모방성장)”이 아닌 “지속적 성장, 모두의 성장, 창조에 기반한 성장, 체감할 수 있는 성장”이 진짜성장이라고 한다. 기존의 성장론이 가짜성장으로 규정당할 정도인지는 모르나 고속 성장, 투자 유인, 국제 경쟁력 확보 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불평등 심화, 사회적 갈등, 환경 파괴, 내수 약화, 지속가능성 저하 등 심각한 문제를 동반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진짜성장은 어떠할까. 진짜성장은 기술 주도 성장, 모두의 성장, 공정한 성장을 말한다. 이는 경제의 역동성 회복과 성장의 과실을 국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펼치기도 한다. 이러한 진짜성장은 한국 경제가 직면한 저성장, 생산성 저하, 청년·중소기업 기회 박탈, 지역 간 불균형, 사회적 안전망 등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안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진짜성장도 기존 성장론이 안고 있던 사회적 파생 문제에 대해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짜성장이 이런 것들을 백안시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선순위가 한참 뒤로 밀린다는 느낌이다. 진짜성장 이전부터 주장되던 ‘참성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참성장은 GDP 중심 성장이 초래한 불평등, 환경파괴, 사회적 신뢰 저하, 삶의 질 저하 등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제안됐다. 참성장은 경제 성장이 ‘포용적 성장’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에 적합한 참성장지표(GPI) 적용을 제안한다. 이것이 단순한 성장이 아닌, 국가의 진정한 발전 수준을 평가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참성장론자들은 실제 한국 사회에서 공공서비스 확충, 기초연금 도입, 최저임금 인상, 노동정책 발전 등으로 참성장지표 수치가 GDP 성장률을 상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참성장은 기술혁신, 생산성 제고, 산업구조 고도화 등 ‘경쟁력’ 중심 정책과는 거리가 있어 글로벌 경쟁 심화 속에서 한국 경제의 위상을 유지·강화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참성장이 주목하는 부분에 대한 무시는 진짜성장조차 발목이 잡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발생시킬 수 있다. 진짜성장과 참성장은 경제 성장의 성과가 국민 모두의 삶의 질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 실현 방식과 정책 우선순위에서 보이는 차이가 있지만 이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이번에 진짜성장이 참성장을 흡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기술혁신, 산업구조 고도화 등 진짜성장의 전략과 함께, 예를 들어 참성장지표(GPI) 같은 포용적 성장 지표를 정책 평가에 적극 반영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한국 경제는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 경쟁력과 포용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진짜 참성장’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에 의하면 “불평등을 불가피하다고 보며 일부 국민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성장 지상주의가 오히려 더 성장을 위축시킨다”고 한다. 진짜성장이 성장 지상주의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참성장주의로 나아가는 길에서 한국 경제는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기고] 신뢰 위에 피어날 ‘가슴 뛰는 자원회수시설’을 꿈꾼다

보고 듣는 대로 믿기 힘든 세상이다. 잘 믿으면 순진하다는 핀잔을 듣고 의심하고 따져야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 듣지 않으니 불신의 시대라는 냉소도 지나치지 않은 듯싶다. 그저 믿는 게 더 이상 미덕은 아닌가 보다. 행정기관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지 않다. 관에서 하는 얘기라며 일단 믿어주던 것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다. 누굴 탓하랴. 공공을 향한 쥐꼬리만 한 신뢰마저 시나브로 사그라뜨린 건 공공 자신일 터. 필자 역시 30년 공복으로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수원시 자원회수시설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25년 전 영통에 세워진 것을 없애고 자리를 옮겨 새로 짓는 일이다. 동네 어귀에 쓰레기 소각장을 품고 오랜 세월 살아온 주민들의 숙원이자 수원시 환경 책임자로서 핵심 과업이다. 쉽지 않다. 4천억원이 드는 대사업이다. 여건에 따라 더 많은 예산을 쏟아야 할지 모른다. 주민 동의, 부처 협의, 첩첩한 행정 절차에 공사까지, 착착 진행돼도 얼마나 걸릴지 예단하기 어렵다. 가장 큰 난관은 5만4천㎡ 이상으로 예상되는 부지 확보다. 행궁 광장의 4배다. 삶터가 오밀조밀한 대도시에 그만한 땅이 뚝딱 생기겠나. 주거지와 까마득히 멀어야 한다는 꼬리표마저 달고 나면 적정 부지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2023년부터 후보지를 세 차례 공개 모집했으나 관심 두는 이는 없었다. 사람 사는 곳에 쓰레기는 필연일지언정 ‘내 집 앞 소각장’은 반길 리 없으니 예견된 결과다. 문제의 본질은 따로 존재한다. 불신이다. 쓰레기를 연료로 열·전기에너지를 생산한다는 뜻에서 자원회수시설이라 이름 붙인 지 사반세기이건만 대다수에겐 여전히 소각장일 뿐이다. 굴뚝 연기가 수증기라 해도, 다이옥신이 기준치 80분의 1에 불과하다 해도, 배출 성분을 낱낱이 공개해도 의심의 눈초리는 가실 줄 모른다. 켜켜이 쌓여온 불신, 그로부터 비롯된 무조건적 반대를 일거에 해소할 묘안은 없다. 발에 땀이 나도록 시민들을 찾아뵙고 차원이 다른 자원회수시설의 진면목으로 한 줌 한 줌 신뢰를 쌓아가는 수밖에. 새로운 땅에 피어날 수원시자원회수시설의 청사진은 ‘환영받는 시설’이다. 처리 설비를 지하로 감쪽같이 내려 오염 관리에 한 치의 빈틈도 불허하고, 그 위는 언제고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채울 계획이다. 우뚝 솟은 굴뚝도 차 향기 그윽한 하늘마루 전망대가 돼 흉물에서 명물로 탈바꿈할 것이다. 땅속 자원회수시설 위에 무엇을 담을지 상상할 때면 가슴이 뛰곤 한다. 숲과 정원이 마음까지 어루만질 힐링 쉼터라면. 수영장·체육관·온실정원·공연장·전시관이 어우러진 문화체육복합공간도 매력적이다. 온 가족의 행복 발원지가 될 수원시 유일의 테마·워터파크는 또 어떤가. 결정은 시민의 몫이다. 찾아가는 설명회, 토론회, 새빛톡톡·SNS 설문과 아이디어 공모까지 시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새겨들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세상이 부러워할 랜드마크를 완성하는 데 온 힘을 다할 것이다. ‘수원이 만들면 표준이 된다’는 말은 시민과 공직자 모두의 자부심이다. 새로운 자원회수시설은 기피시설을 선호시설로 바꾸는 전환점이자 같은 어려움을 겪는 타 지역에 이정표를 제시할 것이다. 나아가 얼기설기 휘감긴 우려와 갈등, 끝 모를 불신까지 마침표를 찍게 되길 소망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만평] 폭싹 망했수다...

[사설] AI 시대 행정의 본을 보여준 경기도 ‘AI팀’

양자통신은 해킹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기저가 일치할 때만 정보가 공유된다. 양자키 분배(QKD)라는 원리다. 해킹을 통해 암호를 알아낼 수 없다. 양자 노이즈가 해킹 시도 자체를 경고한다. 최고 안전 통신 기술이다. 안전이 생명인 분야의 필수 기술이다. 당장 정부 기관, 금융 기관, 군사 통신, 우주 통신, 데이터센터 등에서 절실하다. 바로 이 기술을 실용화하는 데 경기도 행정이 뛰어들었다.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SK브로드밴드와 합쳤다. 양자암호통신 기술이 적용될 영역은 자율주행차량이다. 운전자 개입 없이 운행되는 최첨단 교통수단이다. 이미 실생활에 사용 중이거나 적용 단계에 있다. 그런데 여기 난제가 있다. 통신 해킹이다. 해외에서 원격제어권 해킹이 여러 차례 시연됐다. 승객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음이다. 이를 보완하려는 실증 프로젝트다. 자율주행차량에 양자암호통신을 적용하는 작업이다. 실증 기관은 판교 경기도자율주행센터, 실증 차량은 판타G버스다. 이번 사업이 실증하게 될 기술의 내용을 보자. 양자키분배와 양자내성암호 기술을 동시에 적용한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앞선 기술적 시도다. 새 정부 공약에 ‘AI 등 신산업 집중육성’이 있다. 그 세부 목표로 ‘양자정보통신기술(ICT) 개발 및 상용화를 위한 연구·개발 지원 강화’도 있다. 그 방향성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업이다. 때마침 과기부 산하 기관의 ‘2025년 수요기반 양자기술 실증 및 컨설팅’ 공모가 있었는데 거기에도 선정됐다. 양자정보통신은 미래 산업의 핵심이다. 무궁무진한 먹거리를 산출할 수 있다. 경기도의 이번 프로젝트에는 이런 산업 토대를 위한 구상까지 포함됐다. 서울~판교~대전 간 개방형 양자 테스트베드와 연계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도내 중소기업이 실증기술을 직접 활용하고 교육받을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기로 했다. 장비 제조사, 통신사, 연구기관, 양자기술 기업 등과의 연계도 밝히고 있다. 양자 산업 생태계를 경기도에 만드는 밑그림이다. 경기도는 첨단 산업·연구 인프라의 보고다. 이 조건을 창조적으로 결합해냈다. AI, 양자통신은 선점이 필요한 미래 산업이다. 이걸 경기도로 끌고 오는 시도다. 정부 공모에 선정돼 18억원의 지원금도 받았다. 구호가 아닌 내용으로 증명한 행정이다. 무엇보다 평가할 부분은 첨단 기술을 교통 행정에 접목했다는 점이다. 도민의 편의·안전·생명에 직결되는 영역을 선택했다. 막연할 수도 있는 ‘AI 시대 행정’이다. 경기도가 그 길을 앞서가고 있다. 쉽게 상상할 수 없던 양자(量子)와 행정(行政)의 결합. 말로만 떠드는 ‘AI’시대 행정이 가져야 할 발상의 전환이다. 경기도민의 아낌 없는 칭찬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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