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저임금 책정, 노사는 합리적 접점 모색해야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논의가 금년에도 법정 시한을 넘겼다. 관계법령에 의해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는 고용노동부 장관으로부터 심의 요청을 받은 뒤 90일 이내 결정해야 하며, 그 시한이 어제였다. 그러나 지난 26일 제7차 전원회의가 개최됐지만 노사 간 최저임금 결정에 대한 입장 차이가 워낙 크므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다음 회의를 오는 7월1일 개최하기로 했다. 최저임금제도가 1988년 시행된 후로 법정 심의 시한이 지켜진 것은 단 아홉 차례에 불과할 정도로 최저임금 결정은 노사 간 이해가 첨예한 사안이다. 지난해도 최저임금은 법정 시한을 15일 넘겨 결정됐기 때문에 금년에도 노사 간 조정이 안 되면 결국 공익위원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7월 중순경 결정하게 될 것 같다. 이후 고시와 이의 제기를 거쳐 노동부 장관이 8월5일까지 최저임금을 확정할 예정이다. 올해도 그동안 7차에 걸친 회의를 통해 노사 간 공방은 치열했다. 지난 제7차 전원회의에서 근로자위원은 올해 최저임금(1만30원)보다 14.3% 높은 1만1천460원을 제시한 반면 사용자위원은 0.4%만 올리는 1만70원을 제안했다. 따라서 노사 간 최저임금 격차는 1천390원으로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상태다. 사용자 측은 금년도 경제성장률이 0%대인 것을 감안해야 함은 물론 경기부진으로 인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인건비 인상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 최저임금 인상은 어렵다는 것이다. 이미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의 60%에 육박해 있을 뿐만 아니라 숙박·음식업 등 일부 업종에서는 최저임금 미만율이 33.9%에 달할 정도로 현실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 1~6% 인상만으로도 폐업을 고려하겠다는 비율이 10%에 달하는 기업의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편 노동자 측은 2024년과 2025년 최저임금이 모두 물가 상승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정해짐으로써 노동자들의 생활이 상당히 열악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생계비는 7.5% 상승했지만, 최저임금 인상률은 2.5%에 그쳤고 산입범위 확대의 영향으로 실질 인상 효과도 제한적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지난 토요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 최저임금 인상을 강력히 요구했다. 최저임금 결정은 이해가 첨예한 사안이므로 일방의 입장을 밀기보다 상생 가능한 차원에서 합리적 결정을 해야 한다. 실용적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새 정부의 노동정책이 최저임금 결정에 접목되기를 기대한다.

[지지대] 피자와 햄버거로 읽는 세상

미국 국방부인 펜타곤에 피자 주문이 평소보다 폭증했다. 미군의 비상대기 심야활동이 자연스럽게 피자로 이어지는 현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누리꾼이 간파한 미국의 이란 공습이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보다 빨랐다고 외신이 전했다. 우리는 야근할 때 치킨을 시키지만 미국인들은 피자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펜타곤 피자지수’의 역설이다. 패스트푸드 주문 패턴을 통해 위기 상황을 감지한다. 펜타곤 피자지수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3년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 전날 밤에도 나왔다. 이후 1989년 파나마 침공과 1990년 걸프전을 앞두고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 특히 걸프전을 앞두고는 CIA가 하룻밤에 피자 21박스를 주문한 직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발발했다. 영국에선 햄버거가 경제 상황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특정 햄버거 브랜드인 빅맥지수가 그렇다. 지구촌 맥도널드 햄버거 가격을 미국 달러로 환산해 비교, 실질 구매력과 환율의 과대·과소 평가 여부를 파악한다. 이 지수는 ‘어느 나라 화폐가 실제보다 싸거나 비싼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1월31일 기준 한국의 빅맥 지수는 3.99달러로 미국(5.79달러)보다 29.8% 낮아 원화가 달러 대비 저평가 상태임을 보여줬다. 한국은 이 지수를 통해 수십년간 저평가된 통화국으로 분류돼 왔다. 피자와 햄버거라는 패스트푸드를 활용한 분석은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한다. ‘피자 주문이 많다’는 말은 긴장도의 은유적 표현이고 ‘햄버거가 싸다’는 말은 화폐 가치의 문제다. 이 같은 상징화를 통해 복잡한 정치·경제 현상을 직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적용되고 있다. 빅맥지수로 본 원화의 만성적 저평가는 국민이 느끼는 체감경제 위축이다. 정부청사 인근 배달음식 주문량이나 24시간 편의점 매출 등은 우리만의 사회적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패스트푸드에 숨겨진 신호를 해석하는 건 복잡한 현대 사회를 읽는 또다른 방정식이다.

[천자춘추] AI, 스포츠 필드의 게임체인저

게임체인저(Game Changer)는 게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 또는 사건, 인물을 뜻하는 단어다. 인공지능(AI)은 스포츠 전반의 흐름을 바꾸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스포츠 분야의 게임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초기 단순한 자동화 기술에서 오늘날에는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형태의 AI로 발전하면서 경기 분석부터 훈련과 전략 수립 그리고 팬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스포츠의 모든 장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AI는 인간의 영역보다 더 세밀하게 선수 개개인의 움직임, 속도, 힘, 정확성 등을 정밀하게 분석한다. 기존의 감각에 의존하던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 구축을 가능하게 한다. AI 기반 선수 분석 시스템은 선수의 강점과 약점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스포츠 현장에서는 이미 코칭 전략 수립에 AI가 활용되고 있다. 비디오 분석과 실시간 데이터 해석 기술은 경기 중 상황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경기 결과 예측과 전략 조정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특히 심판 판정에서 AI의 역할은 오심을 줄이고 공정성을 높이는 기술로 인정받고 있다. 선수 스카우트와 유망주 발굴에서도 AI의 힘은 강력하다. 신체능력, 경기 데이터, 성장 곡선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발전 가능성이 높은 선수를 예측하고 추천할 수 있다. 이는 엘리트 스포츠뿐만 아니라 유소년 육성과 아마추어 스포츠 시스템에도 큰 전환점을 제공하고 있다. AI는 팬 서비스 분야에서도 강력한 도구로 활용된다. 팬의 관심사와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경기 정보, 하이라이트 영상, 뉴스 등을 제공하고 경기 중 실시간 데이터를 통해 몰입감을 높여주고 있다. 기존에는 없었던 신선한 관전 경험을 제공하면서 스포츠 소비 형태의 변화와 함께 스포츠산업에서 새로운 시장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처럼 AI는 스포츠 분야 곳곳에 자리 잡으며 공정성에 대한 원칙적 부분을 다루는 것부터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나아가 팬 경험까지 혁신하며 스포츠마케팅 영역까지 장악하고 있다. AI 같은 기술적 변화가 스포츠 생태계 전반에 긍정적인 보조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열린 자세로 그에 맞는 제도적 준비와 윤리적 기준 마련도 병행해야 한다. AI를 활용한 변화의 주도권을 통해 K-스포츠 시대를 열어 대한민국 스포츠의 또 한번의 도약을 기대해 볼 시점이다.

[이슈&경제] 기업가정신과 정부 정책

경제성장과 발전의 핵심은 기업가정신과 투자다. 기업은 위험을 감수하고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추구하며 이는 경제 활력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기업가정신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부나 정책이 시장을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 누가, 언제, 어떤 혁신을 성공시킬지 알 수 없으므로 정부가 개입해 특정 집단을 유리하게 만들거나 불리하게 제한하면 기업가정신의 실험을 저해하고 부의 창출 기회를 잃게 된다. 그렇다면 역동적인 시장경제를 작동하게 하는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정부의 역할과 기업가의 역할은 다르다. 정부의 역할은 기업가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가들이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자유롭게 밤낮으로 새로운 부를 창출할 수 있는 투자 기회를 찾아 경제발전의 역동적인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권력과 결탁한 이익 추구가 아니라 누구든지 혁신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인기영합적 자원 재분배를 억제하고 정부 간섭을 줄이며 공무원의 책임감과 효율성을 높이는 개혁이 필요하다. 아울러 정당한 기업 이윤과 부정부패에 의한 부의 축적이 다르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줘야 한다. 특권층이 승패를 결정하는 시장에서는 혁신도, 공정한 경쟁도, 지속가능한 성장도 불가능하다.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자유무역 체제가 흔들리고 산업정책이 주목받고 있지만 정보 비대칭성이 큰 현실에서 정부는 특정 산업을 지정하기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의 틀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AI) 산업은 중요하지만 어느 분야가 주도할지는 예측할 수 없으므로 정부는 특정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아닌 모든 신산업의 출발점이 될 전체 생태계에 필요한 기반 시설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은 데이터센터와 전력 공급, 인력 확보, 교육 등 기반 시설의 확충과 정비다. 인력양성, 전력망의 스마트 그리드화, 안정적·친환경적 에너지 확보, 전력저장기술 개발, 송배전망 개선 등은 단순한 에너지 문제를 넘어 모든 신산업의 기반이다. 새 정부는 산업 기반 현대화를 국정 과제로 삼아 민간이 마음껏 혁신할 수 있는 제도와 기반 시설을 마련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기업가정신을 촉진하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규제 혁신도 기업가정신 회복의 핵심 과제다.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많은 규제를 과감히 정비하고 지배구조와 투명성을 중심으로 재설계해 정보와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제도화하면 참여자들은 동등한 정보 획득 기회의 기반에서 공정하게 경쟁해 기업들이 예측할 수 있는 환경에서 혁신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은 성과에 따른 차별적 동기 부여 기능을 통해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분하도록 경쟁하게 만드는 생태계이지만 동기 부여 기능이 취약하다. 동기 부여 기능을 보강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 경기의 명확한 법과 제도로 전 국민이 규칙을 잘 지키면서 활기차게 뛰어 경제를 활력 있게 만들도록 관리해야 한다. 성공의 보상은 강화하고 실패는 함께 감내하는 제도를 마련해 공정한 경쟁이 보장된 환경 속에서 누구나 혁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의로운 경쟁과 창의적 파괴가 일상화되고 잠재된 기업가정신이 깨어날 때 우리 경제는 다시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업가정신이 살아 있는 나라는 혁신과 포용이 균형 잡힌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들 수 있다.

[아침을 열면서] 생명의 무게

전쟁 소식이 끊임없이 들린다. 지난 수년 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침공 소식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더니 최근에는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전쟁에 미국이 무력으로 이란을 공격하면서 전 세계를 초긴장 상태로 몰아갔다. 다행히 이스라엘과 이란이 휴전하면서 전면전으로 비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다시 시선을 가자지구로 돌려 하마스 해체를 명분 삼아 지난 24일에도 구호물자 배급을 기다리던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총을 난사해 40여명이 숨졌다. 전쟁을 일으키고 또 거기에 개입하는 사람들에게는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종교적, 인종적, 민족적, 이념적, 정치적인 갖가지 이유를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그 명분은 대부분 자기중심적 편견과 우월의식에 젖은 차별의 논리에 기초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 명분의 이면에는 침략자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벌이는 전쟁이 그렇다. 네타냐후는 자신의 정치적 권력 유지와 강화를 위해 이스라엘인의 민족적, 종교적 편견을 십분 활용해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집단학살(Genocide)마저 정당화하려 한다. 세상의 암담함은 이런 전쟁범죄 혐의에 대해 우리 사회를 비롯한 주류 세계가 보이는 무감각한 반응이다. 국제뉴스의 한구석을 장식할 뿐인 이런 소식을 사람들은 대부분 한 귀로 흘려넘긴다. 한국의 경우 우리에게서 너무도 먼 곳에 떨어져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그것만은 아닌 듯하다. 우리는 우리 이웃의 억울한 죽음에도 무심할 때가 많지 않은가.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나’의 생존이 우선이니 다른 이의 어려움을 돌아볼 겨를은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한, 이런 학살에 대한 사람들의 무심함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한 사회가 냉혹할수록 사람들은 생명의 가치를 그저 수량으로 헤아릴 뿐이다. 예컨대 사람들의 쌀이나 소에 대한 관심은 그저 쌀값이나 소고기 가격이며 사람도 재산이 얼마나 많고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에 따라 그 가치를 평가한다. 이런 가치 기준은 급기야 인명(人命)의 가치를 헤아리는 데까지 적용된다. 어떤 전쟁으로 몇만 명이, 어떤 사고로 몇백 명이 사망했다고 하면서 그 일로 인해 우리에게 어떤 경제적 피해가 우려된다고 하는 헤아림이 그것이다. 물론 인명 피해는 수치로 헤아릴 수 있다. 하지만 생명의 가치가 그렇게 수치로만 파악될 수 있는 것일까. ‘쌀 한 톨의 무게’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를 부른 홍순관은 쌀 한 톨 안에는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빛, 그리고 농부의 새벽 등 우주의 무게가 담겨 있다고 읊조린다. 쌀 한 톨이 응축한 무수히 많은 자연의 자연력과 인간 노동력의 가치는 쌀값으로 결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인간의 생명도 마찬가지다. 인간 생명의 ‘무게’를 그 사람의 키나 체중, 시험점수, 재산 등으로는 전혀 헤아릴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저 쌀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무게’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개개의 ‘우주’를 함부로 살상하거나 그 살상을 방관하는 이들은 모두 생명의 ‘무게’를 자각하지 못한 자들이다. 이 세상에는 어떤 이유로든 함부로 죽여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존귀한 우주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경기만평] 골든타임...?

[사설] 民 ‘이창용 총재 오지랖’, 한국은행 길들이나

“오지랖이 너무 넓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의 말이다. 들어 넘기기에 편한 표현은 아니다. 그 상대가 한국은행 총재라서 더 그렇다. 25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공개적으로 했다. “할 말 있으면 대통령 면담을 신청하든가 대통령실에 조용히 전달하면 되지 언론플레이 할 일은 아니다.”, “자숙하고 본래 한은 역할에 충실하길 바란다.” 흔히 본 적 없는 여당 지도부의 한국은행 총재 직격이다. 23일 있었던 이창용 총재 발언을 지목했다. 18개 시중은행장들과의 만찬에서 나왔다. “주택 시장 및 가계대출과 관련한 리스크가 다시 확대되지 않도록 은행권의 안정적인 가계부채 관리가 중요한 시기”라고 당부했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됐다. 19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52조749억원이다. 5월 말 대비 3조9천937억원 증가했다. 일평균 대출 잔액 증가액이 지난해 8월 이후 최대치다. 한국은행 총재가 말할 수 있는 영역 아닌가. 시중은행장들과의 회동 자리니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이 위원은 ‘오지랖’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비난했다. 이 위원 지적의 근거는 한국은행 총재 발언의 중량감이다. “시장 구두개입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주목받을 만한 이 총재의 발언이 몇 개 더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국민 민생지원금 지급 관련이다. 추경에 포함될 민생 지원금의 지급 방식을 말했다. 알다시피 전 국민 민생지원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다. 새 정부 출범 첫 주부터 당정이 밀었다. 균등 지원, 선별 지원, 선택 지원 등이 토론됐다. 그 와중에 18일 보도된 이 총재의 견해다. “재정 효율성 면에서 볼 때 선택적인 지원이 보편적인 지원보다 어려운 자영업자와 영세 사업자를 돕는 데 효율적이다.” 물가안정 점검 설명회에서 기자 질문에 답하면서 나온 발언이다. ‘대통령 결정에 대한 주제 넘는 관여’로 비쳤나. 어느 것이든 딱히 트집 잡을 일은 아니다. ‘은행의 은행’인 한국은행이다. ‘가계부채 관리’를 당부할 수 있다. 18일 발언도 기자 질문에 낸 답변이다. 대통령의 결정도 그 뒤 ‘선택 지원’으로 갔다. 그럼에도 이 위원에겐 ‘경고해둬야 할 행위’로 보인 모양이다. 미국에서는 흔한 일이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파월은 곧 물러나게 된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형편없다.”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독설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낮설다. 그 어색한 모습을 이언주 최고위원이 연결시켜 줬다. 이 위원 개인의 일회성 의견 표현일 수는 있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 당의 방향성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국회(입법)·정부(행정)를 장악한 이재명 정부다. 가장 큰 정책 방향이 통화를 통한 국정 운영이다. 이 통화 정책의 수장이 한국은행 총재다. ‘관리’가 필요했다고 여겼을 수 있다. ‘오지랖’의 당사자격인 한국은행에는 더욱 그렇게 해석됐을 수 있다.

[사설] 李대통령의 야당 배려 모습, 보기에 편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시정 연설을 했다.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강조했다. 신속한 추경 편성과 속도감 있는 경제 정책을 다짐했다. SOC 조기 투자와 부동산 PF 시장 지원을 통한 경기 활성화 방안도 밝혔다.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을 위한 민생지원 배경도 설명했다. 재정 정상화를 위한 과감한 세입 경정 구상도 밝혔다. 특히 각종 지원 정책의 배경으로 위기 경제에서의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런데 더 눈길을 끈 것은 야당을 대하는 모습이다. 연설 내내 야당인 국민의힘을 향해 협조를 구했다. 야당이 원하는 예산도 수용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정부가 추경에 담지 못한 내용은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의견을 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야당에 대한 별도의 부탁과 약속을 남겼다. “우리 야당 의원님들께서도 필요한 항목이 있거나 삭감에 주력하겠지만 추가할 게 있다면 언제든지 의견을 내주시기 부탁드린다.” 이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연설 전 환담장에서도 목격됐다.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국회의장, 여야 지도부와 환담했다. ‘정치는 공적인 일을 하는 것’이라며 여야 협치를 당부했다. 국민의힘 김용태 위원장에게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또 “제가 이제 을이라 각별히 잘 부탁드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본회의장에서도 분위기는 이어졌다. 12차례 박수가 있었지만 야당의 박수는 없었다. 그러자 “이러면 쑥스럽다”며 웃어 넘겼다. 야당인 국민의힘도 비교적 차분했다. 이 대통령 입장 때는 모두 일어섰다. 연설 도중에 야유나 고성은 없었다. 이 대통령이 ‘예산에 의견이 있으면 언제든 달라’는 부분에서 웃음소리도 나왔다. 대통령은 연설 뒤에 야당 의원석을 향했다. 국민의힘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권선동 의원이 ‘김 총리 후보자는 안 된다’고 두 번 말하자 팔을 툭 치기도 했다. 김종민 의원과는 사진도 찍었다. 대표적인 비명계 무소속 의원이다. 정치적으로 계산된 모습일 수 있다. 막 취임한 대통령의 도리이기도 하다. 의미를 부여하는 데 과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비교되는 현실은 있다. 여야 대치가 극에 달했던 최근 몇 년이다. 시정 연설은 야유와 푯말로 채워쳤다. 연설을 하지 않는 초유의 일도 있었잖나. 대통령도 야당도 그저 대립만 했다. 그런 3~4년이 계속되던 터였다. 정치적 셈법이 있더라도 나쁘지 않았다. 어제 모습을 편안히 본 국민이 많다.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