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인천 바다와 백사장

인천은 태생이 ‘물의 도시’다. 인주(仁州)라 불리던 이름이 조선 태종 때 인천(仁川)으로 바뀐 것도 물(川), 곧 바다가 있는 고을이어서였다. 하지만 지금 인천시내에서 바다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해안 대부분이 철책 등으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막아 놓은 가장 큰 이유는 안보(安保)와 보안(保安)이다. 북한과 가까운 지리적 상황, 항구와 같은 국가 중요시설의 안전 때문이니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같은 최첨단 기술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요즘 시대에 이런 구태의연한 방법밖에는 바다를 지킬 다른 수단이 과연 없을까. 다행히 인천시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해안 철책들이 조금씩 걷히고는 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강화·옹진군의 북한 접경지를 뺀 인천지역의 바다 경계 철책 67㎞ 중 21㎞가 그동안 철거됐다. 또 올해 4.2㎞가 철거되며 나머지의 철거 문제도 시와 군(軍)이 계속 논의 중이다. 이 같은 철책 철거에 맞춰 제안하고 싶은 것이 백사장이다. 연수구와 연수문화재단은 지난해 여름 송도달빛공원에서 연 ‘해변축제’ 때 행사장 안에 인공 백사장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제공했다. 넓지는 않았지만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모래놀이를 하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한 주일가량의 축제가 끝나니 많은 돈을 들여 애써 만든 백사장을 모두 철거해야만 해 아쉽고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자못 들었다. 이런 면에서 철책이 없는 바닷가 중 가능한 곳에 시가 백사장을 하나씩 만들어 가면 어떨까 한다. 비록 거기서 바다에 들어가 물놀이까지는 못 한다 해도 지금보다는 훨씬 멋지고 운치 있는 인천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해서다. 전문 지식이 없어 무척 조심스럽지만 인천 앞바다의 큰 조수간만(潮水干滿) 차이 때문에 썰물 때 모래가 바다로 쓸려나가는 문제만 막을 수 있다면 이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것이라 본다. 인천시가 요즘 추진 중인 중구 을왕동 왕산지구 연안 정비사업에서 그 방안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이 사업은 왕산마리나 시설을 만들면서 생긴 조류 변화 때문에 왕산해수욕장의 백사장이 자꾸 깎여 나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시는 이곳 백사장에 4만6천㎥의 모래를 채워 넣은 뒤 모래가 쓸려나가지 않도록 바다 쪽에 둑을 쌓을 계획이라고 한다. 인천시내의 다른 해변에서도 이런 방법을 쓰면 되지 않을까. 물론 이렇게 백사장을 만드는 데는 많은 예산이 들어간다. 또 만들면 끝이 아니라 계속 깨끗하고 안전하게 관리를 해야 하니 시로서는 부담이 꽤 클 것이다. 하지만 도시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 인천에서는 인천이 부산을 넘어 대한민국 제2의 도시가 됐다는 자랑이 많이 들린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고 인정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면이 너무나 많다. 해운대로 상징되는 바다와 백사장만 떠올려도 인천이 환경이든, 관광이든, 도시의 품격이든 부산을 넘어서려면 해야 할 일이 무척 많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해안 백사장 조성은 그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 쓸 여러 방안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산책] 벚꽃 엔딩이 사라지다

올해의 벚꽃은 비바람으로 피날레 없이 사라졌다. 예년에는 평년보다 빠르게 개화해 벚꽃 축제 시기가 당겨졌던 기억이 있다. 벚꽃 축제는 그 시기가 큰 고민 요소가 됐다. 게다가 요즈음 제멋대로 불어오는 강풍과 쏟아지는 빗줄기는 오늘의 일교차마저 상상할 수 없게 한다. 이러한 기후 위기는 단순히 날씨에만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지역 축제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강원 인제의 빙어 축제가 빙판이 얼지 않아 2년 연속 취소됐는가 하면 겨울 체험 프로그램이 겨울철 주요 수익원이 되는 농촌에서는 온난화로 인해 행사가 취소되는 등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입기도 한다. 기후 위기는 어느새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지속적인 문제가 됐다. 위기에 직면한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러나 기후는 여전히 축제의 콘셉트, 예산 문제, 지역경제에 모두 영향을 미치는 절대적인 것이기에 우리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올봄의 사례다. 필자가 스태프로 참여했던 ‘수원 연등축제’는 실외의 제등행렬을 메인으로 하는 축제다. 그러나 축제 당일 비바람 예보가 있었고 현실적으로 유연한 대책이 필요했다. 축제의 본질적 의미, 참여하는 지역민들과 신자들, 그리고 그동안의 축적된 경험을 우선시해 시작점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기획을 재구성했다. 그리하여 4월의 비바람 속에서 처음으로 실내 연등축제가 진행됐고 다행히 성료됐다. 이처럼 자연, 계절, 그리고 기후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며 이상기후 위기는 더더욱 대비하기 힘든 일이다. 축제의 기획자로서, 지역민으로서, 향유자로서 우리가 대응할 방법은 없을까. 우리는 기후 위기에 관심을 가지고 환경보호를 실천하며 동시에 변칙적인 기후 상황 속에서 ‘축제를 재구성’할 수 있는 유연한 준비성을 가져야 한다. 축제의 본질을 지키되 상황에 따른 기획적인 측면에서 유연하게 접근한다면 기후 위기 속에서도 지역민 또한 최선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축제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축제의 콘텐츠’ 또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축제의 콘텐츠는 각 지역을 대표하며 다양한 예술적 상상력과 표현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지역민 혹은 관광객의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콘텐츠들은 기획과 실행을 통해 지역 축제의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성장시킨다. 하지만 기후 위기는 콘텐츠의 유통을 힘들게 하고 때로는 콘텐츠가 사라지게도 한다. 기후 문제로 발생되는 축제의 돌발 상황들은 콘텐츠를 지켜내려는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기존의 핵심 콘텐츠에도 유연한 변화가 필요하다. 때로는 현실을 인지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콘텐츠를 발견 혹은 생산해 내거나 새로운 기획을 통해 콘텐츠를 혼합해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등 유연하게 현실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 다만 기획자 또는 지자체에서만 독단적으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동반돼야 한다. 지역 축제는 지역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온 문화이자 그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벚꽃 엔딩, 그 후엔 파릇한 새싹이 돋아난다. 하늘을 가득 수놓았던 벚꽃잎들은 기억 속에 담기고 지금은 온 세상이 푸르다.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자발적으로 환경을 보호함과 동시에 기후 위기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고 현명하게 대처해 지역 축제를 이어갈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자연에 순응하고 또 대응하며 지속가능한 지역 축제를 미래 세대에게 이어줄 수 있도록, 찬란한 봄날의 지혜를 그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경기시론] 이민의 경제적 영향 이해와 데이터의 중요성

프랑스 경제학자 장바티스트 세는 ‘세의 법칙(Say’s law)’을 통해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고 주장했다. 일단 공급을 하면 수요가 시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생기므로 공급 과잉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비하지 않은 저축은 투자 재원으로 쓰여 결국 모든 소득은 재화와 서비스 구입에 사용되므로 애덤 스미스의 주장대로 시장은 스스로 균형 상태를 유지한다고 봤다. 그러나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현실에서는 ‘세의 법칙’이 장기적 관점에서 예외적으로 작동하고 공급에 비해 유효수요가 부족, 경기 침체와 대공황 등으로 인한 실업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정부가 유효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경제학적 논쟁은 정부가 이민정책을 통해 개입해 경제의 공급 증가와 유효수요의 증가를 동시에 이루면서 균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연계된다. 경제적 측면에서 지속성장 속에서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 이유는 경기 침체나 위기를 최소화해 실업으로 인한 국민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국민의 평균적인 소득과 복지 수준을 높여 빈부격차를 줄이는 동시에 소비지출과 투자지출을 증가시킴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을 이룩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초반부터 빠른 속도로 진행된 경제성장과 인구 증가에 따라 경제 전반적으로 공급 역량과 국내 유효수요 규모가 급속히 확대됐고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사업혁신 등을 통한 국제경쟁력을 바탕으로 수출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5명인 초저출산 현상과 함께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등 인구 구조의 급변은 유효수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또 노동투입, 자본투입 및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의 하락으로 공급 측면의 성장률(잠재성장률)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보호무역주의의 부상을 극복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런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이민자를 수용할 때 주로 노동시장에서 미스매칭이 발생하는 분야의 인력 부족을 메우는 외국인력정책이라는 단편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민은 정치, 외교, 안보, 사회, 문화, 복지 등에 미치는 영향은 차치하고라도 경제적 측면만 봐도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이민과 경제와의 관계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나 관심이 부족해 부처별 이해관계와 관심도에 따라 단편적이고 단기적인 시각에서 임기응변적으로 대처한다면 올바른 이민정책이 수립될 수 없다. 따라서 이민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이외에 공급 측면에서 연구개발과 생산성 등에 미치는 영향, 수요 측면에서 소비지출, 투자지출, 재정지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연구의 가장 큰 장벽은 중앙행정기관 등 공공기관이 보유한 데이터가 공익적 목적으로 설립된 연구기관과 공유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없고 공공기관에서 세부적인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거나 수집하더라도 그 분류체계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공기관에서 이민정책을 정확히 이해하고 어떠한 데이터를 어떠한 분류 체계에서 수집하고, 이를 공익 차원에서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금융기관 등 민간기관의 경우에도 공익적 차원에서 공개 가능한 통계를 적극 외부와 공유할 필요가 있다. 동 데이터가 정부의 부가가치세, 인적 사항 데이터와 결합해 체류자격(정주 여부), 연령, 거주 지역과 기간, 소득 수준 등에 따른 소비지출액과 소득 대비 소비 비율 등을 분석할 수 있다면 국가단위 또는 지역단위 내수시장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 이민정책을 수립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천자춘추] 기축통화 패권과 美 관세정책의 고찰

기축통화는 국가 간 무역 및 자본 거래의 결제나 준비자산으로 널리 이용되는 통화를 말한다. 기축통화로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통화 가치의 안정성이 보장되고 국제적 신뢰가 있어야 한다. 기축통화는 세계 어디서나, 어느 때나, 비교적 용이하게 쓰이는 화폐로 그렇게 어려운 뜻은 아니지만 그것이 갖는 경제적 의미는 상당하다. 대부분의 국가는 수출입 대금을 지불할 때 달러를 사용한다. 특히 중동 쪽에서 원유를 수입할 때는 더욱 그렇다. 경제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기축통화라는 말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기축통화의 의미가 무엇이고 왜 대부분 국가에서 달러를 중시하는지를 알아보려 한다. 이러한 달러의 흐름을 알면 왜 미국이 무역적자를 감수하면서 달러를 전 세계에 퍼뜨리려 하는지, 그리고 왜 달러는 아직도 살아남아 있는지가 명확해진다. 세계의 중심 통화가 된 달러 체제의 배경과 또 그 체제가 무너진 후에도 달러 패권 유지와 재구축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기축통화에 도전했던 독일·일본, 그리고 미국과 통화패권을 겨루는 중국 등의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경기도의 관세를 담당하는 경기지역FTA통상진흥센터의 입장에서 4차에 걸쳐 ▲달러 기축통화의 기원과 ▲기축통화에 도전하는 나라들 ▲기축통화를 지키기 위한 미국의 노력 ▲미국과 중국의 기축통화에 대한 승자는? 순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대다수 국가가 수출입 대금을 달러로 결제하는 데에는 역사적·제도적 배경이 있다. 그 출발점은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44개 연합국은 미국 뉴햄프셔주의 브레튼우즈에서 새로운 국제 통화체제를 만들기로 합의한다. 브레튼우즈 협정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국제금융 질서를 구축하게 하고 전쟁으로 인한 통화 불안정과 무역 제한을 시정하고 국제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브레튼우즈 협정의 핵심 내용은 달러를 기축통화로 지정하고 다른 나라의 통화는 달러에 고정 환율제로 연결해 국제 통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주요 내용으로는 금본위제도를 기초로 한 고정 환율 체제, 1945년 국제통화기금(IMF)을 설립해 각국 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은행(WB)을 설립해 개발도상국의 경제 개발을 돕는 것이었다. 이는 장기적인 경제 성장에 기여했으며 달러는 금과 직접 교환 가능했기 때문에 달러는 금과 같은 신뢰성을 가지게 됐다. 각국은 달러만 확보하면 사실상 금을 보유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자 미국은 베트남전에 대규모 달러를 지출했고 그 결과 달러를 너무 많이 찍어내게 됐다. 이후 세계는 달러를 금과의 교환을 요구하기 시작, 미국의 금 보유고는 빠르게 고갈되며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일방적인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는 ‘닉슨 쇼크’를 선언하며 달러와 금의 연결이 끊기고 브레튼우즈 체제는 붕괴된다. 닉슨 쇼크 이후 그해 12월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스위스 등 10개국이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모여 금 1온스당 가격을 38달러로 재조정했지만 이 제도 역시 세계 경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다. 통화의 공급과 수요에 따라 변하는 환율 체제인 킹스턴 체제로 변환되고 세계경제는 결국 변동 환율제로 진입한다. 이처럼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는 단순한 우연이 아닌, 미국의 경제력과 전략적 정책이 만들어낸 결과다. 경기지역 통상정책을 기획하고 지원하고 있는 경기지역FTA통상진흥센터는 이 같은 세계 경제의 흐름을 면밀히 분석하고 무역 전략에 적용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도록 다음 편에서는 기축통화에 도전하는 주요 국가의 움직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기고] 농업 지원, 보호를 넘어 자율성·자주성으로

농업은 국가의 기간산업이며 식량 안보와 사회적 안정을 지탱하는 핵심 기반이다. 그 중요성 때문에 농업은 오랫동안 정부의 보호와 지원을 받아 왔다. 시장 실패 가능성,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자연재해와 가격 변동, 그리고 농업이 제공하는 다원적 기능은 정부 개입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논거가 돼 왔다. 이러한 논리에 대해 때때로 과잉 개입, 비효율성, 세금 부담, 외부효과 과대평가 같은 비판이 제기된다. 그러나 긴 시간을 놓고 보면 농업의 시장 조정 기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작동해 왔으며 정부 지원이 국민경제 전체에 미치는 부담 또한 과장된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농업이 사회에 제공하는 공공적 가치는 수많은 평가에도 여전히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농정을 오랫동안 현장에서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다른 지점에서 깊은 우려를 느낀다. 그것은 바로 지원에 따른 자율성과 자주성의 약화다. 정부 지원이 많아질수록 농민은 시장과 자신의 노력보다는 지원 제도에 적응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창의성과 혁신은 점차 사라지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힘은 약해진다. 이는 개인 농가의 문제를 넘어 농업 전체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심각한 위기를 잉태하고 있다. 농업은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보호만으로는 미래를 열 수 없다. 이제 농정은 단순한 지원을 넘어 농업인 스스로 꿈꾸고, 도전하고,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자율성과 자주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그 전환을 위해서는 정책의 방향성과 실행 방식 모두에 변화가 필요하다. 획일적인 보조금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현장의 주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교육과 학습, 협업의 기회를 확대하고 지역 맞춤형 실험과 실패를 지원하는 유연한 정책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농업을 살리는 길은 결국 농민을 살리는 길이다. 그리고 농민을 살리는 길은 그들의 주체성과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다. 정부 지원은 그 길을 열어주는 토대가 돼야 한다. 이제 농정은 진정한 전환을 시작해야 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만평] 꽃길만 걷다 처음으로 맛보는...

[사설] 李지사 vs 金지사, 도정 실적 속에 국정 능력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도 화성시을 출신이다. 경기도 남부권 신도시 동탄을 대표한다. 이렇게 6·3 대통령선거가 ‘경기도 사람’ 대결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기호 1, 2번 주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경기지사 출신이다. 이 후보는 민선 7기(2018~2022년) 지사였다. 김 후보는 민선 4·5기(2006~2014년) 지사였다. 같은 지역 도지사 출신의 대권 맞대결은 없었다. 이·김 경기지사가 그 첫 테이프를 끊게 됐다. 색깔이 또렷하다. ‘이재명 지사’의 상징은 과감한 복지다. 보편적 복지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출발이 된 것은 지역화폐와 청년배당이다. 성남시장(2010~2018년) 때부터 도입했다. 2018년 도정에서 기본소득으로 자리잡았다. 전국적 명성을 얻은 것은 코로나19 지원금이다. 2020년 3월, 2021년 1월 두 차례 지급했다. 이후 기본소득은 지역화폐와 함께 그의 정책 상품이 됐다. 그 추억이 지금도 경기도 표심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김문수 지사’의 상징도 선명하다. ‘대심 철도’라는 개념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지하철과 전혀 다른 방식의 교통 인프라였다. 예산, 공법 등에 우려가 많았다. 조기 추진 TF팀과 민자를 앞세워 밀어붙였다. 임기 내 A노선을 관철시켰다. 그 GTX가 지금 수도권 지하를 채워간다. 뺄 수 없는 김문수 도정의 상징이 부패 척결이다. ‘청렴영생 부패즉사’는 그가 주창했던 도정의 구호였다. 8년 임기를 전후해 본인 또는 가족이 연루된 비위도 없었다. 파격적인 복지 행정을 남긴 ‘이재명 지사’다. 부패척결 행정을 실천한 ‘김문수 지사’다. 이런 둘도 다른 시각에서는 비판 대상이다. ‘이재명 지사’를 향한 공격은 재정건전성이다. 코로나19 재난기본소득에만 3조3천845억원을 썼다. 도민 1인당 10만원씩 나눠준 세 번(1·2차는 경기도 부담, 3차는 정부와 분담)의 예산이다. 지역개발기금에서 끌어다 썼다. 그 외상을 지금도 갚고 있다. ‘김문수 지사’를 향한 공격은 이율배반이다. 국민의힘 후보 등록 과정에서 이전투구를 연출했다. 국민에게 권력을 향한 탐욕으로 비쳤다. 지금껏 그가 강조해온 도덕적 가치와 안 맞는다. 경기도는 대한민국 행정의 축소판이다. 식상하리만큼 들었던 자부심이다. 바로 이 자부심이 이번 대선의 기준점이다. 후보 등록 마감 결과 그렇게 짜여졌다. 1천400만 도민이 자연스레 ‘두 지사’의 도정을 추억하게 됐다. 그리고 20일 뒤 각자의 성적을 매기게 됐다. 늘 그렇듯 선거에는 양비론이 없다. 누군가에는 후할 것이고, 누군가에는 박할 것이다. ‘이재명 경기도정’과 ‘김문수 경기도정’이 그렇다. 시공을 초월해 받게 될 냉정한 평가다. 그 승부가 시작됐고, 11일 오전 여론은 이렇다. ‘경기지사 이재명’ 1위, ‘경기지사 김문수’ 2위, ‘경기동탄 이준석’ 3위.

[사설] 위협받고 있는 안보 환경,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8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9일에는 두 정상이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제2차 세계대전 승리 기념일 80주년을 맞아 열린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 서로를 ‘동지’라고 부르는 등 중국과 러시아가 상호 협력을 과시했다. 특히 푸틴과 시진핑은 정상회담 후 성명을 통해 대북 제재와 압박 중단을 촉구했다. 두 정상은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포기하라”고 서방에 요구했다. 또한 이들은 “확장된 핵 억제가 지역 안정을 위협한다”며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을 없애라는 주장을 했다. 이런 성명 내용은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으면서 유엔의 북한 제재를 풀고 동시에 미국의 핵우산 정책을 비판했다는 차원에서 한국의 안보에 대한 큰 위협이 되고 있다. 트럼프 제2기 행정부 등장 이후 미국으로부터 중국에 대한 관세 압력이 증가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압박이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때보다 중국과 러시아의 상호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이에 북한은 지난해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맺고 우크라이나전쟁에 1만5천명가량을 파병하면서 북한과 러시아는 밀착하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의 참전의 대가로 핵·미사일 관련 첨단 군사기술 이전을 본격화할 징후가 보도되고 있다. 지난 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장거리포·미사일 체계 합동 타격 훈련을 현지 지도하며 “전술 핵무기 체계의 전투적 신뢰성을 더욱 높이라”고 지시했을 정도로 북한은 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현재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북·중·러 삼각동맹이 심화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에 의해 주한미군 역할 조정론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북한이 북핵 동결과 대북 제재 완화를 주고받는 북미 거래가 추진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한반도의 안보 위협은 상상하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다. 급변하는 국제 상황 속에서 한국 안보가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국내 정치는 국방안보에 대한 논의는 고사하고 연일 정쟁만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상당히 불안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안보 불안이 초래되지 않도록 압도적 군사력 확보와 한미일 동맹을 강화함은 물론 군의 실전 훈련 반복으로 즉각 대응 능력을 향상시켜야 할 것이다. 어느 때보다 안보 태세 강화를 위한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지대] 항생제 안 듣는 슈퍼세균

기침을 하거나 머리가 아프면 약국을 찾는다. 항생제를 사기 위해서다. 항생제는 다세포 생물의 생체조직 내에서 박테리아 등 특정 세균의 증식이나 생존 등을 중점적으로 방해하는 약물의 총칭이다. 이 약품이 의학에 도입되기 전에는 많은 인류가 사소한 감염질환으로 목숨을 잃었다. 폐렴이나 결핵, 종기, 패혈증 등이 대표적이다. 등에 난 종기 때문에 임금조차 여럿 죽어 나간 기록도 있다. 작은 상처로 환부 절단, 심지어 사망 직행이었던 시절이 불과 1세기 전이다. 항생제로 치유할 수 없는 질병도 있다.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목(CRE) 감염증이 대표적이다. 이 질환은 장내세균목 균종에 의해 감염된다. 주로 의료기관서 감염된 환자나 병원체 보유자와의 직간접적 접촉이나 오염된 기구 등을 통해 전파된다. 대부분의 항생제가 듣지 않아 치료가 어렵다. 그래서 의학계에선 슈퍼세균이라 부른다. 최근 슈퍼세균에 감염된 사례가 국내에서 지난해 4만건을 훌쩍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목 감염증 신고 건수는 모두 4만2천827건(잠정)으로 나타났다. 2023년 3만8천405건에서 11.5% 늘었다.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고 수준이다. 60대 이상이 전체 감염자의 80%가 넘었다. 2017년 6월부터 전수 감시 대상에 포함돼 그해 5천717건이 신고된 것을 시작으로 2018년 1만1천954건, 2019년 1만5천369건, 2020년 1만8천113건, 2021년 2만3천311건, 2022년 3만548건 등 해마다 신고 건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같은 기간 사망자도 빠르게 증가했다. 2017년 37명, 2018년 143명, 2019년 203명, 2020년 226명, 2021년 277명, 2022년 539명, 2023년 661명 등이다. 우리 사회에서 위험한 분야가 어디 슈퍼세균뿐일까.

[아침을 열면서] 높임말의 제자리 찾기

요즘 길 잃은 높임말을 자주 만난다. 과용에서 오남용까지 높임말의 범람도 점입가경이다. 높임이라는 특성상 맞춤하게 쓰기 어려운 면은 있다. 높임의 기본 기준은 생물학적 나이지만 관계에 따른 호칭 속의 높임·낮춤도 있으니 복잡한 것이다. 그런 사정으로 신분이며 친인척 사이의 구분이 위계나 수직적 질서를 강화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높임말 습속은 쉽게 변하지 않을 듯하다. 최근에 많이 나오는 높임말 문제 중에 ‘분’의 오남용이 있다. 예컨대 ‘팬(fan)분’을 넘어 ‘어린이분’, ‘어르신분’ 같은 과용이 의외로 늘어난 것이다. 어린이만 해도 ‘어린 사람’(아동인권 의식이 부족했을 때는 ‘어린놈’ 취급이 예사였음)의 높임말에 속한다. 사람을 조금 높여 이르는 ‘그이, 저이’ 같은 말의 ‘이’를 붙인 ‘어린+이’니 말이다. ‘젊은이, 늙은이’도 같은 맥락의 말인데 늙은이는 노인 비하로 여겨져 쓰기 어려운 말이 됐다. 그러다 보니 ‘어른’의 높임말로 ‘어르신’을 쓰는데 거기에 ‘분’까지 덧붙여 기이한 말본새가 떠도는 것이다. 높임에 높임을 얹는 말이니 옥상옥(屋上屋)이 따로 없다. 한때 사물 높임말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커피 두 잔 나오셨어요, 큰 사이즈는 지금 없으세요’ 같은 이상한 높임에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넘쳤던 것이다. 꾸준한 지적 끝에 그 비슷한 사물 높임의 오남용은 이제 사라진 듯하다. 무의식중에 잘못 쓰는 말씨를 바로잡은 사례라 하겠다. 그런데 최근에는 또 다른 높임말의 폭주가 거슬린다고들 한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높임말이 헷갈리는지 이상한 자기 높임말들이 빈번해졌다는 것이다. 그중 흔한 예로 ‘제가 아시는 분’이나 ‘저한테 여쭤보시면 돼요’ 같은 말들이 있다. 상대에게 높임말을 쓰려다 오히려 자신을 높이는 말이니 높임의 대상을 혼동하는 데서 나왔을 테다. 틀린 줄도 모르고 쓰는 말을 일일이 짚어줄 수도 없으니 민망함은 듣는 사람의 몫인지. 그저 아는 사람만 속 시끄러울 노릇이다. 사실 우리말은 높임말을 제대로 잘 쓰기 어려운 언어로 꼽힌다. 대상에 따른 높임말 사용도 그렇지만 친인척의 위계에 따른 높임말은 최상급의 어려운 말일 것이다. 그중에도 시가·처가 사이의 호칭과 그에 따른 높임말의 구분은 복잡하고 민감하다. 무엇보다 여성의 친인척 호칭에 깊이 배어 있는 차별성이 명절 기사로 오르내릴 만큼 비판을 초래하는 것이다. 갈수록 여성 자신의 역량으로 바꿔가긴 하지만 여성 쪽 호칭과 관련된 낮춤말은 여전히 쓰이고 있다. 가부장사회 유습 중에도 말에 깃든 의식의 개선이야말로 문화 변화 이상으로 더딘 까닭이겠다. 차별적 표현을 대체할 만한 적절한 말을 새로 만들기도 어려운 데다 생활의 적용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니 말이다. 우리말 속의 위계는 뿌리가 깊다. 높임말·낮춤말이 생물학적 나이에서 사회적 신분의 표현에까지 층층이 들어 있다. 높임말 사용이 인성은 물론이고 가정교육까지 운운하는 사회 분위기가 작용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무례와 무시를 넘나들던 높임말 문제로 살인까지 간 사건도 나온 게다. 조심에 조심을 더하는 높임말, 지나치게 높이다 오남용에 걸리기 십상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높임말도 적절히 잘 써야 존중의 교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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