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연 아태반추동물연구소 연구원
템플 그랜딘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카우보이 복장에 열정 가득한 눈을 가진 그는 가축 복지 분야에서 가장 존경받는 박사다. 템플은 자폐를 안고 살았고 주변 사람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소음과 장면이 참을 수 없는 불안과 공포로 밀려오곤 했다. 어린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고모 부부가 운영하는 소 농장에서 지내면서 부터였다. 농장 심부름을 하며 바라본 소는 불안했던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그는 맑은 눈의 소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떨리는 순간이었다. 덩치 큰 소들은 일제히 그를 에워쌌지만 전혀 다치게 하지 않았다. 차츰 바닥에 앉기도 하고 때로는 누워 소와 시간을 보내면서 템플은 동물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는지 공감했다.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석사과정으로 동물과학을 공부하면서 가축 핸들링과 도축장 문제의 원인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인지했다. 특히 도축장의 소가 앞으로 가지 못하고 갑자기 멈추는 일이 흔한데 핸들러들은 이유를 몰라 소리를 지르거나 막대기로 위협하는 일이 잦았다. 소가 멈추는 이유는 시각, 청각, 후각이 예민하고 정보 처리하는 전두엽의 운영체계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만약 햇빛에 반사된 물이나 작은 소음, 바닥에 음영이 나타나면 동물은 심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템플은 가축의 스트레스 행동과 환경 요인의 관계를 종합해 연구를 진행했고 이를 통해 가축 핸들링 기준과 동물복지 도축장 시설 설계를 이끌었다. 그가 설계한 곡선형 통로는 가축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도록 유도해 스트레스를 최소화했다. 이 시설은 오늘날 미국과 캐나다 대형 도축장의 절반이 채택해 수많은 동물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여주고 있다.
동물보호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동물권리(animal right)를 떠올린다. 동물권리는 인간의 목적을 위해 동물을 이용하는 것 일체를 반대한다. 동물보호 단체의 이념과 실천 열정은 생명존중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먹거리 보급을 위해 가축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동물의 고통을 덜어주기가 어렵다. 인류가 살아가는 한 가축은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동물보호에도 동물복지와 같은 현실적인 노선이 병행돼야 한다. 인류에게 희생되는 가축이기에 더 외면받지 않아야 하고 사각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 그런 가축이 처한 현실을 현장에서 정면으로 마주한 사람이 바로 템플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항의가 끊이지 않았다. 일부 동물권리론자들은 그의 활동을 “가축 도축을 정당화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가축의 운명을 살아가는 동물에게 일생을 바쳐 더 나은 삶을 제공하려 노력했고 실질적인 결과를 선사한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이러한 사례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동물을 보호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때론 협력하고 때론 각자의 길을 응원할 때 비로소 더 많은 동물에게 보다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템플 그랜딘의 이야기는 동물 이용의 최전선에 놓인 가축의 이야기다. 가축의 편에서, 현실의 한가운데서 동물복지가 절실한 생명에게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한 사람에게 존경을 표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저서 ‘동물과의 대화(Animals in Translation)’ 첫 페이지에 나오는 글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나는 동물을 사랑한다. 그것이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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