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산을 내려와서

며칠 전 어머니를 하늘나라에서 홀로 지내시던 아버지 곁에 모시고 돌아 왔습니다. 어머니가 운명하셨다는 비보를 접한 건 공교롭게도 프랑스의 어느 호텔방이었습니다. 스위스에서 TGV를 타고 밤늦게 도착해 잠든지 2시간 정도가 지난 새벽, 비보를 접하고는 머릿속이 갑자기 텅빈듯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또한 이국땅이어서 마땅히 무엇을 먼저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파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10여시간은 평생을 두고 가장 지루했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온몸이 떨리고 사지가 뒤틀리고 기내식은 입에 대지도 못하고 물만 들이켰습니다.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우리네 부모님들이 거의 그러했지만 필자의 어머니는 평생을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정말 불쌍한 분이라는 생각이 절절하기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시골로 시집와 그리 많지 않은 땅을 일구면서 6남매를 키우고 공부시키는 일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지땀을 흘리며 땅을 일구고 날품팔이까지 하시면서 저희 6남매를 고등학교 이상 공부를 시키셨습니다. 물론 많지도 않은 땅을 팔아 가면서까지 억척스럽게 공부를 시키신 부모님은 마을사람들에게서 제 정신이 아니라는 손가락질까지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은 미련스러우리만치 우리를 가르치시느라고 허리띠를 동여 매시며 버거운 삶을 지탱해 가셨습니다. 코흘리개였던 필자는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고마워 학교수업이 끝나면 책가방을 마루에 내던지고 부모님의 일을 도우며 하루해를 보내곤 했습니다. 부모님은 이런 나의 모습을 대견스럽게 바라보시곤 했지만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숨을 몰아쉬며 일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 도무지 꾀를 부릴 수가 없었습니다. 필자가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고3 여름방학 때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뒤 군에서 제대한 형과 공무원생활을 시작하면서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학 진학의 꿈은 셋째와 넷째 남동생들을 대학에 보내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질 무렵인 14년 전 아버지께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팔자가 피려고 하니 돌아 가셨다고 했습니다. 정말 지지리도 복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홀로 되신 어머니는 망연자실, 그동안 많은 질곡의 세월을 눈물로 보내셨습니다. 말년에는 당뇨에 시달리면서 약간의 치매증세마저 보이시곤 했습니다. 석달 전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할 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돌아 가시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황망함속에 어머니를 아버지 곁에 모시고 돌아서는 뒷전으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뒷덜미를 붙잡고 놓아 주질 않았습니다. 참으로 어렵게 살아 오시고 남긴 물질적 유산이라고는 집 한채와 논 몇마지기뿐이지만 정신적인 유산은 더없이 소중하기만 합니다.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동네사람들과 더 없이 사이좋게 지내셨고 어머니와도 특별히 다투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어머니도 많이 배우진 못하셨지만 오직 아버지와 자식들을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이신 참으로 고마운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마음은 더없는 부자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에 그 당시 우리 시골동네 다른 부모님들처럼 고생을 덜하시려고 우리 6남매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면 지금쯤 필자도 평범한 농사꾼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더구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우리들과 이웃을 위해 보여 주신 두분 어르신의 헌신적인 삶의 자취는 죽을 때까지 큰 교훈으로 마음속에 살아 숨쉴 것입니다. 14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저승에서, 홀로되신 어머니는 이승에서 외롭게 지내오셨습니다. 아마도 지금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세상사 모두 잊고 그동안 못다 한 사연들을 엮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지내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늘나라에는 이승과 달리 걱정이나 근심 같은 건 없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젯밤엔 보름달이 유난히도 밝고 그 빛이 더없이 그윽하기만 했습니다. 그 달을 쳐다 보고 있노라니 어머니의 얼굴이 함께 보여 아린 마음으로 하염없이 바라보다 돌아섰습니다. 정말 복도 없이 고생만하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나마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아무 걱정 없이 하늘나라에서 지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지금은 훗날 필자도 부모님과 함께 고생 없이 지낼 수 있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그저 간절할 뿐입니다. /홍 승 표 시인·경기도 총무과장

기고/선거와 정치

10·26 보궐선거가 끝난 지 벌써 보름이 지났습니다. 외형상으로 지난 4·30선거에서의 24대 0에 이어, 4대 0 전승으로 야당 후보가 당선된 것으로 끝났습니다. 언론은 “집권 여당의 실정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패배한 여당은 그 여파로 대표가 바뀌는 등 내홍을 겪고 있고 전승을 거둔 한나라당 역시 “내가 잘 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못했기 때문”이라고 자평하면서 현재에 안주해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쨌든 선거 당시의 격렬함은 어느덧 사라지고, 현재 많은 변화가 정치권에서 일어 나고 있으며 정치의 격렬함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경기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선거현장을 누비면서 느낀 몇가지 단상을 ‘선거와 정치’란 화두로 적어 볼까 합니다. 학창시절 제가 배운 국어 교과서에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글이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선 수업이 끝난 후, 저희들에게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란 제목을 주시면서 “삶의 기쁜 모습을 적어 보라”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매번 선거 모습을 보면 선거에 나선 후보들(여당이든 야당이든 상관없이)은 정말 부지런히 뛰어 다닙니다. 제대로 잠 잘 시간도 없이 김밥 하나와 생수 한병을 들고 만나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명함을 주며 자기 알리기에 하루를 보냅니다. 이중 후보를 ‘슬프게 하는 것과 기쁘게 하는’ 여러 모습에 접하게 됩니다. 먼저 후보를 ‘슬프게 하는 것’중 굳이 2가지를 든다면, 유권자 손에 쥐어 준 명함이 열걸음도 가지 않아 길거리에 버려지는 모습이고 또 하나는 후보가 내민 손을 마치 바퀴벌레(?)를 본 것처럼, 몸을 뒤로 빼며 움츠릴 때입니다. 후보를 엄청 힘 빠지게 하고 슬프게 하는 광경입니다. 그렇다고 유권자들을 탓할 순 없습니다. 누굴 탓할 게 아니라 정치권 스스로 얻은 슬픈 자업자득입니다. 어쩌면 선거란 ‘좀 더 나은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좀 덜 못한 사람’을 뽑는 정치행위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모습의 선거란 정치행위는 참으로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때론 후보를 기쁘게 하는 정치행위도 있습니다. 자주 찾게 되는 (재래)시장에서 물 묻은 손으로 건네 주는 한 잔의 음료수와 함께 “힘 내세요!”라고 전해주는 말 한마디는 후보들에게 젖 먹던 힘도 다시 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굴 좋아하고 누군 싫어하는 게 인지상정이겠지만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김밥 하나와 생수 한 병을 들고 부지런히 뛰어 다니는 부지런한 사람에 대해선 (그 사람이 어느 정당 후보이든 상관없이) 좀 더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과 아량이 있는, 그런 선거 풍토가 하루라도 빨리 조성됐으면 합니다. 사실, 정치란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며, 아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거의 1년에 한번씩 치러진다 싶을 정도의 많은 선거(대선과 총선 및 재·보선 등)를 보면서, 그리고 이번에 치러진 10·26 국회의원 재선거를 보면서, 또 다시 알게 된 점이 있습니다. ‘후보들(당선된 후보이든 떨어진 후보든 상관없이)이 아직도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구나’하는 점입니다. 민심을 제대로 읽고, 민심에 다가가는 정책, 실천 가능한 합리적 공약을 제시하고 공약대로 실천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내린 유권자의 평가를 겸허하게 수용하고 자기반성의 계기로 삼으면 됩니다. 그러나 민심에 다가가는 정책은 컴퓨터 모니터만 봐선 알 수 없습니다. 콩나물 시루 같은 출근길 전철 속 TV 모니터도 ‘희망 한국 21’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철 속 시민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민심에 다가가는 정책은 전철 속의 시민들 얼굴과 함께 부대끼며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거현장에 가면 매번 듣던 말을 끝으로 적어보겠습니다. “또 선거철이 된 모양인지? 그동안 코빼기 한 번 보이지 않던 사람들 말(공약)대로만 됐으면 우리가 왜 이 모양으로 살겠어?” 새겨 들어야 할 말들입니다. “선거가 끝나면, 새로운 정치를 다시 해야 한다. 내일이면 새로운 선거가 또 다시 당신 곁에 찾아온다” 는 지인의 말이 생각납니다. 정치와 함께 하는, 정치인으로서 저의 안일함을 일깨워 주는 말입니다. /김 영 선 한나라당 최고위원(고양 일산 을)

기고/쌀정책의 변혁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방안

정부가 지난 7월 시행한 쌀 이중곡가제의 폐지와 쌀 600만섬 공공비축제, 쌀소득보전직불제 실시 등은 쌀정책의 대변혁이다. 대외개방 압력으로 쌀정책을 바꿀 수밖에 없는 정부의 고충도 이해되지만 충격적인 건 쌀생산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데 심각한 문제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새로운 쌀시장이 확립되지 않아 현재 산지벼 값이 대폭 떨어지고 향후 시장 참가자들의 혼란이 예상되고 있다. 우리나라 쌀시장은 정부수매를 중심으로 쌀시장 물량이 조정돼 왔고 정부의 이중곡가제로 매우 큰 시장가격 지지를 해온 것이다. 한마디로 정부 주도하의 쌀시장이었던 것이다. 쌀시장은 거의 무한경쟁의 시장이다. 그곳에서 정부란 큰 손이 쌀시장에서 단번에 손을 떼었다. 그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참고로 일본은 도매시장을 단계적으로 육성해 개방의 파고를 최소의 손실로 잘 넘기고 있다. 일본은 품종별, 지역별로 3만t 이상 생산되는 쌀은 생산량의 30% 이상을 반드시 도매시장에 상장해 거래토록 해 물량조절과 합리적인 가격이 되도록 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보호하고 있다. 둘째, 산지 벼가격이 급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쌀가격은 비탄력적이므로 완만히 변동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이번 정책변화로 쌀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쌀생산소득보전제로 하락분의 85%는 보상되지만 나머지 15%는 생산 농민이 손해볼 수 밖에 없다. 낙폭이 크면 클수록 농민의 손실은 클 것이다. 시가의 급락 원인이 된 건 정부가 공공비축제 수매가를 너무 낮게 잡은데 있는데, 기준가인 80㎏들이 가마니당 17만70원의 80%를 잡았다고 한다. 이는 정부가 쌀값을 20% 하락시킬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연말에 시중가를 조사해 확정한다고 하는데 이는 이미 정부의 낮은 수매가로 인해 농협 등도 수매가를 낮출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가가 하락한 것을 조사해 결정하기 때문에 현 정부의 낮은 수매가격이 그대로 반영될 것이다. 즉 가격하락을 유도하는 게 돼 버린다. 셋째, 정부의 소득보전 직불금이 수매가와 별도로 지불돼 효과가 적으며 나머지 15%에 대한 지원 대책이 나와야 한다. 정부는 쌀값 하락의 85%를 소득 보전해주는데 이를 농협 수매와 연계해 지불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나머지 15%는 농민이 부담하는 부분에 대해 생산보조 등으로 대책이 수립돼야 한다. 영세한 농민이 부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넷째, 올해의 정부의 쌀 공공비축 수매방법이 국산쌀의 품질 경쟁력을 떨어뜨리며 쌀시장에 다시 새로운 이중 가격이 형성될 것이다. 국산 쌀의 유일한 생존방안은 맛있으며 품질 좋고 소비자가 원하는 쌀을 가급적 싼 값에 시장에 공급하느냐 하는 품질경쟁력이 유일한 방안이다. 국산 쌀의 가격경쟁력은 국제가에 대비, 5~6배 수준으로 너무 높기 때문에 따라 잡기 어렵다. 맛좋은 추청 등을 재배하는 농민들도 수량이 많이 나고 맛이 떨어지는 다수확 품종 위주로 벼를 재배해 쌀의 전국적인 맛과 품질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다섯째, 많은 임차농들이 소득보전직불제의 신청을 포기한 상태이다. 이중곡가제 폐지의 보완대책인 쌀소득보전 직불제의 수혜자가 불명확해 실질적 생산자인 임차농이 수혜를 보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이중곡가제의 폐지, 대안으로 실시되고 있는 정부 공공비축제와 쌀소득보전제 실시 등은 국내산 쌀산업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몇가지 조건이 시급히 개선돼 실시돼야 한다. /구 을 회 농협중앙회 여주군지부장

기고/자린고비가 천장에 매단 굴비

경기도교육청은 요즘 눈코 뜰새가 없다. 얼마전 국정감사와 교육위원회 감사에 이어 도의회 행정감사까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예산심의도 받아야 한다. 산하는 풍성한 수확과 붉은 단풍으로 풍요와 놀이의 계절인데 경기도 교육청은 각 지역교육청별로 힘들고 고달픈 계절을 맞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것도 넉넉한 예산편성이라 한다면 그나마 마음이 좀 풍요로울지 모르지만 내년도 예산세우기는 칼날 위에 쌀 올려 놓기보다 더 비좁고 어둡기만 하다. 학교마다 긴축예산이 불가피해지고 있는데 학교에서 쓰는 전기료는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교육에 필요한 여러가지 기자재와 사무용 기기는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하고 냉난방 비용도 만만찮다. 예를 들자면 학교마다 에어콘을 설치해놓고도 전기료를 감당할 수 없어 사용하지 못하고 쳐다 보는 일이 생기고 있다.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는, 아니 그보다 더 발달된 시대를 이끌어 갈 우리의 귀한 아이들이 아닌가? 학교에서 전기료 때문에 설치해 놓은 에어콘 사용을 못하고 있다니 OECD 국가중 이런 곳은 없을 것이다. 내년에는 꼭 교육용 전기료가 인하돼 학교 재정에 많은 도움을 주고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좀 더 쾌적하게 해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펜을 잡았다. 현재 산자부나 한전은 산업용 전기료를 현재보다 올리고 일반용과 교육용을 내리는 방식으로 새 요금체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산업용 전기세를 올리는 문제가 결코 간단찮기 때문에 교육용을 현재 산업용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강구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전체 전력소비량의 1.1% 수준인 교육용 전기의 1㎾당 단가를 현재 산업용 수준인 60원으로 낮춘다면 전국적으로 1천1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2조원의 순익을 남기고 있는 한전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액수다. 요즘 북한에 200만㎾ 전기를 송전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북송전에 관련 설비를 갖추는데만 3조5천억원, 그리고 매년 1조원 이상의 발전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다 좋은 이야기다. 그런데 문제는 미래의 주인공이요, 이 나라를 이끌어 갈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에 선풍기 바람으로 학습자료가 다 날아가고 설치된 에어콘을 바라만 보며 땀을 흘리는 점이다. 자린 고비가 천장에 매달아 놓고 쳐다만 보는 굴비와 다를 게 무엇인가. 아직도 학교 연구실에 에어콘이 없는 곳이 많다. 선생님들은 방과후 학생들이 돌아간 어두침침한 교실에서 전기세를 아낀다고 불도 켜지 않고 사무를 보는 분들도 많다. 설치해 놓고 사용하지 못할 에어콘보다는 덜덜대며 사무용품을 날리는 선풍기가 훨씬 낫다는 자조섞인 푸념들도 있다. 요즘 버스표를 파는 부스나 신발 닦는 박스 속에서도 에어콘은 생활화됐다. 이처럼 일반화된 에어콘을 교실에 설치해 놓고도 학생들이 더운 여름을 그냥 쳐다보며 보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내년에는 학교 예산이 금년보다 더 긴축을 해야 한다고 한다. 성장이고 분배고 모두 좋다. 미래 이 나라의 주인공인 학생들을 위한 교육여건 개선사업을 최우선 과제로 책정, 학생들에겐 학습권을 보장하고 선생님들에겐 사기를 올려주어야 한다. 한전의 전기공급약관 제67조와 제68조를 개정해 현 교육용 전기요금을 인하해야 한다. 정부와 한전은 산업발전보다는 2세 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 학교에 쾌적한 환경을 조성해 주고 교육용 전기기자재를 마음놓고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길 기원해 본다. /이 철 두 경기도교육위원·수필가

기고/실존인물 ‘洪吉同’과 허구인물 ‘洪吉童’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사람 이름의 표본이나 대명사처럼 사용하는 ‘홍길동’이란 이름 석자가 ‘어디에서 유래했는가’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광해군(재위기간 1608~1623)때 홍길동전을 통해 임진왜란 후의 사회제도의 결함, 특히 적서 신분 차이 타파와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려는 허균(1569~1618)의 혁명 사상을 작품화한, 최초의 한글 소설의 주인공인 홍길동과 한자는 약간 다르지만, 이 소설이 쓰여지기 100여년 전 홍길동이란 실존인물이 연산군일기 1500년(연산군 6년) 10월과 12월 두번씩이나 등장하는데, 이중 12월29일 기록을 소개한다. “山君六年庚申一二月己酉義禁府委官韓致亨啓强盜洪吉同頂玉帶紅稱僉知白?成群載持甲兵出入官府恣行無忌其勸農里正留鄕所品官豈不知之然不捕告不可不懲?徒邊何如傅曰知道” (연산군 6년인 1500년 12월29일 의금부 위관 한치형이 아뢰기를, “강도 洪吉同이 옥정자와 홍대 차림으로 첨지라 자칭하며 대낮에 떼를 지어 무기를 갖고 관부에 드나 들면서 기탄 없는 행동을 자행했는데, 그 권농이나 이정들과 유향소 품관들이 어찌 이를 몰랐겠습니까? 그런데 체포해 고발하지 않았으니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 모두 변방으로 옮기는 게 어떠하리까?”라고 말하니, 전교말하기를, “알았다”고 했다) 위의 연산군일기 기록을 고찰하건대 홍길동이 대낮에 무기를 들고 관부에 드나 들며 떼강도짓을 해도 지역 유지나 관리들이 체포나 고발하지 않아 그들을 변방으로 이주시킨 사실에다 연산군 학정하에서 홍길동의 의적활동을 그들이 방관한 사실 등을 보면, 소설 홍길동전 주인공과 많이 닮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임금쪽 기록으로 그를 단순한 강도로 매도하고 있다. 실례로 1801년 신유년 천주교도들을 박해한 사건을 임금은 신유사옥이라고 하지만 백성들은 신유박해라 하지 않는가. 실존인물 홍길동에 대한 백성쪽 기록이 아쉽다. 실존인물 홍길동은 1440년(세종22) 전남 장성에서 양반인 아버지와 관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서얼의 관리 등용을 금지하는 경국대전 반포로 과거 시험을 포기하고 주로 하삼도 지방을 무대로 탐관오리와 토호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의적 활빈활동을 했다. 그는 당시 왕족 부녀자들과 추문은 있었지만 당시 고승이었던 학조대사에게 병법과 무술을 배워 수준 높은 무술인이었다. 그는 1500년(연산군 6년) 10월22일 이순(耳順)의 나이에 체포됐다. 체포될 당시 일기는 “영의정 한치형·좌의정 성준·우의정 이극균이 함께 당시 왕에게 아뢰기를 ‘듣건대 강도 홍길동을 잡았다 하니 기쁨을 견딜 수 없습니다. 백성들을 위해 해독을 제거하는 일보다 큰 것이 없으니, 이 시기에 그 무리들을 다 잡도록 하소서’라고 말하니, 왕이 그대로 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연산군 당시 실존 인물 홍길동(洪吉同)이 2차례나 대신들과 왕의 입에 회자되면서 연산군일기에 살았던 자취를 남긴 것을 보면 강도는 아니었고 100년 후 태어난 허균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실존 인물 홍길동이 태어난 장성 선계폭포가 있는 우반계곡은 허균이 은거하며 홍길동전을 집필하며 풍류를 즐기던 곳이라고 한다. 이런 정황을 감안하면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이 100년 전 이 고장에서 태어난 홍길동이 자신의 처지와 같음을 간파하고 그의 행적을 인용·과장해 홍길동전을 썼음이 틀림없다. 실존인물 ‘洪吉同’의 ‘同’자를 ‘童’자로 살짝 바꿔 허구인물 ‘洪吉童’을 지어냈다. 아무튼 강도 홍길동은 100년 후 모순된 사회를 개혁해보려는 양반 서얼 출신 혁명가 허균 눈에 띄어 우리 민족의 역사 무대에 우뚝서게 됐고 근래에는 그가 살았던 전남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390에 64평 규모 생가까지 복원됐다. /육 광 남 의정부 호원고교 교장·수필가

기고/쌀밥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

못먹던 시절엔 굶주림에서 해방되는 게 급선무였다. 하지만 80년대 압축성장과 고속성장 등에 힘입어 국민의 식생활도 크게 변하게 됐다. 특히 쌀의 자급자족으로 우리의 식생활이 풍요롭게 되고 편의성을 추구하는 현대식 식단이 등장하면서 쌀밥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게다가 먹고 살만하면 민주화 욕구가 커진다고 했던가. 2~3년간 ‘참살이’ 웰빙바람이 신나게 불어 대는가 했더니 요즘엔 로하스라는 ‘신 참살이’ 풍조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러한 로하스 개념의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바로 유기농산물이다. 즉 소비자가 유기농산물을 구매하면서 자신의 일시적 건강만을 생각해 구매한다는 차원 이외에 유기농산물 재배를 통해 우리가 사는 지역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복원시키고 궁극적으로 쾌적한 주거환경에 기반한 건강도모 의미까지 포함하는 게 진정한 참살이라는 것이다. 진정 오늘날처럼 자신의 건강과 친환경기반에 관심이 높은 때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의 주식인 쌀은 건강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일반적으로 식생활은 민족과 인종 등에 따라 인체의 생리작용이 상이하다. 하지만 한국인은 옛날부터 오랫동안 쌀밥을 먹어왔다. 이 결과 쌀밥을 먹는 식습관에 길들여져 있고 소화흡수도 잘된다. 예컨대 치아의 형태나 장의 길이, 소화액의 분비, 장내세균을 위시해 우리의 신체는 쌀밥에 알맞게 적응돼 있다. 그런데도 신세대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쌀밥보다 빵을 많이 찾는다. 지금부터 우리 건강에 쌀밥이 좋은지, 빵이 좋은지 한번 따져보자. 쌀밥은 기본적으로 쌀의 기호성, 경제성, 생산성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반면, 빵은 쌀에 비해 비타민 B1이 더 많으며 경제적으로 선진화된 구미 여러 나라에서 먹고 있는만큼 좋은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문제는 우리가 먹는 식사가 쌀밥이나 빵만 먹는 게 아니므로 쌀밥과 빵의 영양학적 절대적 가치의 우열을 논할 수만은 없다. 중요한 건 쌀밥과 같이 먹는 반찬이 무엇인가. 그리고 빵과 같이 곁들인 식품을 모두 합한 전체의 식사가 좋고 나쁜가를 비교해야 한다. 즉 우리들의 식사의 우열을 지배하는 건 주식과 부식의 질과 양이다. 예를 들면 빵과 버터, 빵과 커피는 쌀밥과 생선구이, 김치 등을 곁들인 식사보다 떨어진다. 또 쌀밥과 김치, 쌀밥과 된장국 등은 빵과 스프, 우유, 샐러드 등으로 된 식사보다 떨어진다. 쌀밥이든 빵이든 이들 식품과 곁들이는 부식에 의해 영양성이 달라지게 된다. 이처럼 맛의 배합이란 점에서 빵과 된장국보다는 빵과 크림스프 등이 적합하다. 역사적으로 보존식품을 주축으로 한 서구 식사의 간편성 때문에 아침식사에 빵이 일찍이 보급됐다. 하지만 서양식사는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 등의 공급이 많다. 이에 비해 쌀밥은 맛이 산뜻하므로 부식도 기름지지 않고 향기가 짙은 게 특징이다. 특히 쌀은 주요 에너지 공급원은 몰론 비만방지, 당뇨예방, 혈중콜레스테롤 저하 등 다양한 인체생리효과를 지닌 우수한 식품으로 검증된바 있다. 뭐니 뭐니해도 쌀밥의 가장 큰 강점은 빵보다 훨씬 많은 여러 가지 종류의 부식을 같이 먹게 돼 영양의 밸런스를 알맞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쌀을 식량으로 하는 민족은 번영한다. 단위면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칼로리는 최대가 된다”라고 말한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의 말을 되새겨 보면 쌀밥과 빵의 건강게임 승자를 알 수 있다. /전 성 군 농협중앙교육원 교수·경제학박사

기고/자치단체는 교육경비 지원 우선해야

해방 후 6·25전쟁으로 인한 이념 갈등과 경제적인 피폐상황은 국민소득 67달러가 대변한다. 이후 황우석 교수로 상징되는 생명공학기술(BT)의 선도와 반도체 정보통신 기술(IT)의 선진화 등은 경제 규모 세계 11위 국민소득 1만4천달러에 걸맞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현주소다. 더불어 비정부단체(NGO)의 역할과 다양한 종교의 수용 등 사회적 다원성 측면에서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최근에는 고속 성장의 성공사례를 선·후발국에서 벤치마킹하는 흐뭇한 광경도 목도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선진국 진입이란 지상과제를 안고 있지만 전후 폐허에서 오늘날의 풍요가 있기까지의 동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국내외 전문가의 공통된 해답은 우리나라 국민의 높은 교육열 덕분에 고학력의 인적자원이 성장 동력이었다는 점에 토를 달지 않는다. 요즘 각 시·도교육청이 예산 때문에 아우성이라는 보도는 시쳇말로 나쁜 뉴스다.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올해 예산 5조9천138억원이 모자라 6천312억원을 기채(起債)로 충당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같은 불건전한 예산은 시·군교육청의 재정 악화로 이어져 학교 현장 교육활동이 타격받고 있다. 특히 경기도는 수도권 인구 유입으로 인한 신도시 건설과 이에 따른 학교 설립, 대도시와 중·소도시, 농촌, 도서벽지, 산간, 접적지역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육환경을 아우르고 있어 전국에서 교육예산이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경기도의 예산 수요가 등질지역에 비해 당연히 규모가 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특수성을 감안한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이 해결책이나 이 또한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경기도교육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덩치가 큰 교육청이라고 위만 쳐다볼 일도 아니고 한탄만 하고 있기에는 너무 절박하다. 현행 제도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지방의 중심 행정기관인 각 시·군이 교육경비 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 교육경비 지원조례를 조속하게 제정해 모자라는 교육재정을 지원해줘야 한다. 지금은 예산 집행의 경중(輕重)이나 완급(緩急)을 선별할 줄 아는 단체장과 기초 및 광역의원들이 절실히 요구된다. 전국 시·도교육청이 예산 때문에 아우성인데 그 많은 교육 관련 NGO는 어디에 있으며 왜 침묵하고 있는 것인가. 풀뿌리 민주주의는 기초단위인 시·군 및 자치구부터 주민의 피부에 와 닿는 행정을 구현할 때 꽃을 피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같은 맥락에서 학부모는 선거전의 교육 관련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끝나지 않도록 선량들의 의정활동을 모니터링하고 보이지 않는 손의 힘의 위력을 발휘할 때다. 다행히 반가운 소식은 최근 경기도가 광역단위로는 처음으로 교육지원조례를 추진한다는 보도가 있다. 법적 근거에 의해 전출금을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어 만시지탄의 감이 없진 않지만 대단히 환영할 일이다. 도내 31개 시·군도 경기도의 입법 선례를 참고해 제도로 정착시켜야 할 현실적 당위성을 안고 있다. 이후 각 학교나 학부모단체와 주민들은 교육 예산이 국가 성장 엔진의 산실인 학교현장에 지원되는가 두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부존 자원이 부족한 우리의 여건상 두뇌(교육)산업의 집중 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며 결과는 훗날 세계 속에 우뚝 선 역동적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김 기 연 여주초등학교 교장

기고/생각은 쑥쑥, 가슴은 따끈따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얼핏 보면 가을이 주는 사색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져 독서와 어울릴 것 같다. 그런데 찬찬히 뜯어 보면 그렇지 않다. 창을 열면 파란 하늘이 보이고, 길가에 나서면 단풍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가을은 책상에 앉아 조용히 책만 붙들고 있기에는 웬지 좀이 쑤신다. 이런 환경뿐만 아니라 기온 또한 적당해 야외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책을 가까이 하기 힘든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실제로 도서 판매 실적이 부진한 시기가 바로 가을이라고 한다. 내가 속해 있는 교회학교 주일교사 모임에서 연초에 스스로 정한 10가지 할 일중 ‘한달에 1권 책읽기’가 있다. 이 숙제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한 사람이 매월 읽을 책을 추천하고 독서 후 나눔을 주관할 필요가 있다. 평소 책읽기를 즐겨하던 나는 자천타천으로 이 일을 맡았다. 그룹의 커뮤니케이션 공간인 싸이월드에 월초가 되면 이달의 추천도서를 올리고 월말에는 독후감을 게재한다. 한달에 1권은 필독서로 또 다른 1권은 권장도서로 올린다. 지난 10월에는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을 필독서,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권장도서로 올렸다.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 결과 이 모임을 통해서만 20여권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독서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글자를 해독하는 것 이상이다. 자신의 기존 경험(여기서 경험이란 지금까지 읽었던 책을 통해 이미 얻은 간접경험과 삶에서 직접 체험한 직접 경험을 모두 포괄)을 바탕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일련의 사고 과정이다. 즉 독서란 저자와 독자 간의 상호대화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제대로 된 책 읽기’는 책의 내용을 자신의 생각 속에 받아들이고 재구성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가장 큰 목적은 정보 습득과 정서 함양이다. 정보 습득은 우리의 머리에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들을 넣어 두는 것이고, 정서 함양은 마음 그릇에 인간에 대한 이해와 따뜻함을 담는 것이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생각은 쑥쑥, 가슴은 따끈따근”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독서에 대한 표현들이 많다. 독서를 ‘과거의 현인들과의 대화’, ‘올바른 세상읽기의 과정’, 또는 ‘자신의 내면과의 만남’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모두 다 독서가 우리에게 주는 효과들을 겨냥한 것이다. 지난 10월 고려대 개교 100주년 기념 노벨상 수상자 초청 강연에 응한 호주 멜버른대 피터 도허티 교수는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할머니가 책을 많이 읽어줬고, 6~7세 때부터 책을 혼자 읽기 시작했다. 노벨상을 받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은 독서”라고 말하면서, “부모가 어린 아이들에게 매일 책을 읽어주는 게 좋다”고 책 읽기를 권했다. 또한 자신은 지금도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책을 가까이 한다고 했다. 책읽기야 말로 학습능력을 키워주는 좋은 수단인 셈이다. 요즘에는 독서를 단순히 독서로 보지 않고 다른 것과 융합해 한단계 발전된 개념으로 보기도 한다. 이른바 독서를 통해 심리 치료를 하는 독서치료가 그렇고, 독서를 통해 경영을 더 효율적으로 해 보려는 독서경영이 그렇다. 이렇게 독서가 여러 부문에서 요구되는 마당에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구호가 더 이상 필요 없었으면 좋겠다. 대신에 생각을 키워주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독서의 맛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인생을 보다 풍요롭게 해주는 책 읽기가 여기저기에서 소리 없이 퍼져 갔으면 한다. /박 유 찬 한국은행 경기본부 차장

기고/11월은 에너지 절약의 달

정부는 난방에너지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 나는 겨울을 맞아 지난 85년부터 11월을 ‘에너지 절약의 달’로 정해 각종 에너지절약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범국민적인 에너지 절약분위기 조성을 위해 마련된 11월 에너지 절약의 달은 겨울철 에너지 절약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산업체와 가정에서의 에너지 절약 실천을 유도하는데 목적이 있다. 지난 70년대 제1~2차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시작된 우리나라의 에너지 절약시책은 그동안 초기의 단순 억제정책에서 에너지 이용 합리화와 에너지 절약기반 구축 등으로 발전해왔다. 특히 에너지 사용기기에 대한 효율관리제도나 산업체의 에너지관리 진단, VA(자발적협약), ESCO 사업 등 90년대 이후 도입된 각종 에너지 절약제도들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이용 합리화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때 연간 10% 이상씩 증가하던 우리의 에너지 소비증가율이 99년 이후에는 GDP 성장률보다 낮게 유지되고 있는데, 이는 그동안의 우리의 에너지절약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다는 하나의 지표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에너지 이용이 많이 합리화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의 에너지 다소비 업종 비중이 27%를 넘어서고 있다. 또 소득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주택, 가전제품, 차량 등의 대형화가 계속되고 있어 에너지 절약 중요도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러한 에너지 사용량 증가를 과거와 같은 절약운동만 통해 해결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에너지사용자 불편을 최소화하면서도 원천적인 에너지 절약이 가능한 새로운 기술을 계속 개발해 보급하고 과감한 시설 투자를 통해 실제 산업체나 건물 등에 이러한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노력이 오늘날 에너지절약 사업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에너지관리공단은 근본적인 에너지 절약 실천을 위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고 효율을 향상시켜 절약기반을 구축하는데 힘써 왔다. 에너지 절약시설 투자에 대한 저리의 융자 지원을 확대하고 고효율 기기 제조업 육성 및 기술 개발 등을 강화해 추진하고 있고 고효율 기자재 개발 및 보급, 산업·건물·수송분야에 대한 효율적인 에너지 소비구조 정착 등을 위해서도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에너지관리공단이 추진하고 있는 소형 가스 열병합발전 보급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에너지 절약기술의 좋은 예라고 하겠다. 또한 늘어 나는 전력 수요를 발전소를 지어 충당하는 대신 전력 부하관리를 통해 해결하는 직접부하제어도 에너지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한 새로운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올해는 그동안 에너지관리공단이 펼쳐온 일련의 에너지 과소비문화 바로잡기 운동의 일환으로 에너지 소비가 특히 많은 대형 사무실과 오피스빌딩 등의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 내 적절한 실내온도가 유지되도록 하고 범국민적 내복입기 붐을 다시 일으킬 ‘난(暖) 2018’ 캠페인이 전개되고 있다. 이번 운동은 주로 가정을 대상으로 벌인 기존의 내복입기운동을 에너지 낭비가 특히 심한 공공장소와 빌딩들에까지 확대시킨데 그 의의가 있다. 매년 겨울철 난방이 시작돼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게 마련이지만,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공급 부족으로 야기된 고유가사태를 겪은 올해의 에너지절약의 달은 더욱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앞으로 기후변화협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절약을 통한 온실가스 배출저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용하는 에너지의 97%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고, 원유를 100% 해외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오르내리는 유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에너지절약기술의 개발과 시설투자 등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에너지절약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 상 순 에너지관리공단 경기도지사장

기고/먹거리는 게임법칙 너머에 있다

건강(健康)이냐, 국익(國益)이냐. 이 말은 환경보존과 경제성의 딜레마를 나타내는 표현과도 같다. 이러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환경론자들은 정서적으로나 현실적인 면에서 유리하나, 경제론자들은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경제성을 따지기 위해선 당초 100% 완벽한 환경보전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비교우위론을 인정한다. 하지만 먹거리는 다르다. 우리의 글로벌 먹거리중 불고기와 비빔밥 등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히트작이 없는 상황에서 최근의 유해성 김치파문은 무역보복을 하겠다는 중국의 으름장으로 인해 통상마찰까지 우려되고 있다. 게임법칙에 의한 샅바싸움이 언제까지 진행될지 가히 염려가 되는 대목이다. 이런 와중에 김치를 사먹던 주부들 일부는 직접 내손으로 김치를 담가 먹기 시작했고 농업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는 중국산 김치 구별법을 알려 달라는 소비자들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하지만 무나 배추값이 만만찮고 막연히 알고 있는 상식만으로는 중국산과 국산김치 구분이 쉽지 않다. 이는 핵심은 식품의 대부분을 자급하지 못하고 외국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비교우위론의 논리에 말려 값싼 것만 찾다 보면, 우리 농산물 생산기반은 무너질 게 명확하다. 특히 농산물은 토지, 노동, 자본 등 생산의 3요소중 어느 한쪽만 결여돼도 생산은 중대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즉 생산기반의 붕괴는 물론 농업종사인구의 실직과 더불어 농자재는 고철더미가 될 것이다. 이럴 경우 농산물 수출국은 가격 인상에 초점을 맞추고 수입국의 발을 동동 구르도록 만들 것이고 우리의 먹거리를 다시 찾는 순간, 이미 우리의 농업생산능력은 국민의 수요를 따를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져 있을 것이다. 이쯤해서 먹거리분야에 119 응급 벨을 눌러야 할 시점이다. 논어에 ‘근본이 바로 서야 길이 열린다(本立而道生)’는 말이 있다. 이는 농업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우리 먹거리 지키기 실천은 우리 가족의 건강과 생명은 물론 나라를 지키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먹거리를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길은 무엇인가. 바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친환경이 아닐까 한다. 여기저기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친환경이 대세인 양 외치고 있다. 일리가 있는 얘기다. 이제는 자연과 사람을 훼손한 반대급부에 해당되는 손실보험쯤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마인드는 인류가 갖고 있는 공통분모이기에 여기서 출발하는 친환경 농산물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건강(健康)이냐, 국익(國益)이냐. 이는 농업발전측면에서 게임법칙 너머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먹거리 환경의 조성은 일시적인 경제성보다는 더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김치가 세계무대에서 훌륭한 문화대사 역할을 담당하듯 친환경을 바탕으로 한 우리 먹거리 세계화에 탄력을 줘야 할 시점이다. 전 성 군 농협중앙교육원 교수·경제학박사

기고/교실붕괴의 진단과 대책

요즈음 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실수업 중인데도 제멋대로 돌아 다니면서 장난을 치거나 학습활동과는 별반 관련이 없는 일에 정신을 팔거나 심지어는 낮잠까지 자는 일이 적지 않다고들 한다. 심지어는 지정된 학습활동에 참여하지 않거나 교사의 지시에 제대로 따르지 않는 등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학습행동까지 보이고 있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학습태도가 예전에 비해 매우 어수선해진 현상이 특정 학교, 특정 학년의 소수 학생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학교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드러나는 이와 같은 현상은 학교교육의 무력화나 교실붕괴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 우리 교육을 아끼고 염려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큰 충격과 실망을 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공감한다면 우선 교육자들 모두가 깊이 자성해야 한다. 예컨대 우리 학교가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육기능을 제대로 만족스럽게 수행하고 있는가, 행여 열악한 교육환경을 빙자해 구태의연한 수업활동만 펴고 있지 않은가 등을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교육학자들은 학습태도가 좋지 못한 요인으로 학습의욕 및 동기의 부족, 선수학습 능력의 결핍, 학습 결손의 누적 현상, 학습과제와 무관한 소모적 행동이 허용되는 학급 분위기 등을 근본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입시 학원에서의 조직적인 강의에 비해 일부 학교이긴 하지만 교과 수업시간의 흥미 없는 학습과제 및 학습활동, 호기심과 참여의식을 고취하는 교사의 노력 부족, 학습 활동에 참여해도 학습 결과에 따른 보람과 기쁨을 누릴 수 없다는 좌절감, 나아가 개인적인 요구와 능력수준에 걸 맞는 지도와 배려를 받을 수 없다는 실망감 등도 주요 원인으로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원인 소재를 불문하고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교사들이 가능한 학교 안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학교나 학급 등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참신한 교수, 완전 학습을 위한 책임지도와 개인의 요구와 능력수준을 고려한 개별화 지도방안 등도 가능한 대안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사들은 학생들이 다양한 학습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 없이 안내해 주거나 또 학교가 보다 신뢰받는 교육기관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구성원 전체가 협력하는 적정한 수준의 물리·심리적 학습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본다. 일시적으로 교실붕괴 문제의 원인을 학교교육의 권위과 교원의 사기를 저하시킨 관련 부처의 정책 실패나 열악한 교육환경 탓으로만 돌려 수수방관한다면 오늘의 교육현실을 타결할 가능성은 더욱 더 희박해질뿐이다. 필자는 교실 붕괴문제가 보다 확대되거나 사회문제로 비화되기 전에 모든 교사들 스스로 교직자 사명을 재확인하고 책무성을 다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오늘의 교육문제를 모두 교사들의 책임으로만 떠넘기는 근시안적이며 타당성이 없는 주장을 한다거나 일시적 대책을 강구하기보다는 일관성 있고 현장 위주의 실현 가능한 교육정책을 바탕으로 교장 책임 하에 단위 학교가 소신껏 교육활동을 펴 나갈 수 있도록 권한을 더욱 위임한다든가 행정·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학교의 권위를 회복하고 교사들의 사기를 앙양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선 보다 따뜻한 정책적 배려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제라도 교육문제가 정책 결정상 늘 후순위로 처지고 있는 저간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면 향후 ‘교육입국’의 거창한 구호도 단지 공허한 메아리가 아닐 것임을 분명히 밝혀 둔다. /엄 범 종 군포 흥진고등학교장

기고/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보는 눈

깊어 가는 계절만큼이나 한동안 익숙하지 않은 서늘한 기운에 몸이 움츠려진다. 하늘에는 상쾌한 바람이 일고 낮게 내려 앉은 구름 속에 가을빛은 한가로운 풍경이다. 헌법재판소가 최근 동의대 사건에 각하를 내린 결정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시선을 받게 해 경찰관의 한사람으로 무거운 마음을 떨칠 수 없다. 민주화운동에 유족은 인격권이나 명예권을 침해당한 당사자라고 볼 수 없다는 헌재 판단은 15만 경찰관들의 사기와 직무 수행에 혼란은 물론 자유민주적 사회와 법치국가의 존엄성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폭력행위에 동원된 시위까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된다면, 시대정신에도 균형있는 시각과 양심에도 분명 위배된다. 포퓰리즘에 흔들린 시각은 아닌지, 아니면 집단화 이기주의 목소리 집회·시위에 어떻게 경찰의 모습을 취하라는 것인지 참 답답한 심사다. 이제 과거처럼 민중의 권력이든 지배권력이든 권위와 위엄의 자세로는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뿐더러, 또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국민도 최상의 치안서비스를 요구하고 있고, 이에 경찰은 진솔하고 정직하게 빠르게 국민의 요구에 서 있어야만 커뮤니케이션이 소통되고 호흡할 수 있는 현실이다. 대학생들에게 감금된 경찰 동료를 구출하려다 학생들의 폭력에 경찰관 7명이 목숨을 잃고 부상 경찰관만도 10명이 된 사건인 동의대 사태는 있을 수 없는 살인행위이며, 우발적으로 해석하고 넘어갈 사건도 아니고, 엄격한 살인행위이며, 이러한 비극적인 일은 민주적인 나라의 부끄러운 일이다. 희생된 경찰관들의 영혼이 떠돌고 있는 저 하늘에서 헌재의 판단을 어떻게 해석할 지 자명한 일이다. 이들의 가족은 지금도 눈물을 벗삼아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상적 논리와 사고로만 현실의 범치를 해석해선 곤란하다. 충돌과 곤경에 처한 약자에게 경찰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아니다.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루서 킹 목사는 연설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다.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이다”라고 외쳤듯 우리 15만 경찰은 국민들이 안전하게 생업에 종사하게 만들고, 완벽한 치안으로 세계가 부러워 하는 인류 속에 경찰이 되는 꿈들이 경찰관 한사람 한사람 마음 속에 출렁이고 있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정신과 미래 사회로 나아가는 국가의 장래에 경찰은 소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진보와 급진의 극단적이고 무례한 이념과 논쟁에 국민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가운데 동의대 사태의 헌재 판단은 한 발자국 물러나 더 깊은 사색이 요구되며, 원칙이란 어떻게 지켜지고 또 보호돼야 하는가를 보여 주어야 한다. 경찰에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주기 위해 어떤 희생과 봉사가 요구되는지 조용히 묻고 싶다. /박 병 두 경기지방경찰청 홍보담당관실 경위

기고/국회의원님들께 드리는 고언Ⅱ

저는 지난번 글에서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선 지방화를, 성공적인 지방화를 위해선 각 지방마다의 유능한 일꾼의 확보를 그리고 이를 위해선 지방선거에 있어서의 철저한 정당공천 배제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철저한 정당공천 배제의 제도화는 기초(자치단체장 및 의회의원) 및 광역(자치단체장 및 의회 의원)선거에서 모두 정당 공천을 배제해야 한다는 점과 선거에 정당 개입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는 점을 뜻합니다. 이미 기초 자치단체장 선거도 정당 공천을 배제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우세하다는 건 여러 여론조사기관 조사에서 확인된 바 있습니다. 기초 의회의원을 역임한 바 있고 지금 광역의회 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저로선 의정활동을 하는데 있어 정당에 의해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과 정당과 관계없이 누구든지 얼마든지 소신껏, 능력껏, 마음껏 의정활동을 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경험에 의한 판단입니다. 더욱이 우리나라처럼 여·야 정당간 대립이 극심한 현 정치상황 하에선 오히려 지방선거에서 정당 공천을 실시하므로 인한 폐단이 훨씬 더 많다고 봅니다. 한 예로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가 만일 열린우리당 소속 출신이었다면 과연 수도 이전(실패했지만), 행정복합도시 건설, 공공기관 지방 이전, 경기도 기업의 조세특례 제한 등의 일련의 일들이 “과연 지금같이 추진됐겠는가”라고 반문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방에서의 국책사업이 국가적·국민적 차원에서 시급을 요하고 있는데도 각 당의 당리당략차원에서 지원되지 않거나 사업이 지연되는가 하면 불합리한 사업을 무리하게 강행하는 등 허다한 경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전국에 걸쳐 기초와 광역을 막론하고 자치단체장의 당과 의회 다수 의석의 당이 서로 다를 때 생길 수 있는 폐해 못지 않게 자치단체장과 의회 다수의석 당이 서로 같음에서 오는 폐해 역시 만만찮을 수 있음을 분명히 아셔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지방선거에서 정당 공천이 철저히 배제되면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간, 지방의회와 집행부간 서로 대립하고 견제할 이유가 하나도 없게 됨으로써 아주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로 유기적이고 협력적인 관계가 원활하게 성립될 수 있는데다 보다 생산적이고 효율성이 높은 정책들을 합리적으로 논의, 결정, 실천해 나가기가 그만큼 쉬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지방은 지방대로, 중앙은 중앙대로 그래서 결국은 국가와 국민이 잘 살 수 있는 윈-윈전략이 될 것임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한국에서 가장 개혁돼야 할 부분으로 정치분야를 꼽고 있는바, 저는 한국의 정치개혁을 통한 정치 발전 시발점은 바로 지방자치제도의 성공적 정착이 되리라는 소신과 함께 방법론적으로는 모든 지방선거에서의 정당 공천 배제가 최선의 선택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저는 의원님들께서 모든 지방선거에 있어 가장 합리적인 선거제도가 어떤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전면적으로 원점에서 재검토해 주실 것을 거듭 거듭 간곡히 호소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김 태 웅 경기도의회 의원

기고/미디어와 몸의 권력

학교 학부모 총회에 참석하고 온 어느 지인이 “여러 어머니들이 성형수술을 했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성형수술은 연예인들이나 하는 걸로 인식됐었고 “어느 연예인이 어디 어디를 고쳤다”는 성형수술 의혹이 곧잘 이슈가 됐었다. 연예인이 성형수술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미지에 타격을 받기 때문에 성형수술여부를 완강하게 부인하곤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성형수술은 대학생, 일반인, 주부 등에 이르기까지 보편적 현상이 됐고 더 이상 비밀로 하지도 않는다. 많은 여성들이 예뻐지기 위해서, 더 날씬해지기 위해서 새로 나온 화장품이나 미용에 좋다는 건강식품을 사고 이름도 생소한 다이어트요법으로 운동을 하느라 바쁘다. 새로 만들어 낸 다이어트 상품은 여성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모으면서 금방 열풍이 되곤 한다. 미디어에서 만들어 내 이미지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우리나라는 최근 성형대국이란 오명을 받고 있기도 하다. 미디어에선 공장에서 찍어내듯 비슷비슷하게 생긴 바비인형 같은 여성들을 앞세워 여성을 상품화시키며 여성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긴다. 미디어는 규격화된 몸서열의 제일 꼭대기에 있는 몸을 보여 주며 여성들에게 멋진 몸과 예쁜 얼굴에 대한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여성들은 절대 그런 몸을 가질 수 없다는 좌절감과 열등감 등을 느끼며 미디어가 조성한 멋진 몸 만들기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된다. 드라마나 영화 속 여주인공은 한결같이 미모와 조각같은 몸매를 갖고 있다. ‘예쁜 여자=착한 여자’란 공식을 착실히 수행하며 영화 속의 여성을 소비하는 관객(혹은 시청자)을 남성으로 보고 여성은 보여지는 사람, 즉 대상으로 치부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게 지금까지 대중매체의 현주소다. 그러나 이런 구조적 이데올로기를 가볍게 그리고 통렬하게 뒤집어 놓은 드라마가 삼순이 열풍으로 대단했던 ‘내 이름은 삼순이’였다. 뚱뚱하고 예쁘지 않은 얼굴에, 갖고 있는 배경도 없고 게다가 욕설도 거침 없이 퍼붓는 여성을 등장시킴으로써 지금까지 브라운관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여성성을 제시, 그간 미디어가 제시한 미의 기준에 턱 없이 미치지 못해 음지에 있었던 많은 억압된 여성들에게 “저건 내 얘기야”란 공감대와 카타르시스와 함께 해방구 역할을 해줬다. 그러나 여전히 드라마나 광고는 예쁘고 멋진 몸매를 보여 주며 소비자들에게 획일적인 여성성을 제시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선 여성의 몸은 하나의 권력이다. 몸의 상품화는 미디어와 광고산업이 만들어 낸 선택적 결과물이며 동시에 서로 도와 주며 살아가는 공생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 국 진 신흥대학 교수

기고/우리 김치 지키자

어떤 분야에서든 수요와 공급이 같은 비례곡선을 나타내고 있으면 이른바 성공적인 분야로 일컬어진다. 그 분야가 바로 먹거리 김치다. 이처럼 김치는 우리 식탁에 반드시 있어야 밥을 제대로 먹었다고 할만큼 소비자의 구매욕구가 강한 식품이다. 아울러 우리 국민의 건강 유지에 필수적인 발효식품이다. 세계의 어떤 식품도 입 안에 침이 고이도록 고유의 풍미를 느끼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면 가장 그리운 식품이 바로 김치다. 세계인들도 점차 우리의 김치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외국인중에서도 “이제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게 김치”라고 서슴없이 대답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김치는 우리 자존심의 하나로 식품부문 한류열풍의 주역이 되고 있다. 특히 한국김치가 사스 예방효과가 있다는 영국 기사가 나왔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김치를 찾았었다. 그런데 요즘 먹거리분야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보다 더 슬프게 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한여름 폭염 속에서 한포기라도 더 많은 무·배추를 생산하려고 땀 흘리는 농업인의 정성은 뒤로한 채 한푼이라도 이익을 더 챙기려고 농산물 원산지를 속여 파는 행위가 그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중국산 김치에 납성분이 검출된데 이어 이번에는 기생충 김치까지 나와 먹거리 안전성에 대한 불신이 극도에 이르고 있다. 이 결과 음식점에서 내놓는 김치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김치를 사먹던 주부들 일부는 직접 ‘내 손표 김치’를 담가 먹기 시작했고 농업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는 중국산 김치 구별법을 알려 달라는 소비자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하지만 막연히 알고 있는 상식만으로는 중국산과 국산 김치 구분이 용이하지 않다. 무엇보다 김치의 중금속 허용치 기준이 마련되지 않고 원산지 표시제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김치 안전성을 신뢰할 수단이 별로 없다. 물론 중국산 고춧가루가 국산보다 붉은 빛이 강하기 때문에 강한 느낌의 붉은 색을 띠는 경우가 많고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효모가 성장할 수 없도록 김치 국물을 빼고 포장하기 때문에 국물이 거의 없다는 것과 무채가 거의 없는 경우가 많은 게 특징이라고 하지만, 일반 소비자에게는 구분이 그리 쉽진 않다. 이에 따라 이젠 식품안전기준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김치 같은 주요 식품 기준은 훨씬 엄격하고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 특히 현재 식품위생 기준을 다루고 있는 식품위생법에는 수입 식품에 대한 기준치 등이 따로 들어 있지 않은만큼 유해식품이 더 이상 식탁에 오르지 못하도록 식품안전기본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와 함께 유해성분에 대한 허용치 기준을 조속히 마련해 검역단계에서 철저히 불량 농수산물을 가려 내고 원산지 표시제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농축수산물 이력추적시스템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농산물 불법 유통에 대한 감독 강화와 엄격한 제재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 성 군 농협 중앙교육원 교수·경제학박사

기고/실학축전-인기 없음을 비판해야 하는가?

저는 이 나라에서 공부하는 학자중 한사람으로 어느 계기에 다산 선생의 훈육을 입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산, 초정, 연암 세분 선생이 모두 경기지역에서 태어나시거나 활동하셨으니 경기도에서 실학정신을 챙기고 계승시키고자 노력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실학정신 계승을 위해 경기도가 주관해 오고 있는 실학축전이 공영방송을 비롯한 언론매체로부터 연일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축전의 현장을 가 언론의 보도내용과 비교해보니 비판의 초점이 된 것은 한마디로 ‘인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인기 없다는 것’의 의미를 그저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식의 비판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축전을 축제로 오해하고 또한 축제는 떠들고 재미있는 이벤트가 많아야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축제의 이벤트들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즐거움을 주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며, 불행하게도 우리가 추구하는 즐거움이란 말초적인 즐거움과 많이 연결돼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실학축전도 축제가 되기를 기대하고 그 축제에선 뭔가 말초적인 즐거움과 환호성을 내지를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그것이 보이지 않음을 인기 없으므로 연결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두가지 제안을 해보고 싶습니다. 첫째는 경기도의 실학축전은 글자 그대로 축전(祝典)이지 축제(祝祭)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축전에서 축제의 환호성과 즐거움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국어사전에 의하면 축전은 ‘축하의 뜻으로 행하는 의식이나 행사’이고 축제는 ‘축하하여 벌이는 큰 규모의 잔치’입니다. 말하자면 8·15 기념 축전이라고 쓰지 8·15기념 축제라고 쓰지 않는 것과 같으며, 대학가에서 무슨 축제라고 쓰지 무슨 축전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비교하건대 축제가 갖는 성격이 대중음악이라면 축전은 클래식 음악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듯 축전과 축제는 그 의미가 사뭇 다릅니다. 그렇기에 축전의 의미를 살리려면 축전을 축전답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경기도가 하고자 하는 실학축전은 연암, 다산, 초정 선생님의 실학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우리의 經世致用을 되돌아 보자는 축전이지 축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언론들은 단지 관람객의 호응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인기 없는 축제로 실학축전을 몰아 붙이고 있습니다. 대중음악의 환호성이 없는 축전으로서의 클래식에 인기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일상의 자명한 이치라는 것은 다 아실 것입니다. 문제는 클래식을 클래식으로 이해할 줄 아는 문화와 축전을 보다 축전답게 꾸밀 줄 아는 기획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번 실학축전에 비춰 경기도에 하고 싶은 두번째 제안은 축전이 축제가 아니어서 인기 없음에 기 죽지 말고, 실학축전을 축전답게 더 클래식으로 기획해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축전을 아는 사람들의 인기를 모을 수 있는 행사가 돼야 한다는 것이며 이를 위한 기획력을 발휘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연암-다산-초정선생님은 인기몰이 축제를 원치 않는 분들입니다. 보다 수준 높은 클래식으로서 축전을 기획하기 위해 ‘현대화된 실학정신’의 의미를 살릴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사례를 저는 공동체정신의 구현으로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실학정신이 올바르게 살려면 비판 사회철학자 하버마스의 이론처럼 목적추구의 합리성 사회에서 소통사회의 합리성 추구로 승화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미 조선말기의 실학이 추구해야 할 바가 모화수구(慕華守舊)의 주자학에서 탈피하자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그 실학의 차원을 넘고 또 넘되 합리화란 이름을 가진 악순환적 방향으로 실용화, 객관화, 단선화되면서 진정한 공동체의 의미는 아예 사라지고 합리주의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지금에 실학정신이 다시 살려면 진정 우리 사회에 공동체적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목적추구와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만 합리가 아니라 진실로 일상의 실학이 곧 즐거움이 돼 소통의 사회가 되는 것도 충분한 합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게 이 시대의 진정한 경세치용(經世致用)이라고 봅니다. 정말 이 시대에 실학이 추구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요. 인기 없음을 비판하는 여론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현대판 경세치용의 진실된 의미를 계속 살려 주시기 바랍니다. /김 태 경 경인여대 교수

기고/인구주택총조사 참여로 정책 효율성 높이자

“학교가 필요한 곳에 학교를, 공원이 필요한 곳에 공원을” 요즈음 미디어를 통해 흔히 들려 오는 문구중 하나이다. 이 말은 건설 회사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국가정책입안의 기초자료를 생산하는 통계청에서 나온 말이다. 물론 5년마다 한번씩 시행되는 인구주택총조사의 홍보를 위한 것이다. 최근 사회문제화가 되고 있는 저출산, 청년실업, 빈곤층, 이혼율 등 급변하는 사회현상들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도 인구주택총조사는 시기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통계청은 다음달 1일부터 15일까지 보름동안 10만여명의 조사인력을 투입해 전국의 1천600만가구를 대상으로 우리 나라에 거주하는 모든 내·외국인과 주택현황을 조사하며, 조사 결과는 정부 각 부처의 향후 정책입안에 유용한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인구의 연령분포를 분석해 보건복지부는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것이고,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사의 수급 문제와 각급 학교의 정원 및 교실문제, 노동부는 산업인력의 수급문제,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연금관련 정책을 수립하는데 활용될 것이다. 그리고 주택 관련 조사 결과를 분석해 주택과 도로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연구함은 물론이고 공원이 필요한 곳에 공원을 설치하는 정책입안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이와 같이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는 정확성과 신뢰성이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하고 신뢰할만한 통계가 생산됐을 때 이를 바탕으로 한 정부의 정책도 효과적으로 입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다변화되고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조사원들의 질문에 응답 가능한 가구 구성원들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특히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통계조사에서 많은 무응답을 제공하게 되거나, 가구원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대리인이 응답을 함으로써 잘못된 자료를 제공하게 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파트지역은 조사원이 조사표를 가구에 배부하고 가구가 직접 작성하도록 하며 희망 가구에 대해선 인터넷을 통한 조사표의 작성도 추진한다고 한다. 이러한 일련의 절차는 정확성과 신뢰성의 확보를 위한 통계청의 역할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빠짐없이 성실하게 조사원의 질문에 혹은 설문에 응답했을 때 정확하고 신뢰성 높은 인구통계와 주택통계가 생산될 수 있다. 정확하지 않은 응답과 조사의 회피는 잘못된 통계생산의 원인을 제공하게 되며, 잘못 작성된 통계를 기초로 한 정책의 입안은 시행착오로 막대한 세금과 인력의 낭비를 불러오고 정부의 정책과 통계에 대한 불신을 함께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불신을 해소하고 정부의 정책이 보다 효율적으로 수립될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이 함께 기여할 수 있는 계기가 바로 인구주택총조사의 성실한 응답이다. 이는 참여정부 정책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근 식 통계대사·한신대 교수

기고/지방자치와 역행하는 행정구역 개편

여야가 광역 시·도를 없애고 전국을 70여개로 분할하는 행정구역 개편안에 대해 여야가 공감대를 이뤘으며 내년 지방선거전에 입법과정을 거쳐 오는 2010년까지 행정구역 개편을 완료하겠다는 추진일정까지 제시됐다. 한편으로는 지방행정 체계의 다층구조를 축소해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해소하겠다는 정치적인 목적도 담겨 있다. 모든 정치, 행정체제는 장점과 함께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점은 개선돼야 한다. 그러나 부분적인 문제점을 개선할 것인가, 아니면 근본적으로 폐지할 것인가는 중요한 정책결정의 문제이고 여기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뿔을 고치겠다고 소를 죽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국회가 국민의 대의기구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지방자치 시대인데도 행정개편의 수혜자인 국민들과 지역주민들의 여론수렴 과정 없이 중앙정치권이 공감대를 이뤘다고 행정구역 개편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행정구역 개편은 몇가지 큰 문제가 있다. 첫째, 광역 시·도는 기초자치단체의 관할범위를 넘어서는 광역행정(도로 하천 상하수도 쓰레기문제 등)을 시행하면서 기초자치단체를 보호·지원·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만일 경기도가 없었으면 900억원이 소요되는 경인교대 설립이 가능했겠는지, 100억달러 규모의 파주 LG필립스LCD공장 설립이 가능했겠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광역 시·도가 폐지되면 이러한 광역 시·도의 역할을 중앙정부가 하게 되고 그렇다면 지방자치는 소멸되고 말 것이다. 둘째, 세계화, 정보화 시대를 맞아 세계 각국은 광역행정체계로 가는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규모의 경제가 경쟁력의 가장 큰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주정부), 일본(도도부현)뿐만 아니라 유럽 선진국도 광역지방정부체제를 유지하고 있거나 지향하고 있다. 경기도를 10개 정도의 자치단체로 분할하게 되면 광역자치단체가 수행하고 있는 기능과 역할을 대체할 각종 공사와 재단을 별도로 자치단체별로 설치하게 돼 엄청난 예산낭비를 초래할 것이다. 지방자치체계를 현재의 2개에서 1개로 축소하는 것이 언뜻 보면 행정을 간소화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비용이 증가되고 지방자치가 소멸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현재의 행정구조에 문제점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보다 많은 권한과 재정이 기초자치단체에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부분적인 문제점을 개선할 것인가, 아니면 광역 시·도를 없앨 것인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바라 보아야 한다. 그동안 광역자치단체가 수행해온 역할과 기능도 평가해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기초자치단체를 보호하고 조정, 지원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왔는지 살펴 보아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역할과 기능의 문제점이 광역자치단체 자체의 문제인지 지방자치 구조의 근본적인 문제인지도 살펴 보아야 한다. 100만명을 기준으로 시·군을 통·폐합하는 것도 일방적으로 추진되어서는 안된다. 통합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는 지역주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따라서 행정구역 개편은 지역주민들의 충분한 검토와 토론을 거쳐 합의를 도출한 후 추진돼야 한다. 광역자치단체도 일방적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역할과 기능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우선돼야 한다.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광역 시·도를 없애겠다는 것은 발상과 접근방법에 있어서 잘못된 것이다. 지역감정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행정구역 개편은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경쟁력 차원에서 접근돼야 한다. 행정구역 개편은 주민의 편의성, 자치단체의 범위와 능력, 역사성 등을 고려해 결정하는 것이 올바른 행정구역 개편의 방향이다. /안 기 영 경기도의회 한나라당 대표의원

기고/보수-진보라는 그 단순한 식별성

최근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문제와 강정구 교수의 파문에서 불거진 한국사회의 보수와 진보에 대한 논의는 새삼 그 실체(?)에 대한 궁금함을 더하고 있다. 정치적 개념으로서의 보수와 진보 또는 左와 右라는 차원은 어느 시점에 있어서 개인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정치적 쟁점에 대해 자기 자신의 입장을 요약하는데 활용하는 고도의 추상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보수와 진보 같은 추상적 개념은 복잡한 정치현실을 단순화 시켜 주고 조직화시켜줌으로써 현실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수많은 정치적 쟁점 혹은 정당들의 주장을 간소화하는 편리한 기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한국인들은 어떻게 추상적 이며 상대적 개념인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 식별성을 받아 들이고 이해하는지 그 특징을 이해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하겠다. 인간의 주관성을 탐구하는 Q방법론을 적용해 한국인의 보수와 진보에 대해 그 인지를 살펴 본 결과, 제1유형(실용주의자:Utilitarian)은 교육 문제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경쟁력 제고와 비효율성을 제거하고자 하고 이를 위한 전문성을 중시하는 견해를 나타낸다. 또한 대외관계에서도 민족중심으로 국제관계를 유지·강화하기보다는 현실적인 국제질서를 바탕으로 한국의 역할을 모색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며 북한에 대해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즉 자율과 효율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적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유형(민족주의자:Nationalist)은 미국과의 우호적 상호협력 관계 보다는 배타적 입장으로 보다 더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관계정립을 원하고 있다. 더불어 주변 강대국 특히 중국과의 역학관계를 새롭게 모색하기를 바라고 있다. 또한 부동산과 노사문제 등에 대해 공공성을 강조하고 국가의 규제와 이해 당사자 간의 양보를 전제하고 있다. 즉 이들은 국가의 독립성과 자주성, 상호부조의 사회적 공익성을 우선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제3유형(사회적 규제주의자:Social Regulationist)은 사회적 공존을 위한 공공규제를 중시하는 유형이다. 교육, 부동산 등은 공공성이 크기 때문에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북한과의 관계도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과 개입이 남북관계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나 북한의 핵 보유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한 제2유형과 달리 한국경제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 제4유형(시장중심주의자:The Market Oriented)은 자유경쟁을 중시한다. 부동산문제에 대해 정부의 규제가 오히려 주택 가격의 상승을 가져 왔으며 이를 과감히 줄여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환경운동가들의 전문성 제고와 노사갈등은 점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불어 한미관계가 우리나라 경제에 영향을 미치므로 우호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의견이며 자국이기주의에 입각한 국제관계에 대해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사회·정치적 이슈에 대해 개인의 상황과 가치, 선유경험 등에 따라 보수와 진보라는 자신의 정치성향을 나타내는 것도 다르고 보수 혹은 진보라고 규정하는 자신의 그 정치성향도 개인마다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정치현실을 단순화하고 간소화하는데 보수와 진보라는 추상적 개념이 유용할 수는 있어도 개인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하기에는 적합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따라서 정부 혹은 정당 등 정치권은 정파적 이익을 위해 보수·진보 등과 같이 도식적이며 단순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앞세워 정략적으로 파악할 게 아니라, 정책적 판단과 정치적 행위를 시행함에 앞서 내재된 다양한 국민의 욕구를 정확하게 반영해야 한다. /정 상 환 남서울대 외래교수

기고/한류-아시아를 넘고 태평양을 넘어

‘겨울 연가’의 ‘욘사마’로 상징되는 한류가 마침내 아시아를 넘고 태평양을 넘어서고 있다. 중국계 미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실리콘벨리지역 여성들 대화의 중심에 한국의 드라마 ‘대장금’이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한국 드라마 CD 몇 장은 갖고 있는 것이 생활화되고 있다. 며칠 전 있었던 일이다. 스탠포드대학에서 학술 세미나를 마친 후 오찬으로 이어졌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후버 연구소의 여사무원이 나에게 “이영애씨를 참 좋아 하는데 잘 아느냐?”고 물어 왔다. 나는 깜짝 놀라 “당신이 어떻게 이영애씨를 아느냐?”고 되물었다. 그 여사무원은 “나는 요즘 한국 드라마 대장금에 흠뻑 빠져 있다”고 말을 했다.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음식과 문화로 이어져 나갔다. 얼마 전 LA타임스에서는 욘사마 배용준이 미국의 할리우드 스타인 브레드피트와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를 제치고 일본에서 CF왕에 올랐다는 보도를 하면서 자세한 분석 기사를 내보냈다. 이렇듯 1996년 TV드라마를 중심으로 중국에서 불기 시작한 한류가 일본, 대만, 홍콩, 베트남과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등을 넘어 이집트로 이어져 가고 태평양을 넘어 멕시코로, 미국으로 다가 오고 있다. 21세기를 가리켜 문화의 시대라 한다. ‘문화강국’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문화가 있는 곳에 경제가 있다. KOTRA 하노이 관장은 이렇게 말했다. “한류의 영향으로 바이어와 상담할 때면 대부분이 일단 한국이란 나라에 호감을 느낀다. 그래서 타 국가 제품보다는 관심을 많이 갖는 편이다.” 한국의 TV드라마가 한국 경제를 살리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한류바람은 이미 아시아 각국에서 한국 상품을 선호하고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단계에 까지 이미 접어 들었다. 결국 한류는 국가 이미지를 제고시켜 한국제품의 경쟁력을 크게 높여 주는 역할을 하여 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대륙을 휩쓸고 태평양을 넘어서는 한류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아시아의 새로운 문화코드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경기도의 ‘한류우드’는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의 지난달 멕시코 방문에선 멕시코의 장동건과 안재욱 펜클럽인 현지 여성 시위대들 때문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대통령이나 자치단체장들이 외국 방문시 경제활동을 위해 많은 경제인들과 동행을 한다. 이러하듯, 한류문화 확산을 위해 또한 한국의 문화를 알리기 위해 외국 방문 시에 한류스타들과 동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동북아의 문화중심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우리는 한류를 통해 가질 수가 있었다. 일본 대사관의 후지야마 문화원장은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한국이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이 있고 그럴 경우 한류가 그 중심이 될 수 있다. 이제는 한국이 한국이란 국적 자체를 의식하기 바란다”란 발언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한류가 아시아를 휩쓸고 태평양을 넘어가고 있듯 한국의 문화는 한·중·일의 중심에 설 수 있으며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흐름을 우리는 반드시 만들 수 있다. 이미 ‘IT강국’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대한민국이 이제 ‘문화강국’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원 유 철 전 국회의원·스탠포드 후버연구소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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