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보궐선거가 끝난 지 벌써 보름이 지났습니다. 외형상으로 지난 4·30선거에서의 24대 0에 이어, 4대 0 전승으로 야당 후보가 당선된 것으로 끝났습니다. 언론은 “집권 여당의 실정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패배한 여당은 그 여파로 대표가 바뀌는 등 내홍을 겪고 있고 전승을 거둔 한나라당 역시 “내가 잘 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못했기 때문”이라고 자평하면서 현재에 안주해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쨌든 선거 당시의 격렬함은 어느덧 사라지고, 현재 많은 변화가 정치권에서 일어 나고 있으며 정치의 격렬함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경기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선거현장을 누비면서 느낀 몇가지 단상을 ‘선거와 정치’란 화두로 적어 볼까 합니다. 학창시절 제가 배운 국어 교과서에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글이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선 수업이 끝난 후, 저희들에게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란 제목을 주시면서 “삶의 기쁜 모습을 적어 보라”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매번 선거 모습을 보면 선거에 나선 후보들(여당이든 야당이든 상관없이)은 정말 부지런히 뛰어 다닙니다. 제대로 잠 잘 시간도 없이 김밥 하나와 생수 한병을 들고 만나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명함을 주며 자기 알리기에 하루를 보냅니다. 이중 후보를 ‘슬프게 하는 것과 기쁘게 하는’ 여러 모습에 접하게 됩니다. 먼저 후보를 ‘슬프게 하는 것’중 굳이 2가지를 든다면, 유권자 손에 쥐어 준 명함이 열걸음도 가지 않아 길거리에 버려지는 모습이고 또 하나는 후보가 내민 손을 마치 바퀴벌레(?)를 본 것처럼, 몸을 뒤로 빼며 움츠릴 때입니다. 후보를 엄청 힘 빠지게 하고 슬프게 하는 광경입니다. 그렇다고 유권자들을 탓할 순 없습니다. 누굴 탓할 게 아니라 정치권 스스로 얻은 슬픈 자업자득입니다. 어쩌면 선거란 ‘좀 더 나은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좀 덜 못한 사람’을 뽑는 정치행위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모습의 선거란 정치행위는 참으로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때론 후보를 기쁘게 하는 정치행위도 있습니다. 자주 찾게 되는 (재래)시장에서 물 묻은 손으로 건네 주는 한 잔의 음료수와 함께 “힘 내세요!”라고 전해주는 말 한마디는 후보들에게 젖 먹던 힘도 다시 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굴 좋아하고 누군 싫어하는 게 인지상정이겠지만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김밥 하나와 생수 한 병을 들고 부지런히 뛰어 다니는 부지런한 사람에 대해선 (그 사람이 어느 정당 후보이든 상관없이) 좀 더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과 아량이 있는, 그런 선거 풍토가 하루라도 빨리 조성됐으면 합니다. 사실, 정치란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며, 아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거의 1년에 한번씩 치러진다 싶을 정도의 많은 선거(대선과 총선 및 재·보선 등)를 보면서, 그리고 이번에 치러진 10·26 국회의원 재선거를 보면서, 또 다시 알게 된 점이 있습니다. ‘후보들(당선된 후보이든 떨어진 후보든 상관없이)이 아직도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구나’하는 점입니다.
민심을 제대로 읽고, 민심에 다가가는 정책, 실천 가능한 합리적 공약을 제시하고 공약대로 실천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내린 유권자의 평가를 겸허하게 수용하고 자기반성의 계기로 삼으면 됩니다.
그러나 민심에 다가가는 정책은 컴퓨터 모니터만 봐선 알 수 없습니다. 콩나물 시루 같은 출근길 전철 속 TV 모니터도 ‘희망 한국 21’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철 속 시민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민심에 다가가는 정책은 전철 속의 시민들 얼굴과 함께 부대끼며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거현장에 가면 매번 듣던 말을 끝으로 적어보겠습니다.
“또 선거철이 된 모양인지? 그동안 코빼기 한 번 보이지 않던 사람들 말(공약)대로만 됐으면 우리가 왜 이 모양으로 살겠어?”
새겨 들어야 할 말들입니다. “선거가 끝나면, 새로운 정치를 다시 해야 한다. 내일이면 새로운 선거가 또 다시 당신 곁에 찾아온다” 는 지인의 말이 생각납니다. 정치와 함께 하는, 정치인으로서 저의 안일함을 일깨워 주는 말입니다.
/김 영 선 한나라당 최고위원(고양 일산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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