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명칭은 고려 원종 12년(1271년) 수원도호부로 승격되면서 생겼다. 이전 고구려 땐 매홀이라고 했던 것을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수성군으로 개칭된후 한동안은 수주군으로 불렀다. 지금의 수원 동·서·남·북문을 중심으로 하는 구 시가지가 조성된 것은 조선조 정조 21년(1797년) 화성 축성이 준공되면서였다. 이후 일제시대에 몇차례의 행정구역 개편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수립 이듬해인 1949년 8월15일 수원군 수원읍이 시로 승격, 수원시와 화성군으로 분리되기 전까지는 화성군 역시 수원군에 속했다. 건국 후에도 1983년 2월15일 용인군 수지면 이의리가 수원시 이의동으로 편입되는 등 5차례의 행정구역 개편이 있었다. 8세기의 수성을 효시로 수주·수원 등 예부터 ‘물 수자’와 인연이 깊었던 것은 국내 농업과학의 메카를 예고했던 것 같다. 이래서인지 시내 동명 역시 물과 연관되는 것이 많다. 천천(泉川)동, 구천(龜川)동, 곡반정(谷泮亭)동, 남수(南水)동, 북수(北水)동, 지(池)동, 인계(仁溪)동, 원천(遠川)동 등이다. 오목천(梧木川)동, 매탄(梅灘)동 처럼 물과 나무의 합성어 동명도 있다. ‘오동나무 냇’(오목천동), ‘매화나무 개울’(매탄동)이란 상상만 해도 운치 넘치는 정경이다. 흥미로운 건 곡반정동(온수골)의 泮자가 ‘물반반 자’라는 점이다. 나무와 꽃 이름을 딴 동명 가운데는 매화가 가장 많이 차지한다. 좋은 매화 열매라는 호매실(好梅實)동, 매화 향기라고 하는 매향(梅香)동, 매화 다리란 뜻의 매교(梅橋)동, 매화 뫼를 상징하는 매산(梅山)동 등과 매탄동이 모두 ‘매화나무 매 자’ 돌림이다. 아마 옛날에 매화나무 터나 매화나무 골이 많았던 것 같지만 이밖의 꽃나무 이름도 가지 가지다. 무성한 파초를 연상케 하는 파장(芭長)동, 배나무를 말하는 이목(梨木)동, 밤밭을 뜻하는 율전(栗田)동, 솔대골의 송죽(松竹)동, 대추나무가 많은 조원(棗園)동, 가는 버드나무골의 세류(細柳)동을 예로 들 수가 있다. 장지(長芝)동은 지치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의 지치를 딴 동명으로 지치 뿌리는 화상과 동상, 습진 등의 약제로 쓰인다. 또 당수(棠樹)동의 棠은 ‘땅이름자 당’으로 아마 이 마을에 있던 어떤 대표적인 나무가 지명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 대황교(大皇橋)동은 정조대왕이 융릉을 행행하면서 이 다리를 건너다닌 연유로 붙여진 명칭이다. 이외에도 버드내(細川) 가는골(細谷) 곳집말(庫舍村) 꽃뫼(花山) 샘내(泉川) 못골(池동) 인도내(仁溪동) 먼내(遠川동)등 순수한 우리 말의 예쁜 자연부락 이름이 지금도 전해온다. 돌아보면 물의 고장인 명성과는 달리 산업화로 많이 오염됐다. 논밭의 대지화로 저수지 또한 그 기능을 잃고 있다. 상수원으로 보호받고 있는 광교저수지와 수원천만이 겨우 청정의 명맥을 잇고 있다. 동명이 유래된 나무들도 많이 사라졌다. 이미 농업용 기능을 잃은 저수지 수질을 회복하여 공원화 하는 것도 좋지만 마을나무를 많이 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매화나무·배나무·밤나무·소나무·대나무·대추나무·버드나무·오동나무 등은 다 수원의 마을나무들이다. 이런 마을나무를 동마다 매년 집에서 또는 아파트 그리고 동네 공터나 골목길 가로수로 심는 ‘마을나무’ 심기운동을 수원시가 주도하길 바라고 싶다. 마을나무 명칭이 아닌 동은 시목(市木)인 소나무나 시화(市花)인 철쭉 아니면 마을나무를 따로 선택하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해마다 심으면 수년 후엔 마을나무들로 콘크리트 도시의 삭막함을 더는 푸른 청록 공간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나무’ 심기운동은 곧 내고장 사랑으로 지역사회와 지역주민의 정서 배양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믿어진다. /임양은 주필
오피니언
경기일보
2004-08-1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