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지금, 공산주의를?

공산당 활동을 허용하고 싶다. 국토분단이 없는 일본이나 서구처럼 말이다. 정당 간판도 달고 국회에도 진출할 기회를 주고 싶다. 헌법이 정한 양심의 자유란 이런 것까지 허용돼야 말인즉슨 제격이라 할 수 있다. 어찌 국가보안법 폐지 뿐이겠는가, 이런 공산당 활동을 인정하고 싶어도 못하는 전제가 있다. 평양 정권도 자유민주주의 정치활동을 허용해야 한다. 시장주의 주장이 피력될 수 있어야 한다. 수령론과 주체사상과 우리식 사회주의와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에 대한 비판이 자유로워져야 한다. 남북간 정치집단의 국리민복 추구는 경쟁, 즉 게임이다. 조건이 공정해야 한다. 축구 경기에서 핸들링이나 업사이드를 한쪽 팀에만 엄격히 적용하는 것은 불공정행위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반칙없는 수비에 페널티 킥을 상대에게 주는거나 같다. ‘양심의 자유가 국가를 우선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는 이래서 정당성이 존중된다. 공산당을 허용할 수 없는 제한의 합리성이 이리하여 성립된다. 그러나 공산당 불허를 명문화한 실정법 규정은 정당법 등 그 어디에도 없다. 국가보안법에도 없다. 국가보안법은 대북관계의 안보사항만을 규제하고 있을 뿐이다. 이 법은 냉전시대에 안보에 기여했다. 이런 순기능 가운데 공안정국 조성으로 독재에 악용된 잘못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야누스의 두 얼굴 같았던 이 법을 이 정권과 이 정권의 여당은 지난 날의 부정적 역기능만 부각시켜 망나니 취급 해 댄다. 고칠 대목은 고쳐 쓰자고 해도 막무가내다. 시대적 유물이므로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우긴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한다. 뭐가 달라졌단 말인가, 과거의 남북간 냉전이 구(舊)냉전시대로 구분하면 지금은 신(新)냉전시대다. 평양정권은 6·25전쟁을 일으킨 전비(前非)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포기한 징후는 아직도 찾아볼 길이 없다. 국가보안법을 없애도 평양정권이나 이에 동조하는 폭력세력을 형법상 내란죄로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한다.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 대표의 미심쩍은 이런 주장은 실로 의문이다. 평양정권이나 이의 동조세력이 행위를 해도 바보처럼 내란, 내란예비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드러낼 리는 거의 없다. 예컨대 학술활동으로 위장한 수령론이나 주체사상의 찬양집회가 있어도 보고만 있어야 한다. 김정일 장군 연구가 있어도 방관해야 한다. 연구목적을 빙자한 공산당 모임이 생길 수도 있다. 동구권에선 붕괴된지가 옛날인 이데올로기 망령이 되살아나 한반도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게 된다. ‘남조선 인민들의 사회주의적 생존권 투쟁을 적극 지원하고 평화적 민족 자주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투쟁한다’는 조선로동당 규약과 일치한다. ‘남반부 해방의 결정적 성숙 시기로 보는 ‘남조선 혁명전략’이 먹혀 들어가게 된다. 평양 정권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일관되게 강요해온 배경이 이에 있다. 개혁입법이라고 한다. 북에 안보장치를 풀어주는 것이 개혁이라면 그 개혁의 궁극적 가치가 무엇인지 의아스럽다. 하긴 그랬다.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지난 2003년 6월9일 일본 방문 마지막 날 일본공산당 시이 가즈오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가 방한의사를 밝힌데 대해 이같이 밝혔다. 대통령의 ‘공산당 허용…’발언은 전후 사정이 어떻든 적절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말인즉슨 그렇다는 원론적 수준의 언급이라고 여겼다. 당장 허용하자는 것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 한반도 시대나 있을 법한 일 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기를 쓰고 덤비는 게 그러하다. 이 법을 없애면 적어도 자생적 공산주의 활동이 가능해진다. 비록 공산당 간판까지는 안 달아도 비폭력적 공산주의 활동엔 방어할 법률적 근거가 없다. 평양 정권이 이 틈새를 놓칠 리는 만무하다. 나라는 무한하고 정권은 유한하다. 노무현 정권이 국기를 바꿀 권리는 없다. 정권을 맡으면 개혁의 이름으로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생각은 독재다. 아니 쿠데타 일 수도 있다. 이 정권과 이 정권의 여당 사람들이 이렇게 비칠 수 있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무서운 사람들이다. 지켜볼 것이다./임양은 주필

목요칼럼/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방문

“양국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다”(1992년 한승주 외무부 장관). “과거는 잊자”(레 둑 안 베트남 주석). 이렇게 해서 두 나라 수교가 시작된 이래 12년만에 노무현 대통령의 국빈 방문이 있을만큼 발전했다. 대통령은 쩐 득 르엉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주석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북베트남공산정권 수령 호치민 묘소를 찾아 헌화했다. 소련 유학을 거쳐 2차대전 땐 항일전쟁을 주도한 호치민(1890~1969)은 1975년 4월30일 하노이 정권의 사이공 함락으로 이룩한 베트남 통일을 생전에 보진 못했다. 그러나 베트남의 영원한 국부(國父)다. 그에 대한 베트남 인민의 존경심은 지도자의 이념성 보단 청렴성이 더 강하다. 독신으로 지낸 호치민의 의·식·주 생활은 평생을 인민의 대중생활과 똑같이 일관했다. 그가 썼던 검소한 나무침대 등 일상의 집기는 혁명박물관에 교범(敎範)으로 보존돼 있다. 호치민은 이미 죽었지만 사리사욕과 호사를 몰랐던 그의 지도자 정신은 인민 대중의 가슴속 깊숙이 살아 월남인민해방전선 전사(戰士·베트콩)들이 부정부패로 찌든 사이공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실로 생사를 초월한 충성의 동력이 됐던 것이다. 1964년 9월22일 청룡부대를 선발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국군은 미군에 앞서 사이공 정권 패망 이태 전인 1973년 3월24일 철수했다. 이에따른 월남 특수는 경제성장에 더 할수 없는 큰 기여를 했다. 그리고 전쟁의 상흔은 남았다. 숱한 전사·전상자를 낸 가운데 참전 군인들 중엔 지금도 고엽제병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 베트남도 사정은 같다. “한국군이 주둔했던 중부지역에는 한국에 대한 미움이 적지 않다. 그들의 아들이나 남편이 전선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방문으로 프레스센터 지원차 나온 하노이의 한 여성이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한다. 그녀는 그러나 또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젠 과거일 뿐이다”라고, 과거없는 현실은 없고 현실없는 미래 또한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과거에 발목잡히는 현실은 미래를 저해한다. 동서고금에 걸친 역사가 이러하다. 인물의 성분보다 시장(市場)의 노하우를, 아울러 과거사에 획을 긋고 미래를 향해 떨쳐 과감히 나서는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의 현실적 용단과 웅지가 참으로 부럽다. 부럽다 못해 이의 반사경(反射鏡)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이 부끄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프랑스 식민지를 거쳐 미군과의 오랜 전쟁을 치른 베트남은 혼혈이 많다. ‘라이 따이한’들도 수천명에 이른다. 하지만 주민 대다수는 베트남족이다. 서로 총 부리를 겨눈 베트남 이민족과도 이념의 장벽을 넘어섰는 데도, 북과는 동족상잔의 참상을 치르고도 여전히 총 부리를 겨누고 있다. 같은 남쪽에서마저 이념의 대립각을 칼날처럼 세우고 있다. 국내 좌파가 정책적 진보주의자라면 정말로 좋다. 나라의 본질을 같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북적 사회주의자라면 아니다. 나라의 본질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북은 사회주의도 아닌 김일성주의다. 베트남처럼 개방·개혁을 하고 싶어도 빗장을 열면 체제가 위협받는 모순에 빠져 못하고 있다. 김일성이나 호치민은 다같은 ‘수령’이지만 두 지도자상은 완전히 다른 게 한반도의 불행이다. 북은 평화 공존을 위한 교류협력의 대상은 된다. 하지만 정치연합을 위한 정치협상의 대상은 아니다. 적어도 6·25 남침을 사죄하고 무력 도발을 포기하는 신뢰의 증거를 보이지 않는한 그렇다. 개혁은 헌법이 정한 나라의 본질성 안에서 용인되는 것이 개혁이다. 이를 일탈하면 개혁이 아닌 쿠데타다. 만약 후자라면 개혁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쿠데타 시도의 종착지가 두렵다. 북의 인권 탄압엔 침묵을 지키면서 남의 온갖 일엔 인권을 찍어 댄다. 북의 체제엔 눈을 감으면서 남의 온갖 일엔 민주화를 둘러댄다. 이들 좌파가 정책적 진보주의자인 지, 친북적 김일성주의자들인 지는 국민적 의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의 절반만 같아도 참으로 좋겠다. 베트남 국빈 방문에서 대통령은 무엇을 어떻게 느꼈는 지 그게 궁금하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가을밤의 ‘잡념’

광교산 산책로 단풍나무 잎이 붉게 물든다. 가로수 은행나무 이파리도 곧 노랗게 물들 것이다. 낙엽은 겨울의 전령이다. 좀 있으면 낙엽이 지기 시작한다. 아니 벌써 떨어지는 잎새도 있다. 모든 낙엽엔 저마다 단풍이 들어 있다. 붉거나 노랗지 않다하여 단풍이 아닌건 아니다. 비록 볼품없는 단풍이지만 그래도 단풍은 단풍인 것을. 낙엽은 이래서 쓰레기가 아니다. 자연의 일부다. 낙엽지는 밤 거리를 걷노라니 웬지 한잔 술이 생각난다. 조름이 찌든 조명등 아래서 자작하는 모양새가 청승스러워 보이겠지만 상관할 바가 아니다. 자아의 실존에 감사할 뿐이다. 문득 타임머신을 탄다. 과거로 간다. 그렇다. ‘다치노미(立ち飮み) 집’은 일제 때 생긴 일본어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서서 마시는 집’이다 선술집이다. 선술집은 해방이 되고나서도 춘궁기 시절까지 가난의 멍에를 끈질기게 이었다. 텁텁한 막걸리 사발을 요기삼아 “카…” 하며 비우고는 김치 깍두기를 꼭꼭 씹는 입 언저리를 옷소매로 쓱 문질러 닦으면 그것으로 한잔 술이 끝난다. 허리춤 높이로 길게 만든 투박한 상이 볼품은 없어도 인정은 배어 있었다. 위생은 엉망이었겠지만 엉성엉성한 천장이며 벽틈엔 민초의 애환이 서렸다. 타임머신은 갑자기 미래를 향해 달린다. 유리성 같은 집안 꽃 방석에서 송이버섯 술을 마시는 데 밖으로만 투시되는 유리벽 위로 날아오는 자동차 행렬이 자동감응장치로 서로 부딪치지 않고 잘도 난다. 무변광대한 공(空)의 X축 한 위치에서 무한장구한 Y축 시(時)의 한 시점이 교차되는 나의 존재란 강변의 모래알과 같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있다는 게 얼마나 대견한 것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존재의 가치를 서로 지닌다. ‘신(神)은 죽었다’는 니체의 절규는 신의 부정이 아니고 신의 존재를 긍정한 역설일 수가 있다. 니힐리즘, 인식을 거부하는 허무주의는 도피적 사고가 아닌 또 다른 달관으로 해석해 본다. 조물주는 인간에게 증오의 정서를 전수해 놓고 증오하지 말라고 한다. 모순 덩어리인 것이 인간의 매력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인성의 말살이다. 인간이 인간을 배신하는 것처럼 더 추한 건 없다.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용기와 인내와 지혜가 있어주기를 간곡히 희구한다. ‘개보다 못한 사람이 있다’는 말이 있다. 좋을 때 좋아서 희희낙락거리는 것은 누구든 다 통한다. 불우하고 어려운 처지에서 병통이 도지는 것이 인간의 배신이다. 초등학생 때다. 집에서 놀러 나가면 기르는 개가 따라오는 게 귀찮아 돌멩이를 던져 쫓곤했다. 멀찌감치 도망갔다 가도 돌멩이 던진 주인이 뭐가 좋은 지 이내 꼬리를 흔들며 또 뒤따르는 것이었다. 이런 숨바꼭질의 학대에도 배신을 몰랐던 ‘누렁이’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개 꾼에게 팔려간 것을 알고는 얼마나 울었는 지 모른다. 돈 맛이 아주 단조로웠던 과거에 비해 돈 맛이 무척 다양해졌다. 인성이 이러므로 하여 척박해지는 자신이 밉다. 사람이 만든 기계에 사람이 지배당하는 자신이 부끄럽다. 끊임없는 욕망과 끊임없는 도전의 차이는 무엇인 가를 생각해 본다. 의문만 있고 해답은 없다. 기억할 수 없는 무한한 과거에서 예상할 수 없는 무한한 미래를 제멋대로 여행하는 내 타임머신은 언젠가 모를 종점에서 머문다. 삶이란 이런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마신 것일까, 혈관을 타고 흐르는 알코올이 기분좋게 취기를 돋운다. 날이 밝으면 누리의 한 모서리에서 뛰어야 하는 삶의 졸개인 데도 이 밤만은 느긋한 나홀로 왕자다. 저 멀리 반짝이는 하늘의 별은 연인의 미소이고 땅위의 낙엽은 나의 분신인 것을. 오오! 신이여 부처여, 인간의 오만을 긍휼히 여겨 주소서.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민족론의 意義와 함정

북이나 친북 좌파세력들이 걸핏하면 ‘민족’을 내세우지만 원래 공산주의자들에겐 민족의 개념이 배제된다. 국가의 개념도 제척된다. 이른바 과학적 사회주의 입장을 요약했다는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1847년)이 이렇고 코민테른(komintern·1919~1943년)이 이렇게 돼있다. 레닌 등 러시아 공산당과 독일의 사회민주당 좌파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좌파 그룹이 가맹한 국제공산주의의 코민테른, 즉 국제공산당은 국가를 국가로 보기보다는 한 지역으로 보는 일국일당(一國一黨)을 지향하였다. 한나라(지역)에는 복수의 공산주의가 있을 수 없고 하나의 공산당만 있어 국제공산주의 주도아래 민족의 개념을 넘어서는 범인류적 사회주의 혁명을 떨쳐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바람에 일제치하의 공산주의 운동가들 중 조선 국내파에선 박헌영 현준혁 등, 중국 무대의 해외파에서는 연안파 등 여러 분파들이 코민테른의 인준을 받기 위한 다툼이 치열했었다. 독립운동 또한 공산주의자 독립운동가들은 독립도 독립이지만 국제공산주의 일환의 사회주의 혁명이 종국적 목적이었다. 이에 비해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운동가들은 순수한 조국광복을 목적으로 하여 근대사는 이들을 민족진영으로 분류한다. 헌법 전문은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나라 근본의 정체성 명시다. 반세기가 흘렀다. 세월은 변화를 가져 오지만 변화가 있을 수 없는 것도 있다. 나라의 뿌리는 변화를 불허한다. 뿌리의 변화는 곧 소멸이기 때문이다. 작금에 이르러 보수의 민족진영 계승을 당치않게 수구 냉전세력으로 몰아치는 친북 좌파세력이 공산주의 원전에 없는 ‘민족’을 간판구호로 내세우는 것은 모순이다. 북에서 말하는 ‘민족’은 김일성주의의 혁명 용어다. 안으로는 권력의 혈통승계를 분장한 수령론과 이를 옹위하기 위해 불가피한 주체사상의 폐쇄사회를 수호키 위한 용어의 무장화다. 또 밖으로는 남에서 미군을 몰아내고 나면 남쪽보다 우월한 북의 군사력을 직·간접으로 작동해 성숙시킨 남반부 해방을 마침내 완수한다는 것이 민족자주론의 저들 혁명전략이다. 민족이란 참으로 아름답고 정감 넘치는 말이다. 그러나 북이 말하는 민족론엔 이처럼 무서운 함정이 있다. 좌파가 힐난 대상으로 삼는 보수세력의 민족 관념과 좌파가 좋아하는 북측이 말하는 민족의 인식엔 이토록 높은 장벽이 있다. 민족의 개념도 달라져 간다. 배달(倍達)의 단일민족은 농경사회에서 가능하였다. 이민족간의 혼인이 국내외에서 보편화 됐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할 것이다.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베트남 등 이밖에도 숱한 외국의 여성이 국내 남성과 혼인하여 자녀를 낳고 있다. 외국으로 혼인해간 국내 여성도 많다. 이밖의 해외동포들도 있다. 세계 140여개 나라에서 정주하고 있는 재외동포가 약 522만명에 이른다. (통일부 ‘세계의 한민족편’) 해외동포들은 우리 민족끼리 혼인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이민족과 혼인하는 사람도 있다. 정치학에서는 이리하여 민족관의 국가 개념 보다는 국민관의 국가 개념으로 바뀌어 간다는 ‘국민민주사관설’이 제기되고 있다. 민족지상주의에서 국민지상주의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만 해도 50여 민족이 있고 미국은 헤아릴 수 없을만큼 수많은 인종 전시장의 잡종 나라다. 영국에도 프랑스에도 흑인 국민이 많다. 그래도 이들은 나라마다 강력한 국가사회를 영위한다. 좌파가 친북이 아닌 동반관계의 진보세력이라면 뭘 좀 알고 말을 해도 하면 좋겠다. 만약에 알고 말을 그렇게 한다면 북으로 가든지 해야 한다. ‘민족’은 분명히 가치성과 희소성이 있는 어휘다. 그러나 용법에 따라 뜻이 판이하다. 야구 방망이가 야구선수 아닌 강도의 손에 쥐어져 있을 땐 곧 흉기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반전논리와 냉전논리

이 정권의 좌파 개혁에 대해 충고하면 한다는 소리가 냉전논리라는 것이다. 1천500여명에 이르는 사회원로의 충고도 이렇게 하여 귓등으로 넘겼다. ‘그 분들은 그렇게 살아온 그런 분들’이라는 것이다. 그럼, 대통령 노무현을 비롯한 이 땅의 좌파 집권세력은 어떻게 살아온 사람들인가, 이들도 역시 그렇게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민주화운동은 이들만 한 게 아니다. 이름 없이 묻혀간 민중적 민주화운동이 많다. 집권세력은 민주화운동을 간판 삼아 민중위에서 더 잘 산 위인이 숱하다. 여기까진 인내할 수 있다. 도대체 냉전논리라니, 그런 무책임한 소릴 입버릇 삼는 그들의 실체를 의심한다. 반전논리, 즉 반냉전논리설은 이 땅에 전쟁이 다신 재발하지 않는 것을 다짐하는 논리다. 다짐은 보장이다. 그들이 감히 무엇으로 보장한다는 것인 지를 의심하는 것이다. 남북 간에 전쟁이 없으면 이 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한반도의 완전평화 정착은 통일에 준하는 큰 가치성을 지닌다. 실례로 독일의 평화통일이 상호 신뢰속에 가능했던 것은 동·서독 간에 전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과거사 규명에 혈안이 된 이 정권이 북의 침략행위 투성인 6·25 한국전쟁이나 1·24 청와대 기습 그리고 울진 무장공비 침투사건, 동해안 무장간첩 잠수정 침입 등은 왜 조사 대상에 염두를 두지 않는 것인지 이 또한 의심스럽다. 비록 북측 유고로 무산되긴 했으나 대통령 김영삼과 북측 주석 김일성과의 정상회담을 주선하여 합의를 성사시켰던 전 미국 대통령 카터는 제2의 한국전쟁 가능성을 경고한 적이 있다. 지금도 상황은 같다. 한반도 주변의 중국·러시아·일본·미국 등 그 어느 강대국도 북이 전쟁 도발을 안 한다는 보장을 못 한다. 하물며 친북 좌파 세력이 간판 구호삼아 매도하는 냉전논리 반박은 지극히 공허하다. 북의 인민이 못사는 것은 국민총생산(GNP)에 비해 과다한 군비 경쟁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세계2위에 해당하는 GNP의 15%를 군비에 투입시켜 세계 4위의 전력을 과시하는 그들 말대로 ‘강성대국’이다. 세계 50위의 GNP 3.6%를 군비로 지출하여 25위의 전력에 머문 남쪽 전력은 비할 바가 못된다. GNP에 비한 군비 지출차이 11.4%의 남쪽 여력이 곧 사회간접자본과 사회복지비 등에 투입되는 숨통이다. 남북간의 차이가 현저한 전력공백을 보강하는 것이 바로 주한 미군이다. 북의 화력은 시간당 50만발의 포격이 가능하다. 초토화작전에 이어 화학탄두 등 신무기를 투입한다는 것이 북의 도발 시나리오다. 이에 힘의 균형으로 전쟁을 억제하는 데 이용하는 미군을 쫓아내지 못해 안달인 것이 또한 좌파 친북 세력이다. 자주국방은 듣긴 좋지만 말로 되는 게 아니다. 엄청난 돈이 들고 시일이 요한다. 이 정부가 2008년까지 계획하는 분배중심과 자주국방의 재정운용은 국가채무를 296조원으로 늘려 IMF 때보다 무려 다섯배에 이르게 된다. 분배중심과 자주국방의 재정 병립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는데도 이 정권은 민중을 볼모 삼아 국정을 실험도구화 하려고 든다. 그렇다고 2008년에 북의 전력에 버금가는 자주국방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시도하다가 안 되면 자주국방설을 후퇴할 지 모르지만 그 무렵가면 균열된 한·미 동맹관계의 회복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전쟁 걱정 같은 건 좌파 친북세력의 말처럼 꼴통 수구 보수세력의 하릴없는 걱정이면 제발 좋겠다. 이를 위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북을 어르고 달래고 퍼주면서 대화하고 왔다갔다 하지만 신뢰가 없다. 나라의 안보를 걱정하는 것이 냉전논리라면 나라의 안보를 걱정않는 논리는 무슨 논리며 근거는 무엇인지를 제시해야 한다. 전쟁은 예고가 없었던 게 역사의 교훈이다. 나라의 안보에는 실수를 용납지 않는다. 유럽의 ‘신자유주의’나 ‘제3의 길’ 좌파 노선엔 전쟁의 개념 따윈 상상도 못한다. 그러나 북의 ‘우리식 사회주의’는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전쟁의 개념이 아류를 이룬다. 이것이 좌파가 아무리 부정해도 엄존하는 한반도의 냉전논리다. 반전논리를 주장한다 하여 전쟁이 없는 게 아니며 냉전논리라 하여 전쟁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다음에는 또 뭔가?

세상이 다 아는 친북단체다. 재판을 못받겠다고 버틴다.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폐기를 선언했으니 그런 법으로는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백두산 전설집’이 떴다. 수령님이 백두산을 근거로 항일투쟁을 할 당시 장군께서 백두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폐기하여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는 말이 나온지 사흘이 멀다하고 이런 일이 생겼다.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는 더 괴상한 일이 생길 지 모른다. 공산당을 허용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단언하기가 심히 어렵다. 이 경우엔 틀림없이 양심의 자유를 팔 것이다. 양심의 자유는 곧 사상의 자유라고 주장할 게 뻔하다. 그러나 헌법이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 건 틀림이 없지만 이에앞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영토의 주권을 해치는 양심의 자유는 자유로서의 존립이 불가능하다. 국가보안법을 형법으로 대체 보완한다고 말인즉슨 쉽게 한다. 국가보안법은 특별법이고 형법은 일반법이다. 그 기능이 다르다. 대체 보완의 한계가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위헌의 소지가 생긴다. 이래서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헌법은 뜯어 고쳐야 한다는 말이 또 안 나올는 지 모르겠다. 법리적으로 볼게 아니라 역사의 결단으로 보자고 한다. 법치국가다. ‘국헌을 수호하겠다’고 취임선서를 했다. 법리를 무시하면 국헌 수호의 의무를 저버린다. 역사의 결단이라니 무슨 결단을 해야 한다는 건지 도시 알 수가 없다. 민중은 그 누구에게도 혼자 역사의 결단을 내리라고 위임한 사실이 없다.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을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대법원은 국가보안법상 찬양 고무죄 사건의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 판결했다.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은 헌법기관이다. 국가조직이다. 시스템을 무시하는 ‘박물관’ 말씀은 듣기에 정말 민망하다. 듣기에 따라선 헌법재판소나 대법원 구성원은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한술 더 떠서 누군가는 대법원을 향해 “청산해야 될 수구세력”이라고 힐난했다. 독선이다. 루이 16세는 ‘짐이 국가’라고 했다. 반대의 목소리는 기득권층의 수구세력으로 매도하는 이분법적 시각은 위험한 독선이다. 독재와 독선은 무늬만 다를 뿐이다. 국가보안법이 독재정권에 악용됐던 점을 모를 사람은 없다. 인정한다. 그러나 국가안보에 기여했던 점도 인정해야 한다. 평양정권이 왜 기를 쓰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지를 깊이 헤아릴 필요가 있다. 이 법이 잘못 쓰였던 일은 수십 년 전의 일이다. 남북교류는 마땅히 활성화 해야 하지만 이쪽은 이쪽 체제가 있고 저쪽은 저쪽 체제가 엄연히 다른 것은 분단 이후 줄곧 지속된 현실이다. 호랑이 담배먹던 옛 일을 가지고 현실을 재단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역에는 저들의 남침으로 한창 나이의 젊은 목숨을 잃은 참으로 수많은 국군 장병이 잠들어 있다. 나라가 이렇게 될 바엔 뭣 때문에 그토록 목숨을 바쳤는가 하고 영령을 분노케 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지근의 한 실세 중진은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은 혁명적이다”라고 했다. 실감한다. 혁명적이기 보다는 가히 쿠데타적 시도다. 그러나 개혁의 성과적 실체는 없다. 개혁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좌파 편향의 개혁은 성공할 수 없는 데 있다. 건국의 토양과 민중사회의 뿌리는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이 정권의 강경파 가운데 나라와 민중을 계급사관과 투쟁론의 낡은 이념에 개혁의 초점을 두는 이가 있다면 크게 각성해야 한다. 정권은 실험 도구가 아니며 민중은 실험대상이 아니다. 이 다음엔 또 뭐가 나올 것인 지 주목하고자 한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쌈닭과 중용론

중용(中庸)은 곧 형평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아니고 이것도 저것도 다 흡수한다. 조화인 것이다. 중도보수는 바로 중용이다.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 사회적으로는 정의구현, 문화적으로는 신문화 배양이 중도보수의 지표다. 국가사회의 정체성 구현이 이 길이고 국리민복이 또 이에 있다고 믿는다. 나라 안팎으로 도도히 흐르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정체적 보수를 거부하는 개혁적 보수를 그리고 진보주의와도 공존하는 것이 중도보수의 길이다. 남북관계 역시 이같은 관점에서 평화 공존을 위해서는 한국전쟁 도발의 불행한 과거를 접어두고 화해협력으로 가는 길을 긍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이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이 정권의 좌파 성향은 광복이후 59년사, 대한민국 56년사를 좌파시각 일색으로 덧칠하려는 현대사 쿠데타적으로 가고 있다. 국기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회적 우려가 이래서 나온다. 자유민주주의의 요체인 대화와 협상은 실종된 채 아집과 독선으로 일관한다. 시장경제의 강점인 경쟁은 투자위축으로 침체된 채 계획경제적 규제로 민중은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 댄다. 사회는 국가보안사범 출신의 좌익 세력이 정의로 대표되고, 문화는 이념적 편가르기로 나뉜 것이 이 정권들어 생긴 좌파 증후군이다. 남북관계 역시 북의 식언이나 억지에는 한없이 관대히 대하면서 이에 대한 간곡한 충고엔 매정하게 대한다. 보수의 오류를 시정케 해주는 동반자로서의 진보는 나라의 정체성 틀안에 있는 비이념적 정책주의를 의미한다. 진보주의 또한 진보의 오류를 일깨우는 보수의 충고를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양자의 공존이 가능하고 이를 희구하는 것이 중도보수의 입장이다. 그러나 이런 여망에도 불구하고 중도보수든 극우보수든 보수는 무조건 상대못할 수구세력의 반통일분자로 매도하는 이 정권의 병적 편향성은 과연 비이념적 파트너인 가를 생각케 할 때가 많다. 민중은 수구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가구당 평균 가계부채가 3천만원을 돌파한 민생고에서 무슨 기득권이 있어 수구할 것인가, 과거 보수 지도층 일부의 수구세력을 지탄하는 것은 인정할 수 있긴 하여도, 지금의 진보 지도층 일부의 신기득권자들 역시 이미 수구화한 오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 근로자와 중소기업 근로자 등을 양극화 관계의 대립적 과제로 보는 경제 시각은 중용이 아니다. 이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타개책 방안을 대립각에서 찾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시각이다. 그 어떤 세상을 만들어도 피할 수 없는 변증법적 모순을 좁히는 길은 투쟁이 아니고 조화다. 이 진보정권과 그래도 함께 가야 하는 것은 나라와 민중을 위해서다. 국가사회를 투쟁형에서 이제는 화합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쌈닭 놀음에 지쳤다. 개혁은 만성화한 피곤증으로 그 좋은 낱말이 이젠 듣기조차 싫을만큼 곪았다. 천도다, 과거사다, 뭐다하여 민중사회를 종횡으로 갈래갈래 갈라놨다. 심지어 아들에게 아버지의 과거를 ‘사과’라는 미명으로 탄핵까지 강요하는 세태가 됐다. 이래서 얻는 것은 없다. 갈등만이 있을 뿐이다. 국토의 남북 분단으로도 모자라 민족의 이념 분열을 부추긴다. 중용은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평범속에서 진실을 찾는다. 이성에 의해 과대와 과소의 욕망을 절제하는 식견이다. 동양 철학 고전의 사서(四書)인 논어·맹자·중용·대학 가운데 나온 말이긴 하나 서양 철학에서도 이를 추구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내재적 덕론(德論) 중심의 개념이나 도덕적 의지규정을 강조한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또한 중용과 상통한다. 전향적 화(和)를 갖는 심기는 만사를 이루고 저항적 화(禍)를 품는 심기는 만사를 해친다. 노무현 대통령의 심기에 화기(和氣)가 넘칠 때 민중의 존경을 받게되는 것은 비로소 순리로 간다고 보는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보와 함께하는 역동적 중도보수의 소임이 실로 막중한 시기다. 한데, 신뢰가 가는 이런 정치세력을 아직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또한 오늘의 문제다. /임양은 주필

목요컬럼/‘행복만들기’ 주부의 가사노동

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를 돈으로 치면 월 198만원이라고 한다. 한국여성개발원의 조사다. 대졸 주부의 ‘기회비용’이 이렇다는 것이다. ‘기회비용’이란 신문 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다. 노동시장의 참여, 즉 돈벌러 나서면 벌 수 있는 잠재적 소득을 가사노동에 쏟은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것이 ‘기회비용’이라는 것이다. 고졸 주부의 ‘기회비용’은 90만8천원으로 잡혔다. 말인즉슨 그렇다는 것이지 꼭 이런 것 만은 아니다. 고졸 여성이 더 벌 수 있고 고등학교를 안나왔어도 더 버는 여성이 많다. 전업주부에 학력을 따지는 것은 맘에 안든다. 가사노동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참으로 소중하기 때문이다. 다만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처음으로 평가된 점에선 관심을 가질만 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같은 전업주부의 노동가치가 통계청이 조사한 ‘국민생활보고서’를 토대로 했다는 점이다. 이 보고서는 전업주부의 하루 가사노동 시간을 평균 6시간35분으로 산출했다. 쉽게 말해서 살림사는 것이 가사노동이다. 가족들 음식마련, 빨래 등 옷 관리, 청소, 집안살림 경영, 자녀 키우기, 남편 돌보기 등이 이에 속한다. 더 세분하면 이밖에도 많다. 많은 남편들은 아내더러 “집에서 살림이나 산 주제에…” 어떻다면서 나가서 돈버는 것을 큰 위세로 친다. 폭언이다. 그래도 남편이 나가서 돈 잘 벌도록 기를 살리느라 꾹 참는 주부들이 많겠지만 할 소리가 못된다. 상당수의 남성들은 돈 벌기위해 이런꼴 저런꼴 보며 신경쓰는 것을 아내에게 무슨 벼슬처럼 행세한다. 아내가 집안 살림 꾸리며 이런일 저런일 겪는 것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다. 살림 사는 것쯤은 집에서 놀며 틈틈이 하는 것으로 여기는 건 착각이다. 부부가 함께 살며 이룬 재산의 소유권은 반반으로 보아야 한다는 민법 개정안이 여야 여성 국회의원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협의이혼을 할 경우 판사 마음에 따라 20%나 30%쯤 인심쓰듯이 떼어주곤 한 관행을 50% 대 50%로 법제화하자는 것이다. 프랑스 남성들은 이혼후의 뒷바라지가 겁이나 이혼을 잘 못하는 지경이다. 이혼한 아내가 자녀를 키우면 성인이 될 때까지의 양육비는 물론이고 재혼을 안하면 법원이 정한 전처의 생활비까지 대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혼 당시 위자료를 주고도 이런 추가부담을 떠안는 것이다.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를 하필이면 좋지않은 이혼시 재산의 반반으로 규정하는 것은 극단적 사례이긴 하여도 일상의 가치기준으로 삼을 수는 있다. 더 나아가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로 전업주부를 하면서도 가계소득을 올리는 여성들이 날로 늘고 있다. 맞벌이 부부의 주부 역시 전업주부 일을 많이 한다. 이렇게 나가다 보면 재산의 반반이 아니라 여성쪽의 재산이 오히려 더 많아질 수가 있다. 앞으로의 사회는 이런 시대가 온다. 부부관계 설정에 꼭 이같은 재산가치 분할의 개념이 아니어도 집안살림을 도맡는 주부의 숨은 노력은 실로 위대하다. 아이들 키우는 것 한가지만으로도 남편은 남모르는 아내의 무한한 모성애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 부성애는 모성애의 절반도 당하지 못하는 유전학적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전업주부(主婦)가 아닌 전업주부(主夫)가 있어 남편이 아내 대신에 집안살림을 맡고 있는 집이 적지않다고 한다. 아마 잘은 몰라도 나가서 돈 버는 것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버는 경우가 많아도, 집안살림을 여성보다 남성이 더 잘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럴 일이 좀 있어 청소며 설거지를 한달동안 해봤더니 청소하기가 귀찮아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고 설거지 그릇 나는 게 겁나 먹고싶어도 참곤 한 적이 있었다. 세상 남편들은 집안에서 궂은 일 도맡으며 안식을 안겨주는 아내의 행복만들기 가사노동이 얼마나 고마운 가를 알아야 한다. /임 양 은 주필

목요칼럼/신기남 의장에게

당신이 신상묵 선생의 아들이란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뭐라 할까요… 아무튼 반가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선친되는 분을 존경했던 사람으로서 그 분이 애국지사들을 고문까지 한 일본 겐페이(헌병) 고초(伍長) 출신인 사실을 이번 신문보도를 통해 알게된 것 또한 당혹스럽기도 하고요. 신 의장의 선친과 저의 선친은 잘 아는 사이였으므로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신 의장 선친을 가끔 뵐 수가 있었습니다. 아니 그보다 앞서 신 의장 선친이 장성경찰서장으로 계실 때부터 제 선친과 익히 알았다는 것이 저의 정확한 기억입니다. 신 의장의 선친이 제게 가장 인상깊게 남는 것은 중학생 시절의 일로 생각합니다. 제 선친에게 온 편지에 “이제 지리산에도 평화가 올 날이 머지 않습니다…. 그동안 희생된 수많은 동지들을 생각하면 열루가 앞을 가릴 뿐입니다”라는 대목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편지가 엽서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대목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지리산 반란군(그땐 그렇게 불렀지요)들 보급투쟁 바람에 치안이 극도로 불안했던 사회위기를 당시 생생히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저의 선친도 나중에 경찰에 투신하였지만 좀더 일찍 경찰에 몸담았거나 2년걸린 지리산 평정이 조금만 더 지연됐더라면 아마 신 의장 선친이 사령관으로 계셨던 ‘서남지구전투사령부’ 휘하에 들어가셨을 것입니다. 지금 신 의장 선친이 일제시대 일로 참 딱하게 됐지만 한국전쟁 중 후방치안을 위해 목숨 내놓아가며 진두지휘 하셨던 혁혁한 공로는 시게마쓰 구니오(重光國雄) 겐페이와는 달리 부인될 수 없습니다. 세상이 달라져 이젠 화해하는 분위기로 ‘남부군’이다 뭐다하여 더러 미화하기도 하지만 그 무렵 남로당 이현상 총사의 유격대(반란군)는 습격·납치·방화 등 참으로 많은 양민을 살상했습니다. 이념 갈등이 가져온 실로 비극의 시대상이었습니다. 신 의장이 신상묵 선생의 아들이란 것을 알고 왜 진보주의 정치인이 됐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는 신군부에 대한 5·18 항쟁의 강한 민주화 의식이 개혁사상을 갖게된 게 아닌가 판단하고 또 굳이 부정적으로 여기진 않습니다. 저 자신도 자유당 정권 때 한동안 사회주의에 심취해 ‘진보당’ 사무실을 들락거리길 좋아 했으니까요. 문제는 이 정권의 과거사 규명 정략에 주축을 이루는 친일 청산에서 신 의장 선친이 견본(見本)으로 오르게 된데 있습니다. ‘보아라! 우리당 대표 아버지도 친일 청산의 도마위에 올렸다. 하물며 다른당 대표의 아버지쯤이야…!’하는 과시는 고인을 제물화하는 게 아닐까요. 국영방송이라 할 KBS 전파에서 바로 신 의장 선친이 소탕에 나서 궤멸된 지리산 반란군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밑에서 전사하련다…”는 북의 혁명가가 울려 퍼지는 세상 입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진보주의나 개혁이 이런 것은 아니잖습니까. 자기 아버지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것을 자랑삼는 북의 체제처럼 이승에 없는 자기당 대표 남의당 대표를 친일 청산의 도마위에 올려 난도질해서 도대체 얻는 것이 뭐가 있습니까. 부끄러운 역사라고 역사에서 잘라낼 수 없는 것이 역사입니다. 그래도 민족정기를 내세워 해야 한다면 좋습니다. 일제시 허물은 허물대로 가리고, 건국후 공로는 공로대로 평가하겠다면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건국후의 일은 제쳐두고 친일행위만 따진다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이런 작업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저희 어제 신문에 난 ‘과거사는 학계, 정치권은 미래사 힘쓰라’는 제하의 사설로 대신합니다. 개혁은 화합으로 가는 고통 분담의 변화이지, 저주로 가는 본질적 혁명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신 의장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수원, '마을나무' 심기운동을

수원의 명칭은 고려 원종 12년(1271년) 수원도호부로 승격되면서 생겼다. 이전 고구려 땐 매홀이라고 했던 것을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수성군으로 개칭된후 한동안은 수주군으로 불렀다. 지금의 수원 동·서·남·북문을 중심으로 하는 구 시가지가 조성된 것은 조선조 정조 21년(1797년) 화성 축성이 준공되면서였다. 이후 일제시대에 몇차례의 행정구역 개편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수립 이듬해인 1949년 8월15일 수원군 수원읍이 시로 승격, 수원시와 화성군으로 분리되기 전까지는 화성군 역시 수원군에 속했다. 건국 후에도 1983년 2월15일 용인군 수지면 이의리가 수원시 이의동으로 편입되는 등 5차례의 행정구역 개편이 있었다. 8세기의 수성을 효시로 수주·수원 등 예부터 ‘물 수자’와 인연이 깊었던 것은 국내 농업과학의 메카를 예고했던 것 같다. 이래서인지 시내 동명 역시 물과 연관되는 것이 많다. 천천(泉川)동, 구천(龜川)동, 곡반정(谷泮亭)동, 남수(南水)동, 북수(北水)동, 지(池)동, 인계(仁溪)동, 원천(遠川)동 등이다. 오목천(梧木川)동, 매탄(梅灘)동 처럼 물과 나무의 합성어 동명도 있다. ‘오동나무 냇’(오목천동), ‘매화나무 개울’(매탄동)이란 상상만 해도 운치 넘치는 정경이다. 흥미로운 건 곡반정동(온수골)의 泮자가 ‘물반반 자’라는 점이다. 나무와 꽃 이름을 딴 동명 가운데는 매화가 가장 많이 차지한다. 좋은 매화 열매라는 호매실(好梅實)동, 매화 향기라고 하는 매향(梅香)동, 매화 다리란 뜻의 매교(梅橋)동, 매화 뫼를 상징하는 매산(梅山)동 등과 매탄동이 모두 ‘매화나무 매 자’ 돌림이다. 아마 옛날에 매화나무 터나 매화나무 골이 많았던 것 같지만 이밖의 꽃나무 이름도 가지 가지다. 무성한 파초를 연상케 하는 파장(芭長)동, 배나무를 말하는 이목(梨木)동, 밤밭을 뜻하는 율전(栗田)동, 솔대골의 송죽(松竹)동, 대추나무가 많은 조원(棗園)동, 가는 버드나무골의 세류(細柳)동을 예로 들 수가 있다. 장지(長芝)동은 지치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의 지치를 딴 동명으로 지치 뿌리는 화상과 동상, 습진 등의 약제로 쓰인다. 또 당수(棠樹)동의 棠은 ‘땅이름자 당’으로 아마 이 마을에 있던 어떤 대표적인 나무가 지명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 대황교(大皇橋)동은 정조대왕이 융릉을 행행하면서 이 다리를 건너다닌 연유로 붙여진 명칭이다. 이외에도 버드내(細川) 가는골(細谷) 곳집말(庫舍村) 꽃뫼(花山) 샘내(泉川) 못골(池동) 인도내(仁溪동) 먼내(遠川동)등 순수한 우리 말의 예쁜 자연부락 이름이 지금도 전해온다. 돌아보면 물의 고장인 명성과는 달리 산업화로 많이 오염됐다. 논밭의 대지화로 저수지 또한 그 기능을 잃고 있다. 상수원으로 보호받고 있는 광교저수지와 수원천만이 겨우 청정의 명맥을 잇고 있다. 동명이 유래된 나무들도 많이 사라졌다. 이미 농업용 기능을 잃은 저수지 수질을 회복하여 공원화 하는 것도 좋지만 마을나무를 많이 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매화나무·배나무·밤나무·소나무·대나무·대추나무·버드나무·오동나무 등은 다 수원의 마을나무들이다. 이런 마을나무를 동마다 매년 집에서 또는 아파트 그리고 동네 공터나 골목길 가로수로 심는 ‘마을나무’ 심기운동을 수원시가 주도하길 바라고 싶다. 마을나무 명칭이 아닌 동은 시목(市木)인 소나무나 시화(市花)인 철쭉 아니면 마을나무를 따로 선택하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해마다 심으면 수년 후엔 마을나무들로 콘크리트 도시의 삭막함을 더는 푸른 청록 공간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나무’ 심기운동은 곧 내고장 사랑으로 지역사회와 지역주민의 정서 배양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믿어진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왼쪽 날개, '왼쪽 고집'

헌법에 이런 조문이 있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나 헌법 119조2항의 이런 ‘경제의 규제·조정’도 같은 조문 1항이 정한 ‘경제질서의 기본’을 넘어설 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 경제질서의 기본이다. 자유경제인 것이다. ‘경제의 규제·조정’기능은 아무리 가도 자유경제, 즉 자본주의에서 가장 강도 높은 규제로 꼽히는 통제경제 단계에 머문다. 이것이 나라 경제의 정체성이다. 한데, 이 정권의 경제정책은 좌파적 계획경제로만 가려고 한다. 예컨대 친노동정책은 고임금 귀족 노동계급의 연례행사적 파업을 유발하였다. 기업규제 강화는 투자 위축을 가져왔다. 또 하나의 예를 든다. 주택거래 신고제는 실수요 거래마저 둔화시켰다. 이로 인해 이사·도배·인테리어업계가 장사가 안 되어 아우성이라고 전한다. 서민층의 생계가 이토록 위협받는 지경인데도 당국은 ‘집값 잡았다’고 자랑한다. 백약이 무효인 경기침체의 장기화엔 이유가 있다. 휘발유(자유경제) 엔진에 맹물(계획경제)을 부어 가동하려 하면 엔진이 고장 안 날 수가 없다. 맹물가동의 시도는 이미 실패로 끝난지 오래인 낡은 이념이다. 이 정권의 과거사 규명, 과거사 들추기는 현대사 새로 쓰기다. 1948년의 대한민국 건국은 공산당과의 처절한 투쟁속에서 이루어졌다. 미·소 등 강대국에 수 년 통치를 맡기자고 한 남로당의 찬탁운동은, 이를 거부하고 나라를 세우려고 하는 반탁운동을 살인·방화·약탈로 집요하게 위협하였다. 이로도 모자라 제헌국회의원을 뽑는 5·10 총선 방해를 위해 전국 곳곳의 투표장을 급습, 죽창으로 무고한 양민을 학살했다. 대한민국은 이렇게 반공의 초석위에 세워진 나라다. 6·25 한국전쟁에서 흘린 시산혈하의 비극은 반공을 하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공산당이 좋으면 전쟁을 일으킨 저들에게 손들면 그만이었으나, 그게 아니기 때문에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이 전쟁터의 포화속에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 반세기 넘어 지났다. 지금도 반공을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나라의 정체성은 지켜야 한다. 이런데도 이 정권은 과거의 반공을 보수정권 독재수단으로 왜곡하고, 이를 비판하면 꼴통 반통일분자로 몰아 댄다. 실례로 제주 4·3사건이 남로당에 의한 조직적 반란행위인 것은 부인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진압 과정에서 군·경이나 남로당측이나 모두 과잉 대응한 불행이 있었던 건 틀림이 없다. 한데도 이를 군·경의 일방적 양민학살로 규정한 것은 좌파시각의 해석이며, 이렇게 좌파시각으로 현대사를 다시 쓰려하는 것이 곧 이 정권이 그토록 집념을 갖는 정치사 과거 들추기인 것이다. 사회적 홍위병도 있다. 탈북자의 ‘자유북한방송’이 북측 중단 요구에 맞춘 협박의 성화통에 배겨나지 못한 일이 수도 서울에서 있었다. 남파 간첩·비전향 장기수가 민주화 인사로 둔갑하는가 하면, 간첩 출신의 조사관이 국방부와 군 요인을 신문하고, (전쟁을 일으킨) ‘김 주석 조문 촉구’의 글이 이 정권 국정 사이트에 뜨고 있다. 같은 좌파들이기 때문이다. 새는 좌·우 양 날개로 난다는 비유는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앞을 향할 때 성립된다. 왼쪽 날개가 왼쪽으로만 날아가는 진로 이탈엔 얘기가 다르다. 오늘의 경제·정치·사회적 공황의 원인이 이같은 정체성 이탈에 기인된다. ‘방귀 뀐 사람이 성 낸다’고 색깔을 드러내면서 그를 탓하면 또 색깔논쟁이라며 되레 큰 소릴 친다. 정권의 칼 자루를 믿고 치는 이런 오만은 언제나 유한하였다. 민중은 되지도 않은 개혁의 피로 증후군에 지칠대로 지쳤다. 대한민국 벼슬을 지내면서 건국의 정체성을 부인하면 더 무모한 생각일랑 말고 물러나든지 해야 한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北에 가서 살아라

천신만고 끝에 제3국으로부터 한국행에 성공한 탈북자들, 공항에서 연수원으로 가는 버스행렬, 버스커튼을 살짝 열어재친 차창 틈 밖을 바라보는 어린이며 젊은 아낙, 중년의 남정네들 얼굴 표정이 무척 밝아 보인다. 미안한 생각이 든다. 저토록 희망을 갖는 탈북자들에게 얼마나 기대에 부응해 줄 수 있을까 해서다. 하필이면 경제가 바닥을 기는 이 즈음에,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는 이 시기에 오는가 하는 마음도 든다. 비행기로 실어 날라야 하는 450명의 탈북자 무더기 입국은 앞으로가 더 어려울 수 있음을 시사한다. 월남을 귀순이라고 하여 칙사 대접하던 일은 이제 호랑이 담배먹던 옛 일이 됐다. 근년들어 해마다 1천명 가량의 탈북자들이 입국한데 이어 이젠 비행기 떼기가 되었다. 이러다가는 몇 천명씩 태우는 수송선 동원이 필요할 수가 있다. 1990년 10월3일 독일이 통일되기 전 동독에서 베를린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간 난민이 500만명이 넘는다. 겹겹이 경비하는 155마일 휴전선 철조망이 아닌 단순한 남북간 장벽이라면 제3국이 아닌 직접적 남행 탈북이 아마 동독처럼 사태날 것이다. 탈북자가 이래서 아무리 늘어도 북의 평양 정권은 동독처럼 곧 무너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휴전선의 지상군을 비롯한 막강한 군사력 때문이다. 대륙간 탄도탄(ICBM) 등 미사일은 미 본토 공격이 가능하고 생화학 무기 보유량은 5천t으로 세계 3위다. 여기에 핵무기 개발로 미국을 조롱하고 있다. 북의 군비 지출은 국민총생산(GNP)의 21%로 세계 2위며 남은 3.6%로 50위다. 북녘 땅에도 암시장이 생기고, 평양 시내에선 노래방에 폭탄주를 함께 마시며 춤도 추고 ‘홍도야 울지마라’ 같은 가요를 부르는 도우미 여성도 있긴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지극히 제한적일 뿐 여전히 공산주의이기 보다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집하는 ‘김일성주의’가 공고하다. 통일은 실로 예측키 어렵다. “손자 때나 통일이 될 것으로 알았던 것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 몰랐다”는 것은 통독 당시 동독 정부의 각료를 지낸 사람의 말이다. 남북 통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북의 군사력이 단단해도 자유의 바람을 대대손손 영원히 막을 수는 없다. 소련 붕괴의 정신적 저변이 미국풍의 청바지 바람에서 시작한 것은 참으로 되새겨 음미할만 하다. 그러나 통일은 엄청난 통일비를 수반한다. 독일은 통일후 6년동안만 해도 동독지역에 사회간접자본, 사회복지비, 환경개선 등에 무려 500조원에 해당하는 1조마르크를 쏟아 부어야 했다. 언젠가는 실현될 남북통일도 이같은 통일비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통일은 더할 수 없는 가치성이 있지만 예를 들어 지금 당장 통일이 된다해도 통일비 감당이 큰 난제다. 남북 공존공영은 자연스런 평화 통일이 성숙되는 시기까지 서로가 민족역량을 배양하자는 것이다. 프랑스 르 몽드지 등 외지나 국제단체가 외국의 구호식량이 주민에게 제대로 배급되지 않는다는 의문을 제기하곤 하지만 그래도 북에 식량을 보내고 물자를 지원해야 하는 연유가 이에 있다. 이런 실정에서 제 나라 인민들이 살지 못하겠다며 도망친 탈북자들이 비행기 떼기로 남행을 하여 부담을 안기면 부끄럽게 여기고 미안해 해야할 사람들이 되레 큰소리 친다. 금강산 행사에서 북측 사람들이 탈북자 문제로 정부를 맹렬히 비난한데 이어 곧 열어야 할 15차 장관급 회담도 불응할 태세로 시큰둥 하고 있다. 정부는 탈북자 문제로 북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무척 조심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러면 그럴수록이 북측은 우정 더 한다. 남북간 문제는 당당히 해결하는 것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첩경이다. 걱정은 있다. 북녘 사람이 아니라 남쪽 사람에 대한 걱정이다. 남북 문제에 사사건건 북을 두둔하여 남남갈등의 부추김을 일삼는 이상한 세력이 있다. 이들은 차라리 여기서 그러지 말고 그렇게 좋다는 북에 가서 살고, 정부도 이주 허가를 해 주는 방법의 검토가 있으면 좋겠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진짜 애국자들...

“우리 경제가 일본의 90년대 이후 장기침체 때와 닮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박승 한은총재·국회 경제토론회), “98년 외환위기 때도 요즘처럼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가 뭔지, 대책이 뭔지도 예전엔 알았는데 요즘은 마음속이 꺼진다”(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 거시팀장·국회 경제토론회), “상황이 어려워도 시장경제가 자리를 잡아야 나라가 사는데 요즘은 한국이 진짜 시장경제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이헌재 경제부총리·기자회견). 청년 실업자 수는 지난달 2만1천명이 증가한 38만7천명으로 전체 실업자 수 76만3천명의 50.7%를 차지해 실업자 2명 중 1명이 청년실업인 것으로 나타났다.(통계청 6월 고용동향) 예를 든 이런 몇가지의 진단을 부정적으로 크게 보아야 할 것인지, 긍정적으로 작게 보아야 할 것인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이의 판단은 곧 “우리 경제가 부분적으로는 문제가 있어도 큰 틀로 보아서는 잘 간다”고 말한 노무현 대통령의 견해와 함께 하느냐 달리 하느냐와 연관된다. 민중경제는 아우성인데 민중을 볼모로 하는 파업이 여기 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이 중엔 평균 연봉이 6천만원인 민중 아닌 고액 노동 선민층이 두자릿 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단결’ ‘쟁취’를 외쳐대면서 주먹질을 하고 있다. 기업은 국내투자를 기피해 외국으로 빠져 나가려고만 든다. 경제난으로 군대도 어려움을 겪는다. 기름이 모자라 훈련을 제대로 못한다. 북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의 얘기다. 공군 조종사는 연간 적정 훈련시간 160시간에 못미치는 145시간에 그친다.(미국 훈련시간은 252시간·대만은 180시간이다) 전차나 함정의 가동도 30% 이상이나 줄었다.(국방부보고서) 이런 실정에서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의 경비정을 경고 사격으로 물리치고 돌아온 해군 함정이 되레 혼쭐이 나고 있다. 지금 국방부를 비롯한 군 수뇌부는 대통령의 노여움과 질책으로 기가 꺾였다. 모를 일이다. 직보사항인 작전 상황보고 이후의 분석보고는 사후 관례인 것이 맞는지 틀린지는 알기 어렵다. 국제공용주파수를 사용하므로 민간 상선도 들을 수 있는 내용이 과연 군의 기밀인지 아닌지도 역시 잘 알기가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북의 NLL침범 사실이나 북의 잇단 거짓말은 일언반구 없이 놔두면서(군 통수권자의) 제 자식같은 군대엔 왜 이토록 불호령인지는 참으로 모를 일이다. 민중은 불안하다. 빨간 띠를 이마에 질끈 동여맨 파업꾼들이 세상을 곧 거덜낼듯한 깃발을 높이 들고 뿜어대는 함성으로 불안해 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날품팔이(진짜) 노동자들, 중소기업 근로자들, 장사꾼들은 살기가 더 어려워져만 간다. 이런데도 이를 걱정해야할 사람들은 수도 이전을(다음 정권에선 취소할세라 걱정해 기정사실화하기 위해서인지)부랴 부랴 서둘다가, 군대 나무라는 일에만 정신이 팔린 것 같다. “큰 틀로 보아서는 잘 간다”는데 민중의 삶은 희망이 점점 더 멀어만 간다. 누군가가 그랬다. 사업체를 다 털고나서 한다는 말이 “말로만 기업규제 완화 한다는 정부꼴 안보고 노조 상대 안하니까 살 것 같다”는 것이다. 기막힌 이야기다. 기업자본이 이렇게 은둔되어 사업체가 문 닫으면 가진 것 없는 사람은 그나마 더 살기가 어려워진다. 정치권에 애국자도 많지만 이 시대의 진짜 애국자는 개혁주의를 팔아먹는 자들이 아닌 사업하는 이들이다. 업종이 무엇이고 업체가 크든 작든 간에 이 불경기에 그래도 남을 고용해 월급(재분배) 주어 더불어 살아가는 군소 사업주들이 어려운 민중사회를 받쳐가고 있다. 만약 잉여가치설의 망령을 아직도 신봉하는 위인들이 있다면 이들이야 말로 저주받은 굿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아주대의료원 병실에서

병실(입원실)의 밤은 인고의 시련이다. 병마와 싸우는 환자에겐 밤이 고독하면서도 여명에 기대를 거는 희망이 있다. 지하 3층에 지상 14층, 우뚝 솟은 현대식 건물의 병원 병실은 전층에서 시가지를 멀리는 영통까지 내려다 볼 수 있는 조감의 시계가 특히 밤 거리는 마치 그림과 같다. 가로등 사이로 동영상처럼 질주하는 차량들, 그리고 야행 군상의 사람 사람들, 빌딩과 아파트가 임립한 누리를 보며 하루속히 병상을 털어 세상속의 저런 일상인이 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속에 병실의 밤은 지새간다. 내일쯤이면 우거진 나무들, 아담한 팔각정과 벤치들이 공원처럼 잘 정돈된 드넓은 병원 앞 마당이라도 산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잠들다가도 더러 깨곤 하는 환자들, ‘잠자는 사람은 치통(아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셰익스피어의 말도 이들에겐 거짓말이다. 아내의 갑상선 이상으로 입원한 신혼부부가 속삭여 병상 사랑을 나누는 곁에선 장이 문제가 되어 입원한 80대 노부부가 눈빛으로 얘기를 나누곤 했다. 한 날 자정무렵이었을까, 마침 그땐 할아버지 보호자가 그나마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호스로 배설을 받아내던 게 이상이 있었던지 환자를 이리저리 부축해가며 더럽혀진 환의며 침대 시트를 선선히 새 것으로 갈아 입히고 바꿔 깔아 주고 또 더러움을 처리하는 간호사(명찰이름을 영문이니셜로 ‘KJO’로 표기할 수 있는)그녀의 평화로운 얼굴은 한마디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는 타고난 고통이라고 하나 웬 병도 그리 많은 것인 지, 갓난 아이에서 백수(白壽)에 이르기까지의 환자들이 실로 천천만만이다. ‘대저 모든 병은 마음에 달렸으니 마음에 생기면 병도 일어난다’(夫萬病由心 心生則病作)고 김시습은 그의 매월당집(梅月堂集)에서 말했다지만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몸의 병이 생기므로 마음의 병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병원에 가보면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수원시 팔달구 원천동 구릉지에 웅자를 드러내고 있는 지역주민의 메디컬 센터인 아주대학교 의료원, 교육·연구·진료의 3대 기능으로 국내 의료수준의 세계적 선도에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고의 의료진, 첨단의 장비로 의료 수요자들의 신뢰를 받고 있어 이 병원이 올해 개원 10주년을 맞아 내건 ‘지역사회와 함께한 10년, 지역사회와 행복한 100년’의 캐치프레이즈가 설득력 있게 다가선다. 병원은 환자가 주인이다. 자신의 증상을 쉽게 알아듣도록 해주고 병원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쾌적한 시설환경 조성 또한 제2차 진료의 요체다. 아주대의료원이 이런 병원으로 가고 있는 것은 지역사회와 지역주민이 가질만한 긍지이기도 하다. 병실의 인심은 언제나 후하다. 같은 처지인 그야말로 동병상련이랄까 서로가 위한다. 색다른 음식이 있으면 콩 한쪽도 나눠먹는 마음으로 나눠주고 환자가 먹지 못하면 보호자라도 먹게 한다. 특히 고통이 심한 환자는 딱하게 보아 말이라도 위로하고 수술받으려 수술실로 옮겨지는 환자에겐 “힘내라…”는 격려와 함께 수술이 잘 되기를 빌곤 한다. 비록 고통은 있어도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정감이 포근히 감싼다. 특히 퇴원하는 환자가 생기면 가는 사람, 남는 사람이 서로 손을 일일이 맞잡아 남는 사람은 퇴원을 축하하고 가는 사람은 남는 이들의 쾌유를 빈다. 병실의 밤은 무거운 침묵 속에 잠겨도 이러므로 이튿날 밝은 일이 예약되는 희망이 싹튼다. 돈이 없으면 빌리면 되고, 신용이 없으면 찾으면 되고, 명예를 잃으면 회복하면 된다. 하지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했다. 병원은 건강(생명) 지킴이다. 병실을 떠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선진 외국의 어느 큰 병원과도 같은 드넓은 1층 복도를 통해 나서는 아주대의료원의 서구식 현관 진입로가 이채롭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요지경 속 세상

#1 정동채 문광부 장관은 되레 교수임용 인사청탁 사건의 피해자랍니다. 친여 언론 사이트의 서 아무개와 그의 부인, 그리고 오지철 전 문광부차관이 정 장관을 팔아 정 모 S대 교수에게 서씨 부인의 교수임용 인사청탁을 했다고 하니까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인사청탁의 장본인으로 지목받은 정 장관이고 보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럼, 오 전 차관은 밥 먹고 하릴 없어 본인도 시인하는 인사청탁을 왜 정 장관 이름까지 대가며 했겠느냐는 의문은 갖지 마십시오. 또 있습니다. 서씨 부부는 부도덕하고 오 전 차관은 멍청한 짓을 한 것으로 결론난 조사 결과에 더 토를 달진 마십시오. 왜냐하면 청와대가 조사한 것이니까요. 그 조사야 결론이 뻔한 게 아니냐는 말씀도 하지 마십시오. 민초야 그러면 그렇다고 알아야지 별수 있습니까. 오 전 차관이나 서씨 부부도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지 않습니까. 정 모 S대 교수가 인사 청탁의 부당성을 청와대에 낸 진정서가 잠 잔 것도 잘 들어 두십시오, 담당자의 부주의로 인한 것이지 고의가 아니라고 합니다. #2 열린우리당 장복심 의원이 전국구 후보시절 뿌린 돈봉투 사건은 별게 아니라는 것이 열린우리당이 발표한 공식 입장입니다. 선거법위반에 해당하는 노란점퍼 제공문제도 역시 그렇구요. 별것도 아닌, 있을 수 있는 일을 두고 괜히 언론이 야단이라며 신문을 매질한 열린우리당 어느 유력 의원의 말이 생각납니다. 전국구가 돈 전자 ‘錢國區’가 아니라는 것이겠지요. 남의 그것은 스캔들이고, 내가 한 그것은 로맨스라고 여기는 아집에서 나온 말은 설마 아니겠죠. 깨끗한 청정의 개혁정치를 한다는 분들이니까요. 그렇지만 당이 거창하게 ‘진상조사위원회’란 것 까지 만든 셈 치고는 발표 내용이 쭉정일 뿐 알맹이가 너무 없잖습니까. 마땅히 조사해야할 사람들을 조사하지 않았다는 말이 사실인지 궁금하군요. 그럼 왜 당 차원의 ‘진상조사위’를 급조하여 ‘태산명동에 서일필’도 안되는 벼락치기 발표를 한 연유가 무엇인지요. 이래서 집권 여당이 사건을 내사 중인 검찰더러 ‘알아서 해주십시오’하고 가이드 라인의 신호를 보낸 거라는 말을 듣잖습니까. #3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조사위’라는 곳이 정말 이상한 데라고 하면 또 반통일분자나 꼴통 보수라고 뭇매질 당할 지 모르겠군요. 그래도 그렇지 대체 이 나라를 부정하며 전향을 거부하다가 죽은 남파간첩과 빨치산을 민주화인사로 규정내린 것도 모자라, 생존한 전향 거부자들을 북송해야 한다니 이 분들 국가관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인권이라고요? 인권을 갖다 붙인 논리비약도 당치않지만 ‘의문사진상조사위’가 ‘인권위’는 아니잖습니까. 가당치 않은 월권행위를 저질러 놓고 한다는 말이 “빨갱이로 생각지 말아 달라”니 불행중 다행입니다만 글쎄요. 나라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습니까. 누가, 어느 정치세력이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진보도 좋고 개혁도 다 좋습니다. 하지만 나라의 정체성은 지켜야 할 것 아닙니까. 목숨을 바쳤거나 피땀 흘려 나라를 지킨 이들은 바보가 되고, 도전해 온 저들은 영웅시 하는게 대한민국을 건국한 정체성은 아닙니다. 도대체 우리 민중은 사유의 혼돈속에 귀신도 모르게 지금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 것입니까?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파병철회'가 노동운동인가

“반미면 어떠냐!”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민주당 당내 후보시절 영남대서 가진 특강에서 이렇게 말 했다. 만약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지 못하고, 그래서 재야 정치인이나 아니면 국회의원의 입장에 있다면 그 누구보다 이라크 추가파병을 극력 반대할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노 대통령이 이라크 추가파병을 거듭 천명하면서 지하 테러에 대해 강력한 대처 의지를 밝혔다. 누구보다 미국을 싫어했던 그가 이라크 추가 파병을 김선일씨 참수 이후에도 변함없이 피력한 것은 미국, 특히 부시가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막상 대통령직을 맡고 보니까 나라 살림이 그런 것만도 아니어서 입장을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 민주노총은 파병반대를 노동쟁의와 연계시켜 산하 100여개 노조로 하여금 총파업에 들어가도록 했다. 대통령의 지지층이었던 민노총이 파병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심지어는 ‘노사모’같은 친노세력도 분열되어 일부는 노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서는 것 같다. 생각해 본다. 대통령은 대통령대로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미국은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부존자원이 변변치 않은 국토다. 수출을 해먹고 사는 나라에서 미국과 등지면 당장 통상마찰이 일어나 수출이 막힌다. ‘수출이 막히면 대수냐’는 호기아닌 호기는 무책임하다. 미국시장이 막히면 성장 잠재력이 급감한다. 투자는 둔화하여 기업은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금융은 일대 혼란을 가져오면서 민생은 더욱 도탄에 빠진다. 실업률은 급증하여 내수는 엉망이 될 게 불을 보듯이 뻔하다. 민노총은 노동자 월급을 더 올려주고, 주5일 근무제로 노는 날을 늘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돌리거나 아니면 월급을 더 많이 올려주어야 한다고 우긴다. 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자면 기업투자가 더욱 활성화해야 하고 또 미국시장을 더 많이 개척하면서 다변화 해야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정당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때론 명분과 실리가 상반될 수 있는 것이 세상사다. 명분을 쫓아 반미를 한다고 하여 누가 우리를 밥 먹게 해줄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보다 더 잘 사는 일본이나 다른 나라가 명분을 몰라서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하는 것은 아니다. 다 자국의 이익과 민생을 위한 실리 때문이다. 미국의 수출시장이 막혀 거덜나게 되는 기업도산으로 인해 살기가 어려워지면 ‘못살겠다’고 아우성 칠 사람들이 반미를 신앙화하는 것은 의문이다. 노 대통령의 변함없는 추가파병 천명은 친미도 반미도 아닌 실용주의다. 파병반대를 해도 민노총의 자매 정당인 민주노동당이 할 일이지 노동단체인 민노총이 할 일은 못된다. 명백한 노동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고 김선일씨는 참으로 아까운 사회 인재였다. 하지만 얼굴도 드러내지 못하는 비겁한 복면 테러단체의 협박에 못이겨 파병을 철회해서는 이런 나라가 어떻게 국제사회와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김선일씨 피랍에 따른 파병반대 시위자들은 덮어놓고 파병철회의 목청만 높일 것이 아니라 ‘철회의 국내 주장도 있으니 석방하거나 참수를 연기해 달라’고 했어야 하는것이 참다운 구명운동이었을 터인데도 이런 말을 하는 목소리는 전혀 듣지 못했다. 연이나 파병철회를 요청한 민노총은 파업과 연계한 파병반대를 사회개혁적 과제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당치 않다. 노동운동의 정치운동화는 자유민주주의의 질서 위반이다. 대체 민노총의 사회개혁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이해가 안된다. 노동개혁은 가능해도 사회개혁이나 정치개혁은 거리가 먼 것이 노동운동 본연의 모습이다. 궁극적으로 혁명적 개혁의도가 아니라면 노동운동의 한계를 일탈해선 안된다. 친미니 반미니 하는 용어의 유희는 다 부질없는 소리다. 우리가 이런 꼴 저런 꼴을 안보고 잘 살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민중역량을 모아 국력을 키우는 길이 유일한 길이다. /임양은주필

목요칼럼/가평 ‘경로급식’ 시작되던 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오랜만에 신바람이 났다. ‘소양강 처녀’ ‘섬마을 선생님’을 부르는 노래 합창이 3층에서 1층까지 울렸다. 노인 분들 눈은 강단의 최미자 지도사의 일거일동에 쏠리고 두 손바닥을 박자따라 마주치는 손뼉 소리가 힘찼다. 얼굴엔 마냥 꽃피우는 함박웃음으로 가득했다. 가평군 노인복지관, 가평읍 읍내리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3층 주홍빛 벽돌건물의 이 노인복지관은 가평 노인분들에겐 한마디로 낙원이다. 지난 9일 오전, (사)대한노인회경기도연합회 가평군지회 부설 노인대학 120여명의 노인학생들은 정신건강 관련의 특강 수업을 이렇게 마치고 푸짐한 경로식사를 즐겼다. 반찬 중 돼지 머릿고기는 고사를 지낸 것이다. 이날은 대한노인회경기도연합회와 대한노인회가평군지회의 추천으로 노인복지관에 (사)한길봉사회경기도지부 가평군지회가 설립되어 ‘경로식당 무료급식소’가 문을 연 첫 날이다. 1층 식당은 현대적 시설의 주방과 더불어 100여명이 한꺼번에 앉을 정도로 자리가 넓은데도 번갈아 앉아야 할 만큼 붐볐다. 한길봉사회가평군지회는 앞으로 매주 월·수요일 점심시간이면 이같은 무료 경로급식을 인원 수에 관계없이 갖게 된다. 점심시간에 앞서 강당에서 가진 ‘경로식당 무료급식소 개소식’에는 양재수 가평군수가 참석, 격려의 말을 해 주어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희형 대한노인회가평군지회장 등 노인회 간부들은 물론이고 많은 지역 유지들이 자리를 함께하여 이날을 자축했다. 인사하기에 바쁜 조규구 한길봉사회가평군지회장은 경로식당을 사비로 꾸려 가야하면서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하여 물었더니 대답이 소박하다. ‘뭘 바라거나 딴 욕심이 있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주는 기쁨은 주지 않아본 사람은 모른다’고도 했다. 이런 일은 돈도 돈이지만 돈의 여유보단 마음의 여유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양재수 군수의 부인 김남선여사, 황용선 부군수의 부인 한성화여사도 경로식당을 찾았다. 두 분은 이를테면 비공식의 평상복 차림으로 찾아 주방과 식당 등을 둘러보고 자원봉사 어머니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위로했다. 이존하 대한노인회경기도연합회장, 이지현 한길봉사회경기도회장 또한 개소식 참석에 바쁜 일정을 보냈다. 가평군노인복지관은 한마디로 군에서 노인복지에 갖는 강한 관심이 역력해 보였다. 1층부터 3층까지 꽉찬 각종 시설은 의욕이 충만했다. 상담실 휴게실 오락실 체력단련실 물리치료실 샤워장 서예실 종이접기교실 컴퓨터교실 실버 이·미용실 도서실 공동작업장 등 실로 다양한 시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충격이었다. 때마침 종이접기교실에선 강의가 있었고 서예교실에서는 자습하고 있는 할머니들이 있었다. 체력단련실은 10여종의 기구가 잘 갖춰졌다. 특히 서예교실은 초·중·고급반이 있는 가운데 옛 한문 명구를 써 자신의 아호에 낙관까지 찍어 노인휘호대회에 출품시켜 입상한 작품이 복도에 전시되어 눈길을 끌었다. 대한노인회가평군지회는 이밖에도 원예치료 미술교실 장구교실 한국무용 영어나라 볼륨댄스 태권무 당구교실 등 사회교육생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국내 노인인구의 7% 기준인 고령화사회를 이미 훨씬 지나 14% 기준의 고령사회를 불과 수년 앞두고 있는 우리의 실정에선 노인문제가 참으로 절박하다. 더욱이 우리는 고령화사회 준비가 선진국처럼 되어 있지 않은 가운데 고령사회로 급격히 치닫는 과속 현상은 많은 난제를 안겨주고 있다. 국민이 살기좋은 사회복지는 종국적으로 노인문제 해결이 사회복지의 가치척도가 되는 관건이다. 이는 중앙정부가 앞장서 해결해야 할 현안이다. 그러나 현실은 노인문제가 절박한 것만큼 중앙정부 시책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데도 지방재정이 열악한 가평군이 노인문제에 이만한 관심을 갖는 건 그 자체만 해도 평가할만 하다. 여기에 ‘경로식당’ 개소는 가히 금상첨화다. 지세가 산자수명해서일까, 어려운 가운데나마 그래도 가평군 노인 분들은 복받았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측근비리 선처?

기자실에 불쑥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마침 혼자 있어 무료하던 참이었다. “호소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말씀 하시지요” “○○구청 건축과장에게 돈을 준 일이 있습니다” “왜요?” “공장을 증축하는 데 건폐율이 안 맞아서 그랬습니다” “그래서 공장 증축은 다 했는지요?” “했습니다” “누가 돈을 주었습니까?” “제가요” “?? 아니 그럼 바로 댁이 공장을 하면서 직접 주었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 그런데 뭘 호소한다는 겁니까?” “그 돈을 찾아야겠습니다 … 공무원이 돈을 먹어서 되겠습니까?” “아니? 댁은 지금도 공장을 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 이젠 그만 두었습니다” “그렇구나!”하고 짚이는 것은 이젠 아쉬울 게 없으니까 본전을 찾아야 겠다는 것이 이 사람의 심산임을 알았다. “그럼, 별 도움을 못드리겠는데요… 가십시오” 그래놓고 마땅치 않은듯 입맛을 다시며 기자실 문을 나서는 그를 다시 불렀다. “댁의 목적이 뭡니까?” “돈만 찾으면 됩니다” 나는 면식도 없는 구청 건축과장에게 전화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치사한 돈을 빨리 돌려주는 게 당신 신상에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일선기자 시절에 겪은 아주 오래된 체험담을 장황하게 끄집어낸 데는 이유가 있다. 모든 뇌물이 다 부도덕하고 불법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경중이 있다면 두가지로 나눠 생각할 수가 있다. 공무원이 상대의 심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법으로 뇌물을 받는 것과 상대가 자발적으로 뇌물을 주어 편법을 봐준 것은 구분돼야 한다는 것이 그간 보아온 경험이다. 전자는 비인간적이지만 후자는 그래도 비인간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처음엔 비인간적인 것이 아닌 뇌물수수도 기자실을 찾은 그 사람처럼 비인간적으로 뒤탈을 내는 게 비단 인간같지 않은 그 사람만은 아닌 것 같다. 뇌물수수 사실을 굳이 고하진 않는다 해도 장부에 기입되면 결국 그게 화근이 되기 십상이다. 더욱 위험한 것은 돈 임자가 여러 사람인 돈의 뇌물이다. 이젠 명절에 기자실을 찾는 일도 없는 것으로 알지만 명절 촌지가 관행이었을 적에도 ○○업연합회나 XX조합 같은 데서 주는 명절 촌지는 거절하곤 했다. 쥐꼬리만큼 주어놓고 엄청나게 부풀려 장부정리할 것이 뻔해 그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유럽에선 커피 한잔도 뇌물로 치는 나라가 있는 것에 비하면 3만원 이하의 향응은 뇌물로 안 보는 우리의 공무원윤리강령은 꽤 관대한 건지 모르겠다. 어떻든 예전 같으면 공식부패랄 수는 없어도 준공식부패였던 금전수수가 지하부패와 마찬가지로 엄단되는 현상은 사회발전이긴 하다. 그러나 부패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지금 과연 있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 보편적 사회 인식인 것은 이 또한 이 시대 우리의 불행이다. 한동안 부조리 척결 바람이 한창이었을 적에 들키면 부조리고 안 들키면 ‘복조리’라는 비양된 유행어가 있었다. 정치적 부패 경험자인 대통령이 ‘부패추방’을 말할 때 얼마나 승복감이 갈 것인가는 참으로 심각하다. 정치적 부패든 관료적 부패든 사회적 부패든 부패는 다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패추방은 부패추방에 위화감이 없을 때 비로소 부패추방이 성공된다. 강을 건넌 돼지들이 수를 세면서 수를 세는 자신은 빼고 세는 바람에 수가 틀렸다는 어느 우화처럼 자신의 부패는 제쳐두고 외치는 부패추방은 결국 그같은 수의 셈처럼 틀리게 마련이다. 땅에, 물에 몸을 던지거나 목을 매는 그 사람들이 잘못이 없다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말없는 저항 또한 이유가 없다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시대의 모순과 혼돈이 빨리 정리돼야 정말로 부패가 없는 청정의 국가사회가 이룩된다. 이런 터에 대통령 오른팔이라는 안 누군가의 비리를 선처해 달라는 여당 의원들의 집단요구는 기자실을 찾은 그 얌체없는 사람같은 부류와 별로 다름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저 포도는 시다'

(5월29일) 열린우리당 당선자 청와대 만찬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며 “눈물을 흘렸다”(정봉주의원 사이드)거나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청와대 발표)거나 하는 게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의별 보수를 갖다 놓아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다” “보수는 힘센 사람이 좀 맘대로 하자는 것… 약육강식에 가깝고, 진보는 고쳐가며 더불어 살자는 것이다”라고 했다(연세대 특강)는 말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폐가 심하기 때문이다. 논리의 비약, 단안의 독선이 전제된 결론은 허구에 불과하다. 바뀌지 않는 보수는 있을 수 없으며 보수도 진보와 마찬가지로 더불어 살자는 것이 시장주의 원칙이다. 보수 또한 어차피 (공동체)사회를 이뤄 살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이 잡탕인 것은 현실 정치의 편의를 위해 그런다손 치더라도 신권위주의 정치문화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비개혁적이랄까, 반개혁적이기 때문이다. 실세를 등에 업은 평당원(문희상 의원)이 김혁규 총리카드를 내세워 당 지도부의 인책을 경고하는 시스템 일탈은 그것으로 이미 민주정당 면모의 맛이 갔다. 화제의 만찬장은 나는 튀어도 되고 너희는 튀면 안 된다는 억압된 추종의 주문속에 ‘용비어천가’ 경연장을 방불케 했다. 원칙이란 원칙을 말하는 자신에게도 불리한 게 있게 마련인 것이 그간 경험해온 원칙의 개념이다. 어떻게 그가 말하는 원칙엔 그 자신이 손해보는 것은 하나도 없고 상대의 손해만 강요하는 논리가 성립된다고 보는지 정말 괴이하다. (대통령의) ‘민주대연합론’에 이어 (문 의원이) ‘민주당 합당설’을 들고 나온 것은 술수의 상황론이지 원칙론이 될 수 없다. 대화와 타협을 말하면서 상대를 이해하기 보다는 나의 생각을 강요하고, 정직한 정치를 말하면서 표퓰리즘을 조장하는 지하형 독선은 다중인격을 발견하는 것 같아 우리를 또 슬프게 한다. 개혁은 혁명이 아니다. 이러므로 개혁세력의 주체 역시 개혁의 객체가 되어야 비로소 공감대가 형성되고 설득력을 갖는다. 우리는 결코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개혁이 개혁답지 않은 사실을 심히 슬프게 여긴다. 지역주의 타파를 말하면서 지역주의 편승을 되새김해서는 이 또한 백날가야 말 잔치에 그친다. 천도(행정수도 이전)와 함께 200개에 이르는 수도권 공공기관을 오는 2009년부터 지방으로 강제 이주하는 것이 진보정책이라면 그 근거의 타당성을 좀더 명백히 제시해야 한다. 수도권을 제외한 13개 시·도에 공공기관을 어거지로 옮기는 물리력보다, 그 돈으로 차라리 지역특화산업을 육성하는 화학적 지원작용이 더 지방균형발전이라고 믿는 것이다. 행정수도로 포장한 천도는 명백히 (헌법상 국민투표에 의해) 국민적 합의가 요하는 역사적 사업이다. 되면되고 안되면 안되도 그만인 그 숱한 대선 공약이 능사가 아니다. 특정지역의 기대 심리를 부풀려 대선에 이어 총선에 재미를 본 행정수도의 정치적 산물이 헌법정신을 능가할 수는 없다. 무엇을 고쳐가며 사는 것도 개선이 있고 개악이 있다. 어림잡아 100조원이 소요되는 행정수도 이전 및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긁어 부스럼 내는 개악이 아닌 증거를 보고 싶다. 우리는 이러한 증거를 보지 못하는 사실을 무척 슬프게 생각한다. 400만명의 신용불량자, 300만명의 잠재적 신용불량자, 50만명의 청년실업자들은 그래도 경제가 걱정없다고 장담하는 그들의 낙관론에 신용이 가지 않는 것이 슬프다. 잘 익은 포도넝쿨 밑을 지나가던 여우가 뛰어올라 따려고 했으나 안되자 “저 포도는 시다”고 했다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가 되어서는 안된다. 민중은 고달프지만 ‘잘 한다’는 말을 하고싶어 한다. ‘잘 못한다’고 해서는 내일을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뭐가 뭔지 모르게 돌아가는 일은 참으로 많다. 오늘의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내일을 알 수 없는 것을 민중은 더 크게 슬퍼한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판사가 별 건가? 암, 별 거고 말고!

재판정 법대위에 높이 앉아있는 판사는 설령 체구가 작아도 형사 피고인의 눈엔 무척 커보인다. 자신의 운명이 판사가 마음 먹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물론 법절차에 의한 재판 진행과 법률에 의한 판결을 받는다. 판결엔 채증의 법칙과 경험법칙이란 것도 있다. 그러나 유·무죄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 유죄일 경우 형의 집행 유예냐 아니면 실형을 얼마로 하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판사 마음에 달렸다. 그래서 같은 성격의 사안이 흔히 판사에 따라 다른 판결이 나온다. 교통사고 뺑소니 사건을 두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병원에 옮겨놓고 사라져도 유죄판결이 났었는가 하면, 가해자가 사정이 있어 피해자를 병원에 안 옮기고 자리를 떠도 그 사정이라는 것을 관대히 보아준 무죄판결이 있었다. 형사재판만이 이런 것은 아니다. 재경부에서 똑같은 이유로 해임된 전직 공무원 두 명이 각각 낸 해임처분취소청구의 행정소송에서 한 사람은 승소하고 또 한 사람은 패소한 엇갈린 판결이 있었다. 민사소송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여성댄스의 직업 정년을 몇살로 보느냐는 것은 순전히 판사가 마음 먹기에 달렸다. 이에대해 구체적 사안의 검토에 따라 판결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게 판사의 입장인 것은 안다. 하지만 이같은 민·형사 및 행정소송의 유사 재판 사례는 허다하다. 판사에게 보장된 재판의 자유심증주의 권능은 이토록 막대하다. 판사가 오판을 했을 지라도 피고인은 꼼짝 못한다. 오판도 법률적 규제력을 지닌다. 판사 역시 인간이다. 이러므로 중요한 것은 판사 개인의 성품과 성장 과정이다. 이런 게 결국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가치관이나 인생관 등의 인격 형성에 직접 작용되기 때문이다. 판사의 사생활 체험도 판결에 영향을 준다. 약혼녀와 유원지 데이트 중 불량소년들에게 협박당해 금품을 빼앗긴 젊은 판사가 유사 사건의 피고인이면 나이가 어리든 초범이든 개전의 정황에 상관없이 무조건 실형이 아니면 소년원 송치를 일삼는 것을 보았다. 법조 출입기자 17년을 경험하면서 평생 잊혀지지 않은 법언(法諺) 같은 말을 들은 게 하나 있다. “재판은 판사가 지닌 양심의 반영이다”라는 말을 판사에게 직접 들었다. 그 무렵 전국 법원으로 번졌던 ‘법관정풍운동’의 진원지였던 대구고법 부장판사 중 수석부장판사였던 분이 그랬다. “법조문 해석이나 적용은 제대로 공부한 법대출신이면 다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의 해석과 적용은 판사의 양심입니다. 고시(사법시험)는 다만 (판사) 임용의 객관적 기준에 불과한 겁니다” 그러면서 ‘법관정풍운동’은 곧 양심운동임을 강조했다. 벌써 30여년이 지났다. 그러나 지금의 그 후배 판사들도 귀담아 들을만한 법언이라고 굳게 믿는다. 서울남부지법 어느 형사단독 판사가 특정 종교의 교리를 내세운 양심적 병역거부에 내린 무죄판결이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 판결의 법리적 오류는 따로 밝힌 바가 있으므로 여기선 재론 않겠다) 물론 시대의 변천은 사고(思考)의 변화를 요구받는다. 겨울에 여름옷을 입을 수 없고 여름에 겨울 옷을 입을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어떤 옷이든 옷은 옷다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재조든 재야든 법조계의 사고력 역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것은 인정한다. 이것이 곧 사회발전이기 때문이다. 우려되는 것은 법조계의 세력화 경향이다. 법조의 세력화는 법조 개개인의 양심의 독립을 저해할 수가 있다. 국가사회의 법질서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라 할 재판이 행여라도 이로 인해 사회적 불신이 싹 튼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미 오래 전에 조계종 종정을 지내고 열반한 효봉스님은 일찍이 판사를 했던 분이다. 그가 뒤늦게 출가하여 세속과 인연을 끊은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오판에 대한 참회였다. 모든 게 판사 마음에 달린 재판의 자유심증주의는 이토록 사람을 죽이고 살리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판사 일을 하는 동안은 판사가 판사다워야 하고 판사다움은 스스로가 터득해야 한다. 판사가 별 거냐는 의문에 별 거인 게 맞다는 항등식이 이래서 성립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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