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이런 조문이 있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나 헌법 119조2항의 이런 ‘경제의 규제·조정’도 같은 조문 1항이 정한 ‘경제질서의 기본’을 넘어설 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 경제질서의 기본이다. 자유경제인 것이다. ‘경제의 규제·조정’기능은 아무리 가도 자유경제, 즉 자본주의에서 가장 강도 높은 규제로 꼽히는 통제경제 단계에 머문다. 이것이 나라 경제의 정체성이다.
한데, 이 정권의 경제정책은 좌파적 계획경제로만 가려고 한다. 예컨대 친노동정책은 고임금 귀족 노동계급의 연례행사적 파업을 유발하였다. 기업규제 강화는 투자 위축을 가져왔다. 또 하나의 예를 든다. 주택거래 신고제는 실수요 거래마저 둔화시켰다. 이로 인해 이사·도배·인테리어업계가 장사가 안 되어 아우성이라고 전한다. 서민층의 생계가 이토록 위협받는 지경인데도 당국은 ‘집값 잡았다’고 자랑한다.
백약이 무효인 경기침체의 장기화엔 이유가 있다. 휘발유(자유경제) 엔진에 맹물(계획경제)을 부어 가동하려 하면 엔진이 고장 안 날 수가 없다. 맹물가동의 시도는 이미 실패로 끝난지 오래인 낡은 이념이다.
이 정권의 과거사 규명, 과거사 들추기는 현대사 새로 쓰기다. 1948년의 대한민국 건국은 공산당과의 처절한 투쟁속에서 이루어졌다. 미·소 등 강대국에 수 년 통치를 맡기자고 한 남로당의 찬탁운동은, 이를 거부하고 나라를 세우려고 하는 반탁운동을 살인·방화·약탈로 집요하게 위협하였다. 이로도 모자라 제헌국회의원을 뽑는 5·10 총선 방해를 위해 전국 곳곳의 투표장을 급습, 죽창으로 무고한 양민을 학살했다. 대한민국은 이렇게 반공의 초석위에 세워진 나라다.
6·25 한국전쟁에서 흘린 시산혈하의 비극은 반공을 하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공산당이 좋으면 전쟁을 일으킨 저들에게 손들면 그만이었으나, 그게 아니기 때문에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이 전쟁터의 포화속에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
반세기 넘어 지났다. 지금도 반공을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나라의 정체성은 지켜야 한다. 이런데도 이 정권은 과거의 반공을 보수정권 독재수단으로 왜곡하고, 이를 비판하면 꼴통 반통일분자로 몰아 댄다. 실례로 제주 4·3사건이 남로당에 의한 조직적 반란행위인 것은 부인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진압 과정에서 군·경이나 남로당측이나 모두 과잉 대응한 불행이 있었던 건 틀림이 없다. 한데도 이를 군·경의 일방적 양민학살로 규정한 것은 좌파시각의 해석이며, 이렇게 좌파시각으로 현대사를 다시 쓰려하는 것이 곧 이 정권이 그토록 집념을 갖는 정치사 과거 들추기인 것이다.
사회적 홍위병도 있다. 탈북자의 ‘자유북한방송’이 북측 중단 요구에 맞춘 협박의 성화통에 배겨나지 못한 일이 수도 서울에서 있었다. 남파 간첩·비전향 장기수가 민주화 인사로 둔갑하는가 하면, 간첩 출신의 조사관이 국방부와 군 요인을 신문하고, (전쟁을 일으킨) ‘김 주석 조문 촉구’의 글이 이 정권 국정 사이트에 뜨고 있다. 같은 좌파들이기 때문이다.
새는 좌·우 양 날개로 난다는 비유는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앞을 향할 때 성립된다. 왼쪽 날개가 왼쪽으로만 날아가는 진로 이탈엔 얘기가 다르다. 오늘의 경제·정치·사회적 공황의 원인이 이같은 정체성 이탈에 기인된다.
‘방귀 뀐 사람이 성 낸다’고 색깔을 드러내면서 그를 탓하면 또 색깔논쟁이라며 되레 큰 소릴 친다.
정권의 칼 자루를 믿고 치는 이런 오만은 언제나 유한하였다. 민중은 되지도 않은 개혁의 피로 증후군에 지칠대로 지쳤다. 대한민국 벼슬을 지내면서 건국의 정체성을 부인하면 더 무모한 생각일랑 말고 물러나든지 해야 한다.
/임양은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