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판사가 별 건가? 암, 별 거고 말고!

재판정 법대위에 높이 앉아있는 판사는 설령 체구가 작아도 형사 피고인의 눈엔 무척 커보인다. 자신의 운명이 판사가 마음 먹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물론 법절차에 의한 재판 진행과 법률에 의한 판결을 받는다. 판결엔 채증의 법칙과 경험법칙이란 것도 있다. 그러나 유·무죄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 유죄일 경우 형의 집행 유예냐 아니면 실형을 얼마로 하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판사 마음에 달렸다.

그래서 같은 성격의 사안이 흔히 판사에 따라 다른 판결이 나온다. 교통사고 뺑소니 사건을 두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병원에 옮겨놓고 사라져도 유죄판결이 났었는가 하면, 가해자가 사정이 있어 피해자를 병원에 안 옮기고 자리를 떠도 그 사정이라는 것을 관대히 보아준 무죄판결이 있었다. 형사재판만이 이런 것은 아니다. 재경부에서 똑같은 이유로 해임된 전직 공무원 두 명이 각각 낸 해임처분취소청구의 행정소송에서 한 사람은 승소하고 또 한 사람은 패소한 엇갈린 판결이 있었다.

민사소송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여성댄스의 직업 정년을 몇살로 보느냐는 것은 순전히 판사가 마음 먹기에 달렸다. 이에대해 구체적 사안의 검토에 따라 판결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게 판사의 입장인 것은 안다. 하지만 이같은 민·형사 및 행정소송의 유사 재판 사례는 허다하다. 판사에게 보장된 재판의 자유심증주의 권능은 이토록 막대하다. 판사가 오판을 했을 지라도 피고인은 꼼짝 못한다. 오판도 법률적 규제력을 지닌다.

판사 역시 인간이다. 이러므로 중요한 것은 판사 개인의 성품과 성장 과정이다. 이런 게 결국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가치관이나 인생관 등의 인격 형성에 직접 작용되기 때문이다. 판사의 사생활 체험도 판결에 영향을 준다. 약혼녀와 유원지 데이트 중 불량소년들에게 협박당해 금품을 빼앗긴 젊은 판사가 유사 사건의 피고인이면 나이가 어리든 초범이든 개전의 정황에 상관없이 무조건 실형이 아니면 소년원 송치를 일삼는 것을 보았다.

법조 출입기자 17년을 경험하면서 평생 잊혀지지 않은 법언(法諺) 같은 말을 들은 게 하나 있다. “재판은 판사가 지닌 양심의 반영이다”라는 말을 판사에게 직접 들었다. 그 무렵 전국 법원으로 번졌던 ‘법관정풍운동’의 진원지였던 대구고법 부장판사 중 수석부장판사였던 분이 그랬다. “법조문 해석이나 적용은 제대로 공부한 법대출신이면 다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의 해석과 적용은 판사의 양심입니다. 고시(사법시험)는 다만 (판사) 임용의 객관적 기준에 불과한 겁니다” 그러면서 ‘법관정풍운동’은 곧 양심운동임을 강조했다. 벌써 30여년이 지났다. 그러나 지금의 그 후배 판사들도 귀담아 들을만한 법언이라고 굳게 믿는다.

서울남부지법 어느 형사단독 판사가 특정 종교의 교리를 내세운 양심적 병역거부에 내린 무죄판결이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 판결의 법리적 오류는 따로 밝힌 바가 있으므로 여기선 재론 않겠다) 물론 시대의 변천은 사고(思考)의 변화를 요구받는다. 겨울에 여름옷을 입을 수 없고 여름에 겨울 옷을 입을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어떤 옷이든 옷은 옷다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재조든 재야든 법조계의 사고력 역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것은 인정한다. 이것이 곧 사회발전이기 때문이다. 우려되는 것은 법조계의 세력화 경향이다. 법조의 세력화는 법조 개개인의 양심의 독립을 저해할 수가 있다. 국가사회의 법질서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라 할 재판이 행여라도 이로 인해 사회적 불신이 싹 튼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미 오래 전에 조계종 종정을 지내고 열반한 효봉스님은 일찍이 판사를 했던 분이다. 그가 뒤늦게 출가하여 세속과 인연을 끊은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오판에 대한 참회였다. 모든 게 판사 마음에 달린 재판의 자유심증주의는 이토록 사람을 죽이고 살리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판사 일을 하는 동안은 판사가 판사다워야 하고 판사다움은 스스로가 터득해야 한다. 판사가 별 거냐는 의문에 별 거인 게 맞다는 항등식이 이래서 성립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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