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활동을 허용하고 싶다. 국토분단이 없는 일본이나 서구처럼 말이다. 정당 간판도 달고 국회에도 진출할 기회를 주고 싶다. 헌법이 정한 양심의 자유란 이런 것까지 허용돼야 말인즉슨 제격이라 할 수 있다. 어찌 국가보안법 폐지 뿐이겠는가, 이런 공산당 활동을 인정하고 싶어도 못하는 전제가 있다. 평양 정권도 자유민주주의 정치활동을 허용해야 한다. 시장주의 주장이 피력될 수 있어야 한다. 수령론과 주체사상과 우리식 사회주의와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에 대한 비판이 자유로워져야 한다. 남북간 정치집단의 국리민복 추구는 경쟁, 즉 게임이다. 조건이 공정해야 한다. 축구 경기에서 핸들링이나 업사이드를 한쪽 팀에만 엄격히 적용하는 것은 불공정행위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반칙없는 수비에 페널티 킥을 상대에게 주는거나 같다.
‘양심의 자유가 국가를 우선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는 이래서 정당성이 존중된다. 공산당을 허용할 수 없는 제한의 합리성이 이리하여 성립된다. 그러나 공산당 불허를 명문화한 실정법 규정은 정당법 등 그 어디에도 없다. 국가보안법에도 없다. 국가보안법은 대북관계의 안보사항만을 규제하고 있을 뿐이다. 이 법은 냉전시대에 안보에 기여했다. 이런 순기능 가운데 공안정국 조성으로 독재에 악용된 잘못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야누스의 두 얼굴 같았던 이 법을 이 정권과 이 정권의 여당은 지난 날의 부정적 역기능만 부각시켜 망나니 취급 해 댄다. 고칠 대목은 고쳐 쓰자고 해도 막무가내다. 시대적 유물이므로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우긴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한다. 뭐가 달라졌단 말인가, 과거의 남북간 냉전이 구(舊)냉전시대로 구분하면 지금은 신(新)냉전시대다. 평양정권은 6·25전쟁을 일으킨 전비(前非)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포기한 징후는 아직도 찾아볼 길이 없다.
국가보안법을 없애도 평양정권이나 이에 동조하는 폭력세력을 형법상 내란죄로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한다.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 대표의 미심쩍은 이런 주장은 실로 의문이다. 평양정권이나 이의 동조세력이 행위를 해도 바보처럼 내란, 내란예비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드러낼 리는 거의 없다. 예컨대 학술활동으로 위장한 수령론이나 주체사상의 찬양집회가 있어도 보고만 있어야 한다. 김정일 장군 연구가 있어도 방관해야 한다. 연구목적을 빙자한 공산당 모임이 생길 수도 있다. 동구권에선 붕괴된지가 옛날인 이데올로기 망령이 되살아나 한반도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게 된다. ‘남조선 인민들의 사회주의적 생존권 투쟁을 적극 지원하고 평화적 민족 자주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투쟁한다’는 조선로동당 규약과 일치한다. ‘남반부 해방의 결정적 성숙 시기로 보는 ‘남조선 혁명전략’이 먹혀 들어가게 된다. 평양 정권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일관되게 강요해온 배경이 이에 있다.
개혁입법이라고 한다. 북에 안보장치를 풀어주는 것이 개혁이라면 그 개혁의 궁극적 가치가 무엇인지 의아스럽다. 하긴 그랬다.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지난 2003년 6월9일 일본 방문 마지막 날 일본공산당 시이 가즈오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가 방한의사를 밝힌데 대해 이같이 밝혔다. 대통령의 ‘공산당 허용…’발언은 전후 사정이 어떻든 적절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말인즉슨 그렇다는 원론적 수준의 언급이라고 여겼다. 당장 허용하자는 것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 한반도 시대나 있을 법한 일 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기를 쓰고 덤비는 게 그러하다. 이 법을 없애면 적어도 자생적 공산주의 활동이 가능해진다. 비록 공산당 간판까지는 안 달아도 비폭력적 공산주의 활동엔 방어할 법률적 근거가 없다. 평양 정권이 이 틈새를 놓칠 리는 만무하다.
나라는 무한하고 정권은 유한하다. 노무현 정권이 국기를 바꿀 권리는 없다. 정권을 맡으면 개혁의 이름으로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생각은 독재다. 아니 쿠데타 일 수도 있다. 이 정권과 이 정권의 여당 사람들이 이렇게 비칠 수 있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무서운 사람들이다. 지켜볼 것이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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