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의 바다는 고해(苦海)다. 이 고해의 바다에 온 몸과 맘을 던졌다. 민초속에 묻혔다. 함께 땀으로 멱을 감는다. 때론 함께 울분을 터뜨린다. 그러나 좌절을 거부한다. 손을 맞잡고 희망을 다짐한다. 손학규는 이렇게 민심의 복판에서 일하고 먹고 잔다. 열락과 고뇌가 점철한다. 구국제민을 향한 구도(求道)의 길을 걷는다. 지난 6월30일 오전 경기도지사 이임식을 마친 당일 낮이다. 수원역에서 호남선 열차에 올라 승강대서 전송객들에게 미소로 손을 흔들어 보이며 떠났다. ‘100일민심대장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첫 기착지는 지난해 도청 직원들과 폭설 피해복구 봉사를 벌였던 전남 장성군 황룡면이다. 도착하자 마자 대파 다듬기로 첫 날을 보냈다. 대충 아는대로 꼽아본다. 해남·보성·광양·여수 등 전남지역에 이어 전북 김제·세만금간척지·고창, 그리고 충남 보령·홍성·당진, 경남 진주, 충북 단양·음성·충주, 강원 인제·강릉·삼척·속초, 제주도 등지를 들렀다. 이밖에 경북지역 등도 탐방한 것으로 아는데 어딘 진 잘 모르겠다. 그에게 올 여름은 유랑의 계절이다. 덥수룩한 수염, 점퍼 운동화 차림에다 배낭 하나만 덜렁 둘러맨 것이 전부다. 손이며 팔 다리는 온통 할퀴고 베이고 부딪쳐 상처투성이다. 두 차례에 겹친 수해는 시련을 더 했다. 7월13일 첫 수해 땐 충남 보령 방직공장에서 장갑 코팅작업 하다가 경남 진주로 달려가야 했다. 두번 째 수해 땐 충북 단양, 강원 인제서 복구작업을 벌였다. 어떤 사람들처럼 카메라에 찍히고 나면 삽을 놓는 시늉만 내는 작업이 아니다. 수재지역 세 군데서 꼬박 1주일을 수재민들과 같이 보냈다. 망가진 비닐하우스를 바로 세우기도 하고, 매몰된 흙더미를 삽으로 파내기도 하고, 제방을 응급복구하기도 했다. 진주에선 남강제방, 단양에서는 충주댐의 문제점이 뭔가도 파악했다. 수해복구에 열중한 구리빛 얼굴에 비지땀 범벅이 된 그를 보고 누가 (민선 경기)도지사를 지낸 이로 보겠는가, 삼척탄광 지하 170m 막장서 채탄 광원으로 진종일 일해 탄가루 범벅이 된 그를 보고 누가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낸 이로 보겠는가, 속초앞 동해의 고깃배 새벽 어부가 된 그를 보고 누가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고 보겠는가, 제주 감귤농장의 돼지치기 농부가 된 그를 보고 누가 (옥스포드대학)정치학박사의 전직(인하대·서강대)교수라고 보겠는가, 그러나 민초를 스승삼아 민초의 민생현장으로 다가가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손학규, 그는 세상이 다 아는 한나라당 차기 대권주자의 한 사람이다. 그래서 흔히 있는 쇼라고 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 이런 쇼는 없다. 쇼를 이토록 진솔하게 하는 정치인은 일찍이 못보았다. 그의 절반에 절반만큼도 할 엄두를 못낼 사람들 입노름은 입만 가지고 노는 정치인의 시새움이다. 경기도지사 재임 중 지구를 14바퀴 도는 해외 원정으로 100개 기업에서 138억달러의 외자를 유치, 약 5만명의 일자리를 직간접으로 만들어낸 민생도백(民生道伯)이다. 그리고 민생도백이 민생대통령으로 가는 민생수업이 바로 ‘100일민심대장정’이다. 구변정치가 아닌 실물정치를 추구하는 실사구시의 민생정치인 것이다. 조선조 후기 정조대왕은 실사구시의 실학사상을 꽃피워 르네상스시대를 이룩한 계몽군주다. 불행히도 의문의 병사(病死)를 하는 일 없이 더 재위했더라면 일본의 명치유신(明治維新)보다 100년 앞서 개화되어 역사가 달려졌을 것이다. 주관적 공리공론을 배제, 객관적 과학실체를 후생(민생)에 접목하는 것이 실사구시며, 형식화된 언어본위를 떠나 직관화된 경험본위를 추구하는 것이 실학사상이다. 손학규의 민생정치는 곧 정조대왕의 실학정치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민생의 고해에 몸과 맘을 던진 고행(苦行)은 또한 이 시대의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솔선수범의 실천능력이다. 보편가치에서 특수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조개가 거친 모래를 머금어 영롱한 진주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체험적 ‘100일민심대장정’이 내일이면 반환점인 50일 째가 된다. 농어촌 등 벽지 위주에서 대도시권의 민심탐방으로 가는 걸로 들린다. 그간의 민심탐방에서 그는 뭣을 얻었을까, 잘은 몰라도 평생의 긍지와 함께 거듭나는 정치인생을 실감할 것이다. 그렇지만 예정된 고행의 길은 아직도 험하고 멀다. 몸도 맘도 쇳덩어리란 생각을 갖는다. 구도의 남은 반환점도 건강한 몸과 맘으로 마쳐 민생의 고해를 해탈하는 득도(得道)가 있기를 바란다. 입 놀음 정치에 넌더리가 난 많은 국민들의 기대가 높다. /임양은 주필
오피니언
임양은 주필
2006-08-1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