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는 좋지만 출산은 싫다. 지난해 국내 출산율이 인구 감소세의 1.08명으로 떨어진 이유가 이런 성 풍속에 연유한다. 출산율이 계속 이렇게 떨어지면서 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면 약 25%의 교실이 비게 된다. 이런 현상은 국민생활 각 분야에 마이너스형 재편을 가져와 상상을 초월하는 일대 혼란을 유발한다.
세계 최저의 우리 출산율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한다. 대한민국의 ‘노인민국’화를 불과 십 수년 앞두고 있다. 생산은 낮아지면서 소비만 높아져 경쟁력 없는 이상한 나라가 된다.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는 자연의 섭리며 신의 축복이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가정엔 미래의 기약이 없다. 마찬가지로 아기의 울음소리가 귀한 나라엔 미래가 어둡다. 중국이나 일본은 출산 장려가 한창이다. 독신이 많기로 유명한 프랑스 사회는 독신남이든 독신녀든 혼외 아이를 얻는 게 새로운 유행이다.
모텔마다 불황을 모른다는 그 많은 손님이 객지잠을 자려고 투숙하는 건 아니다. 거의가 남녀의 잠자리 장소로 이용하는 손님들이며 부부가 굳이 모텔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부부 간에도 유산을 위한 수술실을 찾는 예가 신생아실을 찾는 수 보다 더한 부부가 많다.
섹스는 이토록 탐닉하면서 아이 낳길 거부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고유의 은총에 대한 배덕이다. 암컷이 발정하는 일정 시기에만 수컷의 교미가 딱 한 차례 가능한 동물과 달리, 인간은 언제나 섹스가 가능한 것은 신이 여성에게만 멘스를 선물하였기 때문인 것이다. 인류의 이런 특권을 종족 보존의 책임은 소홀히 하며 즐기는 데만 열중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대반역이다. 종국엔 재앙의 원인이 된다.
우린 참 뻔뻔스런 데가 있다. 한국전쟁부터 반세기 이상 국내에서 낳은 우리 아이를 피부 색깔이 다른 해외 양부모에게 입양시켜 키우면서 피부 색깔이 다른 우리의 혼혈아는 대체로 홀대해왔다.
섹스와 출산의 함수관계에서 부등식의 편차가 이렇게 심하게 된덴 이유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아이를 가지면 벌어먹기가 어렵고, 아이 하나 더 갖는데 드는 교육비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장가 시집 보내는 것도 큰 걱정이다. 이 험난한 세태에 무자식이 상팔자란 생각도 들만하다.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 산아제한의 영향도 아주 없진 않다. 가족계획이란 이름으로 ‘아들 딸 구별말고 둘 만 낳아 잘 기르자’고 했던 구호가 하나가 되고 이젠 하나도 안 낳는 세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앞으로 두고보면 알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자녀를 많이 둔 집, 형제자매가 많은 가정이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먹이고 키우고 가르칠 것을 미리 걱정하는 게 가장 현명한 것 같지만 가장 우매한 생각이다. ‘제 명과 먹을 건 타고 난다’는 옛말을 믿으란 것은 아니지만 지금보다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에도 생기는 아이마다 낳아 그런대로 다 잘 길렀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 문제를 두고 별의 별 유식한 말들을 많이 내놓는다. 맞는 말이다. 정부도 정신을 차리고 자치단체도 긴장해야 된다.
아일 낳도록 유도하는 인센티브도 좋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사회의 인식이다.
아이를 낳아야 할 부부들이 아이를 많이 낳고자하는 새로운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아이가 많으면 키울걸 너무 걱정하는 것은 게으른 생각이다. 한 명의 자녀보단 두 명, 두 명의 자녀보단 세 명, 세 명의 자녀보단 그 이상의 자녀를 두면 부모도 말년이 다복하지만, 무엇보다 많은 수의 자녀들 저희끼리 외롭지 않아 좋다.
출산율 저하는 ‘위기의 국난’이다. 국난의 타개책은 섹스와 출산의 비례가 근접하는데 있다. 임시방편이아닌 근본적 대책은 이 길 뿐이다. 길에서 가끔 보는 임신부가 존경스럽다. 만삭의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한다. 국난타개를 실천하는 국회의원보다 가치가 더한 애국자들이다. 가정의 행복 제조자이기도 하다. 아일 많이 낳는 다산은 더 큰 행복 예약이다.
신생아실마다 날이면 날마다 갓난 아기의 울음소리가 우렁찰 때, 가정이나 나라의 미래가 그만큼 밝고 더 건강하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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