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19일 아침 5시30분, 대한민국이 일시의 함성으로 폭발했다. 그건 환희의 탄성이다. 강호 프랑스 골문을 작렬한 박지성의 동점골은 한국의 축구를 수렁에서 구했다. 순간, 수원월드컵축구장에서 터진 함성이 동문 고개를 넘어 연무동까지 울려퍼졌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그들은 밤을 하얗게 샜다. 프랑스는 1998년 월드컵축구대회 우승국이다. 이들에게 후반전이 불과 10분도 안 남은 시각까지 한 골 차이로 리드 당하는 경기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여대생은 동점골이 터지자 불끈 일어나 두 팔을 번쩍 들어 보이며 사슴 눈을 닮은 눈망울에 이슬을 고였다. 그만이 아니다. 거리의 ‘붉은악마’들은 하나같이 용수철처럼 튀듯이 일어나 우레와 같은 함성을 쏟았다. “대~한민국”을 외쳤다.
월드컵축구대회는 우리를 이처럼 하나로 뭉치게 한다. 세대, 신분의 차이나 빈부의 차이를 초월한다. 영호남 등 지역의 구별도 없다. 6·25전쟁의 남침 방어, 그리고 빈곤 추방의 새마을운동 이후에 이토록 사회대통합을 이룬 적이 없다.
월드컵이 도대체 뭣이길래 그토록 환장하느냐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월드컵을 빼면 우릴 미치도록 감격시킬 일이 뭐가 있느냐는 반문이 성립된다.
월드컵 때문에 6·15 축전이나 평택 대추리 시위같은 뉴스가 제대로 빛을 못본다는 투덜거림을 본다. 하지만 그같은 이념꾼들의 생각은 민중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행사를 위해 가로변 전주에 꽂은 태극기가 무더기로 없어진다고 수원시는 걱정이지만 참 좋은 일이다. ‘붉은악마’들이 펄럭이며 응원 물결을 이루는 것은 태극기지 한반도기가 아니다.
한국 축구는 우리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2002년 대회에선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무너뜨렸고 이번 대회에서는 프랑스에게 일격을 가한 필적의 충격을 안겼다. 자신감속의 사회대통합이 이처럼 요원의 불길같은 응원 열기로 나타난 건,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애의 발현이며 새로운 희망의 염원이다.
6·25전쟁 휴전 이듬해인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축구 대회에 첫 출전, 헝가리에 0-9로 대패했을 당시엔 못살아도 참 지지리 못살았다. 출전 전날 밤 숙소에서 유니폼의 등 번호를 헝겊에 손으로 써 바늘로 꿰맬 지경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났다. 지난 대회에선 4강에 들면서 유럽축구에 대한 꿇림도 없어졌다. 월드컵 무대의 영화는 지난 반세기 동안 축적된 피땀 어린 노력의 결정체다. 그리고 더 도약된 새로운 희망을 우린 지금 월드컵을 통해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월드컵이 밥먹여주느냐는 소릴 더러 듣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본선 경기의 성적에 따라 FIFA가 지급하는 배당금도 배당금이지만 지구촌에 과시되는 국위선양은 가히 메가톤급이다. ‘한국 축구가 부럽고 질투난다’는 것은 일본 언론의 보도다. 중국 국영방송 CCTV는 ‘한국 축구는 아시아의 자랑’이라고 극찬했다. 축구 말고 다른 것으로 이처럼 국위를 빛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린 답답하다 못해 꽉 막힌 가슴을 월드컵 축구를 통해 뻥 뚫고 있는 것이다.
1970년대의 한국 축구 수준을 높인 것은 MBC-TV가 독점 방영한 서독축구경기였다. 근래엔 월드컵 경기를 자주 보게 되면서 웬만한 축구팬 치고 해설못하는 사람이 없다. 여기에 4강 맛 여운이 아직도 진하게 남았다.
오는 24일 새벽 4시다. 스위스와 16강 진출을 다투는 G조 마지막 건곤일척의 대결전이 벌어진다. 우리나 상대나 자력 진출을 위해서는 서로가 져선 안 되는 경기다.
수원이 낳은 세계적 축구 신예 스타 박지성은 FIFA 연구기술진이 선정한 연구대상의 선수다. 한국 축구의 압박 전술이 정평난 덴 이유가 있다. 그가 볼 길목과 상대 선수 움직임을 미리 알아 대비하는 폭넓은 안목의 부지런한 활약이 주효한 탓이다. 조선 중앙텔레비젼의 중계 방송에서 해설자는 박지성의 이런 활약을 ‘팔방돌이’라고 말했다. 우린 박지성과 함께하는 월드컵이 있어 이 6월이 행복하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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