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가지 끝에 철사를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 꽂은 잠자리채에 거미줄을 걷어 감는다. 동네 집집마다 다니며 초가 구석 구석에 거미가 쳐놓은 거미줄을 겹겹이 걷어 어지간히 감기면 개울로 달리는 발길이 쏜살같다. “휘이! 휘이!!” 신명이 난 소년의 흥얼거림이다.
개울가를 맴도는 고추잠자리를 향해 휘두르는 잠자리채 거미줄 바탕엔 영락없이 걸려 꼼짝달싹 못하는 고추잠자리가 다섯 마리고 여섯 마리고 이어진다. 손가락만한 왕잠자리가 걸려들면 꼬리를 실에 매달아 날리며 수컷을 유인하기도 한다. 걸친 것이라고는 하나뿐인 잠방이를 동댕이치듯이 벗어던지고 물에 첨벙 뛰어드는 것은 잠자리 잡기에 고만 싫증이 나고서다.
개헤엄을 치다가 발가락 새를 연방 파고드는 피라미 떼를 물이 옅은데로 몰아 돌맹이로 물살을 쳐 기절시키기도 하고 맨손으로 잡기도 한다. 한참 이러다 보면 사타귀고 어디고 여기 저기에 달라붙은 거머리를 보게된다. 모래를 한 옹큼 쥐어 “요놈의 새끼…”하며 싹싹 문질러 떼어내고는 피식 웃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해가 뉘엿뉘엿 져 어머니가 마을 어귀에서 들판에 대고 아무개야! 하고 대여섯 번 넘어 찾는 소릴 듣고 나서다.
꽁보리밥이다. 호박잎에 된장국으로 저녁밥을 먹고 나면 마당 대나무 평상이 식구들을 기다린다. 마른 풀섶 연기로 모기를 쫓아내는 모깃불, 갓 평상에선 그날 하루의 식구들 담소가 벌어진다. 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삶은 강냉이 고구마는 밤참이다. 수박이며 참외가 나오기도 한다. 샘에서 막 걷어올린 수박 참외는 냉기가 감돌만큼 시원하다. 뒤뜰 감나무가 보일 정도로 나무창살 통풍이 잘되는 광은 샘과 마찬가지인 또 하나의 냉장고다. 소년은 대청마루에서 감나무를 보며 늦가을 홍시를 생각하다가 잠들어 늘어지게 한잠 자고는 개울로 달렸던 것이다.
초저녁 평상 정담의 밤참 파티엔 더러 마실나온 이웃 남정네며 아낙네가 자릴 같이 하기도 한다. 모깃불 연기에도 날아든 억센 모기는 더위를 식히던 대나뭇살부채로 ‘탁’ 쳐내곤 한다. 알듯 모를듯한 어른들 얘기를 들으며 웬지 자꾸 시선이 쏠리는 측간쪽이 무서워 소년은 어른들 틈새를 비집고 평상 복판으로 파고 든다. 어느틈에 잠들어버린 이튿날 아침 깨어보면 평상이 아닌 방이다.
세상이 달라졌다. 거미줄도 보기 어렵고 거머리가 살 수 있는 개울도 없다. 삶은 강냉이나 고구마 보다는 피자에 더 맛들려 있다. 평상 정담은 자취를 감췄다. 텔레비전이 가족간의 대화를 빼앗았다. 이웃은 이방인이 됐다. 냉장고가 없어도 냉장할 줄 알았던 지혜는 간곳 없고, 그럴 수 있는 생활환경 또한 아니다. 농촌 도시 할 것 없이 다 마찬가지다.
선풍기를 호사롭게 알았던 시절에는 부채 하나로 여름철 더위를 이겨냈다. 부챈 이제 유물이다. 선풍기가 부채만큼 흔해지고 에어컨이 보편화되었다. 그래도 덥다고들 야단이다.
더운 건 맞다. 밤이나 낮이나 찜통 더위다. 더워야 한다. 장마가 길어져 올 더위는 짧다. 삼복엔 논 물이 쩔쩔 끓을만큼 더워야 오곡백과가 무럭 무럭 자란다. 올 여름은 중복을 지나고나서 비로소 찜통 더위가 시작됐다.
지구의 온난화 탓이라지만 현대 생활환경이 더위를 더 타게 돼 있다. 초가집이나 기와집이나 벽체는 황토벽이던 것이 시멘트벽 일색이다. 돈주고 황토찜질방에 가는 세태다. 이토록 아파트, 단독주택 할 것 없이 어딜 가도 콘크리트 더미에 묻혀 산다. 또 흙을 밟을 수 없다. 어딜가든 아스팔트 포장도로 뿐이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반사열기의 거대한 가마속에 더 찌드는 것이 현대인이다.
생존경쟁의 급진화는 심성의 상대적 피폐를 가져왔다. 생존경쟁이 지금보다 만성적이던 시절보다 마음의 여유가 그래서 좁아졌다. 뭣이든 빨리 시작하여 빨리 끝내려고만 하다보니 조급증이 심해졌다. 스트레스증후군에 시달리는 것이 현대인이다. 더위에 대한 내성이 약해져 찜통 더위는 곧 짜증인 것이다. 그러나 짜증을 낸다고 더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피서 가는 것도 좋지만 짜증을 스스로 달랠 줄 아는 생활의 지혜 역시 마음의 피서법이다.
산하가 오염된 진 오래됐다.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개울을 산업사회가 빼앗았다. 자연을 되찾아야 하는 것은 자연은 모든 생명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거머리가 사는 개울이 많으면 더 건강한 여름을 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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