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권의 출범 초기다. 당정 분리의 시도는 신선해 보였다. 집권당 대표를 겸직한 역대 대통령만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평당원대통령’은 분명히 이채로웠다.
3년 여가 지났다. 유감이다. 당정 분리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닌 역기능을 보았다. 무엇보다 신선해 보였던 기대가 무산됐다. ‘평당원 대통령’은 역시 평당원이 아니다. 막강한 당의 ‘상왕’이다. 리모컨(측근)으로 또는 교지(말씀 서신) 등으로 당을 통제했다. 좋은 시기, 나쁜 시기에 따라 당 간의 거리를 고무줄처럼 적당히 줄였다 늘렸다 하기도 했다. ‘평당원 대통령’은 당에 책임지지 않으면서 대통령의 영향력으로 당을 지배하는 청와대 편의장치로 전락했다.
당 지도부와 자릴 함께한 8·6 청와대 오찬회동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 모임은 5·31 지방선거, 7·26 재보선 완패에 이은 김병준 교육부총리 논문의혹, 법무부 장관 인선파동을 계기로 가졌다. 이에 앞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두 번이나 낸 대통령 면담 요청을 청와대는 묵묵부답으로 거부했다. 이래놓고 오찬회동 명목으로 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부른 것은 사실상 노무현 대통령의 소집이다. 좌중은 김 의장에 대한 대통령의 질책성 면박이 있었다고도 하고, 김 의장의 직언 개진이 있었다고도 전한다. 긴장된 분위기였던 건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이런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대통령의 선장(차기 대권후보) 외부영입론과 (임기후의) 백의종군설이다. 청와대는 외부영입론은 원칙을 말한 것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지만 단순히 개방형국민경선제(Open primay)를 말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선장을 외부에서 데려오면서 여당 중심의 정계개편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는 관측이 있다. 눈여겨 볼 대목은 정동영 전 당의장과 함께 당내 차기 후보군으로 분류되어온 김근태 당의장 면전서 외부영입론이 ‘평당원 대통령’ 입에서 나온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당내 후보군을 부인하는 의식적 발언으로 보아지는 것이다. 그럼, 의중의 외부 사람이 있느냐는 것과 있으면 누구냐는 것, 이도 아니면 영입론은 정동영·김근태 두 전·현 의장이 아닌 제3의 내부 사람을 우회적으로 꼽는 연막일 공산이 높다.
대통령 임기를 마쳐도 탈당치 않겠다는 백의종군설은 좀 황당하다.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퇴임하고나서 살 집을 짓기위해 땅을 물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첫 귀향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퇴임한 ‘평당원 전직대통령’으로도 당에 머물겠다면 서울에 눌러 앉는단 것인지, 귀향한단 것인지, 두 군데서 살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백의종군해서 더 할 것이 뭐냐는 것이다.
선장영입론, 백의종군설은 어떤 복선이 깔린 가운데 당을 확실히 장악할 의도인 경고성 메시지로 해석된다. 남은 재임기간 약 1년반에 레임덕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내가 싫어) 같이 당을 못하겠으면 못하겠단 사람이 당을 떠나야 한다는 것으로 전해진 게 그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정치는 생명체다. 의도대로 되는 것도 있지만 안되는 것도 있다. 대통령도 예외일 순 없다. 더욱이 임기 말로 들어선다. 아무리 레임덕을 허용치 않고자하는 의지를 가져도 정치적 자연현상을 극복하는 덴 한계가 불가피하다. 외부선장론과 백의종군설은 함수관계다. 전자가 없는 후자는 있을 것 같지 않다. 만약 의도대로 되지않는 불가피한 상황이 오면 대통령이 당을 떠날 것으로 보는 전망을 배제할 수 없다.
(지금은 비록 지지도가 20%지만) 언젠간 뜰날이 있을지 모른다는 대통령의 말은 흥미롭다. 가수 송대관씨가 생각난다. 노래 한 곡으로 ‘가수왕’까지 오른 게 ‘해뜰날’이다. (전략) ‘뛰고뛰고 뛰는 몸이라 괴로웁지만/힘겨운 나의 인생 구름 걷히고/산뜻하게 맑은날 돌아온단다/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후략) 이 노래가 선풍적 인기를 누렸던 것은 빈곤해방이 있었던 1970년대 경제성장의 민중 정서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뜰 때가 있을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선장영입론이나 백의종군설은 백 번을 강조해도 뜨지 않는단 사실이다. 민중은 그런 것엔 감동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떠서(레임덕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은) 정치술수에 있지 않다. 경제회생에 있다. 실패투성인 이념경제의 실험을 끝내야 한다. 전망이라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미래를 두고 혼자만 “멀리보자”는 것은 선무당의 주술이다. 조여서 어려워진 민생을 피게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한다. 길은 정치가 아닌 경제에 있다. 김 당의장이 회동에서 밝힌 규제 완화 요청은 근접한 처방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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