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배운 한 뒤늦게 풀었죠”

못 배운 것이 평생 한이 됐어요, 이 늙은이가 뭐 내세울 것이 있겠어요.광명지역의 80대 노인이 만학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유치원 교사로 활동해 화제다. 주인공은 광명1동에 거주하는 신평림 할머니. 그는 1931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해방을 맞이한 1945년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정규학력의 전부다. 슬하의 1남 6녀를 키우면서 평생 배우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아 있던 신 할머니는 72세의 나이에 서울 마포에 자리한 양원주부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대입입학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2005년, 75세의 나이에 대구에 있는 영남외국어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대학에서 보육교사와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당당히 졸업한 신 할머니는 평생 소망하고 그리워하던 학사모를 썼다. 신 할머니는 학사모를 쓰던 그날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신 할머니는 지역 주민센터와 복지관에서 실시하는 문화교실에도 빠지지 않고 수강, 서예와 한자공부를 병행했다. 그 결과 지난 2008년 제11회 대한서예대전과 2009년 소요산 전국서예대전에 작품을 출품해 입상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신 할머니는 지난해 11월 노동부의 디딤돌 일자리사업을 통해 서울 신당동에 자리한 한 유치원에서 유치원교사로 일하고 있다. 근무기간은 지난 4월말로 종료가 됐지만 유치원측의 배려로 지금까지 근무를 하고 있다. 신 할머니는 그곳에서 30여명의 종일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자와 서예를 지도하고 있으며 한글과 수학 보조교사로도 활동하고 있다.신 할머니가 디딤돌 일자리사업을 통해 6개월 동안 정부에서 받은 급여는 월 75만원. 매일 집에서 직장이 있는 서울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신 할머니의 걱정은 지적 1급장애를 안고 있는 막내 딸(38)이다. 40여㎡ 작은 빌라에서 단 둘이 살고 있는 신 할머니는 출근할 때면 항상 막내 딸이 눈에 밟혀 발 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신 할머니는 공부를 하다보니 인생의 참된 의미를 되찾고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지역에서 사회봉사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눈높이 낮추면 일자리 보여요”

눈높이를 조금만 낮춰 보세요. 그러면 괜찮은 일자리가 많이 있어요. 전국 지자체가 운영하는 첫 일자리센터인 시흥시종합일자리센터에서 근무하는 최미영씨(여34)가 취업난을 겪고 있는 구직자들에게 당부하는 말이다.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 해 직업상담사가 됐다는 그는 대학원 직업학과(석사)를 졸업한 뒤 민간취업 전문기관에서 일을 하다, 지난 2007년 11월 문을 연 시흥시종합일자리센터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고 있다.그는 지난 3월 청와대에서 장관과 전국 시도지사, 시장, 군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일자리센터 운영성과와 건의사항 등을 전달한 실력파 직업상담사이다.최씨는 일자리센터 오픈을 준비할 때 중앙부처에서 운영하고 있는 고용지원센터 등과 업무가 겹쳐 예산, 행정 낭비라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 보는 등의 우여곡절이 많았다며 하지만 시흥시 만의 특성을 살려 구인, 구직자의 미스매칭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시스템을 맞춤형으로 전환하면서 서서히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이어 기업체 측이 처음엔 관(官)에서 하는 일자리 알선이 형식적이지 않겠냐며 편견을 갖고 있어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라며 구인구직을 맞춤형으로 전환하니 기업체도 만족하고 그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다고 귀띔했다.2007년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4천241건을 상담해 2천814명에게 취업을 알선한 시흥시종합일자리센터는 전국 일자리센터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어 직원들의 자부심도 크다.최씨는 50대 이상의 시니어를 위한 일자리 창출도 청년실업 만큼이나 중요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장기적인 관점의 정책적 접근과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운영 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상담이 취업으로 이어질 때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이력서를 쓸 줄도, 면접보는 방법도 모르는 사람이 찾아와 상담과 교육을 통해 간절히 원하던 일자리를 얻어 아이처럼 즐거워 하면 절로 흥이 난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휴가중 의식 잃은 응급 노인 구조 “당연히 할 일”

입대 후 첫 휴가를 나가던 이등병이 버스 안에서 의식을 잃은 노인의 생명을 구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육군 맹호부대 윤혁민(21세) 이병. 윤 이병은 5월 16일 첫 휴가를 받아 서울집으로 가기 위해 포천에서 버스를 탔다. 버스 맨 뒷자석에 자리를 잡은 윤 이병은 버스가 출발하자 곧바로 단잠에 빠졌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윤 이병은 허윽 하는 신음소리에 잠을 깼다. 눈을 뜨니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난 것이 보였으며 왜 일어났는지 의문도 품을 겨를도 없이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할아버지는 쓰러질 때 충격으로 입에서 피가나고,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버스안에는 10여명의 승객들이 있었으나 누구하나도 나서서 응급처치를 하지 않고 처다만 보고 있었다.윤 이병은 할아버지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 버스를 세워 부축해 버스에서 내렸다.할아버지를 어떻게 처치해야 할 지 막막한 순간, 윤 이병의 뇌리에 신병구급대에서 배운 구급법이 떠올랐다.우선 숨을 쉬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윤 이병은 할아버지를 뉘어 놓고 벨트를 풀어 몸을 편하게 한 뒤 기도를 확보하기 위해 손목을 뒷목에 대고 턱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거품을 제거하니 할아버지의 호흡이 안정을 되찾았다.윤 이병이 응급처치를 하는 사이 버스기사가 부른 119 구조대가 도착했고 할아버지는 구조대에 인계돼 안정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버스기사 최형일씨(46)는 구조대가 오기까지 10분이 걸렸는데 그동안에 응급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수도 있었다며 남의 일에 선뜻 나서지 않는 요즘 세태 속에서 윤 이병과 같은 멋진 젊은이가 있어 참으로 든든하다고 말했다.

“IT강국 명성, 저희들이 이어갈게요

일선 고교생들이 창업에 대한 각종 정보가 담긴 프로그램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주인공들은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교장 한이헌) 비즈쿨 창업동아리 학생들로 구성된 드림팀. 남승완 지도교사와 팀장 박헌철 군을 중심으로 프로그래머 오영식임상진김현준최재림최건우 학생, 웹디자이너 역할을 분담한 지슬기유가람 학생 등 교사와 학생 8명이다.이들 드림팀은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보다 쉽고 빠르게 창업 관련 정보를 검색수집할 수 있는 이른바 기술창업 만물사전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이 프로그램은 예비창업자 및 창업 기업인이 스마트폰을 통해 신속하고 간편하게 창업뉴스를 비롯한 창업 단계별 필수 정보, 지원시책 및 제도 등을 접할 수 있도록 한 웹상 보물창고다.기술창업 만물사전 제작은 중소기업청이 미디어고 창업동아리 학생들의 명성을 전해 듣고 직접 앱 제작을 의뢰하면서 이뤄졌다. 일반에 선보인지 불과 10여일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상당수 유저들로부터 내용이나 기술면에서도 잘 만들어졌다는 호평까지 받고 있는 상태다.특히 이번 앱 개발에 있어 주역을 담당한 창업동아리 Ok-Lab 박헌철 군의 경우, 지난해 무료 문자메시지 서비스 프로그램(SMS)을 개발해 앱 스토어에서 세계적으로 총 6만5천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이는 곧바로 국내 앱 순위 1위까지 오르면서 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남승완 지도교사는 이번의 성과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개발의 중심에 창의력이 가장 왕성한 고교생들이 창의성과 열정으로 변화를 주도했다는 점이라며 그 속에는 디지털미디어고가 추구해 온 IT특성화 교육 및 동일계열 대학진학이란 학교운영 때문으로 자평하고 있다고 말했다.

70평생 헌신 ‘장애아 교육의 대부’

사재를 털어 특수학교를 설립한 뒤 칠십 평생을 장애아 교육에 매진해 온 교육자가 있어 주위에 귀감이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성광학교 양인석 이사장(76). 양 이사장은 하남성남구리남양주시 등 경기도 동부권에서 특수교육(정신지체)의 대부(代父)로 통한다. 지난 1958년 양평군 양동초교를 시작으로 50여년 넘는 교직생활의 절반 이상을 장애아 교육에 헌신하면서 얻은 별칭이다.양 이사장은 지난 1960년대 고향인 광주군 동부면(지금의 하남시)에서 교직생활을 돌연 접고 1970년 하남시 천현동 390 일대 7천300여㎡를 일궈 성광학교의 전신인 동부실업학교를 설립했다. 양 이사장은 장애인 교육 시설이 전무하던 1984년 동부권 지역에서 최초로 청소년 장애자 전문교육기관인 성광학교 설립인가를 받고 이듬해 3월 2일 개교의 꿈을 이뤘다. 1989년에는 사재를 모두 출연해 성광학교 부지에 학교법인 교산학원을 설립한 뒤 고등부 과정을 증설하면서 명실공히 동부권 최고의 특수학교로 자리매김 한다.20여년 동안 이 학교를 졸업한 장애 학생만 1천100여명에 이르며 현재 초중고교 학생(총 26학급) 177명, 교직원은 학생수의 절반이 넘는 95명에 달한다. 성광학교는 장애학생의 개인카드를 만들어 학습 태도와 버릇을 꼼꼼히 기록하고 적성검사를 통해 성격과 흥미에 맞는 교재와 놀이기구를 직접 제작해 가르치는가 하면 졸업 후 독립적 생활을 위한 현장 중심의 직업교육을 강화하고 있다.특히, 변해가는 시대패턴에 맞는 적절한 과학 프로그램을 개발적용해 과학적인 사고를 길러 학생들의 창의성과 잠재능력을 신장시키고 생활 속의 당면과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데 주력하고 있다.앞으로 중증장애로 인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동의 가정을 직접 방문해 가르치는 순회교육도 실시할 예정이다.양 이사장은 서울대 사범대학 졸업 논문을 작성하면서 장애인의 삶에 눈을 떠 순탄치 않는 이 길을 선택하게 됐다며 처음에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이들과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고 이론과 너무 다른 현실에 큰 낭패감도 느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특수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장애아들의 사회생활 적응이라며 앞으로 남은 여생은 초급대학 전공부(2년제)를 설립해 장애인들의 자활 육성을 돕는 것이 소망이라고 밝혔다.

“물 관리는 생명을 지키는 일

제가 개발한 설비로 돈을 벌자며 몇몇 업체들이 접근했지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상수도인으로서의 자부심이었습니다. 상수도사업본부 부평정수사업소에서 근무하는 김재천씨(49기술 7급). 그를 두고 주변 지인과 직원들은 상수도에 목숨을 건 사람이라고 할만큼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혀를 내두른다.김씨는 주로 여름철 수돗물 냄새나 산성도를 조절하기 위해 사용되는 분체약품투입설비를 기존 건식형을 대체한 습식형으로 개발해 냈다.그동안 30년 넘게 쓰여온 건식 설비는 투입과정에서 근무자에게 목이나 피부에 화상과 진폐증 위험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투입량 조절이 힘들고 효율이 낮아 때때로 수질사고에 대한 우려거 컸다.그러나 김씨가 개발한 습식 분체약품투입설비는 건식 설비에서 사용되던 분말을 용액으로 바꿔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를 해소했다.또 투입량 조절과 수질사고 예방효과는 물론이고 원격 감시제어 및 자동운전으로 근무환경도 개선시켜 주위를 놀라게 했다.새로 개발한 이같은 설비로 4억7천여만원의 예산절감을 거두면서 최근 인천시로부터 성과금을 받기도 했다.달나라도 갔다오는 시대에 이건 아니다 싶더라구요. 주말만 되면 전국 정수장을 돌아다니고 이웃나라 일본까지 다니면서 분체약품투입설비를 조사했어요.기존 건식 설비 6억4천만원에 비해 1억6천만원으로 설치비용까지 획기적으로 낮춘 김씨의 습식 분체약품투입설비는 지난 2005년 노온정수사업소에 최초 선보인 이후 남동정수사업소와 부평정수사업소에도 설치, 지난해 12월 특허출원까지 마쳤다.김씨는 집에도 석달 이상 안 들어가면서 실험실에서 사니까 동료들도 이상하게 쳐다보더라며 지금도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만큼 상수도의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상수도 분야에서 만큼은 이름 석자를 남기고 싶다는 그는 최근 전국 정수장으로 설비 확산을 결정할 공무원 제안제도에 습식 설비를 제출해 놓은 상태다.

“스승이자 친구로서 ‘평화의 사도’ 양성”

제 임기 내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교직원학생들과의 소통 그리고 학교만의 전통을 수호하는 것입니다.17일 오전10시 천주교 수원교구청 5층 성당에서는 이용화(48프란치스코) 신임 수원가톨릭대학교 총장의 임명식을 겸한 파견예식이 열렸다.방상만 신부에 이어 제9대 총장직에 임명된 이 신부는 지난 2008년부터 2년여간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장 및 교무처장을 지낸 이력을 갖고 있다. 학자이자 교직원으로서 누구보다 대학업무와 학생들을 잘 관리할 수 있는 베테랑 성직자로 정평이 나 있다. 우리 학교는 일반 학교와 다릅니다. 학교 건립의 제일 목적이 바로 사제(司祭)양성이지요.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인천 등지에 가톨릭대학교가 있는데 개교이래 400여명의 사제를 배출했으니, 사제교육의 메카라 불릴만 하죠.올해로 26주년을 맞이하는 학교의 수장을 맡게 된 이 신부는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대학교가 아닌, 성직자를 길러내는 특성화 대학의 장점을 잘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총장으로서 제가 고심해야 할 부분은 외면적인 모습이 아닌, 학교 내 구성원들과의 조화예요. 이를 위해 교수회와의 화합 그리고 제일 중요한 미래의 사역자들인 학생들과의 소통을 제일선에 두고 총장직을 수행해 나갈 예정입니다.인간이라면 누구나 갖춰야 할 바른 인성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신앙인의 영성 그리고 사회의 인재로서 쌓야할 할 지성을 고루 갖춘 진정한 성직자를 길러내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는 이 신부.우리 학생들은 마음대로 외출도 하지 못해요. 월드컵 응원의 물결에도 함께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영적으로 소통하고 고민을 나누며 지식을 전수하는 스승이자 친구인 멘토 같은 존재로서의 공동체,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함께 하기에 성직자의 멀고도 험하지만 가치가 있는 길이 됩니다. 저는 그 길을 잘 가도록 비추는 등대로서 전통과 사랑을 실천하는 자리를 맡게 된 셈이죠.1989년 사제로 서품된 이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와 로마 성서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한편 이날 파견예식은 이용훈(마티아) 천주교 수원교구청 교구장이 직접 예식을 진행했으며 훈화를 통해 신앙과 철학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서의 대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리모델링 통해 새롭게 변신

미술관의 얼굴은 단연 전시관. 바로 이 전시 공간을 새롭게 변신시켜 미술계 마니아들로부터 사랑받는 곳이 바로 수원시미술전시관(관장 박용국)이다.수원 지역 유일 공립미술전시공간으로써 문화예술진흥을 도모하며 지역미술문화의 가치창출을 위해 세워진 미술관은 올해 개관 11주년을 맞아 지난 5월4일부터 31일까지 약 한 달간 미술관 개보수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전통미와 현대적 디자인이 어우러진 미술관을 콘셉트로 작품의 집중도를 높이고 관람객의 편의를 증진시킨 공간으로 6월1일 재오픈했다.로비에 들어서면 전시일정을 보여주는 PDP가 설치돼 전시정보를 한눈에 알 수 있고, 제1전시실 안쪽에 있던 안내데스크도 전시장 밖으로 배치했다. 전통성과 현대성을 접목하기 위한 노력은 석가래를 모티브로 고안된 로비의 천장과 목재 손스침 등에서 엿 볼 수 있으며 화이트 톤과 블랙톤의 조화를 통해 세련미를 더하는 등 미술관의 품격을 높였다는 평.박용국 관장은 이번 시설보수는 관람자와 작품이 최적의 교감을 이루는 것에 중점을 두고 1층을 위주로 실시했다며 내년 중 추진할 2차 리노베이션에서는 온습도 제어기를 설치해 작품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23 전시실에 설치 및 입체공예 작품 등의 설치가 용이하도록 천장을 개방하는 등 작품의 특성에 맞는 전시공간 확보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미술관에선 7월6일부터 12일까지 수채화의 물성을 특징으로 작품활동을 펴는 서호수채화회의 단체전(1전시실)과 서정적인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서양화가 이옥경 개인전(2전시실), 음악적 오브제로 리듬감과 필체의 특징을 잘 살린 이수현 개인전(3전시실) 등이 열릴 예정이다.

옛날 먹을거리 여기 다 있네

세 살 입맛 여든 간다. 우리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포천의 한과문화박물관(한가원) 김규흔 관장(54)이 흔히 하는 말이다. 지난 2008년 개관해 인스턴트 식품에 위협당하고 있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우수한 전통식품으로 보호하고 전통음식문화를 바르게 알릴 것을 주제로 문을 연 박물관은 국내에선 최초로 한과를 테마로 지어진 곳이다.국가지정 한과 명인인 김 관장이 30여억원의 사재를 털어 지은 박물관은 우리의 맛과 멋, 그리고 예절을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후학양성의 공간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 관장이 옛 것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만든 이 박물관은 크게 전시실과 체험실(다도실, 공예실, 예절실) 및 교육관, 행사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1층의 한과 역사관에는 한과의 역사, 종류, 제작과정, 제작도구 등을 전시해 놨으며, 한과 홍보관에는 명절과 일상 등 세시풍속에 따른 한과, 한과의 명인(名人), 한과와 세계과자, 전통차와 한과를 비교분석해 한 눈에 한과에 대한 모든 것을 보고 알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또한 1천200㎡에 이르는 부대시설엔 아이와 부모가 함께 한과를 만들고 각종 전통공예 및 예절을 배울 수 있는 체험관과 2천여㎡에 이르는 식물원, 행사장, 휴식공간에서 자연의 정취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김 관장이 일생동안 모아온 목재, 금속, 도자기, 돌, 유리 등 한과 관련 도구 500여점은 공립민속박물관 등에서도 보기 힘든 희귀소장품이다. 박물관 주변엔 산정호수 등 관광명소가 많아 가족 나들이에도 제격이다. 관람료 성인 2천원, 학생 1천500원(체험료 별도) (031)533-8121(http://www.hangaone.com)

“코리아 자유수호”···21개국 참전용사 빛나는 희생정신

유엔 안보이사회는 북한군대의 대한민국에 대한 무력공격을 평화의 파괴행위로 규정하였으며, 북한당국에게 전투를 즉각 중지하고 그들의 군대를 즉시 38도선으로 철수시킬 것을 촉구하였으며, 유엔한국위원단으로부터 북한당국이 전투를 중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군사적 조처가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고, 대한민국이 평화와 안전을 보장할 효과적인 조처를 즉각 취하여 줄 것을 유엔에 호소하였음을 감안하여, 대한민국이 무력침략을 격퇴하고, 그 지역에서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원조를 제공하여 줄 것을 유엔회원국에게 권고하는 바이다. -유엔군 즉각 참전 결의문 (1950.6.28) 중에서자유수호의 성지, 죽미령 6월 3일 유엔군 최초의 전투인 오산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유엔군 초전비를 찾아가기 위해 10여 년째 관리를 맡아오고 있다는 대한민국무공수훈회 오산시지회를 방문했다. 전쟁 관련 흔적들을 유심히 바라보는 기자를 보며 참전장교 출신인 황용석 지회 사무국장(83)이 안내를 자청했다.국도 1호선을 따라 오산에서 병점 쪽으로 가다보면 옛 죽미령 고개에 이르러 왕복 4차로 옆 좌측 소나무 숲속에 돌로 쌓아 놓은 듯한 높이 4m 정도의 조그마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 시멘트 좌대에 돌을 쌓아 올려 만든 이 비석에는 유엔군 초전 기념비라는 영문과 한글 문구가 세겨져 있다. 비석의 주인공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참전 승인을 받은 미국이 전쟁 발발 뒤 처음으로 한반도에 파견한 미 제24사단 21연대 1대대(스미스 특수부대)였다. 미 제24사단이 1955년 7월 5일 건립한 것으로 이듬해인 1956년 미 제24사단이 유럽으로 옮겨감에 따라 오산시가 관리를 맡아 오고 있다.유엔군은 1950년 6월 27일 미국을 시작으로 그리스, 남아공, 네덜란드, 뉴질랜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영국, 이디오피아, 캐나다 콜롬비아, 태국, 터키, 프랑스, 필리핀, 호주 등 16개국에서 연인원 200여만명이 참전해 4만여명 전사하고, 10만여명이 부상했다. 또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 인도 등 5개국은 3천100여명의 의료진을 보내왔으며, 브라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쿠바 등 20개국은 물자를 지원해왔다. 이들은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던 코리아라는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주기 위해 희생했다.초전비를 마주하고 도로 건너편에는 미국을 비롯해 전투병력을 파견했던 16개국의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경기도는 1982년 4월 6일 1만6천여㎡의 부지에 다소 왜소한 구초전비를 대신해 새롭게 초전비를 세웠다. 전투 당시 3개의 진지를 구축했던 상황을 상징하기 위한 19.5m 높이의 3개의 비신(碑身)과 치열한 격전상황을 표현한 동상이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황 사무국장은 한국전쟁이 시작되면서 자유수호를 위해 고국을 떠난 스미스 특수부대 장병 가운데 181명이 산화한 곳이 죽미령이라며 자유와 민주를 위해 그들이 생명을 바친 죽미령은 세계평화를 위한 성지임에 틀림없다라고 강조했다.오산시와 주한미군도 미 재향군인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매년 7월 5일 기념비 일대에서 유엔군 초전 및 스미스 특수부대 전몰장병 추도식을 갖는다.고지 전방으로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고 있어 전투지역 일부가 훼손된 것이 한 가지 아쉬운 점으로 남았으나, 오산시가 이 일대에 전쟁기념관과 유엔참전 조형물을 갖춘 역사공원을 조성하고 있어 60년전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린 유엔군의 희생을 기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오산전투는 오산전투는 유엔군이 북한군과 벌인 첫 전투. 1950년 7월 5일 새벽 3시. 한국전쟁에 최초 파병된 미 제24사단 21연대 1대대장 찰스 B. 스미스 중령은 BC중대와 사단 52포병대대 AVH대의 장병 540명과 함께 죽미령 고개에 포진했다. 이날 오전 7시. 북한군 전차의 남진을 목격한 스미스 중령은 8시 15분경부터 포병사격 실시를 명령했다. 그러나 방어 태세가 완벽히 이뤄지지 않은데다 북한군 전차대가 방어선을 돌파하면서 전세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후방이 차단되고, 북한군 병력이 지속적으로 내려오자 결국 안성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이 전투에서 미군은 150여명의 전사실종부상자가 발생했지만, 초탄 발사시부터 철수시까지 6시간 15분을 지연시키며 미 제24사단 주력이 전투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성과를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