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의 재주꾼' 박기형 감독은 청춘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익숙하다. 지난 98년 '여고괴담'을 통해 여고생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냈던 그가 이번에 또 다시 학원을 배경으로 한 청춘 액션물 '폭력써클'(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다다픽쳐스)을 통해 남자들의 세계에 잠입한다. 여고와 남고,공포와 폭력이라는 외피는 다르지만 두 작품은 '청춘'이란 공통점을 지닌다. '여고괴담'때 그랬듯이 이번에도 박 감독은 안방극장과 스크린의 촉망받는 신예 스타들을 대거 '폭력써클'에 가입(?)시켜 눈길을 끈다. 주연의 낙점을 받은 행운아는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과 '광식이 동생 광태'와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신인답지 않게 좋은 연기를 펼쳤던 정경호. 부드러우면서 남성적인 면을 모두 갖고 있어 극중에서 육사를 지망하는 평범한 고교 1학년생으로 나와 힘든 사춘기를 헤쳐가는 상호역을 맡았다. 첫 주연에 대한 부담이 없느냐고 묻자 그는 "부담은 되지만 작품할 때마다 내가 주연이란 생각을 해왔고 이번 작품은 그다지 이미지 변신이 많지 않아 다행"이라고 가볍게 받아 넘긴다. 상호의 절친한 친구인 재구 역의 이태성은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로 지난해 연말 각종 영화 시상식에 신인배우 후보로 올라 주목을 받은 신예이고,TV 오락 프로그램에서 행성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던 이행석도 가세,거칠고 강한 남성미를 선보일 예정이다. CF와 드라마 '토지'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장희진은 당차고 매력적인 수희역으로 이 작품의 홍일점. 극중 잦은 흡연과 정사신까지 해내야하는 그는 "이미지 변신하기로 한 이상,청춘영화의 새로운 여주인공 상을 빚어내겠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경남 김해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촬영중인 박 감독은 지난 2일 연이어 현장공개와 기자간담회를 갖고 "미완인 신예들과 영화를 찍으면서 그들의 재능을 발견해 나가는 것은 행운"이라며 "완성된 배우보다 젊고 신선한 쾌감이 매력"이라고 이들과의 작업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깡패가 주인공인 영화가 몇 년째 히트를 치고 있어서인지 국내 연기자 가운데는 '조폭 연기의 달인'이 꽤 많다. '넘버3'의 송강호나 '친구'의 유오성 등 주연급 뿐 아니라 '잠복근무'의 오광록이나 '마파도'의 유해진 등 조연들도 인상적인 깡패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은 살벌한 눈빛과 욕설이 난무하는 대사를 던지는데 왠만해선 웃지도 않는다. 정말로 '조폭'들은 하루종일 그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 탤런트 이재룡은 "아마도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이재룡은 지난 1일 방송을 시작한 KBS 드라마 '굿바이 솔로'에서 '깡'으로 뒷골목을 평정한 건달 호철 역을 맡았다. '종합병원','상도','불멸의 이순신'에 출연하며 정직하고 착한 모습만 보여왔던 그로서는 의외의 변신.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깡패 연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깡패라고 하루 24시간 인상만 쓰고 있지는 않겠죠. 예쁜 여자친구를 만나면 마냥 즐겁게 웃을테고… 살아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요. 조금은 밋밋할 수도 있지만 정형화되지 않은 모습을 그릴 겁니다." 깡패 연기가 처음이라는 그. 이번 캐릭터를 위해 8㎏을 감량하고 하루 4시간씩 걸려 온몸에 문신을 그려넣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지만 그래도 화면에는 착한 이미지가 남아 있다. 그가 맡은 호철은 겁이 많은 깡패.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겁이 많았지만 깡패가 아니면 살아갈 길이 없었다는 설정이다. "남들이 자신을 무서워하도록 만들려고 문신을 새긴 인물입니다. 아직도 내면에는 두려움이 있죠." 그의 캐릭터 분석은 왜 자신이 캐스팅 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는 말처럼 들렸다. 이재룡은 "이제 삼촌이나 아버지 역할이 어울리는 나이가 됐다"고 인정한다. "배우로 남아야 할 때"라고 강조하는 그는 시청률에 대해서도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MBC에서 '허준'이 한창 인기가 있을 때 KBS '바보같은 사랑'에 출연했는데 시청률 1.7%까지 기록한 적이 있었다"면서 "방송이 끝날 때 나오는 애국가보다 시청률이 낮다는 말까지 들었지만 좋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보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 작품으로 인기를 올려서 다음 작품을 어떻게 해 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다음에 뭘 할지 정해 놓지도 않죠. 좋은 드라마에 좋은 역할이면 만족합니다." 영화계 진출에 대한 질문에 "제가 나와서 흥행이 되겠습니까"하고 되묻는 그는 자신의 영역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연기자가 돼 있었다.
오는 6일부터 MBC ‘뉴스데스크’의 여성 앵커가 새로 바뀐다. 주말 ‘뉴스데스크’를 진행해온 박혜진(28) 아나운서가 출산을 위해 물러난 김주하 아나운서의 뒤를 이어 평일 뉴스 진행을 맡고,지난 2004년 입사한 신참 서현진(26) 아나운서가 주말 앵커로 발탁됐다. 2001년 입사 이후 뉴스와 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안정적인 목소리와 마스크를 가졌다는 평을 받아온 박혜진 아나운서는 “설렘과 책임감을 절반씩 느끼고 있다”면서 “시청자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뉴스를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들어 MBC ‘뉴스데스크’의 시청률 부진이 메인 앵커로서 부담으로 작용하는 게 사실. 또 강한 색깔의 뉴스를 진행해온 김주하 아나운서의 뒤를 그가 어떤 색깔로 이어갈 지도 관심이다. 그는 “요즘 시청자들은 톡 쏘고 달콤한 음료수같은 뉴스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무색무취의 물같은 진행을 하고 싶다”면서 “결국 (정보의) 갈증을 풀어주는 것도 후자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김주하 선배만의 색깔이 있듯이 편안함과 친근함 등의 장점을 살려 뉴스를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입사 2년 만에 주말 앵커를 맡게된 서현진 아나운서는 “기회가 빨리 찾아와 부담스럽긴 하지만 무엇보다 원하는 일을 시작하게 돼 기쁨이 앞선다”면서 “쟁쟁한 선배 아나운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01년 미스코리아 선 출신이기도 한 서 아나운서의 주말 앵커 결정에 MBC 아나운서국도 놀란 분위기였다고. MBC 성경환 아나운서 국장은 “처음 봤을 때 예능 프로그램에 적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뉴스 진행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 주말 앵커석을 맡겼다”고 말했다.
영화 ‘왕의 남자’가 이르면 4일 역대 한국영화 관객 동원 1위라는 왕좌에 등극한다. 이 영화의 홍보·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영화인’측은 “지난 1일까지 1159만6632명의 관객이 들었다”며 “이 추세를 감안하면 4일쯤에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기록을 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3일 밝혔다. 현재 ‘왕의 남자’는 전국 217개(서울 51개) 스크린에서 상영중이며 하루 5만여명의 관객이 관람하고 있다. 예상대로 될 경우 65일만에 ‘태극기 휘날리며’의 1174만6135명이라는 기록을 갈아치워 한국 영화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되는 셈이다. 한국 영화 역대 최다 관객동원 순위를 살펴보면‘태극기∼’에 이어 ‘실미도’(1108만1000명),‘친구’(818만명),‘웰컴투동막골’(800만명) 순이다. 이중 ‘태극기∼’는 100일, 실미도는 140일만에 각각 기록을 돌파했다. 영화계에서는 개봉 초기부터 무섭게 관객을 동원,1000만명을 돌파한 뒤 급격히 힘이 빠졌던 두 영화와 달리 꾸준히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왕의 남자’의 흥행 추이로 볼 때 ‘왕의 남자’가 관객 1200만명 돌파라는 또 다른 신기원을 무난히 이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영화 제작사측은 3일 서울극장,대한극장 등에서 이준익 감독을 포함해 감우성·정진영·이준기·강성연 등 주연배우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특별 무대인사를 가질 예정이다. 또 해외 영화제 출품 및 해외 시장을 겨냥,영어 번역 작업에 본격적으로 돌입했으며 특히 순천대 도올 김용옥 석좌교수가 번역을 자청해 눈길을 끌고 있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을 번역하기도 했던 김 교수는 영문 제목으로 ‘The Royal Jester’를 선택,현재 초고 작업까지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영화 '왕의 남자'에 출연해 인기를 얻고 있는 이준기와 1년간 애니콜 광고모델 계약을 맺었다. 2006년 최고의 희트작으로 손꼽히는 '왕의 남자'에서 '공길' 역을 맡아 스타가 된 그는 애니콜과의 계약으로 기존모델인 이효리, 문근영, 에릭, 권상우에 이어 슈퍼스타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그는 "무명 배우시절부터 최고의 스타들이 거쳐간 애니콜 광고 모델을 동경해 왔다"고 밝혔으나 모델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MBC 수목드라마 ‘궁’(극본 인은아·연출 황인뢰)의 시즌2 제작이 결정됐다. 내년 겨울 방송을 목표로 다음 시즌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연결시키기 위해 처음 기획된 20회에서 최근 4회를 연장했다. 그동안 ‘파리의 연인’과 ‘프라하의 연인’,‘천국의 계단’과 ‘천국의 나무’ 등 전편의 컨셉트를 차용한 후속 드라마 제작은 종종 있어왔지만 이번처럼 연출진과 주요 연기자 모두 후속편에 그대로 투입되는 경우는 처음이다. 첫 시도되는 시즌 제작인 만큼 미국의 ‘CSI 과학수사대’ ‘로스트’ ‘위기의 주부들’처럼 앞으로 드라마 시즌제가 활성화될지도 관심을 모은다. MBC는 ‘궁’ 이외에 시골의사의 진솔한 경험담이 담긴 베스트셀러 에세이를 골간으로 한 시즌제 드라마 ‘시골의사’(가제)를 준비하고 있으며,외주제작사 에이스토리도 ‘종합병원2’ 제작을 검토 중이다. 속편 제작이 관행화된 영화에 이어 TV 드라마도 시즌제 형식을 본격화함에 따라 이같은 제작 형태가 하나의 추세로 자리잡은 형국이다. 영화 ‘가문의 위기’와 ‘투사부일체’ 등이 전편을 뛰어넘는 흥행 기록을 세워 ‘형만한 아우없다’는 속설이 옛말이 된 지 오래. 드라마 속편 역시 전편의 후광을 통해 시청자들을 환기시키며 안정적인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한 발 더 나아가 폭발력을 가지려면 전편에 또 다른 알파가 보태져야 한다. 전편의 흥행에 기댄 나머지 속편만의 차별성을 갖지 못한다면 오히려 전편에 흠집만 내고 끝날 공산이 크기 때문. MBC 김사현 드라마 국장은 “‘궁’의 시즌2 제작을 안일한 제작 형태로 여기는 측면도 일부 있겠지만 좋은 컨셉트와 소재를 발굴했을 때 이를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안”이라며 “속편 제작을 반기는 많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볼 때 드라마 시즌제 제작이 적절한 때가 됐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내년쯤 선보일 ‘궁’의 내용에 대해서는 “주인공들이 대학생이 된 이후의 이야기 등 입헌군주제라는 가상현실 아래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웃다 지쳐 울어본 적이 있는가’ 2일 서울극장에서 첫 선을 보인 ‘방과 후 옥상’의 시사회에서 벌어진 현상이다. 보통 기자 시사회장에서는 웬만하게 웃긴 영화 아니고서는 웃음이 터져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날 시사회장에는 웃음 소리가 시종 끊이지 않았으며 때때로 곳곳에서 박장대소가 터졌다. 주인공 남궁달 역을 맡은 봉태규도 시사 후 이어진 간담회에서 “기자시사회는 보통 분위기가 냉소적이기 때문에 배우들이 많이 긴장한다. 그런데 오늘 정말 많이 웃어 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숙여 인사했다. 사실 ‘웃다 지쳐 울어본 적 있는가’는 한국 코미디 영화의 역사를 다시 쓰며 흥행가두를 달리고 있는 영화 ‘투사부일체’의 홍보 문구. ‘방과 후 옥상’이 ‘투사부일체’를 능가하며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일 지는 미지수지만, 시사회장에서 터진 웃음의 횟수와 흥행이 비례한다면 ‘투사부일체’를 누르고도 남을 정도로 영화는 재미있다. 이석훈 감독은 어떤 코미디 영화를 추구했는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재미있으면서도 색다른 부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환상신도 넣었고 컴퓨터 그래픽도 재미있게 사용하려 했다. 깔끔하고 단정한 영화보다는 거칠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관객을 상대로 다양한 장난을 치고 싶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에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현실과 상상이 교차하며, 주인공들의 마음을 코믹하게 대변하는 장치로 컴퓨터 그래픽이 적절히 쓰이고 있다. 코디미 연기로 유명한 스타가 별로 출연하지 않는 ‘방과 후 옥상’이 관객을 포복절도하게 만든 핵심은 주·조연 가릴 것 없이 각자의 캐릭터를 십분 소화해 표정,말투,의상,소품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웃기는 것. 주연급 몇 명의 캐릭터도,명확하지 않은 코미디 영화도 많은 것과 비교할 때 커다란 장점이다. 주인공 혼자 동분서주하며 웃길 필요 없이 작은 역할을 맡은 배우까지도 자신만의 억양과 표정,스타일을 가지고 웃겨주는데다 그들 모두가 뜨거운 열정을 지닌 신인이어서 자신이 카메라에 잡히든 잡히지 않든 온몸을 던지니 감독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상황이다. 이 감독은 “나름대로 코믹적 요소를 심어 놓은 ‘지점’이 스크린에 등장하기 20초 전부터 관객들이 과연 웃을까 조마조마했다. 웃으면 감사했고 웃지 않으면 절망했다”며 한 장면 한 장면 공들여 만든 웃음임을 내비쳤다. ‘방과 후 옥상’은 우연히 학교 ‘짱’을 건드린 ‘왕따 출신’ 남궁달이 방과 후 옥상에 끌려갔으나 맞지 않기 위해 도망다니는 하루 동안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영화다. ‘왕따’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코미디 영화의 본분을 잊지 않으면서도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1999년 ‘for the peace of all mankind’, 2001년 ‘순간접착제’로 국내는 물론 전세계 단편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은 이석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 ‘방과 후 옥상’. 실험 정신과 신인들의 열정 바탕으로 한 신선함을 무기로 오는 16일 관객들을 찾아간다.
“한국 가수요? … 계은숙!” 보아를 제외하고 일본 젊은이들이 아는 한국 가수는 얼마나 될까. 지난달 26일 도쿄에서 만난 일본 뮤지션 고키 오노(32)씨는 일본 젊은층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가수가 보아 외에도 있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내저었다. 이날 도쿄 요미우리홀에서 열린 가수 장은숙(일본에서 10년이상 활동중인 한국출신 성인가수)의 콘서트에 세션으로 참여한 그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후 K(본명 강윤성)를 기억해냈다. K는 ‘H2’ ‘1리터의 눈물’ 등 일본의 인기 드라마 주제곡을 불러 지난 1년 사이 오리콘 차트에 종종 이름을 올렸던 신인가수. 고키씨와 같은 세션팀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게이코(32)씨는 “보아나 계은숙 이외에 다른 한국 가수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많은 대중가수들이 일본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준비 중이다. 이수영 박화요비 클래지콰이 신승훈 세븐 비 등이 이미 한 두장의 싱글 음반을 일본에서 발표했고 이승철도 최근 ‘루이’라는 예명으로 싱글 음반 ‘사요나라’를 내놨다. 이외에 박정현 성시경 장윤정 이지혜 등이 일본에 발을 내딛기 위해 모색 중이다. 일본에 진출하려는 대중가수들이 몇 년 전부터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그 성과는 미미하다. 한국 가수에 대한 일본 가요계의 반응은 소수 팬들의 환호에 그칠 뿐 ‘한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 얼마전 일본에 진출한 가수 A의 매니저는 “한류라고 해서 일본에 가면 모두 성공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 가보니 그렇지 않았다”면서 “A를 좋아하는 극소수의 일본 팬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몇 년 동안 일본에서 활동했던 가수 B의 매니저도 “일본에서 한류의 중심은 드라마 연기자이지 가수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선 꽤 인지도 있는 가수일지 몰라도 일본에서는 거의 신인이나 다름없는 만큼 충분한 물적·인적 준비가 선행돼야 함에도 대부분의 가수들이 치밀한 계획없이 진출하는 실정이다. 일본을 겨냥한 음악 스타일을 연구하기 보다 한국 배우가 출연하는 드라마 OST를 통해 진출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럴 경우 이름을 반짝 알릴 수는 있어도 자신의 음악으로 일본에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보아는 데뷔 전 일본에 체류하며 언어를 습득하는 등 수년간의 준비 끝에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10년 동안 일본에서 음악활동을 해온 장은숙은 “한류로 상황이 좋아지긴 했지만 많은 후배가수들이 일본 진출을 쉽고 간단하게 여기는 것 같다”면서 “일본의 언어와 문화를 얼마만큼 소화하느냐가 성패의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손님은 왕이다’(제작 조우필름)는 독창적인 실험정신과 주류 상업영화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20억원의 저예산 영화에 연기력은 있으나 주연급은 아니었던 배우들,신인감독(오기현)이 뭉쳐 꽤 스타일리시한 영화를 만들었다. 한가로운 이발관에 낯선 손님(명계남)이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이발사(성지루)의 약점을 들춰내며 돈을 요구한다. 급기야 이발사의 아내(성현아)까지 넘본다. 더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이발사는 해결사(이선균)를 고용한다. 세련미의 출발은 색채의 미학.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소이자 나른하면서도 강박적인 이발사의 일상을 대변하는 이발관을 흑과 백의 체스 무늬 바닥으로 표현했다. 차가운 스테인리스 소재의 날카로운 면도칼이 배치된 정돈된 이발관,벽면의 ‘손님은 왕이다’라는 액자까지. 왠지 금방이라도 위협적인 공간으로 돌변할 듯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여기에 탱고음악이 주효했다. 가난한 이들의 기쁨과 눈물을 격정에 녹인 탱고는 일류보다 삼류에 가까운 이발사,협박사,요부,해결사라는 우리사회 비주류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돋보이게 하는데 제격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오마주’에 의한 실험성이다. 오마주란 후배 영화인이 선배 영화인의 재능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감명 깊게 본 대사와 장면을 본 떠 만든 것. 이를테면 성지루가 슈퍼 앞에서 생두부를 먹고 있을 때 슈퍼주인이 우유를 건네고,성지루가 무심코 “그래도 우유는 해태우유가 최곤데”하고 내뱉는 장면은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 설경구의 그것과 똑같다. ‘초록물고기’에서 보여준 배우 명계남과 이창동 감독에 대한 오마주,‘아마데우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등 영화적 인용으로 가득차 있다. 영화는 전반부 꽤 밀도있는 스릴러로 궁금증을 자아내다가 어느 순간 눈물겨운 드라마로 변신한다. 그리고 모든 궁금증을 한꺼번에 확 쏟아내며 스스로 밀도를 뚝 떨어 뜨린다. ‘명계남을 위한 영화’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특정 배우에 대한 지나친 헌사라는 느낌도 들지만,실험성 자체는 평가할 만하다. 흥행을 위해 스타중심으로 철저히 기획된 영화가 아니라 남들이 안 해보는 것,잘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시도해보자는 도전정신이 빛난다.
“좋은 음악은 언제든지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좋은 음악은 우리 프로에 한 번은 나옵니다. 그게 우리 프로가 존재하는 이유죠.” 오는 4월29일로 20주년을 맞는 KBS 쿨 FM(89.1㎒) ‘전영혁의 음악세계’(오전 2시). 심야 방송인 탓에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많은 가수들이 영향을 받았노라고 고백할 만큼 한국 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쳐온 이 프로가 1일 18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라디오 음악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디스크자키 전영혁(54)씨를 만나러 지난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5층 녹음실을 찾을 때 마침 1주일에 한 번 LP로만 음악을 틀어주는 ‘슈퍼 아날로그의 부활을 꿈꾸며’ 시간 녹음중이었다. 그의 고집으로 겨우 남아있는 것이라는 두 대의 턴테이블에 번갈아 판을 바꿔 넣고,콘솔을 만지며 멘트까지 하느라 분주해 보이던 전씨는 “우리 팬들이 좀 까다로워서”라며 웃어보였다. 옆에 놓인 10여 장의 LP는 모두 집에서 가져온 것들. 자신의 음반으로만 방송한다는 그는 한 달에 300만원을 음반구입비로 쓴다. 해외 희귀 레코드는 물론 국내 젊은 가수들 CD도 직접 구입한다. “제 프로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어려운 음악만 튼다는 겁니다. 들어본 적이 없으니 하는 얘기죠. ‘…음악세계’의 슬로건은 굳이 안틀어도 유명한 음악 말고 꼭 들려줘야 하는 좋은 음악을 틀자는 것일 뿐입니다.” ‘좋은 음악’이라면 어느 국가,어느 장르의 음악이건 앞장서 선곡해온 것이 ‘…음악세계’가 1989년 ‘25시의 데이트’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이유다. 팻 메시니,쳇 베이커 등 수많은 뮤지션들이 이 프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됐다. 음악에 조예가 있다는 사람만 추린 애청자 모임이 무려 1000여 명. 열혈 애청자들은 시간대를 조금이라도 앞당겨보려 KBS에 수없이 민원을 넣었지만 여지껏 허사였다고. 전씨는 “내부에 오히려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적더라”고 씁쓸해했다. “라디오 채널마다 하루 종일 진행자만 바뀌지 음악은 똑같아서 라디오를 안듣는다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 프로가 새벽 2시밖에 방송될 수밖에 없는지 청취자들이나 저나 의문이죠. 언젠가부터 제 잘못도,청취자 잘못도 아니고 문화 후진국에 태어난 죄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심야 DJ에 어울리게 잔잔한 말씨의 전씨지만 우리 음악계,라디오의 현실을 말할 때만큼은 날카로웠다. 특히 “당장 청취율과 광고수입을 높여 자신의 성과로 남기려는 욕심에 라디오 전체를 연예인 말잔치 판으로 만든 방송 책임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큰 문화적 죄를 지었는지 알아야 한다”고 갈파했다. 또 그는 “한류,한류 하지만 우리 음악 수준은 후진적이다”면서 “우리에게도 밥 딜런 같은 세계적 뮤지션이 될 재목이 분명히 있지만 알아주는 사람,틀어주는 방송이 없어 칩거하든지 다른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음악세계’는 오는 4월8일 KBS홀에서 20주년 기념 공연을 갖는다. 그에게 ‘새벽의 DJ’란 노래를 헌정한 블랙홀을 비롯한 ‘애청자 출신’ 가수들이 공연할 예정. 특히 일본음악이 금지됐던 시절 ‘월드 뮤직일 뿐’이라며 자신의 음악을 선곡했던 사실을 전해듣고 1997년 초 그를 찾아왔던 일본 뮤지션 유이치 사카모토도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