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은 언제든지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좋은 음악은 우리 프로에 한 번은 나옵니다. 그게 우리 프로가 존재하는 이유죠.”
오는 4월29일로 20주년을 맞는 KBS 쿨 FM(89.1㎒) ‘전영혁의 음악세계’(오전 2시). 심야 방송인 탓에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많은 가수들이 영향을 받았노라고 고백할 만큼 한국 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쳐온 이 프로가 1일 18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라디오 음악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디스크자키 전영혁(54)씨를 만나러 지난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5층 녹음실을 찾을 때 마침 1주일에 한 번 LP로만 음악을 틀어주는 ‘슈퍼 아날로그의 부활을 꿈꾸며’ 시간 녹음중이었다. 그의 고집으로 겨우 남아있는 것이라는 두 대의 턴테이블에 번갈아 판을 바꿔 넣고,콘솔을 만지며 멘트까지 하느라 분주해 보이던 전씨는 “우리 팬들이 좀 까다로워서”라며 웃어보였다.
옆에 놓인 10여 장의 LP는 모두 집에서 가져온 것들. 자신의 음반으로만 방송한다는 그는 한 달에 300만원을 음반구입비로 쓴다. 해외 희귀 레코드는 물론 국내 젊은 가수들 CD도 직접 구입한다.
“제 프로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어려운 음악만 튼다는 겁니다. 들어본 적이 없으니 하는 얘기죠. ‘…음악세계’의 슬로건은 굳이 안틀어도 유명한 음악 말고 꼭 들려줘야 하는 좋은 음악을 틀자는 것일 뿐입니다.”
‘좋은 음악’이라면 어느 국가,어느 장르의 음악이건 앞장서 선곡해온 것이 ‘…음악세계’가 1989년 ‘25시의 데이트’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이유다. 팻 메시니,쳇 베이커 등 수많은 뮤지션들이 이 프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됐다. 음악에 조예가 있다는 사람만 추린 애청자 모임이 무려 1000여 명. 열혈 애청자들은 시간대를 조금이라도 앞당겨보려 KBS에 수없이 민원을 넣었지만 여지껏 허사였다고. 전씨는 “내부에 오히려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적더라”고 씁쓸해했다.
“라디오 채널마다 하루 종일 진행자만 바뀌지 음악은 똑같아서 라디오를 안듣는다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 프로가 새벽 2시밖에 방송될 수밖에 없는지 청취자들이나 저나 의문이죠. 언젠가부터 제 잘못도,청취자 잘못도 아니고 문화 후진국에 태어난 죄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심야 DJ에 어울리게 잔잔한 말씨의 전씨지만 우리 음악계,라디오의 현실을 말할 때만큼은 날카로웠다. 특히 “당장 청취율과 광고수입을 높여 자신의 성과로 남기려는 욕심에 라디오 전체를 연예인 말잔치 판으로 만든 방송 책임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큰 문화적 죄를 지었는지 알아야 한다”고 갈파했다. 또 그는 “한류,한류 하지만 우리 음악 수준은 후진적이다”면서 “우리에게도 밥 딜런 같은 세계적 뮤지션이 될 재목이 분명히 있지만 알아주는 사람,틀어주는 방송이 없어 칩거하든지 다른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음악세계’는 오는 4월8일 KBS홀에서 20주년 기념 공연을 갖는다. 그에게 ‘새벽의 DJ’란 노래를 헌정한 블랙홀을 비롯한 ‘애청자 출신’ 가수들이 공연할 예정. 특히 일본음악이 금지됐던 시절 ‘월드 뮤직일 뿐’이라며 자신의 음악을 선곡했던 사실을 전해듣고 1997년 초 그를 찾아왔던 일본 뮤지션 유이치 사카모토도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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