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왕이다’(제작 조우필름)는 독창적인 실험정신과 주류 상업영화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20억원의 저예산 영화에 연기력은 있으나 주연급은 아니었던 배우들,신인감독(오기현)이 뭉쳐 꽤 스타일리시한 영화를 만들었다.
한가로운 이발관에 낯선 손님(명계남)이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이발사(성지루)의 약점을 들춰내며 돈을 요구한다. 급기야 이발사의 아내(성현아)까지 넘본다. 더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이발사는 해결사(이선균)를 고용한다.
세련미의 출발은 색채의 미학.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소이자 나른하면서도 강박적인 이발사의 일상을 대변하는 이발관을 흑과 백의 체스 무늬 바닥으로 표현했다. 차가운 스테인리스 소재의 날카로운 면도칼이 배치된 정돈된 이발관,벽면의 ‘손님은 왕이다’라는 액자까지. 왠지 금방이라도 위협적인 공간으로 돌변할 듯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여기에 탱고음악이 주효했다. 가난한 이들의 기쁨과 눈물을 격정에 녹인 탱고는 일류보다 삼류에 가까운 이발사,협박사,요부,해결사라는 우리사회 비주류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돋보이게 하는데 제격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오마주’에 의한 실험성이다. 오마주란 후배 영화인이 선배 영화인의 재능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감명 깊게 본 대사와 장면을 본 떠 만든 것. 이를테면 성지루가 슈퍼 앞에서 생두부를 먹고 있을 때 슈퍼주인이 우유를 건네고,성지루가 무심코 “그래도 우유는 해태우유가 최곤데”하고 내뱉는 장면은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 설경구의 그것과 똑같다. ‘초록물고기’에서 보여준 배우 명계남과 이창동 감독에 대한 오마주,‘아마데우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등 영화적 인용으로 가득차 있다.
영화는 전반부 꽤 밀도있는 스릴러로 궁금증을 자아내다가 어느 순간 눈물겨운 드라마로 변신한다. 그리고 모든 궁금증을 한꺼번에 확 쏟아내며 스스로 밀도를 뚝 떨어 뜨린다. ‘명계남을 위한 영화’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특정 배우에 대한 지나친 헌사라는 느낌도 들지만,실험성 자체는 평가할 만하다. 흥행을 위해 스타중심으로 철저히 기획된 영화가 아니라 남들이 안 해보는 것,잘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시도해보자는 도전정신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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