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의 나라’ 베트남과 수교 20년 소통한마당

한국-베트남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경기일보가 ㈔한베친선협회와 공동 주최하고 (주)경기발전연구원이 주관한 한-베 소통대회 2012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문화체육관광부주한베트남대사관안산시가 후원하고 신한은행이 협찬한 이번 대회는 문화 교류를 통한 양국 간 이해와 협력을 증진시키고 양 국민을 하나로 묶는 다양한 행사로 진행돼 관심을 모았다. 먼저 9~10월 주한베트남이주가정 수기 공모전을 진행하고 10월 18일 한-베 문화교류 촉진 포럼을 개최한데 이어 21일에는 수기공모전에서 입상한 12가정의 전통혼례식과 한국 가요 경연대회가 안산 올림픽기념관 체육관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베트남 현지에서는 10월 27~28일 양일간 베트남 하노이 문화궁전에서 두 차례에 걸쳐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와 함께 하는 우리는 친구콘서트를 열었고 12월에는 수기공모전에 입상한 3가정에 항공권을 지급, 고향방문의 기회도 제공한다. 본보는 이번 한-베 소통대회 2012를 통해 지방 언론 최초로 한-베트남 교류증진에 첨병 역할을 다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주한 베트남 이주가정 수기공모전레티탄두엔씨 최우수 영예 주한 베트남 이주가정 수기공모전은 한국 남성과 결혼해 이주해 온 베트남 다문화 여성들이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양국 간 문화를 이해하는 폭을 확대하기 위해 마련됐다. 10월 10일 배은석 한국외대 교수, 유티미하 재한베트남교민회 부회장 등 5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의 심사를 통해 총 15점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최우수작은 레티탄두엔씨(24충남 홍성)의 저의 한국 생활적응기로 한국에 온지 6년만에 검정고시로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겪은 일화와 농사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 영광을 안았다. 우수작은 응엔티트엉씨(27경기도 양주)의 베트남 시어머니와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행복한 우리 가족과 응오티레구엔씨(27전북 임실)의 장애를 가진 아기를 키우면서 겪은 고충을 쓴 힘이 되는 나의 가족, 나의 아기!가 선정됐다. 이외에 당선작으로는 한지혜씨(33경기도 부천) 외 11명이 선정됐다. 수상자들에게는 부상으로 베트남 항공권(우수작 이상)과 가전제품이 수여됐다.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최우수작=레티탄두엔(24충남 홍성) △우수작=응엔티트엉(27경기도 양주), 응오티레구엔(27전북 임실) △당선작=한지혜(33경기도 부천), 원진아(40경기도 안산), 김나희(26인천), 이서현(26경기도 파주), 윤서정(34경기도 안성), 원티뚜엣란(27경기도 안산), 김은하(26경기도 수원), 후인티홍수옹(25전남 화순), 부티후엔(23충남 홍성), 정미령(28경기도 안산), 누엔티투푹(28인천), 응엔띠김사(43인천) 한-베트남 문화교류 촉진 포럼전략적 동반자 넘어 미래동반자로 10월 18일 아주대학교에서 본보와 ㈔한베친선협회가 공동 주최한 한-베 문화교류 촉진포럼에서 참석자들은 수교 이후 양국관계 발전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양자관계 협력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쩐 쫑 또안 주한 베트남대사는 기조연설을 통해 1992년 12월 수교 이후 2001년 21세기의 포괄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2009년 이명박 대통령 베트남 방문 시 전략적 협력동반자로 격상됐다면서 한국에 베트남문화원을 조속히 설립하고 베트남 한국문화원을 활성화해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사회, 문화 분야에서의 협력을 확대해 줄 것을 주문했다. 유인선 전 서울대 교수는 한국이 경제 뿐만 아니라 외교문화적으로도 베트남의 최고 우방이 됐다고 평가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한 병폐가 심각함으로 정부 차원에서 올바른 베트남 역사와 문화 알리기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토론에 나선 양국 전문가들은 한베트남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양방향 문화교류 확대를 주장했으며 무엇보다 지난해 기준, 베트남 출신 여성과의 국제결혼 건수가 중국 여성과의 결혼 건수를 추월함에 따라 사회통합을 위해서라도 다문화 가정 자녀를 위한 교육과 장기적 취업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한편, 한국베트남간 문화교류를 통한 이해와 소통을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는 쩐 쫑 또안 주한 베트남대사, 임홍재 前 주베트남 한국대사 베트남 관련 각계 전문가들과 베트남 결혼이민자여성을 비롯해 임창열 본보 대표이사 회장, 김성렬 행정1부지사, 임재익 아주대 국제대학원장, 홍기헌 전 수원시의회 의장, 박해진 경기신용보증재단 이사장 등 내외빈들을 포함해 400여명이 참석했다. 주한 베트남 가정 전통혼례식 & 한국 가요 경연대회 10월 21일 안산 올림픽기념관 체육관에서 열린 전통혼례식과 한국가요 경연대회는 다채로운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펼쳐졌다. 특히 전통혼례식은 실제 우리의 전통혼례 방식 그대로 치러져 재한 베트남인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날 행사에는 임창열 본보 대표이사 회장을 비롯해 김철민 안산시장, 전준호 안산시의회 의장, 홍기헌 (사)경기다문화사랑연합 이사장, 유티미하 재한베트남교민회 부회장 등 내외빈들이 전통혼례식을 참관하고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하해주며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격려했다. 오후 6시에는 한국가요경연대회가 열려 예선을 통과한 베트남 이주가정 여성 10명이 본선 무대에 올라 그동안 갈고 닦은 한국 노래 실력을 뽑냈다. 뽀빠이 이상용씨 사회로 진행된 이날 대회에는 평양예술단, 가수 정은과 조승구씨와 베트남 최고 인기가수 풍비가 출연해 축하무대를 꾸몄다. [INTERVIEW] 주한 베트남 이주가정 수기공모전 최우수상 레티탄두엔-김형훈 부부 살림, 육아, 농사, 학업 4마리 토끼 잡는 열혈 아줌마 TV에서 한국 전통혼례식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직접 한복을 입어보니 감회가 남다르고 진짜 한국 사람이 된 것 같아 좋습니다. 연지곤지 찍고 한복을 입은 신부 레티탄두엔(24충남 홍성군 갈산면)씨는 본보가 주최한 주한 베트남 이주가정 수기공모전에서 영예의 최우수상을 수상한 주인공. 남편 김형훈씨와 아들 융성(6)이와 딸 혜민(4)와 함께 결혼식에 참석한 레티탄두엔씨는 2006년 7월 한국으로 시집와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도 검정고시로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홍성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열혈 아줌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살림, 육아, 농사, 학업 4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겪은 행복한 순간들을 감동적으로 표현해 심사위원들로부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베트남에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학교를 2년 정도 밖에 다니지 못해 학교 다니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속상하고 부러웠는데 한국에 와서 아들, 딸 낳고 제가 직접 책도 읽어주고 공부도 가르쳐 줄 수 있어 지금이 꿈만 같고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농사일 때문에 트럭 운전을 해야 할 때가 많았던 레티탄두엔씨는 지난 2009년부터 홍성다문화센터에 다니기 시작해 5번 만에 합격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남편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대학을 나온 남편은 저를 무시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남편은 제가 모르는 것을 질문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합니다. 제가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저를 아껴주시는 주변 분들과 가족 덕분입니다. 특히 제가 힘들 때마다 용기를 주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남편에게 항상 고맙습니다. 글 _ 강현숙장혜준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김시범전형민 기자 sbkim@kyeonggi.com

[특별기획 ②] 아오자이와 월남국수의 나라 베트남을 가다

비행기로 5시간이면 도착하는 베트남은 우리에겐 친숙한 나라다. 특히 담백한 쌀국수와 늘씬한 베트남 여성들이 입은 아오자이는 한국인들에겐 베트남을 상징하는 대표 아이콘이기도 하다. 미국과의 전쟁 후 남북 베트남은 선거를 통해 1976년 7월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했다. 통일 후 외국원조의 단절, 낙후성, 심각한 전쟁 후유증, 미국과 서방의 제재 및 봉쇄 정책, 이웃 강대국과의 관계악화, 캄보디아 크메르 정권의 침공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경제, 사회, 정치 운용에 관한 개혁을 시행하고 있다. 현재는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특히 베트남 특유의 문화와 곳곳에 산재해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세계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한국과는 1992년에 수교가 이뤄졌으며 하노이, 하롱베이 등 베트남 대표 관광지에 매료돼 여러 차례 비행기에 몸을 싣고 베트남으로 향하는 베트남 마니아들도 많다. 동양의 진주, 호치민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알려졌던 도시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후원을 받은 남부베트남의 수도였던 곳이다. 베트남 전쟁을 승리로 이끈 북부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의 이름을 따서 새롭게 정비된 도시로 가장 큰 경제상업 중심지이자 가장 큰 항구 도시이기도 하다. 지대가 형성된 지는 불과 300년 밖에 안 되었으나 삼각주 지역의 비옥한 퇴적층에 위치한 만큼 농작물 수확과 산업용 목재 생산량은 대단한 수준이다. 약 2세기 전에는 일본과 중국, 서양의 무역상들이 사이공 선착장으로 몰려 내륙으로 이동하면서 베트남의 교역활동의 중심지로 동양의 진주라 불렸다. 시에서 주변의 여러 지역을 갈 때는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수로를 따라 보트를 이용해서 이동하는 것도 호치민을 방문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제공한다. 호치민의 벤탄시장은 시내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호치민의 대표적인 시장. 생동감 넘치는 현지인들과 여행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호치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장이기도 하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호치민에는 아직까지 프랑스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동커이 거리 중심에 있는 호치민 시민극장은 바로 옆의 컨티넨탈 호텔과 함께 호치민의 대표적인 유럽풍 건물로 잘 알려져 있다. 호치민 시민극장은 1897년에 지어졌으며, 건물 앞에 하얀색 석조 여인상이 인상적이다. 정치 중심지, 하노이 지리적으로 홍강을 낀 삼각주 델타지대로 비옥한 평야가 많은 하노이는 무더운 호치민에 비해 춘하추동의 사계절이 뚜렷하며 300여개의 호수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이다. 천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에 걸맞게 유서 깊은 사찰도 많고 식민지풍 교회나 건물이 많다. 무채색의 건물들이 빚어내는 조화 및 좁고 아기자기한 골목, 그리고 포장마차와 가게들이 몰려있는 거리 풍경은 운치가 넘친다. 남부 베트남의 호치민이 경제 중심지라면 하노이는 명실상부한 정치 중심지이다. 때문에 시내 여기저기에서 구소련의 영향과 사회주의 냄새가 느껴진다. 남성들이 쓰고 있는 짙은 녹색의 모자, 레닌 공원에 있는 미그 전투기 놀이 도구 등이 그렇다. 그렇지만 활기가 넘치는 호치민과 비교하면서 하노이를 여행하면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이 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하노이의 주요 관광지로는 바딘 광장과 한기둥 사원을 꼽을 수 있다.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이라는 두 가지 위대한 업적을 남긴 호치민의 묘소가 있는 바딘 광장은 1945년 호치민이 독립 선언문을 낭독한 곳으로 건국기념일이면 수많은 시민이 모이고, 평소에도 호치민 묘를 찾는 시민과 관광객을 많이 볼 수 있다. 호치민 묘소 옆에 위치한 한기둥 사원은 말 그대로 물위에 기둥 하나로 만든 사원이다. 자식을 갖고 싶은 사람들이 이곳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면 효험이 있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현지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3천개 섬들의 고향, 하롱베이 하롱베이는 영화 인도차이나와 로빈 윌리엄스의 굿모닝 베트남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곳이다. 하노이의 동쪽에 위치한 하롱베이 국립공원은 그 미려한 장관으로 유명하다.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립공원으로 3천개 이상의 섬들이 보여주는 장관은 스펙타클 그 자체이다. 하롱(Halong下龍)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용(龍)이 바다로 내려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설에 따르면 한 무리의 용들이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했고, 침략자들과 싸우기 위해 내뱉은 보석들이 섬이 되었다고 한다. 이 국립공원의 역사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일어난 전쟁과 반란은 문화를 보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문화의 보존 노력은 도만카(Mr. Do Manh Kha)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는 복무 중에도 동료들의 도움으로 많은 문화재를 수집할 수 있었다. 이런 노력은 이 국립공원 안에 박물관을 짓는 것으로 이어졌고, 베트남 전쟁 중인 1962년 마침내 그의 꿈이 실현되었다. 하롱베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이다. 32년 후 1994년에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선포됐다. 해변의 도시, 나트랑 최근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나트랑은 하노이보다는 호치민에서 가까운 곳으로 베트남 남부와 중부지방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적은 인구만큼이나 작은 도시로 우리에게는 월남전 당시 백마부대 주둔지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아름다운 해변과 연중 300일 이상의 맑은 기후로 천연적인 자연조건을 갖춘 관광도시로 유명하다. 사람들의 친절함과 수마일에 이르는 해변 및 화려한 리조트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연간 해수온이 일정한 10km의 해변은 도시를 덮고 있다. 베트남에서 가장 낮은 습도를 보이고 있으며, 연평균기온이 26도로 베트남에서 최고의 해변으로 평가받고 있다.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하나투어 (www.hanatour.com/577-1233)

[CoverStory | 만나고싶었습니다] 송영길 인천시장

인천 송도국제도시가 세계 녹색 심장인 UN 녹색기후기금(GCF) 유치에 성공했다. GCF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을 지원하는 환경 분야의 세계은행과 같은 기구이다. 활동 범위나 기금 규모 면에서도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B)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대표적인 국제기구가 인천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송영길 인천시장을 만나 유치 성공 비하인드 스토리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12개국 대표 개별면담 등 종횡무진 송영길 시장은 지난 2월 GCF 유치 후보 도시를 선언한 이후 3월 13일 국내 경합에서 서울을 제치고 대한민국의 대표 후보 도시로 나섰다. 4월 15일 기획재정부와 공동으로 GCF 임시사무국에 유치제안서를 제출하면서 본격적인 유치 준비를 시작했다. 지난 8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GCF 1차 이사회에서 사무국 유치 국가를 최종 선출하는 제2차 이사회 장소로 송도가 선택 받으면서 운명적인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송 시장은 2월 GCF 유치 도시 신청부터 10월 20일 GCF 송도 유치 확정까지 세계를 무대에서 종횡무진 유치 활동을 펼치며 세계 녹색 심장을 품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는 3월 대한민국 후보도시로 인천이 선정된 직후 실무추진단과 범시민지원위원회를 구성하고 시 행정력을 총동원해 국제도시에 걸 맞는 품격 있는 도시환경을 정비하는 한편, 자전거대회 및 걷기대회를 포함한 다양한 활동으로 범시민적 지지 기반을 다져 왔다. 2차 이사회 송도 개최 결정 이후에는 차질 없는 회의진행을 위한 회의, 숙박, 수송 대책을 세밀하게 수립해 추진하고, 특히 GCF사무국이 입주할 아이타워(I-TOWER)를 최첨단 시설로 치밀하게 준비해 이사국들의 마음잡기에 나섰다. 대외적으로는 지난 8월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덴마크 라스무센 의장 면담을 시작으로, 각국의 주한대사들 초청 만찬, 국내 소재 UN 기구대표들과의 면담, 지난 10월 초 덴마크 방문, 주요 국가 정상에 대한 서한 발송 등을 통해 GCF의 인천 송도 유치의 당위성과 장점을 호소했다. 특히, 지난 9월 27일 대한민국 국회가 여야 만장일치로 GCF유치지지결의안을 채택하도록 이끌어 내며 이사국들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송 시장은 마지막으로 GCF 2차 이사회가 열린 송도 컨벤시아 인근 송도파크호텔에 5일 동안 묵으면서 12개국 대표들을 만나 개별 면담했다. 호텔에서 묵는 동안 이사국 대표들 개인 프로필을 확인하고 저서나 칼럼까지 외우고서 만나는 치밀함으로 송도 유치를 위한 역할을 수행했다. 송 시장은 인천시청 홈페이지에 마련된 시정일기에 GCF 유치와 관련된 활동과 마음가짐 등을 실시간으로 낱낱이 올려놨다. GCF 유치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고스란히 배어 나온다. 총회 개막 막판까지 유치 비관적인천시정부 초당적 협력 막판 뒤집기 정부에 UN 도시 지정 및 지원 특별법 요청 예정 천지인 삼재(天地人 三才),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맞아떨어진 것일까. 꿈같이 여겨졌던 인천의 GCF 유치가 현실로 이뤄졌다. 송 시장은 GCF 인천 송도 유치가 결정된 10월 20일이 국제기구 도시로 본격 도약하는 첫 걸음이자, 뉴욕, 런던 등 유수한 국제도시들의 대열에 합류하는 뜻 깊은 날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송 시장은 GCF 인천 송도유치에 따라 지금까지 유치 조건으로 약속했던 사항들이 빠르고 완벽하게 이행될 수 있도록 후속 조치에 즉시 착수할 계획이다. 우선, 내년 2월 준공예정인 I-TOWER 빌딩은 GCF 사무국의 세부 요구 사항을 최대한 반영한 맞춤형 빌딩으로 마무리할 계획이며, 사무국 직원 또는 가족들의 주거, 교육, 의료, 여가 등 정주환경을 재점검하고 확충할 방침이다. 또 애초 약속한 행정지원을 위해 GCF지원 전담조직도 신속히 구성 운영할 예정이다. 인천 송도가 뉴욕이나 제네바와 같은 대표적 국제기구 도시 또는 UN도시가 될 수 있도록 (가칭)UN 도시 지정 및 지원 특별법 같은 법제화를 중앙정부에도 요청할 방침이다. 송도가 국제허브공항을 통한 탁월한 국제적 접근성을 가졌지만, 1천만 서울과의 접근성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번 2차 이사회의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 기회에 수도 서울과 국제도시 송도가 20분에 연결될 수 있는 GTX사업을 조속한 추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번 GCF 유치는 천지인 삼재가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인천시,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외교통상 환경부 모두가 힘을 합해 헌신적인 노력했다. 정치권도 황우여 대표, 박지원 대표가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유치 지원 결의안을 통과시켜 뒷받침을 해줬기 때문이다. 그는 GCF 유치가 범국민적 지원으로 이뤄진 만큼 인천은 물론 대한민국이 아시아권에서 세계무대에 진입했다는 국제 사회적 의미를 국가 경쟁력 발전으로 연결해 국민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입장이다. GCF 설립 목적인 인류 전체의 공동 목표인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의미 있는 일이라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 또 전 세계 2만 1천 개의 주요 국제기구가 있지만, 국내에는 32개 국제기구가 있는 게 전부인데다, 그나마 대부분 아시아태평양 지역사무소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이번 GCF 유치를 계기로 추가적인 국제기구 유치에도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WB사무소 등 국제기구 추가 유치 발판숙박교통 등 시설 확충 박차 경제적 파급효과, 연간 총 3천800억원 예상 송 시장은 송도 GCF 2차 총회가 열리기 직전까지만 해도 인천 유치 가능성이 50% 정도이거나 더 낮을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예상이 많았지만 가능하다라는 주문을 스스로 걸며 유치 활동을 벌였으며 이뤄냈다. 덕분에 경제적으로 연간 총 3천800억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한국개발연구원 분석)와 년간 약 1천900억 원의 지역경제 효과와 경제자유구역의 투자유치 활성화도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대한민국과 인천이 이번 GCF 유치로 아시아권에서 세계 국제기구의 주요 국가와 도시로 진입했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송 시장은 인천 송도국제도시는 GCF 사무국 유치로 GCF의 초기 3년 자금운용을 맡게 될 세계은행(WB)의 한국사무소 유치 가시화를 비롯해 비중 있는 국제기구의 추가 유치가 유력해지고 있다며 또 GCF 활동이 본격화되면 아시아권 개발도상국의 녹색사업 지원과 관련된 아시아개발은행을 비롯해 각종 GCF 펀드 운영에 따른 세계의 금융기관 및 국제기구의 추가 유치, 금융기관 참여기회 가능성 등도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교량역할을 수행하면서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키울 수 있으며 국제기구 입지로 남북관계 긴장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이밖에도 사회, 문화, 환경적으로 도시 브랜드 제고 및 시민들의 국제적 마인드 함양과 저탄소 녹색성장 모범도시로서의 국제적 인지도를 향상시킬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는 인천은 GCF 사무국과 같은 대형 국제기구나 본부를 유치한 경험이 전혀 없는 만큼 내실화 프로그램을 배울 수 있도록 스위스나 카타르 총회 등을 방문해 필요한 사항을 확인하고 벤치마킹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기후변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 공부 해 나갈 계획이다. 송 시장은 GCF 출범 취지가 선진국들이 모여 개발도상국들의 녹색기후 관련 분야를 지원하는 것인 만큼, 50년 만에 경제 최빈국에서 세계 10대 무역 강국으로 변신한 대한민국이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입장을 모두 이해하며 중재 역할을 충분히 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은 경제, 사회적 발전을 이루고 녹색성장 경로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독특한 사례인 만큼 기후변화 이슈와 관련해 개도국에게 좋은 롤 모델이 될 수 있고 좋은 시그널을 보낼 수 있다며 송도는 국제공항에서 불과 20분 거리에 있으며, 서울 소재 100개 이상의 대사관과 근거리 있으며, 유비쿼터스 환경과 최고의 IT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GCF의 신속하고 원활한 출범과 가동을 위해서는 최적지라고 말했다. 글 _ 인천류제홍 기자 jhyou@kyeonggi.com 사진 _ 장용준 기자 jyjun@kyeonggi.com

문화올림픽 67만명 매료 2012 안성세계민속축전

세계인의 문화 올림픽이라 불리는 2012안성세계민속축전이 2주 동안 67만 명의 관람객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개최됐다. 10월 1~14일 안성맞춤랜드에서 열린 이번 세계민속축전에는 중국, 터키, 핀란드 등 북부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세계 43개국 1천172명의 공연단이 참가해 열정적인 공연을 선보였다. 14일간 43개국 1천172명 공연단 전통 춤사위 먹을거리즐길거리볼거리 가득 작은 지구촌 공연단은 각국의 전통복장을 갖춰 입고 하루 60여 회에 걸쳐 수준 높은 춤과 노래 등 세계민속공연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와 함께 조선시대 3대 장 중 하나인 안성장터 재현터에는 탈곡 등 농경생활과 전통혼례, 장승 깎기, 떡메치기, 대장간 등 다양한 체험장이 마련돼 연일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특히 남사당 공연장은 매회 공연마다 내외국인 관계없이 관객들이 자리를 가득 메울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안성시가 마련한 전통공예관, 천문과학관, 줄타기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행사까지 어우러지면서 관람객들은 눈과 귀가 즐거운 축전을 만끽했다. 이번 축제는 특히 내실있는 프로그램들로 짜여서 축제를 돋보이게 한데다 지역 내 시민단체, 봉사단체, 군인 등 3천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해 성공적인 축제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황은성 안성시장은 세계민속축전은 전 세계인이 민속문화라는 연결고리로 하나가 되는 만남의 장이었다며 관람객, 봉사자 등 모든 참여자들의 관심과 배려 덕분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세계민속축전은 1996년 네덜란드에서 시작해 2000년 일본, 2004년 헝가리를 거쳐 4번째로 안성시에서 펼쳐졌다. 5회 축전은 4년 후인 2016년 미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글 _ 장혜준 기자 wshj222@kyeonggi.com

[경기좋다] 역사·풍년 들판·개펄의 유혹 가을날 강화도 여행

삼월에 덕진은 수양버들 늘어졌고, 흰머리 난 늙은 어부는 술잔을 권하네. 덕진 진관은 어떤 연유로 그리 많이 변했는가, 강 가득한 물빛은 예전과 똑같은데 화남 고재형(1846~1916) 역사의 근대화시기에 강화도에 이런 시를 노래한 시인이 있었다. 그가 읊조린 시가 역사를 음미하던, 자연을 노래하던 강화는 거기 그렇게 있다. 석모도에 가자는 여인이 있었다. 석모도. 늦은 오후, 좀 있으면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떨어질 텐데 걱정을 하고 외포리 포구에서 배를 탄다. 바로 코앞에 있는 섬이지만, 요즘 그 흔한 연륙교도 없이 배에 승용차까지 태우고 건넌다. 서해안의 낙조란 늘 그렇듯이 사람들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석모도 해안가에 빈 벤치와 썰렁한 가로등이 저녁노을에 반사한다. 가을날 오후 사람 마음이란 늘 쉽게 요동한다. 오전에 출발한 강화도는 요즘 시원스럽게 달릴 수 있다. 초지대교를 건너면 의례 볼 수 있는 것이 초지진이다. 그래 여기서 우리 근대사가 엮어졌지, 프랑스함대가 정족산성에 불지르고 가져간 실록이 근 100년 만에 겨우 돌아오고. 어찌 초지진뿐이랴, 섬을 빙둘러 곳곳에 자리하는 돈대를 보며 이곳이 국토의 관문이었고 역사의 현관이었음을 모를까? 그러니 강화도에 들어오면 세 가지 경관이 있음을 깨닫는다. 하나는 역사경관이요, 또 하나는 가을 들녘 가득한 노란 벼 이삭들이다. 나머지 하나는 아무래도 빙 둘러 펼쳐진 개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람들은 해안 포구 여기저기에 많이들 모여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요즘 많아진 각종의 별미 음식점을 찾아가지만 역시 강화도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 세 가지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곧 김장철에 필수품인 바로 새우젓냄새요. 또 하나는 투명하고 붉은색 순무의 사각사각한 냄새이다. 여기에 비릿한 갯내음이 천지에 깔려 있으니 이 세 가지를 강화냄새라 아니할 수 있을까? 강화도령에서나 삼별초, 그리고 강화도조약이라는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보아왔던 강화가 풍요한 가을 들녘과 석양에 빛나는 개펄 속에서 빛난다. 이 가을 달려가보자. 글 _ 김란기 (한국역사문화정책연구원)이정환 (미아리 사진방 대표작가)

[경기초대석] 라수흥 수원 장안구청장

110만 인구의 수원시를 흥나게 하고, 30만 장안구를 흥겹게 하는 남자가 있다. 라수흥(羅秀興) 수원시 장안구청장은 이름 속에 흥(興)이 담겨 있다. 종종 라수홍인지, 라홍수인지 이름을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왜냐? 라 구청장을 만나면 모두들 그의 흥에 취하기 때문이다. 라 구청장은 각종 지역 행사에서 인사말 대신 노래를 한다. 18번인 설운도의 사랑의 트위스트를 부르며 구민들의 흥을 돋운다. 반응은 역시 뜨겁다. 노래 하나만큼은 자신있다는 라 구청장은 개사까지 해서 부른다. 학창 시절에 함께 놀았던 / 잊지 못할 장안구의 트위스트 / 나팔바지에 빵집을 누비던 / 추억 속에 장안구의 트위스트 / 샹하이 샹하이 샹하이 트위스트 추면서 / 난생 처음 장안구를 알았고 / 샹하이 샹하이 샹하이 트위스트 추면서 / 온 동네를 주름 잡았던 /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 음~ / 잊지 못할 장안구의 트위스트 주민들은 어르신들을 위해 멋드러지게 트로트 한곡 꺾어 부를 줄 아는 여유를 가진 라 구청장을 좋아한다. 올해 1월 취임한 이래 장안구는 흥겨운 도시, 건강한 도시, 깨끗한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10월 10일 오후 라 구청장을 만났다. 미소거울과 책사탕을 선물하는 남자 얼굴을 대면하자마자 부르튼 입술부터 눈에 띈다. 요 며칠 새 피곤했는지 입병이 났네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말하는 데는 문제없습니다. 원래는 더 잘생겼으니 감안해주세요.(하하) 청장의 유머스런 멘트로 시작된 인터뷰는 유쾌, 그 자체였다. 구청장이라고 점잔을 빼거나, 치적홍보에 열을 올리거나, 공무원 특유의 딱딱함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렇게 잘 웃는 공직자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시종일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책상 위에 놓인 자신만의 미소거울을 보여줬다. 전 직원들에게 본인 이름이 적힌 웃음거울(smile mirror)을 제작해 전화기 옆에 비치토록 했습니다. 직원 또는 민원인과 통화 시 미소거울을 보면서 친절하게 응대하자는 취지에서 말입니다. 찡그린 얼굴이나 무표정이 장안구의 전체 이미지가 되어선 안 되겠다 싶어서 저도 틈날 때마다 치즈~도 하고 하하 웃기도 합니다. 라 구청장은 원래 목회자가 되려고 했단다. 당시 언론사에 재직 중이었던 매형의 권유로 공무원 시험에 응시, 합격하면서 지난 1979년 공직에 입문했다. 지역경제과장, 문화관광과장을 거쳐 복지여성국장, 경제정책국장을 지내면서 2007년 공무원이 선장한 아름다운 CEO상, 2009년 공무원노조가 주최한 베스트5에 선정되는 등 뛰어난 업무 추진력과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라 구청장의 직원들 간 소통스타일은 때론 친정아버지 같고, 때론 영화 여인의 향기의 리처드기어처럼 로맨틱하다. 임산부 여직원에겐 육아책을 선물하고 화이트데이(3월14일)엔 청사 1층 로비에서 출근하는 여직원들에게 사탕을 선물했다. 매월 초 직원들 생일 축하파티를 직접 마련하고 직원 칭찬하기 게시판을 운영하는 등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같은 공직자로서 웃으며 출근하고 싶은 직장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같이 근무했던 부하 직원들에게 생일축하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이렇듯 라 구청장은 조직운영에 있어 일방적이거나, 강압적이지 않다. 대신 미소와 칭찬으로 직원들을, 그리고 조직을 흥나게 만든다. 돌고 돌고, 동네 한 바퀴로드체킹의 달인 라 구청장은 매일 아침 출근길 외도(?)를 한다. 헬스장 가서 운동을 하는 것도, 새벽 종교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자전거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돈다. 운동이 목적이 아니다. 동네 구석구석 불편사항이나 민원을 직접 체크하기 위해 동네를 돌고 또 도는 것. 이도 부족한지 매월 첫째셋째 수요일을 현미경 생활민원 발굴의 날과 현장행정 바로처리 메모보고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도로, 교통, 환경, 건설 등 분야에서 주민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채널을 통해 현장행정을 강화한 결과 8개 분야 30여 가지 주민불편사항 2천336건을 발굴해 2천96건이나 처리했다. 장안구는 수원의 관문입니다. 30만 장안구민이 만족할 수 있는 클린환경 조성을 위해 모든 공직자가 현장에서 답을 찾고 있습니다. 전 직원들에게 주문합니다. 출퇴근 시, 출장 시 주민 불편사항을 허투루 보지 말라고. 구청장실에 머무르는 시간보다 주로 동사무소와 현장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라 구청장은 회의도 구청장실이 아닌 각 실과나 현장에서 진행한다. 내부 고객인 직원들과의 소통만큼이나 구민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장안구는 지역 특색이 담긴 주민 참여형 축제나 마을만들기 사업이 유명하다. 새숱막거리 축제, 영화마을 나팔꽃축제, 율천동 밤밭축제, 정자마을 달빛축제, 송죽동 행복한 마을축제, 조원1동 대추골 한마당 축제, 연무동 퉁소바위축제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관 주도의 형식에서 벗어나 주민들이 기획하고 참여하고 즐기는 각종 마을 축제에서 라 구청장은 역시 노래 한곡을 빼놓지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노래 하나는 잘합니다. 행사장에선 지루하고 틀에 박힌 인사말보다 노래 부르는 구청장을 좋아합니다.(하하) 어르신들 사이에선 장안구의 설운도로 통합니다. 흥을 돋우는데 노래만한 게 없잖아요. 그래서인지 음악을 활용한 주민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평소 공연관람 기회가 적은 문화소외계층과 복지시설 등을 대상으로 한 찾아가는 행복나눔 음악회를 지난 5월부터 진행 중이며, 매월 둘째넷째주 수요일 구청 로비에서 수원시립예술단 등을 초청해 런치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수원시립합창단, 정자3동 기타동아리, 수원유스필하모니오케스트라, 수원 하나호우 우쿨렐레 앙상블 등 다양한 출연진들이 공직자와 주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긍정남 가을철이라 지역 행사가 많아 몸이 두개라도 모자란 요즘, 라 구청장의 마음을 빼앗은 여인(?)이 있다. 아들만 둘을 키운 그는 7개월 된 손녀 사진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지방에 있어 자주 만날 수 없어 서운하지만 휴대폰 영상통화로 하루하루 커 가는 손녀를 볼 때마다 신기할 따름이라고 한다. 손녀 이야기에 더 신난 라 구청장은 영락없는 할아버지다. 그러면서 우리 장안구만큼 살기 좋은 동네도 없습니다. 녹지와 주거, 상업공간 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친환경 녹색도시입니다. 아이 키우기 좋은 마을입니다라고 장안구 자랑을 이어갔다. 장안구는 수원의 허파이며 주말이면 5만 여명의 등산객이 즐겨 찾는 광교산과 정조가 현륭원 참배를 마치고 환궁하는 길에 화산을 바라보며 떠나기를 아쉬워했다는 지지대고개를 비롯해 세계화장실 문화를 선도하고 꽃피운 발상지인 해우재, 예로부터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만석거 등이 장안구의 자랑입니다. 이러한 자연환경과 관광자원을 보존해야한다는 구청장으로서 사명감을 강하게 느낍니다. 라 구청장은 활기찬 도시 장안구를 만들기 위해 긍정남으로 살고자 노력한다. 긍정적인 사고와 부정적인 사고의 차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이 평소 라 구청장의 신념. 그래서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실천코자 한다. 긍정적인 구청장이 되기 위해 미소를 짓고, 노래를 부르는 남자, 바로 라수흥이다.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추상철 기자 scchoo@kyeonggi.com

[기업탐방] 그랜드코리아레저(GKL)

카지노는 도박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카지노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하지만 이 같은 편견을 뒤엎고 우리나라 관광레저산업의 핵으로 떠오르는 곳이 있다. 한국관광공사 자회사로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세븐럭(Seven Luck)을 운영하고 있는 그랜드코리아레저(GKL)다. 외국인전용 카지노는 관광객 유치에 크게 이바지할 뿐만 아니라 관광비용 지출을 확대시키는 훌륭한 관광아이템으로 꼽히고 있다. GKL 역시 2005년 설립 이후 외국 관광객 유치와 외화 획득 증대, 한국 카지노 산업의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해 쉴 새 없이 달려왔다. 이 같은 노력으로 지난해 142만8천명에 달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세븐럭을 찾았고, 5천221억원(약 4억7천127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업계 최초로 관광진흥탑 4억불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올해 역시 중국 관광객의 꾸준한 증가 등에 힘입어 매출 5억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어 한국 관광의 중요 인프라로서의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카지노 산업을 관광서비스산업 발전의 선두주자로 이끄는 GKL의 성공 요인을 꼽는다면 사업장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 경영과 투명경영을 들 수 있다. 카지노+의료관광+쇼핑 맞춤서비스로 외국인 관광객 유치 세븐럭은 현재 서울 강남점, 서울 밀레니엄힐튼점, 부산 롯데점 등 3곳에 사업장을 갖고 있다. 3개 사업장은 각각 지역별, 지리적 특성을 고려해 적합한 맞춤 경영 전략을 펼치고 있다. 카지노 산업이 여행, 숙박, 쇼핑, 음식 등 관광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GKL은 단순 카지노뿐만 아니라 카지노에 다양한 비즈니스, 의료 마케팅 등을 접목시켰다. 피부 관리나 성형 등에 관심이 많은 일본, 중국 관광객과 동남아시아 부자들을 대상으로 카지노와 의료검진을 묶은 패키지 상품 개발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 강남점의 경우 카지노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인근에 있는 삼성동 코엑스몰 면세점, 현대백화점을 소개하고 서울 압구정, 청담도 일대 성형외과 등과 연계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낮에는 서울 관광을 즐기고, 밤에는 자연스럽게 카지노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 이와 함께 매년 거대하게 몰려오는 중국 큰 손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중국 거점지역 마케팅 시장을 개척하고, 기존의 일본시장도 새로운 수익모델 창출을 목표로 중소도시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세븐럭 운영업계 최초 관광진흥탑 4억불 수상 영예 콤프제도 변경으로 수익성 개선깨끗한 회사반듯한 회사 부정비리 척결을 위한 GKL만의 제도 개혁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8월 사장으로 취임한 류화선 전 파주시장은 깨끗한 회사, 반듯한 회사를 표방하며 고객의 게임 실적에 따라 마일리지를 적립해주는 이른바 콤프제도를 대폭 손질했다. GKL은 미국 라스베이거스, 마카오 등 전 세계 카지노업계와 같이 VIP 고객 등에게 전체 기대수익대비 35%(전체 매출액의 20% 내외) 수준의 콤프를 지급해왔다. 콤프(comp)는 고객의 항공료, 숙박비, 식음료비, 기타 접대 및 로스금액에 대한 보상비 등을 일컫는 것으로 카지노 회계에선 이를 원가개념으로 취급하고 있다. 제도 개혁 전 콤프의 40%(500억 원 내외)에 해당하는 비용을 현금카드(KT카드)로 지급함으로써 부정비리의 개연성을 갖고 있었으며, 실제 카드깡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 같은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류 사장은 팀별 한도로 운영되던 콤프를 고객 개인별 적립 포인트 제도로 전환했다. 또 고객이 발생시킨 콤프와 사용내용을 전면 공개하고, 고객에 대한 콤프 실제 지급을 마케팅팀에서 경리팀으로 바꿔 업무를 이원화시켰다. 이에 따라 고객은 발생 포인트를 본인이 직접 확인하고, 개인별로 원하는 콤프(항공, 숙박, 칩 등)를 지급받아 사용할 수 있게 됐으며, 고객에 대한 차별대우 등 콤프 관련 비리 및 각종 루머를 차단하는 효과를 얻게 됐다. 마케팅 비용 역시 연간 500억 원 내외로 사용되는 KT카드가 현재 연간 30억 원 선에서 억제될 정도로 통제할 수 있게 됐다. 또 전체 콤프비용 역시 외형신장에도 불구하고 약 10% 정도 절약되는 등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26%에서 올 상반기 29%로 개선됐다. 류화선 사장은 콤프제도 개혁으로 50년 적폐를 청산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해외카지노업계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놀라워하는 상황이라며 고객의 편의성과 콤프 집행의 투명성 모두 확보하며 영업이익률 개선 효과까지 얻었다고 밝혔다. 글 _ 장혜준 기자 wshj222@kyeonggi.com

[Movie&현장] “앗! 여기, 왠지 낯익다!” 인천아트플랫폼

분명 처음 오는 곳인데도 언제 와본 듯하고, 많이 본 듯한 곳이 있다. 짜장면의 발상지인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맛있는 짜장면을 먹고 근처를 둘러보면, 어젯밤 꿈속에선가 본 듯한 낯익은 건물을 발견할 수 있다. 인천아트플랫폼. 바로 KBS TV 드라마 드림하이의 촬영지다. 택연, 아이유, 배수지 등 아이돌 스타들이 슈퍼스타가 되는 꿈을 키우며 춤추고 노래하던 극 중 기린예고 건물이 바로 이곳, 인천 중구 해안동 인천아트플랫폼이다. 드림하이 뿐만이 아니다. 월드스타 비가 이곳에서 디지털카메라 CF를 찍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영화 두여자와 해결사 등 최근 들어 TV드라마, 영화 촬영이 늘면서 인천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TV드라마영화CF촬영지로 유명세 근대 건축물을 활용한 신개념 문화인큐베이터 인천 중구 해안동 일대는 지난 1883년 개항 이후 건립된 건축문화재와 1930~4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이 잘 보존돼 있다. 특히 당시의 근대건축기술과 역사적 기록을 지니고 있어 건축조형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인천시는 지난 2008년부터 이곳에 도심 재생프로젝트를 진행, 2009년 9월에 마쳤다. 1888년에 지어진 옛 일본우선주식회사(등록문화재 제248호)는 미술자료관으로 바뀌었고, 1902년 건립된 삼우인쇄건물은 입주작가와 주민이 함께하는 미술교육의 산실로 거듭났다. 1943년 점포형 건물인 금마차다방과 장수영양탕 자리에는 아트숍과 커피숍이 들어섰다. 1933년 지어진 해안동 창고는 스튜디오, 대한통운 창고는 공연장으로 탈바꿈했다. 이처럼 100여 년 전과 근대시절 세워진 건축물들이 창작스튜디오, 공방, 자료관, 교육관, 전시장, 공연장 등을 갖춘 인천아트플랫폼으로 재탄생됐다. 총 부지만 8천450㎡에 2개 단지, 13개 건물이 각각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인 종합 미술 창작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이러한 도시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최대한 살려 문화적으로 재활용하자는 시민들의 뜻과 인천시의 의지가 합쳐져 탄생한 장소. 이곳을 중심으로 개항장 일대는 거대한 스트리트 뮤지엄으로 확장된다. 이는 과거의 역사를 보존하되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이다. 택연아이유배용준설경구인천에 다 있네 지난해 인천아트플랫폼은 드라마 드림하이 촬영지로 내내 북적였다. 유명 아이돌 스타뿐만 아니라 정상급 스타들의 조연과 까메오 출연, 여기에 100여명이 넘는 제작진, 스타들을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까지. 드림하이엔 김수현과 배수지, 옥택연, 함은정, 아이유(이지은), 장우영 등이 공동주연을 맡았고 한류스타 배용준과 엄기준, 박진영, 이윤지, 이윤미, 안선영 등이 조연을 맡는 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했다. 특히 까메오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 맴버들이 상당수 출연, 10대 팬들의 인기를 등에 업고 촬영장도 매일 스타들을 보러 온 팬들로 북적였다. 드림하이 뿐만 아니라 CF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월드스타 비는 이 곳 구석구석을 돌며 디지털카메라 CF를 찍었고, 이후 인천아트플랫폼은 멋진 사진을 원하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됐다. 영화에서도 인천아트플랫폼은 종종 등장한다. 신은경정준호심이영 주연의 두여자에서 일과 사랑 모든 것이 완벽한 산부인과 의사 소영(신은경)이 남편 지적(정준호)가 만나던 수지(심이영)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등의 장면의 배경이 됐다. 설경구이정진오달수 등이 출연한 액션영화 해결사에서 주인공들의 도주 및 추격신이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인천아트플랫폼은 많은 사람들의 눈에 익었다. 세계를 향한 문화예술의 발신지 인천아트플랫폼을 들어가면 맨 먼저 보이는 유리벽 건물의 A동 크리스탈 큐브는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건물이다. 한 때 이 곳엔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인 윤석남의 나뭇조각 유기견 1025마리가 바닥을 채웠다. 크리스탈 큐브 천장은 유기견에 대한 생각을 적은 하얀 천들이 매달려 있는 등 구제역으로 매몰된 가축들의 죽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이처럼 A동엔 라운지와 전시실, 각종 문화강의가 열리는 교실 등이 있다. B동은 정기적으로 다양한 전시회가 열린다. 디지털비디오영상물을 비롯해 어디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만화나 그리스로마신화 관련 문화작품들이 선보이는 곳이다. C동은 공연장이 자리 잡고 있으며, D동에는 인천은 물론 전국적인 각종 문화 관련 자료가 축적된 자료실이 있다. E1~E3동은 공동 작업실이다.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한 작가들과 인천작가들의 다양한 작업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고, 때로는 미술소품을 파는 플랫폼 창고세일도 열린다. F동은 게스트하우스, G동은 아트&디자인 스튜디오, 커뮤니티 공간인 H동엔 입주작가 지원실과 프로젝트 룸, 아트숍, 카페 등이 관광객을 맞고 있다. 인천아트플랫폼의 운영을 맡고 있는 인천문화재단은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시각예술을 비롯해, 공연과 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와 연구자들이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문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국내에 정착하지 못한 현실에서 동아시아 문화허브도시인 인천의 지역특성을 끌어들인 국제문화교류에 주력하고 있다. 문화재단 관계자는 인천아트플랫폼은 시간의 창고들을 창의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예술창작의 현장이라며 이곳은 레지던스 프로그램 외에 국내 작가들을 해외에 알리는 장터가 되고, 국내외 예술가들이 소통하는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발신지로서 거듭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 _ 이민우 기자 lmw@kyeonggi.com

[Museum&Gallery] 피와 땀 110년, 한민족 발자취를 따라…

한국의 110년 이민(移民)사는 질곡(桎梏)의 역사인 동시에 희망의 역사였다. 민족 수난의 시기, 살고자 고향을 버리고 낯선 땅을 찾아야 했던 사람들. 멀고도 낯선 불모지를 피와 땀으로, 번영의 신천지로 일군 사람들. 이들은 모두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한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조국을 위한 헌신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후예들은 현재 세계 곳곳 정상의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며 희망을 주고 있다. 700만 동포들의 삶과 애환이 살아 숨 쉬고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곳, 인천시 중구 월미로에 위치한 한국이민사박물관(관장 김경언)이다. 과거 선조의 향기를 따라 둘러보다보면 어느새 한국인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하는 곳, 한국이민사박물관으로 역사여행을 떠나보자. 750만 해외동포들의 이민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사박물관동포들의 삶과 애환을 마주하다 19세기 말 조선은 밖으로는 한반도를 둘러싼 서구열강의 각축과 안으로는 조정 대신들의 불화가 끊이질 않는 등 나라의 운명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계속되는 흉년에다 신흥강국으로 성장한 일제의 탄압에 국민의 생활은 날로 궁핍해져만 갔다. 이런 가운데 희망을 잃은 일부 국민이 새로운 삶을 찾아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되고, 이것이 한국 이민사의 첫 시작이었다. 지난 2003년 미주 이민 100주년을 맞아 우리 선조의 해외 개척 삶을 기리고, 그 발자취를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인천광역시 시민들과 해외동포들이 함께 뜻을 모으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첫 공식 이민의 출발지였던 인천에 우리나라 최초로 이민사박물관을 건립함으로써 다시 한 번 한인 이민역사를 체계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것. 이들의 염원은 식질 않았고, 결국 5년 후인 지난 2008년 6월 13일 인천 중구 월미도 끝자락에 한국이민사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연면적 4천127㎡에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로,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실, 기획전시홀, 영상실, 수장고, 한국이민사도서실 등을 갖춘 박물관은 당초 인천시 서부공원사업소에서 관리하다 지난 2월 말 인천시립박물관 분관으로 조직이 개편됨으로써 전문성을 확보하고 체계적인 이민 역사의 연구가 가능해졌다. 이민사박물관의 상설전시관은 한국이민의 역사를 증명하는 유물뿐만 아니라 현대와 근대 우리나라의 역사 모두를 아우르는 자료를 선보이고 있다. 상설전시관은 △미지의 세계로(제1전시실) △극복과 정착(제2전시실) △또 다른 삶과 구국 염원(제3전시실) △세계속의 대한인(제4전시실)으로 구성돼 있다. 미지의 세계로또 다른 삶과 염원 제1전시실에서는 이민의 출발지였던 개항 당시의 인천을 소개하고, 우리나라 첫 공식이민이 이뤄지기까지 국내 정세 및 미국 하와이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또 당시 한국인의 하와이 이민 과정에서 가장 주목받는 활동을 펼친 미국 공사이자 선교사인 알렌(H.N.Allen)의 삶도 엿볼 수 있다. 그는 1884년 조선에 도착한 이후 고종 황제의 주치의로 발탁돼 황실의 신망을 얻었고, 이후 조선과 미국 정부 간의 핵심적인 중재자로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미국 내 설탕 수요가 증가하면서 하와이 사탕수수밭의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알렌은 조선인의 하와이 이민사업을 펼치게 된다. 1902년 12월 22일 하와이 첫 이민단 121명이 인천 제물포에서 출발해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것이 우리나라 이민의 첫 역사다. 전시실에는 당시 이민자들을 싣고 하와이로 떠난 첫 선박인 갤릭호(S.S Gaelic) 모형을 놓고 이민자들의 길고 험난했던 여정을 생생히 체험해 볼 기회도 제공한다. 박물관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애국심 불끈 제2전시실은 하와이에 정착한 한인들의 애환과 개척자로서 미국 전역에 뿌리를 내린 발자취 등을 담은 사진자료와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사탕수수농장 한인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생활을 담은 영상을 비롯해 하와이 한인학교를 연출해 놓은 교실에서 그 당시 사용했던 교과서도 전시돼 있다. 제3전시실은 1905년 새로운 삶을 찾아 멕시코 에네켄 농장으로 향한 1천33명 한인의 또 다른 삶을 볼 수 있다. 또 1919년 31 독립운동 이후 미주 한인들이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몸을 바쳤던 활약상을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은 외교 및 선전활동과 함께 독립 자금을 모으는데 큰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제4전시실은 전 세계 각국으로 진출해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700만 해외동포의 근황과 염원을 살펴볼 수 있다. 또 우리나라 공식 이민의 첫 출발지인 인천에 하와이 이민자들의 조국에 대한 교육적 열망을 담아 설립한 인하대학교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인하대는 인천과 하와이의 첫 자를 따서 인하라는 교명으로 정해졌다. 이와 함께 한인이민사를 재조명하고 한인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각종 해외이민 기념사업과 축제, 문화 활동에 대해서도 살펴 볼 수 있다. 관람안내------------------------------------------ 관람시간 : 오전 9시~오후 6시(매주 월요일 휴일) 관 람 료 : 무료 문 의 : (032) 440-4710 / 4711 위 치 : 인천광역시 중구 월미로 329 (북성동 1가) 상설전시실 전시내용 설명기기 무료대여 (한영중일어) 상설전시실 문화관광해설사 해설: 오전 10시~오후 4시(단체 관람객은 1회 30명까지 해설예약 가능) 글 _ 신동민 기자 sdm84@kyeonggi.com 사진 _ 한국이민사박물관

[제2의인생시대] 신영섭 포크가수

대한민국에 오디션 프로그램이 열풍을 불고 있는 요즘,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MBC 대학가요제다. 1977년 첫 방송 이후 매년 이슈를 몰고 다닌 대학가요제는 한국 가요계에서 신인 등용문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걸출한 가수들을 배출해냈다. 배철수, 임백천, 심수봉, 노사연, 유열, 신해철, 015B, 전람회(김동률), 김경호 등 한국 가요계를 뒤흔들었던 이들이 원조 오디션 프로그램인 대학가요제 출신들이다. 당시(197782년) MBC 대학가요제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대단했다고 한다. 그 당시 인기 정도를 1979년 제3회 대학가요제 출신 포크가수 신영섭(55)씨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수준급의 기타 연주 실력과 함께 작사작곡 능력까지 갖춘 실력파 뮤지션이지만 이름만 들어선 생소하다.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지난 10월 4일 일산 호수공원에서 그의 인생과 음악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서울내기 다마내기의 기타, 그리고 노래 가수치곤 평범해도 너~무 평범한 외모였다. 대기업 부장님 분위기가 물씬 나는 건 기자만의 느낌은 아니었다. 평범하죠.(하하) 다들 기타 들고 무대에 오르기 전엔 몰라 봅니다. 가수라 해서 무조건 튀는 의상을 입거나 외모가 화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편안함이 주는 매력이 분명이 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음악도 바로 편안함과 일맥상통합니다. 그의 노래 인생은 아주 평범하게, 그리고 우연찮게 시작됐다. 아버지께서 중학교 입학선물로 기타를 선물해주셨어요. 기타 학원 딱 한 달 다니고 나서 사이먼 앤 가펑클 쓰리핑거 주법을 따라하곤 했죠. 초등학교 4학년 때, 부산으로 전학을 갔더니 친구들이 서울내기 다마내기라고 놀리더라구요. 낯선 부산생활에 적응하는데 있어 통기타가 친구가 되어 주었던 것 같아요. 기자 아버지를 따라 김포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간 그는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평범한 모범생으로 지냈다. 부산대학교 섬유공학과에 입학하면서 인생의 반전이 시작됐다. 아버님께선 무척이나 엄격하신 분이셨어요. 그래서 대학 가서 미팅도 처음해 봤고, 술, 담배도 처음 배우고 얼마나 재미나고 흥미로운 일이 많던지.(하하) 그 당시 부산대 출신 그룹사운드 썰물이 2회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죠. 우리 세대들은 고등학교 시절 대학생 형오빠누나언니들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대학가요제를 꼭 나가봐야지!라는 생각 한번쯤 해보신 적 있을 겁니다. 그래서 한번 도전해 봤죠. 교내 부산음악제와 박달음악제에 참가해 실력을 인정받은 신영섭은 대학 4학년 때 부산경남권 예선에서 140팀을 물리치고 최종 본선 18팀에 합류했다. 본선 무대에서 본인이 작곡한 젊음의 노래를 들고 나가 당당하게 동상을 차지, 야구로 치면 10회 말 굿바이 만루홈런과 같은 성적을 거뒀다. 저는 섬유학과였고, 생물학과 동기, 음악교육과 후배랑 같이 나갔는데 수상곡이 대중적인 곡은 아니었습니다. 빠른 발라드풍의 곡으로 승부수를 띄었죠. 가요제 수상 이후 서라벌레코드사에서 앨범을 내고 3개월 동안 짧게 방송활동을 했어요. 인기 좋았죠. 요즘 아이돌 인기 못지 않았습니다.(하하)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이렇듯 그의 인생 전반부는 순탄했다. 탄탄대로 일 것 같았던 가수 생활은 계속되지 못했다. ROTC 장교로 임관해 군복무를 마치고 83년도에 삼성전자에 입사했어요. 그때부턴 그야말로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았죠.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바쁘게 살다보니 20여년을 음악과는 멀어져 있었습니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왜 태어났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더라구요. 이 같은 그의 고민은 노래 왜에서도 묻어난다. 왜 작사곡 신영섭 새장 속에 앉아 있는 저 새들은 정신없이 울어만 대고 앞마당에 목 줄 묶인 저 강아지는 나만 보면 꼬리를 흔드네 때가 되면 찾아왔던 저 철새는 때가 되면 되돌아 가고 봄이 되면 찾아왔던 저 꽃들도 때가 되면 사라져 가네 고민 끝에 그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여태까지 남을 위해 살아왔으니 이제부턴 자신을 위해 살겠다는 것. 그리고선 대형사고(?)를 친다. 사표를 내던진 것. 두 번째 인생의 본격적인 서막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노래를 하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가족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다니던 회사(스카이라이프)에 사표를 제출했던 거죠. 가수로서 대박을 터트리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오랜 외도 끝에 나의 길을 찾았고 현재를 살아가는 과정이 곧 축복이라 생각하니 행복합니다. 제2인생 개척 중내 음악적 나이는 여전히 20대 그는 20여년의 공백기를 극복하고 노래로 새로운 제2인생을 개척 중이다. 정장 대신 청바지를 입고, 서류가방 대신 기타를 들고 집을 나선다. 1년 반 동안 매주 금요일 저녁 일산호수공원에 마련된 통기타음악회 무대에 서기도 했고 문화센터에서 주부들 대상으로 팝송 강의도 하고 있다. 또 중학교에서 학생들 대상으로 기타연주 수업을 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다. 대학가요제 출신이지만 오랫동안 무대에 서지 않아 신인이나 마찬가집니다. 내 음악적 나이는 여전히 20대입니다. 세계적인 한류 열풍 속에 K-POP의 인기가 상상을 초월하지만 막상 중장년층은 소외되고 있는 상황이죠. 최근 세시봉 열풍이 불면서 중장년층 음악시장의 부활을 예고했지만 막상 중장년층이 들을 만한 음악은 굉장히 협소한 것이 사실입니다. 중장년층 또한 신나는 음악과 사람들의 환호성을 찾아 어디론가 모이고 싶어 하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그는 노래로 중년의 고된 삶의 무게를 풀어주고자 한다. 1집 지금 이대로는 사랑하지만 떠나야 하는 이들의 애절한 마음을 어쿠스틱 기타 반주로 노래했고 2집 나에게로 다시의 경우 인생의 덧없음을 알고 의연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3집 왜는 국악과 포크, 락이 합쳐진 곡으로 로또 복권 발표나면 화장실 가서 지갑 속의 복권 꺼내네 등의 시니컬한 가사로 꾸준히 방송을 타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할 때는 어린 시절과 말년이며 가장 슬럼프에 빠질 때는 중년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더군요. 50대 때 불행을 느끼는 우울증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선진 한국을 만드는데 고생한 중장년층을 위로할 수 있는 음악과 무대를 만들고자 합니다. 신영섭은 아이돌이 대세를 이루는 가요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획일적인 일렉트로닉 계열 음악에 지친 대중의 귀가 일상의 감성을 전하는 그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통기타 선율과 인생의 철학이 담긴 노랫말이 음악 팬들의 귀를 사로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의 음악을 듣고 중년들이 힘을 냈으면 해요. 성공도 중요하고, 사회적 책임도 중요하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 또한 앞으로 계속 곡을 쓰면서 인생 2막의 희망을 노래할 생각입니다. 그의 인생 2막은 이제부터다. 그는 강조한다. 내가 걸은 만큼 내 인생이고, 내가 노래한 만큼 내 인생이라고. 신영섭은 오늘도 열심히 노래하며 꽃중년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추상철 기자 scchoo@kyeong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