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너소사이어티] 인천에 퍼지는 ‘나눔바이러스’… 회원가입 ‘쑥쑥’

나눔은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조금이라도 더 가진 사람이 베풀어야 하는 법입니다. ㈜전국24시콜화물 윤수명 대표가 인천 아너소사이어티에 13번째로 가입하면서 밝힌 소감이다.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수는 총 14명으로 인천 지역에 나눔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 지난 10월 말 익명으로 인천에서 14번째 회원이 5년간 1억원 기부를 약속하며 가입했다. 아너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 갑부 2만 명으로 구성된 미국 단체 토크빌소사이어티를 본받아 2007년 12월 설립한 개인고액기부자 모임이다. 1억 원 이상 기부하거나 기부를 약속하면 회원가입 자격이 주어진다. 인천 모금회는 지난 2008년 9월 정석태 진성토건㈜ 회장이 인천 최초의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이후, 2009년 3명, 2011년 4명, 2012년 6명이 가입하는 등 모두 14명으로 회원이 늘었다. 올해 6명의 가입은 전국 최대 증가율이다. 특히 인천의 경우 기존 회원이 아너 소사이어티를 소개하고 알리면서 새로운 기부자를 아너 회원으로 가입시키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 나눔문화 확산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를 위해 회원들은 낮은 자리에서 소외된 이웃을 더욱 섬기자며 인천 아너소사이어티 클럽을 창립했다. 이미 지역에서 나눔과 봉사에 앞장서 선행을 베풀고 있는 클럽 회원들은 클럽 창립식에서 성숙한 기부문화 정착을 위해 지역사회에 더욱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로 나눔 활동을 펼치겠다는 다짐을 했다. 클럽 초대 회장을 맡은 박순용 인천폐차사업소 회장(인천 아너 2호)는 개인의 소유보다 사회 환원을 통해 더 큰 행복을 누리며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다며 아너 클럽 창립과 함께 회원들의 노력이 사회 전반에 퍼져 나가 나눔 문화 조성에 앞장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건호 인천모금회 회장은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하신 분들이 사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하고 계시니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글 _ 이민우 기자 lmw@kyeonggi.com

[인천 부평구] ‘원적산길 생태통로’ 준공

인천시 부평구와 서구 사이에 위치한 원적산과 함봉산을 잇는 원적산길 생태통로가 준공됐다. 인천시, 부평구, 서구는 최근 부평구 세일고등학교에서 송영길 인천시장과 홍미영 부평구청장, 전년성 서구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원적살길 생태통로 준공식을 개최했다. 원적산과 함봉산을 잇는 생태통로는 인천시가 국시비 87억8천100만원을 들여 지난 2010년 9월 착공했다. 길이 80m, 폭 65m, 높이 10m 규모로, 새사미 고개를 지나는 왕복 6차선의 원적산길 위에 만들었다. 그동안 원적산길로 인해 원적산과 함봉산이 끊어져 있어 생태계가 단절, 각종 육상동물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이번 생태통로 조성으로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를 연결해 생태계 종 다양성을 확보하고 훼손된 자연환경을 복원보전할 수 있게 됐다. 생태통로는 총 면적 6천194㎡ 규모로, 나무 1만1천 그루를 심었고 돌더미와 나무더미, 조류 먹이 공급대, 동물유도 펜스, 생태연못, 생태계류 등 각종 비오톱 시설을 만들었다. 또 CCTV를 설치해 생태통로를 한눈에 관찰할 수 있으며 생태계 이동통로와 차단된 산책로를 마련해 등산객 편의와 안전을 도모했다. 부평구 관계자는 계양산과 철마산을 연결하는 징매이고개 생태통로가 준공된 지 꼭 3년만에 원적산 생태통로가 들어서게 됐다고 말했다. 글 _ 박용준 기자 yjunsay@kyeonggi.com

[부평아트센터] 신생 극장 최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수상

인천 부평아트센터가 개관 2년 만에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받는 쾌거를 거뒀다. 12월 17일 센터에 따르면 최근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주최한 2012 문예회관 운영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 최우수 문화예술회관으로 선정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는 전국 168개 문화예술회관이 속한 단체로 문예회관들의 정보교류와 우수사례 공유로 전문성을 높이고자 지난 2007년부터 매년 우수사례 발표 대회를 열고 있다. 올해 대회는 한 달여간 서류심사, 현장 실사, 프레젠테이션 등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문예회관 운영 모범사례를 선정했다. 부평아트센터는 지난 2010년 개관 이래 2년간의 성과로 출전, 신생 극장이 장관상을 받는 성과를 이뤄냈다. 부평아트센터는 모두 함께 나누는 예술을 표방하며 △문턱 낮은 예술공간 △어린이가 자라는 아트센터 △지역 밀착 프로그램 개발 등으로 지역민에게 부담 없이 다가가고 있다. 로비음악회-12시 15분, 호박데이트, 거리야! 놀자, 어린이 연극학교 등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고 문화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인천시민에게 친밀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이 높게 평가됐다. 조경환 관장은 아트센터 개관 이전에 군부대가 자리 잡아 그동안 통제구역으로 인식됐는데 이제는 지 역문화의 발현지인 동시에 소통과 교류, 변화의 중심지로 탈바꿈한 데 의미가 더욱 깊다고 말했다. 글 _ 박용준 기자 yjunsay@kyeonggi.com

오토바이 물결 거리마다 활기

지난 10월 25일 베트남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기자는 1950~60년대 중반의 사이공을 무대로 펼쳐진 베트남 학생운동을 다룬 장편소설 하얀 아오자이(응웽반봉作)의 페이지를 넘겼다. 우리나라 80년의 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장면이 그려진다. 비행기에서 내려 마주한 현재의 베트남 역시, 크게 낯설지 않다. 자유와 개발의 물결이 한창이던 한국의 70~80년대와 흡사하다는 중론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기일보 후원으로 한-베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열린 조수미 초청 우호 콘서트 현장 안팎에서 들여다 본 베트남 특유의 문화를 소개, 진정한 양국 소통과 교류의 디딤돌이 되길 기대해본다. 거리풍경, 타임머신 타고 40여년 전 한국으로 되돌아간 듯 신화가 된 호치민의 염원, 민족의 독립과 단결 베트남의 공식 국가명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Socialist Republic of Vietnam). 세계에서 찾기 어려운 사회주의공화국으로 수 백 년의 중국 지배, 100년간의 프랑스 식민지, 5년간 일본의 강점, 20년간 미국과의 전쟁 등 끝없는 외세 침략에서도 스스로를 지켜온 나라다. 이 굴곡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베트남 독립을 이끈 지도자 호치민(1890.5.19~1969.9.3)이다. 권력을 통해 어떠한 부귀영화도 누리지 않았던 지도자의 위대한 숨결은 베트남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호치민의 묘와 바로 앞 바딘광장이다. 내가 죽은 후에 웅장한 장례식으로 인민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내 시신은 화장해 달라는 호치민의 간절한 유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신을 방부 처리해 영원한 신화로 모시고 있다. 호치민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바딘광장 역시 삼엄한 경계 속에 현지인과 외국인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광장 한 가운데에선 베트남의 국기 금성홍기가 휘날린다. 붉은색은 혁명의 피를, 노란별은 민족의 단결을 의미한다. 바딘 광장을 둘러싼 공기관의 건물색이 대부분 노란색인 이유다. 광장 주변으로는 호치민 박물관과 한기둥 사원(국보 제1호)도 있다. 한기둥 사원은 1049년에 정사각형 연못 위에 기둥 하나로 지은 것으로, 아들을 점지해주는 사찰로 유명해 현지인이 기원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또 다른 얼굴, 소수민족 므엉족 하노이에서 2시간여 달려 도착한 화빈의 므엉족 마을 입구. 버스가 멈추자 기다렸다는 듯이 어린 여자 아이들이 달려와 마이 홈만 외친다. 뒤따라 맨발로 뛰어나온 아이들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함께 말을 보탠다. 급격한 개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므엉족의 경우 1.5%로 민족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산간지역에서 전통적인 생활상을 이어가고 있다. 땅에서 한 층 높이의 기둥 위에 원룸 형태의 나무집을 짓고 사는 이들은 가축을 키우고 농사를 지으며, 또 다른 수입원으로 일종의 관광 입장료를 받고 있다. 손님을 유혹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서는 전통술인 바나나발효주나 녹차 등을 주고 집 구경 대가로 한 사람당 1달러를 받는다.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판매하며 추가 수입을 얻기도 한다. 베트남 도심에서는 대부분 따라 부르던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아직 파고들지 못했다. 방과 후 곧장 집으로 돌아와 경제활동을 치열하게 벌이는 어린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한국노래를 틀어주자 눈을 뗄 줄 모른다. 집을 나서는 관광객을 향해 어린 여자아이들이 울먹이거나 1달러나 천원을 더 달라며 쫓아오는 모습에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미군을 향해 기브 미 초콜렛!을 외쳤던 우리나라 과거의 한 페이지가 겹친다. 놓칠 수 없는 명물시클로 베트남에서 놓칠 수 없는, 아니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것이 도로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행렬과 의자가 앞에 달린 자전거 형태의 교통수단 시클로다. 성인이 되면 가장 갖고 싶은 것이 오토바이일 정도로 대부분의 직장인이 오토바이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한다. 역주행은 기본이요, 신호 없이 그네들끼리 눈치껏 방향 전환하고 아슬아슬하게 자동차 옆을 지나치는 등 도로 위 진풍경은 아연실색할 정도다. 지붕 없는 교통수단인 만큼 우비도 발전했나보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커플 우비부터 다양한 기업 홍보 문구가 들어간 것까지 각양각색이다. 여기에 전통 수상인형극을 공연하는 공연장도 한번 쯤 들려볼만하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전용극장이 매일 베트남의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내용의 인형극을 공연한다. 사람들의 허리 위까지 채운 물 위에서 인형이 움직인다. 무대 막 뒤의 배우들이 대나무와 실로 연결한 인형을 조정하는 것이다. 무대 옆에는 전통 악기로 음악을 연주한다. 공연의 질은 떨어지는 편이지만 베트남 문화를 익히는 차원에선 볼만하다. 글 _ 베트남 하노이ㆍ류설아 기자 rsa119@kyeonggi.com 사진 _ 김시범 기자 sbkim@kyeonggi.com

[특별기획②] 베트남, ‘클래식 한류’ 색다른 감동

지난 10월 27일 저녁 7시 한국과 베트남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베트남 하노이시 문화궁전에서 열린 소프라노 조수미 초청 우호 콘서트에 대한 현지인과 교민 1천여 명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신이 내린 목소리로 꼽히는 소프라노 조수미의 첫 베트남 무대는 베트남국립오케스트라와의 선율과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루며 클래식 불모지인 베트남을 새로운 음악 세계로 이끌었다. 그 뜨겁고 감동적이었던, 베트남에서 K-클래식 시대를 여는 순간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경기일보 후원 감동의 무대세계적 소프라노 조수미 열창에 기립박수환호 베트남 주재 한국문화원이 주최하고 경기일보가 후원한 소프라노 조수미 초청 우호 콘서트는 한국 대중음악이 전 세계를 뒤흔드는 가운데 양국의 한국 클래식 교류에 불을 지피는 의미 있는 무대였다. 특히 무대영상, 대중적 연주 프로그램, 출연진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등 현지인의 쉬운 클래식 감상을 돕기 위한 다채로운 시도와 배려가 돋보였다는 평이다. 무대 위 주인공은 역시 소프라노 조수미였다. 공연에 앞서 열린 현지 언론 기자회견장에서도 붉은 원피스를 입고 등장해 연신 미소와 적극적인 답변으로 호응을 얻었던 그녀는 무대 위에서 당당하게 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특히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열린 한국 클래식 공연에 나선 조수미는 길고 화려한 경력만큼 수 십 명의 베트남국립오케스트라 단원과 현지 가수 두 뚜안과의 호흡을 능수능란하게 주도했다. 첫 곡으로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의 아리아 나는 꿈속에 살고 싶어요를 열창하자 객석에서는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고, 이 같은 관객 호응은 앙코르 무대까지 이어졌다. 가곡 선구자로 교민의 눈시울을 붉게 물들이더니,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의 아리아를 부를 때에는 새침한 여인으로 분해 두 뚜안과 춤을 추고 코를 푼 손수건을 가슴에 넣는 등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였다. 당초 솔로 무대로 예정돼 있던 마지막 곡 라데츠키 행진곡을 노래하며 퇴장한 두 뚜안을 다시 불러 싸이의 말춤을 함께 추는 등 한국 문화 사절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웃음소리를 예상하기 어려운 클래식 무대에서 탄성과 환호는 물론 폭소와 박수가 뒤섞인 관객 호응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날 함께한 두 뚜안 역시 베트남 노래 띤 까(tinh ca)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을 부르며 특유의 목소리와 익살스러운 무대 매너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또 각 음악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상징적 이미지와 출연진을 클로즈업한 실황 촬영 영상이 무대 막에 시종일관 흘러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공연에 앞서 상영한 한국 홍보 영상물을 비롯해 레 카잉 하이 베트남 문화체육부 차관과 하찬호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의 축사 등이 양국 문화 교류의 의미를 명확하게 밝혔다. 대부분의 관객은 기립박수와 열렬한 환호에 진행된 앙코르 무대 후에도 공연장을 떠나지 못한 채 로비의 콘서트 홍보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감상을 나누느라 여념 없는 모습이었다. 연중 클래식 공연 횟수를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인 베트남에서 펼쳐진 이 진풍경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클래식 대중화의 단계를 대폭 줄인 기적의 순간으로 기록될 듯 싶다. 글 _ 베트남 하노이ㆍ류설아 기자 rsa119@kyeonggi.com 사진 _ 김시범 기자 sbkim@kyeonggi.com

[특별기획③] Interview 박낙종 주베트남 한국문화원장

스탭도 아닌 중년의 한 사나이가 막이 오르기 전까지 우리나라 세종문화회관격인 베트남 하노이시 문화궁전을 내 집처럼 뛰어다니며 공연 준비에 열을 올린다. 그는 바로 교민과 현지인에게 우리 문화의 향기를 실어 나르는 한국 대표 문화 사절, 박낙종 주베 한국문화원장(사진)이다. 박 원장은 30여 년 이상의 문화체육관광부 공직생활에서 체득한 노하우와 주베트남 한국문화원장 부임 전 수행했던 해외문화홍보원과 해외문화콘텐츠과장으로서의 경험을 오롯이 활용하며 베트남에서의 한국 문화 전성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한베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열린 조수미 초청 우호 콘서트 현장에서 박 원장을 만났다. 다음은 박 원장과의 일문일답. 한베 20주년을 기념한 다양한 문화사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주요 사업과 관객 반응은 어떠한가. 지금까지 각종 공연, 콘서트, 축제, 전시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됐다. 특히 문화예술인과 방송분야에서 인적 및 물적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된 것을 의미 있게 본다. 특히 조수미 초청공연은 교민들에게 커다란 문화적 기쁨과 색다른 경험을 안겨주었다. 지금까지 많은 행사를 통해 현지인들은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미래 문화적 동반자로서의 가치와 믿음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2012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의 대미를 장식할 12월의 주요 사업은 무엇인가 . 12월은 한베 수교 20주년을 마무리하는 달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12월 14~15일 한-베 특별문화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이 공연은 양 국의 역사적 인연과 동행을 주제로 미래지향의 창작물로 한국의 문화체육부장관이 방문해 축하할 예정이다. 클래식에 이어 창작물이라니 기대가 된다. 앞서 K팝 열풍이 거센데, 베트남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위치는 어떠한가. 베트남은 동남아 국가 중에서도 한류가 성숙한 단계에 있는 나라다. 한국 영화, 드라마, K팝은 이미 일상적으로 즐기는 문화콘텐츠가 되고 있다. 특히 K팝 열풍은 대단하다. 가수별로 수 만 명의 팬클럽이 형성되어 있고, 대학마다 크고 작은 K팝 동아리들이 구성돼 있다. 베트남 대학 내 동아리가 있을 정도라니 놀랍다. 한국 드라마와 패션 등 다양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도 높은 편인가. 한국드라마는 베트남 케이블 방송을 포함해 하루 5개 이상 방영되고 있다. 심지어 크고 작은 모임에서 한국 드라마와 배우에 대한 이야기가 대화 주제가 되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한식과 패션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베트남 젊은이들이 점점 한국 아아돌의 외형을 닮아가고 있어 언뜻 보면 양국 젊은이들의 국적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문화적 영향력 때문인지, 베트남의 한국문화원장으로서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운영에 걸림돌은 없나. 한류 덕분에 문화원 운영이나 행사 진행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때문에 문화원 운영에 큰 어려움도 없다. 다만 행사나 프로그램이 우리 문화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형식이 많았는데 이제는 참여하는 방식을 강화해 쌍방향 교류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주입식 문화 전파가 아닌 서로 소통하고 나누는 문화 교류가 이뤄지도록 방안을 모색하고 진행하는 노력을 보이겠다. 마지막으로 수교 20주년을 맞은 양국이 보다 원활한 문화 교류를 위한 발전 방안은 무엇이라 보는가. 양국은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많은 유사점이 있고 미래 동반자로서 문화적 혜택을 나눌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베트남은 한국에 비해 현대적인 문화산업 또는 대중문화가 아직 충분히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진적이고 현대적인 기술을 전수하면서 인력 양성을 지원한다면 상생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안을 고려하고 적극 도입해야 할 것으로 본다. 글 _ 류설아 기자 rsa119@kyeonggi.com 사진 _ 김시범 기자 sbkim@kyeonggi.com

[CoverStory | 만나고싶었습니다] 의왕시장 김성제

가족 파산, 어머니 및 약혼자 사망, 정신병원 입원, 연이은 낙마. 그리고 1860년 대통령 당선. 미국인들이 가장 위대한 대통령 1위로 꼽는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의 일대기다. 링컨은 넘어질 때마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괜찮아, 길이 약간 미끄럽긴 해도 낭떠러지는 아니야. 이러한 링컨을 닮은 남자가 있다. 김성제 의왕시장이다. 사람들은 그를 오뚜기 또는 의지의 한국인으로 부른다. 국토해양부 서기관 출신으로 정치인이 됐으면 한국 사회에서 탄탄대로의 출세길을 달려온 거 아닌가. 그런데 왜 오뚜기일까? 11월의 첫날, 김 시장을 만났다. 그는 유쾌했다. 자신의 치부를 솔직하게 공개하는 시장 앞에서 기자는 무장해제 되고 말았다. 링컨을 닮은 남자 이야기는 녹차의 고장,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시작됐다. 낙방, 낙방, 또 낙방도전, 도전, 또 도전 김성제 시장은 어렸을 때 이야기를 꺼내면서 상장 자랑부터 했다. 보성이 고향인데 어렸을 때 그림을 잘 그렸어요. 하루에 상장을 4개까지 받은 적이 있었거든요(하하). 특히 만화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화가가 됐었어야 할 소년은 지금 정치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선천적으로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을 가진 그는 중학교 시절, 정치인이 되겠다는 구체적인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학창시절은 화려했다. 박치기대왕, 닮싸움의 1인자였던 그는 광주 숭의중학교 재학시절 학생회장을 지냈고 동신고등학교 땐 선도부장을 맡았다. 교문 앞에 서서 학생지도 선생님과 지각생, 복장 및 두발불량 학생들을 단속하면서 나름 후배나 동료들에게 두려움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시절이 그의 인생에 있어 말 그대로 화양연화(花樣年華)였다. 약한 친구들을 못살게 하는 녀석들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때려주기도 했죠. 아마도 이러한 성격은 구한말 의병활동을 하셨던 외증조 할아버지와 교육자셨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던 학창시절, 그에게 실패, 좌절이란 단어는 먼나라 이야기였다. 승승장구하던 그의 첫번째 시련은 대입 낙방. 목표가 고려대 정치학과였습니다. 고3때도 선도부장을 하면서 나름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는데 시험결과가 좋지 않았죠. 전남대 공대를 응시했다 낙방하고 삼수 끝에 경희대 경제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인생의 첫 관문인 대입 실패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고 재수 하는 동안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하하) 김 시장은 군대 제대하고 진로고민에 빠졌다. 4수를 해서 고려대를 다시 갈까, 아니면 새롭게 출발해 행정고시를 볼까. 그는 고대도 못 간 놈이 무슨 고시냐 싶기도 했고 SKY대학 출신들이 최선을 다해도 될까말까 하는데 내가 해낼 수 있을까?하는 고민 끝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했다. 그러나 연거푸 7번 낙방하고 만다. 대학 2학년부터 고시를 준비했으니 20대 청춘을 고시원에서 보냈죠. 왜 저라고 때려치고 싶은 생각 안해봤겠어요. 고시 공부를 하면서 패자의 아픔을 알게 됐고, 공부를 할수록 겸손함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끝이 안보이던 터널도 끝은 있더라구요. 김 시장은 7전8기로 여덟 번의 도전 끝에 행정고시 합격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그의 나이 서른 하나였다. 솔직히 수재는 아닙니다. 하지만 목표가 있었고 꼭 이루고 싶었습니다. 7전8기 끝에 행시 합격 17년간의 공무원 생활이 시정 큰 자산 시험 운이 없는 편인지 삼수 만에 대학원 석사과정 합격, 재수 만에 대학원 박사 과정 합격, 대학원 수료 후 5년 만에 박사학위 취득, 심지어 운전면허 주행시험도 4수만에 합격했습니다.(하하) 매 시험마다 합격의 문턱에서 제 발목을 잡았던 녀석이 바로 영어였습니다. 행정고시 1차에서 5번이나 떨어진 것도 영어 때문이었고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입학고사에서도 역시 영어는 커다란 걸림돌이었죠. 영어를 피하지 말고 정면돌파 하자 결심하고 하루에 8시간 이상 영어공부에 매달려 결국엔 영어 콤플렉스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포기할 만도 한데 단 한 번도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그는 오뚜기 처럼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그리고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링컨처럼 말이다. 제2의 고향, 의왕시청소년과 어르신들의 천국 만들기 김성제 시장은 국토해양부에 근무하면서 국토계획, 교통체계, 해양영토 등과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그리고 17년간 공무원생활의 경험을 살려 화려하게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그의 첫 정치무대, 의왕은 2002년 초 둥지를 틀면서 제2의 고향이 됐다. 고구마 모양의 의왕시는 백운호수와 왕송호수 등 풍부한 수자원과 수변공간이 있는 조용한 전원도시입니다. 그러나 시 전체면적의 88.7% 이상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다보니 개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역별 특성을 감안한 도시개발과 무엇보다 교육이 지역을 살릴 수 있는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분야도 바로 교육입니다. 김 시장은 2010년 10월 교육전담부서인 창의교육지원과를 신설했다. 그리고 파격적인 예산을 지원했다. 2011년도 교육지원 예산은 2010년도의 4배 수준인 약 143억원. 이는 의왕시 일반회계 예산 1천880억원 중 약 7.6%에 달하는 것으로 열악한 지방재정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분에 이처럼 많은 지원을 한 기초자치단체는 보기 드물다. 이는 오로지 지역 학생들이 걱정없이 청소년 시절을 만끽하고 공부할 수 있는 교육도시를 만들겠다는 김 시장의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의왕시 관내 4개 고등학교 중 기숙사가 없는 의왕고와 백운고에 예산확보를 통해 전국에서 유일하게 관내 모든 고등학교가 기숙사를 갖출 수 있도록 지원했어요. 지난해까지는 학교급식시설과 냉난방시설 개선 등 주로 하드웨어 지원에 치중했다면 올해는 소프트웨어인 특성화 프로그램 위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원어민 영어교사 지원, 수준별 이동수업 지원뿐만 아니라, 과학과 수학 중점학교, 논술토론프로그램, 엘시스테마 교육, 리코더부 운영, 멘토링 프로그램 등 각 학교별로 특성에 맞는 중점사업을 집중 지원하고 있습니다. 김 시장이 교육만큼이나 정성을 쏟는 분야는 바로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사업이다. 의왕시는 지난해까지 경로당 현대화사업을 통해 관내 99개 경로당에 노후화된 벽지, 장판, 씽크대를 교체하고 TV, 냉장고, 에어콘 등 가전제품도 새것으로 들여놨다. 또 치매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99개 병상을 갖춘 건강누리 노인요양원과 전국 최초의 노인건강센터를 개소운영 중에 있다. 김 시장의 어르신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13년 초에는 전국 최대 규모(약 300평)의 노인전용 목욕시설을 개관 예정이다. 황토방, 사우나, 물안마 등 최신식 편의시설을 마음놓고 이용할 수 있어 경기도내 어르신들 사이에선 의왕시가 최고의 노인도시로 회자될 정도다. 백운지식문화밸리 조성사업 본격 추진 김 시장 취임 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꼽자면 약 20년 동안 지지부진했던 백운지식문화밸리 조성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지난 7월 말에는 신세계가 이 지역에 대형복합쇼핑센터를 건립하기로 하고 시와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백운지식문화밸리 사업은 백운호수 뒤편에 약 30만평 규모로 조성하는데 여기에 약 2천400세대의 저층ㆍ저밀도의 타운하우스 등 주거단지를 조성하고, 백화점, 호텔, 명품관, SPA, 비즈니스센터 등이 들어서는 대형 프로젝트다. 이에 대한 김 시장의 포부와 계획도 구체적이다. 취임 후 우리 시의 도시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2011년 5월 의왕도시공사를 설립했습니다. 의왕도시공사에서 백운지식문화밸리 사업을 체계적으로 준비해 지난해 말 국토부의 승인을 받아 그린벨트(GB)를 해제하고, 지난 3월 경기도로부터 개발계획을 승인받았습니다. 순차적인 사업 진행으로 의왕시의 새로운 도시개발을 이끌 예정입니다. 앞으로 백운지식문화밸리가 친환경 명품주거단지로 조성돼 의왕시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백운지식문화밸리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오는 2020년까지 15개 지역 구도심 재개발ㆍ재건축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면 김 시장이 슬로건을 내건 명품창조도시 건설이 실현될 것으로 관망하고 있다. 이 같이 밤낮없이 의왕맨으로 살아온 김 시장의 노력이 성과를 맺기 시작하면서 의왕시의 대외 평가도 저절로 좋아졌다. 증거는 많다. 녹색교통대상, 국가브랜드대상, 국토디자인대상, 국제비지니스본상, 율곡대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62개의 크고 작은 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상은 전국 230개 시군구를 대상으로 한 제16회 자치경영대상에서 전국 최고의 종합대상을 수상한 것. 김 시장은 현재의 삶에 100%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했다. 개인적인 여유가 없고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 주민들에게 희망을 키워주는 역할이 마냥 좋고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고구마 모양의 의왕시는 경기도를 넘어 대한민국 최고의 도시가 될 수 있는 인적 잠재력과 천혜의 환경조건을 가지고 있는만큼 교육, 복지, 도시개발에 힘쓰면 희망과 기대로 활력이 넘치는 의왕시로 발전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