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 만나고싶었습니다] 의왕시장 김성제

불행도 두 손든 ‘링컨같은 남자’

가족 파산, 어머니 및 약혼자 사망, 정신병원 입원, 연이은 낙마…. 그리고 1860년 대통령 당선. 미국인들이 가장 위대한 대통령 1위로 꼽는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의 일대기다.

링컨은 넘어질 때마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괜찮아, 길이 약간 미끄럽긴 해도 낭떠러지는 아니야.” 이러한 링컨을 닮은 남자가 있다. 김성제 의왕시장이다.

사람들은 그를 ‘오뚜기’ 또는 ‘의지의 한국인’으로 부른다. 국토해양부 서기관 출신으로 정치인이 됐으면 한국 사회에서 탄탄대로의 ‘출세길’을 달려온 거 아닌가. 그런데 왜 ‘오뚜기’일까? 11월의 첫날, 김 시장을 만났다. 그는 유쾌했다.

자신의 치부를 솔직하게 공개하는 시장 앞에서 기자는 무장해제 되고 말았다. 링컨을 닮은 남자 이야기는 녹차의 고장,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시작됐다.

낙방, 낙방, 또 낙방…도전, 도전, 또 도전

김성제 시장은 어렸을 때 이야기를 꺼내면서 상장 자랑부터 했다.

“보성이 고향인데 어렸을 때 그림을 잘 그렸어요. 하루에 상장을 4개까지 받은 적이 있었거든요(하하). 특히 만화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화가가 됐었어야 할 소년은 지금 정치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선천적으로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을 가진 그는 중학교 시절, 정치인이 되겠다는 구체적인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학창시절은 화려했다. ‘박치기대왕’, ‘닮싸움의 1인자’였던 그는 광주 숭의중학교 재학시절 학생회장을 지냈고 동신고등학교 땐 선도부장을 맡았다. 교문 앞에 서서 학생지도 선생님과 지각생, 복장 및 두발불량 학생들을 단속하면서 나름 후배나 동료들에게 두려움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시절이 그의 인생에 있어 말 그대로 ‘화양연화(花樣年華)’였다.

“약한 친구들을 못살게 하는 녀석들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때려주기도 했죠. 아마도 이러한 성격은 구한말 의병활동을 하셨던 외증조 할아버지와 교육자셨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던 학창시절, 그에게 실패, 좌절이란 단어는 먼나라 이야기였다.

승승장구하던 그의 첫번째 시련은 대입 낙방. 

“목표가 고려대 정치학과였습니다. 고3때도 선도부장을 하면서 나름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는데 시험결과가 좋지 않았죠. 전남대 공대를 응시했다 낙방하고 삼수 끝에 경희대 경제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인생의 첫 관문인 대입 실패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고 재수 하는 동안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하하)”

김 시장은 군대 제대하고 진로고민에 빠졌다. 4수를 해서 고려대를 다시 갈까, 아니면 새롭게 출발해 행정고시를 볼까. 그는 “고대도 못 간 놈이 무슨 고시냐 싶기도 했고 SKY대학 출신들이 최선을 다해도 될까말까 하는데 내가 해낼 수 있을까?하는 고민 끝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했다. 그러나 연거푸 7번 낙방하고 만다.

“대학 2학년부터 고시를 준비했으니 20대 청춘을 고시원에서 보냈죠. 왜 저라고 때려치고 싶은 생각 안해봤겠어요. 고시 공부를 하면서 패자의 아픔을 알게 됐고, 공부를 할수록 겸손함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끝이 안보이던 터널도 끝은 있더라구요.”

김 시장은 7전8기로 여덟 번의 도전 끝에 행정고시 합격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그의 나이 서른 하나였다.

“솔직히 수재는 아닙니다. 하지만 목표가 있었고 꼭 이루고 싶었습니다.

7전8기 끝에 행시 합격

17년간의 공무원 생활이 시정 큰 자산

시험 운이 없는 편인지 삼수 만에 대학원 석사과정 합격, 재수 만에 대학원 박사 과정 합격, 대학원 수료 후 5년 만에 박사학위 취득, 심지어 운전면허 주행시험도 4수만에 합격했습니다.(하하) 매 시험마다 합격의 문턱에서 제 발목을 잡았던 녀석이 바로 영어였습니다.

행정고시 1차에서 5번이나 떨어진 것도 영어 때문이었고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입학고사에서도 역시 영어는 커다란 걸림돌이었죠. 영어를 피하지 말고 정면돌파 하자 결심하고 하루에 8시간 이상 영어공부에 매달려 결국엔 영어 콤플렉스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포기할 만도 한데 단 한 번도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그는 오뚜기 처럼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그리고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링컨처럼 말이다.

제2의 고향, 의왕시…‘청소년과 어르신들의 천국’ 만들기

김성제 시장은 국토해양부에 근무하면서 국토계획, 교통체계, 해양영토 등과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그리고 17년간 공무원생활의 경험을 살려 화려하게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그의 첫 정치무대, 의왕은 2002년 초 둥지를 틀면서 제2의 고향이 됐다.

“고구마 모양의 의왕시는 백운호수와 왕송호수 등 풍부한 수자원과 수변공간이 있는 조용한 전원도시입니다. 그러나 시 전체면적의 88.7% 이상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다보니 개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역별 특성을 감안한 도시개발과 무엇보다 교육이 지역을 살릴 수 있는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분야도 바로 교육입니다.”

김 시장은 2010년 10월 교육전담부서인 창의교육지원과를 신설했다. 그리고 파격적인 예산을 지원했다. 2011년도 교육지원 예산은 2010년도의 4배 수준인 약 143억원. 이는 의왕시 일반회계 예산 1천880억원 중 약 7.6%에 달하는 것으로 열악한 지방재정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분에 이처럼 많은 지원을 한 기초자치단체는 보기 드물다.

이는 오로지 지역 학생들이 걱정없이 청소년 시절을 만끽하고 공부할 수 있는 교육도시를 만들겠다는 김 시장의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의왕시 관내 4개 고등학교 중 기숙사가 없는 의왕고와 백운고에 예산확보를 통해 전국에서 유일하게 관내 모든 고등학교가 기숙사를 갖출 수 있도록 지원했어요. 지난해까지는 학교급식시설과 냉난방시설 개선 등 주로 하드웨어 지원에 치중했다면 올해는 소프트웨어인 특성화 프로그램 위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원어민 영어교사 지원, 수준별 이동수업 지원뿐만 아니라, 과학과 수학 중점학교, 논술·토론프로그램, 엘시스테마 교육, 리코더부 운영, 멘토링 프로그램 등 각 학교별로 특성에 맞는 중점사업을 집중 지원하고 있습니다.”

김 시장이 교육만큼이나 정성을 쏟는 분야는 바로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사업이다.

의왕시는 지난해까지 ‘경로당 현대화사업’을 통해 관내 99개 경로당에 노후화된 벽지, 장판, 씽크대를 교체하고 TV, 냉장고, 에어콘 등 가전제품도 새것으로 들여놨다. 또 치매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99개 병상을 갖춘 ‘건강누리 노인요양원’과 전국 최초의 ‘노인건강센터’를 개소·운영 중에 있다.

김 시장의 어르신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13년 초에는 전국 최대 규모(약 300평)의 노인전용 목욕시설을 개관 예정이다. 황토방, 사우나, 물안마 등 최신식 편의시설을 마음놓고 이용할 수 있어 경기도내 어르신들 사이에선 의왕시가 최고의 노인도시로 회자될 정도다.

‘백운지식문화밸리 조성사업’ 본격 추진

김 시장 취임 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꼽자면 약 20년 동안 지지부진했던 ‘백운지식문화밸리’ 조성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지난 7월 말에는 신세계가 이 지역에 대형복합쇼핑센터를 건립하기로 하고 시와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백운지식문화밸리 사업은 백운호수 뒤편에 약 30만평 규모로 조성하는데 여기에 약 2천400세대의 저층ㆍ저밀도의 타운하우스 등 주거단지를 조성하고, 백화점, 호텔, 명품관, SPA, 비즈니스센터 등이 들어서는 대형 프로젝트다.

이에 대한 김 시장의 포부와 계획도 구체적이다.

“취임 후 우리 시의 도시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2011년 5월 의왕도시공사를 설립했습니다. 의왕도시공사에서 백운지식문화밸리 사업을 체계적으로 준비해 지난해 말 국토부의 승인을 받아 그린벨트(GB)를 해제하고, 지난 3월 경기도로부터 개발계획을 승인받았습니다. 순차적인 사업 진행으로 의왕시의 새로운 도시개발을 이끌 예정입니다. 앞으로 백운지식문화밸리가 친환경 명품주거단지로 조성돼 의왕시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백운지식문화밸리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오는 2020년까지 15개 지역 구도심 재개발ㆍ재건축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면 김 시장이 슬로건을 내건 ‘명품창조도시 건설’이 실현될 것으로 관망하고 있다.

이 같이 밤낮없이 ‘의왕맨’으로 살아온 김 시장의 노력이 성과를 맺기 시작하면서 의왕시의 대외 평가도 저절로 좋아졌다.

증거는 많다. 녹색교통대상, 국가브랜드대상, 국토디자인대상, 국제비지니스본상, 율곡대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62개의 크고 작은 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상은 전국 230개 시·군·구를 대상으로 한 제16회 자치경영대상에서 전국 최고의 종합대상을 수상한 것.

김 시장은 현재의 삶에 100%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했다. 개인적인 여유가 없고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 주민들에게 희망을 키워주는 역할이 마냥 좋고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고구마 모양의 의왕시는 경기도를 넘어 대한민국 최고의 도시가 될 수 있는 인적 잠재력과 천혜의 환경조건을 가지고 있는만큼 교육, 복지, 도시개발에 힘쓰면 희망과 기대로 활력이 넘치는 의왕시로 발전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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