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야인시대'의 '상록수'

대한민국이 바뀌고 있다. 20여년 전의 금지곡이 대통령의 애창곡이 될 만큼 바뀌었다. 그릇된 권력에 항거하는 현장마다 목청껏 외치던 ‘상록수’가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 취임식에 울려 퍼졌다. 대한민국은 정지되어 있다. ‘야인시대’에서의 좌익은 여전히 빨갱이에 머물러 있다. 폭력으로 집약되는 한 인물의 일생이, 영웅이 실종된 시대의 대체영웅으로 화려하게 재등장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몽양 여운형의 고향 양평의 군민회관에서 ‘2003년에 돌이켜보는 몽양 여운형’ 세미나가 열렸다. 필자는 말석에서 그 준비를 거들었다. 개최 이틀 전, 점잖은 어른에게서 지엄한 꾸중을 들었다. 왜 빨갱이를 모시느냐, 는 질타를 한참 듣고 조심스레 그리 여기는 까닭을 여쭸다. ‘야인시대’도 안 보느냐, 는 반문에 깊이 머리 숙여 사죄하는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점잖은 어른에게, 더불어 몽양 여운형 선생에게. 점잖은 어른에게는, 편협한 시각을 밑천 삼아 수백 수천만을 대상으로 붓을 휘두르는 글쟁이의 객기에 대해 동일 업종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사죄를 올렸으며, 몽양 선생에게는 반세기가 훌쩍 넘었음에도 여태 존함 석자 떳떳이 모시지 못하는 고향 후배의 한 사람으로서 사죄를 올렸다. 대중문화는 시대의 거울이다. ‘야인시대’와 ‘상록수’가 동시에 각광받는 작금의 풍토는 2003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다. 관행에 안주하려는 기운과 개혁으로 내닫는 기운이 어느 쪽이 더 강하다 할 수 없을 만큼 공존하고 있음을 또렷이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근대사는 비극으로 점철돼 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생각이 다른 사람은 곧 적이 되는, 지극히 단순하고 위험한 이분법이 사회전반을 장악한 때문이다. 몽양 여운형은 그 이분법에 저항했으며, 그 이분법에 희생당한 사람이다. 마치 바둑판에서처럼 흑 아니면 필히 백을 쥐어야 하는, 극좌와 극우만이 존재하던 지극히 단순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흑과 백을 모두 쥐었으며, 흑과 백을 모두 물리친 사람이다. 2003년 오늘, 그 이분법은 여전히 건재하다. 극렬한 反美가 아니면 줏대 없는 親美로 분류되고, 무작정의 통일지상주의자 아니면 피도 눈물로 없는 반민족주의자로 분류되고 있다. 다만, 예전처럼 총칼로 대립하지 않는다는 게 그나마 역사의 진보랄까. 새로운 정부의 탄생을 지켜보며, 아주 오래된 꿈을 다시 꿔본다. 보수파는 역사가 남긴 교훈으로 진보파의 서두름을 지혜롭게 제어하고, 진보파는 보수파의 신중함을 디딤돌 삼아 높이 도약하는 꿈을. ‘생각이 다른 사람’의 定義가 ‘무슨 수를 쓰든 교정, 혹은 말살의 대상’에서 ‘서로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친구, 혹은 합의도출의 대상’으로 개혁되기를 꿈꿔본다. 더불어 일찍이 이러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몽양 여운형 선생을 비롯한 숱한 선각자들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예우가 뒤따르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기고/'감사하는 마음'

충북 음성 꽃동네에 가면 건물 현관에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던 내가 나이 70이 되고 보니 마음에 다가올 뿐 아니라 몸으로도 느낄 수가 있다. 젊은 나이엔 어려운 가정 형편이 불만스러워 ‘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 명동 한복판에 코라도 박고 돌아가셨다면 보상금이라도 타서 쓸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주위 모든 사람과 일에 감사할 뿐인데 말이다. 지난 날 나라살림이 어렵고 가난하여 월급도 제대로 못받고 기를 못펴고 살았어도 아이들 교육은 열과 성의를 다했었다. 그 결과로 아이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공헌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볼 때 감사함을 느낀다. 나 또한 공직 생활에서 명예롭게 퇴직하고 연금으로 어렵지 않게 살아가고 있으니 사회와 이웃들에게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독일에서 유명한 재상을 지낸 사람이 젊었을 때 시골 여관에 묵게 되었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누군가가 신발을 훔쳐가 난처한 일을 당하게 되었다. 잃어버린 신발 때문에 화가 나서 훔쳐간 사람을 욕하고 저주하는 것을 보다 못한 친구가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기 위해 함께 교회를 찾아갔다. 교회에서 기도하는 이들 중에 두 다리를 잃은 사람의 기도 소리를 듣게 되었다. “하나님! 교통 사고로 양다리를 잃었으나 양팔을 남겨주신 것은 이 양팔을 이용하여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하라는 참뜻이 있는 것으로 믿사오니 저에게 더욱 강한 힘과 봉사의 기회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는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크게 감동하고 뉘우쳐 일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기에 어려웠던 독일을 부흥시키는데 큰 공헌을 하고 역사에 기록될 수 있었다 한다. 또한 외국 어느 사회학자의 실험 결과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간사하고 매사에 감사할 줄 모르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다. 이 사회학자는 어느 작은 마을을 선정하여 일주일간 집집마다 백불씩을 주고 다녔다. 사람들은 미친 사람이 나타났다고 소문을 내면서 돈이 진짜인지 의심을 했고, 그 다음주엔 마을 사람들이 시간이 되면 대문에 나와 돈을 주러 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세번째 주에는 돈을 주지 않고 그냥 지나갔더니 마을 사람들이 쫓아오면서 내 돈은 어디에 두고 가느냐며 소란이 일어났다고 한다. ‘우리 인간들은 주면 줄수록 양양’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며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 세상에는 해 볼 것도 많고 감사해야 할 일도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생이란 해석’이란 말도 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긍정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지혜를 가져 보자는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우선 감사 할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주어진 시간을 아껴 최선을 다하며 현실에 감사함을 잊지 말자. 지나간 과거는 후회해도 소용없고, 미래는 불확실한 것이므로 현재에 충실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 때 이 세상은 배로 돌려준다는 교훈을 젊은 세대에게 알려 주어야 하겠다. 또한 나이든 노년층에게는 지금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음을 감사하라고 말하고 싶다. 얼굴에 주름이 파이고 백발이 되더라도 인생의 연륜이 쌓이는 훈장으로 받아들여 감사의 마음을 지닐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감사하는 여유를 갖자!

기고/'국민의 사회적 통합'

말할 것도 없이 민주국가는 많은 사람들이 의견차이를 보이고 그 차이를 토론 그리고 협상과 타협을 통해서 최대공약수를 만들어 정책에 또는 정치에 반영하게 되어 있는 바, 많은 사람들의 견해차이는 어쩌면 민주주의의 생명이고, 또 토론, 협상·타협을 거쳐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요체이다. 그리고 정책에 의하여 지지를 결정하여야지, 정치지도자 또는 당의 지도자가 어느 지역의 출신자인가 또는 어느 지역을 배경으로 한 정당 출신인가에 따라 생각 내지 지지자가 다르게 된다는 말하자면 지역감정을 기반으로 하여 나오는 의견차이는 나라 발전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선거에서 자기 지지자를 영원히 자기편으로 묶어두기 위하여 양보도 타협과 협상도 안하고, 계속 대안없는 파괴적 비판만 한다면, 비판하는 것이 어떤 문제를 풀면서 앞으로 나가기 위한 토론적 비판이 아니라, 자기가 계속 당선되려는데 목적을 둔 비판이다. 이런 태도에 상당수 국민이 호응하고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불행하게도 원초적 지역감정과 집단적 이기주의가 암암리에 도사리고 있다는 데 큰 문제가 있고, 정치인은 그것을 모를리 없다. 국민의 사회적 통합을 통한 나라발전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쪽으로 언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인은 여러번 지적한 바 있지만, 그 구도를 스스로 깨려는 노력보다 자기에게 유리한 배경을 무슨 확신같은 것을 가지고 언행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 TV에서 신경정신과 의사의 말이 실감난다. A는 자기가 병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 치료가 가능하나, B는 병들어 있는 자기를 온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치료가 어렵다는 말은 어쩌면 우리 정치현실에도 타당성이 있는 말인 듯 싶다. 자기 자랑같아 대단히 송구스러우나 나의 고등학교 1년때의 일이다. 반장선거 결과 나는 26표 또 한 사람은 25표, 나머지는 기권이었다. 한표차이로 내가 당선되었지만 나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낙선된 사람들의 운동원, 그리고 지지자들이 대안이 있나 없나, 잘잘못을 덮어두고 오직 비판만 하고, 반대만 하면 어떻게 하나 였다. 고등학교라 뭐 심각한 문제는 없었고, 다행히 선거가 끝나자 감정을 다 털어 버리고, 어울리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끝까지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적대시하지 않고 의견을 경청하고 설명하고 설득하였더니 원만히 몇가지 협조를 얻을 수 있었던 기억을 한다. 우리 속담에 엎지른 물 도로 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다시 담을 수 없는데도 물을 쏟은 것을 끝없이 문제 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면 어느 편을 두둔하는 것이 될까. 물론 항아리의 물을 과실로 엎질르는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앞으로의 대책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민족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고, 정치지도자의 통치행위(정치문제)의 차원이라면 물고 늘어지지 않는 비판,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는 정도의 사실 규명은 필요하고, 또 그것으로 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즉 그 정책의 당부는 멋 훗날 역사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본다. 정치가 더 이상 국민을 분열시키거나 불안하게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정치인들은 어떻게 언행하는 것이 국민의 사회적 통합에 이바지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주기 바란다. 특히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맹목적이 아닌 국가발전을 위하고 국민을 안정시키는 것인가를 언론기관은 깊이 고려해서 보도해 주기 바란다.

기고/다뉴브강의 물결

아침 일찍 일어나 필자가 묵고 있는 다뉴브 온천호텔 곁을 흐르는 다뉴브강가로 산책을 나간다. 강물의 유속이 생각보다 빠르다. 강의 흐름을 유심히 관찰하며 9세기 마자르족 추장이 당시 강유역에 거주한 게르만족을 몰아내고 나라를 건설하였을 것이다. 필자가 머물고 있는 도나우 온천호텔은 우리나라의 여의도에 해당하는 강안의 섬에 위치하고 있는데 전면으로는 합스부르크왕가가 건설한 부다성과 어부의 요새등이 보이고, 반대편으로는 영국의 국회의사당과 견줄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한 신고딕 양식의 국회의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부다페스트는 다뉴브강을 사이로 서쪽의 부다지역과 동쪽의 페스트지구로 나누어져 상호왕래가 없었으나, 최초의 세치니 다리(일명 체인브리지)가 놓이면서 양쪽의 교류가 활발해졌으며, 결국 한 도시로 합쳐져 도시명도 부다페스트가 된 것이다. 헝가리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헝가리야말로 동·남·중부 유럽의 센터에 위치하여 앞으로 유럽지역 발전의 중심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이곳 경제교통성의 중소기업총국장을 만났다. 내년 5월로 예정된 헝가리국의 EU가입에 자신감을 가지고 신제도의 정비, 시스템의 구축, 각종 법령의 제·개정등으로 대단히 바쁜 가운데 중소기업(이곳 EU기준으로 250명 종업원 기준)의 경제·산업 및 무역에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 헝가리는 물류기지의 건설, 고속도로 등 교통망 확충, 세제의 정비 등으로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삼성, LG, 기아 등에서 미래를 향한 투자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간을 내어 이곳 투자청 CEO Peter Redzsky를 만났다. 투자관련 협력분야이야기를 나누면서 필자는 최근 헝가리 인건비의 상승(약 500 EU/월)등으로 떠나가는 외국인 다국적기업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IBM의 철수라든가 필립스의 조업중단, 푸조의 슬로베니아에로의 투자결정등 몇가지 네거티브한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우려와 대책 등에 관한 것이었다. CEO는 IBM과 필립스는 철수가 아니라 일부 품목의 생산중단이고, 여기서 경쟁력이 없는 품목에 대한 중국이전이므로 큰 문제는 없다고 하고, 경제란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겠느냐는 달관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외국인투자의 최적조건으로 첫째 기후, 둘째 원자재공급, 셋째 양질의 인력, 넷째 원활한 물류, 다섯째 시장, 여섯째 기술공급의 편의성 등을 들고 헝가리가 가지고 있는 강점, 내년 25개국으로 늘어나는 EU가입국의 영향력과 우리나라가 가질 수 있는 비교우위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기후, 기술, 원자재 공급문제와 물류, 인력, 시장의 규모 및 다양성은 우리나라도 하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유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정부에서 동북아 물류중심국가건설을 정책목표로 삼고 기업하기 편한 제도의 기반조성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방향을 매우 잘 설정했다고 보여진다. 약 13년전 필자가 제네바에 근무하고 있을 때 헝가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부다성 앞 어디엔가 차를 주차하고 잔디밭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애들이 뛰어놀았다. 그때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그 지독한 매연이었다. 우리들의 옷에 시커먼 검댕이가 붙고 온통 애들의 옷이 검정색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구식 라다자동차에서 캬브레타방식으로 처리된 매연연기는 아름다운 부다페스트를 오염 시켰는데 세월이 흘러 지금 와보니, 아주 체계화되고, 깨끗한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유목민족인 마자르족(훈족)이 9세기에 건설한 도시가 합스부르크가의 통치와 양차의 세계대전을 거치고, 구소련 위성국에서 독립하면서 새로운 자유경제체제로 거듭나고 있는 헝가리, 우리들과 어순도 같고 어쩌면 우랄알타이계 동양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직한 헝가리, 21세기를 함께 살아가는 한국과 함께 공동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오늘도 그때의 도나우강은 빠른 속도로 흑해를 향해 흘러내리고 있다. 아, 아름다운 다뉴브강이여!

기고/쓰레기와 시민정신

입식 주방과 함께 가스 연료가 대중화하면서 연탄 쓰레기가 사라졌다. 연탄이 주연료로 쓰일적엔 연탄재가 쓰레기의 주종을 이루었다. 연탄재 쓰레기는 정말 골칫거리였다. 잘못하면 깨지곤하여 엉망이 되기도 했지만, 겨울철 같으면 아궁이마다 두어개씩 나오는 여러 아궁이 것을 다 들고 쓰레기차에 나르는 주부들의 고역은 정말 힘든 것이었다. 지금의 쓰레기는 재활용품을 고르고 나면 종이류가 대부분이다. 연탄재처럼 힘들게 들고 나가는 것도 아니다. 쓰레기 비닐봉지에 담아 집앞에 놔두면 쓰레기차가 실어간다. 이토록 손쉬운 쓰레기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다. 비규격 봉지에 가득히 담긴 쓰레기가 터져나와 자기 집앞에서 마구 뒹굴어도 방관하는 것을 자주 본다. 심지어는 남의 집 앞이나 골목길에 내다 버리기도 한다. 이래서 살벌한 문구가 적힌 경고판이 여기저기 나붙은 것을 볼 수가 있다. 비규격 봉지에 담은 쓰레기를 청소차가 수거해 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버리는 사람들에게 있다. 쓰레기를 많이 내면 내는 것만큼 처리비용을 더 부담하는 쓰레기 종량제는 지극히 합리적이다. 이 좋은 제도가 실시된 이후 대체적으로 골목길 청소가 사라진 것은 유감이다. 이웃과 함께 사는 골목을 쓸고나면 쓰레기를 자기돈 들여 규격 봉투를 사서 버려야하기 때문이다. 전에는 골목길 자진 청소에 노력부담만 하면 됐지만 이젠 버리는데 드는 돈까지 자진 부담해야 하므로 동네 독지가가 아니면 선뜻 내키지 않는 일을 안하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뜩이나 골목 청소가 잘 안되고 있는 판에 자기집 쓰레기 하나 제대로 버리지 않아 골목을 더 어지럽히는 것은 시민정신의 반역이다. 쓰레기 봉투값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시민생활의 기본이다. 정 부담이 되면 쓰레기 봉투값을 아낄 생각을 말고 쓰레기 배출을 줄일 생각을 해야한다. 봉투값 얼마 때문에 쓰레기를 아무 봉지에나 담아 두리번거리며 길거리에 몰래 버리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자신의 아이들이 본다면 어떻게 여길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설령 아무도 못보았다손 치더라도 인간에겐 쓰레기 봉투값과 바꿀 수 없는 기본양심이란 게 있다. 청소행정에는 아직도 개선돼야 할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긴 있다. 하지만 쓰레기 무단투기를 일삼는 시민이 많으면 많을 수록이 개선은 요원하다. 시민생활의 기초 질서를 파괴하는 쓰레기 무단투기 행위는 이래서 시민사회의 암적 존재다. 일본의 요코하마에 갔을 때다. 일행 중 누군가가 길가다가 휴지를 무심코 땅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뒤에 오던 승용차가 멈추면서 웬 신사가 내리더니 그 휴지를 줍는 것이었다. 그 일본 사람은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고는 좀 민망해 하면서 “휴지가 이렇게 버려지면 시민이 세금으로 내는 처리 비용이 더 들어서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시민정신이 아닌가 한다. 물론 일본 사람 중에도 휴지를 버리는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안버리는 것이 보편화된 시민사회, 이러한 시민정신이 오늘의 일본을 일군 저력으로 생각된다. 쓰레기 무단투기는 비단 쓰레기에 국한하는 일이 아니다. 시민사회, 시민의식을 알아 볼 수 있는 잣대다. 만물이 새롭게 시작하는 이 새 봄을 맞아 연탄재도 없어 버리기 좋은 쓰레기를 제대로 버릴 줄 아는 성숙된 시민정신의 새로운 다짐이 다같이 있기를 바라고 싶다.

기고/'학기제를 바꾸자'

학교에서 교육의 편의상 학년을 세분한 일정한 기간을 학기라고 한다. 한국의 ‘초·중등교육법 제24조에 학교의 학년도는 3월 1일부터 시작하여 다음해 2월 말일까지로 한다’로 되어 있고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44조(학기)에는 법 제24조 제3항에 학교의 학기는 매 학년도를 두 학기로 나누되 제1학기는 3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제2학기는 9월 1일부터 다음해 2월말까지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 가입 191개국 가운데 두 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9월 신학기제를 택하고 있으며, 3월 신학기제(新學期制)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뿐이고 일본은 4월 신학기제로 운영하고 있다. 3월 신학기에는 일본이 점령했던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심어 놓은 교육제도의 하나이고, 일본이 만든 세계 유일한 학제다. 1945년 8·15광복과 더불어 신학기를 9월부터 2월까지, 다음 학기를 3월부터 8월까지로 개정한 후 1950년에 신학기를 9월에서 4월로 변경하였고, 1961년 교육법 개정에 따라 학년초를 3월로 변경하였다. 그 후 여러번 정권이 바뀔때마다 교육 개혁을 외쳐왔지만 아직까지 학기제는 막부(幕府)시절부터 전래되는 ‘천황 제(祭)’와 연관이 있다는 설이 있는 일본의 학기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일본이 패망한 후 3월 학기제를 사용했던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서구식의 9월 신학기제를 모두 바꾸었다. 유독 한국만이 3월 학기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나라는 어떤가. 3월에 새학기를 시작해 6월말에서 7월초까지를 전후로 1학기가 끝나며, 이어 여름방학이다. 2학기는 9월부터 11월 중순이나 12월까지다. 겨울방학은 1~2월이고, 며칠간의 봄방학을 한다. 3월 학기제는 9월 학기제와 시간적으로 맞지 않아 학기제를 달리하는 나라들과 전반적인 교육 활동을 공유할 수 없는데 문제가 있다. 학문 교류, 연구 활동, 입학 문제 등 모든 것이 9월 학기 중심으로 짜여진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학술 세미나 같은 것도 12월 중순부터 1월 초순 사이 20여일간 집중되어져 있기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중등도 마찬가지이고 대학 입시 일정이 다른 것도 문제다. 여름방학 이용도 쉽지 않다. 9월 신학기제를 운영하는 나라들은 가급적 여름철에 학술 대회를 피하고, 가족과 여행하며 즐겁게 지내거나 9월부터 시작되는 신학기를 준비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에 학문 교류가 어렵다. 그래서 교환교수로 가도 학기 중간에 걸려 시간만 낭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두가 다른 나라와 정반대로 학제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불이익이다. 중등학교나 대학의 유학생들도 학기를 맞추지 못해 시간을 낭비하기는 똑같다. 우리는 무슨 이유로 현행 제도(3월 신학기제)를 고집하고 있는 것인가. 어느 정권 때는 거론됐으나 혼란이 야기된다며 흐지부지 했고, 그 후 우물쭈물하다가 오늘날까지 온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개선해야 옳지 않을까. 9월 신학기제 도입은 학문 연구와 국가발전적 측면에서도 이익이 많거니와 시간의 효율적 이용 측면에서도 하루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학문의 세계가 ‘글로벌시계’에 맞추어지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각종 국제 행사를 비롯해 해외 대학과의 학문 교류에도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 될 것으로 보이고, 유학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에 따른 이익과 수확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들이다. 9월 신학기제는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입학 시기 조정뿐 아나리 사회 전반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더 나아가 교육부 등의 배타적인 각종 제도가 자연스럽게 개설될 전망도 엿보인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교육 개혁차원에서 깊이 논의하고 검토해 볼만한 문제다.

기고/오지학교의 눈물젖은 졸업식

바야흐로 졸업식 시즌. 파주시청에서도 차로 한 시간을 더 가야하는 휴전선 아래 오지학교 어유중학교(교장 김진현)의 졸업식에 다녀왔다. 총 재학생 36명중 1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는 어유중학교의 졸업식장은 다른 학교에서는 보기 힘든 감동 그 자체였다. 신입생이 계속 줄어 한동안 폐교가 논의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맞이하는 졸업식인지라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들이 감회에 젖어 눈물지었고, 3년의 성상을 인내하고 어엿한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졸업생과 선배들을 떠나보내는 후배들도 안타까움에 눈물바다가 되었다. 이는 옷을 찢고 밀가루 세례를 퍼붓는 등 도시 학교의 졸업식과는 거리가 먼 순수함이 돋보여 더 가슴 뭉클했다. 어유중학교는 파주시 최북단 임진강변에 위치한 초미니 학교다. 이 학교는 한국의 최오지 휴전선 부근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학생의 인성교육과 특기교육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특별활동 및 특기·적성교육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국제화 시대에 대비한 영어교육의 활성화를 학교의 특색사업으로 추진,지난해에는 전교생이 참여하는 ‘영어연극 및 영어노래부르기 축제’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교육활동을 전개했다. 뿐만 아니라 경기도 우수교육 교육감 표창, 과학상상 그림그리기대회 최우수, 파주시민 작품공모전 산문부 입상 등 많은 상을 수상했고 졸업생 전체가 의정부여고 및 의정부공고(전교 2등) 등 명문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진학하였다. 그러나 오지 학교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 우선 어유중학교와 같은 오지 학교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오지 학교를 폐교하지 말고 대신 투자를 강화하여야 한다. 오지 지역에서는 학교가 지역의 문화센터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인식하여 오지 학교에 대한 투자를 강화, 대도시 중심의 문화편중 현상을 극복하고 지역문화 창달이라는 대업을 이루어야 한다. 대한민국 어딘들 우리 국토가 아닌 곳이 있는가. 대한민국 어딘들 우리 국민이 아닌 사람(학생)이 있는가. 오지 학교에 대한 투자가 강화될 때에만 지역·계층·세대간의 화합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취지를 살리기 위해 학교는 물론 교육계, 일반 시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힘을 모아주어야 하겠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 국토의 한 자락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많은 이들의 관심과 후원이 있기를 기대한다. 지금도 어유중학교 졸업생 대표의 눈물젖은 졸업식 답사가 들려오는 듯 하다. “존경하는 선생님! 언제나 사랑해 주시고 열심히 저희를 가르쳐 주시고, 저희와 함께 뛰어주신 선생님의 모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선생님 그때는 왜 그리도 철이 없었는지요. 그때엔 선생님의 꾸지람이, 충고가 왜 그리도 싫었는지, 저희를 위한 것이란 걸 알면서도 말입니다. 청개구리마냥 말썽이 잦았던 저희가 비뚤어질세라 항상 염려해 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었음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3년의 중학생활을 마치고 이제는 고등학생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디려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불안한 마음도 상당하지만 강인하고 바르게 자라기를 바라시는 선생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또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오늘도 어유중학교 졸업생들이 졸업식장에서 보여준 진실과 순수, 그리고 지난 3년간 어유중학교에서 갈고 닦은 교훈 ‘성실과 정직’으로 자기 분야에서 우리 나라, 나아가 세계에서 으뜸가는 인물로 자라리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기고/나이 듦에 대하여

빵집 주인은 자기가 정성들여 구워낸 따끈한 빵을 손님 앞에 내 놓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작가들은 신간이 나오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증정하는 특별한 기쁨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신문이나 잡지사에 들고 가서 신간소개를 부탁하는 즐거움도 보통의 즐거움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도 책을 낼 때마다 이런 기쁨과 즐거움을 톡톡히 맛보았다. 책을 받은 사람들은 대개 전화로 고맙다는 인사를 보낸온다. 사람에 따라서는 축전을 보내주거나 화분을 보내주기도 한다. 또 문학담당 기자들은 지면을 할애해 책을 소개해 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거기서 보이지 않는 힘을 얻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고맙다는 인사 끝에 꼭 첨가하는 말이 있다. ‘놀랍다’느니, ‘대단하다’느니 하는 인사가 그것이다. 그 인사 속에는 60이 넘은 나이에도 용케 책을 냈다는 말이 숨겨져 있다. 나이는 신문의 책 소개에도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 어느 신문은 ‘60이 넘은 나이에도…’라고 노골적인 표현을 썼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동을 한다는 찬사의 뜻을 그렇게 한 것이다. 또 다른 신문은 나를 더욱 격려해준다는 뜻에서 ‘60대의 나이에도 현재진행형의 작가로…’라고 치켜세웠다. 신문만이 아니다. 책을 낸 출판사도 나의 약력을 소개하는데 ‘지금도 어린이를 위해 좋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고 했다. 모두가 좋은 의미로 한 말이겠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내용연수가 지난 물품쯤으로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웬지 씁쓰레했다. 나는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을 이럴 때 새삼 느끼곤 한다. 그와 아울러 우리 나라의 동화작가들이 60이 지나면 하나둘씩 붓을 놓는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한번은 어느 자리에선가 이런 나의 심정을 토로했더니 같은 또래의 작가가 그건 작가의 탓이 아니라며 주위의 탓으로 돌렸다. 출판사마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만 좋아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출판사의 원고 검토도 나이 든 작가에게는 심적인 부담이 아닐 수 없다는 실토도 나왔다. 하긴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모처럼 준 원고를 되돌려 받는다는 것은 작가에게 큰 충격이면서 낭패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나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그 작가의 손을 꼭 잡고 우리 더 열심히 쓰자는 말로 격려를 했다. 그렇다. 나이가 결코 훈장은 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패배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나의 글이 늙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올해도 나는 신간을 준비중에 있다. 원고는 이미 출판사에 넘긴 상태다. 한 권은 저학년 장편동화이고, 다른 한 권은 그림동화책이다. 내 깐에는 똑같이 재미있다 싶은 원고들이다. 나는 앞으로도 열심히 나이를 먹으면서 동화 쓰는 작업도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래서 나의 동화책이 많은 어린이의 손에 들려져 군밤처럼 따근해지고 싶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들의 동생, 그 동생의 또 동생들한테서도 같은 사랑을 받고 싶다. 욕심은 또 있다. 이왕이면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의 손에도 가끔씩 들려져 행복해지고 싶다. 한 세상을 억척스레 살아내는 이 땅 어른들의 꺼칠한 손맛도 느껴보고 또 그들에게 작은 위로도 되어 드리고 싶다. 이것이 해마다 나이를 먹는 나의 유일한 소원이다.

기고/도박산업 폐해 방관할 것인가

도박산업을 이대로 가만 놔두어도 과연 괜찮을 것인지 심히 의문이다. 한 할아버지가 로또복권을 샀다. 벌써 3년째 무료급식소를 찾고 계신 분이다. 십원짜리 내기 화투를 심심 소일 삼아 치면서 하루에 500원을 잃으면 그만 낙담하시는 할아버지다. 이런 분이 1만원짜리 로또복권 한장을 샀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로 이만저만한 작심이 아니다. 가뜩이나 도박산업이 걱정스런 판에 겹친 로또 광풍은 사회를 온통 사행심리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해 경마·경륜·카지노·복권 등 4대 도박산업의 매출액이 11조5천539억원이라고 하니, 작년 정부 당초예산의 약 10%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이다. 이를 오락으로 보고 방관하는 게 옳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박심리, 인생역전에 들뜬 사행 행위자들은 대부분이 갖지 못한 사람들이다. 가진 이들이야 오락 삼아 재미로 한다지만 가진 이들일수록 복권 따위는 별로 사지 않는다. 특히 복권의 경우는 돈없는 사람들이 일삼아 사면서 가히 인생의 명운을 걸다시피하는 사행심리에 빠져드는 경향이 짙다. 이제 복권 계모임까지 성행하는 정도가 된 것은 도박산업으로 인한 사회 병리현상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말해준다. 이도 경기가 좋으면서 그러면 또 모르겠다. 경기가 침체돼 경제전반이 어려운 판에 유독 도박산업만 호황을 누리는 것은 뭐가 잘못 되어도 단단히 잘못됐다. 지난해 도박산업 매출액 11조5천539만원은 예를 들어 국민 1인당 무려 34만원을 날린 금액이다. 이로 인해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안나왔을리 없고, 또 그런 사람들로 인한 사회악이 컸을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사회방어를 위해서도 도박산업은 절제돼야 한다. 당국의 도박산업 재정수입이 2조8천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을 도박심리로 병들게 해놓고 벌어들인 재정수입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갖가지 복권마다 좋은 소린 다 쓰여 있다. 서민주택을 짓고 과학에 힘쓰고 녹화를 하고 환경사업을 하고 이밖에도 별의별 말이 다 있다. 그러나 사회를 사행심리로 빠져들게 하며 긁어모아 벌이는 사업이 무슨 의의가 있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로또 대박 광풍이 마침내 일부 초등학생들까지 번졌다는 신문 보도는 정말 충격이다. 어른들로도 모자라 어린이들 마음까지 병들게 만든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질 것인지 묻고싶다. ‘손톱 밑에 가시 든 줄은 알아도 염통 밑 곪는 줄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도박산업의 폐해 실정이 바로 이렇다. 국민사회의 염통이 크게 병들고 있는데도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참으로 우려스런 현상이다. 도박산업은 물론 선진국에도 있으나 우리는 선진국이 아니며 국민소득 또한 비교할 수준이 못된다. 좋은 것은 따라갈 생각않고 나쁜 것만 따라가는 외국 모방은 우리의 실정과는 거리가 멀다. 손주 학자금 마련의 요행을 바라고 그로써는 거금을 주고 로또복권을 샀다던 그 할아버지는 결국 1만원만 날리고는 급식소 발길이 끊겼다. 홧병이 나 몸져 누워 계시기 때문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정의가 통하는 사회를 건강한 사회라고 한다면 이를 해치는 도박산업 광풍은 마땅히 억제돼야 한다. 정부의 정책적 재검토가 긴요하다. 노무현 차기 정부에서 도박산업에 대한 과감한 일대 수술과 함께 재조정되는 결단이 있기를 간곡히 기대한다. /이 지 현 (사)한길봉사회 경기도지부장

기고/주민자치 빠진 주민자치센터

주민이 직접선거를 통해 지방자치 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선출하게 된 것을 계기로 출발한 우리의 지방자치시대가 제3기 째를 맞이하고 있다. 지방자치의 핵심은 무엇보다 ‘지방분권화’와 ‘주민참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시대가 열린 이후 중앙권한의 지방이양 등 ‘지방분권화’의 촉진과는 달리 ‘주민자치’의 측면에서는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구성해 놓은 각종 위원회에 일부 특수계층이 민간위원으로 참여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도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많은 실정이다. 이런 식으로 주민이 자발적으로 직접 참여하지 않고 위로부터 주어지는 자치는 진정한 자치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그 일을 처리하거나 자치단체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절실하다. 주민의 직접적인 참여가 손쉬운 읍·면·동이라는 최소 행정단위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 주민자치센터가 주민자치를 활성화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전체 읍·면·동에 대한 전면 실시 3주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주민자치센터라는 이름에 걸맞는 역할이 정립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민자치센터가 이렇게 표류하는 가장 큰 원인은 주민자치센터를 실질적으로 운영해야 할 주민자치위원회의 구성이 동장의 일방적인 위촉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있다. 이런 방식으로는 전문가나 활동가 보다는 소위 지역유지 중심으로 주민자치위원회가 구성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주민자치센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주민의 자치활동이나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 등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인해 지역 특성이 무시된 천편일률적인 운영 프로그램이라는 결과물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문화나 체육, 취미생활 등에 치중되어 주민자치센터의 본래 취지인 주민들이 모여서 지역의 일을 스스로 의논하고 처리하는 프로그램은 실종되어 ‘주민자치 없는 주민자치센터’로 전락되어 버렸다. 따라서 교육계·문화계·언론계 등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인사들을 포함시켜서 주민자치센터를 위하여 실질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인물로 주민자치위원을 구성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런 변화를 통해 주민자치센터가 같은 지역 안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지역주민들이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장소로, 공동체의식과 연대의식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지역의 일들을 의논하는 주민자치의 장으로서의 역할이 수행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하 수 진 경기도의원

기고/‘역사로 본 평화와 전쟁’

이 이(1536~1584)는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다. 이에 반해 김성일은 10만 양병을 반대하였다. 선조 23년 1590년 통신사 부사로 일본현지를 가보고 와서 평화무드가 깨지면 공연히 백성들이 괴로워한다고 했다. 김성일과 함께 통신사 정사로 일본에 간 황윤길은 귀국하여 일본은 조선을 침략할 생각이 있다고 보고하였으나 황윤길의 의견은 무시되고 당시 동인이 강성하던 김성일의 평화론이 받아들여졌다. 2년후 임진왜란이 일어나 부산진에 상륙한 일본군은 20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불을 지르고 백성을 죽이고 잡아갔다. 1131년 중국 남송의 재상 진회(1090~1155)는 고종의 신임을 받자 북방의 여진(금나라) 세력과 송나라에 대한 침략을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평화주의자들이 화친조약을 맺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기뻐했다. 진회는 전쟁의 영웅 악비를 옥에 가두고 급기야 죽게 하였다. 2년후 1140년에 남송은 금나라의 전면 공격으로 국파산하고 말았다. 1938년 9월 영국의 평화주의자 체임벌린 수상이 뮌헨협정을 맺고 런던으로 귀국하여 이 시대의 평화가 찾아왔다고 외쳤다. 히틀러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처칠을 전쟁 미치광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듬해 또 다른 영토의 욕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폴란드를 침공한 나치독일에게 영국은 1937년 선전포고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2차 세계대전의 점화가 발생했다. 1969년에 미국 안보보좌관에 취임한 키신저는 우방인 베트남의 주장을 대폭 양보 시키며, 침공세력인 북부월맹군에게 여유와 정비기간을 주게 만든, 월맹과의 전쟁을 당분간 중지시키는 파리평화회담으로 휴전을 맺었다. 그러나 2년후 1975년 자유월남은 패망했다. 1946년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한 북한공산당은 남북협상을 믿는 김구와 지지자들이 김일성의 전략적 집회에 연석으로 참석하는 동안 자유와 안전보장에 주력한 이승만과 그를 지지하고 신뢰하는 국민들은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그러나 북한은 1950년6월25일 무력남침을 감행했다. 어언간에 50년이 지난 지금 금강산 육로관광이 실현된 가운데 한편으로는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핵으로 인한 북미대결 양상이 무척 불안하다. 하지만 유비무환으로 어떻게든 평화를 지켜야 한다. /이 경 순 평화통일문제연구소장

기고/지역문화인과 자치단체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역에서 개최되는 문화축제가 양적인 성장을 보이고는 있다. 그러나 질적내용은 미흡하다. 지역 주민에게 문화욕구를 충족시켜 지역간의 문화교류로 이어지는 가교역할을 못하고 있다. 선심행사 또는 행사를 위한 행사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문화의 주체성도 문제다. 자치단체가 지원하는 행사는 으레 자치단체 입맛대로 행사를 이끌려고 한다. 예산 지원을 빌미삼아 비전문가가 행사의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하기 보다는 전문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하는데도 대개는 그러지를 못한다. 지역문화는 어느 한 순간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지역문화는 지역주민과 호흡을 같이 할 때 비로소 생동한다. 자치단체의 관변문화는 이를 무시하려 든다. 그래서 지역문화인과 지역주민이 서로 유리되는 행사로 으레 예산 낭비만 가져오곤 한다. 지역문화가 열악한 환경에서 자치단체의 관심은 절대적이긴 하다. 그러나 관심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효과적인 지원방법에 그쳐야 한다. 자치단체가 지원을 넘어 행사의 주체가 되어서는 이미 지역문화 행사일 수가 없다. 물론 외형상으로는 지역문화인을 내세우지만 문제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간섭을 일삼는데 있다. 지역문화가 지역주민과 지역생활에 융합하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지역문화인이 앞장 서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디지털시대에서 각 분야의 지역문화를 전문가가 아닌 관의 시각으로는 지역주민에게 충족시킬 수가 없다. 지역문화가 지역주민을 관객으로 이끌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관의 시각이 지배되고 있기 때문임을 성찰할 때가 됐다. 문화의 시대라고 말하는 21세기는 문화전문가의 시대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문화의 전문가는 또 분야별로, 장르별로 실로 다양하다. 이런 다양한 문화 전문가의 활동이 활성화될 때 지역문화 또한 비로소 활성화한다. 무한 발전을 추구하는 지역문화는 또 부단한 전승을 필요로 한다. 체계화되고 전문화된 문화예술 보급은 필연적으로 차세대를 이끌어갈 인재 양성을 요구한다.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고 가치있는 문화를 물려주는 것은 곧 지역문화 인재양성에서 출발한다. 지역문화는 한국문화, 나아가 세계문화의 기초적 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치단체 또한 이같은 지역문화 인재양성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야할 책임이 있다. 물론 차세대 문화예술 전문가의 배양은 문화예술인들 몫이긴하다. 하지만 삶의 질 향상은 물질에만 국한하는 게 아니다. 풍요한 정신적 가치 생산 역시 삶의 질에 속한다.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자치단체가 지역문화예술을 간과하고, 차세대 문화예술의 인재 양성을 외면하는 것은 깊이 숙고해야 한다. 두말할 것 없이 지역문화인들도 자치단체의 관심을 이끌만한 수용의 자세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역문화의 끊임 없는 자기 연마와 후진 양성의 노력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주체가 지역문화인인 것이다. 요컨대 자치단체와 지역문화인 및 지역예술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역할을 상호 보완하여야 진정한 지역문화예술을 발전적으로 창출, 보급할 수가 있다. 이렇게 돼야 고유의 지역문화예술축제를 통한 새로운 지역 에너지 효과의 기대가 또한 가능하다. /김 정 자 (재)성정문화재단 이사장

기고/다시 보는 '쿼바디스'

/권성훈(시인) 영화 쿼바디스에서 나오는 쿼바디스 도미노를 풀이하면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는 말이다. 기원 후 1세기 로마 제국의 박해를 받던 초기 기독교의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가 네로 황제의 박해와 순교의 현장을 잠시 피해 로마를 빠져나가다가 만난 예수에게 ‘쿼바디스 도미노?’라고 물었다는데서 유래되었다. 지금도 이탈리아 로마로 들어오는 길의 카타콤베에는 그 말을 따서 도미노 쿼바디스라는 성당이 기념하고 있다. 쿼바디스를 통하여 신이 인간을 버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하는 물음에서 현재 우리의 종교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반문해야 할 때다. 종교계가 내놓는 각 종교 단체들의 통계를 보면 소속 종교인의 수가 전체 총인구보다도 많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통계와 무관하게 그 숫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반면, 기독교와 불교 등에서는 해마다 많은 종교 지도자를 배출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세상에 나아가 사랑과 자비를 가르치고 실천할 때 당연히 우리가 살고 있는 척박한 땅이 비옥해 져야 하지만 각종 범죄와 윤리적 타락의 정도는 극에 다다르고 있다. 문제는 종교가 사람들로 하여금 곱게 포장한 말로 다가서고 있고, 사람들은 말 잘하고 혹은 말뿐인 종교에 식상해 져 있다. 각 종교계가 내놓는 통계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과열양상으로 신빙성이 떨어진지 오래 되었고 교회와 사찰은 신도잡기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거기다가 종교 단체가 재력이 생기고 비대해 지면 그것이 개인 재산에 귀속되어 있는 것처럼 자식들에게 세습 해주기 위하여 분쟁을 겪는 종교 지도자가 적지 않다. 얼마 전에는 옥상에서 자신의 교회를 홍보하려고 만원짜리를 뿌린 목사에게서 현재 종교계의 주소지를 단편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옛날 살았던 공룡이 멸종된 것은 그들의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초기에는 작았던 몸집이 쥬라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들의 몸집이 너무 비대해지고 종류도 분화되면서 지금으로부터 약 6500만년 전인 백악기말에 이르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갑자기 지구에서 전멸한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종교 역시 힘이 너무 커지고 분화되어 졌을 때, 내부적인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종교 본연의 자세가 흔들리고 세속화되어 버린다. 고려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던 불교도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를 맞으면서 쇠퇴하게 된 것도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회복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음을 역사를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인간은 그 본성이 지극히 종교적이기 때문에 없어질 수도 없고 멀리 해서도 안 되며,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되어야 한다. 순수한 의미에서의 종교의 확장과 전파는, 말보다 먼저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불특정다수의 이웃들에게 희생과 봉사로서 실천하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결국 모든 종교적 문제는 유보되어 있고, 종교의 장래 또한 종교인에게 넘어가 있다.

기고/평생교육의 역사와 개념

/도의회 문교위원 신진수 교육이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으며 교육은 인간의 평생동안에 걸쳐서 모든 장소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형식교육, 비형식교육외의 무형식교육과 우발적 학습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생애에 걸쳐 있어나는 개인과 집단 모두의 종합적 교육체계를 강조하고 있다. 평생교육은 개인적, 사회적, 직업적 발달을 성취시키며 ‘생활’ ‘자아실현’ ‘사회발전’의 개념을 강조하고 전 생애에 걸쳐 능동적으로 계속적인 학습의 기회를 포착함으로써 인간성의 조화적 발달을 꾀하며 다른 사람과 더불어 공동체의 복지를 증진시켜 나가는 인간화 교육을 의미한다. 기존의 학교 교육과 다른 한편으로의 조직화되지 못한 비효율적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일반 교육의 기능을 다 같이 개편·강화하고 교육적 자원을 효율화시키기 위함이며 태교에서 시작하여 유아·아동·청년·성인전기·성인후기·노인 교육을 수직적으로 통합한 교육과정과, 가정·사회·학교·직장교육을 수평적으로 통합한 교육을 총칭하여 말한다. 그것은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신장하고 사회발전에 참여하는 능력의 개발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평생교육은 지식 정보화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자아개념과 자기 주도적 학습의 역할을 지향하는 것이다. 평생교육은 잘못된 교육의 개념을 올바른 교육의 개념으로 환원시키는 역할과 탐색, 교육 개혁의 새로운 시각이며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자기 계발과 성숙을 위한 전천후 학습체계라고 할 수 있다. 평생교육의 이념적 특성은 광역성과 통합성, 교육시기의 향상성과 계속성, 교육장소의 광범성과 무정형성, 교육내용 및 프로그램의 다양성, 교육방법의 다양성과 입체성, 교육 대상의 전체성과 평등성, 교육 담당자의 다양성과 탈 정형성, 교육 접근 및 교육적 의사소통의 융통성과 순환성·쌍방성등이 있다. 말하자면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이든, 어떠한 방법이든지, 누구든지, 누구에게서나 원하는 배움을 추구할 수 있는 열린 학습사회 지향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이 호흡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정신과 삶의 척도를 평생학습사회 실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평생교육은 개인의 행복과 생활의 향상을 도모하고 있으며 민주 복지 사회의 건설을 이루고 개인으로 하여금 일생동안 학습하려는 동기를 자극하고 학습하는 능력을 창출시키기 위해 계획된다. 평생교육은 모든 국민이평생에 걸쳐 균등하게 교육의 기회를 받게끔 하고 개인 및 사회의 필요에 대처하는 동시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특징과 교육적인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평생교육 개념을 1973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정의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사회교육을 역사적인 의미로 파악해보면 일제 시대때 우리 국민을 ‘사카이 교이쿠(사회교육)’란 이름으로 초기에는 주민교화, 일본어 교육(내선일체, 사상전도), 부인교양사업,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 창씨개명, 순회강연 등을 시켰다. 후기에는 인력동원 정책, 청년교화와 전쟁준비, 위안부, 전쟁참여대책의 일환을 위한 인력개발과 교화사업을 목적으로 학무국 사회교육과를 신설했다. ‘사카이 교이쿠’는 일제가 우리의 국민을 유린하고 교육을 통해 교화시키기 위한 정책적 전략에서 나온 용어라 할 수 있다. 광복이후에는 사회생활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 교육이외의 모든 교육활동을 전생애를 통한 기능적인 학습과정으로 정의하고 성인교육을 사회교육, 사회과 교육, 지역사회교육, 교육사회학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 쓰여진 것으로 사회교육이라는 용어는 일본과 한국에서만 사용되었던 용어로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사회교육이라는 교육적 용어는 없다. 때문에 가급적 평생교육과 사회교육을 혼동하여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가 통상적으로 쓰고 있는 사회교육은 유아나 정규 학교 학생, 가정교육 및 정규 학교교육을 포함하지 않는 청소년 및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교육활동으로도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역사적 의미의 사회교육과 일상 생활에서의 사회교육의 뜻을 잘 알고 사용하는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과기처장관 지낸 이태섭씨

설을 쇤 이튿날 오전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사무실. 이태섭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으로부터 어렵게 짜투리 시간을 얻어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라고 인사를 건넸자 인터뷰 취지를 간파한 이 이사장은 생경하게도 미국의 현대시인 R.프로스트의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잠들기 전에 몇마일을 더 가야 한다네)이라는 싯귀 한 구절로 답변을 대신했다. 40년전 고단했던 미국 유학시절부터 무엇인가를 반드시 해야할 때,그리고 꼭 이뤄야 할 때 마다 이 시를 중얼거리는 습관을 갖게 됐다는 이 이사장은 올해 계획에 대한 화두로 단연 ‘봉사활동’을 꼽았다. 공학박사이자 정치인 출신인 이 이사장은 올 7월이면 생의 또 다른 전기를 맞게 된다.7월4일 미국 덴버시에서 열릴 국제라이온스협회 제86차 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되는 것이다. 라이온스협회는 전세계 190개 국가에 140만명의 회원을 둔 세계 최대 규모의 비정부기구(NGO)이자 봉사단체다.동양권에서는 일본과 태국에 이어 힌국인이 세번째로 추대되는 셈이다. “기금이 3억달러이고 1년 예산만 5천만달러에 이릅니다.우리나라는 1959년 창설돼 현재 6만5천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국제라이온스쿨럽 회장은 국제적인 거대 조직을 이끄는 자리라서 세계 각국의 경쟁이 아주 치열합니다. 회장은 세계 어느나라에 가든 그 나라의 국가수반을 만날 수 있고, 회장 임기 기간 내내 시카고 본부에는 회장을 배출한 국기가 게양되고 행사때마다 국가를 연주합니다. 저는 회장임기 시작부터 일년동안 국내에는 20일, 해외에서 345일을 보낼 예정입니다. 그만큼 각국을 방문하며 펼쳐야 할 인도주의 봉사활동이 산적해 있습니다.” 이 이사장은 벌써부터 본인이 해야할 일을 꿰고 있었다. 라이온스클럽의 주된 봉사활동중 하나는 시각장애에 대한 배려다. 1925년 대회에 참석해 맹인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던 헬련 켈러 여사의 정신에 근간을 두고 있기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에 3천만달러를 투자해 지난 5년동안 250만명의 개안수술을 해주었습니다. 10년 계획이니 만큼 남은 5년간 역시 250만명을 대상으로 수술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북한 평양에는 제2부회장으로 있던 지난 해 11월19일부터 23일까지 다녀왔습니다. 평야에 안과병원 건립을 위해서 였지요. 6백50만달러를 투자해 지난 해 11월22일 기공식을 했는데 2004년 6월에 개원할 예정입니다.” 이 북한돕기사업의 공로로 이 이사장은 지난 해 12월3일 한국언론인연합회가 제정한 ‘2002년 자랑스런 한국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태섭 이사장은 국제라이온스 회장 취임을 끝으로 원자력 문화재단일에는 손을 뗄 생각이다. 라이온스 기구 성격상 외국에서 보내야 하는 업무가 많아 겸직 수행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이사장은 요즘 원자력 문화재단 마무리 사업을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이 이사장은 원자력이 더욱 친숙한 탓에 애정도 상당하다. 장관 재임 시절 국회와 예산 관련 부처를 쫓아다니며 과학기술 분야의 예산을 증액시키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국내 원자력 연구환경을 한단계 끌어올린 장관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원자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국내에 18개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되고 있습니다. 전기의 40% 이상을 원자력 발전소에서 충당하고 있지요. 뿐만아니라 우리나라는 미국, 프랑스, 일본, 독일, 러시아에 이어 세계6위의 원자력 선진국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신포에 있는 원전은 우리 기술과 인력을 기반으로 한 한국형 경수로이며 이를 통해 우리 원전기술이 세계적 수준임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국민의 원자력에 대한 인식은 그러한 기술적, 외형적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태섭 이사장의 솔직한 평가이자 ‘고민’이다.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가져다 주는 혜택보다도 ’원자력은 위험하다’는 일부 편향적 주장에 더 많은 관심을 나타내는 등 원자력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결코 우호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이사장은 홍보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다. 일본의 경우 33개의 원자력 전시관을 통해 일본 국민들은 원자력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더불어 원자력의 필요성과 편리성을 함께 깨닫게 됐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우리나라는 서울 남산에 있는 교육과학연구원 정도가 고작일뿐 사실상 전무한 실정입니다.예산부족탓이지만 전국 곳곳의 제대로 된 홍보관 건설이 저의 과제이자 우리 문화재단의 역점사업이기도 합니다.” 귀중한 만남 말미에 공학도로서 일생을 보내지 않고 정치를 하게된 동기를 물었다. 이 이사장은 “저는 민족 대비극인 6.25를 겪었던 세대입니다. 작고하신 어머님도 그 당시의 일이지요. 평화롭고 행복된 복지국가를 만드는데 있어 가장 큰 봉사활동이 정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년 시절부터 책만 파던 저에게 ’커서 남을 위한 훌륭한 사람이 되라’하시던 어머님의 가르침도 이와 무관치가 않았지요”라고 답을 대신했다. 송기철기자 kcsong@kgib.co.kr ■이태섭 그는... 경기도 화성 출신인 이태섭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사장은 경기중·고를 거쳐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뒤 미 MIT공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학위 취득은 당시 국내에서 여러가지 화제를 몰고 다녔다. 유학을 떠난지 2년8개월만에 학위를 끝낸데다가 석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흔치 않은 사례를 남겼다. 때문에 당시 박정희대통령으로부터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고국에 돌아와 공헌해 달라’는 축전까지 받았다. 이 이사장은 경기중·고 6년동안 한번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97점이라는 졸업점수는 경기고 개교 이래 아직도 깬 사람이 없어 본인도 MIT의 영광보다 더욱 자랑스러웠음을 회고하곤 한다. 39세에 정계에 입문해서 과학기술처장관과 정무장관, 4선의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과학기술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남극에 세종기지를 건설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이사장의 절친한 친구로는 경기고 54회 동기생인 오명 한승주 박찬종 유흥수 남재두 윤여준씨 등 정 관계 인사들이 있으며 유흥수 의원과는 사돈지간을 맺고 있다. 송기철기자 kcsong@kgib.co.kr

기고/보건위생산업 선진국수준 향상기회로

국제연합(UN) 산하 전문기구들중 1948년에 창설된 세계보건기구(WHO)는 53년의 역사와 192개 회원국, 5천여명에 달하는 보건전문인력, 연간 22억달러에 달하는 예산, 업무 범위와 실적, 시스템 운영 등의 측면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이 있는 전문기구이며 명실공히 보건·의료분야의 최고 국제기구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이는 없다. 1830년 유럽 전역의 콜레라 발생과 1897년 수만명의 페스트 유행 등 대규모의 전염병 창궐을 계기로 전세계적인 보건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1923년에 설립된 국제연맹 시절의 보건기구와 1909년 파리에서 설립된 국제공중보건사무소의 업무를 이어받아 1948년에 헌장이 발표되면서 WHO가 발족되었다. 그간 WHO는 천연두 박멸, 말라리아, 장티푸스, 황열, 홍역 , 소아마비, 디프테리아, 파상풍, 결핵 등의 예방사업 등을 비롯하여 인류의 건강수준을 향상시켜 사회·경제적으로 생산적인 삶을 영위토록 한다는 목표 아래 많은 보건사업을 활발히 전개해 왔다. 이러한 거대한 조직의 WHO, 제6대 사무총장에 우리나라의 이종욱 박사가 선출된 것은 개인의 명예보다는 대한민국 보건·의료인의 명예이며, 국가의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국제기구 선출직에 한국인 최초의 수장(首長)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유엔산하 전문기구들 중 가장 큰 기구의 대표라는 점이 대한민국의 위상을 더욱 높이는 것이며, 향후 국가 이미지 제고 효과가 아주 클 것으로 기대된다. 그간 인류의 건강수준 향상과 지구촌 질병 퇴치에 헌신해 온 이 조직의 최고 책임자가 한국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자긍심을 주지만 또 한편으로는 국가적으로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가 막중한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우선 우리나라의 위상을 수혜국에서 지원국으로 높여가면서 현재 연 417만달러의 WHO 예산분담금(0.99%)부터 늘려나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1949년 17번째로 WHO에 가입하여 그동안 각종 전염병 예방 지원과 의약품 지원 등 기술 원조를 받아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는 이번 이 총장의 선출을 계기로 예산분담률의 향상, 후진국에 대한 지원 강화 등을 통해 수혜국에서 지원국으로 위상을 향상시킬 계기를 맞게 되었다. 그리고 보건의료학과 바이오산업, 백신산업 등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도약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1995년 WHO 백신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세계 인구 1만명당 1명 이하로 소아마비 유병률(有病率)을 떨어뜨리는 성과를 올려 미국의 유명한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으로부터 ‘백신의 황제’(vaccine czar)라는 별명을 얻은 이 총장이 히포크라테스의 봉사정신을 발휘하여, 북한을 비롯한 모든 인류를 가능한 최상의 건강수준에 도달하도록 하는 WHO 정책 목표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이를 위해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기고/21세기 동북아 경제중심지 경기도

경기도민의 부푼 기대와 설레임 속에서 출범한 제6대 경기도의회가 벌써 6개월 지나고 있다. 계미년 새해를 맞이한 우리들의 마음속에 희망과 기대보다는 왠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 많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새해 벽두부터 변화와 개혁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일고 있는 바람은 희망을 담아 그 에너지를 점차 키워 나가고 있다. 경기도가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해 1천만 도민의 열망속에 그 꿈을 착실히 다져나가고 있으며 지난해 민선 3기 ‘손학규호’가 출범하면서 도정의 틀을 새롭게 구축하고 시스템을 정비한데 이어 새해는 그 계획과 방안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길 예정이다. 경기도에 따르면 물류·비즈니스 중심으로서의 기반확충을 위해 평택항의 선석개발을 도가 직접 나서는 것을 비롯해 서해안지역의 항만·공항·고속전철역 등 주요 거점을 연결하는 교통망 구축사업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전국 최고의 잠재력을 가진 IT·BT·NT 등 첨단지식 기반사업을 전략산업으로 집중 육성하는 한편, ‘무선인터넷 연구원’을 설립해 차세대 IT산업의 추종이 될 무선인터넷의 메카로 조성키로 했다. 아울러 수원·용인의 반도체 집적지, 성남의 디자인·벤처집적지, 안양의 지식산업센터 등을 잇는 지식기반산업 벨트를 조성하고 나노특화팹 유치도 서둘러 추진할 방침이다. 도내 기업의 대북진출을 위해 개성에 경기도전용공단 조성 등 대북경협에도 다각도의 지원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이처럼 경제 각 부문의 시책들이 올 한해 제대로 시행된다면 경기도는 ‘동북아 경제중심’은 물론 나아가 ‘세계속의 경제중심’으로서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21세기 동북아의 무역·물류 경제중심지 경기도가 되기 위한 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 경기도의회 경제투자위원회 모든 위원들은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2003년 우리를 둘러싼 대내외여건은 불확실성과 난제가 수두룩해 우리의 희망을 모두 충족시켜 줄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긴다. 사실 우리의 주변 환경과 정세는 과거 어느 때보다 불안정하며 북한의 핵문제, 미국-이라크 전쟁 임박 등은 우리의 안보와 경제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매우 높다. 선진국의 경기침체와 무역환경의 악화도 우리경제에 부정적 요인으로 꼽히고 있으며 이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정부의 출범과 함께 희망이 넘실대고 비전이 살아 숨쉬는 경기도를 만들어야 한다. 새해 2003년은 21세기 경기도의 좌표와 진로를 가늠할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면한 불안요인에도 불구하고 2003년은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지난해말 대통령선거에서 나타났듯 국민의 변화에 대한 욕구가 어느 때보다 강하게 표출되고 있으며, 경기도도 21세기 무한경쟁시대에 맞게 변화와 개혁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한 경기도정에도 1천만 도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으며, 우리 경기도의회는 새정부의 개혁과정에 현재 수도권에 가해지고 있는 각종 규제사슬이 일제히 혁파될 수 있도록 여론을 결집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1천만 도민의 참여와 실천이 따를 때 그만큼 우리가 원하는 개혁과 희망도 그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경제 효과중 ‘타이밍 법칙’을 간과해선 안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요즘처럼 변화와 개혁의 ‘바람’이 불 때 연을 날려야 하늘높이 날릴 수 있다고 확신한다. 경제 불황에 따른 불안감이 고조되고 정책부재의 정치적 불안까지 가중되어 그 어느때보다도 희망을 나타낼 수 없는 것이 새해 분위기이다. 그러나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이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활용하는 조직이나 국가만이 지속적인 생존과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우리 모두 새로운 마음가짐과 불굴의 도전의식으로 우리 민족의 새로운 미래상을 힘차게 펼쳐 나가기 위해 노력해 나가자.

기고/정치개혁

정치개혁 송희성(수원대 법정대학장) 대통령선거가 끝나자 온통 정치개혁문제로 떠들썩하다. 정치인들은 말할 것 없고, 신문·TV.전문가들이 이 문제를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음을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나도 헌법과 행정법을 강의하는 한 사람으로 이 문제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생각해 봤다. 정치개혁이 이루어져야 하겠다는 원칙에는 전적으로 동감이다. 정치의 나쁜 점들이 개선되어야 행정이나 경제 기타 사회문제들이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은 정치개혁을 당면의 과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 동안의 정치의 나쁜 점으로 지적되어 온 것은 ① 지역구도(지역감정)에 좌우되어 있다. ② 정경(政經)유착이 심하다. ③ 고비용정치를 하고 있다. ④ 국회의원들이 장래를 내다보는 전문지식 기타 행정에 관한 지식이 없고 당선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 ⑤ 대통령 1인에게 권한이 너무 집중되어 있다. ⑥ 오직 정권을 잡기 위한 당리당략적 비판·대안없는 비판을 일삼고 있는 것 등이다. 이들을 극복 또는 개선하는 것이 정치개혁이라면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나, 여기서는 지면관계로 제일 처음의 문제만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첫째, 지역구도(지역감정)가 배제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정치인 자신이 이것을 이용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언행을 삼가되 유권자들이 정책·인물본위로 투표하여야지 어느 보수가 또는 어느 당이 우리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가에 따라 투표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 문제는 개인의 양식에 맡길 문제로 참으로 개선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따라서 제도가 필요하다. 대통령 당선자께서 말한 바 있는 중·대선거구에 의한 단일(單一)투표제를 채택하면 A지역에서 H당 출신도 B지역에서 M당 출신도 당선될 수 있고, 지역에 따른 인물난도 다소 해결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무엇보다도 지역감정을 다소 완화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서울에서 1구 2인제를 채택하였던 것과 유사한 이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선거법을 개정하여야 하는데 현행 선거법상의 소선거구제와 지역구도에 의하여 의회의 다수세력을 확보하고 있는 당이 당리당략에서 반대하면 불가능하다. 여기서 다시 이 문제를 개선하려는 정치인 개개인의 의식전환과 살신성인적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둘째, 내각책임제 채택 문제다. 말할 것도 없이 의회다수당이 정권을 맡되 내각을 의결기관으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지역구도에 의한 다수당을 차지하는 당의 전횡을 막을 수 있을까. 그러나 대통령의 독주는 다소 완화시킬지 모르나 지역구도에 의한 다수당의 출현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당수를 자주 바꿀 수 있다지만 이것은 당내의 순환일 뿐이고, 그 과정에서 정치싸움, 파벌싸움만 한다면 지금보다 더한 혼탁양상을 초래할 것이고, 또 선거를 자주 치룬다면 국력낭비는 물론이고 지역감정만 조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행 대통령제에서 권력의 비대화 내지 1인 집중을 막는 방법(국무총리의 권한 강화 등)을 생각하는 말하자면 대통령제의 수정이 더 필요할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는 많이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남북의 대결양상이 여전하고, 내각책임제가 성공하기 위한 전제의 하나인 양보와 타협의 정신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내각책임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 당리당략이거나 수상이 되어 보려는 일부 정치인들의 동기가 숨어 있다면 오해일까. 정치인들의 살신성인의 노력은 하지 않고 권력구조를 개정하여 야심을 채우려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이여! 국민이여! 정치의 모든 나쁜점을 개혁하고 이 지역구도에서 벗어나 깨끗하고 정의로운 정치상황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 주자.

기고/'애국심 앙양교육'

요즈음처럼 자유로운 세상에서 ‘애국심 앙양교육’을 말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필자는 애국심 앙양교육이 절실한 때가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뜻 있는 사람들이라면 가끔 연령에 관계없이 이용하는 먹자골목이라고 부르는 밤거리나 또는 젊은 층이 드나드는 거리의 밤 풍경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는 사람, 서로 끌어안고 있는 남녀, 술에 취하여 토해내는 광경, 인사불성이 되어 동료에게 끌려가는 사람 등 자유는 극에 달한 것처럼 느껴진다. 가끔은 서로 술에 취하여 시비가 붙는 모습도 눈에 띈다. 하지만 이런 자유를 누리는 사회 속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국의 현실을 생각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면 무작정 자유만을 구가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가 IMF사태를 벗어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시는 IMF환란이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 우리는 2002년 12월 현재 한 가구당 빚이 3천만원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려 GDP의 75%나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인 것이다. 가히 빚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셋째는 일부 지도층이나 돈 좀 있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이다. 연간 5천명 정도가 미국원정 출산을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원정출산비용이 2만 달러나 든다고 하니 그 많은 외화를 갖다주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더 가슴아픈 것은 그 원정출산의 이유가 출생주의의 적용을 받아 미국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과 병역을 면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조국의 국적을 버리고 병역을 기피하려는 것은 이 땅의 국민이기를 포기하는 너무나 슬픈 현실이다. 비록 일부의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도대체 그런 사람들을 이해 할 수가 없다. 특정한 나라를 의식하지 않더라도 모든 국가는 국방이 아주 중요한 것이다. 더구나 국제사회라는 것은 그 국가의 이해간계에 따라 항상 입장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도 강하여 유럽을 주름잡던 로마는 왜 망했던가? 너무나 오랫동안의 평화에 이어 국민정신이 해이해졌기 때문이었다. 비록 귀족들이었지만 그들은 원형극장에서 식도락을 즐길 정도로 자유를 누렸으며 놀이문화에 젖어 있었다. 그것은 말년의 통일 신라도 마찬가지였다. 통일 이후 평화가 계속되자 국민은 정신질서가 해이해졌으며 기강이 흔들렸던 것이다. 하지만 국가란 늘 이웃나라와 경쟁하면서 살아가야 하기에 심한 문약이나 정신적 해이는 어느 국가이든 간에 좋을 것이 없는 것이다. 어느 나라이든 간에 그 나라가 평화를 지킬 수 있는 길은 그 나라 나름대로 힘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우선 나라가 부강해지도록 해야하고 강한 힘을 가지고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넷째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나 개인주의에 대한 문제이다. 언젠가 수영장을 가 본적이 있었다. 그 수영장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지역주민은 ‘이 수영장의 주인은 여름 내내 번 돈을 외국에 나가서 쓰고 오지요. 결국 우리가 이 수영장 주인을 통해 우리의 외화를 갖다주는 꼴이지요. 주인의 친한 친구가 만류하자 주인은 내 가 번 돈 내가 쓰는데 무슨 잔소리냐? 그것은 내 자유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 행동이 정말 진정한 자유일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조국이 없다면 그 어떤 자유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조국을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행동하는 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정당하게 누리는 자유 속에서도 그 자유 못지 않게 책임성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책임성에서 조국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애국심 앙양교육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져보는 것이다. /양승본 (영덕고 교감.소설가)

기고/도서실, 푸르른 꿈의 공간

/김현옥(수원 수일중교장·시인) 몇 해 전에 신문에서 빌 게이츠 회장이 미국 전역의 초·중등학교와 도서관을 온라인으로 연결하여 도서실의 정보·자료를 활용한 교수·학습활동을 돕기 위해 5억달러를 기부하였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회장 겸 소프트웨어 개발 총책임자로서,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재단에서는 도서관의 가치와 활용에 대한 선각자적인 자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즈음 책읽기 운동이 벌어지고, 도서실을 교수·학습정보센터화하고, 그 자료들을 실제 수업에 활용하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식·정보사회의 핵인 ‘지식·정보’들이 가장 많이 집적되어 있는 곳이 도서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들은 도서실을 책읽기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이나 자료를 활용하기 위한 장소 정도로만 인식하여 왔다. 현재와 같은 입시체제 하에서 아이들이 굳이 도서실을 찾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교과서나 문제집, 학원이면 족하였다. 다행스럽게도 책읽기 운동이 벌어지고, 도서실이 꿈과 희망을 가꾸는 공간으로 되고 있다. 이제 도서실은 학생들이 여가 시간은 물론 수업시간이나 동아리 활용 시간에도 찾아야 하는 곳이 되고 있다. 아이들이 지적인 호기심을 갖고 풍요로운 정보를 찾으며 자유로운 토론을 벌이는 곳, 알고 싶은 정보를 탐색하는 즐거움을 주는 곳, 이론과 현실을 접목시키려고 고민을 하는 곳, 아름다운 영혼을 만나는 곳, 자신의 삶과 진로를 개척하기 위한 정보를 찾고 꿈을 키우는 곳, 사람 사는 세상의 냄새와 땀의 가치를 알도록 돕는 곳, 그리고 학습을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놀고, 뒤지고, 토론하는 곳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우리 학교에서도 그러한 시도의 일환으로서 작년 겨울에 ‘수일관’을 개관하였다. 그전 교장님이 애쓰시고 교육청과 시청에서 돈을 주셔서 좋은 건물을 갖게 된 것이다. 매우 고마운 일이다.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내부 기자재를 갖추어서 개관식도 하였다. 그날 인근 학교에서 오신 중학교 교장 선생님들께서 부러워하셨다. 나도 그분들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 보다 좋은 시설을 먼저 갖게 되었으니, 그 안에서 학생들이 즐겁고 자유롭게 지적인 탐색활동을 펴도록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웠다. 그리고 여러가지 산적한 과제들, 예를 들면 양질의 장서로 서가를 채우기 위해 예산을 많이 할당하는 일, 생일이나 가족 기념일에 자녀에게 책을 선물하도록 학부모님들을 안내하는 일, 집에서 다 읽은 책을 학교 도서실에 기증하도록 안내하는 일 등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무엇보다 도서실을 학습활동을 지원하는 정보지원센터로 만들려면 여러가지 값나가는 기자재들이 필요한 실정이다. 소위 말하는 도서실의 디지털화 문제이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문제는 교사들이 도서실을 어떻게 유용하게 활용하여 학생들이 생각하고 느끼도록 도와주는가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작년에 두차례 강사를 초빙하여 도서실 활용 수업에 대하여 연수를 받게 하였다. 이미 일부 교사들은 도서실을 활용하여 수업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미 우리 교사들은 ‘강단에 선 현자’가 아니다. ‘학습의 안내자, 촉진자, 동반자’이다. 어린 영혼에 불을 지피고 감성을 일깨워 주는 그런 선생님을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어서 만나고 싶다. 도서실, 그 푸르른 꿈의 공간에서 말이다.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