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산업을 이대로 가만 놔두어도 과연 괜찮을 것인지 심히 의문이다. 한 할아버지가 로또복권을 샀다. 벌써 3년째 무료급식소를 찾고 계신 분이다. 십원짜리 내기 화투를 심심 소일 삼아 치면서 하루에 500원을 잃으면 그만 낙담하시는 할아버지다. 이런 분이 1만원짜리 로또복권 한장을 샀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로 이만저만한 작심이 아니다.
가뜩이나 도박산업이 걱정스런 판에 겹친 로또 광풍은 사회를 온통 사행심리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해 경마·경륜·카지노·복권 등 4대 도박산업의 매출액이 11조5천539억원이라고 하니, 작년 정부 당초예산의 약 10%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이다. 이를 오락으로 보고 방관하는 게 옳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박심리, 인생역전에 들뜬 사행 행위자들은 대부분이 갖지 못한 사람들이다. 가진 이들이야 오락 삼아 재미로 한다지만 가진 이들일수록 복권 따위는 별로 사지 않는다. 특히 복권의 경우는 돈없는 사람들이 일삼아 사면서 가히 인생의 명운을 걸다시피하는 사행심리에 빠져드는 경향이 짙다. 이제 복권 계모임까지 성행하는 정도가 된 것은 도박산업으로 인한 사회 병리현상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말해준다.
이도 경기가 좋으면서 그러면 또 모르겠다. 경기가 침체돼 경제전반이 어려운 판에 유독 도박산업만 호황을 누리는 것은 뭐가 잘못 되어도 단단히 잘못됐다. 지난해 도박산업 매출액 11조5천539만원은 예를 들어 국민 1인당 무려 34만원을 날린 금액이다. 이로 인해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안나왔을리 없고, 또 그런 사람들로 인한 사회악이 컸을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사회방어를 위해서도 도박산업은 절제돼야 한다. 당국의 도박산업 재정수입이 2조8천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을 도박심리로 병들게 해놓고 벌어들인 재정수입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갖가지 복권마다 좋은 소린 다 쓰여 있다. 서민주택을 짓고 과학에 힘쓰고 녹화를 하고 환경사업을 하고 이밖에도 별의별 말이 다 있다. 그러나 사회를 사행심리로 빠져들게 하며 긁어모아 벌이는 사업이 무슨 의의가 있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로또 대박 광풍이 마침내 일부 초등학생들까지 번졌다는 신문 보도는 정말 충격이다. 어른들로도 모자라 어린이들 마음까지 병들게 만든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질 것인지 묻고싶다. ‘손톱 밑에 가시 든 줄은 알아도 염통 밑 곪는 줄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도박산업의 폐해 실정이 바로 이렇다. 국민사회의 염통이 크게 병들고 있는데도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참으로 우려스런 현상이다. 도박산업은 물론 선진국에도 있으나 우리는 선진국이 아니며 국민소득 또한 비교할 수준이 못된다. 좋은 것은 따라갈 생각않고 나쁜 것만 따라가는 외국 모방은 우리의 실정과는 거리가 멀다.
손주 학자금 마련의 요행을 바라고 그로써는 거금을 주고 로또복권을 샀다던 그 할아버지는 결국 1만원만 날리고는 급식소 발길이 끊겼다. 홧병이 나 몸져 누워 계시기 때문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정의가 통하는 사회를 건강한 사회라고 한다면 이를 해치는 도박산업 광풍은 마땅히 억제돼야 한다. 정부의 정책적 재검토가 긴요하다. 노무현 차기 정부에서 도박산업에 대한 과감한 일대 수술과 함께 재조정되는 결단이 있기를 간곡히 기대한다.
/이 지 현 (사)한길봉사회 경기도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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