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아이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주세요’ 김현옥<수원 수일중 교장·시인> 예년보다 추위가 빨리 찾아왔습니다. 아침마다 자녀들 학교에 보내시면서 안쓰러워하실 부모님 마음이 저에게도 전달되는 듯 합니다. 우리 학교 현장이 가정보다 더 환경이 좋아져야 할텐데 그저 더도 덜도 말고 너무 춥거나 덥지 않은 환경에서 생활하도록 해주어야 할텐데 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학부모님, 제가 오늘 편지를 드리는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최근 초등생 두명의 자살과 관련하여 저의 걱정과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지요. 며칠전 지방의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가 공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물고기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 그 학생의 유서를 매스컴으로 전해 듣고 매우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그애 나이일때 눈속을 뒹굴기도 하고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나 숨바꼭질 놀이를 하면서 지냈는데…. 한창 개구쟁이로서 장난도 치고, 싸우기도 하고, 만화도 보고, 사람 사는 동네 이곳저곳을 기웃거릴 나이에 자고 깨면 그저 학교로 학원으로 내몰리면서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공부하는지도 모르면서 쫓기는 아이들이 참 측은합니다. 아니 한 학교의 책임자이자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심히 부끄럽고 막막합니다. 학부모님, 요즘 한국사회는 강박증적일 정도로 성급하고 일류지향적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친구는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것을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기 보다는, 다른 애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면서, 우쭐거리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경쟁자를 미워하거나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일이 많습니다. 수행평가를 할때에 교사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시기, 질투, 반목이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들은 자기 능력이 미치지 않을 때 심하게 좌절하거나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심한 경우 자살을 초래하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또 한 명의 초등 어린이는 왕따로 인해 자살을 하였답니다. 더욱 측은한 것은 자기를 따돌린 아이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갔다는 것이지요. 무엇이 그 어린 아이의 가슴을 그렇게 아프게 하였을까요. 죽는 마당에서도 결코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에 한을 묻고 저 세상으로 간 그 아이가 저승에서인들 자기 거처를 잡을 수 있겠는지요. 왜 해맑고 활기차야 할 우리 아이들이 너무도 큰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야 하는지 학부모님께서는 그 답을 아십니까. 저는 모르겠습니다. 왜 우리 아이들이 사랑 대신 미움을, 믿음 대신 불신을, 친구 대신 적을, 행복 대신 불행을, 자신감 대신 좌절감을 껴안고 살아야 하는지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누구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이 강박증적인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게 있습니다. 고통이나 불행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 그 질이나 양의 차이가 있을 뿐 고통과 불행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법이지요. 다만,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가에 따라 그것은 고통과 불행이 되기도 하고, 인간적 성숙이라는 멋진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생생한 경험의 언어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학부모님, 요약하자면 우리 아이들에게 삶에 대해 아름답고 건강한 시각을 갖도록 도와주자는 것입니다. 삶을 아름답게 보고, 주변에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배려하면서 사는 아이들로 키웠으면 하는 게 제 소원입니다. 그러면 공부 못했다고, 공부 어렵다고, 친구들이 자기만 따돌린다고 불행해하거나, 자살하지는 않을 것 입니다. 공부 좀 못하면 어떻습니까. 사는데 큰 지장 없습니다. 건강한 육신과 아름다운 마음이 있으면 되지요. 친구 좀 없으면 어떻습니까. 부모님이 계시고 형제들이 있는데 책이 있고 나무가 있고 하늘이 있고 강아지도 있는데 뭐 어떻습니까. 자기 자신과 이 세상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보는 마음이 있으면 모든 것이 소중하고 경이롭고 아름답습니다. 존재와 생명에 대한 외경심, 사건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궁금증, 그런 것들은 아이들이 인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천국의 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주세요.
오피니언
경기일보
2002-11-2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