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지방화시대와 지방문화
광명문화원장 정 원 조
흔히 사람이 여럿 모인 자리에서 무언가 진행하려 할 때 누가 옆에서 시끄럽게 굴면 “거기 지방방송 좀 꺼 주세요” 한다. 물론 우스갯 소리다.
하지만 이 말에는 지방이라는 의미가 중앙의 개념보다 상대적으로 비하되는 의미가 담겨있다.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왜 하필 지방 방송이라 표현하는가. 이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방이란 개념을 중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못한 것, 좀 부족한 것, 보다 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개념이 잠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비단 서울 사는 사람들 뿐 아니라 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공유하고 있는 우리나라 특유의 현상이다. 아마 고려, 조선시대 이후 줄기차게 진행돼 온 이 땅의 중앙집권적 정치문화로 인해 정치, 경제를 비롯한 사회, 문화, 예술 등 모든 것들이 중앙 집중화의 양상을 띠어온 데 그 근본적 뿌리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말에서 보는 것처럼 일체의 중앙 집중화 현상 속에 내재된 중앙중시, 지방홀시 문화는 새로운 지방화 시대에서 분명히 타개되어야 할 구시대적 정신유산이다.
문화란 곧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요,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한국문화라 함은 한국 사람들이 사는 삶의 총체적 양식을 의미하며 그들의 고유한 삶의 방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구문화, 전통문화, 음식문화 등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서울의 문화는 서울사람을 서울사람이게 한다. 마찬가지로 경기, 충청, 부산 등 다른 지방의 문화는 그곳 사람들을 그곳 사람들로 만들어 준다. 각 지방과 지역의 사람들은 그들이 가꾸고 있는 독특하고도 고유한 문화에서 자신들만의 모습을 찾고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긍지와 자랑을 느낀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지방문화가 없었다. 모든 문화는 서울에 집중되었고 중앙의 문화가 지방으로 일방적으로 흐르기만 할 뿐이었다. 그 결과 지방 사람들은 자신들의 존재나 지역에 대한 진정한 자각과 긍지가 있을 수 없었고 중앙에 대한 상대적 열등의식과 그에 따른 동경만이 있었다.
중앙의 삶이 표준으로 되었으며 사는 지역만 다를 뿐 사는 모습은 똑같이 획일화 되어 버렸다. 이는 전통적으로 강력했던 중앙집권정치에 의한 영향으로 지역적 특성과 기반을 갖고 있는 지역문화 활동이 점차 중앙문화 활동에 예속되면서 어쩔 수 없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었다.
선진각국에서는 이미 제도적으로 지방자치가 뿌리를 내렸으나 우리는 이제 비로소 본격적 지방자치 시대를 시험하고 있다. 정치적 이유로 그동안 실현이 미뤄져 온 지방자치는 지방의회 선거과정을 통해 뿌리를 내리고 있고 그 결과 점차적으로 중앙 중심적 체제에서 지방 분권에 기초를 둔 본격적인 지방화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이 지방화 시대에서 중앙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파적 차별 대우를 받아 온 지금까지 일체의 모든 제도나 문화 등은 종식돼야 한다. 자기가 속한 향토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을 가진 문화주민들에 의해서만 본격적인 지방화 시대는 꽃필 수 있다.
어느덧 사람들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던, 중앙적인 것은 좋은 것, 고급적인 것, 지방적인 것은 상대적으로 좀 못한 것, 수준 낮은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도 본격적인 지방화 시대의 전개와 함께 자연스레 사라지게 될 것이고 지금과 같은 이분법적 구분개념 조차도 사라질 것이다.
지방화 시대를 맞는 시급한 관건은 내가 속한 향토에 깊은 애향심과 자부심을 갖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자신의 고장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주민들이 타도시보다 자신의 지역에 자부심을 갖게 될 때에만 진정한 지방화 시대는 성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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