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새해엔 자꾸 접시를 깨리라

기고/새해엔 자꾸 접시를 깨리라

김현옥(수원 수일중 교장·시인)

새해가 되면 1년의 운세를 알고 싶어 점쟁이를 찾거나 하다 못해 컴퓨터 점괘라도 보고 싶어진다. 도처에 불확실함과 위험이 편재해 있으니까, 또는 한 해를 경건하게 맞이하기 위해, 아니면 복을 받기 위해 점괘를 보려고 한다. 나의 경우는 일일운세를 좀 보는 편인데, 왜냐하면 대인관계가 많고 특히 철부지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직종이라서 그저 하루하루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비는 마음에서이다.

올해는 양대 선거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불확실성과 불안의 세기라서 그런지 부쩍 점괘에 대한 관심들이 늘어나고 있다. 얼마전에 만난 친구도 새해 첫날에 접시를 깨고는 영 기분이 좋지 않다면서, 용한 점쟁이가 있으면 점이나 보고 싶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그 친구는 지나치게 깔끔하고 살림도 잘하는 친구여서 가끔씩 내가 강박증 환자라고 놀리는 친구이다.

걱정하는 친구에게 나는 “접시를 깨뜨리는 사람도 있어야 그릇장사가 살것 아니니. 나는 일주일에 한벌꼴로 접시를 깨는걸. 쨍그랑 소리. 얼마나 상쾌하니”라고 말하면서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섞어 모가수의 “접시를 깨자(?)”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니까 친구가 웃었다. 그렇지만 못내 찜찜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라. 새해 첫날 접시 깨뜨린 게 뭐 그리 걱정거리란 말인가. 아니 죽고 사는 것 빼고 다른 일들이 뭐 그리 문제란 말인가. 모든건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다. 접시는 깨지게 되어 있고, 더욱이 묵은 접시는 깨버려야 새접시가 들어설 공간이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우리 머리속의 접시도(패러다임, 고정관념 등) 묵은 접시는 깨뜨려버리고, 그 자리에 새접시를 놓아야 하는 건 아닐까? 나의 경우, ‘작심삼일’. 3일에 한번은 머리속 접시를 깨뜨려버리곤 한다.

모든 게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깨우침을 확실하게 하게 된 경위는 이러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귀신꿈 때문에 어떤 날은 잠자는 게 두렵기도 하였다. 머리를 산발하고 입에는 칼을 물고, 피를 뚝뚝 흘리는 여자 귀신이 갈쿠리 같은 손톱으로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곤 하였다. 이건 꿈이야 하면서 버르적거리다가 겨우 소리를 지르고 깨어나곤 하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홀연히 귀신과 맞서기로 하였다. 아니, 귀신에 대해 재정의를 하기로 하였다. 귀신이 무언가? 억울한 혼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맴돌면서 하소연할 사람을 찾는 게 귀신 아닌가? 그리고 나는 명색이 상담가이고, 그래 오너라. 언제든지. 내 너를 맞이하여 네 원한과 하소연을 다 들어보겠다. 하고 마음먹고 귀신을 기다리니까 귀신이 나타나지 않았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담력이나 용기가 아니다. 귀신에 대한 재정의, 내나름의 재해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상황이나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절망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희망적으로 생각할 것인가는 순전히 마음먹기에 달렸다. 나의 경우, 현명하게 해석을 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귀신을 이해하고 귀신의 억울한 점을 풀어주려고 마음먹었더니 귀신이 사라졌다. 점괘도 그러한 것이다. 그저 심심풀이 정도로 또는 말과 행동을 삼가는 계기로 삼는 정도로 점괘에 의존하면 된다. 비오는 날이면 비가 와서 좋고, 갠날은 개어서 좋고. 비온 후에는 갤 것이고, 갠 후에는 비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새해에는 자꾸 접시를 깨리라.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