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농촌이 어렵다고 한다. 수치만 볼 때 엄살이라고 만 볼수도 없다. 지난 95년 국내총생산(GDP)이 3천988조원, 2003년도는 7천213조원으로 80%가 증가한 반면 농업총생산은 20조원에 머물고 있다. 지난 기간의 정체를 보면 향후 10년이 지난다해도 농업총생산은 20조원을 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03년 경제성장률 3.1%, 경제가 바닥이라고 아우성이었다. 농업성장률 마이너스 8.2%, 이쯤 되면 농업을 포기하고 하루라도 빨리 떠나는 것이 상책일는지 모른다. 지난 93년 UR타결에 따라 정부에서는 농업구조개선을 위해 62조원을 퍼붓고 있다. 지방비 10조원, 농가가 부담한 10조원까지 포함하면 82조원의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농가 호당 부채는 92년 692만원에서 2003년 2천661만원으로 10년 사이 무려 4배나 증가했다. 불가사의 중의 불가사의이다. 이러한 가운데 ‘농업·농촌 희망 되살리기’는 가능한 일인가. 우리는 여기에서 발상의 전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농업총생산이 연간 20조원에 머무르고 있는 사이에 농업·농촌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공익가치, 이를테면 홍수조절, 대기정화, 정서함양, 휴양·경관가치, 전통문화보존, 지역사회 유지기능 등을 환산하면 약 30조원에 이르고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농업생산은 현금화되고 있지만 농업·농촌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공익가치는 현금화되지 못하고 있는 잠재자산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비교역적 가치(Non-Trade Concern)인 것이다. 이것을 교역적 가치로 만들어서 농업소득으로 연결하는 정책수단을 개발한다면 ‘농업·농촌 희망 되살리기’는 가능하지 않을까. 지난해 경기도에서는 슬로 푸드 마을을 조성하였다. 듣기에도 정겨운 보릿고개마을(개떡, 쑥떡과 같은 거친 음식), 장단콩마을(순두부, 연두부, 된장, 고추장, 청국장), 서해일미마을(각종 젓갈류), 영양잣마을(잣두부, 잣국수, 잣죽) 등 10개소를 조성하여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전통발효음식이라는 농촌의 내재적 가치를 비즈니스화하여 농가소득으로 연결하였다. 결과는 농업인들도 놀랄 만큼 만족스러웠다. 물론 편의시설이라든가 서비스 부족이 지적되기도 하였지만 이는 점진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사항이었다. 농업·농촌이 참 어렵다. 어찌 보면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런데도 외국쌀 시중판매다, FTA확대다, 당장에 농업이 무너질 것처럼 언론은 호들갑을 떨고 “살아남고 싶으면 품질을 높여라, 경쟁력을 높여라, 규모를 늘려라, 생산비용을 줄여라”하면서 농업인들을 사정없이 몰아세우고 있다. 이제 발상을 바꾸자. 인간적인 농업(인정과 감성), 자연적인 농업(환경과 생태), 문화적인 농업(전통, 역사), 상생하는 농업(도시민과 농업인의 만남)을 통하여 농업의 내재적 가치를 농가소득으로 이끌어 내보자. 농업의 정책수단도 이제 저비용, 고생산인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에서 다양성을 살릴 수 있는 범위의 경제(Economy of Scale)로 패러다임을 전환해보자. 이를 통해 새해에는 농업·농촌의 희망을 되살려보자. /최 형 근 경기도 농업정책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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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05-01-0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