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원조와 짝퉁

요사이 부쩍 전문(Special)이라는 말이 남용되는 것 같다.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곰탕집도 단순히 ‘00곰탕집’이라고 하면 손님이 들지 않기 때문에 ‘00곰탕 전문집’이라고 이름 지은것 같고 ‘00한복집’ 대신에 ‘00한복 전문집’이라야 한다.

또 아파트를 짓는 회사 이름도 ‘아파트건설 전문회사’여야 하는 세상이다. 이러다 보니 전문 아닌 것이 전문의 탈을 뒤집어 쓰고 있어서 정작 진짜 ‘전문’은 짝퉁(가짜)에 밀려 숨도 쉬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사회적 현상인 듯 하다. 이러한 짝퉁의 시대를 잘 반영해 주고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말하자면 ‘원조’라는 것이 그것이다. 서울 청진동 거리에 가면 어느 집이나 ‘원조 곰탕집’이라고 한다. 도대체 ‘원조’가 그렇게 많다면 원조의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결국 우리사회에서 짝퉁의 원조는 ‘순진짜참기름’이 아닌가 싶다.

직업은 형태에 따라 분류한다면 농업은 하드웨어(Hardware) 산업이라고 할 수 있고, 첨단과학은 소프트웨어(Software)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세계화 시대에 적응하고 윤택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첨단과학에 의존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삶이 농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첨단과학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가 착각에서 벗어나야 할 것은 하드웨어를 무시한 소프트웨어는 존재할 수 없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어야 하지만, 하드웨어 없는 소프트웨어를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첨단과학을 무시하고 전통적인 농업 경영 및 생산체제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농업 역시 첨단 과학을 이용한 농업 경영 및 생산은 필요하지만, 농업을 포기한 첨단 과학만을 고집하는 것은 바로 도랑치고 가재 잡는 격이다. 순수 기초과학을 간과한 응용과학의 발전은 모래에 성을 쌓는 일이며, 이는 마치 농업을 포기하고 첨단과학에 의한 농산물 제조를 꿈꾸는 것과 같은 몽상에 지나지 않는다. 선진 문명국은 튼튼한 기초과학의 기반위에 응용과학을 발전시켰으며,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첨단과학의 토대가 되었고, 산업 역시 견고한 농업의 초대 위에서 첨단과학을 발전시켜오고 있다.

그러나 요즘 전통적으로 농업 국가였던 우리는 1970년대 이후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하면서 농촌이 무너지고 인구의 도시집중 등 구조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사회를 안정시키고 도농이 골고루 평준화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농촌에 젊은이가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농촌에 젊은이가 없고 노인만 살고 있기 때문에 많은 농촌지역에서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해 예식장을 장례식장으로 전환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렇듯 우리의 농촌 살리기는 우리 농업인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 전체의 대사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정부에서는 한국농업전문 학교를 설립하였고 적극 지원해 왔다.

그러나 요즘에는 우리 한국농업전문학교 역시 원조라는 말을 붙여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농업전문학교는 진정한 농업인, 최고농업경영인과 더 나아가서는 미래농촌의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학비 및 실습비, 기숙사비를 전액 국가가 부담지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와 해외선진농장의 장기연수 지원은 물론이고, 졸업 후 자기 집에서 농업을 열심히 하면 군대에 갔다 온 것으로 인정해주는 병역특례혜택까지도 주고, 졸업 후에 영농정착금 등을 우선지원 받을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대학이다.

즉 한국농업전문학교는 흔히 말하는 일반대학과는 교육과정과 조직이 다르다. 말하자면 우리 ‘농업전문학교’의 ‘전문’은 농업전문가(special agriculturist)를 의미 하지만, ‘일반대학’의 ‘전문’은 학교 유형을 나타내는 표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대학 설립 본래의 취지와 목적이 곡해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우리 학생들을 한국농업의 사관생이라고 부르고 싶으며, 우리 농업전문학교의 학생들이야 말로 기본에 충실하고 원리에 입각하여 응용력을 겸비한 대학생들임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이 건 순 한국농업전문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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