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0주년을 맞아 해방 당시 한국철도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듯하다. 해방 2년 전(1943년) 중반부터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전세가 기울어지기 시작하면서 모든 교통체제는 일제 침략전쟁 최후의 결전태세로 전환되었다. 당시 열차시간표 첫 페이지에는 전력증강을 위하여 일부 여객열차를 폐지하고 화물수송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구호와 함께 선별로 폐지되는 열차를 알리고 있다. 전쟁수행을 위하여 필수적인 경부선, 경의선 복선공사의 자재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광주선(광주~담양), 경북선(점촌~안동), 경기선(안성~장호원), 충남선(홍성~장항), 금강산전철선(창도~내금강) 등의 지선을 철거하여 그 자재로 충당하려는 등 비상체제였으며 철도는 만주와 중국행 군사수송, 중국과 만주로부터 일본으로 철, 석탄, 소금, 콩 등의 수송 및 주요 산업의 원료수송과 생산품 수송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당시 운행된 여객열차는 부산역의 경우 북경행 급행(49시간 5분 소요), 하르빈행 급행(45시간 25분 소요), 안동(중국)행(32시간 15분 소요), 평양행(18시간 20분 소요) 및 마산, 진주, 대구행 열차가 운행되었으며, 서울(경성)역의 경우 북경, 하르빈, 안동, 평양발 부산행 외에 목포(13시간 40분), 여수(16시간 15분)행과 수원, 천안, 대전, 정주(평안북도), 토성(개성 다음역)행이 운행되었다. 경인선은 첫차 05시 10분부터 막차 21시 40분까지 하루 10왕복이 운행되었으며 서울~인천간 소요시간은 1시간 20분 이었다. 당시 급행열차는 1등, 2등, 3등실 완행열차는 2등, 3등실이 연결되어 운행되었으며 서울에서 인천까지 2등 2원 70전, 3등 1원 20전, 부산 1등 49원 50전, 2등 31원, 3등 14원, 평양 1등 78원, 2등 49원, 3등 22원, 북경까지는 1등 223원 60전, 2등 162원 55전, 3등 79원 25전 이었다. 최근 한국은행이 펴낸 ‘숫자로 보는 광복 60년’에 의하면 당시 쌀 80㎏ 1가마가 0.2865원 이었다고 하니 이에 따르면 철도운임이 엄청나게 높았던 것 같다. 해방 당시 한국철도의 총 영업키로는 6,362㎞(남한 2,642㎞·현재 3,041㎞), 기관차 1,166대(남한 488대·현재 전동차 1,858대 제외하고 1,180대), 객차 2,027량(남한 1,280량·현재 1,717량), 역 762개소(남한 300개소·현재 636개소), 철도종사원 100,527명(남한 55,960명·2003년말 현재 31,562명)이었으며 해방되고 채 한 달도 못된 9월 11일 남북간 철도운행은 중단되고 말았다. /손 길 신 철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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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05-08-1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