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문단?

한국문단은, 문학을 중앙문학, 지방문학으로 구분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중앙문단, 지방문단이라고 하고 중앙문인, 지방문인이라고도 한다. 심지어 문단에 등단한 사람은 중앙문인,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방문인이라고도 지칭한다. 문단에 등단하면 중앙문단에 나섰다고도 말한다. 여기서 ‘중앙’은, 국가의 수도, ‘서울’을 뜻한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서울에서 살고 있는 소위 ‘중앙문인’들이 지방에 살고 있는‘지방문인’들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방문인은 문명(文名)이 높지 않고 작품도 대수롭지 않다는 그런 인식이다. 얼마 전 수원에서 K시인의 시집출판기념회가 열렸었다. 문인들이 기념촬영을 할 때 서울에서 온 S시인이 “지방문인들 하고 사진 좀 찍어볼까”하며 끼어든 적이 있을 정도다. 안성 출신의 조병화 시인이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안성에 와서 여생을 지낸다면 ‘조병화 시인은 지방문인’이라고 할 인사들이 꽤 많다. 고인이 된 서정주 시인이 전북 고창에서 살았다면 ‘서정주 시인은 지방문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문단풍조가 한심스러웠는지 오는 23일 경남 하동에서 ‘지역문학인회’가 창립된다는 소식이 왔다. 발기인으로 참여한 50여명의 문인 중 나태주·강희근·허형만·정일근·최영철·송수권 시인 등은 충청도·경상도·전라도 등에서 살며 좋은 작품을 많이 쓰기로 유명한 사람들이다. “모든 문화가 서울에 종속된 상황에서 문학쪽에서 먼저 각 지역의 개성과 주체성을 존중함으로써 문화적 봉건성·편협성·종속성을 탈피하려 하는 일”이라고 한다. 서울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문학·문단 활동에 마이너스가 되는 현실이 답답해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문학단체들을 부정하거나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려는 것은 아닐 지역문학인회 창립은 중앙문학, 중앙문단, 중앙문인을 자처하는 계층에게 자극을 줄 것 같다. 정치에는 중앙정치와 지방정치가 있겠지만 문학을 포함한 예술에는 중앙예술·지방예술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지금까지의 중앙문단은 마땅히 ‘서울지방문단’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

외화내빈

일주일 전 (8일 오전 11시 20분), 서울 운동장에서 제50회 대통령배 전국남녀 축구대회 10조 예선인 단국대-전남과학대의 경기가 있었다. 후반전에서 태클을 걸다가 다친 전남과학대의 공격수 백석주 선수가 들것에 실려 나갔다. 극심한 고통에 눈도 뜨지 못하고 얼굴을 찡그린 백선수는 중앙대 용산병원에서 임시치료를 받았는데 금이 간 복사뼈는 쉽게 나을 것 같지 않다고 의료진은 진단했다. 대통령배 축구는 한국 대표 선수들을 충원해내는 수원지이다. 성인 아마축구 최고의 무대다. 하지만 경기를 치러야 할 운동장은 콘크리트바닥처럼 딱딱한 효창운동장이나 맨땅 뿐이다. 미끄러지면 허벅지에 손바닥만한 생채기가 나고, 달리다 급히 멈춰 서면 발목이 꺾인다. 하루 전인 7일(현지시각) 스페인 특급휴양지의 한국 축구 대표팀 숙소인 하이엇 리젠시 라망가 리조트. 하루 숙박비가 방 1개당 350달러(45만5천원)에 이르는 최고급 호텔이다. 13일 튀니지와의 평가전 때 대표팀은 3만5천달러짜리 전세기로 이동했다. 튀니즈와의 평가전에서 경기내내 답답한 플레이를 펼쳐 결국 0대 0 무승부로 끝내 실망을 줬지만 독일 원정 때는 비즈니스 좌석을 배정 받는다. 이달 28일 끝나는 대표팀 전지훈련에 들어가는 기본경비는 7억∼8억원선이다. 모든 게 최고급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지불하는 돈은 또 얼마인가. 1년6개월 계약금이 자그마치 10억원이 넘는다. 기왕 영입했으니까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라고는 있지만, 한국대표팀 감독을 굳이 외국인에게 맡긴 것은 사대주의적으로 잘한 일은 아니다. 히딩크감독에게 주는 막대한 돈이 국민이 낸 세금임을 생각하면, 아깝다. 대표선수들에게 베푸는 최고·최상의 대우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그야말로 대표선수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잖는가. 다만 대표팀에 들어가는 돈을 조금 아끼면 효창운동장 인조잔디를 새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한국축구의 외화내빈, 그렇다.똑같은 한국축구인데 돈 씀씀이가 너무 차이 나 좀 뭣하다. 淸河

어린이 학대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1992년 이후 결혼은 계속해서 감소하는 반면 이혼이 늘고 있다. 따라서 재혼도 급증한다. 2000년 현재 우리 나라의 결혼한 3만4천쌍 중 부부 한 쪽 또는 양쪽이 재혼인 경우는 13.1%이다. 그러니까 7∼8가정 중 한 가정이 재혼 가정인 셈이다. ‘사람 싫은 것 처럼 지겨운 게 없다’고 한다. 아들 딸 낳고 살던 부부가 싫어져서 이혼하는 건 자유다. 문제는 각각 다른 남자와 다른 여자를 만나 재혼한 후의 가정생활이다. 가정법률상담소의 이혼상담 중 재혼부부의 상담비율이 증가하는 현상을 보면 재혼가정이 모두 행복한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이혼을 한 남녀들이 성공적인 재혼을 하려면 전 배우자와의 법적 이혼은 물론 정서적·경제적·심리적으로도 완전히 이혼해야 할 것이다. 상대의 과거 결혼생활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하는지, 전 배우자에 대해 감정적인 정리가 잘 돼 있는지, 친자녀와 계자녀를 편애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등의 자문자답을 하고 자신이 생겼을 때 재혼해야 한다. 특히 전처, 전남편의 자녀양육 문제는 가장 기본적인 신뢰와 애정이 있어야 한다. 재혼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계부·계모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계부·계모의 눈물겨운 자식사랑 얘기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된 어느 젊은 계모의 전처 딸 학대는 믿어지지가 않는다. 쇠젓가락을 가스레인지에 가열한 뒤 일곱 살짜리 어린이의 어깨와 등을 지졌다고 한다. 가열된 다리미로 어린이의 손등과 발등을 지졌다고 한다. 어린이를 세탁기에 집어 넣고 물을 틀어 돌렸다고 한다. 계모가 들이대는 뜨거운 쇠젓가락과 다리미 앞에서 공포에 떨었을 어린이를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아버지가 한 집에 살았을텐데 과연 몰랐나?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계모가 전처의 어린 자녀를 학대하고 계부가 전남편의 딸을 성폭행한 끔찍한 사례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어린이가 생모를 닮았다는 이유로 저지른 이번 만행은 끔찍스럽다. 우리 나라의 고전 ‘장화홍련전’에 나오는 계모도 이 보다는 덜했을 것이다. 재출발하여 스위트홈을 이룬 많은 재혼가정들에 누를 끼친 어린이 학대는 무지몽매한 부모 탓이다. 겁에 질린 어린이의 눈빛이 자꾸 떠올라 가슴이 어둡다. /淸河

경선제

인삼 녹용은 선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약이 된다. 가령 열병에 인삼을 먹이면 치명적이다. 비상은 성냥개비 알만큼만 먹어도 목숨을 잃는 독약이고 앵속은 잘못 쓰면 인생을 망치는 극약이지만 비상이나 앵속도 잘 쓰면 더할나위 없는 선약이 된다. 복어는 비상보다 수십배나 더 한 독성을 지녀 심히 위험스럽지만 독을 가려낸 생선은 그 맛 또한 더할나위 없다.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인 건 존재하지 않는다.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여도 허점이 있고 역기능이 있다. 물론 제도 자체가 좋아야 하겠으나 운용을 잘해야 한다. 그래야 제도의 취지를 살리고 허점을 보완하여 역기능을 줄인다. 반대로 허점을 틈타 역기능을 일삼고 운용을 왜곡하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좋은 제도가 될 수 없다. 후보경선제를 생각해 본다. 일선 당원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선제는 민주정당의 진면모다. 중앙당에서 후보를 일방적으로 낙점해온 낙하산에서 벗어나는 민주정당의 참 모습인 게 경선제다. 그런데 이것이 생각같지 않은 것 같다. 여·야 단체장 후보경선이 갈팡질팡 하는 가운데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는 곳이 대부분인 모양이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어 짐작못할 건 아니나 큰 일이다. 정당민주화의 선약처방이 이처럼 극약이라면 현안의 정당민주화를 무엇으로 이룬다는 것인지 실로 요원하다. 정말 걱정되는 것은 차라리 중앙당에서 후보자를 점찍는 게 더 낫다는 자탄이 나오고 있는 사실이다. 한때 민선단체장의 관선회기설이 유력하게 나돈 적이 있었다. 민선단체장의 횡포가 심하다 보니 나왔던 얘기지만 그렇다고 시대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다. 후보경선도 마찬가지다. 비록 잡음이 많아 시행착오가 있다손 치더라도 정당의 민주화를 거역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의 의식이 건전해야 한다. 의식의 변화없인 선약도 독약이 될 수밖에 없다. 운용의 묘를 기할줄 아는 게 곧 민주주의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운용할 자질이 없다곤 믿고 싶지 않다. 경선제가 운용의 묘를 거두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바란다. /白山

부동산 투기

경기 부양을 위해 내수를 진작시키다 보니 과소비가 일고 투기가 심해졌다. 분양권 전매를 양성화 해놓으니 ‘떴다방’이 설쳤다. 세무조사 강화에 나서니까 부동산업소가 모두 문을 닫았다. 건교부는 이제 분양후 1년내 전매금지 조치 방안을 마련하는 모양이다. 부동산 과열양상이 진정되지 않으면 분양가 규제 등 이밖의 후속대책도 강구하는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쉽게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어제 본보 1면은 아파트 투기극심지역에 대한 단속을 피해 개발예정지구로 투자가 몰리는 실상을 상세히 보도했다. 예컨대 용인 죽전지구의 경우, 지난해 10월 평당 분양가가 320만원이었던 게 400만∼500만원대로 뛰어 올랐다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단독택지의 프리미엄이 1억원까지 오른다니, 말이 1억원이지 프리미엄으로 그런 돈을 눈 깜짝할 사이에 거머쥐는 걸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부동산 시장이 원래 이래서 유휴자금의 투기가 머리를 싸매가며 성행되고, 돈이 돈을 번다는 것이겠지만 서민층 생각으로는 마치 딴 세상 얘기처럼 들린다. 이런 현상이 물론 작금의 일은 아니다. 한국인의 부는 부동산 시세차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수십년동안 이어져 왔다. 대만처럼 토지의 공개념, 주택의 주거개념이 확립되지 않고 토지나 주택이 철저한 증식수단의 재산개념이 돼서는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여윳돈이 있는 사람은 아무데나 땅을 사두어도 몇십년 뒤엔 떼돈을 번다. 특히 땅은 제한된 자원이기 때문에 더한다. 국세청이 분양권 매매와 단기 매매자를 대상으로 하는 3차 세무조사를 대대적으로 벌인다고 한다. 조세정의 차원에서 부동산 투기로 번 돈에 소정의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 부동산 투기자도 내야 할 세금을 다 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률적 책임을 탓할 일은 못된다. 문제는 지하화한 투기의 음성거래를 제대로 밝혀내는데 있다. 어떻게든 철저히 추적해 내야 할 것으로 보지만 그대로 묻혀 넘어가는 탈루세원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다. 국세청의 지난 1,2차 세무조사 결과가 어떠 했는지 궁금하다. /白山

선거완전공영제

YS는 “청와대에서 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허하다. 대통령까지 된 정치인이 뭐가 더 필요해서 돈을 받는다는 말인가,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엔 돈을 받아왔다는 말밖에 안된다. DJ는 “조건있는 돈은 한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역시 공허하다. 세상에 조건없는 돈이 자선사업 말고 있을 수 있는가, DJ에게 자선사업 하느라고 수억원, 수십억원을 주었을 것으로 믿을 사람은 있을 것 같지 않다. 돈을 많이 받아 왔다는 말밖에 안된다. YS·DJ가 이런판에 다른 정치인들은 더 말해 뭐 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치고 정치자금에 자유로운 정치인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YS정권에서의 세풍사건, DJ정권에서의 게이트 파문이 정치자금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막대한 정치자금이 소요되는 데는 고비용의 정당구조, 고비용의 선거제도에 있다. 중앙당의 공룡화한 거대조직, 지구당의 낭비요소 등이 정당구조에 속한다. 선거제도는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 등이다. 유지담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며칠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주목할 발언을 했다. “정당이나 후보자가 선거자금을 한 푼도 쓸 수 없고, 쓰지 않아도 되는 완전공영제 실시 문제를 놓고 깊이 연구 검토하고 있다 ”면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올해 대선부터 실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다. 한국 정치사의 새장을 여는 획기적 전환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고 쓰지 않아도 되는 선거의 완전공영제는 예를들면 후보자의 모든 선전 유인물도 국비로 제작해 준다. 물론 부작용이 없지 않다. 국비의 과다부담, 어중이 떠중이의 난립, 후보자의 선전미흡 등도 예견이 가능하다. 그러나 단점보다는 장점이 비할 수 없이 훨씬 더 많은게 선거의 완전공영제다. 우선 선거공해를 추방할 수가 있다. 고비용의 선거자금이 들어가지 않는다. 깨끗한 선거가 가능하다. 완전공영제의 검토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오는 12월 대선부터 실시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깨끗한 선거 없이는 깨끗한 정치가 불가능한 사실을 너무도 뼈저리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白山

良臣·忠臣

요사이 돌아가는 정국을 보고 있자니까 중국 고사 하나가 생각난다. 당나라 때의 명신 위징(魏徵·580 ∼643)은 당태종의 간언(諫言)담당관이었다. 위징이 어느 날 태종에게 아뢰었다. “아무쪼록 저를 양신이 되도록 해주십시오. 결코 충신으로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 “충신과 양신은 어떻게 다른가? ” “후직( 后稷), 설, 고도(皐陶) 등은 요·순(堯·舜)을 섬겨, 군신이 합심해서 천하를 태평성세로 이끌고 다같이 번영을 누렸습니다. 이것이 이른 바 양신입니다. 하(夏)나라 걸왕(桀王)의 신하였던 용봉(龍逢)이나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신하였던 비간(比干)은, 신하들이 늘어서 있는 자리에서 정면으로 군주의 잘못을 간했기 때문에, 그 몸을 주살당하고 게다가 나라는 망해 버렸습니다. 이 것이 이른 바 충신입니다.” 훗날 위징이 죽자 태종은 “구리쇠를 갈고 닦아 거울을 만들면, 의관이 흐트러진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옛날을 거울로 삼으면, 국가 흥망의 원인을 알 수가 있다.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내 행위의 옳고 그름을 알 수가 있다. 이제 위징이 죽고 없으니, 나는 하나의 거울을 잃었다”고 몹시 애통해 했다고 한다. 위징은 본래부터 태종의 신하가 아니었다. 그는 태종과 황제자리를 놓고 쟁탈전을 벌였던 태종의 형 건성(建成)의 측근으로, 건성을 위해서 태종 축출을 도모한 일이 있었다. 그 일로 태종은 즉위한 직후 위징을 엄중히 추구했다. 그러나 위징은 조금도 기가 죽지 않고 “신하가 주군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하는 주장을 펴며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태종은 솔직 담대한 그의 인품에 매료돼 부하로 맞아들이고 각별히 중용했다. 죽음을 각오했던 위징은 태종의 후의에 충성을 스스로 다짐하였다. < 인생, 의기(意氣)에 감동하고,공명(功名), 누가 또 논하겠는가 > ‘당시선(唐詩選)’의 모두를 장식한 ‘술회(述懷)’라는 시의 마지막 일절인데 작자는 바로 위징이다. 자신을 충신으로 만들지 말아달라는 말로 왕에게 선정을 요구한 위징같은 사람은 오늘날 누구인가. 또 양신은 누구이고, 충신은 누구인가. 살펴보아도 얼른 떠오르는 이름이 없다.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불행한 일이다. /淸河

노인시대

유엔 인구국이 최근 내놓은 노령화 관련 보고서에서 현재 10명당 1명꼴인 60세 이상 노인이 2050년에는 5명당 1명꼴인 20억명으로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노인 인구가 15세 이하 어린이 인구를 넘어서게 된다. 특히 현재 80세 이상 연령대가 60세 이상 노인의 12%를 차지할 정도로 급속히 초노령화 현상이 진행되면서 금세기 중반이면 100세 이상 노인이 현재의 15배인 320만명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도 2000년 11월에 실시한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인구수가 516만655명이다. 1995년 조사에서 60세 이상 인구수가 413만5천287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5년사이 100만명 이상이 늘어난 셈이다. 노인인구가 520만명에 육박한다면 앞으로는 가히 ‘노인시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노인들은 사회로부터 그리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현역시절 각계 각층에서 화려하게 활약했으나 은퇴이후 젊은 세대들의 냉대와 사회의 무관심으로 대부분이 위축돼 있다. 하지만 이제는 노인들을 홀대하다가는 큰코를 다칠 것 같다. ‘노년권익보호당· 약칭·노권당·The Silver Right Party’이 지난해 11월 중앙당 창당발기인 대회를 가진데 이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을 마쳤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10여개의 지구당 창당이 완료된 노권당은 앞으로 5개 이상 시·도에 23개 이상의 지구당을 분산 조직, 4월에 창당대회를 가질 계획이다. 노권당은 여느 정당처럼 권력을 잡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할 것이 아니라 노인들의 최소한의 권익을 찾는 순수한 사회봉사정당이라고 하지만 향후 정국에 각종 선거시 투표만으로도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할 게 분명하다. 지난 1998년 전국 동시지방선거에서 60세 이상 유권자들은 전체투표율(57.7%)을 훨씬 웃도는 71.2%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노인정이 4만700개, 노인대학이 1천600개, 대한노인회 회원이 190만명이다. 대통령이건 국회의원이건 지방의원이건 간에 아무튼 당선을 위해서라도 노인어르신들을 받들어 모셔야 될테니 웃음이 나온다. 미상불‘ 노인만세 ’다. /淸河

이원수

‘아동문학가 이원수(李元壽·1911∼1981)’는 잘 몰라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로 시작되는 홍난파 작곡의 노래 ‘고향의 봄’은 남한은 물론 북한주민들도 아마 거의 다 알 것이다. 이 ‘고향의 봄’의 노랫말을 지은 이원수는 경상남도 양산 출신으로 1930년 마산상업학교 졸업 후 함안 가야금융조합에 근무하다가 상경, 1945년 경기공업학교 교사가 되었다. 이원수는 1926년 동요 ‘고향의 봄’이 방정환에 의하여 <어린이>지에 뽑힘으로써 문단에 나와 윤석중 등과 <기쁨사> 동인이 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외형률 중심의 재래식 동요에서 내재율 중심의 현실참여적 동시를 개척하였다. 작품 경향은 초기엔 율동적이며 감각적이었으나 1940년대에 들어서 저항적 현실의식이 강하게 반영되었다.6·25 전쟁 이후에는 동요·동시보다는 동화·아동소설에 주력, 현실을 직시한 고발적 사실주의 아동소설을 발표하였다. 일제시대인 1935년에는 반일문학그룹에 연루돼 1년간 옥살이를 했었다. 그런데 이원수가 친일 시를 썼다는 주장이 나와 과거가 구설수에 올랐다. 일제시대 월간잡지 <반도의 빛> 1942년 8월호에 ‘지원병을 보내며’라는 한글 시를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 시의 4∼5연은 “나라를 위하여 목숨 내놓고 /전장으로 가시려는 형님들이여/부디 부디 큰 공을 세워주시오// 우리도 자라서, 어서 자라서/소원의 군인이 되겠습니다”로 돼 있다고 한다. 이 시가 게재된 월간지는 일제의 전쟁물자 조달을 담당했던 조선금융연합조합회의 국책기관지인데 발표시기를 보면 이원수가 가야금융조합에 근무할 무렵이다.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일본과 공산당에 부역 안한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되느냐 ”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쨌든 예술인들이 자의든 타의든 친일작품을 남긴 것은 비극이다. 반일문학운동에 앞장섰던 이원수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고 1941년11월20일 쓴 윤동주의 <서시> 시구가 재삼 절절해진다. /淸河

재계의 목소리

재계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무엇일까, 심상치 않다. 여느 때답지 않은 많은 말을 했다. ‘정치인들은 정당한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요청해 달라’(손길승 SK회장·2월1일) ‘불법적이고 부당한 정치자금은 내지 않겠다’(전경련회장단회의·2월8일) ‘재계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후보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손병두 전경련부회장·2월8일) ‘경총과 회원사들은 부당한 정치자금을 내지 않겠다’(김창성 경총회장·2월21일) ‘불법적이고 불투명한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겠다’(전경련총회·2월22일) ‘대선후보들의 공약이 시장경제 육성에 도움이 되는지를 평가하겠다’(경제5단체장·3월4일) 정치자금과 시장경제 문제로 요약된다. 두 가지 모두 재계의 주장 자체를 반박할 이유는 없다.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검은 정치자금 제공에 재계가 마치 일방적인 피해자인 것처럼 말한다면 사회정서에 배치된다. 재계 일각에서 검은 정치자금의 자진 제공을 즐겼던 과거가 있다. 재계 스스로도 자정의 노력이 필요하다. 시장경제는 자유민주주의의 윤리다. 그러나 불행히도 과거의 시장경제는 흐름이 왜곡되기 일쑤였다. 이에 재계가 또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려스런 점은 재산권의 개념에 대한 반론이다. 헌법은 ‘재산권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경제질서 기본조항이 시장경제에 반한다는 일부의 견해까지 나오는 것은 유감이다. 소유권의 19세 개념을 지닌 재계 인사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젠 정치권이 재계 눈치를 보아야 하는가, 아니다. 재계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게 잘못된 것처럼 정치권이 재계의 눈치를 보는 것도 잘못이다. 재계가 정치권에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좋다. 하지만 정치단체화는 제 몫이 아니다. 경제단체의 정치화를 경계한다. /白山

高官들

먹고 살기에 바쁜 서민들로서는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 증가가 무슨 요술처럼 보인다.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된 594명 가운데 468명의 재산이 늘었다. 1년에 단돈 몇백만원을 저축하기가 빠듯한 서민의 가계소득으로는 수억, 수십억원씩 늘어난 재산증식이 마치 꿈속같은 얘기로 들린다. 예금액이 얼마나 많았으면 그토록 엄청난 이자가 붙었으며, 주식투자를 얼마나 잘 했기에 그토록 이윤을 보고, 무슨 채권이 그리 많아서 이식을 보았다는 것인지 도시 서민생활 양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설령 재산이 늘지않고 그대로거나 줄었다 하여도 기본이 수십억, 수백억원대의 재산가들이니 그들 역시 서민들과는 다른 딴세상의 생활을 누리고 있다. 재산공개에 부모나 자녀의 재산에 대한 고지거부 내용이 많은 것을 보면 고관대작들의 실재산은 신고액보다 더 많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직계 존비속의 재산 공개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된다고 해 안한 것이니 안했다 하여 탓할 수는 없지만 재산공개의 취의에 비추어 보면 해야하는 게 도리인 것이다. 하긴, 김대중 대통령부터 아들들 재산을 전혀 공개치 않았으니 다른 고관들을 나무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나저나 아태재단이 아무리 재단법인이긴 해도 노벨평화상 상금 11억222만원을 주머니돈이 쌈지돈 같은 아태재단에 내놓고 대통령의 재산이 준 것으로 신고된 것은 글쎄 국민들이 어떻게 볼 지 모르겠다. 노벨상 상금이 궁금하긴 했다. 평화사업이나 사회사업에 기증할 줄 알았던 상금을 지난해엔 수입으로 잡아 그러는가 싶었는데 언제 또 아태재단으로 돌린 것인지 이번 발표로 처음 알았으니 말이다. 어떻든 고위공직자 처놓고 부자가 아닌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참 희한하다. 청백리니 청빈이니 하는 공무원상은 이제 전설속의 옛날 얘기처럼 된 것 같다. 대체로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이재를 잘해서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인지, 아니면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이재를 잘하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白山

친일시비의 독단

프랑스가 2차대전 후 나치 부역자를 처단할 수 있었던 것은 이념분쟁이 없는 순수한 민족정서만이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한이 광복후 이념분쟁 속에서도 친일파를 처단할 수 있었던 것은 전체주의 사회이므로 가능했다. 남한이 친일파 처단에 실패한 것은 이념분쟁에 겹친 개인주의 사회인데 연유하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과는 국교를 거부할만큼 배일사상이 짙었으면서도 친일파를 등용한 것은 이념분쟁 때문이었다. 즉 공산당 보다는 그래도 친일파가 낫다고 보아 공산당을 잡기위해 친일경찰을 등용했던 것이다. 경찰 경험이 전혀 없는 광복경찰로는 공산당과 적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경찰분야부터 시작된 친일관료 등용이 마침내 행정 사법분야까지 확대했다. 일제 친일관료 등용은 개인주의 사회에서 새롭게 세력화하여 결국 반민특위가 해체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친일파를 구분하는데는 그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학교교육, 사회교육을 망라해 황국신민화한 일제치하에서 일장기를 흔들며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수 없었다. 그들이 친일파라면 일제 때 산 사람은 모두가 친일파로 몰릴 수 밖에 없다.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회장 김희선)이 광복회가 선정한 친일파 명단과는 달리 여성계의 김활란 모윤숙 황신덕 박인덕 고황경 송금선, 문화예술 및 학계의 김은호 현제명 홍난파 서정주 이능화 심형구 정만조, 언론계의 김성수 방응모 장덕수, 종교계의 권상로 등 16명을 친일파로 규정한 것은 독단이다. 광복회가 선정한 이완용 등 692명의 명단은 비록 실패했지만 반민특위를 구성했던 반민족행위처벌법의 기준이 있었지만 ‘의원모임’이 임의로 추가해 발표한 16명은 객관적 기준을 발견할 수가 없다. 또 ‘의원모임’의 구성원 끼리도 충분한 의견 수렴이 없는 몇몇 사람의 사견을 공론인 것처럼 둔갑한 것으로 전한다. 친일파 규정을 정략화 하는 것은 역사의 도용이다.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만이 친일파를 정리하지 못한 과거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 와서 친일파를 규정하는 것은 광복 직후보다 몇배나 더 어려운 작업이다. 역사에 맡겨야 한다. 전문가들의 전문적 식견, 확실한 자료에 근거한 판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이 즐거워할 공연한 친일파 시비는 오히려 민족정기 확립에 혼돈만 일으킬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白山

일제 청산

2차대전 당시 피지배를 경험한 프랑스는 종전 이후 ‘ 나치 청산 ’을 위해 민관이 합동으로 민족반역자를 색출,처단하였는데 그같은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994년 4월 20일 프랑스 베르사유 소재 이브린중죄재판소에서는 79세의 폴 투비에라는 노인에게 ‘ 반인도적 범죄 ’라는 다소 생소한 죄명으로 법정 최고형인 종신징역형을 선고한 바 있다. 투비에는 7명의 유태인을 처형한 바 있었는데, 이 사실이 2차대전 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나치 최고지도층들에게 적용된 ‘ 반인도적 범죄 ’의 법정 요건을 갖춘 것으로 판결된 것이다. 투비에는 그동안 숨어다니다가 1971년 퐁피두 대통령의 특사를 받아내기도 했었다.이에 ‘ 민족반역자처리위원회’ 판사였던 노르망 변호사 등이 다시 그를 법원에 고발했으나 1992년 파리고등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이 다시 상고, 대법원은 이 사건을 이브린중죄재판소로 넘겨 처리토록 했는데, 이 재판소에서 1개월여동안의 유·무죄 공방 끝에 결국 종신형이 선고된 것이다. 이 재판 당시 묵은 상처를 다시 드러낼 필요가 없다며 ‘ 재판무용론 ’을 편 사람들에게 ‘ 과거 청산론 ’을 역설한 롤랑 뒤만 전 외무장관은 “ 이 재판은 절대로 시대 착오적인 것이 아니며 역사에 역류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었다. 대통령이 특사로 면죄시켜준 사람에게 다시 법원이 유죄선고를 내릴 수 있는 것이 프랑스의 국민정신이요, 프랑스 국민의 민족정기라고 당시 여론이 대단했었다. 프랑스가‘ 나치 청산 ’이라면 한국은 ‘ 일제 청산 ’이다. 엊그제 여야 국회의원 29명으로 구성된 ‘민족정기를 세우는 모임 ’이 일제하 친일활동을 벌인 주요인사 708명의 명단과 행적을 공개했다. 이른바 ‘ 을사 5적 ’과 ‘ 정미 7적 ’을 비롯, 일제하 중추원 관련자·작위 수상자·시도지사· 친일단체 관련자·판사· 고등계 형사·예술인 등 명단이 들어 있을뿐 아니라 계속해서 친일인사들을 추가 공개할 것이라고 밝혀 적법성 여부 및 후손들의 반발 등으로 격론이 예상된다. 모두(冒頭)에 프랑스의 ‘ 나치 청산 ’을 이야기한 것은 한국의 대통령은 이번 친일인사 명단 공개에 대하여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궁금해서다 . 프랑스는 대통령이 특사로 면죄시킨 사람을 법원이 다시 유죄선고를 내린 사례가 있다. 淸河

북한 아리랑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민요의 하나인‘ 아리랑’이 나온 배경은 세가지 이야기가 유력하다. 첫째는 조선시대 밀양의 한 사또의 딸 이름이 ‘아랑’인데 중추원 소속 관리의 횡포에 항거하다 죽임을 당하자 주변 사람들이 애도하느라 ‘아랑 아랑’하던 것이 아리랑으로 변천됐다는 설이다. 두번째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부인으로 우물로 내려온 용에게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지는 ‘알영’왕비를 추모한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물 이름이 알영정이고 태어난 아이의 이름 또한 알영으로 지어 왕비를 삼았는데 백성들이 나중에 ‘알영 알영’하며 추모한 것이 노래로 전해졌다는 설이다. 세번째는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건축에 얽힌 전설이 두가지 전해온다. 하나는 경복궁을 지을 때 막대한 돈을 내라고 재촉하자 백성들이 “차라리 내 귀를 어둡게 해달라(我籬聾)”는 의미로 ‘아이롱 아이롱’노래 불렀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부역에 끌려온 남자 인부들이 집에 두고 온 아내를 그리며 “내 낭자(부인·娘)와 헤어졌구려(我離娘)”라고 노래 불렀다는 설이다. 그러나 북한은 “내 사랑하는 낭군(남편·郞)과 헤어지는구려”라는 의미의 한문인 아리랑(我離郞)이라고 주장한다. 조선시대 중엽 김좌수라는 지주가 착취를 일삼자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김좌수의 남자 머슴 ‘리랑’과 리랑의 연인 여자종 ‘성부’도 반란에 동참한다. 관에서 반란을 진압한 후 농민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리랑과 성부는 산으로 도망간다. 숨어지내던 리랑은 마을 사람들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며 다시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마을로 내려간다. 이때 성부가 남편과의 이별이 서글퍼 ‘아리랑 아리랑’하며 즉흥적으로 노래 불렀다는 것이다. 남편 리랑의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이렇게 아리랑 전설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남북한 모두 다양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다만 북한은 하부계층이 억압에 맞서 투쟁한다는 혁명의식 고취 목적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4월29일부터 6월26일까지 전세계인을 상대로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대규모 집단체조 ‘아리랑’을 공연한다고 한다. 기승전결형을 취하고 무용·노래·집단체조·영상·서커스 등 다양한 장르에서 10만명에 달하는 연희자들이 등장한다. 남한에서 열리는 월드컵 축구대회 축제분위기를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다행이다. 淸河

水原春八景

어떤 지역의 대표적으로 아름다운 경치를 소개할 때는 거의 여덟 곳을 칭송한다.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에서 비롯된 말이다. 소상은 중국 호남성(湖南省) 동정호(洞庭湖)의 남쪽에 있는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의 병칭으로 그 부근에 유명한 팔경이 있다. 평사낙안(平沙落雁)·원포귀범(遠浦歸帆)·산시청람(山市晴嵐)·강천모설(江天暮雪)·동정추월(洞庭秋月)·소상야우(瀟湘夜雨)·연사만종(煙寺晩鍾)·어촌석조(漁村夕照)가 소상팔경이다. 우리나라 관동팔경(關東八景)이 있듯이 전국 각 지역마다 팔경이 있다. 수원시에는 ‘수원팔경’ ‘수원춘팔경’ ‘수원추팔경’이 있다. 수원춘팔경(水源春八景)은 ‘화산서애(花山瑞靄)’로부터 펼쳐진다.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융릉·건릉이 있는 안녕리 소재 화산에 진달래꽃이 만개하고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 비경이다. 수원의 진산 광교산에서 발원한 수원천을 예전에는 망천(忘川) 또는 유천이라고 불렀다. 맑은 유천이 화홍문 일곱수문을 거쳐 버드내(세류동)지역을 흐르면 봄빛 완연한 버드나무 가지가 봄바람에 하늘거린다. 맑게 갠 날 물안개와 어우러진 절경이 ‘유천청연(柳川晴烟)’이다. 꽃놀이가 한창인 오교(매향교) 풍경은 ‘오교심화(午橋尋花)’, 장안문과 영화역 사이에 심어진 뽕나무 숲 풍치는 길야관상(吉野觀桑)이다. 관길야는 장안문과 영화역 사이의 옛 지명이다. 복원을 앞둔 화성행궁의 정문 신풍루 누각에서 유생들이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행하는 광경은‘신풍사주(新豊社酒)’이며 농요소리가 흥겹게 들려오는 대유평은 ‘대유농가(大有農歌)’다. 현 수성고등학교와 수원상공회의소가 있는 정자동 지역의 들판을 대유평이라고 불렀다. 주택이 들어서기 전 정자동 지역은 기름진 들판이었다. 말들이 뛰어노는 영화역 풍경은 ‘화우산구(華郵散驅)’라고 칭송했고 연꽃사이로 물새가 떠다니는 정경은 ‘하정범익’이라고 했다. 물새들이 떠다니는 연못이 어느 곳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만석거나 서호인 듯 싶다. 경칩이 다가오는 요즘 봄빛이 완연하다.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200여년 전 명명했을 수원춘팔경이 부활됐으면 좋겠다. /淸河

대법원 판결

1년6개월 동안에 9명의 부녀자를 상습적으로 강간,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복역수가 탈옥해 이번엔 10대 소녀를 살해했다. 이밖에 또 사기 강도 등 10여 가지 죄목이 붙은 이 20대 피고인의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되돌려 보냈다. “교화가 가능한 피고인에게 사형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것이다. 법규 해석의 오류 여부 등을 따지는 법률심 위주의 상고심에서 양형을 가지고 원심을 파기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다. 사형폐지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는 시점이어서 대법원 판결은 더욱 주목된다. 그러나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피고인은 정상적인 가정에서 성장해 남들과 다름없는 가정생활을 해왔으나 인터넷 음란물 등을 탐닉하면서 성적 망상에 빠진 끝에 강간 등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으로 보이며, 피고인의 나이와 성장과정 가정환경 경력 등을 고려할때 아직 교화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게 사형은 가혹하다는 판결이유다. 문맥의 요지로 볼 때 만약 가난한 결손가정에서 성장한 피고인 같으면 교화 개선의 여지를 인정받지 못했을 것 같아 구명의 정상참작도 유복한 환경이어야는가 싶어 우선 입맛이 씁쓸하다. 사형이 목적형주의에 반한 응보형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긴 하나, 중죄인들에게 사회방어 차원으로 가하는 사형을 두고 새 사람으로 사회복귀 할 수 있는 길을 막는 비인도적 처사라고 말하는 사형폐지론이 누범의 위험은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 사형조항을 크게 줄이고 또 사형판결을 자제하자는 논리의 전개는 가능하다. 그러나 사형폐지론은 당치않다. 우리 사회가 아직은 그토록 태평한 수준이 아니다. 사형폐지에 인명존중을 내세우지만 인명위협의 위험을 제거, 또다른 인명을 보호하기 위해 존치하는 것이 사형제도다. 대법원의 사형 원심파기가 사형폐지론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더 두고 지켜볼 일이다. 다만 한가지 궁금한 것은 있다. 가령 사형수의 그 무서운 범죄 사실을 직접 당한 피해자라 할지라도 사형이 지나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하다. 白山

세태 풍자극

한 사람에게 백가지를 묻고 대답을 들으면 대충 그 사람을 알게 된다. 일선 기자시절 연기자들을 대상으로 ‘백문백답’란을 만들어 연재한 적이 있다. 영화 및 연극배우, TV 탤런트에게 연기는 창작과 모방 어느 쪽인가를 물었다. 대개는 창작이라고 하여 모방이라고 응답한 연기자는 적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연기는 모방이다. 픽션물은 작중 인물의 연출의도를 살리는 방향으로 철저히 따라가야 하는 것이 연기자다. 즉 연기는 모방인 것이다. 또 논픽션물은 실재한 사실을 리얼리틱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 역시 모방이다. 가령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최수종의 소임은 왕건을 재현해 보이는 것이지 왕건을 창조해 보는 것은 아니다. 연기를 모방이라고 한다하여 창조로 보는 것 보다 관념에 우열이 있는 것처럼 여기는 건 착각이다. 며칠전 서울 정동 세실극장에서 이색 공연이 있었다. 김광수 한신대 교수가 대본을 쓰고 연출한 마당극 ‘붉은 뺨을 찾습니다’라는 연극이다.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 손봉호·환경식 서울대교수, 이한구 성균관대 교수, 정대현 이화여대 교수와 이 밖에 전직 장관 등이 배우로 출연했다. 도덕적 타락을 가져온 정치인, 졸부, 지식인, 고관부인, 조폭, 사기꾼 등으로 변신, 세태의 부조리를 풍자한 내용이다. 육두문자가 나오기도 했다. 겉으로는 위엄을 떨며 속으로는 온갖 못된 짓을 예사로 저지르는 위선을 통렬하게 힐난한 이 마당극은 연기자가 아마추어인 점이 특징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선천적으로 연기의 자질은 지니고 있다. 다만 그것이 프로냐 아마냐 하는 것은 자질의 수준, 그리고 얼마나 갈고 닦느냐에 달렸다. 그렇긴 하나, 이러한 풍자극은 또 아마추어가 하는 게 관객에게 더 신선하게 다가설 수가 있다. 예의 연극보다 더 유별나게 더 많은 관객을 끌었던 것은 이를테면 대리만족의 심리작용이었던 것 같다. 총체적 부정부패에 식상해 있는 현실에서 부정부패에 실컷 욕해댈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통쾌한 일이겠는가. 바로 이런 점에서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던 모양이다. 세태 풍자극의 출연진이야말로 비리 정치인, 외곡된 지식인, 탐욕스런 고관부인, 졸부, 조폭, 사기꾼의 모방연기를 잘 해냈다 할 수 있다. /白山

오심

‘빨간 장갑의 마술사’란 말을 듣던 야구감독이 있었다. 몇 해 전 고인이 된 김동엽씨다. 빨간 장갑을 낀 그의 요란한 사인이 신출귀몰한 작전을 구사한다 해서 야구기자들이 붙인 별명이었다. 프로야구 MBC 청룡팀 감독을 지냈다. 그가 오심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자신의 심판 체험담이다. “아웃!하고 말이 나가는 순간, 세이프인데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왕 내친 김이기 때문에 “아웃! 아웃 아웃!”하고 큰 모션과 함께 여운을 길게 뿜으면서 불만이 가득찬 눈으로 치켜떠보이는 주자의 눈을 부릅뜨고 내려다 본다는 것이다. 그래야 어필을 해도 방어의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동엽씨의 경우는 오심이 과실일 때를 말한다. 일부러 하는 오심도 있다. 일본서 열리는 월드컵배구대회에서 이런 고의적 오심이 심했다. 자국팀과 이해관계가 있는 외국팀 경기를 일본심판이 주심을 맡으면 결정적인 대목에선 노골적으로 자국팀에 유리하게 판정을 외곡하기가 일쑤였다. 이에 항의하면 “아! 그렇습니까”는 말로 허리를 깍듯이 굽혀 사과하는 척 하지만 심판대에 올라가면 다시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언론은 이를 비난하지 않는다.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천500m에서 김동성의 금메달을 실격판정으로 빼앗아간 미국의 전국지 USA투데이 등은 ‘심판 판정은 정확했다’고 옹호하고 나섰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스포츠중재재판소는 또 ‘경기장내 결정은 경기외적 영향을 미친 객관적 증거가 없는한 심판의 고유권한’이라며 우리 대표단의 제소를 기각했다. 스포츠중재재판소의 결정은 뇌물수수나 사전공모의 증거가 없는한 심판의 판정에 관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또 악법도 법인 것처럼 오심도 판정은 판정이라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김동성의 금메달 피탈은 유난히도 심했던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판정 시비의 희생이다. 억울하고 분한 일이지만 아무래도 금메달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한가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있다. 강한 나라는 오심의 희생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강한 나라가 돼야 한다. /白山

노작문학상

노작(露雀) 홍사용(洪思容)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창작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제정한 ‘제1회 노작문학상’시상식이 지난 2월15일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본관 강당에서 있었다. 수상자는 안도현 시인이었다. 노작문학상추진위원회가 시상했지만 실제로는 화성시가 제정, 상금도 500만원을 지급했다. 노작 선생은 1900년 음력 5월17일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농서리 용수골에서 태어났으나 본적지는 화성군 동탄면 석우리(돌모루)492번지다. 노작은 생후 100여일 후에 서울 제동으로 옮겨 유년기를 보내다가 8세 때 석우리로 돌아와 휘문의숙에 입학(1916년)할 때까지 한학을 공부했다. 우리 나라 최초의 문예지 ‘백조(白潮)’를 창간한 노작은 ‘개벽’ ‘동명’ ‘여시(如是)’ ‘불교’ ‘삼천리문학’ 등 월간지와 일간신문에 시·소설·희곡·수필·평론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한 한국신문학의 개척자로 1947년 1월17일 별세, 고향인 동탄면 석우리에 묻혔다. 화성시가 노작문학상을 제정한 것은 칭송받을만 하다. 한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문학상 제정 과정이다. 원래 노작문학상은 화성군 반월리가 고향인 박효석시인이 1988년 계간 ‘경기예술’을 창간하면서 향우들의 재정협조를 받아 ‘경기예술시상위원회’를 발족, 미술상은 나혜석미술상, 음악상은 홍난파음악상, 문학상은 홍사용문학상이라고 명명했다. 김대규 시인, 김유신 시인, 윤정모 소설가, 백도기 소설가, 김창문 시인이 홍사용문학상을 수상했다. <선생님께서는 평소 시인 홍사용님의 뒤를 이어 경기도의 문학발전을 위하여 늘 애쓰시고 계시므로 계간 경기예술이 제정한 제2회 문학상을 드립니다.1989년 12월14일 계간 경기예술·경기예술상시상위원회> 김유신 시인에게 시상한 제2회 문안전문이다. 그러나 화성시가 노작문학상추진위원회를 설립하면서 박효석 시인을 비롯, 노작문학 재조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전 한국문협경기도지회장,전 문협오산지부장·전화성지부장 등을 위원으로 위촉하지 않았다.더욱 문제는 다섯 명의 수상자들이 황당해하고 있을뿐 아니라 재정상 중단했던 제6회 나혜석미술상·홍난파음악상·홍사용문학상을 조만간 시상할 계획이라는 점이다. 노작문학상추진위원회와 화성시의 해명이 있어야겠다.

‘빚준 상전이요 빚 쓴 종이라’고 했다. 빚 진 사람은 빚준 사람에게 굽죄여 지내게 된다는 말이겠다. ‘빚 물어달라는 자식 낳지도 말랬다’거나 ‘빚 보인(保人)하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고도 했다. 자식을 낳아서 기르는 것 만도 큰 일인데 그 위에 빚까지 물어달라는 것은 큰 불효일 뿐 아니라 사람노릇을 제대로 하지도 못할 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빚 안지고 사는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있겠는가. 국가간에도 차관(借款)으로 빚을 얻어 쓰고 대기업들도 은행 돈을 빌려 쓰지 않는가. 다급할 때는 편리하지만 신용카드 사용도 빚지는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나 지하철 앞에서 신용카드 가입을 권유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인형·시계·주방용품 등을 쌓아 놓고 신청서를 작성하면 공짜로 준다고도 한다. 신문·TV 광고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이 나와 ‘신용카드에 가입하면 멋진 삶을 살 수 있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신용카드로 인한 신용불량자가 ‘1백만명이 넘었다’느니, ‘신용카드 빚 때문에 자살했다’는 뉴스도 가끔 보고 듣는다. 낭비벽이 심해서 신용카드를 겁없이 쓰는 사람도 있지만 ‘사채’를 쓸 수 없어 신용카드를 쓰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다. 신용카드사는 회원을 모집할 때는 아주 친절하게 가입을 권유하지만 대금을 연체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직장은 물론 한밤중에도 집으로 전화를 건다. 연체대금 회수를 목적으로 회원들을 사기혐의로 일방적으로 고소하는 경우도 있다. 카드사들이 ‘신용불량자 등록’과 ‘사법당국 고발’이라는 두 가지 무기를 들고 최소한의 자구노력도 없이 채무자에 대한 변제 압박이나 소재 파악 목적 등으로 고소장을 남발하는 것이다.그런데 앞으로는 대금을 연체한 신용카드 회원에게 카드회사가 돈을 갚으라는 독촉을 강압적으로 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이를 어기면 카드사의 영업도 정지시킬 수 있는 행정적 제재방안을 금융감독위원회가 마련중이라고 하니 늦었지만 다행이다. 아무리 빚 진 죄인이라고는 하지만 인격마저 무시돼서는 안된다. 금융감독위원회가 요새 옳은 일을 많이 하고 있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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