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남문 언덕에서

강의실 교탁에 경주빵과 커피 한잔이 놓여 있다. 학창 시절의 교실이 떠오른다. 교탁엔 항상 화병에 꽃이 피어 있고 출석부와 교과서가 있었는데 가끔 우리는 특별한 무엇인가를 올려놓기도 했다. 교단과 칠판과 그 옆에 풍금이 놓여 있는 교실, 참 정감있었다. 요즘은 전자교탁이 있다는데 아마 PC와 빔프로젝트용 AV 시스템 장치가 있을 것 같다. 경주빵과 함께 놓여 있는 과자 꾸러미는 이번 신입생들이 올려놓은 것이다. 성인들의 교실은 그들이 살아온 방식의 따뜻한 정이 남아 있다. 아무튼 수강생의 강사가 아닌 학생의 스승이 된 기분이어서 오랜만에 보람을 느낀다. 오늘은 정영훈님이 남문 옆 거리를 그렸다. 항상 함박꽃 같은 엷은 미소를 짓는 조용한 성격, 편협하지 않고 이해심 많은 도량을 소유하고 있다. 그녀의 그림은 순수하고 재미있다. 어반스케치의 형식인 건물과 사람과 자동차가 들어간 구성이 잘 짜여 있다. 남문 언덕엔 남창초등학교가 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다. 운동회에 달리기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딸은 일등을 했고 엄마도 학부모 달리기에 일등을 했다. 온 힘을 다하던 일그러진 얼굴,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생각에 웃음이 난다. 그런데 학교가 조용하다. 어린이가 없는 구도심 학교의 전형이다. 중앙극장이 사라지고 유동골뱅이와 동막골 전집과 50년 넘긴 중화요릿집 영화루가 남았다. 영화루의 짜장면이 당긴다. 차라리 이모네 포차에서 소주 한잔 걸칠까.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길가에 파릇한 새싹이 분주히 돋았다. 하얀 볕 눈부신 봄나들이다. 버드내를 거슬러 오를 때 화홍문을 관통하는 물보라가 약동하는 봄을 안내한다. 오늘이 선물이다. 고귀한 은혜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나날을 성찰케 한다. 노란 산수유도 보이고 길섶에 개나리도 보인다. 장안문 지나 성곽 따라 걷는 길이 탄력을 더한다. 화서문 돌아 골목마다 예쁜 카페가 기대어 있는 행궁길로 들었다. 시대를 표상하는 무인사진방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시간은 정체하지 않고 자주 얼굴을 바꾼다. 계획한 점심은 골목집이다. 뒤편 골방과 막걸리 주전자가 사라지고 젊게 바뀌었다. 묵은지김치찌개와 막걸리 한잔 곁들인다. 공방 길에 기와집 한 채가 고전처럼 서 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촬영지다. 대문 안이 궁금했다. ‘아저씨는 무슨 반찬이 제일 맛나우?’ 옥희와 달걀 장수의 신파극 같은 향수가 묻어난다. 카페 단오에서 커피 한잔 마주했다. 주인장은 연극하는 후배로 이곳에서 미얀마를 위한 전시를 연 바 있다. 벽에 시 한 편이 걸려 있다. 수원 출신 최동호 시인의 시 화령전이다. “첫사랑 임의 입맞춤 누가 몰래 지울까/말 없는 화령전 기둥 뒤에 새겨두고/나비 날아간 붉은 꽃밭 사잇길 뛰어와/누가 볼세라 잠들지 못해 뒤척이던 보름밤/ 첫사랑 임의 입맞춤 누가 몰래 지웠을까/화령전 기둥은 여전히 말이 없는데/꿈결에도 빛나던 작약꽃 사라진 옛 마당/누가 그리워 나 지금 여기 홀로 서 있나.”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인사동에 가면

삼월도 벌써 깊다. 갇혀 있던 작업실을 벗어나 인사동길에 올랐다. 존경해온 서양화가 송창 선배님의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전철 밖으로 봄기운이 흐르는 풍경들을 덧없이 바라본다. 허기처럼 고향 생각도 나고 봄날 하늘 가신 부모님도 그립다. 인간미 풋풋한 송 작가님은 뵙기로 한 시간에 정확히 도착하셨다. 멋진 작품을 둘러보고 이미 가득한 작가들과 오늘 저녁 뒤풀이를 맞이해야 하는 선배를 놓아드렸다. 대신 친구와 풍습처럼 식사와 반주를 곁들였다. 대학원 동기이자 서양화가인 그녀는 인사동에 갈 때마다 마주했다. 우리라는 단어를 품을 만한 다양한 레퍼토리로 10년의 희로애락을 결속한 동료다. 초창기는 서로의 작품관과 예술에 대한 담론이 화두였지만 요즘은 일상적 넋두리와 자식 담화가 대부분이다. 이야기가 익을수록 술잔의 속도가 빠르다. 술은 너와 나의 내면을 표현하는 익숙한 수단 같다. 인사동에 저녁이 내린다. 오늘 밤 문화센터의 야학을 위해 부랴부랴 전철에 몸을 실었다. 한 시간 반, 지루한 길이다. 외롭지 않은 우리라는 공동체를 대체할 시 한 대목을 떠 올렸다. ‘참새들에게 호랑가시나무 덤불이 천국이듯 우리의 겸손한 천국도 갸륵한 슬픔으로부터 온 것이다. 나를 울게 한다. 그것은 먼 곳에 있고 가질 수 없지만, 그것은 분명 내 몸속에 있다. 수평의 먹줄을 튕기며 번지는 기억. 시간이 벗어두고 간 외투는 잘 보관하기로 하자.’ –박서영 ‘우리의 천국’ 중에서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낙수 소리-선교장 열화당

겨울 바다로 갔다. 평창의 후배 전시 관람 때문이지만 나선 김에 동해로 향한 것이다. 혼자 여행은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웅장한 설산을 바라보며 작가들과 동행하니 흥이 오른다. 오죽헌에서 초충도를 본 후 바로크 시대에 등장하는 최초의 서양 여성화가 젠틸레스키보다 신사임당이 앞선 시대에 활동한 사실에 놀랐다. 선교장 사랑채 열화당은 출판사 열화당의 모태로 경운궁의 정관헌에서 커피를 마시던 고종의 카페를 연상케 하는 테라스가 있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선물한 것이라고 하는데 녹색 지붕을 서양식 기둥이 받치고 있다. 선교장은 효령대군 11대손 이내번이 지은 99칸 사대부의 살림집으로 300년을 이어 온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 유형문화재이다. 우람한 소나무가 도열한 뒷동산과 입구의 활래정은 크되 넘치지 않는 소박함이 묻어난다. 성실한 이내번은 소금을 판 돈으로 영동지방을 개간해 농토를 농민에게 제공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다. 길게 늘어선 행랑채 추녀에서 흘러내리는 낙수의 영롱한 파열음을 듣는다. 낙수는 먼 세월을 거슬러 오르기도 하고 멍하니 생각과 시간을 멎게도 한다. 고드름 타고 흐르는 밤의 낙수 소리는 행랑채 묵객의 하룻밤 시조일까. 거친 겨울 바다를 바라본다. 밀려오는 파도는 가슴과 시각을 심호흡처럼 열어준다. 유리창을 통과한 바다를 투명한 소주잔에 담았다. 젊은 날의 꿈은 사라진다 해도 영광의 추억은 자라고 있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겨울비-로데오 뒷골목

겨울비도 봄비도 아닌 촉촉한 이슬비를 맞으며 교동의 뒤안길을 걸었다. 사실은 마음이 꿀꿀해 술 한잔하고 오는 길에 잘못 이탈한 길이다. 우연히 큰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전혀 다른 이색적 풍경을 보게 된다. 한때 젊은이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수원 남문과 향교를 잇는 로데오의 뒤안길이다. 남문 상권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젊은이들이 신도시로 떠나 휑한 공간이 됐다. 시간이 남긴 낡은 무늬엔 일전에 본 파묘의 정령들이 생각날 정도다. 요즘 가수 이효리가 모교인 국민대 졸업식에서 ‘인생은 독고다이다. 누구에게 위안받으려 하지 말고 그냥 쭉 가시라’는 축사가 임팩트 있게 유통되고 있다. 젊은 시절은 누구나 그렇게 살기를 바랐다. 예술가는 오직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위해 벽만 보며 살아간다는 것.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며 내면세계를 확장해 가는 것이다. 무수한 홀로의 실패기로 프로필을 쓰면서 말이다. 하지만 타인의 것에서 많이 배우고 자극받고 힘이 될 때가 있다. 홀로 살다 홀로 죽는 홀몸노인들의 고독사가 현대 문명 속에서도 크게 자라고 있다. 나도 아버지의 임종마저 보지 못했다. 공광규 시인의 시 ‘소주병’의 한 대목이 떠 오른다. ‘(중략)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나가보니/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빈 소주병이었다.’ 문득 그립다. 아버지의 소주병.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가족 한담-용주사에서

거친 바람이 희뿌연 눈발을 뿌린다. 설 차례를 마치고 가족과 용주사를 찾았다. 산책도 하고 외식도 할 요량이다. 아들 내외가 왔고, 시댁을 다녀온 딸은 사위와 17개월 된 이란성 쌍둥이를 대동했다. 보행기에 아이들을 태우고 함께 경내를 돌아보니 마음결이 평온했다. 가족처럼 위안이 되는 공동체가 또 있을까. 불교에서는 전생의 원수였던 악연이 인연으로 맺어졌다고 했지만 어쩜 원수를 품고 사랑하라는 기독교적 수행의 의미와 상통할 것 같다. 며느리가 추천한 칼국수 집은 명절이라 붐볐다. 그런데 칼국수는 맛을 담기가 불편한 평범 이하였다. 투척된 해물의 오징어는 무척 질겼고 김치는 매워 먹을 수 없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최악이라고 짜증을 부렸다. 며느리는 당황했고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부근의 커피숍은 조용하고 넓은 탁자가 있어 아이들과 함께하기에 좋았다. 신속히 분위기 반전에 노력했다. 아이들도 재롱을 떨며 부응했다. 사진도 함께 찍으며 일순 즐거웠다. 가족은 마주 바라보는 것보다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멸의 순간까지 서로를 지켜줄 불멸의 존재이므로. 고 최인호 작가가 가족을 주제로 샘터에 35년을 연재할 수 있었던 것도, 사소한 풍파가 잦은 우리 모두의 일상적 희로애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며느리에게 삼가 고한다. ‘네가 권한 칼국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독특한 장르였어(오징어는 또 얼마나 부드럽던지).’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바라본다는 것, 너의 의미-화본역

너를 바라본다는 것, 모든 관계와 인연의 깊이와 의미의 간격이다. 무지개 같은 사랑과, 그믐 밤 같은 이별과, 삶의 파편인 모든 기억이다. 뭉게구름 위의 꿈, 모란꽃 위의 형용사이며 나에게 잠시 머물거나 스쳐 가는 시와 형식과 내용이다. 환영의 파노라마가 지나간 자리, 차창 밖의 간이역을 바라본다. 나는 성에 낀 유리창에 쓴다. 잘 있거라 나의 청춘아! 유효기간이 지난 꿈들아! 증발한 땀들아! 고단한 잠 끝에 내 마음의 종착역 화본역에 도달했다. 화본역은 의성의 탑리역과 영천의 신녕역 사이에 있는 군위의 유일한 여객 정차역이다. 1938년 중앙선 보통 역으로 시작한 이래 오랜 향수가 깃들었는데 중앙선 복선전철화로 폐역될 예정이며 인근에 군위역이 신설된다고 한다. 역에서 5분 거리에 추억의 테마박물관 ‘엄마 아빠가 어렸을 적에’라는 농촌문화체험장도 있고, 증기기관차 급수탑, 화본역 시비, 폐열차를 활용한 레일 카페가 있어 군위의 낭만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이 정든 간이역을 오늘은 매교동 문화센터의 4개월 차 이영근님이 그렸다. 간결한 그림이 늘 차분하고 정돈된 자신의 인품을 닮았다. 20대의 두 딸을 둔 엄마라고 믿기지 않는 동안의 이유일 것이다. 예쁜 그림을 가꾸는 그녀의 소박한 꿈이 더욱 아름답기를 바란다. 입춘도 설도 지나고 농촌은 농사 준비를 해야 할 시절이다. 나의 화업도 새봄 새 파종을 해야겠다. 결실의 계절을 바라보는 너의 의미인.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어떤 설날-백사마을의 추억

현재란 모든 흐르는 시간 속에 있다. 10여년 전의 중계동 백사마을이다. 강추위가 온몸을 경직시키던 설날 이곳을 찾았다. 나는 이런 비루한 풍경에서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낀다. 내가 겪은 지난함이 비장한 역전의 힘이 되었기 때문일까. 심리연구가 마크 맨슨은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제를 인정하고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회복 탄력성을 지닌 한국의 진짜 슈퍼파워일 수 있다고 했다. 성찰할 만한 진단이다. 우울의 내력이 얽혀 있는 전깃줄, 전신주 아래엔 연탄재가 쌓여 있고 굴뚝엔 푸르스름한 연탄가스가 유령처럼 피어올랐다. 카메라를 든 손이 금방 얼 듯한 회색빛 골목엔 때때옷을 입은 여자아이의 매무새를 가다듬는 할머니가 포착됐다. 세배를 가는 길일까. 서민들이 기대어 사는 공동체는 풋풋한 정서가 있어 정감이 간다. 문득 카메라 너머로 어머니의 모습이 오브랩됐다. 설날이 오면 설빔을 준비하시고 떡방앗간에서 금방 나온 가래떡을 커다란 양푼에 이고 오시던 풍경, 그 시절은 먼 추억이 됐다. 오랫동안 건강을 잃고 사셨던 어머니의 말년을 잘 지켜드리지 못한 후회만 남았다. 이제 나의 여생도 완성된 게 없고 자신할 수 없다. 무의미한 형식의 굴레와 향기 없는 삶. 내일이 가끔 두렵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타이른다. 지미 카터는 말했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라고.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우리 동네 제과점-삼미제빵소

새해 들어 한 달이 지났다. 세월은 달력의 숫자처럼 점점 궁핍하고 지나간 시간은 다시 채울 수 없다. 간소하게 살고 싶다. 수원천을 오랜만에 걸었다. 사색하며 걷는 망중한이 좋다. 사색은 흐르는 물처럼 작위적이지 않을 때 청량하다. 사색은 마음이 작동하는 발견이요 내 안의 여행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의 저서 사색 기행에서 ‘여행의 패턴은 여행의 자살이다. 여행의 본질은 발견에 있다. 일상성이라는 패턴을 벗어났을 때 내가 무엇을 발견하는지, 뭔가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데 있다’라고 했다. 걷고 사색하지 않으면 내 안의 나를 발견하지 못한다. 내친김에 동네 한 바퀴를 걸었다. 지나가며 늘 봤던 삼미제빵소가 눈에 들어왔다. 아담한 서양식 기와지붕과 좌우 대칭을 이루는 건물이 멋져 가끔 수강생들과 어반스케치를 해 봤던 소재이기도 했다. 진열장엔 몇 가지 빵이 놓여있다. 상투 과자와 마늘빵이 이 집의 주요 상품인 것 같다. 부근에 제빵소가 따로 있고 가끔 제빵 교육도 한다고 한다. 마늘빵 한 봉지와 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해 작업실로 돌아왔다. 난롯가에서 커피를 마신다. 그윽한 커피 향이 수묵처럼 번진다. 나른한 심신에 다시 한 달에 정성을 다하자고 다독인다. 적당한 카페인이 나를 깨운다. 안개가 걷히듯 선명히.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내 안의 그림 카페

새해가 오고 새봄이 오기도 전에 문화센터는 새 학기가 시작됐다. 교복을 입고 긴장과 설렘으로 들어서던 학창 시절의 교실이 생각난다. 이젠 대부분 서른도 마흔도 넘긴 중년의 수강생들이 나의 그림 교실에 들어서는 모습을 바라본다. 이번 학기도 반은 떠났고 반은 다시 들어왔다. 사정이 있어 못 나오는 수강생도 아쉽지만 새로 채워지는 신입생이 너무나 궁금하고 반갑다. 사는 동네는 어딘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오게 된 동기까지 본인 소개가 주어졌다. 한 여성이 일어서더니 ‘저는 이곳에 놀러 왔습니다’라고 의연하게 말했다. 수강의 동기와 목적이 각기 다르게 부풀어 있지만 의외의 왜소한 대답이 마음에 닿았다. 취미 생활에 많은 욕심이 들어가면 오히려 잘 풀리지 않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이번 분기도 좋은 수업이 됐으면 좋겠다. 오늘은 야간반 수업이다. 4개 분기째 수강하는 한진옥 님이 카페 풍경을 그렸다. 느낌 좋은 그림이다. 힘든 직장 일을 마치고 이곳까지 와서 야학하는 그녀의 성실한 꿈을 응원한다. 멋진 외모 못지않게 그림에도 열정을 가꾸는 모습이 아름답다. 오늘도 3시간, 모두가 마음을 정화하는 집중 또한 경건하다. ‘죽을 것 같은 세 시간쯤을 잘라낸 시간의 뭉치’라는 이병률 시인의 시 한 대목이 생각난다. 자신이 그리고 있는 것이 그림이 아니라 엄숙한 몰입이라는.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산토리니 가는 길

어느 해 가을 고향길에 올랐다. 청주를 거쳐 보은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러나 상주행 버스는 막차뿐이었다. 막차는 두 시간 후에 있었다. 요즘 버스터미널은 대부분 폐쇄됐다. 승객이 없어 한두 명을 싣고 먼 길을 떠나기도 하는데 빈 차로 출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방인구의 감소와 버스를 이용하는 수요가 낮아진 탓이다. 친구에게 전화했다. 포도 농사를 지으며 이장까지 보는 친구의 구릿빛 목소리는 군더더기 없이 명료했다. ‘금방 갈게 기다려!’ 친구는 국가보다도 나은 나의 이동권을 보장했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터미널 주위를 한 바퀴 돌아봤다. 시장 가판엔 잘 익은 대추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터미널 맞은편엔 산토리니 호텔이 있었다. 문득 십오 년 전의 산토리니 여행이 생각났다. 푸른 바다 절벽 위에 하얀 벽과 파란 지붕이 있는 이야 마을은 동화처럼 아름다웠다. 에게해의 추억 너머로 강릉(안목)항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곳에 멋진 산토리니 카페가 그리스풍으로 변장해 있었다. 겨울 바다를 바라보며 좋은 사람과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나눴다. 맛이 아름다운 내면의 감성적 조형이라면, 그때의 커피 맛처럼 함께라는 의미를 대체할 고귀한 관계 항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친구가 왔다. 그리고 그는 내 이상의 고향 산토리니까지 성실히 운행했다. 이런 시의 지시처럼. ‘내가 행복했던 곳으로 가 주세요.’ -택시, 박지웅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탄광촌 간이역-불정역

새해 새날이 경주마처럼 힘차게 출발했다. 소한을 넘겼어도 추위는 여전히 거칠지만 마음은 이미 봄에 닿아 있다. 불정역은 나의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고 문경 탄광의 광부들과 석탄이 오르내리던 애환의 역이다. 이곳에 흐르는 영강의 조약돌들을 쌓고 붙여 만든 것이라 흔히 보던 간이역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산업화 시대를 융성하게 했던 곳이지만 수많은 광부가 열악한 환경에서 중노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곳이기도 하다. 문경 탄광은 석탄산업의 효시로 전성기엔 광부는 7천200명이었고 문경의 당시 인구는 16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계절은 초대하지 않아도 얼음장 속으로 흐르는 물처럼 마음의 통로로 흘러온다. 역 뒤의 연둣빛 산이 새봄을 꿈꾸고 있다. 이 추억 깃든 간이역을 오늘은 수강생 이상범님이 그렸다. 공직의 봉직을 마친 그는 라이딩과 여행과 트레킹이 일상이며 요즘 시작한 어반스케치는 또 하나의 삶의 기록과 형식이 되고 있다. 그의 기타는 수준급이어서 경기기타오케스트라의 단원이기도 하다. 모쪼록 내 인생 교실의 학우와 함께 그의 후반 여정도 가치 충만한 탐험이 되길 바란다. 마종기님의 기적이란 시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추운 밤 참아낸 여명을 지켜보다/새벽이 천천히 문 여는 소리 들으면/하루의 모든 시작은 기적이로구나.” 사는 게 늘 기적이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첫마음

순백의 눈 같은 하얀 도화지 위에 첫 마음을 새긴다. 올해는 더욱 단단한 열정으로 내게 주어진 길을 잘 걸어가겠노라고. 무사 무사히, 건강하고 온유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에 가족에게 단아한 예절로. 첫 마음을 쓰기는 쉬워도 지키기는 어렵다는 걸 안 후로, 간혹 헛발을 뗄 때도, 무례할 때도, 버럭 궤도를 이탈할 때도 있음을 안다. 그때마다 넘어지지 않게 잘 지탱할 그 어떤 의지를 가슴 한쪽에 달고 살자. 새날을 다듬기 위해 책가도를 그렸다. 해마다 이맘때쯤 아버지는 가마니를 짜셨다. 추수한 곡식을 담을 가마니였다. 아버지가 가마니를 짜듯 나의 양식이 될 책들을 가지런히 훑어본다. 옛사람들의 책가도도 마음의 양식을 채운다는 의미였으리라. 연말에 영화 한 편을 보는 사치를 누렸다. 몇 년 만인 것 같다. 조용히 혼자 보려 했는데 어찌해 탄로가 나고 가족이 모두 알게 됐다. 명절을 빼고 단 하루도 집에서 뒹굴어 본 적이 없었고 무엇을 하든 매일 새벽, 어둠을 뚫고 집을 나섰던 나였다. 혼자 망중한을 내본 것은 처음이었다. 양심이 죄악처럼 상했다. 내가 본 영화는 노량이었는데 부제로 붙은 죽음의 바다가 마음을 저리게 했다. 나라에 충성하며 목숨을 바쳤지만, 가족을 지키지 못한 이순신의 어깨 너머에 한 무인의 고독하고 강인한 자신과의 결기가 눈물 끓게 했다. 좋은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나듯 뭉클하고 가슴 끓는 감동의 한 해가 됐으면. 이미 시작이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한 해를 보내며-호주머니 속의 시처럼

한 해가 진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는 항상 반복되는 절기 같다. 꽃이 지면 새싹 돋듯 가고 오는 세상사, 끝이 없는 시작 속에 있다. 어반스케치는 도시의 모든 것을 그린다. 도시엔 도시인이 있고 도시인은 도시풍의 소지품을 지니고 있다. 오늘은 자신의 소품 그리기를 해 봤다. 어릴 적 호주머니 속이 생각났다. 나의 소년은 주머니 속에 항상 딱지치기용 딱지가 들어 있었고 가끔 알사탕과 새총이 들어 있었다. 학교 앞 구멍가게엔 문구 외에 풍선껌과 고무줄과 알사탕 박하사탕 등이 고작이었다. 수강생들의 소지품은 대부분 장갑과 손거울과 핸드크림과 필통 지갑, 화구 등이다. 직업과 취미와 성별에 따라 소지품도 다르다. 일전엔 크리스마스카드를 그려봤는데 30여년 전 학창 시절 이후 처음 그려 본다며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이맘때쯤 방송엔 늘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으기가 흘러나오고 국군장병 아저씨께 쓴 위문편지와 친구와 지인에게 줄 의례적인 카드가 전부인 시절이 그려진다. 세상이 전쟁과 질병으로부터 해방됐으면 좋겠다. 임선기 시인의 호주머니 속의 시를 가슴으로 풀어 읽어 본다. “어느 하루 나는 팔레스타인의 한 시인을 본 적이 있다. 어느 날 그는 강당에서 세계시민을 향해 울고 있었다. 시를 읽으며 울고 있었다.” 송년회가 끝나고 눈 오는 밤하늘을 바라봤다. 잠시 갈 곳을 잃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로 가야만 영원히 기억할 그 어떤 것을 만날 수 있을까.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내 마음의 기억창고-소래포구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고 소래포구를 가던 시절이 있었다. 아득하지만 멀지 않은 시절이었다. 모든 것은 시대의 편의에 따라 바뀌고 사라지며 깊은 과거로 묻혀 버린다. 속도의 현대사회는 느림의 미학을 수용하기에 한가롭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기억창고에 남겨진 이야기들도 조금씩 증발하고 또 다른 추억들로 채워지는 것처럼. 하지만 어떤 새로운 것들도 오래된 가치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사라지는 게 아쉽고 그립다. 새우 더미가 쌓였을 김장철이 물러간 시장은 횟집 안으로 붐빈다. 집마다 내놓은 노란 튀김이 시각과 후각을 자극한다. 두툼한 방어회가 입안을 가득 채우는 순간, 삶의 결정이 충만하다. 싱싱한 식감이 입맛을 돋운다. 이젠 중늙은이가 지난 나의 동창생들과 송년모임이 열렸다. 초등학교부터 고교 시절까지 함께 건너온 친구가 점점 큰 목청을 떨며 학창 시절의 이야기와 군대 이야기까지 흥을 풀어낸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지만 돌아간 기분이다. 흘러간 세월을 지우려고 잔을 마주친다. 이젠 현역에서 물러난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일하는 친구도 있고 건강이 좋지 않은 친구도 있어 안타깝다. 포구를 함께 산책하며 정박한 배들을 아득히 바라본다. 헤어지기 아쉬워 결국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을 소환했다. 내년 연말에 건강히 다시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또 봐 친구! 아프지 말고.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팔달산로-전망 좋은 카페에서

팔달산 중턱 길은 느낌 좋은 산책로다. 나에겐 뒷동산 같은 곳이지만 벚꽃 핀 봄날 아쉽지 않으려고 의례처럼 오른 것 외엔 올 기회가 없었다. 카페에서 먼 허공을 본다. 찬 바람이 회초리처럼 날카롭게 파열한다. 겨울은 더욱 거칠고 툰드라의 늑대처럼 고독하게 닥칠 것이다. 바니타스적인 싸늘하고 포악하고 험난하게. 계절풍처럼 인생의 시간은 떠나고 회귀하며 간혹 크레바스 같은 역경의 틈을 이룬다. 겸허한 오늘이 좋다. 내일을 안다면 사람은 무얼 할까. 망각이 그러하듯 미래의 운명을 예견하지 못하는 것은 신이 주신 또 하나의 축복 같다. 맑은 통유리를 뚫고 빛이 깊이 들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신다. 따뜻한 빛과 따뜻한 커피와 따뜻한 카페의 전형이 좋다. 아래의 풍경은 천지개벽이다. 멀리 노을 빛 전망대가 있는 교회는 그대로인데 봄에 보지 못했던 아파트와 빌딩들이 비 온 후의 죽순처럼 왕성하게 군집해 있다. 그새 복잡하고 낯설게 변했다. 과밀이 죄는 것은 모두가 섬이 된다. 인간이 인간에게 스스로 갇혀 고립돼 간다. 나의 화실이 있는 옥탑방도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진눈깨비가 퍼붓는 환영 속에 남은 달력 한 장이 마지막 잎새처럼 매달렸다. 고결한 겨울연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눈처럼 흩어 내린다. 피셔디스카우의 굵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싣고.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매교동 골목길

‘하늘을 들여다보면/무슨 부호처럼/떠나는 새들/자 떠나자/무서운 복수(複數)로 떼 지어 말없이/이 지상의 모든 습지/모든 기억이 캄캄한 곳으로.’ 황동규의 시 철새의 한 대목이다. 고등학교 때 읽은 이 시를 나는 아직도 입속의 알사탕처럼 굴리고 다니며 가을마다 끄집어낸다. 무사 무사히 한 해를 접고 이 침묵의 시간을 조용히 전송하는 계절이다. 예측 없는 캄캄한 의식을 붙잡고 또 다른 봄을 향해 떠나는 철새처럼. 매교동 골목길도 차가운 날씨에 정적이 드리웠다. 전국을 들썩인 살인사건이 났던 골목이다. 요즘 들어 이 길도 오피스텔과 큰 주택이 들어서며 조금씩 밝아졌다. 천지개벽이라고 해야 할까. 부근에 1천500가구의 아파트가 조성됐고 더 조성될 예정이다. 도시는 진화와 소멸이 공존한다. 새롭게 태어나는 빌딩 속엔 한 시절의 추억이 묻혀 있다. 저녁이 내리면 매교 근처 포장마차엔 모락모락 김이 올랐다. 따끈한 우동 한 그릇에 소주 한잔 걸치면 하루가 스르르 풀렸다. 원조 팔미옥도 그립다. 팔미옥의 할머니가 숙성시킨 고기는 맛은 물론 원탁이 주는 따뜻한 정감이 배어 있었다. 40년 넘게 살아온 이 거리가 나에게 어떤 희로애락이 될지 또 다른 상상의 계절들이 나무처럼 자란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돌계단이 있는 골목길-팔달산 자락에서

초겨울이다. 남아 있는 잎들이 세금 고지서처럼 흩날리는 스산한 날씨에 창밖에는 주먹눈이 쏟아진다. 일찍 찾아온 첫눈이다. 그러나 그 어떤 아름다운 서정도 가슴에 도달하지 못하는 시절이 온 것 같다. 지나가는 세월처럼 덤덤하고 떨어지는 단풍잎처럼 성가시기도 하다. 겨울이 오면 암울했던 청년 시절이 자꾸만 마음 창을 가린다. 첫 상경에 맞닥뜨린 성북동의 겨울, 양남동 뚝방촌, 문래동과 청파동의 음지도 거쳤다. 전역 후는 오류동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내리며 지난한 운명에 도전해 왔다. 꺼질 수 없는 연탄불의 지속성처럼 냉혹한 겨울은 길었다. 그러나 추억은 고달프지 않다. 도저히 올 것 같지 않던 봄이 찾아오듯 고난의 극복은 현재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기 때문이다. 팔달산 기슭의 교동 골목길도 가파른 시간의 무늬가 남아 있다. 굴곡진 계단 길이 현재와 과거의 여정 같은 원근감을 준다. 이상을 향하는 소실점 너머엔 분명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의 궁극이 있을 것이다. 오늘을 단단하고 간결하게 살아야지. 첫눈 오는 아침 문득 이런 시가 떠오른다. ‘그래도 첫 마음은 잊지 말자고/또박또박 백지 위에 만년필로 쓰는 밤/어둡고 흐린 그림자들 추억처럼/지나가는 창문을 때리며/퍼붓는 주먹눈, 눈발 속에/소주병을 든 김종삼이 걸어와/불쑥 언 손을 내민다/어 추워, 오늘 같은 밤에 무슨/빌어먹을 짓이야. 술 한잔하고/뒷산 지붕도 없는 까치집에/나뭇잎이라도 몇 장 덮어줘, 그게 시야!’ -전동균 ‘주먹눈’ 중에서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추상적nature-세계여행스케치

나의 회화 30년 기념 추상적nature전이 해움미술관에서 열렸다. 그간 작업해 온 심상적 자연을 주제로 한 추상작품과 세계 스케치 여행을 떠났던 2000년부터의 스케치 작품으로 구성했다. 나의 첫 여행은 거칠고 열악했던 인도였다. 마살라라는 묘한 향신료가 역겨워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 손이 수저였던 인도인들의 식사 모습, 지저분한 화장실,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초만원의 열차, 뿌연 매연을 뿜어 대며 거리를 누비는 오토릭샤는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인도에는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돌아서면 그리운 곳이라는 인도를 나는 무슨 중독처럼 서너 번 다시 갔다. 가장 아름다웠던 곳이 어디였냐는 물음에 나는 아직 대답하기 어렵다. 모든 나라의 여행지가 나름대로 아름다움과 멋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긴장됐던 시리아 여행은 레바논과 요르단 여행에 포함됐는데 생각보다 마음 깊이 저장된 듯하다. 밝고 친절한 사람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과테말라, 인도의 다람살라와 라다크, 그리스의 산토리니, 쿠바와 티베트도 인상적이었다. 아무튼 나는 남미,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을 두루 여행했고 그 결과물들을 경기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엊그제 같기도 하고 먼 옛날 같기도 하다. 한 10년 후의 나는 어떻게 변했을까. 아니, 그때까지 이 지구별에 남아 있기나 할까?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낙엽 엽서

가을이 깊다. 들판도 걷히고 신작로의 플라타너스도 커다란 잎을 떨군다. 낙엽이 흩날리면 가슴 한쪽에 구멍이 뚫린 듯 휑하다. 그래도 풍요한 건 이삭 같은 작은 결실을 차곡히 담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가을은 노을 색이다. 너와 다른 나만의 계절이 사용한 시간의 무늬가 저물기 때문이다. 단풍의 으뜸은 감잎이 아닐까 한다. 노랑 주황 빨강 갈색으로 이어지는 감잎 색은 수채화처럼 고르게 번져 흐른다. 감잎엔 오래된 책갈피나 책상 서랍 속처럼 묵은 향기가 있다. 나의 조그만 서재에도 향기가 깊다. 어릴 적 읽은 단행본 고전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지니고 빼곡히 기대어 있기 때문이다. 시골집 나의 방에서 옮겨온 50년 이상 된 향기 있는 책들이다. 꿈을 주던 책들은 나의 청춘을 고스란히 담아 책갈피의 단풍잎까지 긴 세월 함께 덮여 있다. 그 속엔 간혹 대처로 간 누이동생의 편지도 있고 국어 선생님께서 보내온 엽서도 들어있다. 추억은 가을 길을 걷는다.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이나 비탈리의 샤콘느 같은 우수 어린 바이올린의 선율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올해도 여성회관 뒤뜰에서 낙엽을 그린다. 가을 엽서처럼. 모두가 저마다의 고운 색을 스케치북에 입힌다. 여성스럽고 정숙한 김명숙님이 잘 익은 낙엽을 모아 놓고 수채화 물감을 풀었다. 그녀의 여고 시절처럼 먼 가을 엽서를 다시 쓰고 있는 느낌이다. 올가을도 다 읽은 책처럼 덮어야 한다. 가을은 아름답다. 헤어지는 사람의 뒷모습처럼, 다시 만나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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