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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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파릇한 새싹이 분주히 돋았다. 하얀 볕 눈부신 봄나들이다. 버드내를 거슬러 오를 때 화홍문을 관통하는 물보라가 약동하는 봄을 안내한다. 오늘이 선물이다. 고귀한 은혜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나날을 성찰케 한다. 노란 산수유도 보이고 길섶에 개나리도 보인다. 장안문 지나 성곽 따라 걷는 길이 탄력을 더한다.

 

화서문 돌아 골목마다 예쁜 카페가 기대어 있는 행궁길로 들었다. 시대를 표상하는 무인사진방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시간은 정체하지 않고 자주 얼굴을 바꾼다. 계획한 점심은 골목집이다. 뒤편 골방과 막걸리 주전자가 사라지고 젊게 바뀌었다. 묵은지김치찌개와 막걸리 한잔 곁들인다. 공방 길에 기와집 한 채가 고전처럼 서 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촬영지다. 대문 안이 궁금했다. ‘아저씨는 무슨 반찬이 제일 맛나우?’ 옥희와 달걀 장수의 신파극 같은 향수가 묻어난다.

 

카페 단오에서 커피 한잔 마주했다. 주인장은 연극하는 후배로 이곳에서 미얀마를 위한 전시를 연 바 있다. 벽에 시 한 편이 걸려 있다. 수원 출신 최동호 시인의 시 화령전이다. “첫사랑 임의 입맞춤 누가 몰래 지울까/말 없는 화령전 기둥 뒤에 새겨두고/나비 날아간 붉은 꽃밭 사잇길 뛰어와/누가 볼세라 잠들지 못해 뒤척이던 보름밤/ 첫사랑 임의 입맞춤 누가 몰래 지웠을까/화령전 기둥은 여전히 말이 없는데/꿈결에도 빛나던 작약꽃 사라진 옛 마당/누가 그리워 나 지금 여기 홀로 서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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