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료원(원장 조준필)은 26일 오후 경기도중소기업지원센터에서 개원 100주년 기념 비전 선포식 및 세계보건기구(WHO) 건강증진병원(HPH) 가입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했다.이날 선포식에는 김문수 경기지사를 비롯해 염태영 수원시장, 김영호 전국의료원연합회장, 윤창겸 경기도의사회장, 김병학 건강관리협회 경기본부장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유공자 포상과 100년사 동영상 상영, 비전선포식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경기도의료원은 100주년 기념 슬로건으로 경기도민과 함께 한 건강 100년, 함께 할 행복 100년을 내걸었다. 또 경기도민의 가까운 곳에서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주치의 역할을 다하며,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통해 국내외 공공의료 기관을 선도하는 의료원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담아 경기도민이 가장 먼저 찾는 주치의, 세계인이 꿈꾸는 건강 쉼터를 비전으로 선언했다.선언문에는 비전 수행을 위한 미션으로 ▲건강문화를 만들어가는 건강증진병원 ▲선진화된 시설과 장비로 규모의 적정성을 유지하는 병원 ▲국가위기상황에 대처하는 지역거점병원 등의 내용을 담았다.김문수 지사는 축사를 통해 경기도의료원은 지난 100년동안 도민의 건강을 위해 역할과 책임을 다해왔다며 앞으로도 소외계층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의료원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경기도도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도 말했다.선포식에 앞서 열린 학술대회에서는 덴마크 코펜하겐 HPH 네트워크의 하네 토네슨 대표와 제프 키륵스반 사무국장을 비롯해 슈-티 치우 대만 HPH 네트워크 대표, 자넷 루 싱가폴 HPH 네트워크 코디네이터 등을 강사로 초청, 전국 각 병원에서 건강증진병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200여명의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강연 및 질의 응답 시간이 진행됐다.강연은 키륵스반 사무국장의 건강증진병원 국제네트워크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하네 대표는 수술환자에서 건강증진의 성과 사례와 국제-건강증진병원 인정 과정에 대해 소개했다.강연은 27일까지 계속되며, 한국의 건강증진병원에 대한 경험과 건강증진병원을 시작하는 방법 및 국제건강증진병원 회원의 혜택 등에 대한 강연이 펼쳐질 예정이다.윤철원기자 ycw@ekgib.com
경기도와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단장 전종덕)은 남한산성의 세계유산적 가치 발견을 주제로 내달 5일 오전 10시 남한산성 행궁에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한다.이번 심포지엄은 남한산성의 세계유산으로서 보편적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국내외 문화유산전문가들을 초청, 다양한 사례 비교를 통해 세계유산등재 심사 시 고려되는 요구사항들을 보다 현실적으로 제시하고자 마련됐다.밀라그로스 플로레스 국제성곽학술위원회 위원장의 산 후앙(San Juan) 성곽연구를 통한 세계성곽유산의 보편성 가치를 주제로 한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구오 잔 국제기념물사적협의회(ICOMOS) 부회장의 군사성곽유산의 세계유산잠정적 가치와 도밍고스 부초 포르투갈 포르탈레그레 대학 교수의 이론방법론적 접근을 통한 성곽유산의 보편적 가치 발견에 대한 발표가 이어질 예정이다.또 국내에서는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의 병자호란기 남한산성과 국제관계, 손영식 한국전통연구소장의 남한산성 성곽의 특징과 가치성 고찰, 김봉렬 한국종합예술대 건축학과 교수의 남한산성 산성도시로서의 특징 등 다양한 강연이 펼친다. 문의 (031)777-7524 윤철원기자 ycw@ekgib.com
신라 진흥왕 때 충북 단양군 적성(赤城)에 세워진 비석, 단양 신라 적성비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적성비가 어떻게 발굴 됐는 지 그 과정에 대해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한국 고고학계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조유전 경기문화재연구원장과 오랫동안 문화재 전문기자로 활동한 경향신문 이기환 부국장이 함께 발굴을 주제로 쓴 역사 답사기 한국사 기행(BM책문 刊)은 문화재 발굴 현장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 해 준다. 단양 적성비공주 백제고분 등 30곳 발굴 과정일화 담아1978년 1월6일, 단국대학교 발굴조사단이 단양군 적성산성(赤城山城)을 찾았다. 간밤에 내린 눈이 녹으면서 조사단원들의 신발은 흙범벅이 됐다. 그때 한 단원이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내려고 옆에 있는 돌부리에 발을 올려 놓던 순간 글자 하나를 발견했다. 조사단은 삽시간에 흥분에 빠졌다. 바로 그때가 국보 198호 단양 신라 적성비가 발굴돼 1400여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었다.이처럼 책은 2003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공주 수촌리 백제고분 발굴 일화를 시작으로 청진동 유적에 이르기까지 30곳의 발굴 비화와 조사 진행과정, 그 의미를 생생하게 풀어 놓았다. 또한 한국의 전 지역을 챕터별로 나누고 유적 발굴의 과정을 세심하게 담았다. 그밖에도 엿장수가 수거한 청동기물이 기원 전 4~5세기 사람들이 남긴 귀중한 예기로 밝혀진 화순 대곡리 유적, 1979년 충주시 문화재 답사 모임에서 마을 입구에 방치되어 있던 중원고구려비를 발견한 순간, 8천년 전 한국 최고(最古)의 선박이 발견된 창녕 비봉리 유적이 2003년 한반도를 덮친 태풍 매미가 준 선물이었다는 사실 등을 밝히며 독자들을 발굴의 세계로 안내한다.유적에서 나타난 자그마한 단서로 과거 역사를 미스터리 퍼즐을 맞추듯 풀어나가는 과정은 마치 추리소설처럼 흥미롭다. 특히 책에서 소개된 발굴과정의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역사적 지식과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과정은 발굴로 인해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역사의 새로움을 일깨워 준다. 발굴이 역사를 복원하는 일이라면 이 책은 발굴현장을 복원하고 있다. 값 2만4천원채선혜기자 cshyj@ekgib.com
일본 최고의 신격을 일컫는 용어인 아지메가 한국의 부산 방언인 아지메에서 유래됐고, 한국의 농촌전통문화인 지신밟기는 중국의 동북앙가(東北秧歌) 놀이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몽골 등 동북아시아 각국 전통연희의 탄생배경 및 변이전승과정 등을 파악하는 데 구체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이같은 주장은 지난 20일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원장 김용국)이 주최하고 경기문화재단, 경기일보 등의 후원으로 열린 신과 인간의 예술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세미나에서 나왔다.일본의 미타 노리아키 미즈호 아악회 수석악사는 신도의례와 예능-궁중 미카구라 서론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일본의 토착 신앙인의 의례 중 궁중 미카구라에서 여신을 의미하는 아지메의 어원은 현재 한국의 부산 방언 중 연배의 여성을 호칭하는 아지메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에서 지금은 아줌마를 일컫는 아지메가 예전에는 여신 또는 천녀에 대한 호칭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이어 그는 한국에서는 일찍이 정중도가 높았던 말이 시대가 변함에 따라 비근하게 쓰여지고 있는 예는 적지 않다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다음 발제자로 나선 박승권 중국 중앙민족대학 교수는 중국 동북앙가놀이의 연희성에 대하여-신에 대한 제의에서 대중오락으로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한국 농촌의 전통문화 중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지신밟기는 청나라 이후 중국 전역에 걸쳐 진행됐던 민속 행위인 앙가놀이와 유사성이 많다며 한국의 지신밟기에 나오는 두레패 혹은 걸립패들은 중국 앙가대와 마찬가지로 마을을 돌며 흥을 돋우는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그는 또 중국의 경우 한 마을이나 혹은 집에 두 개 이상의 앙가대가 드는 경우 타대태라는 앙가싸움을 하는데, 한국의 두레패 역시 마찬가지로 두레싸움을 하는 것이 눈에 띈다고 설명했다.이번 세미나를 준비한 김용국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장은 세미나를 통해 동아시아 각국이 서로에게 문화를 어떻게 전파했고 어떤 영향을 줬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윤철원기자 ycw@ekgib.com
경기문화재단(대표이사 권영빈)과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정재정)이 22일 오전 10시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경기도 근현대 전쟁관련 기억기념과 동북아평화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한다.학술회의에는 김태승(아주대), 심헌용(군사편찬연구소), 이영호(아주대), 정진각(안산시사편찬위원회), 박환(수원대), 도진순(창원대) 교수 등 역사전문가 6명이 참여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31운동과 625전쟁 등에 관련된 유적과 기념시설 등을 한중일러시아 등지에서 어떻게 인식하며 활용하고 있는지를 논의한다.윤여빈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실 학예연구사는 현재까지 관련국에서 이들 전쟁과 관련된 유적이나 기념시설을 어떻게 인식하고 활용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 경기지역에 산재한 전쟁 유적과 기념시설 등이 중국 및 일본, 러시아 등의 관련 유적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인식, 활용되고 동북아시아의 상호이해와 연대 및 교류를 위한 학술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윤철원기자 ycw@ekgib.com
정조대왕의 개혁 사상이 녹아든 조선 후기 군사문화의 정수, 장용영(壯勇營)을 주제로한 학술대회가 국내 최초로 열린다. 수원화성박물관(관장 김찬영)은 7일 오후 1시 경기도문화의전당 컨벤션센터에서 조선후기 군사개혁과 장용영을 주제로 제1차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이날 한국체육대학교 심승구 교수가 첫 번째 발표를 맡아 조선후기 무예개혁과 적용을 주제로 임진왜란을 경험한 조선이 새롭게 무기를 개발하고, 전술개발을 통해 변화를 도모해가는 양상에 대해 밝힌다. 두 번째로는 무예24기보존회 김용호 중앙전수원장이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24기의 기원과 활용을 주제로 조선시대 최고의 무예서인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무예24기의 근원과 적용에 대해 살펴본다. 국사편찬위원회 장필기 박사는 정조대 장용영 창설과 운영이란 주제로, 어렵사리 왕위를 계승한 정조가 장용영을 바탕으로 전개한 친군위 체제의 정비를 위한 재정확보와 나아가 화성건설의 계획까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수원화성박물관 김태완 전문위원이 나서 1795년 화성에서 실시되었던 군사훈련과 화성부성조도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김찬영 관장은 장용영을 다시 되돌아봄으로써 국방강화와 민생안정을 추구했던 200여년 전의 정조를 다시 만나고자 한다며 앞으로도 수원시를 인문학의 도시로 만드는 거점 기관으로 성장하도록 다양한 학술대회와 기획전을 펼치겠다고 말했다./오세진기자 st1701@ekgib.com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24일 오후 2시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산성도시 남한산성의 가치 재조명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세미나는 허권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지구촌평화센터장의 세계유산으로서의 남한산성마을의 가치를 주제로 한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김기덕 중부대 강사의 남한산성의 읍치와 관아시설, 김헌규 울산대 교수의 남한산성의 도시사적 의미,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산성도시 남한산성-방어에서 거주로 등 주제발표에 이어 토론이 진행될 예정이다.토론의 사회는 조유전 남한산성운영위원장이 맡았으며 김준혁 수원화성박물관 학예사, 안정근 국립경상대 교수, 채미옥 국토연구원 센터장이 토론자로 참여한다. 현재 남한산성은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있으며, 2014년 세계유산등재를 목표로 행궁과 성곽 등 복원과 다양한 조사연구사업이 진행중이다. 문의 (031)777-7526/윤철원기자 ycw@ekgib.com
625 한국전쟁에 참전해 머나먼 이국 땅에서 유명을 달리한 유엔군 전사자들의 시신을 화장하던 시설이다.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에 위치해 있으며 돌과 시멘트로 쌓은 10여m 높이의 굴뚝과 화장 구덩이가 덤불숲 속에 홀로 남아 있다. 검게 그을린 불의 흔적은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던 격전의 상황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북한과 인접한 연천 지역은 625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서부전선의 격전지였다. 고지 쟁탈전이 한창 격렬했던 1952년, 이 지역에서 많은 유엔군 희생자들이 생기자 세워진 것으로, 휴전 직후까지도 사용된 것으로 전한다. 625 전쟁 당시의 화장장시설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오세진기자 st1701@ekgib.com625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올해로 60주년. 경기도 및 DMZ 일원에 산재한 625 관련 다양한 유물과 흔적들을 생생한 사진을 통해 소개한다.
조선 최고의 실학자는 현대의 목민관들에게 어떤 조언을 들려줄까. 내달 1일 민선 5기 출범을 앞두고 민본정치(民本政治)의 핵심 사상가였던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과 관련한 전시가 열리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실학박물관(관장 안병직)은 지난 12일부터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 업적을 재조명한 다산과 가장본(家藏本) 여유당집(與猶堂集) 특별전을 열고 있다.10월 3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다산이 일반에 공개하기를 원치 않았던 비본(秘本)과 다산이 직접 수정교열했던 초고본 여유당집을 공개함으로써 여유당집의 전편집과정을 조명할 계획이다.이와 함께 다산이 승례 혜장에게 지어준 시문첩인 견월첩을 비롯해 민간자치의 상비적인 방위체계를 구상한 민보의, 다산의 역작인 경세유표, 매씨상서평, 매화도 등 모두 71건 200여점의 유물이 전시된다.다산 정약용은 18~19세기 경세치용학과 이용후생학을 집대성한 한국 최고의 실학자로 그가 추구한 사상의 방향은 개혁개방을 통한 부국강병(富國强兵)과 민주주의 사상의 원시적 형태로서의 국가체제 개혁이었다.이같은 그의 사상은 1834년경 손수 정리한 여유당집(與猶堂集)으로 남겨졌으며, 그의 총저작은 서목-경집 88책 250권, 문집 30책 87권 및 정법집으로 구성된 잡찬(雜纂) 64책 166권 등 모두 182책 503권에 달한다. 그 결과 1930년대 중엽에 이루어진 여유당전서는 거의 완벽하게 재편집될 수 있었다.현존하는 가장본(家藏本)은 장서각(藏書閣)과 미국 버클리대학의 아사미문고(淺見文庫) 등에 소장되어 있다.또 박물관은 오는 19일 조선의 목민학과 목민심서를 주제로 특별전 기념학술회의를 마련, 최근 지방선거를 통해 새롭게 등장한 현대의 목민관들에게 관리로서 갖춰야 할 자질과 덕목들에 대한 다산의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이밖에도 박물관은 정약용초상 퍼즐맞추기, 미래실학자 인증서 발급 등의 체험코너를 통해 청소년 관람객들이 정약용과 실학사상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준비했다. 문의 (031)579-6011/윤철원기자 ycw@ekgib.com
날카로운 목탁(木鐸) 소리가 공방 안 기운을 흩어놓는다. 스님들의 수행도구가 아닌 나무를 깎는데 사용되는 목탁이 생소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내 자귀날로 내리친 아름드리 나무가 쩍쩍 소리를 뱉어낸다. 그 곁에 손등으로 구슬땀을 훔치며 시원스레 미소를 짓는 이가 있다. 예순의 나이가 무색하게 소매를 걷어붙인 굵은 팔뚝으로 내리친 자귀날 몇 번에 굳게 다문 목불(木佛)의 입도 벌어졌다. 나무가 좋아 아호(雅號)마저 목아(木芽나무에 싹을 틔우다)로 지었다. 우람한 외모와 달리 웃으면 하회탈을 연상시키는 그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 박찬수씨(61목아불교박물관장)다. ● 故 김성수 선생과의 운명적인 만남저는 진짜 생 촌놈이었어요. 제 고향은 본래 경남 산청군 생초면 상촌리입니다. 하늘아래 첫 동네라 불릴 정도였지요. 화전민(火田民)으로 생계를 잇던 아버지는 열 한명의 자식중 반절 이상을 잃고선 남은 자식들 공부를 위해 무작정 상경을 결심했지요.밭뙈기 하나 없어 산에 불을 놓아 곡식을 거둬서는 겨우 입에 풀칠하던 박씨 가족에게 서울행은 또 다른 고생길의 서막을 예고했다. 가족은 이 동네 전 동네를 전전하며 동동구리무 장사를 하거나 여름에는 방장, 모기장을 파는 등 철따라 장사를 달리했다. 때문에 그는 찹쌀떡과 메밀묵, 아이스케키 노점, 쌍화탕과 목장우유 배달,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짬밥 나르는 일과 심지어 공동묘지에서 산소를 만들기 위해 흙을 파내는 일까지 닥치는대로 해야만 겨우 입에 풀칠 할 수 있었다.그러나 끼니걱정에만 매달리기엔 소년 박씨는 호기심이 너무 많았다. 당시 초등 6년생이었던 그는 고구마 몇 개를 품에 쥐고서는 자동차 기름 냄새를 쫓아다니며 서울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집이 있는 미아리에서 7㎞나 걸어 도착한 서울 답십리 인근에서 소년은 신천지를 만난다. 바로 반지하 창문 너머로 본 고(故) 김성수 선생이 운영하던 신라조각사. 그곳서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 불상, 예수상, 동물상 등의 조각품과 나무판을 지져 만들어내는 인두화는 단번에 소년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때부터였다. 조각장이 되기 위해 오매불망 나무에만 매달린 세월이 50년이다. ● 뜻이 있는 곳엔 스승이 있다박씨는 고인과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했다. 가진 거라곤 몸에 걸친 옷에 달랑 고구마 몇 개를 지니고 나타난 그를 김 선생은 중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왔다. 쟁이도 배워야 큰 인물이 된다는 스승의 말을 따라가니, 그곳엔 두 번째 운명의 스승, 이운식씨(73강원대학교 명예교수)가 있었다. 당시 미술과목 교사였던 이씨는 겨울방학 숙제로 제출한 박씨의 용을 테마로 만든 목선(木船)를 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 어디서 돈 주고 사와서는 숙제라 제출했냐는 것. 억울하고 분했던 그는 조각칼에 베여 선홍색 선명한 오른손을 들어보이며 자신의 작품임을 호소해야만 했다. 이후 이씨는 목조뿐 아니라 점토, 석고, 브론즈, 철조 등 다양한 조각분야를 이해할 수 있도록 조각의 기초와 이론을 전수했다. 청출어람, 스승의 능력을 뛰어넘는 제자를 보는 것만큼 기분좋은 일은 없는 법. 박씨는 그런 스승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 더 열심히 목조각에 전념했다. 그리고 마침내 1967년, 제1회 박찬갑 박찬수 조각전을 열며 신고식을 치르고 인천여자실업고등학교 등에서 강의도 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러나 1977년 일어난 유류파동으로 온 국민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한국서의 활동이 힘들어진 박씨는 과감하게 일본행을 결심한다. 일본서 모진 고생끝에 일본의 조각명인 고(故) 가토 히로시 선생을 만나, 일본 최고 화랑이었던 다카시마 백화점에서 첫 해외전을 열어 평단의 호평과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비로소 스타 조각가의 반열에 든 것이다. 뭣보다도 일본에서 나를 인정해줬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한사람으로 가슴이 벅찼지요. 또 그 일을 계기로 일본으로 한국의 불상들을 수출하게 됐어요. 일본 전 지역에 판매가 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그렇게 일본에 자신이 만든 불상 등을 꾸준히 판매하면서 얻은 이익금은 고스란히 여주 목아불교박물관(여주군 강천면) 건립의 기초자금으로 차곡차곡 쌓여갔다.동서양 종교의 벽을 허물 성모 마리아상과 동자승 작품 등 英 전시회서 신선한 충격나무에만 매달린 세월 50년 나무가 좋아 아호(雅號)도 목아(木芽)● 인간문화재, 퍼포먼스를 행하다지난 4월, 영국의 트라팔가 광장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벌어졌다. 붓다라 일컬어지는 동방의 예수가 헤벌쭉 입을 벌리고 무언의 손짓발짓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습을 담은 조각상은 외국인들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봉긋한 가슴을 드러낸 성모 마리아상과 그 주위를 맴도는 동자승들은 동서양의 종교의 벽을 보기좋게 허물어버렸다. 바로 박씨가 세운 목아불교박물관과 주영한국문화원이 공동으로 개최한 부처가 입을 열다 전시회에서 벌어진 일들이다.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008년 5월엔 세계적인 주류 브랜드인 조니워커 블루라벨을 본뜬 목조각품을 즉석에서 만들어 기념품으로 전달, 화제가 됐다. 박씨는 이색적이면서도 신선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다가도 일어나 작업을 한다.10년을 똑같이 만들어내는 모작(模作)에만 매달렸지요. 나무를 잘 알아야 좋은 작품을 만든다는 걸 알았죠. 아, 그러다 보니 또 10년을 박찬수만의 작품만들기를 위해 바쳐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요.강산이 변하는 주기를 지나야 하나씩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쟁이의 길. 그는 1년 365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기에 행복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에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목아불교박물관, 제2의 삶이자 꿈의 공장1만㎡에 이르는 대지 위에 조성된 목아불교박물관은 사립박물관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한계를 꽉 채웠다. 박물관 인근에 마련된 공방에서는 현재 둘째 아들인 우명씨(36)를 포함 전수조교와 이수조교 등이 목조각 연마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박씨는 단순히 조각법을 익히고 배우는데 그치는 1차적인 공간이 아닌, 학점을 인정해주는 제도를 도입해 조각쟁이도 석사도 되고 박사도 되는 그런 세상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 내 아들도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끈덕지게 배우려고 하는 사람 없습니다. 무조건 내 길을 따르라는 식은 통하지 않지요. 대신 조각분야서 다양한 일꾼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박씨는 수 많은 제자들이 그보다 실력이 좋은 인재들로 성장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염원은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모네의 작품이나 로뎅의 조각 등을 보며 사람들은 단순히 잘 그렸다,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지요. 가슴으로 느끼는 무언가 찡한 감동, 그 자체를 느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성모 마리아나 부처의 앞에서 그저 기분이 편안해 지는, 그래서 보는 순간 민족과 종교, 성(性)을 떠난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일생의 역작을 만들어보렵니다.자신의 명함에조차 스크래치 은박을 붙여, 해학을 선물하는 박씨. 30㎝ 귀여운 동자승부터 석가모니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 사천왕, 십이지, 예수상뿐 아니라 그를 인간문화재의 반열에 들게 한 법상(法床1989년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그리고 높이 4m의 보물 제684호 용문사 윤장대(輪藏臺) 복원까지 모두가 그의 손을 거쳐 탄생된 작품들이다. 2만여 점이 넘는 유물과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진정한 콜렉터이자, 쟁이의 최고의 자리인 인간문화재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오늘은 내일을 위한 또 하나의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나무를 고르는 그에게 지치지 않는 장인의 기운을 엿볼 수 있다. /권소영기자 ksy@ekgib.com 사진 하태황기자 hath@ekgi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