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이영미술관 ‘108번의 삶과 죽음전’을 보고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涅槃)’과 같은 말이다. 이 말은 ‘불어서 끄는 것’ ‘불어서 꺼진 상태’를 뜻하는데,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가 소멸된 상태를 가리킨다. 니르바나로 인해 맑은 고요(寂靜)의 상태에서 완전한 몸의 유희(安樂)가 실현된다. 그러나 열반에 이르는 길을 역으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불의 혼란이요 온갖 번뇌가 들끓는 길이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내고 박생광은 그가 성취한 독특한 회화세계를 통해 스스로 니르바나의 상태를 꿈꾼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마치 불화(佛畵)가 궁구(窮究)하고 있는 이상(理想)처럼 그의 작품들은 하나의 ‘예술’적 위치에서 상승하여 민중적 신앙의지의 표출상태로까지 확장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미술관을 가득 메울 수 있는 대작들은 그 자체로 장엄(불교를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꾸미다란 뜻이 있음)세계를 이루려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역사와 전통, 샤먼의 세계에서 빚어 올린 처렴상정(處染常淨)의 연꽃향기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박생광의 예술적 성취를 최신의 영상 미디어 작가들의 작업으로 풀어 다시 연결해 보려는 시도가 이영미술관 기획전(8월3일까지)으로 열리고 있다. 다소 평이할 수 있는 ‘108번의 삶과 죽음’이라는 전시 제목은 오히려 난해한 전시의 첫 느낌을 훨씬 부드럽게 소화시킬 수 있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었던 ‘108번뇌’라는 말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본래의 자기인 일심(一心)을 잃는데서 온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우리의 감각 눈·귀·코·혀·몸·뜻(마음) 등 다섯 가지가 좋다(好), 나쁘다(惡), 그저 그렇다(平等)로 서로 나뉘게 되고(6×3=18), 또한 괴로움(苦), 즐거움(樂),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捨) 것들이 상호 연동되어 총 36가지의 번뇌가 생기고, 그 36가지의 번뇌가 각각 과거 현재 미래를 갖기에 세 배수로 늘어나 108번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위의 108번뇌의 의미에서 보이듯 때로 개념의 풀이는 미디어적 속성의 작업에 훨씬 매력적일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손병돈의 ‘얼굴’작업은 감각의 요체로서의 얼굴이 보여주는 다양한 표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혼이 깃드는 장소이자 수행의 터널’로서의 얼굴의 변화를 매우 생동감 있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관객을 압도하는 거대한 얼굴의 정면응시는 ‘대상’이 아닌 자아와의 맞대결로 밀고 온다. 끊임없이 물어야 하는 ‘이 뭐꼬!’의 화두처럼 얼굴은 ‘나’를 꿰뚫는다. 이한수의 작업은 21세기에 갑자기 스스로 출현한 문화재의 유형처럼 떠돈다. 이것은 예술의 발굴이 아니라 예술의 발견이며, 부표처럼 떠도는 탈정체성의 표상이다. 문경원의 작업은 인간 개체와 개체군이 만들어 내는 낱낱성과 그 낱낱의 소통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질서와 산재, 혹은 기호와 생성 등 현실세계의 이미지를 ‘인간 기호’를 통해 드라마틱하게 엮어내고 있다. 그외 이승준, 이진준의 작업도 매우 매력적이다. 박생광의 작업에서 실타래를 끄집어내어 유충이 집을 짓듯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획전의 의미는 바로 그것, 선배 예술가를 화두로 놓고 각각의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어법으로 풀어 보려는 시도이다. 특히 전혀 새로운 형식실험의 작가들이 모여 선배에 대한 경외와 예술적 접촉을 펼친 것은 참으로 의미 깊은 일이라 할만하다. /김종길 / 미술평론가

군포 프라임필하모닉 연주회 17일 피아니스트 김대진 협연

군포시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단장 김홍기)가 제45회 정기연주회 ‘피아니스트 김대진 초청 - 러시아 음악의 밤’을 17일 오후 7시30분 군포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갖는다. 공연은 타이틀이 말해주듯 국내 최정상급 피아니스트와 러시아 출신 작곡가들의 작품 및 지휘자가 어우러질 전망이다. 지휘봉을 잡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출생의 블라디미르 릴로프는 연방아카데미극장 오페라 발레 상임지휘자와 상트 페테르부르크 연방극장 음악감독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유럽과 아시아 등에서 수 많은 교향악단과 호흡을 맞춰 왔으며 프라임필과는 지난 2002년과 2004년에 이어 세번째. 협연자로 나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대진 교수는 감성과 논리를 지적으로 조화시켜 단아하면서도 명석한 음색을 창출하며 유연한 테크닉과 개성이 강한 작품 해석으로 그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로그램은 모두 세 곡이 선정됐다. 화려하고 경쾌한 리듬이 돋보이는 글린카의 오페라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과 발레 모음곡이라 할 수 있는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20세기 마지막 낭만주의자라 일컬어지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 등으로 러시아 특유의 감성을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의 392-6422./박노훈기자 nhpark@kgib.co.kr

아트그룹제로, 18일부터 안성서 첫 전시

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은 주부 3인의 당찬 기획전이 열린다. 주인공은 안일순, 김용정, 김지연씨. 이들은 소설가 혹은 프리랜서 편집디자이너, 사진작가로 각자 활동하던 중 아카데미즘에 반대하는 대안미술 모임 ‘아트그룹제로’를 지난해 겨울 결성했다. 주류·비주류, 프로·아마추어 작가란 미술의 이분법을 지양하고 제로상태에서 자신만의 미술작품을 만들려는 취지에서 그룹을 만든 것이다. 이들은 안성에 위치한 대안미술공간 소나무(관장 전원길)에서 ‘Story about M’(M이야기)이란 주제로 18일부터 내달 1일까지 첫 전시를 연다. 전시 주제인 ‘M’을 거꾸로 하면 여성을 뜻하는 우먼의 첫 글자 ‘W’가 된다.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아내, 며느리 등 여러 역할에 충실했던 이들이 일상에서 찾은 예술적 소재를 작품으로 펼쳐낸다. 안일순씨는 ‘뺏벌’, ‘과천미인’ 등을 출간한 소설가이며, 전직 국어교사다. 여기다 시나리오 작가, 퍼포먼스 예술가, 페미니스트, 연출가 등 화려한 경력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필리핀의 미군기지였던 캡콤과 마답답 마을을 직접 방문해 미군기지로 인해 피해를 입은 여성과 기형아로 태어난 어린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여러 장의 투명한 플라스틱 필름 위에 사진을 복제한 후, 그 위에 글을 쓰고 해체하며 쓰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 투명한 문자회화를 만들어냈다. 김용정씨는 작가 자신이 살고있는 분당의 지형을 지도처럼 연출했다. 그가 사용한 재료는 다양한 패턴의 천과 비즈, 단추, 레이스, 냅킨 등 여성적인 일상용품들. 이들 재료를 가위로 오리고 붙여 섬세하고 화려한 분당지역의 지도를 만들었다. 자신이 거주한 지역에서 작업의 모티브를 찾은 작가의 작품은 수공예로 만든 신 네비게이션을 연상케 한다. 김지연씨는 치과 의사인 남편의 병원을 자주 찾는다. 김씨에게 남편의 직장은 곧 자신의 작업장이다. 작가는 낯선 치과 기구와 엑스레이 사진 등을 흐리게 사진 촬영한다. 환자의 잇몸은 강렬한 붉은색 추상회화가 되고, 낯선 의료기구는 기하학적인 패턴의 작품으로 탄생한다. 디지털 카메라로 작업하면서 컴퓨터 수정을 하지 않는 것이 그만의 원칙이다. 이은화 중앙대 강사는 “예술이 치열한 번뇌의 대상도 현실을 등진 고독한 수행의 대상도 아니며, 그저 일상의 대상이자 우리가 살고있는 일상 그 자체”라며 “이들 작가들이 당당히 내민 도전장에 한국 현대미술의 대안을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673-0904. /이형복기자 bok@kgib.co.kr

한일 타악계 대표연주자 김덕수-에데스 고양 공연

한국과 일본 타악계의 두 대표주자가 만났다.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 그의 오랜 친구인 일본의 다이코(太鼓·큰북) 연주자 하야시 에데스다. 둘은 올해 한·일 우정의 해를 맞아 11~12일 오후 4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대규모 합동 공연을 펼친다. 이어 16~17일 오후 7시30분엔 고양 어울림극장에 오른다. 둘은 여러 가지로 닮은 점이 많다. 우선 둘 다 1952년생 동갑내기. 작은 체구에 다 부진 외모도 닮았다. 특히 두 사람이 양국 전통음악계에 끼친 영향도 비슷한 모습이다. 김씨가 우리의 전통 타악기를 사물놀이라는 형태로 재구성해 대중화했다면, 에데스씨 역시 일본 타악기 다이코를 현대적 기법으로 연주, 다이코를 세계에 알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들이 처음 만난 건 1982년 김덕수 사물놀이가 처음으로 도쿄 공연을 갔을 때였다. 이후 지금까지 23년 간 우정을 이어오며 다양한 음악적 교류를 하고 있다. “23년 전 처음 사물놀이 연주를 듣고는 충격을 받았어요. 타악기를 위한 이토록 풍부한 음악이, 그것도 바로 이웃 한국에 있었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죠. 그 때 이후 한국의 전통음악 세계를 더욱 깊이 알게 됐습니다.”(에데스) 김씨의 부연 설명에 따르면 타악기 연주에서도 양국의 문화적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기본 박자도 일본은 2박, 우리는 3박 또는 혼합박 형태다. 따라서 일본의 타악 리듬은 직선적이고 힘찬 반면, 우린 ‘둥글게 감기는’ 곡선 느낌이다. 김씨는 “쉽게 말해 우리 타악은 덩실덩실 어깨춤이 절로 나는 리듬인데 비해 일본 것은 다소 형식적이고 인공적인 리듬”이라며 “에데스가 충격을 받았다는 건 바로 그런 차이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둘은 23년 간 거의 매년 함께 연주해 왔지만 이런 식의 대규모 합동 공연을 열기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이후 두번째.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의미있는 초연곡들을 다수 선보일 예정이다. 일제시대 조선에 건너와 한반도의 수목을 연구한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를 추모하는 ‘수로의 연꽃’과 ‘진혼아리랑’, 3개의 다이코와 4개의 장구가 협연하는 ‘일고화락’, ‘우정의 밀양아리랑’, 김덕수-에데스의 듀오 무대인 ‘산을 넘어서’ 등의 작품이 이어진다. 연주에는 두 사람 외에 양국 타악주자 각 5명, 우리 소리꾼, 대금과 사쿠하치 연주자 등 모두 15명 정도가 참여한다. 양국의 타악기를 함께 연주하는 시도는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전통의 대중화, 세계화라는 측면에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은 전통음악의 뿌리가 되는 창조적 작업을 위해 앞으로도 다양한 교류 작업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국악協 의왕시지부 웰빙콘서트

의왕 백운호수 인근의 한 허브농장이 시끌시끌하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정오를 넘어서도 그칠 줄 몰랐다. 한국국악협회 의왕시지부(회장 전남순)가 주최·주관한 ‘2005 웰빙콘서트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 5월22일 오후 3시30분 백운호수에 인접한 허브 앤 조이 라벤더 팜(대표 하덕호)에서 열렸다. 허브 비누와 허브 차 등 갖가지 허브 관련 제품들이 즐비한 허브농장엔 허브 향기와 국악의 향기가 어우러져 관객들을 취하게 했다. 공연장은 약 1천800평 규모의 허브 농장 안쪽에 자리잡은 야외 농장. 야외 무대를 별도로 마련, 허브 밭에 60여개의 좌석을 설치했지만 줄기차게 내린 빗방울 때문에 공연장 옆에 마련한 비닐하우스에서 관람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전남순 의왕국악협회장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웰빙을 소재로 창작국악을 펼칠 계획이었는데 마침 허브 농장과 연계가 돼 야외 공연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궂은 날씨 탓에 공연은 30여분간 지체됐고, 실내에서 공연을 열어야 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이후 야외무대 상단에 비닐을 치고 오후 4시쯤 연주를 감행했다. 일요일이면 2천여명의 관람객이 방문한다는 이곳 허브농장의 특성도 그렇지만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300여명이 공연장을 메웠다. 사회를 맡은 개그맨 최성욱씨는 간단한 게임을 통해 어수선한 분위기를 추스렸다. 그동안 연주자들은 미처 맞추지 못한 튜닝을 했다. 첫 무대는 권순희씨가 18현 가야금으로 풀어낸 ‘달하 노피곰’. 진중한 선율이 흐르자 거침 없던 빗줄기가 잦아졌다. 신비스런 화음을 자랑하는 18현 가야금의 소리에 하늘도 공연의 성공을 기원한 것일까. 차츰 관람객이 우산을 접고 무대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음곡은 젊은 실내국악단 뮤지꼬레( MUSICORE)의 연주가 펼쳐졌다. 젊은 연주자들의 모임 뮤지꼬레는 피리·태평소 연주자 나원일을 비롯해 김지민(해금·아쟁), 유연수(가야금), 이석호(소금·대금), 조정민(신디·멜로디), 이재화(타악), 이석종(타악) 등 8명이 참여했다. 이들의 첫 작품은 홍동기 작곡의 ‘고구려의 혼’. 웅장한 선율이 서두를 장식한데 이어 서정적인 느낌의 ‘하늘꽃’과 ‘넷’을 연주했다. 여기다 추계예술대 국악과 교수인 강호중씨가 국악가요를 곁들였다. 어머니를 그리는 ‘꽃분네야’와 광주민주항쟁을 다룬 ‘그대를 위해 부르는 노래’,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린 국악동요 ‘산도깨비’를 선사했다. 이어 아침의 상서로운 기운을 담은 연주곡 ‘동틀녘’과 잔잔한 가야금과 해금·대금이 조화를 이룬 ‘빛 바랜 사진’을 선보였다. 짓궂은 날씨탓에 다소 쌀쌀했지만 관람객들 대부분 자리를 지켰다. 주최측이 준비한 따뜻한 허브차와 허브 화분도 관람객에게 제공됐다. 야외공연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날씨다. 자연의 섭리에 인간의 무력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비록 비는 내렸지만 짙은 허브향과 창작국악의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특히 예술단체와 허브농장이 의기투합해 공연을 진행한 점은 또다른 공연문화의 가능성을 열어보였다. 의왕과 같이 전문 공연장이 없는 상황에서 지역공간의 활용은 공연장이 필요한 예술단체와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유치하고자 하는 공간 운영자가 상생할 수 있는 대안이다. 하덕호 허브 앤 조이 라벤더 팜 대표는 “웰빙이란 소재가 허브 농장과 상당한 연관성이 있기에 흔쾌히 공연제의를 수락했다”며 “기회가 되면 이 같은 공연을 지속적으로 유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야외공연이란 한계도 있었지만 주최측이 당초 준비한 행사 프로그램과 실제 연주한 곡이 달라 관람객들에게 혼돈을 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의 경우 창작국악에 대한 충분한 사전 정보를 제공, 국악의 저변을 넓히는 것도 필요하다. 또 공연중 주요 내빈들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하는 문화는 지양돼야 한다. 비록 야외공연이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지만 공연장을 찾은 관람객이 공연을 만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연주자를 배려하는 공연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이형복기자 bok@kgib.co.kr

전문가비평/공연에도 ‘웰빙바람’ 분다

-전지영 웰빙(well-being)이 사회의 큰 화두 중의 하나가 된 지금, 공연장 내에서도 웰빙 바람이 서서히 불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사회적인 제약이나 압박에 대한 변화의 노력이 동반되지 않는 상태에서 개인이나 집단의 참된 웰빙이 가능한 지 의문이긴 하지만, 아무튼 기존의 관습을 조금씩 탈피해보려는 노력들은 다양한 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의왕국악협회 주최로 허브를 소재로 한 웰빙 국악 공연이 백운호숫가의 허브농장에서 있었다. 때마침 비가 내려서 공연주최측이나 관람하는 입장에서도 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허브농장의 분위기와 축축한 봄비가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장을 감싸는 빗소리가 마치 공연전체의 배경음악이 되어주는 듯 해서 백운호수 주변의 풍경과 허브향기와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우선은 딱딱한 공연장을 벗어나서 자연을 벗 삼은 야외무대에서 공연이 이루어졌고, 출연자들의 복장도 늘 공연장에서 보던 한복이나 연주복을 탈피한 자연스러운 복장이어서, 권위나 격식을 따지지 않았던 것이 편안함을 주었다. 허브농장이라는 공간 역시 기존 연주회장보다 친근한 모습이어서, 덕분에 시민들이 한 발 더 다가간 효과적인 공연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경기문화재단이 이 공연에 지원금을 지원했던 것은 이 공연의 기획 자체가 웰빙을 테마로 한 것이었고, 허브농장과 연계해서 기존의 공연양식과는 차별성을 갖는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 공연을 관람하기 전에는 과연 음악공연에서 웰빙이 어떤 것일까 내내 궁금했다. 어찌 보면 음악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미 웰빙의 소재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음악공연은 웰빙콘서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적어도 국악과 웰빙의 관계가 새롭게 떠오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웰빙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경치 좋고 공기 좋은 호수가의 허브농장에서 공연이 이루어졌다는 것 외에는 프로그램이나 공연 자체의 완성도는 다소 평범한 편이었다.(물론 그것은 한정된 예산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모습이라고 판단된다) 의왕시 국악협회 주최의 공연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실내악단 공연에 해당했고, 공연 내용은 ‘달하 노피곰(18현가야금)’과 같은 독주곡, ‘하늘꽃’과 같은 실내악곡, ‘꽃분네야’와 같은 국악가요, ‘고구려의 혼’과 같은 요란한 곡까지 다양했다. 전반적으로는 주변 환경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잔잔한 곡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고구려의 혼’(홍동기 작곡)이나 ‘그대를 위해 부르는 노래’(이준호 작곡)와 같은 곡들은 허브농장이나 웰빙과는 좀 무관해 보이는 레퍼토리였다. ‘고구려의 혼’은 슬기둥 콘서트에서 늘 연주되던 곡이면서 화려한 조명과 음향에 어울리는 곡이고, ‘그대를 위해 부르는 노래’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곡으로 조금은 섬뜩한 노랫말을 가진 곡이기 때문에, 아무리 작품이 좋고 지향성과 내용성을 갖춘 곡이라 하더라도 공연장 분위기와 맞지 않는 것은 과감히 배제하는 용기가 필요할 듯 했다. 촉촉한 봄비가 운치 있게 내리는 날, 초록의 내음이 가득한 호수가의 산수화 속에서 펼쳐진 잔잔한 실내악 연주는 도심의 찌든 때와 복잡한 마음을 씻어주는 편안함을 주었지만, 여전히 웰빙에 대한 화두는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만일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야외무대로 나가서 편안한 실내악곡들을 연주하는 것이 웰빙이라고 한다면, 좀 더 화려한 공연장에서 좀 더 화려한 의상과 레퍼토리로 화려한 연주를 보여주는 것도 웰빙에 해당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강렬한 사운드와 현란한 조명에 힘입어 강한 대중성을 얻으려는 최근의 실내악단 경향과는 물론 다른 차원의 것이긴 하지만, 공연의 지향은 인공을 탈피해 자연 속으로 향하는 듯하면서도 공연내용은 대중적 감성과 기능화성이라고 하는 인공의 요소들을 조합한 것이 조금은 어색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기존 공연양식의 딱딱함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그리고 허브 향기 속에서 자연스러운 공연을 보여준 것이 신선했다. 다만 편안한 분위기에서 공연이 잘 진행됐으나 홍보가 좀 부족했던 느낌이다. 공연장소가 다소 협소했던 탓에 많은 이들이 관람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울러 웰빙에 대한 화두를 던져준 공연이었다는 점이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국악평론가

佛 ‘제롬벨 무용단’ / 29일 고양공연

비틀즈의 ‘컴 투게더’, 데이빗 보위의 ‘렛츠 댄스’, 라이오넬 리치의 ‘발레리나 걸’, 티나 터너의 ‘프라이빗 댄서’, 존 레논의 ‘이메진’, 조지마이클의 ‘아이 원츠 유어 섹스’, 셀린 디온의 ‘마이하트 윌 고 온’, 그리고 퀸의 ‘더 쇼우 머스트 고 온’ 까지…. 언뜻 보면 팝 콘서트 같은 프로그램은 실상 무용 공연에 삽입되는 음악들이다. 전설 같은 뮤지션과 그들의 히트곡을 바탕으로 채워지는 무대는 흥미를 끌기 충분하다. 프랑스 현대무용단 ‘제롬벨’의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가 29일 오후 5시 고양어울림극장을 찾는다. 세계 현대무용계의 총아로 평가받는 제롬벨은 인간 신체에 관한 사회 문학적 의미를 상호 결합시키는 감각적 안무가로 유명하다.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연극과 춤, 신체를 변형시키며 수 많은 문학적 기호와 약호들을 형상화 해 왔다. 또 자신이 세계적인 무용단에서 주역을 했음에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춤동작은 전혀 구사하지 않고 평범하기 그지 없는 동작들로 내면의 세계를 드러낸다 알려져 있다. 작품은 많은 사랑을 받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팝 음악으로 시작된다. 제롬벨 특유의 축약된 무대 장치, 그가 즐기던 음악이 한 곡 한 곡 나올 때마다 20여 명의 무용수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전반부는 춤의 진부함을 표현하며 디스코 및 창작, 약간은 어설픈 고전무용, 의식적인 군무 등이 행해진다. 이어 셀린 디온의 ‘마이 하트 윌 고 온’이 흐르면 로맨스적인 감성을 뽐낸다. 음악이 사용됐던 영화의 이미지를 비슷하게 차용하기도 하고 제각각 튀어 오르는 무용수, 기교 없이 평이한 무용수 등에서 춤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후반부는 형광 노랑 빛의 조명이 춤추며 객석 또한 화려하게 비춰진다. 순간 암전이 되고 이어 무용수들은 자신들의 귀에만 들리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등장한다. 파티는 끝나고 공허하지만 허허로운 일상을 드러낸다. 문의 1544-1555 /박노훈기자 nhpar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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