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부터 영화음악까지”…수원시립합창단 ‘가을 향기, 그리고 10월의 푸른 밤’

수원시립합창단은 오는 24일 저녁 7시30분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제188회 정기연주회 ‘가을 향기, 그리고 10월의 푸른 밤’을 개최한다. 무대는 아카펠라로 막을 올린다.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작은 유럽 국가 리히텐슈타인 출신의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 요제프 라인베르거의 ‘Abendlied(저녁의 노래)’는 관객을 낭만 속으로 안내한다. 이어 경쾌한 음악으로 유명한 영국의 유명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윌 토드의 ‘Jazz Missa Brevis’ 작품은 관객에게 재즈의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인다. 오늘날 미국 재즈의 교본으로 통하는 곡이자 재즈 역사상 가장 많이 연주된 곡 중 하나인 ‘Autumn Leaves’, 오랜 세월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Fly Me to the Moon’와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송 ‘Let it be’는 관객에게 익숙함이 주는 감동을 선물할 예정이다. 이어지는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한국 가곡은 관객을 고향의 추억으로 안내한다. ‘섬집아기’ 등을 작곡한 ‘한국의 슈베르트’ 작곡가 이홍렬의 가곡 ‘고향 그리워’와 ‘고향의 봄’ 등 한국인의 애수가 서린 수많은 곡을 작곡한 작곡가 홍난파의 ‘금강에 살으리랏다’ 등 다채로운 매력의 가곡을 만나볼 수 있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영화·뮤지컬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주제곡들은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다. 현대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의 작품 중 영화 ‘미션’에 나오는 수록곡 ‘On Earth as it is in Heaven’과 뮤지컬 ‘이순신’에서 거북선이 만들어진 후 이순신 장군이 배에 탑승하는 장면에서 부르는 ‘나를 태워라’,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과 동지들이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을 준비하며 굳은 다짐을 담아 부르는 ‘그 날을 기약하며’ 등은 가슴에 전율을 선사한다. 이번 연주회는 정확한 지휘와 화려하고 풍부한 감성의 지휘자로 평을 받는 이영만 여수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 국내 유일의 합창 전문 연주단체 라퓨즈 플레이어즈 그룹과 박일룡 밴드가 함께한다. 공연은 수원시립합창단 누리집 등을 통해 예매할 수 있다.

잊힌 기억 모아 과거를 담은 초상… 조덕현 개인전 ‘므네모시네’

작은 화이트큐브 공간에 정갈하고 근엄한 표정의 인물들의 흑백사진이 내걸려 있다. 정갈하게 한복을 입은 여인과 정장을 입은 말끔한 신사. 흰 천이 여인의 치마와 남성의 정장 바지 아래로 계단처럼 흘러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가만, 자세히 보니 흑백 인물들은 사진이 아니다. 오래된 흑백사진을 캔버스에 섬세하게 옮겨 삶의 시간과 의미를 묻는 회화 작업과, 그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장르 확장을 통해 흘러간 시간과 기억의 의미를 묻는 조덕현 작가(68)의 회화 작품이다. 엄미술관에서 지난 10일 개막한 조덕현의 개인전 ‘므네모시네(MNEMOSYNE)’는 오랫동안 ‘기억의 파편’을 새롭게 구성하고 복원해온 그의 작업세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역사라는 거대 서사와 담론에 가려진 다양한 개인의 주관적인 삶이 조명된다. 주인공은 고미술 수장가이자 일제강점기 개성의 신진 엘리트였던 욱천 진호섭(秦豪燮·1905~1951)과 그의 주변 인물들이다. 흑백사진을 그대로 내건 듯한 작품들은 과거 사진에 대한 편견을 깬다. 사진 속 인물들의 의복은 기품 있고 세련됐다. 주변 배경은 근현대만의 고풍스러움이 살아 있다. 때론 정장을 입거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인물들은 부부 사진, 독사진, 결혼식 사진, 가족 사진 등을 통해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마치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듯하다. 흑백의 그림과 파도 혹은 햇빛에 물이 반짝이는 영상이 교차되는 설치 작품 1에선 물이 가진 원초성이 관람자가 가진 기억을 자극해 상상의 세계를 펼치게 한다. 조덕현 작가는 사진 드로잉과 발굴 작업, 사진 등 다양한 작업 방식을 선보여왔다. 이 다양한 작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기억’이다. 오래된 흑백사진의 이미지를 캔버스 위에 연필과 목탄으로 그리는 사진 드로잉은 기록된 역사의 표층에 가려져 있는 과거의 기억을 복원한다. 단순히 사진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를 현재적인 사건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번 작업에서 작가가 욱천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시 개막에 앞서 기자와 만난 작가는 “사진에 나타난 인물과 배경 하나하나의 예술성과 그 인물들이 갖고 있는 보편성”을 꼽았다. 사진 원본이 모두 다 감동으로 작가에게 다가왔다. 하나하나 인화된 사진이 갖고 있는 시공간의 깊이, 그걸 번역하기 위해서 그는 노력했다. 그의 노력은 7점의 캔버스 회화와 거울과 모니터로 구성된 영상 설치 작업, 골동품 오브제를 활용한 가변 설치, 추상조각가 엄태정의 시구(時句)가 담긴 인스톨레이션 등 총 10점의 신작으로 구성됐다. 작품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저마다 살아나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조각가 엄태정의 시를 텍스트로 선보여 미술관 자체가 인물의 역사가 된다. “재료가 너무 좋아서 그냥 충실하게 그려냈다”는 조 작가는 “대신 깊이 있게 사유를 진작시켜보려 했다”고 말했다. 화이트큐브의 공간에서 어떻게 개인의 역사 하나하나를 그림이 풍부한 시공간을 담보해 관람자와 호흡할지 공을 들였다. 작품마다 품은 시공간의 이야기가 다른 만큼 작품마다 조명을 달리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벽면에 작은 골동품을 오브제로 설치해 기억에 관한 테마를 강조했다. 관객의 몰입을 위해 작가가 숨겨놓은 장치를 찾아보는 것도 전시를 즐기는 또 다른 묘미다. 전시는 특정한 주제의식이나 서사가 없다. 관람객이 자유롭게 몰입하고 느끼고 해석하게 의도됐다. 전시 제목을 ‘므네모시네’로 택한 것도 이러한 이유. 므네모시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기억의 여신이나 잘 알려지지 않아 모호하면서도 기억이란 단어를 어렴풋이 환기해준다. “관람객이 보고 해석하는 게 작품의 최종 완성품”이라는 작가는 “다만 기대감이 있다면 40억년을 지나온 인류의 진화처럼 누군가는 소급해서 올라가 그런 까마득한 기억까지 그려볼 수 있는 전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물속에 아메바 형태이던 세포들이 진화해서 바다에서 육지로, 또 진화해 오늘날 인류의 형태로 올라가는 상상을 (전시를 통해) 할 수 있는…. 작품 속 사람들이 누군지 알 순 없지만 ‘요즘 얘기 같다, 옛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았구나, 오늘에 과거가 숨어 있다’ 이런 느낌이요. 그래서 위화감을 주지 않고 미술관에 처음 오시는 분도 이해하기 쉽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이번 전시는 엄미술관에게도 특별하다. 전시에서 드러내 밝히지 않으나 욱천 진호섭은 진희숙 엄미술관장의 부친이다. 누군가의 역사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역사를 떠올려보고, 미술관과 전시 곳곳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재미가 있다. 진 관장은 “기억을 테마로 하는 조덕현 작가의 전시는 과거에 함몰되어 의미를 찾지 못하는 다양한 기억들을 현재로 가져와 새롭게 하고 나아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 전했다. 이어 “거시적으론 오늘날 기술이 대변할 수 없는 ‘인간성’ 및 ‘주체성’의 회복에 관한 이야기이며, 미시적으로는 우리의 전통과 근대성에 경의를 표하는 하나의 오마주 작업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론 과거의 인물과 기억, 그림 속에 숨겨진 진실을 탐색해보는 자리도 마련된다. 가천대 명예총장이자 초상화 연구가인 이성낙 박사와 함께하는 ‘아이코노그래피(Iconography), 시대의 얼굴을 진단하다’는 전시를 더욱 풍부하고 깊이 있게 할 예정이다. 전시는 내년 1월 31일까지.

이순금 서예 명인 19일까지 ‘서예의 삶’

용인문화예술원에서 오는 19일까지 담산 이순금 서예 명인의 개인전 ‘서예의 삶’이 열린다. 이순금 명인의 50여점 작품들을 통해 그의 예술적 여정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며, 서예의 매력을 알 수 있는 전시다. 전시에선 이순금 명인이 애용하던 붓, 벼루, 인장 등 개인소장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어 서예의 의미를 보다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이순금 명인은 ‘사랑’, ‘혈구지도’, ‘금옥만당’ 등 세 가지 키워드로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우산이 돼주는 마음을 의미한다. 이순금 명인은 누군가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표현했다. ‘혈구지도’는 타인을 생각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도리를 강조하는 고사성로, 이순금 명인은 이를 통해 인간의 도리와 상호 존중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했다. 또 ‘금옥만당’은 지혜로운 신하가 많은 집안을 비유하며, 나랏일을 하는 이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한편, 이순금 명인은 1967년부터 서예가의 길을 걷기 시작해 1997년엔 한국서예청년작가전에서 선발돼 서예 작품을 많은 이들에게 선보일 기회를 가졌다. 특히 2010~2016년, 2022년엔 대한민국서예대전의 초대작가로 심사를 맡으며 서예계의 발전과 활성화에 기여해왔다. 앞서 그는 2011년 한국서예협회 용인시지부를 창립하고 현재까지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매년 용인 유적지와 유명 관광지에서 캘리그라피전, 태교신기대전, 신생아이름, 사지소학, 명심보감, 논어, 중용, 도덕경 등의 주제로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색소폰으로 다시 태어난 트로트 ‘세대 공감’…‘전용섭 Saxophone Concert’

흥겨운 트로트 메들리가 감미로운 색소폰 연주로 다시 태어난다. 한국 색소폰교육협회는 오는 18일 오후 7시 수원 영통구 진아트센터에서 ‘전용섭 Saxophone Concert’를 연다. 공연은 1930년대부터 2020년대의 가요 중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곡들을 선보인다. ‘목포의 눈물’, ‘찔레꽃’, ‘동백 아가씨’, ‘낭만에 대하여’ 등 20여곡의 트로트를 색소폰으로 연주해 옛 추억을 되새기며 관객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한국 색소폰 교육협회장인 전용섭 색소포니스트는 월간 색소폰 골든 페스타 경연대회, 제네스트 마스터 색소폰 콘테스트, 전국 시니어 색소폰 경연대회, 제천 전국 아마추어 색소폰 대회 등의 심사위원장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색소폰 연주의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색소폰 이야기’,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색소폰 레슨’, ‘알기 쉬운 색소폰 연주기법’, ‘테크닉도 배우는 색소폰 합주곡’, ‘색소폰 기초 이론학’, ‘19세기 낭만 음악과 협주곡’ 등의 저서를 펴내 색소폰 관련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김창호 음악 감독은 “클래식을 전공한 전용섭 색소포니트가 대중적인 트로트 곡을 감미롭게 연주해 청중과 소통할 예정”이라며 “색소폰으로도 다양한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대중음악 발전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베르디 레퀴엠’ 가을밤 적신다... 경기도음악협회, 난파 추모음악회

근대 음악의 선구자인 ‘홍난파’의 음악성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한 무대가 열린다. 특히 올해는 홍난파가 한국인 최초로 바이올린 독주회를 연 지 100주년을 맞은 것을 기념해 진혼곡 중에서도 가장 웅장하다고 평가받는 ‘베르디 레퀴엠’이 가을 저녁을 수놓는다. 오는 19일 오후 5시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는 제56회 난파 추모음악회 ‘베르디 레퀴엠’이 무대에 오른다. 지난 55년간 이어진 난파음악제는 홍난파의 추모일인 8월30일을 기준으로 매년 하반기에 개최돼왔다. 경기도음악협회 가 주최하고 경기예총·㈔난파기념사업회가 후원하는 이번 음악회에서는 오현규 경기도음악협회장이 지휘봉을 잡으며 4명의 걸출한 성악가와 100명의 연합합창단이 압도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공연에서는 소프라노 박현주,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테너 이범주, 베이스 전승현 등 솔리스트와 함께 광명시립합창단, 동두천시립합창단, 기전콘서트콰이어의 합창이 관객을 만난다. 또 경기도음악협회원들로 구성된 기전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출연한다. 베르디 레퀴엠은 그가 작곡한 수많은 오페라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곡이다. 베르디는 자신이 존경했던 위인인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선구자 ‘조아치노 로시니’, 이탈리아 대문호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이 곡을 작곡했다. 종교음악 형식을 탈피해 드라마틱한 오페라를 듣는 듯한 느낌을 주며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합창의 강렬한 울림이 인상적인 곡이다. 특히 ‘인간의 숙명’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경기도음악협회는 홍난파의 음악적 소신을 상기시키고, 난파 음악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레퀴엠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베르디 레퀴엠을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이번 무대에선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상징하는 베르디의 레퀴엠 전곡을 선보인다.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진노의 날’, ‘봉헌송’, ‘거룩하시도다’, ‘하나님의 어린 양’, ‘영원한 빛’, ‘저를 구원하소서’ 등 총 7곡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오현규 경기도음악협회장은 “홍난파 선생의 가곡은 지금도 많은 이들이 애창하는 최고의 작품들”이라며 “그의 뜻을 기리고자 3개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등이 모여 공연을 여는 만큼 웅장하고 장엄한 공연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공간 아름, 김호경 ‘Observer: 달의 시선’ 11일까지

수원 예술공간 아름(ArtSpaceARUM), 실험공간 UZ에서 김호경의 ‘Observer: 달의 시선’ 전시를 11일까지 진행한다. 이번 전시는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주최한 ‘2024 경기예술 생애 첫 지원 공모’에 선정돼 선보이는 김호경 작가의 첫 개인전이다. 작가 특유의 관조적인 태도로 동시대를 관찰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예술공간 아름의 지하층 ‘실험공간 UZ’에서는 작가가 세상을 관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를 풀어낸다. 작업실을 배경으로 한 그림에는 작가가 지닌 고민과 실험,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느낀 반성적인 감상이 담겨 있다. ‘예술공간 아름’에서는 작가가 외부의 세상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빠르게 지나가는 순간 속에서 어쩌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순간들을 기록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작품을 관통하는 작가의 감정은 ‘불안’이다. 김호경은 현대사회가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과열됐다고 느낀다.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과열된 사회 속에서 일종의 피난처를 찾으려는 시도다. 그리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치열하고 비교하는 상황 속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모습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김호경의 이번 첫 개인전은 작업에 대한 고민과 미래의 불안에서 벗어나 종속적이지 않고 독립적인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걸어나가려는 의지를 확신하는 자리인지도 모른다. 한편 김호경 작가는 대구에서 다음 달 7일부터 14일까지 대구엑스코에서 열리는 2024청년미술프로젝트 ‘Mobility-Smart Young Art’에서 실험공간 UZ에서 전시를 가진 최성진과 함께 참여한다.

현대인의 불안·소외 성찰…한강뮤지엄 ‘폭신폭신’

외면하던 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면 비로소 편안해질 때가 있다. 현대인의 상실감, 불안, 고독 등을 진지하게 성찰해 소외된 개인의 회복력을 높이는 전시가 마련됐다. 남양주시의 한강뮤지엄이 오는 27일까지 선보이는 ‘폭신폭신-A Moment of Relief’는 현대인의 이야기를 풀어낸 기획전이다. 전시에선 지석철, 최성임, 김기라 등 현대미술 작가 5명의 회화, 영상, 설치 등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 고뇌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인간’이다. 한국의 1세대 극사실주의 화가인 지석철은 ‘인간 부재’를 그려낸 7점의 작품을 출품해 전시의 포문을 열었다. 그의 그림은 사진으로 보일 만큼 묘사력이 뛰어나며, 대부분의 작품에 작은 의자가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메콩강 등 거대한 자연이나 뉴욕의 마천루 등 인간이 만들어 낸 높은 구조물을 담아내면서 이와는 대조되는 작은 의자를 한편에 그려 넣는다. 아무도 앉지 않은 의자는 ‘부재’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지 작가는 부재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부재로 가득 채워진 세상을 표현하며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해 사유토록 했다. 올해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을 수상한 김기라 작가는 ‘인간 소외’ 문제를 다뤘다. 김 작가는 이념, 종교, 계층, 젠더 등 무겁지만 개인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갈등을 비디오와 설치 작품에 담아냈다. 특히 양모카펫으로 제작된 ‘이념의 무게, 한낮의 어둠, 무지개를 넘어-자살지수’ 작품은 실제 자살지수를 벤 다이어그램 형태로 표현했다. 작가는 자살, 갈등의 문제를 관람객이 살갗으로 접촉하면서 고민하길 바라는 의도를 담았다. 전시 후반부에 들어서면 김선현 작가의 ‘Anima’ 시리즈가 등장, ‘생명의 순환’을 이야기하며 분위기를 전환한다. 김선현 작가는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버려지는 달걀 껍데기로 작품을 제작한다. 달걀 껍데기는 깨지기 쉽고 약하지만 집적되면 단단해지고 빛나며 에너지를 발한다. 작가는 이 같은 달걀 껍데기의 속성을 활용해 생명 탄생의 완벽함과 숭고함, 가치를 일깨운다. ‘Anima’ 시리즈는 달걀 껍데기를 붙여 원과 원을 이루는 파동을 반복적으로 만든 결과물인데, 검은색은 생명이 시작하는 자궁 속 어두운 공간, 죽음·소멸을 표상하고 흰색은 빛과 부활, 그 안에서 발산되는 에너지를 상기시켰다. 이어 초현실적 인물화를 그리는 서기환 작가는 가족생활의 애환을 담은 ‘사람풍경’ 시리즈를 통해 꿈과 희망,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 최성임 작가는 양파를 담는 PE망에 플라스틱 공을 넣어 길게 매달아 놓은 설치 작품 ‘구멍들’을 통해 이기적이지만 비난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드러냈다. 김동우 한강뮤지엄 부관장은 “현대인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인지하게 되면 문제에 대한 다양한 회복의 방법도 고민하고 경험할 수 있다”며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나설 때 비로소 침대에 누운 듯 폭신폭신한 느낌을 받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 기쁨과 눈물·고통과 빛을 연주하다

살아있는 피아노의 전설, 포르투갈 출신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가 지난달 20일 서울을 시작으로 인천, 대전, 대구 등 국내 투어를 진행했다. 21일 아트센터인천에서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0번, 13번과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F장조, L.75’, ‘피아노를 위하여, L.95’를 연주했다. 피아노 앞에서 70여년, 여전히 배움을 말하다 “저는 스페셜리스트라기보다는 그 음악들을 사랑하고 배우기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1944년생, 올해로 80세가 된 피아니스트가 전국 투어에 앞서 지난달 18일 서울 강남구 클래식 음반 전문점 풍월당에서 진행된 팬들과의 대담에서 한 말이다.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로 불리고 슈베르트, 쇼팽, 드뷔시 등 서정성이 짙은 음악을 자주 연주하는 것에 대해 “조금 더 끌리고 좋아하는 작곡가의 음악을 여전히 공부하고 있을 뿐”이라고 답했다. 마리아 조앙 피레스는 포르투갈 리스본 출생으로 5세에 독주회를 열고 7세에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정도로 신동이었다. 이번 대담을 통해 첫 독주회부터 모차르트를 연주했노라 회상했다. 물리적인 세월만 따져 봐도 7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모차르트를, 피아노를 ‘공부’한 그녀는 현존하는 최고의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임이 분명하다. 이번 내한공연에서 피레스는 모차르트 소나타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조금씩 달리했다. 9월 21일 아트센터인천에서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0번과 13번,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L.75’, ‘피아노를 위하여, L.95’를 연주했고 전날 서울 예술의전당에선 드뷔시 대신 쇼팽의 ‘녹턴’을 선택했다. 명쾌하고 건강한 터치, 맑고 투명한 피레스의 음색은 모차르트 음악에서 절정의 빛을 낸다. 20대에 녹음한 모차르트 소나타 음반은 발매 당시 이미 ‘완성형’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런 그녀는 반세기 동안 자유로움과 깊이, 절제와 유연함을 더해 자신만의 모차르트를 숙성시켜 왔다. 인격이 묻어 나는 음색, 삶에 대한 겸손함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무채색의 단순한 옷과 낮은 신발을 신고 무대에 등장한 피레스는 첫 곡으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0번, C장조’를 연주했다. 피레스의 연주는 따뜻하고 섬세하지만 주저함이 없었다. 대체로 양손 한 성부씩 단선율로 구성된 작품의 각 음과 프레이즈마다 피레스는 서사를 담아내고 있었다. 앞선 대담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이 “기쁨과 눈물, 고통과 빛이 한 프레이즈에 있다”고 표현한 바 있는데 피레스는 자신의 연주를 통해 그것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었다. 그런 피레스조차 모차르트보다는 드뷔시를 연주할 때 한결 편안해 보였다. 대부분의 피아니스트가 공통적으로 “모차르트가 가장 어렵다”고 말하는데 70여년을 모차르트에 천착해 온 피레스도 예외는 아닌 것일까. 신동이었던 그녀가 연주자를 넘어 피아노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동경과 지지의 대상이 된 데는 1999년 그녀가 평생 모은 재산을 투자해 고국에 설립한 ‘벨가이스 예술센터’와 2012년부터 벨기에에서 시작한 ‘파르티투라 프로젝트’의 의미와 역할 때문이다. 파르티투라 프로젝트는 크게 불우한 환경의 청소년을 위한 합창단 운영과 경쟁 중심에 대안을 제시하는 워크숍을 들 수 있다. 음악 교육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교육에 대한 피레스의 철학을 엿볼 수 있으며 물질적인 표현보다 ‘영적인’ 것에 집중하는 그녀의 삶과도 직결된다. 피레스는 이번 내한을 통해 9월 20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인천, 대전, 대구 등 4개 도시에서 총 5회 공연을 가졌다. 잠시 대만에서 연주를 한 후 10월 26일 성남아트센터에서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나그네’를 협연한다.

이 가을, 가족과 함께 ‘어떤’ 특별한 공연 어때요?

어디론가 떠나기 좋은 가을날, 가족과 함께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공연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전통무예 고수들의 생동감 넘치는 마상 무예 퍼포먼스부터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연극까지 다양하다. ■ 도심에서 만끽하는 마상무예 ‘선기대(善騎隊), 화성을 달리다’ 정조가 창설한 친위군영인 ‘장용영’의 무예를 익혀온 전통무예 고수들이 화려한 마상 퍼포먼스를 펼친다. 수원시립공연단은 제24회 정기공연으로 마상무예 ‘선기대(善騎隊), 화성을 달리다’를 오는 19일 오후 3시 화성행궁 우화관 앞마당에서 선보인다. 마상무예 공연은 매년 창룡문 앞 잔디밭에서 시연됐지만 올해는 화성행궁 훼손 119년, 복원사업 착수 35년 만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화성행궁 우화관 앞마당에서 선보여 의미를 더한다. ‘선기대(善騎隊)’는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창설한 친위군영인 ‘장용영’의 기병부대를 뜻한다. 이번 공연은 정조가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지상무예 18기와 마상무예 6기를 온전하게 선보인다. 공연은 수원시립공연단과 무예검무를 선보이는 무예공연예술단 ‘지무단’이 협력해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예고했다. 또 전투마와 함께하는 다양한 마상무예를 직접 감상할 수 있다. 기존의 무예24기시범 상설공연과 차별화된 마상기창, 마상편곤, 마상쌍검, 마상월도의 격파 및 베기 훈련 등 역동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 편지에서 엿보는 독립운동과 사랑…‘우정만리’ 일제강점기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가문의 사랑과 결혼, 독립운동의 이야기를 ‘편지’라는 오브제를 풀어낸 연극. 1999년 부천에서 극단 열무로 창단한 이래 올해로 창단 25주년을 맞이한 극단 얘기씨어터컴퍼니의 창작극 ‘우정만리’가 오는 18일부터 27일까지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2024-2025 레파토리 시즌 공연으로 막을 올린다. ‘우정만리’는 격동의 근현대사 속 대한민국 100년을 헤쳐나간 우편집배원 3대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번 공연은 총 3부작 중 1부 이야기를 다룬다. 초기의 우편 배달부인 벙거지꾼 ‘김계동’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대를 이어 체신국 관리자가 된 계동의 아들 수혁과 우편 집배원이 된 계동의 손녀 혜주의 시선을 통해 시공간을 넘나들며 100여 년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낼 예정이다. 1876년 일본은 강화도조약을 근거로 부산, 인천, 원산 등의 항구를 개방하면서 개항지에 일본인 거류지를 만들었다. 1894년에는 우편국이 29개로 늘어났다. 한국을 강탈하기 위한 전초 작업으로 정보 전달 수단인 통신시설부터 장악한 것이다. 전화와 우편은 일본의 조선침략의 도구로 사용됐지만 연극은 침략의 도구를 독립운동의 매개로 사용했다는 상상을 통해 탄생됐다. 공연연출을 맡은 김예기 얘기씨어터컴퍼니 대표는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든 아니었든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묵묵히 영위한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를 편지라는 매개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지역 연극인으로 또 지역에서 창단해 25년 연극한 극단이 국립극장에서 공동기획으로 연출을 하고 작품을 올리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밝혔다. ■ 감동과 웃음 담은 가족 이야기...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 용인문화재단은 2006년 초연 이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극단 골목길의 스테디셀러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를 11월 13일과 14일 양일간 용인시평생학습관 큰어울마당 무대에 올린다. ‘경숙이, 경숙아버지’는 한국전쟁 전후인 1950년대를 배경으로 모질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아버지와 어머니, 그들을 바라보는 딸 경숙이의 이야기를 그렸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사랑하면서 대립하고, 이해하면서 갈등하는 애증의 감정을 극으로 표현했다. 공연을 이어오며 관객과 평단의 큰 호응을 얻어 2006년 초연 당시 동아연극상(작품상, 희곡상, 여자연기상, 신인여자연기상), 올해의 예술상, 대산문학상(희곡상) 등 주요 연극상을 수상했고 2009년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돼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고수희, 서동갑, 안소영, 이호열 등 극단 골목길 출신 배우가 총 출연한다.

문화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