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도시 경쟁력 순위 1, 2위를 다투는 뉴욕은 관광 수입만 해도 엄청나다. 뉴욕관광청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뉴욕을 방문한 관광객 수는 6천430만명이고 경제효과는 무려 114조원(790억달러)에 달한다. 뉴욕이 처음부터 세계적인 도시였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초 오일쇼크로 경기는 내리막길이었고 재정은 파산 직전이었다. 실업자가 30만명으로 급증하면서 도시는 빈곤과 범죄로 얼룩졌다. 파업은 계속됐고 그 사이 중산층이 줄줄이 도시를 빠져나가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때 뉴욕의 도시 리브랜딩이 시작된다. 1975년 밀턴 글레이저가 식당 냅킨에 초안을 디자인한, ‘I♥NY’ 슬로건이 만들어지면서 뉴욕시민들은 점차 도시에 대한 자부심과 공동체 소속감을 느꼈다. 외부 투자와 관광객이 늘면서 오늘날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좋은 도시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도시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이정표 역할을 한다. ‘아이 러브 뉴욕’처럼 함께 만들고 싶은 도시의 모습, 도시 명칭만 들어도 그 도시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성공한 도시 브랜드다. 인천 서구에도 이런 잠재력을 지닌 브랜드가 있다. 2011년부터 주민과 행정이 소통해 뭉근하게 만들어 오던 ‘정서진’이 그렇다. 시작은 주민의 요구였다. 원도심과 신도시의 균형발전을 꾀하면서도 새로운 이미지의 서구 브랜드를 갈망한 주민의 요청에 행정은 그 답을 찾아갔다. 해돋이 하면 정동진이 연상되는 것처럼 해넘이와 낙조 하면 자연스레 서구를 떠올릴 수 있도록 정서진을 통해 도시의 대표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2011년 처음으로 ‘정서진 해넘이 축제’를 열고 상표권 등록까지 마쳤다. 정서진 일대에 아라뱃길과 서해를 조망하는 ‘정서진 광장’, ‘석양 전망대’, ‘정서진 노을종’을 조성해 지역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2014년에는 서구의 대표 재래시장인 가정 중앙시장을 ‘정서진 중앙시장’으로 리브랜딩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부흥에 성공했다. 지역주민들의 자부심도 굉장하다. 서구와 영종을 잇는 제3연륙교의 명칭을 정서진대교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며 인천 서구 명칭 공모에서 높은 선호도를 보인 것에서 짐작이 가능하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정서진’은 인천서구를 대표할 자격이 충분하다. 오랫동안 인천의 변방이었던 곳, 불편한 교통에 기피 시설만 가득했던 곳, 가난한 동네라는 인식이 만연했던 곳이다. 그러다 인천국제공항 개항과 더불어 깨어나기 시작했다. 하늘길이 열렸고 북항과 아라뱃길을 통해 바닷길이 열렸다. 인천 2호선, 7호선이 연결되면서 육로의 관문이 열렸다. 청라국제도시, 루원신도시, 검단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인구 64만의 거대 도시로 성장했다. 일과 삶의 균형을 꾀하는 레저도시로, 지속가능한 생태 미래도시로 가꿔 왔다. 이처럼 정서진은 서로 다른 문물과 문화를 잇는 ‘관문’으로 서구의 지리적 철학과 ‘노을’이 지니는 쉼과 여가의 의미를 잘 드러내는 브랜드로 자리를 잡아 왔다. 결국 해법은 주민과의 소통에서 찾아야 한다. 최근 인천 서구 명칭 변경을 둘러싸고 행정과 주민 간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걱정스럽다. 도시의 명칭은 행정의 독선적 결정이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주민과 행정이 함께 만들어 오던 대표 명칭이자 브랜드를 애써 지우려 하는 행위는 주민에 대한 무시이자 도시 브랜드에 대한 몰이해로 보여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욱이 기간을 정해 놓고 무리하게 추진하는 방식으로는 주민의 지지와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주민의 참여와 노력으로 가꿔 온 ‘정서진’은 이제 도시 경쟁력을 키우는 서구의 대표 브랜드가 됐다. 주소에 얽매이는 좁은 시각을 넘어 서구 전체에 대한 미래 발전의 차원에서 ‘정서진’을 값어치 있게 더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발견이 필요할 때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난히 길고 눈도 많이 내린 겨울이 이제야 지나가나 했던 3월, 대한민국을 화마가 집어삼켰다. 화마가 토해내는 불길이 전국으로 퍼져 우리의 일상과 생계를 무너뜨려 버렸다. 특히 이번 화재의 원인이 사람의 안일한 생각과 부주의한 행동이라는 사실이 더욱 우리를 아프고 안타깝게 만든다. 사람에서 시작한 불길이 자연으로 넘어가 다시 사람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 대재앙이 돼 돌아온 것이다. 예부터 사람이 살아가며 반드시 주의하고 피해야 하는 세 가지 재앙을 ‘삼재(三災)’라 불렀다. 민간에서는 인생의 9년 주기마다 이 삼재가 찾아온다고 해 지금도 매년 초가 되면 자신의 나이에 삼재가 들었는지를 확인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풍습에서 가장 조심하던 것 중의 하나다. 삼재는 물에 의한 수재(水災), 바람에 의한 풍재(風災), 불에 의한 화재(火災)로 이 중 단 한 가지라도 겪지 않도록 매사에 주의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유례없는 괴물 산불은 단순한 화재의 불을 넘어 삼재 그 자체가 돼 버렸다. 비가 오지 않는 수재로 곳곳에 불길이 번졌고 태풍과 같은 바람이 부는 풍재로 불길이 가라앉지 않았으며 불길이 화마가 돼 모든 것을 집어삼킨 화재를 겪었다. 불교에서는 삼재와 더불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함께하는 속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인재(人災)를 더욱 주의시키는데 이번 화마의 삼재는 그 원인이 사람에게 있어 삼재의 모든 것과 인재까지 더해져 차마 우리의 힘으로 버틸 수 없는 대재앙이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일어서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이 하루를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의 손에서 시작한 화마와 삼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보조 지눌 스님의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딛고 일어나라’는 가르침과 같이 그 터전에서 넘어진 우리와 이웃과 인연들의 손을 잡아 그곳에서 일으켜줘야 한다. 비록 사람에 의해 일어난 화마와 삼재이지만 지금은 그것을 탓하고 원망만 하기에는 너무 힘든 순간이다. 오히려 우리 곳곳을 살펴보고 그분들의 손을 잡아주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 불교에서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것은 깨달음이지만 삶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화합’이다. 화합은 단순히 함께하는 의미를 넘어 화목하게 함께하는 것이다. 다행히 피해가 없던 우리의 안심에 감사하고, 이제 그것을 도움을 드려야 하는 분들과 오늘의 인연에 전해줘야 한다. 화목하다는 것은 서로에게 정다운 것을 말한다. 나만이 아닌 우리로 있을 때 화목과 화합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으로 인해 힘들어진 이 봄, 다시 우리의 손으로 봄을 불러와야 한다. 우리의 봄이 모두에게 따스함을 줄 수 있도록 오늘 하루 가족과 이웃과 인연에 우리의 손길을 전해주자.
도민의 배신감이 적지 않을 일이다. 임명된 지 얼마 됐다고 수당 편취인가. 철저한 조사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 확인되면 가장 강한 징계로 다뤄야 한다. 당사자들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도의회 정책지원관의 업무는 입법 보좌다. 일반 임기제 6급, 최대 연봉 6천여만원이다. 2023년 채용 때 경쟁률이 4.4 대 1이었다. 시의원 출신, 공공기관 1급 경력자, 60대 이상 합격자도 많았다. 옥상옥의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출범의 대의가 더 컸다. ‘지방자치 완성’이라고 여겼다. 거기서 수당 부당 수령 의혹이 일고 있다. 지난해 11월 강원특별자치도의회에서 시작됐다. 정책지원관이 24명이다. 이들이 낸 초과 근무 시간이 5천17시간이었다. 상위 10명이 전체의 75%를 차지했다. 업무 편중이 심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부 도의원들이 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자료 곳곳에서 부당 수당 신청 의혹이 불거졌다. 출장 복명서 등에서도 불법이 줄줄이 확인됐다. 그때만 해도 강원도의 일이었다. 이런 비위가 최근 경기도의회에서도 불거졌다. 일부 정책 지원관들이 새벽 시간대 연장 근무를 신청했다. 그런데 별다른 업무가 없어 보인다. 유연 근무를 새벽 이른 시간대에 신청한 경우도 있다. 이른 퇴근을 위한 편법이라는 정황이 엿보인다. 장시간 근무지를 이탈한 사례까지 지목됐다. 모든 의혹은 결국 부당 수당 문제로 옮아갔다. 일을 하지 않고 받은 수당 또는 적정 업무와 무관하게 받은 수당이다. 도의회 사무처가 일부 확인했다. 아직 비위 전모가 밝혀진 것은 아니다. 전수조사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도의회 폐쇄회로(CC)TV까지 확인하고 있다고 한다. 최종 몇 명이 연루됐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사무처는 철저한 조사와 엄한 조처를 말한다. 당사자에 대한 소명 절차를 거친 후 징계에 나서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재발 방지 대책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소속 부서와 소관 업무 등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문제는 이를 접하는 도민의 분노다. 정책지원관에게 드는 인건비 등이 연간 50억원을 넘는다. 그만큼의 전문식견을 기대할 수 있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출범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살핀 대의 때문이었다. ‘지방자치 완성’이라는 명분에 모두가 동의한 것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터진 게 수당 편취다. 도민이 용서하겠는가. 시민단체가 침묵하겠는가. 과거 한 지자체에서 ‘333억원 수당 편취 사건’이 있었다. 시민단체의 감사청구·형사고발이 2년간 이어졌다. 철저한 조사와 결과 공표가 있어야 할 것이다. 비위 정책지원관 해임은 너무도 당연하다.
최근 경기도 한 초등학교에서 ‘교장선생님 갑질’ 신고가 있었다. 현장체험학습 계획이 발단이었다. 1학년 담임교사들이 걸어서 가는 근거리 생태체험계획을 짰다. 5개 학급 110명 학생이 전세버스를 이용할 경우 안전사고를 걱정해서다. 그러나 교장은 버스를 타고 타 지역으로 이동하는 원거리 체험학습을 요구했다. 담임교사들을 교장실로 부르거나 여러 차례 메신저를 보내 계획 수정을 요구했다. 이런 갈등이 갑질 신고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교육 현장의 체험학습 갈등이 보통 아닌 듯하다. 학생이 버스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난 체험학습 인솔 교사에 대한 유죄 판결의 파장이다.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일선 교사들은 이제 가급적 체험학습을 피하려 한다. 이에 인천시교육청이 ‘2025학년도 현장체험학습 지원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일선 교사들은 별 내용이 없다는 반응이라 한다. 인천시교육청은 학생 안전사고 시 교사가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대한 대응 매뉴얼이라 했다. 안전계획 수립, 안전사고가 일어났을 경우, 안전사고에 대한 보상 절차 등 단계별로 나눴다. 현장체험학습 운영 안전관리 체크리스트도 배부했다. 교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법적 보호조치도 담았다. 그러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학교안전공제회, 교원보호공제회와 함께 보다 강화된 법률 자문을 지원한다는 정도다. 인천시교육감이 교육부에 관련 제도적 절차 마련을 요청할 것이라고도 했다. 해당 교육감이 체험학습 안전사고의 맥락을 감안해 사법당국에 선처를 요청할 수 있는 채널에 관한 것이다. 체험학습에 동행하는 보조인력의 안전 전문성도 강화한다. 현직 소방대원이나 경찰·소방 경력자 등을 포함하는 ‘안전요원 인력풀’을 운용한다는 내용이다. 인력풀을 활성화하기 위해 행정·재정적 지원도 늘릴 계획이다. 인천시교육청은 또 올 상반기 중 ‘학교현장교육 학생안전관리 조례’도 개정할 계획이다. 현장체험학습 안전 지원 조항을 신설한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이 정도로는 일선 교사들을 설득시킬 것 같지 않다. 법률 자문이라면 현재도 그 비슷한 지원이 있다고 한다. 안전요원 인력풀을 강화한다 해도 인솔 교사에 대한 무한 책임은 그대로다. 중과실의 경우만 아니라 부주의나 실수도 형사처벌 대상이 되니 기피하는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는 체험학습 무용론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과거와 달리 가족여행이 일상화한 요즘이다. 지켜주지 못한다면 강요만 할 현장체험학습은 아닌 것 같다.
인간이 인간을 부리던 시대였다. 노예 문제다. 결국 이 사안으로 충돌했다. 한쪽은 농업 위주여서 필요했지만 다른 측은 공업지대가 많았다. 한쪽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인권 문제에 앞서 생활 그 자체여서다. 노예제를 지지하던 이들은 군대를 꾸렸다. 국가로부터 분리를 선언했다. 이후 공격을 감행했다. 큰 상처를 안겨준 내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1861년 4월이었다. 그 포화는 1865년까지 4년 동안 이어졌다. 미국 남북전쟁의 서사가 그랬다. 노예 소유를 허용하던 남부와 이를 금지하던 북부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링컨 대통령은 노예제를 시행하는 주(州)에 노예제 철폐법안을 제안하진 않았다. 하지만 연설을 통해 노예제 확산을 막고 국민의 마음 속에 노예제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믿음을 심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1850년대 정치적 갈등의 줄기는 노예제 확대 여부가 주를 이뤘다. 남부는 연방에서 분리되고자 노력했다. 북부와 남부 모두 노예제가 다른 지역으로 확장되지 않는다면 범위가 축소되거나 결국 폐지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노예제에 반대하는 세력에 연방정부 통제권이 넘어갈 것에 대한 남부의 우려와 노예제 지지자들이 연방정부에 휘두르는 영향에 대한 북부의 혐오는 위기를 맞았다. 노예제의 도덕성, 민주주의의 범위, 자유노동과 노예제 간의 경제적 이득에 대한 논쟁 등이 도마에 올랐다. 그 전쟁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1865년 4월9일이었다. 북부군은 36만여명, 남부군은 26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패배한 남부는 황폐화돼 경제적 손실이 막대했다. 더구나 전쟁 전까지 노예를 부려 목화를 재배하던 남부는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 선언으로 경제적 기반이 무너졌다. 전쟁이 남긴 상처는 북부와 남부 모두에 큰 시련이었다. 미국은 이를 극복하고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더 단합된 국가를 이뤘다. 태평양 건너편 나라의 역사이지만, 요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사뭇 무겁다.
‘Opening a New Era for KSOC’. 대한체육회가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의미의 캐치프레이즈 아래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이 지난달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번 대한체육회장선거는 예상을 깨고 젊은 탁구 영웅이 승리를 거두는 이변이 연출됐다. 또 체육회의 굵직한 현안 중 하나인 ‘2036년 올림픽 유치 신청 국내 후보지 선정’에서도 서울을 제치고 전북이 선정되면서 유 회장이 취임하자마자 또 한번 이변이 일어났다. 심지어 유 회장은 대한체육회 출범 105년 만에 첫 여성 사무총장을 발탁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이처럼 요즘 국내외 체육계에는 변화의 요구와 함께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세계 스포츠 대통령’이라 불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에 최초의 여성, 그것도 아프리카 짐바브웨 출신 커스티 코번트리가 당선됐다. 42세로 역대 두 번째 최연소 위원장인 그는 2004년과 2008년 올림픽 수영 여자 배영에서 연속 금메달을 딴 ‘짐바브웨 수영 영웅’이다. 특히 코번트리의 당선은 오랜 기간 뿌리 내린 ‘유럽·남성’ 중심의 IOC ‘유리천장’을 깬 대단한(?) 사건이다. 당선 배경을 보면 IOC 위원 109명 가운데 변화를 갈망하는 젊은 위원들이 최연소 후보(1983년생)인 그녀에게 표를 몰아준 것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겨울 시즌 국내 체육계는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해 회원 종목단체 회장들을 선출하는 선거가 이어졌다. 경기도체육회도 산하 종목단체 총 69개 가운데 68개 단체가 회장 선거를 마무리했다. 지난 겨울은 정치적으로 어지러운 시기였지만 체육계도 그에 못지않은 잡음과 혼선이 이어졌다. 과거 선거가 끝나면 반드시 ‘화합’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후보들을 중심으로 갈라졌던 단체 구성원들을 다시 하나로 뭉치는 조치를 가장 먼저 취해온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선거 후에도 분열된 조직의 ‘화합’보다 권력 주변인들을 위한 ‘끼리문화’, 즉 그들만의 조직문화가 만들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선수, 지도자, 동호인, 심판 등을 위해 할 일이 산적한 체육단체에서만은 ‘화합’이 최우선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가 그토록 변화를 갈망하며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는 이유는 다양성을 수용하고 발전적인 ‘진화’를 바라기 때문이다. 많은 이변을 연출하며 새롭게 등장한 국내외 체육계 수장들이 과연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지, 갈등과 반목의 겨울이 가고 다시 움트고 있는 ‘체육의 봄’은 또 어떤 모습의 꽃을 피울지 기대가 크다. “오늘 유리천장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 투표 결과가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줬으면 좋겠다”는 사상 첫 여성 IOC 위원장 커스티 코번트리의 당선 소감처럼 이번 봄에는 국내 체육계에도 많은 ‘희망’이 싹틔우길 바라본다.
2025년 4월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 122일간 이어졌던 ‘윤석열 내란 사태’는 마무리됐다. 이번 사태가 윤석열 파면으로 귀결된 것은 민주주의 회복 탄력성을 국내외적으로 과시한 것으로 국가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우리의 취약점이 국제적으로 노출된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목격한 대한민국의 취약점을 되짚고 제도적·문화적 성찰을 기록하는 것은 이런 일의 재발을 막고 국가 이미지 개선에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민주주의와 헌정질서가 일시적이지만 붕괴됐다는 점이다. 헌법 수호자인 대통령이 스스로 헌법을 유린하는 내란을 일으켰다는 것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민 신임을 받아 막강한 권한을 위임받았지만 그 권한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야당이 자신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것을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하고 국민을 계몽하겠다며 군대를 동원해 국회 장악을 시도했다. 앞으로 대통령 지시라 해도 계엄 선포에 따른 군부대 동원의 경우에는 추가적인 확인 장치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또 대통령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헌법을 수호할 것인지 철저하게 따져보고 투표해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다. 대통령의 난폭한 헌정질서 파괴에 대해 공직사회가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도 실망스러운 점이다. 특히 국무위원들은 국무회의 심의를 통해 계엄 선포를 만류했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기력한 방관자였을 뿐이다. 윤리와 양심, 헌법 책무보다도 권력에 대한 충성을 택한 결과다. 사실은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주군이 파면됐으니 제대로 충성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비겁하고 무책임하며 무기력한 대응이었을 뿐이다. 어리석고 난폭한 대통령과 이기적이고 무기력한 국무위원들이 다시 나타난다면 대통령 내란이 재발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이 이번 내란 행위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인 것도 예상하지 못한 충격이다. 윤 전 대통령은 정치인 출신이 아니어서 착각할 수 있다고 하지만 국회의원은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정치인이고 민주주의와 헌정질서 수호에 책임이 있는 헌법 기관이다. 국회의원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내란 동조는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정치 셈법으로 봐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과반수 국민과 대립하면 대선 패배와 권력 상실은 당연하다. 국민의힘은 국민에 봉사하는 정치 기본으로 돌아가 셈법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내란 주도 세력은 물론이고 내란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진실과 사실 문제에 대해 보여준 파렴치한 태도는 윤리와 양심을 무시하고 이기주의에 집중하는 우리 사회 일단의 병리를 극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윤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변론 기회에 계엄 당일 자신이 동원한 군부대 지휘관이 자기에게 국회의원 체포를 지시받았다고 했는데도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계엄이 금방 해제될 것을 알고 계엄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부당한 지시를 군인들이 따르지 않을 것임을 알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도 속기 어려운 거짓말은 일부 언론의 가짜뉴스와 부정선거 주장에서도 극적으로 노출됐다. 주한미군이 선관위에 체류하던 중국인 99명을 체포해 일본 오키나와 미군부대로 이송했다는 한 매체의 보도는 상식선을 뛰어넘는 가짜뉴스다. 부정선거 주장은 이번에 헌법재판소에서도 확인했지만 그동안 다양한 조사와 심리를 통해 근거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는데도 여전히 음모론을 제기하거나 동조하는 사람들은 태도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취약한 부분이 드러났으면 고치는 노력이 필요하다. 몇 주일이나 몇 달 만에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고 꾸준하게 노력하면 2, 3년이 지나면 개선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100여년 간의 국가적 고통을 겪은 이후 경제 성장과 정치 발전, 한류 확산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멋진 나라로 올라선 만큼 이번에 드러난 몇 가지 취약점을 극복하는 과제도 멋지게 수행할 것이다.
“이 뉴스, 진짜 맞나요?” 학생뿐 아니라 일반 시민 사이에서도 자주 들리는 말이다. 정보는 넘치지만 진위를 가리지 못한 채 믿고 싶은 대로 해석하고 전파하는 일이 흔하다. 우리는 지금 정보의 양이 아니라 내용을 판단할 힘이 부족한 위험한 시대를 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편리함 뒤에는 허위 정보, 조작 콘텐츠, 음모론, 혐오 표현 등 고질적인 사회적 병폐가 따라붙는다. 정보 생산자의 특정한 목적을 반영한 알고리즘은 감정적인 콘텐츠를 덧붙여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이 과정에서 편향된 사실과 감정이 뒤섞여 정보의 혼란은 극심해진다. 정보의 진위 판독 문제는 단순히 글을 읽는 능력이 아니라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 즉 오늘날 우리가 ‘리터러시(literacy)’라고 부르는 종합적 사고 역량에 있다. 과거 문해력은 글을 읽고 쓰는 기술에 머물렀지만 현대의 리터러시는 정보의 출처와 목적을 따져보고 숨겨진 의도와 편향을 감별하며 그 내용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한국 학생들은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독해 영역 평균 점수가 OECD 평균을 웃돌았고 전체의 13%가 상위 수준(Level 5 이상)에 도달했다. 이 수준의 학생들은 긴 글을 해석하고 추상적이거나 직관에 반하는 개념을 이해하며 암시된 단서와 출처를 바탕으로 사실과 의견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미디어 리터러시’를 민주시민교육의 내용 요소로 포함했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교사 연수는 부족하고 실질적인 교육 콘텐츠도 드물다. 교과 간 연계나 정책 차원의 지원도 미흡한 상황이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부족은 단지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공중보건의 문제로도 직결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로나19 팬데믹이다. 백신에 대한 음모론, 잘못된 건강정보, 과장된 민간요법 등은 접종률을 떨어뜨리고 감염병 확산을 부추겼다. 공동체의 정신적 건강까지 위협한 것이다. 잘못된 정보는 단지 오해를 낳는 수준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사회적 위험 요소가 된다. 보건학에서는 이를 ‘건강정보 이해능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건강 관련 정보를 찾고 해석하며 신뢰성을 평가해 적절히 활용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많은 시민은 유튜브 영상이나 블로그 글이 ‘전문가의 말’처럼 보이기만 해도 쉽게 신뢰한다. 과학적 근거 없이 소비되는 정보는 의료적 판단을 흐리게 하고 불필요한 건강 비용을 초래하며 때로는 치료 시기를 놓치게 만든다. 더 큰 문제는 정보 접근성의 격차다. 노인, 장애인, 저소득층 같은 정보 취약 계층은 허위 건강정보에 더욱 쉽게 노출되고 이로 인해 질병 예방과 치료에서도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읽고 판단하는 힘’, 즉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부재가 자리하고 있다. 이제는 국어 교과 속 ‘읽기’ 수업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사회, 도덕, 과학 등 모든 교과를 아우르는 교육 시스템과 국가 차원의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관련 기관이 협력하는 ‘미디어 교육 거버넌스’가 구축돼야 한다. 이제 우리도 행동해야 한다. 가짜뉴스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백신은 단속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력이며 그것은 오직 교육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수단일 뿐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공공의 장치다. 디지털 시대의 시민은 더 이상 수동적인 정보 소비자가 아니다. 우리는 정보를 읽고, 해석하며, 판단할 줄 아는 ‘능동적 시민’을 길러야 한다. 그 출발점은 바로 지금, 교육 현장에 있다.